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389화
정체불명의 소리에 소름이 돋았다.
“…….”
둘 다 다급하게 이어폰을 뺐다.
심장 박동 소리가 고막을 때리듯이 울린다.
“비주야. 너도 들었지?”
“이게 뭔지 전혀 모르겠어요. 형. 대체 이게…….”
둘 다 말은 그렇게 하고 있었지만 사실 무슨 소리인지 느낌이 왔다.
분명 중년 남자의 목소리.
그제 있었던 담력 체험의 기억이 떠올랐다.
“어쩌면 다른 소리일 수도 있어.”
“그, 그럴 거예요!”
고개를 열심히 끄덕이는 비주에게 말했다.
“중현이가 낸 소리가 들어간 걸 수도 있고. 우리가 착각하는 걸 수도 있잖아.”
“맞아요.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잡음 같은 게 섞여 들어간 걸 거야. 분명히.”
그런 식으로 결론을 내리고 있을 때.
비주가 애써 웃으며 말했다.
“그리고 만약 이게 진짜 그런 소리…라고 해도 좋은 거잖아요. 대박이 나는 거니까.”
“그, 그렇지.”
“앨범 대박 나려고 그러나 봐요.”
“하하하.”
“하하하.”
바보처럼 하하핫 웃긴 했지만 제대로 웃기 힘들었다.
TV 예능에서나 ‘녹음에! 귀신 소리가 들어간 거예요!’ 이런 거 보고 ‘와 대박!’ 이러지.
막상 내가 당사자가 되니까 느낌이 달랐다.
왜냐하면…….
“근데 비주야.”
“네?”
“만약에 이게 진짜 ‘그런’ 소리라면 말이야.”
“네.”
눈을 깜빡이는 동생에게 내가 설명했다.
“누가 우리 텐트 바깥을 배회하면서 이런 소리를 내고 다닌 거잖아.”
“으으으아… 저 상상했어요!”
양손을 들어 얼굴을 가리고 괴로워하는 비주였다.
나도 창밖으로 보이는 제주공항을 바라보며 침을 삼킬 뿐이었다.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우리가 신나게 녹음하고 있을 때 텐트 바깥, 우리 머리맡에서 속삭였다는 거니까.
“…….”
오늘밤 잠은 다 잤다는 생각을 하며 좌석에 몸을 기댈 때.
뒤에서 얼굴이 쏙 올라왔다.
뚠뚠이 햄스터처럼 초콜릿을 오물거리는 막내였다.
“형들도 감귤 초콜릿 먹을래여?”
“아니…….”
“음? 표정이 왜 그렇게 심각해여?”
“별일 아냐.”
“…….”
나를 보고 걱정하는 표정을 짓던 막내가 이내 시름시름 앓는 비주를 발견하고는 의아해했다.
“무슨 일 있어여?”
“아냐. 아무것도.”
“뭔데여. 뭔데.”
“김포 도착하면 말해 줄게.”
“지금 알고 싶어여. 뭔데여?”
계속 재촉하는 막내에게 내가 당부했다.
“그럼 원망 안 하는 거다.”
“……넹?”
“핸드폰으로 보내 놨어.”
음성 파일을 편집해서 전송하고는 ‘그날 녹음에 모르는 사람 소리 들어감’ 이라는 톡을 덧붙였다.
10초 후.
“……으아악!”
뒷좌석에서 기겁하며 핸드폰을 떨어뜨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와 비주가 쓴웃음을 지을 때.
지호 옆에 앉아 있던 리혁이가 물었다.
“뭔데? 또 뭔데?”
“아, 아니에여.”
“뭔데. 빨리 말해 봐. 뭔 일인데 그래? 그걸 알아야 내가 뭘 하든 하지.”
“……이따 알려 줄게여.”
“아. 뭔데?”
막내가 고개를 저었지만 리혁이의 재촉은 멈추지 않았다.
“듣고 나서 원망하지 마여. 형.”
“……?”
그로부터 또 10초 후.
누군가의 핸드폰이 바닥에 콩! 하고 떨어졌다.
“……흐아악! 이게 뭐야?”
“그러게 제가 이따 알려 준다고 했잖아여…….”
“아, 아. 가슴. 놀라서 가슴 아파.”
청심환이라도 먹어야겠다며 시름시름 앓는 리혁이의 목소리가 들려올 때.
소란을 눈치챈 매니저 형들이 릴레이 귀신 타임에 참전했다.
“무슨 일이야?”
“나중에 알려 줄게요-”
…라는 말이 4명의 입에서 동시에 나왔다.
하지만 매니저 형들은 물러서지 않았다.
무슨 문제가 있는지 얼른 확인을 해야겠다는 표정으로 우리에게 재촉을 했고.
우리만 당할 수 없기에 냉큼 메시지를 전송했다.
“메시지 확인해 보세요.”
“메시지?”
민기 형과 원석이 형이 이어폰을 한쪽씩 나눠 끼더니 음성 파일을 재생했다.
3초 후.
식겁하는 표정들과 함께 비행기 바닥에 핸드폰이 떨어졌다.
놀라서 쳐다보는 이들에게 ‘말했잖아요’ 하듯 미소를 지었다.
“…….”
그리하여 네 명의 가수와 두 명의 매니저가 멍하니 비행기 천장만 바라볼 때.
“오.”
…하며 음성파일을 듣고 감탄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여섯 명의 고개가 동시에 돌아갔다.
“재미있네.”
중현이가 흥미롭다는 듯 웃었다.
그러곤 바로 안대를 낀 채 룰루랄라 숙면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
정말이지 부러운 멘탈이었다.
* * *
한우 맛집으로 소문난 강서구의 고깃집에서 회식을 쏜 후.
회사에 돌아오자마자 프로듀싱 팀의 엔지니어를 찾았다.
그리고…….
“백 퍼센트야.”
“…….”
“무조건 사람 목소리야. 이건.”
모니터에 그려지는 소리의 파형을 바라보던 엔지니어가 헤드폰을 뺐다.
그러곤 내 어깨를 툭 치며 웃었다.
“축하해.”
“네?”
“뭐. 미신이긴 한데 녹음할 때 이상한 소리 들어가면 꼭 대박이 난다고 그러잖아.”
“……그러게요.”
힘없이 웃었다.
진짜 그렇게 대박이 난다면야 좋은 일이긴 하지만, 난생 처음 겪는 일이라 당황스러웠다.
프로듀싱 팀의 작업실을 나오며 말했다.
“진짜 좋은 일인가.”
“뭐, 어떡하겠어여. 뭔지 알 수도 없구.”
지호가 기지개를 켜며 말했다.
“기왕 이렇게 된 거 차기 앨범은 대박 나는 시나리오로 갑시당!”
“와아아아.”
“에이. 이 형들 힘없는 거 봐. 자. 다음 앨범은 대박난다! 힘차게!”
“와아아아!”
우리가 손을 들고 호응하자 그제야 ‘그렇지!’ 하며 하이파이브를 하나씩 쳐 주는 막내였다.
기특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놀란 형들을 다독여 주는 걸 보니 지호도 나름 성장…….
“아. 아무리 생각해도 역시 전 인간 비타민인가 봐여.”
“…….”
“모두가 사랑한 그때 그 소년.”
확 깬다. 진짜로.
으쓱으쓱하는 지호를 보며 혀를 찼다.
“다 좋았는데.”
“넹?”
“지금 그 말만 안 했으면 되게 멋있다고 생각할 뻔 했거든.”
“그럼 취소할게여.”
냉큼 답하는 막내를 보며 웃었다.
어쨌거나 지호 말대로 좋은 쪽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앨범이 완전 대박 나는 쪽으로.
동생들과 미소를 교환하는 한편, 회사 창고에 있는 수레를 꺼내와 박스를 올렸다.
“그럼 가자. 졸개들아!”
“예. 형님!”
동생들과 함께 회사 복도를 종횡무진했다.
각 부서의 사무실에 들이닥칠 때마다 중현이가 미니 확성기를 들었다.
-아아. 날이면 날마다 오는 가수가 아닙니다.
-뉴블랙. 아아~ 뉴우~블랙.
-여러분의 복지를 책임지는 뉴~블랙이 왔습니다~
회사 직원들이 손뼉을 치며 깔깔댔다.
“저희 돌아왔어요!”
“잘 다녀왔어?”
“네. 오는 김에 제주도 기념품 왕창 사 왔는데 다들 하나씩 받아 가세요.”
“어머! 고마워.”
감귤 초콜릿이나 돌하르방 미니미 등을 돌릴 때마다 반응이 좋았다.
“스칼렛 누나들은여?”
“나윤이가 작업실 냉장고에 넣어 달래.”
“오키. 그럼 거기 두고.”
스칼렛에게 줄 기념품도 넣어 두고.
근처 카페에서 정모 중인 A&R팀과 프로듀싱팀을 붙잡아 선물을 주고는 지하를 찾았다.
“얘들아아~~”
지호가 오페라 가수처럼 부르며 들어가자, 연습 중인 연습생들이 허둥지둥 달려왔다.
“안녕하십니까!”
“안뇽.”
우리가 손을 흔들며 봉지를 내밀었다.
“오다 주웠다.”
“하나씩 받아가. 진후, 복수, 윤수…….”
당황한 얼굴로 봉지를 받아간 연습생들이 내용물을 보고 좋아했다.
“엇, 감귤 초콜릿이랑 트레이닝복…….”
“트레이닝복은 오다가 매장 들려서 산 거야. 이게 연습생 때는 제일 많이 필요한 거니까.”
“맞습니다.”
진후가 트레이닝복 허벅지의 구멍을 보여 주며 말했다.
“제가 마침 여기 빵꾸가 뚫려서 하루 종일 놀림 받던 차였어요.”
“흐하핫!”
“정말 감사합니다. 선배님.”
“감사합니다!”
다른 녀석들도 분위기를 타서 꾸벅 인사했다.
이런저런 안부를 나누고 있을 때.
바닥에 난 땀과 신발 자국들을 유심히 들여다보던 비주가 사근한 미소를 지었다.
“틴스피릿 선배님들 곡 연습하는 중이구나? 나나나?”
“엇, 네. 맞습니다.”
“혹시 후렴에서 막히니?”
“어… 맞습니다. 코러스 파트에서 자꾸 반 박자 늦게 들어가게 돼서.”
“한 번 보여 줄 수 있어?”
“네!”
안무 동작을 보던 비주가 몇 가지 정도 팁을 알려 주었다.
5분도 지나지 않아 동작들이 바로 개선되니 연습생들이 놀란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렇게 짤막한 강의까지 마친 후.
“다음에 또 보자~!”
“감사합니다!”
여유 있게 손을 흔들며 연습실을 나갔다.
끼이익.
문을 닫고 느긋하게 걸음을 옮기는 것까지 연출한 후.
“…….”
다 같이 숨을 죽이고 문에 귀를 댔다.
안에서 소란이 벌어지고 있었다.
‘대박!’ 하는 소리와 함께 ‘나 이거 안 입을 거야. 가보로 간직할 거야~!’ 하는 목소리들이 들려왔다.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지하 복도를 빠져나왔다.
“역시 우리가 생각해도 너무 멋진 선배야.”
“그니까여.”
“저 그래서 일부러 안무 동작 더 자세하게 알려 줬어요. 나 잘했지?”
“이응이응.”
다 같이 헤헷 하고 웃었다.
그저 리혁이만이 입을 달싹이다 말고 한심한 눈으로 지켜볼 뿐.
* * *
노래 작업은 딱 하루 만에 끝났다.
대략 16시간 정도.
어쩌다 보니 작업실에서 밤을 새긴 했지만 한 번 느낌이 오니 멈출 수가 없었다.
“으아아…….”
리혁이와 지호가 작업실 소파에 뒤엉켜 널브러져 있고.
나와 중현이 사이에서 비주가 꾸벅꾸벅 조는 가운데, 노트북을 들여다보는 중현이에게 물었다.
“된 거 같지?”
“네. 완성된 거 같아요.”
“고생했다.”
“형도 고생했어요.”
내가 주먹을 내밀자 중현이가 보자기를 만들어 받아 주었다.
캔 밑바닥에 남은 제티를 한 모금 홀짝이고는 의자를 빙글 돌려 동생들을 불렀다.
“완성했어.”
“스읍!”
침을 삼키던 비주가 머리를 흔들고, 막내는 비몽사몽한 얼굴로 벌떡 일어나 박수를 쳤다.
“으악!”
바닥에 굴러떨어져서 괴성을 내는 리혁이까지.
밤새 같이 작업하느라 초췌해진 얼굴들을 향해 가까이 오라고 손짓했다.
그러곤 완성본을 재생했다.
“적당한 사운드를 찾는 게 어려워서 시간이 걸렸어. 전통 악기와 비슷한 소리를 찾기 힘들어서.”
전통 악기가 들어가지만 트렌디한 팝 느낌도 놓치기 싫었기 때문에 조율에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시간이 걸릴 만한 가치가 있었다.
“……!”
전주를 듣자마자 동생들의 표정이 밝아졌다.
초반에는 느릿하게 시작한 리듬이 점점 빨라지기 시작하면서 다들 고개를 까딱까딱했다.
빠른 안무가 들어갈 후렴, 그리고 랩 파트까지.
“그림이 그려지지? 자기가 어디 들어갈지?”
“아녀.”
“이게 네 파트야. 지호야.”
“아하.”
2절 후렴에서 센터에 서게 될 거라는 말에 좋아하는 막내였다.
노래 감상을 끝낸 비주가 말했다.
“진짜 신기하다.”
“좋지?”
“네. 소리는 한국풍인데 팝 느낌도 나고. 이걸 뭐라고 해야 되지.”
리혁이가 말했다.
“난 그런 느낌이에요. 전통 음악이 외부의 영향 없이 쭉 이어졌을 때, 나올 법한 미래 버전.”
“뭔 소리에여. 그게?”
“……그냥 유니크하다는 뜻이야.”
지호도 그 말에 공감하는 듯했다.
“확실히 이런 느낌은 별로 들어본 적 없는 거 같긴 해여.”
“새롭긴 해도 괜찮을 거 같지?”
“네, 제가 노래 취향 제일 무난한 편인데도 제 귀에 이렇게 들릴 정도면 뭐…….”
마지막으로 중현이도 한 마디 보탰다.
“제 생각에는 이 곡에 대한 예감이…… 헙.”
비주가 손을 들어 중현이의 입을 텁 막고는 내게 말했다.
“퇴치했어요. 형.”
“잘했다. 2호기.”
하이파이브를 하며 웃고는 의자를 다시 빙글 돌렸다.
“자, 그럼 조 이사님이랑 하 피디님한테 연락드리자.”
곡은 완성되었으니 이제 숙제 검사를 맡을 시간이었다.
* * *
레몬 엔터테인먼트.
지하주차장에서 내린 하승주가 레몬 엔터의 제작이사와 마주했다.
“오셨어요. 형님?”
“어, 규환아.”
“오전에 경기도에서 약속 있으셨다면서요. 빨리 오셨네요.”
“누구 호출인데, 빨리 와야지.”
“그러게요.”
작곡가 후배가 웃으며 커피를 내밀었다.
콜드브루에 시럽이 조금 들어간, 그의 취향에 맞춘 커피였다.
“딱 마주칠 것 같더라고요. 미리 사놓고 있었어요.”
“하여간 귀신이야.”
커피를 홀짝이던 하승주가 조규환을 따라 사옥에 들어갔다.
엘리베이터에 탑승해서 2층을 눌렀다.
“그나저나.”
하승주가 물었다.
“우주가 아예 곡을 싹 다 뜯어 고쳤다면서. 어때?”
“글쎄요.”
문이 열리고 2층 복도가 나타났다.
“저도 완성본을 들은 건 아니라서. 우주가 메일로 보낸 멜로디만 들었어요.”
“걔는 여행 리얼리티 찍으러 가서 일을 하고 오네. 어때. 좋았어?”
“네.”
짤막한 대답이었지만 표정으로 보아하니 어지간히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하승주도 기대를 품었다.
‘곡을 어떻게 변신시켰길래 이 까다로운 녀석한테서 이런 반응이 나오지?’
그런 생각을 하며 작업실 문을 열 때.
“안녕하세요! 이사님! 피디님!”
뉴블랙 멤버들이 그들을 활기차게 반겼다.
눈가가 퀭하고 입에는 떡볶이 국물 자국이 가득했지만 표정만큼은 햇볕이 쨍하는 느낌이었다.
100점짜리 시험지를 가지고 돌아오는 유치원생들처럼 보였다.
“곡이 완성됐다고?”
“네.”
“그래. 한번 들어보자.”
조 이사에게 커피를 받아든 멤버들이 기대감 어린 표정으로 뒤에 섰고.
앞에 앉은 두 작곡가가 귀를 기울였다.
“저번에는 ‘Falling’이었잖아요. 이번에 곡을 거의 새로 쓰다시피 하면서 제목을 다르게 붙였어요. 낙화라고.”
“낙화.”
“그럼 틀어 보겠습니다.”
곧바로 음원 파일이 재생됐다.
싸늘한 바람이 황량한 공터를 스치고 가는 듯한 느낌의 전주가 흘러나왔다.
우주가 옆에서 코멘트를 덧붙였다.
“아직 소리를 다 채우진 못했어요. 전통 악기는 연주자분을 섭외해서 스튜디오 녹음을 따로 하려고요.”
두 남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떤 느낌으로 하고 싶다는 건지 감이 왔다.
그 동안 노래가 이어졌다.
‘좋네.’
뉴블랙의 여섯 번째 앨범이자 미니 4집의 주제는 작별과 이별.
물론 부정적인 뜻에서의 헤어짐보다는 다시 만날 날을 기약하며 헤어지는 것에 가까웠다.
지금 흐르는 곡은 그런 주제에 딱 적합했다.
귀를 즐겁게 자극하는 부드러운 사운드에 하승주가 혀를 내둘렀다.
‘어떻게 20대한테서 이런 내공이 나오지?’
누구 아들인지 생각해 보면 이상한 일이 아니긴 하지만 절로 나오는 감탄은 어쩔 수 없었다.
꽃을 그린 한 폭의 동양화 같다.
처음에는 붓을 느리게 휘둘러서 가지를 그리기 시작하다 후렴 직전에 이르러서는 빠르게 꽃을 그리는 듯한 인상.
그리고 후렴구에서는 그런 꽃이 떨어지는 듯한 멜로디가 이어졌다.
“이야…….”
좋은 노래를 들을 때 그러하듯 저도 모르게 입이 귀에 걸렸다.
그 반응에 뉴블랙 멤버들이 작게 웃으며 하이파이브를 했다.
그 동안 ‘낙화’는 계속 이어졌다.
‘여백의 미까지 잘 살렸네.’
보통 이런 곡을 만들 때, 자주 실수하는 포인트가 지나치게 많은 것을 넣으려고 하는 것인데.
의도적으로 비어 있는 여백이 노래를 풍성하게 만들어 주고 있었다.
정말이지 작곡가로서도 리스너로서도 좋은 곡이었다.
노래가 끝나자마자 하승주가 크게 웃었다.
“야. 진짜 좋은데? 이거 어떻게 만들었어?”
“흐하핫! 감사합니다!”
“아니. 진짜로, 이걸 하루 만에 완성을 했다고?”
진심으로 묻는 질문이었다.
절대 하루 만에 나올 수 있는 결과물이 아니었으니까.
그 의문에 우주가 답했다.
“저번에 그러셨잖아요. 막힌 부분을 네 스스로 한 번 고민해서 풀어봐라.”
“그랬지.”
“이번에 해답을 알았어요.”
“그래?”
기특하다.
그의 밝아지는 표정에 뉴블랙의 리더가 고개를 끄덕였다.
“기존 곡에 매달릴 게 아니라 그냥 몇몇 멜로디를 떼어내서 새로 만들면 된다는 걸요.”
“맞아. 그거야.”
그가 과거에 비슷한 문제를 겪었을 때 해결한 방법이었다.
오래 작업한 부분들이 아깝긴 하지만, 중요한 부분만 떼어 내서 아예 새로 만드는 것.
때로는 고치는 것보다 새로 만드는 게 쉬울 때가 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우주의 말이 이어졌다.
“그래서 제 곡에서 멜로디를 떼어 냈고, 이번에 동생들이 만든 곡이 있거든요. 거기서도 또 떼어 냈어요.”
“오…….”
상대가 들려주는 비하인드에 고개를 끄덕이는 한편, 하승주는 또 다른 의문을 떠올렸다.
‘두 곡이 아닌 거 같은데?’
조규환이 그를 대신해 질문했다.
“한 곡 더 있지?”
“어? 어떻게 아셨어요? 네, 두 곡으로는 좀 심심해서 전에 묵혀둔 곡 하나도 써먹었어요.”
“총 3개구나.”
“네, 3개를 적당히 잘 버무리니까 이렇게 곡이 잘 뽑히더라고요.”
덕분에 노래를 잘 만들었다고 인사하는 우주에게 두 남자가 미소를 지었다.
조규환이 물었다.
“일단 너무 잘 들었고. 지금 곡 이야기할 시간 되니?”
“음… 조금 이따가요.”
“어디 가니?”
“홍보팀에서 몇 가지 물어볼 게 있다고 지금 호출을 해서요.”
안타깝지만 곡에 대해서는 조금 이따가 이야기하자는 쪽으로 결론이 났다.
“그럼 저희 다녀오겠습니다!”
“천천히 다녀와.”
“아니에요! 빨리 올게요!”
활기차게 인사하는 멤버들에게 두 작곡가가 여유롭게 손을 흔들어 주었다.
그렇게 인사를 마친 후.
복도 끝에서 사라지는 뉴블랙 멤버들을 확인한 두 남자의 입가에 미소가 싹 사라졌다.
“…….”
바깥에 누가 없는지 확인하고는 문을 잠그는 두 작곡가.
체면 따윈 집어치운 채 하승주가 다급하게 낙화의 음원 파일을 재생했다.
그러곤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 얘는 이걸 어떻게 한 거야? 뭐? 3개를 합쳐?”
“저도 어떻게 한 건지 전혀 모르겠네요. 이건…….”
귀를 기울이던 조규환도 눈을 깜빡거렸다.
하승주는 헛웃음이 나왔다.
‘진짜 뭐지?’
두 개면 모르겠는데 하룻밤에 세 곡을 하나로 합쳐 버렸다는 이야기에 당황스러웠다.
앞에서는 ‘허허, 3개를 합쳤구나. 이 녀석.’ 하며 여유롭게 웃었지만 속이 바싹바싹 타 들어갔다.
대체 어떻게 이런 구성을 생각한 건지 감도 안 온다.
혹시 질문이라도 할까 봐 어찌나 겁이 나던지.
“아니, 내가 의도한 건 이게 아니었는데.”
“저도 마찬가지예요. 그냥 안 되는 거 붙잡지 말고 떼 내서 새로 만들어 봐라, 하는 의미로 말한 건데.”
“그랬더니 곡을 3개를 합쳐 왔네.”
“그러게요…….”
벽을 넘지 못해 끙끙거리는 제자에게 ‘답은 가까이 있느니라’ 하고 말한 스승의 기분이 이럴까.
바로 앞에 문이 있다는 걸 알려 주려고 한 건데.
제자가 ‘아! 알겠어요!’ 하더니 제자리 점프로 3미터 벽을 넘어서 사라졌다.
“도라지 캐라고 하면 산삼을 가져올 애야. 얘는…….”
“이걸 어떻게 하루 만에 만들어 온 건지 아직도 모르겠어요.”
“나도 몰라. 이런 건 처음 본다고…….”
다시 한 번 낙화를 들었지만 여전히 모르겠다.
이렇게 단시간에 가능한 것인지.
머리 위에서 우주의 얼굴과 함께 호탕한 웃음소리가 환청처럼 들렸다.
‘아니. 누가 이렇게 문제를 해결하냐고…….’
난생 처음 보는 문제 해결 방식에 어안이 벙벙한 두 작곡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