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387)화 (387/1,031)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387화

2일차 녹화는 순조롭게 진행됐다.

“우와아아……!”

하얀 모래 위에서 바다의 빛깔을 보며 감탄했다.

우도(牛島).

제주도의 동쪽 끝에 위치한 이 섬은 풍광이 예쁘기로 유명했다.

그중에서도 바다가 예쁘기로 유명한 이곳은 산호사 해수욕장.

“와아아아…….”

카메라 너머로 서 있는 제작진들도 바다의 색을 보며 감탄할 정도로 예뻤다.

곁에 선 감독님에게 물었다.

“이거 카메라에 잘 담기고 있나요?”

감독님이 고개를 저었다.

어쩐지.

김덕순 여사에게 보내줄 동영상을 찍는데, 화면에 이 빛깔이 제대로 담기지가 않았다.

밝고 화창한 날씨인데 어딘가 우중충하게 나온다고 할까.

“바다가 진짜 예쁘다. 어쩜 이렇게 예쁘지?”

“그니까여. 시간만 되면 여기서 몇 시간 정도 죽치고 있고 싶어여.”

“좋다.”

다른 때였다면 조잘조잘하며 수다를 떨었을 텐데, 지금은 말없이 눈앞의 풍경을 감상했다.

말이 필요 없는 순간도 있으니까.

파도 소리가 귓가를 간질이고, 숨을 쉬고 내쉴 때마다 코로 향긋한 바다 내음이 들어온다.

“좋다. 정말…….”

앨범 준비를 앞두고 쌓였던 정신적 피로가 날아가는 느낌이다.

그렇게 동생들과 풍경을 감상한 후.

“자! 사진 찍읍시다!”

작가님에게 핸드폰을 맡겨서 다 같이 공중부양 하는 사진도 찍고.

모델처럼 포즈도 취해 보고.

“작가님들도 이리 오세요! 저희가 찍어드릴게요!”

“하나 둘 하면 구호 외칠게요! 예쁘다!”

비주가 상냥하게 외치는 구호에 맞춰 ‘예쁘다!’ 하고 외치고는 민망하게 웃는 제작진이었다.

그런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우도 관광을 시작했다.

땅콩 아이스크림도 먹고, 김밥도 먹으며 우도에서의 소풍을 즐긴 후.

다시 제주도로 돌아와 민속촌 체험 등을 마쳤다.

이른 저녁으로는 유명한 녹두 백숙집을 찾았는데 최근에 먹었던 음식 중에 제일 맛있었다.

“제가 이걸 먹으려고 태어났나 봐여.”

“나도.”

중현이와 지호가 눈물을 훔치는 시늉을 할 만큼 맛있는 곳이었다.

그렇게 오후 일정을 끝내고.

해가 서서히 지기 시작할 때쯤 숙소에 돌아오니 제작진이 뭔가를 준비해 놓고 있었다.

“어서 오세요. 여러분.”

피디님이 웃으며 물었다.

“오늘 소풍은 어떠셨나요? 즐거우셨나요?”

“네!”

소풍을 소원으로 빌었던 리혁이가 대표로 답했다.

“진짜 너무 재미있었어요. 이런 시간 만들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리혁이 형이 이렇게까지 웃는 거 진짜 오랜만이에여.”

“그 정도까지는 안 웃었거든?”

맞지 않냐는 듯 시선을 돌리는 리혁이에게 우리가 답했다.

“저희 아이가 이렇게 대놓고 웃는 아이가 아닌데, 오늘 김밥 먹을 때 표정이 너무 예쁘더라고요.”

“오늘 리혁이 너무 귀여웠어요.”

“진짜. 매일이 오늘 같았으면…….”

이 사람들이 나를 쓰레기로 몬다고 구시렁대면서도 여전히 피식피식 웃는 리혁이었다.

오징어처럼 흐느적대는 걸 보니 기분이 엄청 좋아 보였다.

피디님이 미소를 지었다.

“즐거우셨다니 정말 다행이네요. 하지만! 아직 여러분의 소풍은 끝난 것이 아닙니다.”

“네?”

“이따 저녁 식사를 하실 거잖아요.”

“네!”

“저희 제작진이 여러분을 위해 오늘 바베큐 파티를 준비했습니다.”

짜잔! 하듯 제작진이 자리를 비키자 바베큐 파티용 그릴이 드러났다.

그리고 텐트까지.

“……텐트?”

우리가 눈을 깜빡이며 물었다.

“피디님, 여기 텐트가 왜 있어요?”

“벌칙 아니에여? 벌칙? 게임해서 진 사람은 야외 취침하기, 뭐 그런 거 할 거 같은데.”

“아. 벌칙인가?”

피디님이 고개를 저었다.

“이 텐트는 벌칙이 아닙니다!”

“정말요?”

“즐겁게 바베큐 파티를 하고 나서, 여러분이 취침하게 될 장소입니다.”

왜 갑자기 야외 취침이 나온 건지 의아해하고 있을 때.

이번에도 어김없이 튀어 나오는 노트북이었다.

화면 속에서 비주가 사근사근한 목소리로 말하고 있다.

-저는 그런 거 해 보고 싶어요.

-어떤 거?

-음, 캠핑? 야외에서 다 같이 고기도 구워 먹고, 텐트에서 다 같이 잠도 자 보고…….

상상에 잠겼던 비주가 이내 활짝 웃었다.

-진짜 상상만 해도 너무 행복해요!

-……준비할게.

-네?

-꼭 준비할게.

작가님들이 결의에 차서 ‘꼭 준비한다’ 하는 말이 나오게 할 만큼 행복한 표정이었다.

리혁이가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뭐, 그래도 엄청 추운 날씨는 아니니까. 야외 캠핑도 나쁘진 않을 것 같네요.”

“맞아여.”

지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생각보다 멀쩡한 소원이어서 다행이네여.”

“넌 가만히 있어라. 납량특집.”

막내가 입을 다물 때, 중현이가 손을 들었다.

“그런데 바베큐 파티랑 소풍이랑 무슨 관계인 건가요?”

“아. 바로 재료 구하기 때문입니다!”

“재료 구하기요?”

“보시다시피 바베큐 파티에 필요한 도구들은 준비되어 있지만, 먹을거리는 준비가 안 되어 있거든요.”

그러고 보니 고기나 조개 등이 안 보였다.

두 눈을 부릅뜨고 집중하는 우리에게 피디님이 말했다.

“여러분은 지금부터 마트에서 식재료를 구매하기 위해 예산을 확보해야 합니다.”

“뭘 하면 되나요?”

“바로 오늘 소풍을 마무리할 대망의 백미, 소풍 하면 빼놓을 수 없는 ‘보물찾기’입니다!”

“보물찾기……!”

오오, 하며 방송 리액션을 한 우리가 눈빛을 교환했다.

‘예상대로네여.’

‘예상대로.’

어제 담력 체험에서 못 써먹었던 보물 카드를 그대로 내버려 두지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피디님이 어제 담력 체험 장소로 쓰였던 산책로를 가리키며 말했다.

“제한 시간은 30분이고요.”

“잠시만요!”

다 같이 쪼그려 앉아 신발끈을 단단히 맸다.

스탭들과 매니저들이 웃음을 터뜨리는 동안 우리의 눈에 불꽃이 튀었다.

“30분 동안 이곳에 흩어진 보물을 최대한 많이 찾아와 주시면 되는데요.”

“네!”

“참고로 보물 카드에는 등급이 있습니다. 금은동으로 해서 황금열쇠는 5만 원짜리. 은은 1만 원짜리. 동은 천 원짜리.”

이어지는 설명에 고개를 끄덕인 후.

“자, 그럼… 출발!”

스톱워치를 든 피디님의 외침에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다들 몸을 날렸다.

*   *   *

쿵쾅쿵쾅.

사소한 일에도 가슴이 콩콩거리는 유리 멘탈의 소유자, 서리혁이 심호흡을 했다.

‘침착하자.’

하루살이 같은 체력을 아끼기 위해 걸음을 늦췄다.

“이야아아압!”

“보물은 제가 다 찾을 거예여어!”

“어림도 없지! 내가 제일 많이 찾을 거다아아!”

맏내랑 막내랑 난리가 나서 웃는 가운데 서리혁은 고개를 저었다.

‘저렇게 무작정 찾는 건 바보짓이야. 머리를 써야 해.’

어제 본 약도를 떠올리며 주변을 스캔했다.

내가 제작진이라면 어디에 보물을 숨길까.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5만 원짜리 보물은 어디에다 숨기려고 할까?

‘생각지도 못한 곳에 뒀을 거야. 발상의 전환을 해야 돼.’

발견하기 쉬운 곳에 5만 원짜리가 있을 리 없다.

아니나 다를까.

‘찾았다!’ 하던 막내가 ‘으아악! 천 원짜리야!’ 하며 절규했다.

‘으휴. 저 멍충이.’

비웃는 걸 눈치챘는지 왕지호가 이이익! 하며 외쳤다.

“형은 웃지 마여! 빵 개면서!”

“곧 찾을 거야.”

“꼴찌나 해버려라! 이 꼴뚜기-!”

“……아니. 꼴뚜기라니.”

막내가 에베베 하며 도망쳤다.

옆에서 단독샷을 찍어 주던 카메라 감독이 큽 하며 웃음을 참았다.

“흠흠.”

헛기침을 한 그가 카메라를 향해 말했다.

“저는 다른 멤버들과 다른 접근 방법을 택했습니다. 제작진 분들의 입장이 되어 숨겼을 만한 장소를 떠올렸어요.”

“오.”

“후훗, 절 따라오시죠.”

추리를 마친 서리혁은 미리 점찍었던 장소들을 찾았다.

그리고…….

“자! 저의 예상대로 이 돌 밑에 보물이…….”

냉랭한 표정으로 무거운 돌을 끙끙 들어서 넘기자, 심장이 세차게 뛰기 시작했다.

없으면 안 되는데.

제발 있게 해주세요!

“…여엉차! 있다! 있네요!”

그가 예상했던 대로 황금 열쇠 카드가 있었다.

물티슈로 카드를 슥슥 닦아 비닐에 담고는 다른 장소를 향해 총총 뛰어갔다.

“여기요! 여기! 여기도… 있다!”

은색 열쇠에 함박웃음을 지었다.

그런 식으로 하나씩 열쇠를 수거해 나갔다.

하지만 다 맞은 건 아니었다.

여기다 싶어서 갔는데 없는 경우도 있어서 확률로 따지면 거의 반반 정도.

“……그런 이유로 여기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요. 자, 보시다시피 은색 카드가 있죠?”

“오오!”

“저는 추리를 통해 총 9개를 획득했습니다.”

그런 이야기를 하며 손을 탁탁 털 때, 멀리서 호루라기 소리가 울렸다.

-아아! 끝났습니다! 여러분! 모두 돌아오세요!

카메라 감독과 함께 발걸음을 옮길 때, 터덜터덜 걸어오는 막내와 마주쳤다.

“야!”

“왜여.”

“너 몇 개 찾았어?”

“아, 몰라여. 두 개…….”

침울한 표정으로 중얼대는 모습에 기분이 좋아졌다.

“흐하핡!”

찌릿.

“흠흠… 야. 뭐 내 거라도 좀 줘?”

“됐어여. 형이 찾은 거잖아여.”

“은색 두 개 줄게.”

“……진짜여? 다행이다. 안 그래도 우주 형이 엄청 놀릴 거 같았거든여.”

화색이 돌며 조잘대는 막내의 모습에 에헴 하는 서리혁이었다.

‘그래. 내가 형이란 말야.’

뿌듯하게 웃으며 숙소 공터로 걸어갔다.

“근데여. 형.”

“뭐.”

“지금 소원이 다 하나씩 나왔잖아여. 비주 형 캠핑까지 해서. 근데 우주 형은 뭐 빌었을까여?”

“글쎄.”

예측이 되는 사람이긴 한가.

막내 라인이 둥그런 노을이 지는 하늘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대표님, 이 아니고 리더가 눈을 반짝이는 모습이 떠올랐다.

‘제주도 어린이 작곡 캠프 어떤가요? 제가 깃발 도안까지 만들었어요.’

‘휴식은 사치죠. 2박 3일 뉴블랙 워크샵으로 기획을 해 가지고… 다들 정신이 번쩍…….’

둘이 동시에 이마를 쥐었다.

“뭘 상상해도 일밖에 안 떠올라여….”

“나도.”

그런 슬픈 이야기를 하는 동안 숙소가 모습을 드러냈다.

“얘들아! 빨리 와!”

“네!”

모두가 모인 후.

저마다 각자 모은 보물 카드를 보여 주기 시작했다.

“저는 네 개입니다!”

“이상하네.”

선우주가 턱끝을 매만졌다.

“네가 세 개 이상 찾았을 리가 없는데, 리혁이가 두 개 준 거 아냐?”

“아… 아니거든여! 무슨 소리 하는 거예여?”

누가 봐도 거짓말 같았다.

제작진이 웃음을 터뜨리는 동안 서리혁은 혀를 끌끌 차며 카드를 꺼냈다.

“일단 금색이 하나 있고요.”

“우와아아-!”

“총 7개입니다. 왕지호에게 두 개 준 거까지 치면 9개고요.”

멤버들이 박수를 쳐 주었다.

어떻게 추리를 해서 찾았는지 그 과정을 자랑하고 있을 때, 우주와 비주가 앞으로 나섰다.

‘……비주 형은 왜 묶여 있지?’

미아 방지를 위해 꽃무늬 스카프로 자기들끼리 손목을 칭칭 동여맨 모양이었다.

뿌듯하게 웃는 비주 옆으로 우주가 카드를 내밀었다.

“저희는 23장입니다!”

“……뭐야.”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나 또 졌어?

“그거 다 어떻게 찾았어요?”

“카메라가 설치된 곳들을 슥 보니까 바로 감이 오던데.”

“…….”

어쩐지 여긴 분명히 있다고 생각했는데 없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의 허망한 표정에 우주가 슬쩍 웃을 때.

카드를 바라보던 막내가 손을 번쩍 들었다.

“근데 피디님. 여기에 숨겨 두신 카드가 총 몇 장이에여?”

“총 100장입니다.”

모두가 눈을 휘둥그레 떴다.

“예? 몇 장이요?”

“난이도 조정을 위해 여기저기 많이 깔았어요.”

쉽게 말해 ‘님들 개못해서 난이도 Super Easy로 변경함’ 이라는 이야기였다.

100장이라는 숫자에 멤버들이 입을 멍하니 벌릴 때.

우주가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뭐야. 그럼 그게 다 어디로 간 거야?”

바로 그 순간.

“이 순간을 기다려 왔어요.”

“……?”

“나님 등장.”

근엄한 대사와 함께 중현이 앞으로 나섰다.

수줍은 곰이 꿀단지를 공유하듯 크로스백을 거꾸로 탈탈 터는 래퍼의 모습에 고개를 갸웃할 때.

탈탈탈-

“세상에, 카드가 쏟아지고 있어요…….”

“저게 다 몇 장이에여…?”

“뭐야. 카드캡터 김중현이야?”

그 순간만큼은 제작진도 멤버들과 똑같이 입을 멍하니 벌리고 있었다.

퍼포먼스를 마친 중현이 다시 주섬주섬 카드를 주웠다.

“정확히 센 건지는 모르겠지만 66장이에요.”

“…….”

“확인해 보세요.”

합쳐서 100장이었다.

제작진이 황당해하고 다른 멤버들도 ‘뭐야, 어떻게 한 거야?’ 하고 바라볼 때.

중현이 쑥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농사를 하다 보면, 해로운 짐승들이 농작물을 파먹고 그런 걸 조심해야 하거든요.”

“…….”

“그 덕에 제작진 분들의 흔적이 눈에 띄더라고요. 하핫.”

중현의 무해한 웃음에 다들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짓고 있을 때.

막내가 중얼거렸다.

“그거네여.”

“…….”

“머리 쓰는 자는 눈치 좋은 자를 이기지 못하고, 눈치 좋은 자는 결국 농사꾼을 뛰어넘지 못하는…….”

“…….”

“이게 만약 게임이었으면 중현이 형 하향패치 해 달라고 게시판 터졌을 거예여.”

허망해하는 그들의 표정에 제작진이 박장대소했다.

*   *   *

엄청난 예산이었다.

소고기와 돼지고기, 조개를 비롯해 각종 먹을거리를 왕창 샀는데도 3분의 2가 남을 만큼.

그 덕에 행복한 파티였다.

“자, 건배 합시다!”

“뉴블랙 다음 앨범 대박 나게 해 주세여!”

“대박!”

탄산음료가 담긴 종이컵을 부딪히며 대박을 연호했다.

“아, 지짜 마히허혀. 흐허허.”

“더 먹어. 더.”

시끌벅적한 웃음이 귀를 간질였다.

비주는 중현이에게 나무젓가락으로 고기를 먹여 주고 있고, 리혁이가 탁! 탁! 튀는 불똥에 기겁할 때마다 막내가 깔깔대고.

이런 평온한 풍경을 감상하며 콜라를 만족스럽게 홀짝일 때.

“근데여.”

막내가 물었다.

“형은 소원 뭐 빌었어여?”

“나?”

“지금까지 다른 사람들이 하고 싶다는 거 다 나왔는데 형만 안 나왔잖아여.”

“아, 그거.”

진짜 별 게 없었다.

“나는 딱히 바라던 소원이 없어서.”

“……?”

“잠을 많이 자는 거 정도?”

제작진과 사전 미팅을 할 때도 ‘잠을 원 없이 자 보고 싶어요’ 정도만 말한 터였다.

덕분에 정말 원 없이 푹 잤고.

“아. 뭐야. 재미없어여.”

“하고 싶은 거 엄청 적었어야죠. 형.”

지금이라도 소원을 말하라고 동생들이 재촉했다.

“그럼 제주도 작곡 캠프 오픈…….”

“아아아! 안 들려!”

귀를 막는 동생들을 보며 웃었다.

그 동안 바베큐 파티를 마무리하려는 우리에게 제작진이 뭔가를 쭉쭉 밀어왔다.

“……?”

큼지막한 모니터.

뭘 하려는 건가 싶어서 의구심을 가지고 쳐다볼 때.

팟- 하며 화면이 켜지더니 내 얼굴이 나왔다.

-소원이요?

-응. 여행 가서 해 보고 싶은 거.

-저는 딱히 소원은 없고… 아! 잠을 좀 많이 자고 싶어요.

-잠?

-네. 최근에 쓰던 곡이 좀 막혀서 잠을 설쳤거든요.

화면 속 나는 진짜 피곤해 보였다.

그게 짠했는지 비주가 장갑을 낀 손으로 새우를 까서 내밀었다.

그런데 이건 왜 보여 주려고 한 걸까.

뭐가 더 나올 게 있나?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인터뷰가 뒷부분으로 넘어갔다.

-음. 굳이 바라는 게 있다면 동생들이 이번 여행을 재미있게 했으면 좋겠어요.

옆에서 멈칫하는 기색들이 느껴졌다.

-요즘 들어 성과에 대한 압박이 좀 심한 편이어서요. 시속 100km로 달리지 않으면 가라앉는 느낌이라고 해야 되나. 일하는 것보다 쉬는 게 더 스트레스가 심하고.

-많이 힘들겠네.

-보통 앨범을 낼 때, 전작보다 더 잘 되지 않으면 이번 앨범은 실패했다고 사람들이 단정을 짓잖아요.

동생들과 방송 스탭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요즘 들어서 유독 못 쉬는 것 같아요. 동생들이.

-그래서 이번 여행엔 편하게?

-네. 동생들이 마음 놓고 쉬었으면 좋겠어요.

뭔가 민망하다.

동생들도 뺨을 긁적이고 나도 괜히 음료만 홀짝일 때.

화면 속 내가 멤버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지호는 게임을 엄청 좋아해요. 진짜, 제가 봤을 땐 ‘게임 왜 하지?’ 싶을 만큼 못하는데 도전정신은 충만한 친구라서.

제작진이 웃음을 터뜨렸다.

비주가 깔깔 웃으며 중현이의 등짝을 팡팡 치고, 지호가 입을 비죽였다.

“롤 튜토리얼에서 관두는 사람이 나 보고 겜알못이래.”

그 동안 지호에 대한 설명을 줄줄 늘어놓은 내가 다음으로 넘어갔다.

-리혁이는 보기보다 섬세한 친구예요.

-겉보기보다?

-네. 거의 섬세하기가 유리 수준이라서 정말 멤버들끼리 나니까 맞춰준다, 하는데.

눈을 부라리는 리혁이의 시선을 피했다.

-하지만 은근히 무던한 친구라서. 민속촌 한두 번 돌고, 주상절리 찍고 오면 행복해서 기절할 거예요. 그날 밤 일기도 엄청 길어질 거고요.

“뭐야. 나 일기 쓰는 거 어떻게 알아요?”

-사실 쓰는지 안 쓰는지 잘 모르겠지만, 이런 얘기에 발끈한다면 쓰고 있는 거예요. 그 친구.

제작진이 큰 웃음을 터뜨렸다.

리혁이가 머리를 감싸쥐는 가운데 동생들이 박수를 치며 웃었다.

-중현이는 활동적인 걸 좋아해요. 하지만 기본적으로 자연을 좋아하는 친구라 제주도에서 뭘 하든 다 좋아할 거예요. 대신 천연기념물 그런 곳은 꼭 피해야 돼요.

-왜?

-부숴요.

-하하하… 하?

내가 ‘진짜’ 라고 하듯 눈을 뜨며 강조하는 동안 다른 동생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중현이가 뿌듯하게 웃을 때.

-비주는 정말 심성이 고운 친구예요. 다 좋은데 단점이… 과도하게 친절해요. 먹고 싶은 게 있어도 누가 먹고 싶다고 하면 양보하고, 그 사람이 행복해하는 걸 보고 웃는…?

-아아.

-제가 손해 보지 말고 살라고 매번 말하는데, 이게 몸에 밴 친구라… 분명 뭘 하든지 ‘동생들이 말한 걸 우선으로 해 주세요’ 할 거거든요. 늘 마지막에 서는 친구라서, 반대로 1번으로 챙겨야 되는 친구기도 해요.

그 말과 함께 동생들에 대해 이것저것 당부하는 내 모습이 쭉쭉 흘러나왔다.

-내 정신 좀 봐. 말이 너무 길었죠…? 아무튼, 저는 큰 소원보다는 그냥, 이번 여행이 끝났을 때 동생들이 너무 재미있어서 또 여행 가고 싶다는 얘기를 했으면 좋겠어요.

그쯤에서 동영상이 재생을 멈췄다.

“아, 진짜 민망하네요.”

“…….”

“멤버들 특성 알아야 한다고, 하나씩 말해 달라고 해서 설명한 걸 이렇게…….”

내 눈을 슥 피하는 피디님과 작가님들을 향해 눈을 가늘게 떴다.

분명 ‘제주도의 마지막 밤…’ 하며 아련한 자막을 깔려고 준비한 노림수가 아닌가.

민망한 기분을 느끼며 동생들에게 고개를 돌렸다.

“야. 너무 감동하지 마. 이건 너희를 더 건강한 상태로 굴리기 위한…….”

그렇게 말을 늘어놓으려고 할 때.

“……얘들아?”

소리 없이 오열하는 동생들의 모습에 그만 당황했다.

*   *   *

텐트 안.

침낭에 들어가서 눕자, 제작진이 카메라를 수거해 갔다.

“혹시 몸이 안 좋다 싶으면 안에 들어가서 잘래? 내일 아침에 일어나는 샷만 따로 찍으면 되니까.”

“괜찮아요!”

“그래. 무슨 일 있으면 바로 연락하고.”

“네!”

작가님이 찌이익- 하며 텐트 지퍼를 잠근 후.

가운데 누운 내 곁으로 애벌레들이 꼼지락거리며 달라붙었다.

“오구오구.”

“뭐, 평소에 그런 기특한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착해. 착해.”

완전 꼬꼬마처럼 취급하는 동생들에게 눈을 흘겼다가 그만 웃음이 나왔다.

붕어눈이 된 굼벵이들 같았다.

“이걸 가지고 뭘 그렇게 울었어?”

“난 안 울었어요. 연기가 매워서…….”

“리혁이 형이 제일 많이 울었대여!”

“야!”

내가 웃으며 시선을 돌렸다.

“중현이는 운 거 맞아? 소화시키려고 눈물 흘린 거 아냐?”

“저 악어 아니에요. 형.”

어둠 속에서 거대한 굼벵이가 꾸물꾸물 서운함을 드러냈다.

몽글몽글한 분위기.

아까 나의 사전 미팅 영상이 그렇게 좋았는지, 헤헷 하며 비벼대는 굼벵이들이었다.

하나씩 떼어내는 동안 핸드폰을 들여다보던 비주에게 물었다.

“비주야. 너는 뭐 해?”

“아, 갑자기 생각이 나서요. 이게 원래 지금 공개하려고 했던 생각은 아니었는데.”

“응?”

“분위기도 딱 적당한 것 같고 해서…….”

갑자기 무슨 이야기지?

“다음 앨범에 들어갈 타이틀곡 후보 말이에요.”

“내가 쓴 거?”

“네. 근데 그거 말고, 저희가 형을 떠올리면서 쓰던 곡이 있거든요. 혹시 도움이 될까 해서.”

다음 앨범 주인공인 나를 주제로 만든 곡이 있다는 모양이었다.

솔솔 오던 잠이 확 깼다.

“지금 있어?”

“네. 들어 보실래요?”

건네받은 이어폰을 한쪽 귀에 꽂았다.

“오…….”

전주에 가야금이 들어가 있네.

전체적으로 깔린 한국풍의 사운드에 ‘오’ 하며 곡의 나머지 3분가량을 쭉 이어들은 후.

굼벵이 네 마리가 숨죽인 채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다 들었어.”

“……어때요. 형?”

“좋은데?”

굼벵이들이 꼬물꼬물 기쁘게 꿈틀댔다.

내가 웃으며 이어폰을 건넸다.

“다 완성하면 진짜 대박일 거 같아.”

“……네?”

“응?”

“완성이라는 게 무슨 말이에요? 이게 완성본인데……?”

“뭐?”

그 순간 나도 모르게 속마음이 튀어 나왔다.

“완성본? 이게……?”

“…….”

“…오! 어쩐지 완성본이었네!”

“…….”

재빠르게 뒷수습을 시도했지만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아. 이거 어떡하지.

어둠 속에서 굼벵이들이 험상궂은 기세로 꿈틀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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