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379화
『 연습생 이진후의 일기』
날씨 : 봄 날씨. 편의점에서 바람꽃 들음
간만에 쓰는 일기.
연습실에 뉴블랙 선배님들이 내려왔다!!! 존나 잘생겼어 진짜
태어나서 처음 보는 류의 잘생김이었음.
엄마랑 누나들이 나 잘생겼다고 해 준 게 개뻥이었다는 걸 깨닫고 잠깐 울적했는데 선배님들이 사다 준 간식 보고 바로 행복ㅋㅋ
근데 떡볶이인 줄 알았는데.. 그 간식이 소고기였던 것이다..!!!
* * *
“대박…….”
떡볶이냐며 좋아하던 연습생이 봉투를 받아들었다.
미어캣 무리 같다.
한 명이 봉투를 들여다보고 있으니 나머지 연습생들도 와서 기웃기웃했다.
“대박. 진짜 소고기…….”
“우와아….”
“정말 감사합니다!”
한 명이 꾸벅 인사하자, 다른 녀석들도 다급하게 꾸벅 인사를 했다.
내가 웃으며 말했다.
“일단 앉을까요?”
“아! 네!”
물티슈를 가져와서 연습실 바닥을 닦으려는 연습생에게 손을 내저어 보였다.
그러곤 연습생들을 앉힌 후.
“자, 세팅하자.”
“넹.”
다시금 일어나려는 연습생들을 만류하고, 라커를 열어 필요한 준비물을 꺼냈다.
신문지를 깔고.
“……아! 저기 신문지가 그 용도였구나.”
“대박. 저게 고기용이었나 봐.”
“어쩐지 고깃집 수저통 있더라.”
중현이가 수저통을 꺼냈다.
한두 번 먹어본 솜씨가 아니라며 감탄하는 연습생들의 모습에 우리가 뿌듯하게 웃었다.
앞접시를 세팅하고 앞치마까지 두른 후.
우리를 중심으로 둥그렇게 둘러앉은 6명에게 소고기가 담긴 은박지를 가리켰다.
“먹어요.”
“…….”
꼴깍.
다들 침은 삼키는데 손을 못 대고 있었다.
동생들과 눈빛을 교환했다.
‘얘네 왜 안 먹지?’
‘우리가 있어서 그런 거 아닐까요?’
‘사라져 줘야 하나?’
누가 쳐다보고 있으면 밥을 먹기 싫은 느낌인 건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상당히 심약한 인상의 연습생이 조심스럽게 손을 들었다.
중2쯤 됐을까. 작고 가느다란 목소리였다.
“저기…….”
“네에.”
“정말 먹어도 되는 건가요?”
“네?”
생각지도 못한 질문에 우리가 눈을 깜빡거릴 때.
연습생이 주저하며 말했다.
“혹시 소고기 먹으면 실패하는 인내심 테스트라든가. 갑자기 신인개발팀 분들이 와서 화를 낸다거나…….”
“그럴 리가 없잖아요.”
“전에 있던 회사에서는 그래서요…….”
“별 이상한 회사가 다 있네. 그 회사 이름이?”
“QT엔터요.”
리혁이가 헛웃음을 지었다.
예전에 리혁이가 연습생으로 있었던 어울림 엔터를 인수한 기획사였다.
굉장히 이상한 문화였던 걸로 기억하는데.
비주가 웃으며 상냥한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 회사는 먹는 걸 가지고 구박하거나 그러지 않아요.”
“맞아. 맞아.”
연습생들의 안색이 환해지자, 비주가 환한 미소를 지었다.
“트레이닝만 엄청 빡세고 고되어서 그렇지. 다른 부분은 엄청 자유롭거든요. 너무 좋죠?”
“…….”
연습생들의 안색이 거무죽죽하게 변했다.
마치 ‘우리 부대는 악습 없어. 훈련만 빡셀 뿐~’ 하는 말을 들은 군대 후임들 같다.
여전히 조심스럽게 ‘이거 먹어도 되는 건가?’ 하는 연습생들에게 우리가 미소를 지었다.
“편하게 먹어요. 그냥 간식 사 주고 싶어서 놀러온 거니까.”
“그러면…….”
봉투를 받아들었던, 무리의 대장 격으로 보이는 연습생이 환하게 웃었다.
“잘 먹겠습니다!”
“훌륭한 정신이에요. 자, 다들 얼른 젓가락 들어요. 소고기는 오랜만이죠?”
“네, 대표님이 첫날 사 주신 이후로 처음이에요…!”
다들 배가 많이 고팠는지 허겁지겁 먹기 시작했다.
환하게 웃던 연습생이 말했다.
“저 간식으로 소고기 먹어보는 건 처음인 것 같아요! 너무 좋아요!”
“다행이다. 안 그래도 간식으로 사 오면 너무 부담스러울까봐 일부러 미국산을 골랐거든요.”
“크엑! 켁!”
부담 덜어줄라고 한 이야기였는데 왜들 먹다가 웃지.
“중현이가 구운 건데 어때요? 맛있죠?”
“네!”
“고기 굽기 대회에서도 등수 안에 든 애라서 정말 잘 구워요.”
중현이가 뿌듯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자, 젓가락으로 입을 가리며 웃던 연습생들이 박수를 쳤다.
그때 연습생 하나가 말했다.
“근데 여기 팸플릿에 모든 고기는 다 한우라고 쓰여 있어요.”
“앗.”
사실 한우 모듬이었다는 것을 바로 들켰다.
연습생들의 눈에 감동이 스치려고 할 때.
“어때여? 방금 되게 멋있었져? 미국산이었는데 알고 보니 한우였던 감동 실화.”
“…….”
연습생들의 감동하려던 눈빛이 짜게 식었다.
그 동안 면면을 확인하며 속삭였다.
“애기들이 다들 잘생겼네.”
“그러게여. 잘생겼네.”
지호가 맞장구를 쳤다.
젖살이 안 빠져서 귀여운 느낌이면서도, 여섯 명 다 이목구비가 굉장히 또렷한 편이었다.
그 동안 통성명도 나누었다.
“저기.”
“네! 선배님!”
“이름이 어떻게 돼요?”
“쩌는… 크엑! 켁!”
연습생들이 켁켁대면서 리혁이가 혀를 끌끌 찼다.
“어린 사람들이랑 친해지고 싶어 하는 마음은 알겠는데, 먹을 때는 좀 내버려둬요. 아저씨.”
“친해지고 싶어서 그렇지.”
“그냥 가자니까요. 여기선 우리 존재 자체가 부담이야.”
“그렇지만…….”
나머지 넷이 고개를 저었다.
우리가 있으면 불편해할 걸 알긴 알지만, 새로 들어온 뉴비를 감상하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
중현이가 말했다.
“으음, 뭐 궁금한 게 있을 수도 있고…….”
“맞아여. 필요한 것 있으면 좀 넣어주고.”
“체중계 속이는 팁이랑 회사 생활에 필요한 자잘한 팁도 주고.”
“처음 월말평가 볼 때부터 막힐 수도 있으니까. 안무 기본 루틴을 좀 봐준다거나…….”
이런저런 이유로 밍기적거리는 우리 모습에 리혁이가 고개를 저었다.
대장 연습생이 꽃등심을 먹으며 당차게 말했다.
“맞습니다. 저희 다 선배님들 계시는 게 좋습니다.”
“고마워요. 떡볶이 친구. 이름이…?”
“이진후라고 합니다!”
중학교 3학년이라고 했다. 여기서 제일 형이라고.
소심한 인상의 연습생도 손을 들고 말했다.
“저는 김복…….”
“귀엽다.”
푸근하고 귀여운 ‘복’ 자에 우리가 어머머 할 때.
“……입니다.”
“네?”
“김복수예요.”
“오우.”
우리가 박수를 치며 말했다.
“잘해줘야 할 거 같은 이름이네요.”
“푸흡, 끅!”
뭐가 웃겼는지 모르겠지만 연습생들이 먹다가 콜록거렸다.
중현이가 종이컵에 물을 따라 주는 동안 연습생들의 자기소개가 이어졌다.
“강윤수입니다. 16살이고요.”
“오. 윤수~!”
지호가 헤헤 웃으며 하이파이브를 청했다.
강윤수라는 볼이 통통한 연습생이 얼떨떨한 얼굴로 손뼉을 짝 마주쳤다.
“진짜 반갑다. 나 슬립 카메오 나갔을 때 배역이 윤수였는데.”
“엇, 정말요?”
“응. 1화에서 바로 죽는 역할이긴 했는데.”
푼수처럼 웃는 지호의 모습에 연습생들이 ‘어떻게 반응해야 되는 거지?’ 하며 눈길을 교환했다.
“그나저나 다들 중학생이네요.”
“아. 원래 들어올 때는 고등학교 2학년 형까지 해서 7명이었는데요.”
또랑또랑한 눈빛의 진후가 말했다.
“그… 분위기 흐린다고…….”
“아아.”
말은 제대로 끝내지 않았지만 무슨 말인지 바로 이해했다.
고2 연습생이 어린 동생들 틈바귀에서 서열 정하고 왕 노릇하려다가 잘린 듯했다.
종종 있는 일이니까.
회사마다 중점적으로 보는 분야가 다르지만 아무리 실력이 좋아도 분위기 망치는 연습생은 아웃 대상이다.
연습생 때부터 불화를 일으키는 타입은 반드시 데뷔하고 나서도 불화의 원인이 되곤 하니까.
아무리 비주얼과 실력이 좋아도 아이돌 가수는 그룹 활동이다.
“오. 전부 다 중학생이구나.”
말을 하며 슥 눈짓하는 중현이에게 우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다들 회사가 그리는 밑그림을 눈치 챘기 때문이었다.
나이는 14~16살.
다른 기획사에서 온 2명 빼고는 모두 보컬학원을 다니다 왔거나 이번이 첫 연습생 생활.
그렇다면 차기 보이그룹의 데뷔시기는 2019년이나 2020년 정도로 잡고 있는 것이고.
기존 기획사들의 색이 강한 연습생들보다 아예 백짓장 같은 이들을 뽑아 레몬 엔터의 색을 입히려는 계획인 듯했다.
나이가 어릴수록 학교생활이라든가 사생활에 대해서 회사가 관리할 여지가 많으니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누군가의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아, 쓰벌……!’
며칠 전이었나.
껌이 달라붙은 신발 밑창을 보며 욕하던 이웃집 미소년들이 떠올랐다.
MOP 엔터에서 어린 시절부터 연습생을 시작해서 데뷔 당시 평균 나이 15.4세의 아이돌.
“…….”
입가에 훈훈한 미소가 그려졌다.
어쩌면 인성교육 같은 건 애초에 안 먹히는 걸 수도…….
진후가 말했다.
“근데 3차 끝났을 때만 해도 고등학생이나 대학생 형도 되게 많았어요.”
“네?”
“1차, 2차, 3차 해서 최종으로 조규환 제작이사님께서 하는 1대1 면접이 4차였거든요.”
“아아.”
“그것까지 끝나고 나니까 이렇게 일곱, 아니 여섯 명만 남았어요.”
조 이사님 픽이었구나.
사람을 정말 잘 꿰뚫어 보기로 유명한 우리 이사님이 직접 고르고 고른 원석들인 듯했다.
다들 실력을 보고 싶어서 입이 근질근질했지만, 인내심을 발휘해 참았다.
괜히 부담 줘서 탈주하면 안 되니까.
“그러면 혹시 여기서 작ㄱ…….”
“아니야. 그거 아냐.”
단호하게 손을 들어 나를 막는 막내였다.
* * *
『 연습생 이진후의 일기 』
고기 먹는 동안 우리에게 궁금한 게 있다며 이것저것 물어보심.
선배님들은 신기하다.
막 눈빛만으로 뭔가 소통을 하는데 신기했다. 눈짓만 슥슥하는데 다들 알아들어.. 어케 알아듣지??
그리고 우주 선배님은 기억력이 대박 그 자체다.
오디션 때 줄에 서 있던 윤수 얼굴을 기억해서 말씀해 주셨는데 선배님들 나가고 윤수가 너무 의기양양해서 재수 없었음
암튼 오늘 완전 다른 세계의 사람들과 함께 있는 기분이었다.
TV 속 그 사람들이 막 살아 숨 쉬어서 눈앞에 있는데 대박이구
올해 콘서트도 구경 오라고 말씀도 해 주시구.. 심지어.. 연락처도 교환함..!
표정관리 열심히 했지만 속으로 다들 와 시발!! 한 게 느껴졌다
엄마한테 전화해서 내 연락처에 뉴블랙이!!!! 있어!!! 하고 자랑했는데 역시 엄마도 내 인생 최고 업적이라고 인정해 주었다
그리고 폰 번호 교환 마치고, 마지막으로 해 주신 말씀도 기억에 남았다.
* * *
간식을 먹은 후.
뒷정리를 마친 연습생들이 뉴블랙을 배웅하기 위해 일어났다.
비주가 걱정스럽다는 듯 물었다.
“배는 좀 찼어요?”
“네!”
“정말 간식 수준이라서. 이걸로 배가 찰지 모르겠네…….”
명절날 할머니 같은 대사.
저녁도 먹지 못할 만큼 배가 불러 있는데도 뉴블랙 멤버들은 ‘아이고’ 하며 안타까워했다.
다음에 진짜 고기를 사 주겠다면서.
‘대체 평소에 얼마나 드시는 거지…?’
그런 의문이 맴돌 때.
연습실 한구석을 바라보던 뉴블랙 리더가 훈화 말씀을 하는 교장 선생님처럼 말했다.
“한 가지 말하고 싶은 게 있는데.”
연습생들이 눈을 부릅뜨고 집중했다.
왠지 모르게 빛과 소금 같은 조언이 나올 듯한 분위기.
우주가 손가락으로 멀찍이 벽을 가리켰다.
한때 시계가 있었다는 둥그런 자국이 남긴 했지만, 시계가 없는 벽이었다.
“이 연습실에는 왜 시계가 없을까요?”
“…….”
뭔가 심오한 물음이 분명했다.
‘뭐지. 어떤 거지?’
연습생 이진후가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연습실에 시계가 없는 이유.
다들 ‘내가 먼저 대답할 거야’ 하듯 생각에 잠겼을 때, 그가 재빨리 손을 들었다.
“저!”
그가 외쳤다.
“알 것 같습니다!”
“그래요. 뭘까요?”
“시계가 없는 이유는, 연습할 때 시간을 의식하지 않을 만큼 열심히 하란 뜻입니다!”
“음…….”
우주가 말했다.
“몹시 훌륭한 정신이지만 틀렸어요.”
“네?”
아니야?
우주가 뒤통수를 긁적였다.
“저기 시계가 왜 없냐면… 야, 우리 저거 언제 뗐지?”
“아마 클레이가 방문했을 때 뗐을 걸요.”
“아, 그랬네. 아무튼 시계가 없는 이유는 우리가 떼어 버려서 그런 거예요.”
왠지 모르게 민망함을 느낄 때.
뉴블랙의 리더가 연습생들에게 자상한 미소를 지었다.
“왜 이런 이야기를 했냐면, 필요한 게 있으면 회사에 바로바로 이야기 하라는 거예요.”
“아아.”
“열심히 연습하는 것도 좋지만 데뷔할 때까지 최대한 회사를 활용하라는 이야기에요. 다 좋은 분들이니까.”
연습생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조언을 남긴 채 외투를 챙겨 들고 떠나는 뉴블랙 멤버들이었다.
“다음에 또 봐요!”
“안녕히 계세요!”
계단이 아니라 엘리베이터를 향해 걸어가는 멤버들의 모습에 잠시 감탄이 나온 후.
“대바아악!”
“우와!”
“와, 존나!”
뉴블랙 앞에서 조신하게 있었던 이들이 ‘대박!’을 연호하며 우와아 소리를 냈다.
뉴블랙과 악수를 나눴던 강윤수가 손목을 잡은 채 들어 올려 나 악수! 악수! 하자, 다들 우와아 하며 경배하듯 손을 흔들었다.
흥분 가득한 목소리가 맴도는 가운데.
선배님들 참 대단하고 멋지고 최고, 하는 이야기 속에서 연습생 이진후는 조용한 동기를 발견했다.
“복순? 너 왜 그러냐.”
“음, 아니 뭔가 생각해 보니까 이상한 게 있어서…….”
복수가 주저하듯 말했다.
“손님이 방문하는데 연습실에 시계를 떼는 이유는 뭘까?”
“당연하지 않냐? 백화점이랑 똑같은 거잖아. 시간 가는 줄 모르게 하려고.”
“……어?”
“……어?”
그제야 뭔가 이상한 지점을 눈치 채고, 얼굴이 하얗게 질려 가는 두 연습생이었다.
헨젤과 그레텔처럼.
과자로 만든 집에 들어와서 좋아했는데 알고 보니 마녀의 집이었다.
* * *
연습생들과의 만남을 마친 후.
나는 동생들에게 USB 4개를 내밀었다.
“자, 너희들에게 주는 미션이야.”
아까 두 작곡가에게 얘기했던 것과 똑같은 이야기를 하고는 말했다.
“이 노래를 어떻게 좀 고쳐 보려고 하는데 듣고 조언을 좀 해 줬으면 좋겠어.”
“뭐, 시간 나면 생각해 볼게요.”
“리혁이는 USB 다시 돌려줘. 안 해도 돼.”
“아아! 제발 가져가지 마요! 아니, 이게 아니고!”
애타는 표정을 짓다가 바로 말을 고치는 리혁이의 모습에 우리가 웃음을 터뜨렸다.
지호가 USB를 들여다보며 물었다.
“의견만 들려주면 돼여?”
“그것도 좋고. 기왕이면 다들 이제 작곡 기본은 할 줄 아니까, 조금 수정해 보면 더 좋고.”
“꼭 수정해 볼게요. 형!”
의욕을 불태우는 비주의 모습에 웃었다.
그러곤 말했다.
“진짜 부담 없이 봐도 돼. 이사님과 피디님 말로는 내가 알아내야 하는 문제라고 하기도 했고.”
사실 크게 기대하는 건 없었다. 다들 각자 연습해야 할 특기만으로도 연습 시간이 촉박하니까.
알았다고 USB를 챙기는 동생들에게 손을 흔들어 주었다.
“그럼 이따 저녁 때 봅시다.”
“예이!”
각자 안무 연습, 보컬 연습 등을 하기 위해 흩어진 후.
“후우…….”
작업실 테이블에 앉아 주머니에 넣어두었던 물건을 꺼내들었다.
하승주가 건네준 USB.
부모님 영상이 담겨 있던 비디오테이프에서 추출한 영상이라고 했다.
“…….”
주머니에 넣어두고 있어서 그런지 USB의 감촉이 따뜻하다.
조심스럽게 노트북에 꽂았다.
띠링, 하는 소리에 잠시 움찔할 만큼 이유 모를 긴장감과 초조함이 느껴졌다.
담겨 있는 파일은 딱 하나.
1997_04_11이라고 되어 있는 제목의 영상이었다.
침을 삼키며 심호흡을 하고는 영상을 클릭했다.
가슴이 콩닥콩닥하는 소리가 귓가에 울리는 듯하다. 콘서트를 앞둔 것처럼.
로딩이 걸리는 시간이 영겁처럼 느껴질 때.
화면이 환하게 밝아졌다.
“…….”
어딘가 환한 방.
음악 작업을 하는 스튜디오 같은 공간에 우리 아빠가 앉아 있었다.
곡 작업을 하는지 안경을 쓴 채,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는 모습.
아마 하승주가 들고 있는 것 같은 카메라가 그쪽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가서 물었다.
-뭐하세요. 형님?
-흠흠, 곡 작업.
-…이 아닌데요?
카메라가 메모장을 클로즈업하자 ‘명은♡’이라고 되어 있는 문구들이 드러났다.
하승주가 웃자, 아빠가 민망한 미소를 지었다.
-야. 승주야. 이런 건 좀 찍지 마.
-이것도 추억이잖아요.
-나중에 우주가 보고 무슨 생각하겠어? 아빠는 맨날 푼수 같구나 그러면 어떡해.
아닌데.
-기왕 찍으려면 저기 명은이랑 우주 찍어줘.
-넵.
카메라가 돌아가자 멀찍이 의자에 앉아 있는 엄마가 보였다. 네 살짜리 꼬마가 품에 안겨 있다.
-형수님.
-아, 깜짝아!
하핫, 하며 웃던 우리 엄마가 캠코더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그러곤 땅딸막한 꼬마 손을 잡고 흔들었다.
-우주야. 저기 보고 인사하자. 안녀엉~
-안뇨옹!
97년도를 사는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리고 있는 동안, 나도 같이 손을 흔들었다.
엄마도 안녕.
아빠 얼굴이야 미튜브만 검색하면 자주 나오지만, 엄마 얼굴은 주로 사진으로만 접했다.
다른 멤버들 부모님과는 다르게, 지금의 나와 나이 차이가 그리 크지 않은 엄마 아빠가 낯설긴 하지만…….
그냥 얼굴을 본다는 게 좋았다.
카메라가 나와 엄마를 담는 가운데, 아빠의 장난기 가득한 목소리가 내레이션을 읊었다.
-역시 우리 와이프다. 어쩜 저렇게 이쁜 사람이 있지?
-예예.
-승주야. 표정관리.
-예. 형님.
카메라가 클로즈업을 하는 가운데 아빠가 속삭이기 시작했다.
-우리 아들 세상에서 제일 귀엽다. 귀엽다아….
-근데 진짜 엄청 귀엽긴 하네요. 크면 잘생겨질 거 같아요.
-그럼. 누구 아들인데.
그러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종종종 뛰어오는 아빠였다.
-아들, 아빠한테 오자.
-엄마가 더 조아. 아빠는 안 놀아죠.
단호하게 거절하는 애기였다.
아빠의 얼굴이 좌절감으로 갈라지자 다른 둘이 웃었다.
-아들. 몇 년 만 더 일하고 나면 아빠, 그때부터 푹 쉴게. 그때부턴 같이 놀 시간 엄청 많을 테니까.
-진짜?
-응. 아빠가 노래 만드는 거 알려줄까?
뒤에서 웃고 있는 엄마의 표정을 마지막으로 영상이 끊겼다.
하승주가 ‘어어, 배터리’ 하는 걸 보니 배터리가 없었던 모양이다.
영상이 끝나고.
멈춰진 화면을 보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남들보다 기억력이 좋다고 자부하는 편인데 왜 저때는 기억을 못하는 건지 야속하기만 하다.
그래도 이렇게 엄마, 아빠의 개인적인 모습을 움직이는 영상으로 볼 수 있다는 게 큰 행복이었다.
간만에 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고.
만나서 짧게 얘기라도 한두 마디 해 보고 싶다. 내가 잘 지내고 있다는 것도 알려주고 싶고.
멤버들에 대해서 이야기도 해 주고 싶고.
하고 싶은 이야기가 정말 많다.
하지만 그런 일이 가능할 리도 없고. 그저 멈춘 화면 속 엄마 아빠에게 손을 작게 흔들었다.
“안녕~”
보고 싶어요. 두 분 다.
그리고 저는 잘 지내고 있어요.
“…….”
고개를 털어 살짝 맺힌 눈물을 털어내고는 톡을 작성했다.
하승주에게는 감사 인사를 전하고, 할머니에게 영상 파일을 전송했다. 할머니도 분명 좋아하겠지.
그런 생각을 하며 곡 작업 화면으로 시선을 돌렸다.
조금 가라앉긴 했지만, 어딘가 따스한 것이 간질거리는 기분이라 나쁘지 않았다.
조용히 웃으며 마우스를 클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