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375화
마에다 선생님의 필터링 없는 발언에 제작진과 우리가 웃음을 터뜨렸다.
‘이혼당합니다! 반드시!’의 여파가 끝나고.
여전히 웃음기 가득한 촬영장에서 마에다 신이 한숨을 내쉬었다.
「휴우.」
중년 가수가 머리에 맺힌 땀을 닦으며 웃었다.
「나도 모르게 흥분해 버렸지 뭐야. 아무튼 너희, 내 조언을 꼭 기억하라고.」
「꼭 기억할게요.」
「너희는 나랑 다른 길로 갔으면 해서 하는 말이야.」
진심이 담긴 말에 우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의 뉴블랙에게서 자신의 과거를 투영한 것 같다.
한때 일본에서 꽃미남 외모와 함께 아이돌 같은 인기를 누렸던 전성기를 회상하면서.
자신과 같은 루트로 빠지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인 듯했다.
「아무리 노래를 연습해도 말이지. 주변에서 ‘저 녀석 어차피 꽃미남 같은 외모로 인기인 걸’ 하는 얘기가 들릴 거야.」
「네. 종종 듣긴 해요.」
「그런 이야기를 듣고 ‘실력만으로 승부하겠어!’ 같은 어리석은 생각, 절대 좋지 않아.」
마에다 선생님이 카메라를 보고 엄지를 들었다.
「얼굴이 최고라고!」
제작진이 웃음을 터뜨리는 가운데, 우리도 손뼉을 치며 웃음을 터뜨렸다.
중년 가수가 진지하게 말했다.
「난데없이 인정받는 아티스트가 되겠다고 말야. 머리를 장발로 기르고 수염을 사이비 교주처럼 기르고!」
재생이 멈춘 영상에서 예수님 머리에 수염을 늘어뜨린 마에다 신의 젊은 얼굴이 보였다.
「노래도 갑자기 마이너하게 바뀌어 버리고 말이야. 절대 팬들이 ‘에?’ 하고 당황하게 하면 안 된다고.」
「예, 장발 금지. 수염 금지….」
「오토바이도 금지야. 그 터미네이터가 타는 거.」
「터미네이터 오토바이…….」
우리가 수첩을 꺼내 열심히 메모했다.
잘나가다가 갑자기 음악적으로 인정을 받겠다며 잘못된 길로 빠지지 말라는 뼈가 담긴 조언이었다.
마에다 선생님이 말했다.
「그러다 보면 이렇게 퇴물이 되는 거야. 요괴 같은 외모만 남고.」
“콜록! 어푸-!”
생과일주스의 씨가 목구멍에 걸렸다.
옆에서 얼굴이 벌겋게 변해서 캑캑거리는 리혁이의 등을 톡톡 두드려 주었다.
정말 예상치 못한 순간마다 훅훅 들어와서 우리를 당황하게 만드는 선배 가수였다.
내가 손뼉을 치며 정리했다.
「결국 외모는 자연환경과도 같다. 라는 거군요. 한 번 훼손하면 돌아오지 않는.」
「그렇지. 이 눈코입은 소중한 생태계라고.」
「선생님의 말씀대로 이 소중한 자산을 저희가 열심히 가꾸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마에다 선생님이 말했다.
「갑자기 나, 가수가 아니라 아티스트가 되고 싶어졌어, 라든가 하면 말이지. 꼭 나한테 연락을 하라고. 내 얼굴을 보여 줄 테니까.」
그러곤 석환 형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럴 일이 생기면, 거기 매니저 양반도 꼭 전화하고.」
「감사합니다.」
우리의 TF 팀장님이 고개를 꾸벅하며 감사의 눈빛을 보냈다.
나와 동생들은 선배 가수에게 조언을 듣는 게 즐거운지 오늘따라 표정이 엄청 유쾌했다.
그렇게 이혼과 사기, 사업 실패로 얼룩진 개인사와 함께 조언이 끝날 때.
슬슬 다음 코너로 넘어가기 위해 상황을 정리하기로 했다.
「마에다 선생님의 멋진 조언 참 잘 들었습니다. 이제 다음 코너로…….」
「아. 한 가지 더.」
마에다 선생님이 검지를 들었다.
「여색은 멀리하라고.」
“어훅! 콜록!”
「커리어에 좋지 않아…!」
중년 가수가 카메라를 향해 영혼 가득한 외침을 토했다.
「사랑은 이혼으로 끝나지만, 커리어는 영원하다고……!」
우리가 콜록거리다가 웃음을 터뜨리는 가운데, 제작진과 스탭들이 물개 박수를 치며 미친 듯이 웃었다.
* * *
피를 토하는 듯한 조언을 끝낸 후.
마에다 신은 뺨을 긁적였다.
‘흥분이 끝났더니 민망하구만.’
뉴블랙과 음악 이야기를 하면서 과거의 자신을 돌아보았던 게 문제였다.
한때 꽃미남 외모로 유명했던 과거를 복습하다가 눈앞에 있는 음악인들이 눈에 들어왔다.
자신처럼 안 됐으면 하는 생각에 조언하다 보니 개인사도 다 오픈해 버렸다.
‘이걸 어떡한담.’
이를 어떻게 할지 고민하고 있을 때.
그의 음악 세계에 대한 이야기가 어느덧 마무리를 짓고 있었다.
어느 애니메이션 OST.
뮤직 비디오에서 흘러나오는 피아노 소리를 들으며 뉴블랙 멤버들이 감탄사를 터뜨렸다.
“우와. 진짜 좋다. 이게 선생님이 작곡하신 거였네여.”
꽤 흥행했던 장편 애니메이션의 OST였다.
젊은 스탭들이 ‘오? 이거?’ 하는 표정으로 서로에게 귓속말을 하는 모습에 기분이 왠지 좋다.
중현이 가슴팍을 긁으며 말했다.
「진짜 좋아요. 가슴이 간질간질한 느낌.」
「진짜로.」
우주가 말했다.
「노래에 담긴 정서가 정말 잘 와닿는 거 같아요. 하늘에선 불꽃놀이는 터지고 있는데, 정작 주인공은 텅 빈 마을에 혼자 서 있는.」
「정확해.」
「맞았나요?」
노래가 이어질 때마다 포인트를 콕콕 집는 모습에 마에다 신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다른 사람들은 그냥 듣고 ‘와, 신나네요’ 하고 끝나는 노래인데.
숨은 의도까지 파악해서 칭찬을 해 주니 그렇게 예뻐 보일 수가 없었다.
「초기에는 시티 팝으로 시작을 하셨다가 이제는 뉴에이지 풍으로 OST를 작곡하는 쪽으로 작품 세계를 옮기셨네요.」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노래를 부르기에는 목이 많이 나가서. 돈 벌려고 여기저기 기웃거리다가 찾은 분야지.」
「아하. 그런 깊은 뜻이…….」
그리하여 최신 음악에 얽힌 비하인드까지 설명해 준 후.
리혁이 물었다.
「저희가 이대로 보내 드리기엔 너무 아쉬우니까, 혹시 선생님의 노래를 가르쳐 주실 수 있나요?」
「내 노래?」
「네.」
비주가 웃으며 덧붙였다.
「활동하다 보면 그런 노래가 있잖아요. 정말 좋은 노래인데, 대중들은 잘 모르는 숨은 명곡.」
「아아. 그거야 당연히 있지.」
90년대 후반에 냈던 앨범 수록곡 중에 한 곡이 떠올랐다.
그가 직접 작사, 작곡한 노래.
녹음이 끝나고 프로듀서가 악수를 청하며 ‘마에다 군, 이거 정말 대박인데…!’ 했던 노래가 있었다.
문제는 타이틀곡이 쫄딱 망하면서 앨범 자체가 묻혀 버렸다는 거지만…….
「‘나비의 집’이라는 곡이 있지.」
이윽고 제작진이 검색을 통해 영상을 재생했다.
어느 미튜브 유저가 올린 조회수 362의 영상.
장발에서 다시 짧은 머리로 돌아온 가수가 통기타를 들고 환히 웃는 앨범 커버가 보였다.
그 시절에 대한 그리움을 느낄 때 노래가 재생이 됐다.
초창기의 근사한 목소리에서 술 담배로 인해 허스키하게 변한 목소리가 들어온다.
‘저 때는 그래도 들을 만 했군.’
지금의 목소리보다는 훨씬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성기의 끝을 고했던 앨범에 대한 생각을 하는 동안, 마에다 신은 조용해진 주변을 보았다.
「…….」
뉴블랙의 멤버들이 단체로 눈을 지그시 감고 경청하고 있었다.
리듬에 맞춰 까딱까딱 움직이는 고개.
그렇게 노래가 끝난 후, 멤버들이 손뼉을 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숨은 명곡이네요.」
「아니, 뭐 그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아뇨. 정말 좋아요.」
하루 종일 공손하게 뭐든지 맞다고 하던 우주가 단호하게 말했다.
보물찾기를 한 어린아이처럼 눈이 반짝인다.
「이건 진짜 좋은 노래에요. 선생님.」
「그런가?」
다른 멤버들도 고개를 연신 끄덕이며 동감했다.
그 반응에 마에다도 바로 인정했다.
「사실 나도 명곡이라 생각하고 있었지.」
「와아아-!」
속마음을 드러낸 솔직한 리액션에 멤버들이 ‘그런 마인드 좋아요!’ 하듯 양쪽 검지손가락으로 그를 가리켰다.
마에다도 똑같이 따라 하며 웃었다.
그러는 동안 리혁이 물었다.
「그럼 저희에게 이 노래를 부를 때 필요한 팁을 좀 가르쳐 주실 수 있나요?」
「으음…….」
가르쳐 주려면 일단 불러줘야 하는데.
주변에 잔뜩 들어와 있는 카메라 불과 스탭들의 시선이 불현듯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마에다는 난처한 기분을 느꼈다.
「그게.」
「……?」
「지금은 목소리가 많이 망가져서 말이지. 쇠 긁는 소리가 난다고.」
게다가 노래를 안 부른지도 한참 됐다.
뉴블랙 멤버들이 ‘흐음’ 하더니 누군가에게 눈을 돌렸다.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는 리더.
눈꺼풀을 깜빡일 때마다 짙게 가라앉은 속눈썹이 부드럽게 나풀거리는 듯했다.
「그럼 이건 어떨까요.」
나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마에다 선생님의 지금 목소리에 어울리도록, 저 노래를 편곡해 보는 거예요.」
「오. 그거 나쁘지 않은걸.」
「여기 건반 앞에 앉아 보세요. 선생님.」
상대의 리드에 따라 움직이기로 결정했다.
「선생님이 멜로디를 연주해 주시면 저와 멤버들이 한 번 노래를 맞춰볼게요.」
「좋지.」
그가 ‘나비의 집’의 멜로디를 연주하며 흥얼거리듯 노래를 불렀다.
그 옆에서 마에다의 목소리를 듣고 있던 리혁이 뭐라고 우주의 귀에다 속닥거렸다.
고개를 끄덕이는 우주.
「일단 시작할 음은 잡은 거 같아요.」
곧바로 리더를 중심으로 멤버들이 머리를 맞대고 모였다.오늘 저녁으로 무엇을 먹을지 진지하게 고민하는 펭귄 모임처럼 올망졸망한 느낌.
아무래도 외국어로 하기 힘든 이야기라 그런지 한국어로 빠르게 소통이 오갔다.
마에다 신의 눈빛에 놀라움이 스쳤다.
‘……전원 다 작곡을 할 줄 아는 거였나?’
리더가 종이에 뭐라고 슥슥 쓸 때마다 옆에서 한국어로 빠른 피드백이 이어졌다.
메인댄서인 비주가 펜을 건네받아 종이에 글씨를 쓰고.
래퍼가 손바닥을 까딱까딱하며 리듬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장난기 가득한 막내도 리더와 눈을 마주하고 진지하게 뭐라고 말을 하고 있었다.
사방에서 쏟아지는 피드백.
가운데서 종합해서 듣고 있는 리더가 머리를 이쪽저쪽으로 돌려가며 듣더니 깔끔하게 정리를 끝냈다.
「저희끼리 소통할 부분은 끝났고, 이제 선생님의 의견을 들어 조율하면 될 것 같아요.」
「일단 들어보자고.」
곧이어 리더의 손가락이 건반을 부드럽게 두드렸다.
그걸 듣는 순간.
바로 ‘이거다…!’ 하는 생각이 머릿속에 스쳤다. 들뜬 가슴을 억누르며 그가 노래를 불렀다.
‘어울려.’
그때의 목소리와는 또 다른 지금의 목소리.
마치 재단사가 만든 맞춤형 옷을 입은 것처럼 어울렸다.
물론 완벽한 것은 아니었다.
아무리 대단한 재단사라고 해도 눈대중만으로 손님의 상세한 사이즈까진 알 수 없듯이.
당사자 입장에서 몇 가지 수정할 부분이 있었다.
「이건 어떤가?」
마에다 신이 오른손으로 변형된 멜로디를 연주하며 노래를 흥얼거리자, 우주가 왼손을 건반에 올렸다.
그에 맞춰 또 변하는 소리.
두 개의 선이 부드럽게 교차되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인지는 모르겠지만 완성된 곡을 따라 멤버들이 노래를 흥얼거렸다.
일본어 가사는 적당히 뭉개고.
You’ll be a beautiful butterfly
Butterfly-
후렴구에서 ‘넌 아름다운 나비가 될 거야’ 하는 가사를 같이 부르는 멤버들이었다.
연습을 마친 후.
다시 자신감을 회복한 가수는 제작진에게 건네받은 마이크로 노래를 불렀다.
‘목이 더럽게 망가지긴 했구만.’
솔직히 듣기 좋은 목소리는 아니었다.
다만, 뉴블랙의 멤버들이 그걸 듣기 좋게 비어 있는 음을 채워 주고 있었다.
그 덕인지 스탭들도 고개를 끄덕이며 노래를 감상하고 있고.
‘이래서 백상교 형이 나오라고 했군.’
간만에 음악하는 느낌이 들 거라고, 좋을 거라고 말을 들었는데 확실히 그 말대로긴 했다.
오랜만에 외출을 나온 것처럼 산뜻한 기분.
‘나비의 집’에서 말하는 나비 집, 즉 고치에서 벗어난 것처럼.
어린 가수들과 눈을 마주치며 3절까지 부른 후.
“와아아아아아!”
양손 하이파이브를 청하는 뉴블랙 멤버들과 손뼉을 마주하며 웃었다.
늙어서 그런지 뭉클함은 느껴지지 않았지만 어딘가 유쾌한 기분이 들었다.
잠시 네가 잘났네, 내가 잘났네 하는 공치사가 이어진 후.
「오늘 나와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선생님.」
「고마워.」
「자, 이제 방송 마무리로 카메라 향해 소감 한 번 부탁드리겠습니다!」
빨간불이 깜빡이는 카메라를 향해 말했다.
「굉장히 즐거운 시간이었다는 말을 하고 싶고요. 그리고 이 방송을 보는 팬들이 있다면.」
「오오.」
「많이 늦은 감이 있긴 하지만, 그 시절의 나를 좋아해 줘서 감사하다. 뭐 그런 소감입니다. 지금이야 끊었지만 술 담배를 작작 했어야 하는데…….」
그리고.
「뉴블랙의 팬분들에게도 한 말씀.」
「예? 저희 팬분들이요?」
「여러분의 아이, 절대 이런 대머리 아저씨가 되지 않도록 이 마에다 신이 바른길로 이끌도록 하겠습니다.」
다시 정신없이 웃는 스탭들을 보며 그가 뉴블랙 멤버들에게 시선을 돌렸다.
「오늘 뭐라고 했지?」
「미모는 돌아오지 않아……!」
그의 표정까지 고스란히 따라 하는 멤버들의 모습에 마에다 신은 웃음을 터뜨렸다.
그렇게 방송이 끝난 후.
잔뜩 업이 되었던 기분 때문일까.
‘야야, 마에다야. 분위기가 좋으면 말여. 고것들이 너를 꼬실 텐데 넘어가지 않아야 된다잉. 알았냐?’
‘꼬신다?’
‘뭔 말을 해도 아 싫다! 난 니들이 싫다! 하고 화끈하게 거절을 해 부려.’
백상교 형이 조언했던 말이 머릿속에서 사라졌다.
대신 눈에 뽀얀 필터가 씌인 것처럼 뉴블랙 멤버들이 예쁘고 기특하고, 좋아 보였다.
녹화가 끝나고 인사를 할 때.
「선생님, 나중에 뭐 영화 OST든지 아니면 다른 분야든지… 혹시 시간이 나신다면.」
「아아. 같이 일하면 좋지.」
「정말요?」
전화번호를 받으며 방방 뛰는 뉴블랙 멤버들을 바라보며 그저 흐뭇하게 웃는 그였다.
또, 그런 업 된 기분 때문일까.
「개인사에 관한 부분은 어떻게 편집을 할지, 여기 제작진이 물어보는데요.」
「으음.」
「경제 폭망… 같은 건 저기서 먼저 편집하겠다고 했어요.」
쓸데없는 말을 또 많이 해 버린 건가.
‘이거 곤란하군…….’
개인사가 편집되었으면 하는 바람이지만, 그걸 다 편집하라고 하기에는 너무 과도하게 많은 분량이었다.
잠시 고민을 마친 그는 결론을 내렸다.
「재미만 있다면 자유롭게 편집해도 된다고 전해.」
재미있다면야 뭐 상관없겠지만, 자신이 한 말이 얼마나 재미있게 나오려나 싶었다.
그냥 짧게 편집되겠지, 생각하는 마에다 신이었다.
* * *
마에다 선생님과의 녹화를 마친 후.
우리는 뉴블랙 월드 계정에 내보낼 TV 컨셉 컨텐츠의 나머지 녹화를 모두 마무리했다.
아무래도 편집에 시간이 걸려서 한국에 도착한 뒤에야 나올 거라나.
그런 설명을 듣고 도쿄에서의 남은 일정을 소화했다.
「둘 셋!」
「안녕하세요. 여러분! 만나서 반갑습니다! 뉴블랙이라고 합니다!」
회사에서 콘서트 프로모션을 하기 위해 설치한 뉴블랙 팝업 스토어에 방문해서 인사도 하고.
짧게 팬사인회도 진행하고.
인터뷰를 요청한 여러 잡지사 가운데서 몇몇 곳과 함께 화보 촬영 및 인터뷰를 하기도 했다.
그리고.
「와아아아아아아—!」
대망의 마지막 이틀.
요코하마 아레나에서 2월 27일과 28일, 양일간 진행되는 마지막 콘서트를 성공적으로 마쳤다.
멘트를 제외하면 고베 월드홀에서 했던 세트 리스트와 완벽하게 동일한 구성.
하지만 공연장이 다르니 기분이 달랐다.
일본에서 요코하마 아레나에 들어갈 정도면 꽤 인기 있는 가수구나, 하는 인식이 있다던데.
낯선 나라에서 이만큼 환호를 받는다는 것도 이상하면서 좋고.
동생들과 어깨동무를 하며 공연장의 객석을 빼곡하게 채운 달봉이를 볼 때도 정말 뭉클했다.
경험하지 않고선 모른다.
눈앞에서 세상의 모든 별이 소용돌이치는 듯한 그 느낌.
「정말 감사합니다. 여러분!」
‘항상 기다릴게’ 하는 슬로건 이벤트를 준비해 준 팬들에게 마지막 멘트를 했다.
「끝은 새로운 시작이란 말이 있잖아요. 오늘 공연은 끝이 났지만, 저희는 이게 끝이 아니었으면 해요.」
「그래서 헤어질 때 안녕히 잘 가라는 인사 대신 다시 만나자는 인사를 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그럼 인사해 볼까요?」
“꼭 다시 만나요!”
1만 개가 넘는 응원봉이 화답했다.
다 같이 불꽃놀이 무대의 sing along 버전을 따라 부르며 끝낸 요코하마 콘서트.
확실히 일본 투어의 끝이라 그런 걸까.
고베 콘서트가 끝날 때는 괜찮았는데, 일본 콘서트를 완전히 마무리하고 나니 뭔가 허한 느낌이 들었다.
“진짜 그 뭐져. 갑자기 기억이 안 나네. 사막에서 여행자 농락하는 거.”
“신기루.”
“신기루처럼 사라진 거 같아여.”
막내의 말에 공감했다.
오랫동안 준비했던 프로젝트를 마무리했을 때의 그 허한 느낌이라고 할까.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새로운 기분에 뒤덮였다.
“아. 이제 집 간다.”
“고생했어요. 다들.”
콘서트 다음 날 아침.
도쿄에서부터 인천까지 가는 비행을 하는 동안 가슴이 두근거렸다.
중현이가 말했다.
“너무 길었어요. 정말.”
“그러게. 확실히 집이 최고긴 하다.”
“우리 돌아가면 라면부터 끓어 먹어여. 그거 뭐지, 우주 형네 할머님이 김치도 보내 주셨잖아여.”
“라면 좋지.”
이렇게 2주 가까이 한 곳에 있어본 건 처음이었다.
같은 아시아권이라 괜찮을 줄 알았는데 1주일쯤 지나니 집이 막 그리워지기 시작했다.
널찍한 호텔방에 있는데도 숙소에서 끓여 먹는 라면이나 배달 야식이 머릿속에 아른거리고.
“와아아아아—!”
다른 때였으면 여기저기서 달려드는 사람들 때문에 꽤나 곤혹스러운 기분이었을 텐데.
인천공항에 도착해서 한국 공기를 마시는 그 순간.
너무 행복…….
“우아아아……악!”
바로 밀쳐졌다.
5분 만에 적응을 마치고는 곧바로 차량까지 도망쳤다.
‘웬일로 오늘은 기분이 좋아 보이네요?’ 하며 살살 자극하는 연예부 기자들까지 떨쳐 낸 후.
인천공항 바깥에 주차된 차량에 올라타고 나서야 숨을 돌렸다.
원석이 형이 웃으며 말했다.
“다들 고생했어.”
“형도 정말 고생 많았어요. 어…? 형은 여기 왜 타?”
간만에 우리 차량에 올라타는 석환 형의 모습에 우리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갈 데가 있어서. 잠깐 중간에 들리려고.”
“어디?”
“비밀이야.”
그다지 궁금하지 않아서 신경을 껐다.
2주간 긴장의 끈을 놓지 않은 것 때문인지, 밀렸던 피로가 한 번에 쫘악 밀려온 느낌이었다.
중현이와 지호가 벌써 머리를 맞대고 꾸벅꾸벅 졸 때.
리혁이가 ‘으음’하다가 말했다.
“근데 꼭 뭔가 잊고 온 느낌이 들지 않아요?”
“그러게.”
이유는 모르겠지만 꼭 뭔가 잊고 온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때 머릿속을 스치는 한 사람.
“……!”
나와 리혁이가 눈을 휘둥그레 뜬 채 옆좌석을 바라보았다.
“있네.”
“있네요.”
장갑을 뜨개질을 하고 있던 비주가 핀을 내려놓고 눈을 가늘게 떴다.
살짝 벌름거리는 코를 바라보니 간사이 공항에서의 기억을 다시 떠올린 모양이었다.
빠르게 시선을 회피했다.
“그럼 뭐지…….”
리혁이와 내가 고민을 했지만 해답은 나오지 않았다.
숙소에 커튼을 쳤는지 안 치고 나왔는지 긴가민가할 때의 느낌이라고 할까.
영종대교 너머 서해 바다를 바라보며 이런저런 생각에 잠길 때.
어느새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는지 차가 멈춰 있는 것도 모르고 있었다.
“……얘들아.”
“음?”
“눈 좀 떠 봐. 보여 줄 게 있으니까.”
“……뭔데.”
석환 형의 목소리에 다들 눈을 비비며 깨어났다.
숙소가 아닌 낯선 곳.
어디인지 위치를 파악할 수 없는 낯선 환경을 둘러보며 우리가 물었다.
“여기가 어딘데요?”
“숙소.”
숙소라니,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 때, 잠에서 깬 머릿속에 생각이 스쳤다.
우리가 눈을 번쩍 뜨고 돌아보자, 매니저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너희 새 숙소야.”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우리가 차창에 찰싹 붙어 바깥을 바라보았다.
그러곤 탄성을 질렀다.
어느새 뭔가 두고 온 것 같다는 생각은 훨훨 날아간 터였다.
* * *
하시모토 겐지.
한때 선명주의 라이벌이라 불렸던 일본의 피아니스트.
작년, 일본에 방문했던 뉴블랙을 친한 피디가 진행하는 TV 쇼에 섭외하려고 했던 당사자.
「…….」
그는 지금 아들인 피아니스트 하시모토 켄타, 그리고 방송국 PD와 함께 차를 마시는 중이었다.
「결국 뉴블랙은 이번에도 오지 않는 것인가.」
「그렇게 된 모양입니다…….」
「이상한 일이군. 우리의 존재감이 그 정도로 미미하진 않았을 텐데.」
분명히 뉴블랙이 일본 TV 홍보에 절실하다는 정보를 듣고 쾌재를 부르고 있었는데.
어째서 오지 않는 것일까.
‘분명 계획은 완벽했는데…….’
작년과 마찬가지로 여전히 오지 않는 뉴블랙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