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380)화 (380/1,031)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380화

-영상은 잘 봤어?

“네, 정말 감사해요. 피디님.”

-다행이다.

수화기 건너편에서 안도한 목소리가 들렸다.

“보면서 너무 기분 좋았어요.”

-…….

“사실 엄마 얼굴이 잘 안 그려졌거든요. 사진은 많이 봤는데, 희한하게 웃는 표정이라든가. 목소리 같은 게 기억이 안 났어요.”

그런데 어제 영상을 보고 나니 조금씩 어렴풋하게 떠오르는 것 같기도 하고.

“저희 외할머니도 엄청 좋아하셨어요. 매일 밤마다 볼 거라고. 피디님한테 너무 고마워서, 반찬이라도 좀 보내드리고 싶다고 말씀하셨어요.”

그제야 숨 죽이는 소리만 들리던 맞은편에서 웃는 소리가 들려왔다.

-마음만 받는다고 말씀 드려.

“네, 안 받으실 것 같다고 말을 했는데 얼마나 성화를 부리는지…. 그래도 나중에 반찬 필요하시면 꼭 말씀 해주세요.”

-그래.

‘엄청 맛있어요’ 하고 비밀 얘기처럼 소곤거리니 하승주가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곤 말했다.

-맞다. 안 그래도 좋은 소식이 하나 있는데.

“좋은 소식이요?”

-내가 준 영상 말이야. 그게 끝이 아니거든.

“네?”

절로 눈이 번쩍 뜨였다.

“……더 있나요?”

-생각보다 좀 많이 찍었거든. 비디오라서 다 내용을 확인해 봐야 알겠지만 그때 당시 분량이 꽤 될 거야.

나도 모르게 뺨이 치솟듯이 올라갔다.

가슴이 콩닥콩닥하면서도 설렌다고 할까.

사진과 영상으로 추억을 남기는 습관이 이럴 때 도움이 될 줄은 몰랐다며 상대가 너스레를 떨었다.

“진짜, 제가 최근에 들은 이야기 중에 최고의 소식이에요.”

-영상 추출하고 나서 보내줄게.

“정말 감사합니다.”

허공을 향해 꾸벅 숙이며 인사했다.

기뻐하는 내 목소리에 기분 좋은 웃음을 흘리던 상대가 화제를 전환했다.

-참, 곡 작업은 잘 되고?

“계속 연구는 하고 있는데 잘 안 풀리네요. 이사님과 피디님이 말씀하신 해결책이 뭔지.”

-어렵지.

“뭐, 일단 그 부분은 스케줄 하면서 틈틈이 고민해 보려고요. 그리고….”

작업실 바닥을 발로 탁 차면서 내가 앉은 의자가 빙글빙글 돌아갔다.

눈앞에 작업실 풍경이 빙글빙글 돌았다.

“부모님 영상을 보고 나서 든 생각인데, 곡을 하나 써…….”

-만들어 보고 싶어?

“아뇨. 곡은 이미 만들었어요.”

-…응? 벌써?

3시간 정도 걸렸다고 하니 상대가 급격히 말이 없어졌다.

얼굴이 보인다면 아마 눈을 깜빡깜빡하며 나를 들여다 보고 있지 않았을까.

곡 작업 속도 정말 빠르다며 너털웃음을 짓는 상대였다.

“부모님에 대해 쓴 곡을 수록곡으로 실어보는 건 어떨까 생각 중이었어요.”

-좋은 생각인데? 마침 이번 앨범은 네가 주인공 격으로 들어가는 거기도 하고.

“이따가 보내드릴 테니까 감상 좀 부탁 드려도 될까요?”

-당연하지. 그러려고 자문료 받는 건데.

그렇게 수록곡에 대한 이야기를 앨범 자문과 한참 동안 이어간 후.

통화를 마무리할 때쯤 짐짓 처량한 목소리로 물었다.

“저, 피디님.”

-응?

“혹시 타이틀곡 수정에 대해서 힌트 좀…….”

-끊을게.

“아……!”

띠록, 하며 끊기는 종료음에 코를 벌름거렸다.

*   *   *

풀리지 않는 곡에 대해 연구를 거듭하는 한편.

다가오는 3박 4일간의 제주도 리얼리티 촬영을 앞두고 우리는 남은 스케줄을 빠르게 소화했다.

대부분 광고 촬영이었다.

소극장 투어와 일본 투어를 하는 동안 들어왔던 광고들이라고 할까.

지면에 실리는 포스터라든가 자잘한 영상 촬영은 중간중간 했지만, 굵직한 광고들은 일본 투어까지 끝난 지금 시기에 몰려 있었다.

“안녕하세요! 뉴블랙입니다!”

“와아아!”

우리의 등장에 촬영 스탭들이 박수를 치며 반겼다.

미리미리 모델의 기분을 잔뜩 업 시켜서 광고 촬영 샷이 잘 나오도록 하려는 듯했다.

“흐하하핫! 분위기 너무 좋다아!”

“그러게!”

우리가 좋아서 춤을 추며 몸을 들썩이자 박수가 잦아들었다.

흥이 과했던 모양이었다.

원석이 형이 ‘조금 덜 신나게’ 하듯이 손으로 디크레센도를 그리면서 우리도 잦아들었다.

그제야 스탭들이 안도한 기색이었다.

“오늘 촬영 잘 부탁 드립니다!”

스튜디오 구석구석에 있는 조명, 진행 스탭, 광고 대행사 직원들에게 인사를 하며 들어갔다.

다들 다소 과하게 반겨주셨다.

그리고 출연자 대기실에는 호텔의 조식 뷔페처럼 먹을거리가 널려 있었다.

중현이의 눈이 초롱초롱해졌다.

“여기가 바로 내가 묻힐 곳인가…!”

“저도 같이 묻혀여. 형!”

기쁨의 양손 하이파이브를 나누는 바보들을 보며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곤 나머지도 손뼉을 작게 짝 마주치고는 먹을거리를 향해 걸어갔다.

비주가 몸을 굽히고 바라보더니 엄청 좋아했다.

“우와. 진짜 예쁘다. 형, 여기 마카롱 봐요. 엄청 예쁘게 생긴 것 같지 않아요?”

“진짜. 무슨 장식품인 줄 알았어.”

“손도 못 대겠다. 이거… 사진 찍어서 가족들한테…….”

그 순간 텁, 하고 마카롱을 집은 중현이가 와구와구 먹었다.

폰을 든 비주가 입술을 꾹 말고는 눈을 질끈 감았다.

참을 인자를 새기던 녀석이 핸드폰으로 중현이의 옆구리를 복수하듯 쿡쿡 찌르기 시작했다.

“너는 진짜……. 나빴어. 김중현.”

“어차피 먹을 건데 뭐. 너도 얼른 먹어.”

“됐어.”

“빨간 마카롱? 파란 마카롱?”

“파란색.”

중현이가 비주 입에 파란 마카롱을 쑥 던져주었다.

오물오물하던 비주가 눈을 휘둥그레 뜨고 엄지를 들었다.

마카롱을 하나씩 들고 사진을 찍고 있던 지호와 나도 마카롱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곤 하나를 먹었다.

“……맛있다!”

이따가 업체명 좀 알아가자고 이야기를 하며 대기실 의자에 둘러 앉았다.

언제 커피를 우렸는지 리혁이는 찻잔에 담긴 따끈한 커피의 향을 음미하는 중이었다.

“와. 이거 엄청 좋은 커피에요.”

“그래?”

“좋은 커피의 조건이었나. 그 책에서 본 거랑 설명이 일치하는데요.”

“그럼 좋은 커피겠네.”

납득하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모델 대기실에 놓인 꽃이나 데코레이션, 먹을거리, 인테리어 등이 뭔가 고풍스러웠다.

“확실히 면세점 광고는 다르네.”

“그러게여. 되게 유명한 톱스타 분들이 오고 그러니까 이렇게 준비를 하나 봐여.”

오늘 스케줄은 면세점 광고 촬영.

우리가 광고 모델로 섭외된 곳은 업계 탑으로 불리는 동아면세점.

매년 유명 가수나 한류스타를 섭외해 패밀리 콘서트나 팬미팅을 개최하는 곳이다.

그러하기에 중국, 일본인 등 해외 관광객에도 먹힐 유명인을 섭외하곤 하는데.

아마 이런 촬영 환경은 그런 톱스타들 때문인 듯했다.

너무 부담스러울 만큼 어떻게든 광고 모델의 비위를 맞춰주려고 하는 느낌이었다.

“아이고, 잘 왔어요!”

메이크업과 의상 피팅을 마친 후, 감독님이 우리를 반겼다.

“엊그제 이견우 씨 실물 보고 감탄했는데, 오늘은 뉴블랙 실물을 보니까 좋네. 너무 잘생겼어~”

“감사합니다. 감독님.”

“촬영 컨셉이라든가 콘티는 보고 왔죠~?”

“네. 당연하죠.”

다행이라며 웃는 감독님이었다.

설마 그것도 제대로 숙지 안 하고 현장에 오는 사람도 있는 건가.

“오늘은 두어 가지를 먼저 찍을 건데, 일단 우리 로고송을 몇 가지 버전으로 찍을 거예요.”

“네. 저희 연습해 왔습니다.”

“미리 감을 잡기 위해서 앞에서 했던 광고모델 영상들을 보여줄게요.”

감독님과 함께 모니터 앞에 앉았다.

곧이어 앞선 사람들의 영상이 재생됐다.

한류스타인 배우 이견우가 세미 정장을 입고 하얀 스튜디오에 서 있었다.

손가락을 튕기며 면세점을 의미하는 ‘Duty Free’가 담긴 노래 가사를 부르는 영상.

우리가 집중해서 바라보는 동안 감독님이 말했다.

“표정이 진짜 좋죠?”

“네. 진짜 면세점 광고 느낌이 나네요.”

“이렇게 들뜨지만 고급스러운 느낌으로.”

“네.”

고개를 끄덕이는 동안 다른 영상들도 이어졌다.

TNT 멤버들이 서로 하하 웃으며 ‘Duty Free’를 하며 윙크를 해대는 장면이었다.

다들 엄청 치명적인 척하네.

촬영분을 모니터링하며 치명타를 맞았을 TNT 멤버들의 모습이 절로 그려졌다.

그 외에 다른 유명 배우들의 로고송 릴레이 영상을 바라보았다.

“일단 여기까지인데.”

창을 닫으려고 하는 감독님에게 우리가 손을 들었다.

“혹시 다른 분들 것도 봐도 될까요? 노래 부를 때, 여기에 음을 좀 맞추고 싶어서.”

“음을?”

“네. 그래야 좀 조화로울 거 같아서.”

“……?”

고개를 갸웃하다가 이내 우리 요청대로 해주는 감독님이었다.

이윽고 다른 영상들이 흘러나왔다.

그러곤 동생들과 눈빛을 교환했다.

‘왜 안 보여주셨는지 알겠네.’

‘이유가 있었네요.’

어차피 인당 10초 내외로 나오는 릴레이 로고송 MV라 엄청 중요한 영상은 아니었다.

다만 꽤 성의 없어 보이는 광고 모델들이 있었다.

표정도 좋고, 노래도 괜찮지만 왠지 모르게 알맹이가 없는 느낌이라고 할까.

앞선 이견우 선배나 TNT와 다르게 딱 돈 받은 만큼만 적당히 하는.

“……네! 잘 봤습니다. 저희.”

그러곤 자리에서 일어났다.

본격적으로 촬영에 들어가기 전에 몸을 풀면서 동생들과 짧게 회의를 나눈 후.

감독님과 상의했다.

“어떤 느낌으로 찍을까요?”

“느낌?”

“Duty Free 릴레이 송에서 ‘Duty’를 의무에서 해방되는? 그런 걸로 해석하잖아요.”

“아.”

“관광객들이 여행을 할 때, 일상에서 해방되는 그런 자유로운 느낌을 줘야 할까요? 아니면 자유롭게 쇼핑을 하는 느낌으로…?”

감독님의 얼굴에 화색이 떠오르더니 ‘잠시만요’ 했다.

그러곤 말이 빨라지기 시작했다.

“둘 다 조금씩 섞으면 좋죠. 일상에서 해방됐다, 그거랑 쇼핑의 자유. 이 두 가지를 섞는데 후자가 더 큰 비중으로.”

“쇼핑의 자유.”

우리가 고개를 끄덕일 때 막내가 말했다.

“바로 이해했어요. 탕진잼이네.”

“하핫!”

감독님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곤 노래를 부르는 동안 어떤 표정을 지으면 좋은지 세세하게 디렉팅을 해주기 시작했다.

얼굴에서 빛이 난다고 할까.

어떤 기분인지 공감 갔다. 창작 계통의 사람들은 다 비슷하니까.

광고, 노래, 디자인 등 자신의 작품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싶어하고. 한층 더 발전시키고 싶어하고.

“…그런 식으로 가면 될 거 같아요.”

“네. 알겠습니다!”

“혹시 또 하고 싶은 코멘트가 있다거나… 아, 지호 씨.”

막내가 손을 살짝 들었다.

그러곤 감독님이 들고 있는 전체 콘티를 가리켰다.

어떤 배우, 어떤 가수가 몇 분쯤에 들어갈지.

“소품을 하나 추가해도 될까요?”

“소품이요?”

“보니까 연령대가 다양한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이견우 선배님은 의상도 세미 정장이잖아요. 소품 시계도 비싼 걸 차고 있고.”

30대인 이견우를 모델로 세운 이유는 고급 품목에 대한 소비 증진이 아니겠냐는 이야기였다.

감독님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희는 의상도 좀 여행 온 20대 초반? 그런 느낌이구 그래서 발랄한 느낌으로 가면 좋을 거 같아여, 요.”

“아. 네.”

“그래서 막 쇼핑을 끝낸 느낌으로 면세점 로고가 적힌 봉투를 들어보는 건 어떤가.”

“아! 좋죠! 그거 딱 좋네!”

감독님이 손뼉을 치며 좋아하더니 봉투 다섯 개를 구해 오라고 하셨다.

그 동안 우리는 헛기침을 하며 브이를 하는 막내에게 엄지를 들어주었다.

“기특해.”

“밖에서 요 자 잘 쓰네. 우리 호린이.”

막내가 눈썹을 찌푸렸다.

“으아, 그건 무슨 작명센스에여? 개구려. 호린이가 뭐야.”

“그럼 지린이.”

“호린이로 가여.”

그런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마침내 스탭들이 마련한 면세점 봉투를 손에 받아들었다.

그러곤 바로 촬영에 들어갔다.

“난 이제 지쳤어요.”

“땡벌~ 땡벌~”

미리 노래를 흥얼흥얼하며 흥을 돋운 후, 싱그러운 미소를 입가에 가득 머금었다.

첫 정산을 받고 나서 할머니 옷을 살 때, 그때 그 느낌을 떠올리며.

릴레이 로고송을 불렀다.

*   *   *

감독이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좋네. 좋아.’

카메라 앞에서 ‘DA Duty Free’라고 적힌 종이 봉투를 들고 노래를 흥얼거리는 뉴블랙.

곁에 있던 음악 담당 스탭이 엄지를 들었다.

딱히 음을 보정하거나 톤 조정을 할 필요 없이 지금 그대로 가도 좋다는 뜻이었다.

‘진짜 음을 맞췄네.’

대개 릴레이로 노래를 부르는 경우에는 여러 사람의 톤을 조정하는 게 꽤나 어려웠다.

정 안 되면 후녹음으로 처리하기도 하고.

현장에서 음을 계속 맞춰보곤 했는데, 뉴블랙은 그런 과정이 필요 없었다.

‘저대로 광고에 넣어도 되겠어.’

몹시 흡족하다.

뉴블랙을 바라보는 그의 눈길이 따사로워졌다.

업계에서 평판 좋기로 유명하긴 했지만, 어쨌거나 그건 작년도의 일이었다.

대개 급격하게 뜬 연예인들이 촬영장에서 어떤지를 생각하면…….

“으으.”

며칠 전 대기실에 놓인 가짜 꽃에서 두리안 냄새가 난다며 촬영 내내 성질을 부렸던 스타가 떠올랐다.

그날 촬영을 하면서 청심환만 두 알을 먹었는데.

‘지가 방구 뀌어서 쪽팔린 걸 왜 우리한테 난리인 거냐고…….’

노래를 하나도 준비를 안 해 와서, 보컬 트레이너까지 급하게 구해서 겨우 준비를 끝냈다.

어느 면세점이든 섭외하려고 안달이 난 유명인이라 뭐라고 할 수도 없고.

썩어들어가는 광고주의 표정 앞에서 대행사와 현장 스탭들이 어찌나 가슴을 졸였는지.

하지만 오늘은…….

‘웃고 있네.’

광고주가 작게 혼자 박수를 치며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마음이 좀 놓였다.

아까 감독과 나누는 대화를 들었는지, 광고주가 뉴블랙을 보는 눈빛이 몹시 호의적이었다.

그런 생각을 하며 영상 모니터링을 한 후.

“커트! 고생 했어요!”

릴레이 로고송에 쓸 장면을 몇 번 만에 건졌다.

미리 세세하게 회의를 하고 들어갔기에 더할나위 없이 좋은 결과물이 나왔다.

더 찍으려면 더 찍겠지만, 굳이 그렇게 할 필요까지는 없었다.

하지만 모니터링을 하던 뉴블랙 멤버들이 고개를 저었다.

“저, 감독님. 죄송한데 한 번 더 가도 될까요? 살짝 미스가 난 거 같아서.”

“아. 좋죠!”

“넵, 그럼 준비하겠습니다.”

입가의 근육을 부르르르 풀고 다시 표정을 잡는 멤버들이었다.

“가겠습니다! 쓰리 투 원!”

다시 녹화를 하며 감독이 호쾌한 웃음을 흘렸다.

일부 모델들에게 더 완벽한 컷을 위해 한 번 더 가자고 하면 눈을 부라리는 일도 있고.

티는 안 내도 굳이 광고 따위에 그 정도까지 해야 하나 하는 분위기를 풍기는 경우가 잦았는데.

오히려 저쪽이 더 열심이었다.

간만에 흥겨운 기분을 느끼고 있을 때, 광고 대행사 직원들을 뒤에 주렁주렁 단 광고주가 다가왔다.

“감독님.”

“아, 예.”

“지금 문득 떠오른 아이디어인데. 릴레이송 MV 마지막에 그냥 로고만 뜨고 끝나죠?”

“네. 맞습니다.”

“기왕 오늘 이렇게 촬영하는 거, 마지막 로고를 저 친구들에게 맡기는 건 어떤가 해서요.”

주변이 환해질 만큼 기쁘게 웃는 뉴블랙 멤버들을 가리키며 상대가 말했다.

“마무리에 동아 면세점에서 어서 오세요, 나 그런 멘트로 넣으면. 딱 어울릴 거 같은데.”

“좋은 생각이네요. 한 번 저쪽 팀장님 통해서 얘기해 보겠습니다.”

곧이어 뉴블랙을 현장 담당하는 서민기 팀장이 곰곰이 생각을 하더니 OK 사인을 보냈다.

그렇게 이야기가 마무리 될 때.

“커트! 고생했어요! 하하!”

기쁜 얼굴로 커트를 외치는 감독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모니터링을 하는 표정이 밝지 못했다.

“더 잘할 수 있을 거 같은데. 그치?”

“네. 한 번 더 해 보는 게 나을 거 같아요. 형.”

“감독님. 저희 한 번 더…….”

감독이 푸근하게 웃었다.

“네, 그럼 한 번 더…….”

흐뭇하게 웃으며 좋아하는 것도 잠시.

감독은 이상한 점을 눈치 채기 시작했다.

“저희 한 번 더 갈게요.”

“아이고, 이거 봉투를 잘못 들었네. 감독님!”

“감독님!”

“…….”

기쁨도 오래 지속되면 고통이 된다는 말이 있듯이.

거듭해서 완벽한 컷이 나올 때까지 모니터링을 하며 눈을 부라리는 뉴블랙 멤버들이었다.

“저, 이제 그만 찍어도…….”

“한 번 더.”

“예…….”

감독이 눈을 비볐다.

어느새 눈이 촉촉해져 있었다.

좋아서 그런 것일까. 슬퍼서 그런 것일까.

주변을 둘러보던 그가 조감독에게 물었다.

“야. 주원아. 광고주 분은 어디 갔냐?”

“촬영 현장을 보니까 이 정도면 믿고 맡겨도 될 거 같다고 퇴근하셨어요.”

“…….”

감독이 하하 웃었다.

‘이렇게 광고 촬영에 열성적인 모델이라니.’

좋았다.

그런데…….

왜 이 친구들은 집에 안 가는 걸까.

“다시 한 번 더!”

눈가가 촉촉해지는 감독이었다.

*   *   *

면세점 광고 촬영은 무사히 마쳤다.

스튜디오에서 로고송 촬영도 하고, 면세점 현장에 걸릴 지면 광고와 포스터 촬영도 하고.

모델별로 찍는 광고도 찍었다.

그리고 리혁이와 홍보했던 파운데이션 회사와 화장품 광고를 비롯해 의류와 신발 광고도 찍고.

통신사와 신규 광고도 찍었다.

마무리로는 공익광고 한 편 찍고.

[지방 자치와 지역 균형 발전!]

[반드시 이뤄야 할 목표겠죠?]

…하며 지역 균형 발전을 다루는 광고도 찍었다.

지금 내 고향과 함께 콜라보를 진행하면서 전국 투어를 돌았던 게 공공기관이 밝힌 섭외 이유였다.

실제로 우리가 방문한 지역들이 관광지로 크게 떠오르고, 매출도 올랐다나.

여러 지역에서 보낸 명예 상인증이나 감사패도 받고.

한층 더 발전한 보컬 실력과 함께 우리가 소극장 투어에서 얻은 뜻밖의 소득이었다.

그렇게 봄 시즌 광고 촬영을 마무리하는 한편.

“안녕하세요! 뉴블랙입니다!”

우리는 마지막 스케줄인 사전 미팅을 위해 여의도 PBS 방송국을 방문했다.

PBS 본관.

5층 예능국에서 가장 큰 파티션을 차지하고 있는 부서 <미스터 프로듀서>였다.

주세한과 함께 양대 국민예능으로 불리는 프로그램.

PBS의 간판 프로이자, 우리와는 작년 연예대상 시상식에서 프로젝트를 함께 해보는 게 어떠냐고 피디님이 제안하셨던 그 프로그램이었다.

“잘 지냈어요?”

시무룩한 인상의 남자.

신무록 피디가 우리를 반겼다.

“얼마 전에 우주 씨가 초콜릿 먹고 취한 거 봤는데.”

“흐하핫!”

“너무 재미있었어요. 내가 원하던 바로 그런 캐릭터야.”

“가, 감사합니다……. 그죠. 즐거움을 줬다는 게 중요한 거죠.”

칭찬 아닌 칭찬을 받으며 회의실에 둘러앉자, 메인 작가님이 파일철을 나눠 주셨다.

바로 [미스터 프로듀서 - 아이돌 데뷔 프로젝트]라고 쓰여 있는 기획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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