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366)화 (366/1,031)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366화

38장. 홍보는 어렵다

리혁이의 졸업식이 끝난 다음 주 월요일.

공항으로 가는 차량 안에서 꾸벅꾸벅 졸다 깨다가 반복하기를 끝냈을 무렵이었다.

“아이고.”

절로 추임새가 나왔다.

인천공항 3층 터미널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인파를 보고 있자니 막막하다고 할까.

“……저걸 어떻게 뚫고 가냐.”

“와. 빈틈없는 거 봐여.”

사다리 위에 올라선 홈마들이 대포 카메라를 들고 있고, 연예부 기자들은 아예 달리려고 몸까지 풀고 있다.

빈틈 하나 없이 빽빽하다.

축구 감독들이 본다면 수비는 저런 식으로 해야 하는 거라고 교본으로 삼을 듯한 광경이었다.

“그래도 뚫을 수 있을 거 같긴 한데.”

예리하게 빈틈을 찾는 중현이의 중얼거림에 나와 리혁이가 손을 저으며 말했다.

“논란 만들지 말자. 풍뎅아.”

“차라리 흑역사를 만들면 만들었지, 논란은 안 돼요. 형.”

매니저 형들도 막막한 얼굴로 차를 몰았다.

“차라리 아예 3번 게이트 쪽으로 옮겨…….”

“따라붙는데요.”

사다리를 든 홈마들과 기자들이 미친 듯이 달려와서 자리를 새로 잡기 시작했다.

매니저 형들과 함께 하하핫 하는 웃음을 교환했다.

이윽고 공항 보안인력과 경호업체 직원들, 매니저들 간에 숨 가쁜 의사소통이 오간 후.

“와아아아아아-!”

동생들과 함께 차에서 내렸다.

인천공항을 순식간에 떠들썩하게 만드는 함성과 함께 플래시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횡단보도 앞에 서서 기자들에게 사진 포즈를 취하면서 웃은 후.

“지나갈게요!”

“밀치지 마세요! 밀치지 마요!”

“물러나세요!”

우리를 양옆으로 둘러싼 경비업체 직원들의 도움을 받아 무사히 빠져나갈 수 있었다.

어이쿠.

나한테 몸통박치기를 하듯 달려들다가 나가떨어지는 사생도 있고.

카메라를 떨어뜨려서 나오는 비명을 비롯해서.

부딪혀서 자기들끼리 욕설을 하기도 하고, 공항의 이용객들이 지나가다 눈을 부릅뜰 만큼 아수라장이었다.

“악!”

누군가에게 머리를 잡아 뜯길 뻔한 리혁이의 팔을 부드럽게 잡고 내 앞으로 밀었다.

경비업체 직원들의 옆구리나 어깨 사이로 손이 쑥쑥 뻗어져 나왔지만.

스윽.

그때마다 몸을 살짝씩 틀어서 모두 피했다.

“……?”

유유히 지나가는 내 모습에 달려드는 이들을 막던 경비업체 직원 하나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스윽.

서당 개도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는 말답게 이것도 여러 번 하다 보니 노하우가 생기는 것 같다고 할까.

손들을 가볍게 피하며 동생들을 도왔다.

“어…? 어!”

실수로 한약탕 집에 들어온 사슴처럼 당황한 메인댄서를 붙잡고 앞으로 이끌었다.

그렇게 탑승수속까지 마친 후.

평소처럼 공항 출국장과 비행기까지 따라붙긴 했지만 우리 근처까지 오진 못했다.

“뭔가 성벽에 둘러싸인 느낌이에요.”

비주의 말대로 우리 좌석 주변에 앉아 있는 승객들이 다 회사 직원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창가 쪽에 붙어 동생들과 시간을 때우고 있을 때.

“잘들 있었어?”

익숙한 목소리와 함께 내 옆자리에 앉는 수학귀신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나와 동생들이 웃으며 반겼다.

“승진 축하합니다. 우리 팀장님.”

“예, 덕분입니다. 가수님.”

석환 형이 씩 웃으며 자리에 앉았다.

다른 스탭들과 다르게 혼자 정장까지 차려 입은 모양새라서 그런지 더 눈에 띈다.

“정장 입고 안 불편해?”

“일본 도착하자마자 갈 곳이 많아서. 비즈니스 미팅도 많고.”

“오오…….”

우리가 ‘이야, 팀장님~’ 하며 오오오 하자 상대가 너털웃음을 보였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이 정말인지, 승진하고 나서 원래 나이보다 더 늙어 보이는 우리 형이었다.

엄청나게 빠른 승진이긴 하다.

회사 배우 팀장님들이나 기존의 4팀장님만 해도 최소 40대는 되는 나이들이었으니까.

“이게 새 명함이야?”

“새로 만들려고 한 건 아닌데, 대표님이 만들어서 주셨어.”

새로 뽑았는지 뽀독뽀독한 느낌이 나는 명함에 ‘TF 팀장’이라는 직위가 쓰여 있었다.

뉴블랙 TF팀.

각 부서 재무, 홍보 담당 등과 매니지먼트 팀의 인력을 차출해서 하나의 작은 회사처럼 만든 팀이었다.

기존의 4팀장님이 신설된 2본부의 장이 되고, 그 밑에 스칼렛과 뉴블랙 TF팀이 있는 구조였다.

“팀장님이라니.”

우리가 오오, 할 때마다 민망해하긴 하지만 은근히 좋아하는 석환 형이었다.

벨트를 매던 상대가 손사래를 쳤다.

“비행기 좀 그만 태워. 다 너희가 잘한 덕분에 잘된 거니까.”

쑥스러워하는 상대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윤석환이란 이름 앞에 붙은 ‘팀장’이라는 호칭을 보고 있자니 기분이 묘하면서도 좋았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시간이 진짜 많이 지났구나 하는 데서 느끼는 묘함과 함께.

오랜 인연을 맺은 사람이 나와 함께 같이 올라가고 있다는 사실이 좋았다.

“그나저나.”

주변 좌석에 앉아 있는 홍서영 과장님을 비롯해서 회사 복도에서 마주치던 사람들까지.

댄서팀과 밴드 세션을 제외해도 투어를 나갈 때 이 정도로 많은 인원이 동행한 건 처음이었다.

“오늘 인원은 왜 이렇게 많아?”

“이번에 일본에서 2주 동안 머무르는 동안 너희 프로모션 진행해야 할 것도 많고.”

“아.”

“조 이사님도 중간에 잠깐 들렀다 가실 거야.”

콘서트 외에도 회사 사람들이 바쁘게 돌아다녀야 할 사안이 한두 개가 아닌 듯했다.

회사 쪽에서 준비한 기획도 많고.

그만큼 이번 일본 투어에 회사가 공을 들이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참, 그런데…….”

내가 목소리를 낮추고 물었다.

“스케줄표에는 아무것도 없던데?”

“아.”

“콘서트 말고는 딱히 써져 있는 게 없더라고.”

대개 해외 투어를 나가기 전에 이 나라의 어디 방송에 잠깐 나가서 인터뷰를 할 것이다.

어디를 방문할 것이다, 하는 홍보 일정이 있었는데.

이번 일본 방문의 경우에는 몇 가지를 제외하면 외부 행사에 대한 일정이 일절 없는 터였다.

석환 형이 머쓱한 웃음을 보였다.

“그게 조금 문제가 있어서…….”

“문제? 무슨 문제여?”

뒷자리에서 도청을 하고 있던 막내와 중현이가 좌석 위로 고개를 쏙 내밀고 소곤거렸다.

우리 팀장님이 나중에 얘기해 주겠다는 눈빛을 보였다.

그러곤 내게 말했다.

“지금 너희 일본 상황이 좀 애매한 편이라서, 나도 확답을 해 주기가 애매하거든.”

“……?”

“나도 몇 가지는 직접 가서 좀 느껴야 할 거 같고.”

아리송한 말을 남기는 상대를 보며 눈을 깜빡였지만 더 이상 대화를 이어 나가진 않았다.

곧 이륙을 앞두고 있었으니까.

눈을 감고 심호흡을 하는 동안 비행기가 드넓은 창공을 향해 질주하기 시작했다.

위이이잉- 하며 귀를 먹먹하게 하는 소리에 맞춰 손에 든 인형을 꾹 눌렀다.

꽤애애애액-

중현이에게 선물로 받은 물건이었다.

불안할 때 누르면 좋다는 닭 삑삑이 인형의 배를 뽀옥뽀옥 누르며 열심히 심호흡을 했다.

그리고 이륙을 무사히 마쳤을 때.

음료 카트를 밀고 오는 승무원 분이 식은땀을 흘리며 닭 인형을 꼬옥 쥔 나와 눈이 마주쳤다.

승무원이 무슨 상황인지 해석하려는 표정을 지을 때.

“제 친구예요.”

인사해, 하면서 닭 인형을 꽤액 눌렀더니 상대가 그만 웃음을 터뜨렸다.

어떤 포인트가 웃긴 거지…?

요즘은 만나는 사람마다 우릴 보면 웃기 바쁜 듯했다.

*   *   *

간사이 공항.

우리가 내린 곳은 일본 오사카에 있는 국제공항이었다.

콘서트는 이곳 오사카와 붙어 있는 도시인 고베 시의 홀에서 며칠 진행하고, 이후 요코하마에서 진행할 예정이었다.

그리고 콘서트를 하기 전이나 중간중간 팬사인회를 비롯해서 일본 팬들을 끌어모을 프로모션도 하고.

‘이번에 일본에 가서 아이돌 팬들에게 이름을 더 많이 알리고 오자!’

…라는 게 이번 일본 프로모션의 목표였다.

그게 목표였는데.

“……?”

간사이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보안인력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는 게 보였다.

동생들과 캐리어를 들고 눈을 깜빡깜빡하고 있을 때.

「상황이 진정될 때까지 잠시 기다려 주시기 바랍니다.」

「무슨 일이 있나요?」

내 물음에 공항 사람들이 도리어 ‘얘가 뭔 소리를 하는 거야?’ 하는 듯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경찰모 같은 모자를 쓴 직원이 말했다.

「여러분의 팬이… 많습니다.」

「아.」

「어어엄청.」

손으로 ‘엄청~’을 만들어 보이던 상대가 다른 직원들과 바쁘게 무전을 주고받고 있었다.

매니저들이나 다른 스탭들도 고개를 갸우뚱할 때.

“어어……?”

밖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는 모르겠지만 마치 라이온킹에서 본 것처럼 수백의 소떼가 뛰어다니는 듯한 진동이었다.

꿀꺽.

리혁이가 나와 중현이 뒤로 숨었다.

“뒤에 있다가 뒤쳐지면 어떡하려고?”

“…….”

새초롬하게 나와 중현이 앞으로 서는 리혁이었다.

그 뒤로 비주와 지호가 붙자, 녀석이 당황했다.

삼각 편대로 맨 앞에 있는 모습이 꼭 배 맨 앞에 달린 조각상 같은 모양새였다.

“아니, 잠깐만. 이러면 내가 방패잖아.”

우리가 따스한 미소로 화답했다.

“스스로를 너무 과대평가하는구나.”

“형은 미끼예여. 미끼.”

일본 팬들에게 던져주고 우리끼리 도망칠 거라고 장난하니 상대가 입에서 불을 뿜었다.

그렇게 지체된 시간을 때울 때.

비주가 이상하다는 듯 물었다.

“그런데 우리가 언제부터 일본에 팬이 이렇게 많았을까요?”

“그건 나도 의문이야.”

“저번에 왔을 때만 해도 막 엄청나게 사람 많고 그런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이름도 잘 모르고.”

작년 봄.

바람꽃 앨범 활동을 마무리할 때쯤에 K-Net에서 진행하는 K-pop 콘서트에 참가하고 쇼케이스를 한 게 다였다.

그 외엔 인터넷 TV 예능 하나와 잡지사들과의 인터뷰 정도?

리혁이가 말했다.

“솔직히 이상한 게 한둘이 아니에요. 콘서트 규모부터 그렇고.”

우리가 예상했던 것보다 콘서트 규모도 크다.

시부야에서 진행했던 1,000명 규모의 쇼케이스와 비교했을 때 수십 배는 커져 있었으니까.

물론 그때도 티켓팅만 몇 만 명이었다고 듣긴 했지만…….

불과 1년 남짓한 시간 만에 이 나라에서 우리가 모르는 사건들이 벌어졌던 듯했다.

메인보컬이 주변을 바라보며 목소리를 낮췄다.

“그리고 제일 이상한 게 뭔지 알아요?”

“뭔데?”

“여기 간사이 공항 직원들 말이에요. 표정이 꼭 우리를 알고 있는 것 같지 않아요?”

“……어?”

그 말에 주변을 둘러보았다.

호의든 적의든 간에 상관없이 직원들이 우리가 누구인지 꽤나 알고 있는 표정이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바로 옆 나라긴 해도 K팝 가수에 대해 관심이 있는 층이 아니고서야 이름을 모르는 게 정상이니까.

그런데 우리가 누구인지 이미 알고 있는 눈치들이었다.

“미튜브 때문일까?”

“그게 가능성이 제일 높긴 하네여.”

“근데 저기 서 있는 분들은 미튜브 잘 안 볼 거 같은 연령대잖아요.”

그런 대화를 주고받고 있을 때.

「저, 실례합니다만 혹시…….」

공항 보안요원 중에 젊은 남자가 우리에게 다가와 말했다.

「사인 부탁해도 될까요?」

「사인이요?」

「네, 사인이요. 실례가 안 된다면, 저기 서 있는 다른 사람들까지.」

멀찍이 선임자로 보이는 인물들이 수줍게 손을 흔들었다.

종이에 우주선을 열심히 그려 주면서 이름들을 묻자 상대의 표정이 밝아졌다.

아스카라고 자신을 소개한 상대에게 물었다.

「그런데 아스카 씨는 저희를 어떻게 아시나요?」

「아.」

우리가 예상한 대로 미튜브인가? 하고 귀를 기울일 때, 상대가 당연하다는 듯 답했다.

「TV에서 자주 봤습니다.」

「TV요?」

‘하이’ 하며 고개를 끄덕이는데 영문을 알 수가 없는 노릇이었다.

일본 TV에 나왔다고?

내가 시선을 돌리자 석환 형이 애매한 표정을 지었다.

가서 말을 걸려고 할 때, 마침내 공항 측에서 이제 빠져 나가도 좋다고 안내를 해 주었다.

“자, 일단 가 봅시다.”

“고고고~!”

우리가 캐리어를 밀고 스크린 도어를 빠져나가자.

“꺄아아아아아아-!”

귀청을 찢을 듯한 함성이 우릴 맞이했다.

사람이 진짜 바글바글했다.

플래시가 터져 나오고, 플래카드를 든 수플레들이 우와아아 하며 손을 흔들고 있다.

“……?”

순간 얼어붙어서 눈을 휘둥그레 떴다.

여긴 일본으로 따지면 수도권 쪽보다는 부산 쪽에 가까운 곳일 텐데.

그런데도 저번에 도쿄를 방문했을 때와 비교도 안 될 만큼 불어나 있는 인파였다.

「둘 셋!」

「안녕하세요! 뉴블랙입니다!」

우리가 환하게 웃으며 인사하자 환호가 되돌아 왔다.

와. 사람 진짜 많네.

어떻게 된 영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동생들과 즐거운 눈빛을 교환했다.

「안녕하세요오-!」

“와아아아아-!”

2층에서 구경하는 사람들에게 손을 흔들어 준 후.

“우주! 우주!”

“중현 사아아앙!”

일본의 수플레들에게 다가가 사인을 해주거나 중간중간 같이 셀카도 찍었다.

이대로 훅 떠나면 안 될 것 같은 분위기였다.

외국 공항에 방문했던 순간들 중에서 가장 큰 인파에 가슴이 두근두근하다고 할까.

“우와아…….”

우리가 혀를 내둘렀다.

「모두들! 여긴 어떻게 알고 오셨어요?!」

리혁이가 크게 외치자, 여기저기서 온갖 대답이 날아들며 소리가 섞이기 시작했다.

무슨 말인지 알아듣기가 힘들었다.

그러는 동안 주변에서 우리가 움직일 때마다 집요하게 따라붙어 촬영하는 카메라들을 흘깃 바라보았다.

“……?”

지역 방송국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삼각대에 설치된 카메라들에는 메이저 방송국 로고가 붙어 있었다.

그렇게 팬들에게 인사를 마친 후.

「감사합니다! 우리 콘서트에서 만나요~!」

수플레들에게 손을 흔들어주며 간사이 공항 바깥에 주차된 미니버스에 올라탔다.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후아…….”

차에 타서 야구 모자를 벗으니 땀이 줄줄 흘러내렸다.

땀 때문에 축축해진 장갑을 벗고 심호흡을 하고 있을 때.

“아으으, 나 어깨 아파. 나 아까 뛰고 있을 때 누가 들이받은 거 같아요.”

“미안. 그거 나임.”

“중현이 형이었어요? 어쩐지. 트럭에 받히는 줄 알았어요.”

“원석이 형! 저 물 좀 주세여!”

그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바깥에서 웅성거리는 인파를 바라보며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그 동안 차가 서서히 움직였다.

바깥에 팬들이 자꾸만 다가오려고 하는 터라 운전자도 도망치듯 다급하게 액셀을 밟기 시작했다.

-삐……!

-삐…!

일본 수플레들이 애타게 손을 뻗었다.

삐약새처럼 뭔가를 삐익삐익 하는 듯한 소리가 계속해서 들려왔는데, 무슨 뜻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는 동안 버스 앞좌석에서 물을 마시며 목을 축이는 우리 팀장님에게 다가갔다.

“형.”

“어?”

“이제 설명 좀 해 줘. 대체 이게 어찌 된 일인지.”

석환 형이 잠시만 기다려 달라는 듯 검지를 들어보이고는 물을 마저 마셨다.

‘크어어’ 하는 소리를 내던 상대가 심호흡을 하며 말했다.

“보다시피, 너희가 일본에 팬이 좀 많아.”

“확실히 그건 알겠어.”

“물론 TNT나 틴스피릿이 일본에 왔을 때만큼의 난리는 아니지만… 솔직히 이 정도로 팬 많은 그룹이 별로 없어.”

“그것도 알겠고.”

내가 숨을 헐떡이며 물었다.

“……이게 다 어디서 나온 팬이야?”

“진짜, 해외에서 공항 나왔을 때 이 정도로 팬 많은 거 처음 봐여. 길 잃을 뻔했다니까여.”

“나는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아직도 모르겠어요. 다른 나라도 아니고 일본이잖아요.”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나라마다 아이돌에 대한 분위기가 다르다.

미국 같은 경우에는 ‘나 TNT 팬임~! 틴스피릿 팬임~!’ 하면서 특정 그룹의 배타적인 팬이 된다기보다는 ‘난 K팝이 두루두루 좋아’ 하는 매니아에 가까운 편이고.

중국의 경우에는 그룹보다 개개인 멤버를 좋아하는 성향이고.

이중에서 일본 아이돌 시장의 특징은 폐쇄성.

한국에서의 인지도와 무관하게 일본에서 일본어 곡으로 데뷔를 하고 성장하는 걸 선호하는 편이다.

꼭 그게 아니더라도 일본 방송에 나간다든가, 일본 현지 프로모션에 시간을 꽤 투자해야 하는데.

“우린 작년에 온 게 전부잖아요.”

리혁이의 말대로 작년에 와서 뿅- 하고 간 게 전부였다.

일본에서 따로 낸 싱글이나 그런 것도 없고.

대개 한국에서 인기 많으면 일본에서도 그에 비례해서 인기가 많은 게 보통이긴 하지만, 아무것도 한 게 없긴 했다.

“반쯤은 맞는 얘기야.”

석환 형이 지이잉- 울리는 핸드폰에 시선을 두다가 우릴 바라보았다.

“너희가 여기서 뭘 한 건 없는데.”

“……?”

“작년에 너희가 국민적으로 빵 뜨기 시작하면서, 여기 TV에도 너희가 엄청 많이 나왔거든.”

“우리가?”

“내가 설명을 해주기는 애매하고. 일본 쪽 미튜브를 검색해 보면 이해가 빠를 거야.”

일본어 표기로 뉴블랙을 찾아 리혁이가 입력을 타다닥- 하자 영상들이 주르륵 떠올랐다.

“음? 이거 시사 토론 프로그램 같지 않아요?”

시사 토론 류의 썸네일이 많았다.

그중에 하나를 눌러 보았다.

토론회처럼 패널들 자리가 나뉜 가운데, 중년 남자들이 진지한 분위기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100퍼센트 이해가 되는 건 아니었지만 떠듬떠듬 일본어 실력을 발휘해서 파악했다.

‘초인기! 뉴블랙 빵!’ 같은 판넬 옆의 수치를 가리키며 MC가 말했다.

-이것이 바로 뉴블랙 빵이 한 달 동안 판매된 양인데요.

여자 패널 하나가 ‘헤에에’ 하며 입을 가렸다.

-엄청나죠?

-잠깐만, 저게 진짜예요?

-이처럼 ‘뉴블랙 현상’이라고 부를 만큼 한국 사회에서 엄청난 인기를 자랑하는 그룹인데요.

어디서 구했는지 한국에서 공수해 온 수플레 빵의 실물이 토론회 테이블 위로 올라왔다.

-맛있긴 하네요.

-약간 포근포근하면서도 설탕의 향이 짙은 느낌이에요.

우리가 눈을 깜빡깜빡했다.

“왜 이걸 여기 나라 방송국에서 먹는 거지.”

“그러게여.”

시식평들을 빠르게 스킵한 후.

MC가 남자 패널에게 물었다.

-이처럼 ‘뉴블랙 현상’이라고 불릴 만큼 한국 사회에서 뉴블랙의 인기가 하늘을 모르고 치솟고 있는데요. 교수님은 이 현상을 어떻게 보십니까?

-에, 솔직히 뉴블랙의 인기가 높은 것은 사실이지만은 이것을 꼭 노래나 실력보다는 다른 측면에서 접근을 해야 한다 생각합니다.

-다른 측면?

-이상하다는 겁니다. 최근 10년 동안 데뷔한 한국 아이돌 중에서 이만큼 한국 국민들의 인기를 차지한 그룹이 없었다고 할까요.

왠지 모르게 흥미진진해서 교수라는 사람이 진지하게 말하는 걸 지켜보았다.

-제 생각으로는 이런, 일련의 부자연스러운 흐름은 뭔가의 개입이 없고는 절대 무리라고 여겨지는데 말이죠.

“호오.”

“맞아여. 우주 형이 인간 세상에 개입을 했져.”

교수가 말했다.

-K팝이 한국 정부의 국책 사업이지 않습니까?

-아! 정부의 지원이 있었다?

-제 의견으론 말이죠. 뉴블랙은 소프트 파워 증진을 위한 한국 정부의 프로젝트가 아닌가 하는…….

계속해서 이어지는 흥미로운 소리들을 보며 우리가 감탄했다.

“하나부터 열까지 다 틀려서 뭘 말해 줘야 할지 모르겠네여.”

“아니, 토론을 할 거면 팩트로 하든가. 초등학생도 뇌피셜로 토론은 안 하는데…….”

기적처럼 나타난 뉴블랙이 대중적인 인기를 얻은 것에 어떤 비밀이 숨어 있는지 토론을 하는 상황이었다.

노스탤지어 OST인 ‘Thousand Dreams’가 빌보드 Hot 100에 등극한 과정도 부자연스럽다고 어쩌구저쩌구 하고.

-게다가 최근에 뉴블랙이 울릉도에서 동쪽을 바라보며 소원을 빌었단 말이죠. 제 생각에는…….

불과 2주 정도 전일까.

소극장 투어를 마치고 동해에서 수플레들을 위해 찍었던 새해 인사 미튜브 영상까지 나와 있다.

시사 토론 영상을 나온 후.

“흐어어…….”

끝없이 이어지는 일본 TV에 나왔던 우리 영상들의 향연에 입이 쩍 벌어졌다.

‘아버지는 친일(親日), 아들은 반일(反日)?!’ 하는 제목과 함께 내 얼굴이 담긴 시사프로 영상부터.

지상파 예능이나 뉴스의 자료화면까지.

막내의 동공에 지진이 났다.

“뭐야. 뭐야. 지상파 TV에서 우리 일거수일투족을 보고 있었어여. 이 사람들.”

“언제부터 보고 있었던 거야?”

한국에선 잘 다루지 않았던 우리 앨범과 노스탤지어 OST의 빌보드 추이까지 나오고.

옷을 스윽스윽 벗고 있는데 아파트 맞은편에서 망원경을 들고 있던 아저씨와 눈이 마주친 기분이다.

석환 형이 뺨을 긁적이며 말했다.

“437회.”

“어?”

“너희가 작년에 방문한 이후로 일본 방송에 몇 번이 나왔는지, 우리 회사 직원들이 센 숫자야.”

“…….”

“너희가 대중적으로 빵 뜨고 ‘국민 아이돌’ 하는 수식어로 언론에서 언급할 때부터 급격히 관심을 가졌더라고. 특히 수플레 빵 이후로는 더 폭발적으로 언급량이 늘었고.”

한국 TV에 언급된 횟수보다 더 많다는 생각이 들 때.

“비주야. 들었어? 수플레 빵이 여기…….”

“형, 수플레 빵…….”

정신이 팔려 있어서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던 사실 하나를 깨닫고 말았다.

“비주야?”

버스 안이 휑했다.

잠시 대화가 끊긴 타이밍을 틈 타 석환 형도 계속 울리던 전화를 들었다.

“어, 원석아. 무슨 일이야? 뭐?”

이윽고 석환 형과 우리의 눈이 마주쳤다.

“…….”

“…….”

그리고 그 순간.

공항에서 원석이 형과 함께 있을 누군가의 얼굴이 그려졌다.

“비주야!”

“김비주!”

“비주 혀어엉!”

우리가 다급하게 전화를 들었다.

*   *   *

간사이 공항.

미아보호소로 마련된 휴게실에서 뉴블랙의 메인댄서가 시무룩한 얼굴로 코를 훌쩍였다.

이내 공항 직원이 건네는 코코아 두 잔에 꾸벅했다.

“형, 같이 마셔요.”

“그래.”

“다들 오기 전에 우리끼리만 먹어요.”

“그러자.”

도원석과 함께 코코아를 홀짝이고 있을 때.

근처에서 풍선을 들고 엄마를 기다리고 있던 다섯 살짜리 여자아이가 물었다.

「있잖아.」

「응?」

「오빠도 길을 잃은 거야?」

「아니.」

그가 먼 하늘을 바라보며 말했다.

「형이랑 동생들이 날 버리고 갔어.」

「나쁜 사람들이네.」

「응. 완전 나쁜 사람들이야.」

오기만 하면 엄청 잔소리를 할 거라고 다짐하는 비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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