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365화
중현이의 소몰이 창법이 미국 뉴스에 방송된 후.
“…….”
영미권 인터넷 커뮤니티들에서 벌어지는 진귀한 풍경들에 우리는 할 말을 잃고 말았다.
내가 헛웃음을 터뜨렸다.
“애국가도 4절이면 끝나는데, 얘네는 무슨 소 울음소리 가지고 16절까지 하냐.”
“진짜 사람들 창의력이 대단한 거 같아요.”
밈(Meme).
대개 미국에서 적절한 사진과 함께 굵은 글씨를 넣어서 만든 짤방을 일컫는 용어인데.
중현이와 우리가 바로 그런 밈으로 등극하는 중이었다.
“용례가 굉장히 다양하네요.”
리혁이의 말대로 종류가 한두 개가 아니었다.
대표적으로 흥하고 있는 것은 시험공부로 각색한 짤방이었다.
2분할로 나뉜 사진에서 위에는 젖소들 속에서 우리가 유쾌하게 웃으며 방송하는 장면.
아래는 소떼와 소통을 하는 중현이를 보며 멍하니 바라보는 우리 표정이 나와 있었다.
[스페인어 시험, 전날 함께 즐겁게 놀았을 때]
[생각해 보니 같이 놀았던 친구가 멕시코 출신이라는 것을 깨달았을 때]
그것 외에도 길거리에서 외국 사람을 마주쳤을 때라든가.
여러 가지 자막이 덧입혀져 있는 밈을 보며 웃음을 터뜨렸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언어유희에 천부적인 재능이 있다면, 이쪽은 상황극에 재능이 있는 모양이었다.
“축하해요. 중현이 형.”
리혁이가 사진들이 가득한 외국 사이트를 보며 말했다.
“이거 한 방으로 중현이 형이 여기 사이트에서 K팝 아이돌 사진 및 언급량 1위가 됐대요.”
“오. 감사감사.”
당사자가 대만족한 가운데 우리는 삽시간에 넘쳐나고 있는 Cow 밈을 보며 멍한 기분을 느꼈다.
“이런 식으로 유명해지고 싶진 않았는데.”
“안에서 쎈 바가지가 밖에서도 쎄다고 하잖아여. 이미 한국에서부터 글러 먹었는데 어떡하겠어여.”
“그래도 외국 사람들한테는 멋진 걸로 어필하고 싶었는데…….”
시무룩해하는 비주의 말에 우리도 공감했다.
리혁이가 미묘한 표정으로 말했다.
“아, 이게 나쁜 건 아닌데…….”
미튜브 조회수가 쭉쭉 느는 것부터 해서 신규 외국 수플레들이 느는 것을 보면 좋은 일이긴 했다.
다만 그 계기가 좀 거시기한 느낌이다.
갑자기 불어난 손님들을 보고 식당 주인이 화색이 되어 어떻게 알고 오셨냐고 묻는데, 손님들이 ‘아 이 집 고양이가 예쁘다고 해서…’라고 하는 말을 들은 느낌이라고 할까.
“괜찮아.”
내가 힘차게 말했다.
“일단 어떤 식으로든 팬들이 새로 들어오고 나면, 우리 노래를 보고 입덕을 또 하게 될 테니까.”
“맞아여. 이제 외발자전거가 질릴 때쯤 노래도 하나 듣고.”
“춤도 보고.”
“그러다 보면~ 세계적인 슈퍼스타다 이 말이지.”
“와아아!”
머릿속으로 희망찬 마스터플랜을 풀가동하며 활기찬 웃음을 되찾는 우리였다.
조금 부끄럽긴 했지만 어쨌거나 좋은 일이었다.
빌보드 Hot 100 차트에서 16주 넘게 차트인을 하고 있었던 Thousand Dreams가 막 내려간 상황에서 신규 수플레들이 합류하게 될 계기가 하나 더 생긴 거니까.
이번에는 K팝뿐만 아니라 일반 외국인 미튜버들도 소몰이 창법을 보고 리액션 영상을 엄청나게 많이 찍기도 했고.
세계 각지의 신기하고 재미있는 뉴스 토픽으로 등장하기도 하고.
노스탤지어의 주연 배우이자 우리 친구인 루퍼트 딘은 그걸 SNS에 아주 자랑스럽게 태그하고.
“조, 좋은 일이야.”
“좋… 좋은 일인 것 같아요.”
애써 얼버무리려고 했지만, 우리 앞에 나타난 화면은 그런 기대를 무참히 배반하고 있었다.
댓글창에서 꺄르륵 웃음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다.
-우리 중국 일본 친구들 어디 갔니..? 왜 이럴 땐 얘네 자기네 나라 사람이라고 안 해주는 거야?
-아무튼 모르는 애들임ㅋㅋㅋㅋ 아무튼 모름
-공감성 수치ㅋㅋㅋ큐ㅠㅠ
-국격(하락)
-태극기 : 퍼....ㄹ...러러ㅓㅓㄱ..
-얼굴만 수출하고 싶은 아이돌 이런 거 조사하면 뉴블랙이 1위 나올 거라 백퍼 확신함
-아 내 일 아니니까 너무 재미있당ㅋㅋㅋㅋㅋㅋ
이번 스페셜 앨범 투어의 목표였던 전국민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가기가 성공해서 그런지.
마치 단톡방의 친구들처럼 놀리는 네티즌들이었다.
게다가 24시간 뉴스가 나오는 KTN에서도 연예계 소식으로 해당 소식을 다룬 덕분인지.
온 가족이 모인 명절 식사 자리의 화두가 우리가 되었다는 이야기가 여기저기서 들리고 있었다.
“…….”
참으로 행복한 설 명절이었다.
* * *
설 연휴가 끝난 후.
마침내 기다리고 기다리던 리혁이의 졸업식 날이 되었다.
“자.”
이동하는 차량 안.
넷이서 셀카봉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안녕하세여!”
“리혁이 없는 리혁이네 식구들입니다!”
우리끼리 와아아- 하며 몸을 흔든 후. 내가 마이크처럼 주먹을 막내에게 내밀었다.
“오늘이 무슨 날이죠?”
“리혁이 형의 졸업식 날입니다!”
“맞습니다. 저희 넷째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이제 더 이상 자신이 어리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날이죠.”
굉장히 흡족해하는 내 모습에 비주가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곤 서서히 가까워지는 예술고등학교의 전경을 흘깃 바라볼 때, 중현이가 말했다.
“저희는 지금 깜짝 카메라 하러 가는 중이에요.”
“리혁이한테 오늘 못 간다고 했거든요. 저희가 곧 일본 콘서트를 앞두고 있어서…….”
비주가 뿌듯하게 웃으며 봉투를 들어 보였다.
“이따 만나면 엄청 놀라겠죠? 제가 리혁이 선물로 주려고 이렇게 향수랑 꽃도 샀어요.”
“네, 그리고 저희는 비주 선물에 얹혀 갈 예정입니다.”
“어? 다들 각자 선물 산다고 하지 않았어요?”
“사려고 했지.”
중현이와 나, 지호가 훈훈한 눈빛을 교환하며 답했다.
“선물 주는 것마다 타박이 오죽 심해야지. 이건 자기 취향이 아닌데 2년 넘게 살면서 그것도 모르느냐, 어쩌고.”
“피곤해여.”
“안 주고 두고두고 욕먹기 vs 주고 나서 두고두고 욕먹기. 앞에 거 승.”
그래서 꽃이랑 손 편지만 준비했다고 하니 비주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엄청 좋아하겠네요.”
좋아할 게 분명했다.
어제 콘서트 준비 때문에 못 갈 것 같다고 미리 ‘졸업 축하해~’ 하고 그랬는데.
‘알았어요’ 하고 대답하면서도 은근히 서운한 눈치였다.
아침에 나갈 때도 일부러 자는 척하고 있었는데.
“엄청 삐졌을걸여. 아침에 보니까 욕실에 우리 치약들 다 일부러 중간 부분 눌러놓고 나갔어여.”
소심한 복수에 우리가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는 동안 사람들이 바글바글한 예술고등학교의 야외 주차장 출입구가 가까워졌다.
“흐어, 여긴 뭐가 이렇게 난리냐.”
“완전 축제네요.”
운전대를 잡고 있는 원석이 형도 난처한 표정을 지을 때, 백여 명의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뉴블랙]이 적힌 플래카드를 든 사람들이었다.
“아, 다 우리 보러 온 사람들이네.”
꼭 우리만 있는 건 아니었다.
‘하이컬러’, ‘라비앙로즈’ 등의 이름이 붙은 걸 보면 이번 졸업생 중에 아이돌 출신이 많은 모양이었다.
우리가 지호한테 물었다.
“원래 이렇게 아이돌이 많아?”
“네, 겁나 많아여. 거의 아이돌 사관학교 수준.”
“호오.”
확실히 연예인들이 많은 고등학교답게 대포 카메라를 비롯해서 연예부 기자들도 취재를 하고 있고.
ENG 카메라를 들고 있는 방송국도 있었다.
그리고.
“아니, 학교 졸업식에 포토월이 왜 있어?”
“저도 아는 형 누나들 졸업할 때 잠깐 와 봤는데, 원래 졸업식 이렇게 해여.”
거기다 레드 카펫까지 깔려 있었다.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막내와 다르게 낯선 졸업식 풍경에 형들은 문화충격을 느끼는 중이었다.
이윽고 선물을 챙겨들고 차에서 내릴 때.
“뉴블랙!”
“와씨, 야! 뉴블랙! 찍어!”
“와아아아아악-!”
제일 먼저 카메라들이 코끼리 부대처럼 달려오고.
우리를 향해 미친 듯이 달려드는 백여 명의 사람들의 모습에 눈을 휘둥그레 떴다.
학교 측 통제요원을 비롯해 우리를 둘러싼 원석이 형과 민기 형도 넋이 나간 표정이었다.
“와아아아아악!”
뭔가 내가 상상했던 리혁이의 졸업식과는 전혀 느낌이 달랐다.
* * *
학교 강당.
졸업식 진행을 앞두고 3학년 학생들이 의자에 앉아 이런저런 잡다한 수다를 떨고 있을 때.
“와…….”
이따 졸업식을 진행할 때 학교로부터 상을 받을 사람들이 모여 있는 맨 앞줄.
그중에서도 정중앙에 앉아 있는 뉴블랙의 메인보컬에게 시선이 모였다.
‘……대박이다.’
드라마에 나오는 모범학생 같다고 할까.
티 없이 맑은 피부와 고운 손.
양손을 모은 채 바른 자세로 앉은 모습과 함께 단정한 머리를 보다 보면 사색에 잠긴 듯했다.
군청색 재킷과 빨간색 스트라이프 넥타이는 분명 같은 교복이었지만 다른 세상 사람처럼 보였다.
“와…….”
중간중간 단정한 머리를 살짝씩 넘겨 오뚝한 코가 돋보일 때마다 감탄이 나왔다.
맨 앞줄에 앉아 있는 보이그룹, 걸그룹 멤버들 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비주얼이었다.
‘근데 진짜 조용하네.’
방송에서야 멤버들과 함께 와와악 떠드는 모습이 자주 보이지만, 실제로는 굉장히 조용한 메인보컬이었다.
예능으로 보면 가장 하찮은 이미지인데.
막상 지금처럼 TV 밖에서 마주하면 특유의 느낌 때문인지 왠지 말을 걸기가 어려운 분위기였다.
“어머어머, 쟤는 누구래? 엄청 잘생겼네.”
“뉴블랙에 걔잖아. 단추.”
“걔야? 못 알아볼 뻔했네. 진짜 잘생겼다.”
2층에서 구경하던 학부모와 가족들도 계속해서 힐끔힐끔할 때.
혼자 사색에 잠겼던 리혁이 생긋 웃자 주변에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짙어졌다.
하지만 당사자가 하고 있는 생각은 사색과는 거리가 멀었다.
‘역시, 파데 두껍게 바르기를 잘했어.’
귀도 머리로 잘 가렸고.
마음속으로 희희낙락하면서 서리혁은 주변에 있는 다른 아이돌 멤버들을 둘러보았다.
“흥…….”
그들은 저마다 2층에서 손을 흔드는 그룹 멤버들에게 같이 손을 흔들어 주고 있었다.
그걸 보니 더 괘씸해졌다.
‘왕지호 중학교 졸업식에는 잘만 가던 사람들이.’
일본 콘서트 준비가 중요하다는 것도 알지만.
작년 연말부터 이번 소극장 투어까지 시간이 날 때마다 일본 공연에 선보일 안무 등을 연습한 터였다.
끝나고 온다고야 하지만 고작 1시간 정도를 못 쓰나 하는 생각이 들 때.
와아아아아아악-
멀찍이서 어마어마한 함성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일순간 정적이 감돈 강당.
“…….”
엄청난 소란이 벌어진 듯한 소리에 잠시 다들 눈을 깜빡이고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뉴블랙인 것 같지?”
“뉴블랙 왔나 보네.”
“뉴블랙이구나.”
갑자기 TNT나 틴스피릿이라도 등장한 게 아닌 이상.
이번 졸업생 중에서 그룹 인지도를 감안했을 때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사고의 흐름이었다.
모두가 서리혁을 향해 시선을 돌릴 때.
‘하여간.’
뭔 일을 해도 어설프게 처리하는 멤버들을 생각하며 비죽 웃음을 흘리는 리혁이었다.
그러곤 헛기침을 하고 자세를 더 바로했다.
* * *
인파를 뚫고 강당까지 들어오는 건 거의 전쟁이었다.
“후아…….”
안무 연습을 한 게 아닌데도 구레나룻에 땀이 맺힌다고 해야 되나.
포토월 앞에서 ‘저희 넷째 축하하러 왔습니다’ 하는 인터뷰 등을 마친 후.
사람들끼리 밀치고, 자기들끼리 욕설을 하고, 카메라 조명이 눈을 때릴 뻔하고.
“지호야.”
우리가 진지하게 말했다.
“넌 혼자 졸업해라.”
“아.”
“반쯤 진심으로 하는 얘기야.”
내년도에 어떻게 되어 있을지는 모르지만 이것보다 더 유명해진다면…….
“진짜 중현이랑 사람들 부딪힐 때마다 얼마나 초조했는지 몰라.”
“저도 무서웠어요. 형. 얘랑 부딪힌 사람들이 병원에 가서 전치 4주 나왔어, 이럴까 봐.”
“그건 저도 인정이에여.”
그런 이야기를 하는 동안 주변에서 우릴 보고 놀라는 학부모 및 가족들에게 웃으며 인사했다.
그때 웅성이는 소란에 미간을 찌푸리던 학부모 한 분이 우릴 돌아보곤 아, 하며 인사했다.
반갑다는 듯.
“왔어?”
“네, 지금 막 왔어요. 차가 좀 밀려서.”
그런 이야기를 나눌 때.
“……어?”
“……아?”
눈을 멀뚱멀뚱하며 서로를 바라보다가 웃음이 터졌다.
아는 사람처럼 인사를 했는데 서로 모르는 사람이란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아는 사람이라고 순간 생각해서.”
“네, 저희도…….”
아버님이 머쓱하게 웃으며 꾸벅하는 가운데 우리도 같이 인사했다.
그러는 동안 2층에서 자기 그룹 멤버들에게 인사하는 다른 아이돌 그룹에게도 인사했다.
“어, 선배님.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작년에 데뷔해서 신인상을 수상한 걸그룹 하이컬러 멤버들에게 마주 배꼽인사를 했다.
그러곤 곧바로 우리 애를 찾았다.
“서리혀어어억—”
지호가 입가에 두 손을 모으고 말하자 정적이 감돌았다. 이윽고 전교생이 우리 막내를 바라보고 빵 터졌다.
“하이!”
우리가 ‘졸업 축하’ 플래카드를 하나씩 나눠 들어서 율동처럼 흔들자 리혁이가 돌아보고는.
“…….”
혀를 차며 바로 외면했다.
꽁트 같은 분위기여서 그런지 강당에 웃음이 터져 나왔다.
순식간에 수천 마리의 왕벌이 떠드는 것처럼 시끌벅적해진 강당.
맨 앞에 나와 있던 선생님이 마이크를 들었다.
-재학생들 조용히 합니다!
-죄송하지만 뉴블랙 가족 분들은 웃기지, 아니 플래카드 내려 주세요.
순간 웃기지 말아달라고 하신 것 같은데.
분위기가 잠잠해졌을 때, 우리에게 머리를 슬쩍 돌리곤 고개를 까딱하는 리혁이었다.
그러곤 핸드폰을 슥 꺼냈다.
리혁 [제발]
리혁 [이상한 짓좀 하지 마요!!!]
리혁 [내 졸업식을 망치지 말아줘]
격하게 우리의 등장을 환영하고 있는 메인보컬이었다.
넷이서 2층에서 OK 손동작을 그리며 윙크를 하자 사람들이 또 웃기 시작했다.
뭐지. 왜 웃지.
그러는 동안 1층에 있는 3학년 학생들을 향해 손을 흔드는 지호에게 시선이 갔다.
“영환이 형, 축하해여.”
“누나들 졸업 축!”
“나 이따가 스케줄 있어여.”
거의 전교생과 친구를 맺은 것인지 여기저기 입모양과 손짓발짓을 동원해 인사하는 막내였다.
“안녕하세여.”
1층에 서 있는 아주머니에게 지호가 인사를 하자 상대가 푸근한 미소로 화답했다.
“저분은 누구셔?”
“학교 미화원 분이에여. 매점 아줌마랑 저랑 셋이 절친.”
친구가 몇 명인 걸까.
어디서 인간이 최대한 맺을 수 있는 인간관계의 한계가 100명인가 그랬는데 이 분야에선 종을 초월한 우리 막내였다.
새삼스러운 마당발에 대한 감탄이 나올 때.
“어……?”
우리도 리혁이가 같은 반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걸 보며 눈을 크게 떴다.
어색한 분위기가 아니라 진짜 친구들 사이에서 나올 법한 대화의 느낌이었다.
중현이가 내게 물었다.
“형, 입 모양 좀 스캔해 주세요.”
“잠시만. ‘좀 떨리긴 하네. 저번에 수업 시간에… 내 입모양 읽지 마요. 이 사람아.”
어느새 눈치를 챘는지 나를 바라보며 눈을 가늘게 뜨는 녀석의 모습에 헛기침을 했다.
비주가 신기하단 표정을 지었다.
“리혁이가 친구가 있네요?”
“그러게. 쟤가 친구가 있네.”
“지호가 리혁이 친구 없다고 했잖아요.”
지호가 고개를 끄덕이며 되물었다.
“거의 같은 반에서 몇몇 정도랑 친한 정도? 저 정도면 친구 별로 없는 거 아니에여?”
“야, 저게 없는 거면 우리는.”
“어? 형들, 친구 있었어여?”
나와 비주가 콧김을 뿜는 가운데 중현이한테 처리를 부탁했다.
리혁이 형 친구 적어서 너무 안 됐다고 맨날 막내가 얘기를 해서 그런 줄 알고 있었는데.
의외로 교우관계가 좋다고 생각하니 뿌듯하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음?”
걸그룹 라비앙로즈의 멤버와 함께 리혁이가 무대 위로 올라가 마이크를 잡았다.
-안녕하세요!
-올해 졸업식 진행을 맡게 된 3학년 3반 서리혁입니다.
왜 고등학교 졸업식에 MC가 있는 거지.
MC들의 진행과 더불어 걸그룹 하이컬러의 멤버들이 축하 공연으로 본인들의 타이틀곡 무대를 했다.
“……?”
나와 중현이, 비주가 눈을 깜빡깜빡하며 적응에 애쓰는 동안.
갑자기 막 태권도복을 입은 학생들이 발차기를 휘뤼릭 하며 안무를 추기 시작하고.
다양한 볼거리가 눈앞을 지나갔다.
하지만 그중에서 가장 당황스러운 건 그런 공연이 아니라 시상이었다.
-최고 공로상, 3학년 3반. 서. 리. 혁.
리혁이가 반듯한 자세로 연단 위로 걸어올라 갔다.
-위 학생은 품행이 단정하고.
아닌데.
-봉사 정신이 투철하며.
그것도 아닌데.
-학교 발전에 기여한 바가 크므로…….
그건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학교의 최고 유명인사인 리혁이에게 상장을 주는 것 같았다.
3학년 학생 중에서 최고 아웃풋이 리혁이라는 사실이 못마땅하긴 했지만…….
이어서 다른 상들도 이어졌다.
-바른 인재상 서. 리. 혁.
우리가 환한 미소를 지으며 박수를 쳤다.
“바른 인재상?”
“바른 인재…?”
“바르지도 않고 인재도 아닌데.”
뭔가 납득할 수 없는 상들의 향연에 표정관리를 이어갈 따름이었다.
* * *
[언제나 가족 같은 분위기의 뉴블랙.gif]
(졸업식에서 최고 공로상 멘트마다 다채로운 표정 변화를 보이는 뉴블랙.gif)
공로상 표창장 문구 들릴 때마다 웅성웅성하는 게 보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표정 왤케 귀엽냐구
-품행이 단정부터 동공 지진난 거 봐
-ㄹㅇ 가족 같다ㅋㅋㅋㅋㅋㅋ
-(단추 터지는 짤.gif) 품행이 단정하고
-(역사 탐험대 미션으로 벌칙을 할 때 제일 먼저 도망치는 리혁.gif) 봉사정신이 투철하며
-이러니까 납-득
-저기 교장도 솔직히 상 주면서 웃기긴 했을 거야
-아니 근데 ㅋㅋㅋㅋ 저기 멤버들 다 전력 생각하면 저런 반응 보일 처지는 아니잖아
-젠민이 대길이.. 품행이 단정한 라인업
-월클이네
-하이퍼스터디 흑역사 강사진 1타 라인업 보는 느낌이야
* * *
졸업식이 끝나고 교실에서의 종업식까지 마친 후.
리혁이는 한참 뒤에나 나왔다.
“왜 이렇게 늦게 나왔어?”
꽃다발을 품에 잔뜩 안아든 리혁이가 차에 올라탔다.
“담임 선생님이랑도 얘기 좀 하고. 과목 선생님들 찾아서 손 편지 드리느라 좀 늦었어요.”
“다들 좋아하셨어?”
“네, 지금보다 더 잘 됐으면 좋겠다고 덕담들 해 주셨어요.”
그러곤 꽤 무게가 나가는 듯한 에코백을 내려놓았다.
“그건 뭐야?”
“친구들한테 받은 편지랑 롤링 페이퍼요.”
“오…….”
“예전에 줬던 편지들이 고마웠나 봐요. 다들 답장을 준비한 모양이더라고요.”
리혁이가 기분 좋다는 듯 편지 꾸러미를 바라보며 웃었다.
그쯤에서 우리도 등에 숨겼던 꽃다발을 내밀었다.
“짜잔-!”
“아, 뭐야아…….”
답지 않게 말끝을 흐리며 좋아하는 우리 애였다.
고개까지 슥슥 흔들며 헛기침하는 걸 보아하니 엄청 행복해 보이긴 했다.
“이건 내가 멤버들 대표해서 주는 선물~”
비주에게 건네받은 선물과 함께 손 편지들을 받아든 리혁이가 환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곤 품에 든 꾸러미를 빤히 바라보더니 입술을 꼼지락거렸다.
“……고마워요.”
“졸업 축하해. 리혁아!”
축하합니다- 축하합니다- 하며 노래를 부르고 있을 때, 리혁이가 코를 킁 거렸다.
“어? 너 울어?”
“아, 아뇨. 안 우는데요?”
꽃다발을 품에 안고 눈가가 촉촉해진 얼굴에 우리가 미소를 지었다.
운다고 놀리면 부끄러워할 것 같아서 화제를 돌렸다.
“그럼 졸업 축하 기념으로 짜장면이나 먹으러 갑시다!”
“짜장면~!”
매니저 형들이 차를 움직이는 가운데, 리혁이가 감상에 젖어있는 동안 우리가 주섬주섬 핸드폰을 꺼냈다.
“그럼 누가 이긴 거예여?”
“고마워요랑 눈물 촉촉 둘 다 나왔으니까 우주 형이 이긴 거 아냐?”
“중현이가 제일 못 맞췄으니까. 밥은 중현이가 사는 걸로…….”
눈물이 쏙 들어간 얼굴로 리혁이가 우리를 바라보았다.
“아니, 지금 이걸 가지고 내기를…….”
이윽고 쏟아진 분노의 고함에 다 같이 사이좋게 귀를 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