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388화
텐트 안.
부들부들대는 굼벵이들을 바라보며 침을 삼켰다.
“그러니까…….”
입이 바싹 말랐다.
“이걸 만드는데 두 달이 걸렸다고?”
“……네.”
비주의 대답이 평소보다 2초 정도 느렸다.
그 말인즉 내가 엄청 큰 실수를 저질렀다는 뜻이었다.
“서운하네요.”
중현이가 말했다.
“형한테 성이 안 찰지는 모르겠지만, 이거 저랑 김비주랑 밤새 비트 찍고 고친 노래예요.”
“그, 그렇구나.”
“뭐. 형이 보기엔 형편없을 수도 있지만…….”
“아냐. 전혀! 너무 좋아!”
짐짓 발랄하게 이야기했지만 비주는 여전히 추욱 늘어져 있었다.
막내가 말했다.
“저도 같이 있었는데. 비주 형이 막 설레서 ‘우주 형이 엄청 좋아하겠지?’ 그러면서 꺅꺅했거든여.”
“…….”
“그리고 저도 몇몇 부분 참여했어여. B파트랑 후렴 만들 때.”
들으면 들을수록 내가 나쁜 놈이었다.
이쯤 되면 리혁이가 ‘하여간 진짜, 어휴’ 같은 류의 키워드를 쏟아낼 타이밍인데.
왜소한 굼벵이가 힘없이 드러누웠다.
“……리혁아?”
“아니에요. 신경 쓰지 마요.”
의기소침한 목소리에 마음이 다급해질 때.
중현이가 말해 주었다.
“리혁이가 지분으로 따지면 2대 주주예요.”
“…….”
“최근에 밤새서 가사 썼거든요. 형한테 어울리는 가사 쓰겠다고.”
“…….”
점입가경은 이럴 때 쓰는 말이 아닐까.
말실수 한 번에 천 냥 빚이 5인분이나 생겨 버린 기분이었다.
심호흡을 하고 선언했다.
“미안합니다. 여러분. 제가 쓰레기였어요.”
평소였다면 꺄하핫 하며 웃으며 ‘OK’ 했을 텐데.
여전히 상황은 호전되지 않았다.
하기사.
나 같아도 두 달 동안 ‘김덕순 여사가 좋아하겠지?’ 하고 선물을 준비했는데 그걸 받은 당사자가 매몰차게 혹평을 한다면…….
“미안해. 나한테 들려주겠다고 두 달이나 작업할 줄은 몰랐어.”
“뭐, 너무 신경 쓰지 마요. 매일 작업한 건 아니니까.”
리혁이가 말했다.
“솔직히 우리도 알아요. 비주 형이랑 며칠 전에 얘기한 건데 퀄리티가 좀 애매하다고 느꼈거든요.”
“미묘했지.”
“맞아여. 진짜 두 달간 형의 소중함을 느꼈던 시간…….”
자기들끼리 어떻게든 더 완성해 보려고 했지만 영 진전이 없었다는 모양이었다.
비주가 물었다.
“그런데 객관적으로 들었을 때는 어때요, 형?”
“객관적으로?”
“진짜 객관적으로요.”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아까 들었던 소리의 잔상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첫 번째가 가야금 사운드였지.
“사운드를 참 잘 골랐다고 생각했어. 곡마다 어울리는 장르가 있는데 정말 잘 골랐다고 해야 되나.”
“정말요?”
“응. 구상이 너무 좋아서 깜짝 놀랐어.”
조선시대 선비들이 유유자적하며 불렀을 시 같은 분위기.
달밤에 스러지듯 처연한 느낌이었다.
의도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여백의 미도 인상적이었다.
“다만 노래가 너무 퍼포먼스에 치우쳐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
“퍼포먼스여? 아직 퍼포먼스 계획한 거 없는데?”
“비주야. 폰 좀.”
비주에게 건네받은 폰으로 파일을 재생했다.
한 번 들어보라고 내밀었다.
“안무와 노래가 있으면 당연히 노래가 먼저여야 해. 노래가 먼저 있고 그걸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안무가 나오는 건데.”
“……?”
“가사지가 없어서 잘 모르겠는데, 대강 여기서 음음음음 하고 가사가 들어갈 거 아냐?”
“맞아요. 그런 느낌으로.”
“그런데 여기서 호흡의 간격을 느껴 봐.”
따닥, 따닥 하며 손가락으로 예상 안무의 리듬을 보여 주는 한편, 숨을 들이쉬었다 내쉬었다.
어딘가 부자연스러운 느낌.
“아……!”
동생들이 내는 소리에 내가 웃으며 물었다.
“가사랑 안무랑 호흡이 부자연스럽지? 노래하면서 숨 쉬는 느낌이 아니라 춤추면서 숨을 쉬는 느낌이잖아.”
“그래서 그런 거였구나…….”
“아마 비주, 네가 춤을 생각하고 노래를 만들어서 그런 것 같아.”
“아…….”
동생들에게 웃으며 말했다.
“만약에 가사 없이 춤만 추는 경우라면 상관이 없는데, 우리는 노래를 부르는 가수잖아.”
“이해했어요. 형.”
모두 납득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일 때.
머릿속으로 노래를 떠올렸다.
“아마 한 템포만 늦춰도 문제가 해결될걸.”
“너무 느리지 않을까요?”
“아니야. 후렴은 딱 적당해서, 그 앞부분만 살짝 느리게 가면 돼. 이런 식으로.”
내가 허밍을 해서 대강 예시를 들려주자 ‘아아…!’ 하는 소리가 돌아왔다.
막내가 신기하다는 듯 말했다.
“와. 이래서 형이 그렇게 해먹은 거네여.”
어딘가 거시기한 표현에 동생들과 내가 웃음을 터뜨렸다.
분위기가 편해진 게 느껴졌다.
그랬기에 지적할 만한 부분들은 모두 생략하고 곡에 대한 나의 의견을 밝혔다.
“개인적인 호오를 떠나 굉장히 좋은 곡이라고 생각해.”
“진짜여? 수록곡 가능?”
“수정을 좀 한다면? 기본적으로 굉장히 신선한 곡이라서 수록곡 수준이 아니라.”
기대하는 꿈틀이들을 향해 말했다.
“타이틀곡 후보로 올려도 된다고 봐.”
“허어어어…!”
“완성하면 좋은 곡이라고 한 것도 그런 의미로 말한 거고.”
“우와아아아……!”
꿈틀이들이 난동을 피우면서 텐트가 이리저리 들썩였다.
중현이에게 깔려 꾸웨엑, 하는 리혁이의 소리도 들려오고, 비주가 ‘너무 좋아!’ 하며 외치는 소리도 들리고.
어둠 속의 난장판이 진정될 때까지 기다렸다.
막내가 침낭 밖으로 손을 뻗고는 뺨에 손을 올렸다.
“대박. 우리 진짜 좋은 곡 만든 거네여. 저두 ‘작곡가 왕지호’라고 소개해도 되는 건가여?”
“이야. 우리 프로였네.”
“이거 타이틀곡 되면 우리도 우주 형처럼 인터뷰 하자. 하루 만에 만들었어요, 이러구.”
희희낙락한 동생들 틈바귀에서 리혁이가 끼어들었다.
“저기요.”
“꺄하하핫!”
“저기요. 여러분.”
“왜?”
“이 아저씨 말 못 들었어요? ‘완성하면’ 좋은 곡이 될 거라고 했잖아요.”
굼벵이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문제는 우리한테 이걸 완성할 능력이 있어요?”
“……앗.”
방방 흔들던 양손을 추욱 내려뜨린 동생들이 내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어색한 미소를 짓는 나에게 막내가 물었다.
“그럼 혹시 형이 만져 줄 수 있어여? 대신에 이름 넣을 때 맨 앞으로 넣어 줄게여.”
“그게…….”
잔뜩 기대하는 눈빛들을 향해 말했다.
“나도 내 곡이 막힌 상태기도 하고. 솔직히 말해서 이건 수정하기가 좀…….”
“왜여?”
“어려워서.”
지금 내 곡과 같은 문제였다.
처음에는 잘 몰랐는데 동생들 말대로 오래 작업한 곡이라는 게 느껴졌다.
여기저기 손을 댄 흔적이 수십 곳은 보이고.
이게 좀 웃긴 문제인데.
노래를 수정하는 건 고장 난 기계를 수리하는 것과 비슷하다.
여차저차해서 대단한 곡이 될 수도 있지만, 반면에 수정을 거듭하다 보면 더 엉성하고 이상하게 변하는 경우가 있다.
문제는…….
수정을 거듭하다 보면 그 자체로 완결성을 지니기에 더 손대기가 애매하다.
고장 난 기계가 ‘정상 작동하고 있습니다. 그만 손 대십쇼.’ 하며 달달 돌아가는데 어디서부터 다시 건드려야 할지 감도 안 온다고 할까.
이전 버전들로 돌아간다 해도 딱히 해결책은 안 보이고.
“비슷한 문제였구나.”
“그럼 조 이사님한테 여쭤 볼까여? 이거랑 형 노래랑 같은 문제라고 하면.”
“그것도 좋긴 한데…….”
일단 스스로 해결해 보라고 이야기를 들은 터였다.
안 그래도 제주도 와 있는 내내 그 생각을 했는데, 과연 이걸 어떻게 해결해야 될까.
동생들이 의견을 제시했다.
“형한테 받은 USB 들으면서 저희도 이것저것 생각해 봤어요. 그래서 생각한 게…….”
“…팝 느낌 나게 드럼을 더 올린다거나…….”
“……우주 형 지금 눈 멍한 게 딴 생각하는 거 같아여. 선우주 형 바보오오… 아악! 아…….”
지호에게 딱밤을 먹이면서도 머릿속이 복잡했다.
동생들의 의견도 해답이 아니었고, 내 의견도 해답이 아니었다.
아. 뭐지 진짜.
차라리 그냥 여기서 메인 테마만 쏙 빼내서 아예 새로운 곡으로 만들어…….
“어?”
동생들이 대화를 멈추고 날 돌아보았다.
바로 그 순간.
구름이 개인 밤하늘 아래 선 것처럼 모든 게 또렷해졌다.
“새로 만들면 되네.”
“네?”
“여기서 좋은 부분만 쏙 빼내면 되겠네!”
“……?”
“그. 그.”
동생들에게 손을 딱딱 튕기며 뭐라고 말을 하려고 했지만,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말보다 생각이 더 빨랐다.
한 번 아이디어가 떠오르니 곧바로 머릿속에 곡의 얼개가 그려졌다.
그리고 어떤 식으로 새롭게 만들지도 계획을 잡았다.
“섞자.”
“네?”
“후렴 부분 메인 테마는 내 거에서 가져오고, 벌스 부분은 너희 거에서 가져오고.”
“……?”
“여기에 사운드는 가야금이나 전통악기 동원해서 깔면 되겠다. 주제랑 딱 어울리니까.”
멀뚱멀뚱 바라보던 막내가 설레는 얼굴로 물었다.
“뭐야. 그럼 우리 사극 컨셉으로 뮤비 찍어여?”
“그래도 되지.”
동생들이 오오 하며 좋아하는 동안 큰 그림을 그렸다.
이번 앨범 주제는 작별.
내 구상대로라면 그 분위기에 딱 어울리는 노래가 될 터였다.
“이럴 때가 아닌데.”
핸드폰으로 손을 뻗었다.
“자고 나면 까먹을 수도 있으니까. 핸드폰으로 녹음을 해야겠어.”
“잠시만요. 일단 진정 좀 해요.”
리혁이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평소 우리끼리 중요한 이야기를 나누기 전에 수행하는 절차를 까먹었기 때문이다.
찌이익-
텐트 지퍼를 열고는 다섯이서 고개를 쏙 내밀었다.
풀벌레 소리.
주변에 스탭들이 세워둔 조명이 있긴 했지만 우릴 찍고 있는 카메라나 녹음장비는 없었다.
보안용 CCTV 한 대뿐. 정말 푹 쉬라고 다 수거해 가신 모양이었다.
“막내야.”
“넹.”
지호가 텐트 안을 슥슥 살폈다.
누군가 도촬을 하면 바로 잡아낼 만큼 카메라 렌즈 하나는 기가 막히게 찾는 우리 막내였다.
“암것도 없어여. 500프로 확실.”
됐다.
곧바로 비주에게 이어폰을 넘겨받아 노래를 듣는 한편, 머릿속으로 내가 만든 노래와 비교했다.
녹음 어플을 실행시키고, 허밍을 시작했다.
“……?”
그러기를 30초.
“……!”
동생들의 표정이 점점 밝아지는 걸 보니 제대로 적중한 모양이었다.
“형. 이거…….”
비주가 무언가를 예감한 것처럼 말을 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동생들도 말을 하면 부정 타기라도 할까봐 더 말은 안 했지만 같은 걸 느끼는 듯했다.
……노래가 진짜 좋았다.
제대로 저장한 건지 걱정이 돼서 몇 번이고 확인을 하고 따로 백업까지 한 후.
긴장으로 빳빳이 굳은 손가락을 풀며 [제목없음]을 바라보았다.
“비주야.”
“네.”
“너희가 만든 곡은 이름이 뭐야?”
“아직 제대로 짓지는 않았는데 꽃과 관련된 이름으로 하려고요. 형은요?”
“나는 일단 Falling이었거든.”
Falling과 꽃이라.
두 가지를 선상에 두고 비교하던 내가 말했다.
“합쳐서 낙화(落花)는 어때?”
떨어지는 중이거나 이미 떨어진 꽃.
곧이어 돌아오는 동생들의 대답에 내가 웃었다.
제주도 여행의 마지막 밤.
풀벌레 소리가 울려 퍼지는 고요한 텐트에서 우리는 방금 만들어 낸 노래를 흥얼거렸다.
* * *
그날 밤.
딩동-
샤워를 마치고 머리를 말리던 레몬 엔터의 제작이사 조규환이 핸드폰을 들었다.
메일이 들어와 있었다.
우주가 보낸 ‘작업 파일-낙화’ 라고 되어 있는 녹음 파일이었다.
그가 미소를 지었다.
‘해결했나 보네.’
늦은 시간에 죄송하다며 확인을 부탁드린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ps. 맛난 돈까스집 알아놨어요’에 웃음이 나왔다.
서재 책상에 앉아 파일을 재생하자, 스피커에서 누군가의 듣기 좋은 허밍이 흘러나왔다.
그렇게 1분도 지나지 않았을 때.
“……?”
처음에는 고개를 갸웃하던 그의 입가에 그린 듯한 미소가 떠올랐다.
* * *
다음 날 아침.
떠날 채비를 마치고 숙소를 나섰다.
“다들 기분 좋아 보이네. 좋은 일 있었어?”
“네!”
밤늦게 노래 하나를 뚝뚝 만들었다고 하니 제작진들이 미소를 지었다.
“많이 심심했나 보네. 뭐 제주도 여행송이라도 만들었어?”
“아뇨. 그건 아니에요.”
“시간 나면 나중에 한 번 들려줘. 재미있을 거 같아.”
밤에 기타를 둥당당 치며 만드는 ‘제주도의 뉴블랙~’ 같은 노래를 상상하신 모양이었다.
뭐라고 설명을 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제대로 설명하자면 한참 걸릴 거 같아서.
“자! 금일은 제주도의 마지막 날입니다!”
“아아아아아!”
“아쉽죠?”
“네에에에-!”
“그래서 여러분을 위해 금일의 아침 식사는 성산일출봉 근처에 있는!”
“있는~?”
“최고의 전복 뚝배기 맛집으로 준비했습니다!”
“우아아아아아!”
맛집을 추천했다는 오디오 감독님에게 엄지를 들었다.
헤드폰을 낀 감독님의 입가에 부처님의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정말 눈물나게 맛있는 전복 뚝배기를 인당 두 그릇이나 해치운 후.
안타깝게도 성산 일출봉에는 오르지 못했다.
고소공포증이 있는 비주에게 힘든 가파른 계단 때문이기도 했지만…….
“우와아아아아!”
우릴 발견하고 달려오는 중국 관광객들 때문이었다.
투어 가이드가 ‘뉴블랙!’ 어쩌고 우릴 가리키자마자 흥분한 관광객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우리가 누군지는 잘 모르지만 한국에서 엄청 유명한 연예인이라고 하는 바람에 나오는 반응 같다.
갑자기 옆에 붙어서 사진 포즈를 취하기도 하고 대뜸 어깨에 손을 올리는 사람도 있고.
안전상의 위험 때문에 얼른 차량으로 피신했다.
“……성산일출봉 등반은 포기해야겠네요.”
“그러게.”
그간 마이너한 코스만 돌아서 그런가. 제주도에 이렇게 중국 관광객들이 많은지 몰랐다.
그 대신 일출봉 주변을 돌며 일정을 마무리했다.
사실상 리얼리티 촬영은 어젯밤을 기준으로 다 끝났고, 나머지는 이제 프로그램 오프닝에 쓸 컷을 따는 일 정도.
그렇게 마지막 날의 촬영을 끝낸 후.
공터에 모여서 ‘뉴블랙의 여행일기’라고 적힌 미니 깃발을 하나씩 쥐었다.
카메라 너머 시청자들과 눈앞의 제작진들에게 마무리 멘트를 하는 시간이었다.
“방송이 어떻게 나오게 될지 정말 걱정이네요.”
“진짜.”
“사전미팅 때부터 정말 분량 걱정 말라고, 자연스럽게 하라고 하셨잖아요. 그래서 진짜 원 없이 놀았는데 이게 재미가 있을지…….”
우리의 진심 어린 걱정에 스태프 전원이 고개를 저었다.
단호한 표정으로.
“흠흠. 아무튼 정말 4일 동안 고생 많으셨어요. 피디님, 감독님들, 작가님들…….”
“진짜 감사합니다.”
“저희 너무 행복했어요. 정말로…….”
동생들까지 한 마디씩 하는 모습에 제작진이 미소를 지었다.
그리 길게 말한 것은 아니었지만 우리가 정말로 고마워하고 있다는 걸 알았을 거다.
“진심으로 감사해요.”
납량 특집부터 소풍과 보물찾기 기획 등등.
리얼리티 제작진 분들 덕분에 정말 황금 같은 시간을 보냈다.
조금이라도 힘든 기색이 보인다 싶으면 바로 내용을 바꾸려고 하시고.
이 정도로 편한 분위기에서 방송을 한 건 처음이었다.
자세히 알아보니 K-net 직원 분들이 아니고, 힐링 예능을 전문으로 하는 외주 제작사 분들이라고 하던데.
“기회가 된다면 지금 제작진 분들과 함께 또 촬영을 하고 싶어요.”
“저희 시즌2 가면 안 돼여~?”
“진짜로 또 하고 싶어요.”
제작진 쪽에서도 좋다는 듯 ‘우우우~’ 하고 손을 흔들었다.
“저희가 이런 여행 리얼리티를 언제 또 하게 될지 모르겠지만, 그때도 꼭 뵀으면 좋겠어요.”
그러곤 동생들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럼 활기차게 마무리 인사 가 볼까요?”
“3박 4일 동안 모두 고생 많으셨습니다! 지금까지~”
“뉴블랙이었습니다!”
다 같이 박수를 치고는 공식적으로 촬영을 종료했다.
“수고 많았어~”
“겁쟁이들 때문에 고생 많으셨어요. 정말.”
스탭들과 악수하거나 포옹도 하고.
감독님의 자녀 분들과 영상 통화로 인사도 하고, 가족 분들에게 줄 사인도 열심히 적었다.
마지막으로 SNS에 올릴 단체 사진을 찍을 때.
“뉴블랙 미니 4집!”
“대박 나라~!”
다 같이 구호를 외치며 환호했다.
이윽고 스탭 전원에게 서울에 도착하고 나서, 한우를 쏘겠다고 선언하니 더 큰 환호가 쏟아졌다.
“뉴블랙! 뉴블랙!”
정말로 시끌벅적한 마무리였다.
그렇게 철수 준비를 하고 제주공항에서 탑승 수속까지 마쳤을 때.
비행기에 올라타 핸드폰을 켜 보니 메일 어플에 [1]이라 적힌 알림이 떠올라 있었다.
조 이사님의 회신이었다.
[Re] 뉴블랙 미니4집 타이틀 관련 확인 부탁드립니다.
보내 준 곡은 잘 들었어.
정말 좋네.
서울 도착해서 회사 오면 연락해. 그때 마저 이야기하자.
조 이사님의 반응이 긍정적인 걸 보니 잘된 듯싶었다.
동생들에게 메일 내용을 슥 보여 주자 다들 소리 없이 주먹을 흔들며 기뻐했다.
그러고 있을 때.
“……음?”
추신이 하나 붙어 있었다.
ps. 그런데 첫 시작 부분은 누구 목소리니? 처음 듣는 목소리 같은데.
옆자리에 앉은 비주가 물었다.
“목소리? 무슨 말씀일까요?”
“그러게.”
이해가 가지 않아서 둘이서 이어폰을 나눠 끼고 들었지만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
어? 들리네.
“음?”
“형. 시작할 때 0.5초 정도 뭐 있어요.”
“그러네.”
미세하게 소리가 잡혔다.
볼륨을 몇 단 정도 높인 다음에 첫 부분을 구간 반복 시켰을 때.
우리 둘의 팔뚝에 소름이 솟아올랐다.
“…….”
처음 듣는 중년 남자의 목소리가 ‘아-’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