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410화
토요일 밤.
“흐아암…….”
체조경기장을 빠져나온 수플레들이 주변을 둘러보며 눈을 비볐다.
캄캄한 밤.
탈력감이 온몸을 사로잡는 가운데 공연장을 빠져나가는 사람들의 인파가 올림픽 공원을 점령했다.
‘좋았다. 진짜.’
마법 같은 장면들이 눈앞을 스쳐 갔다.
오프닝의 Nine부터 신곡 낙화, 그리고 앵콜 무대의 멘트까지 머릿속에 맴돌았다.
그때 주변의 수다가 들려왔다.
“미프, 오늘 미프 어때? 반응 좋았어?”
“뭐 나온 것 같던데? 포털 메인에…….”
미프.
그제야 콘서트밖에 없던 수플레들의 머릿속에 미스터 프로듀서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맞다! 오늘 미프 하는 날이었지.’
안 그래도 3화 반응이 궁금했던 터였는데.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포털 메인에 접속한 이들이 눈을 크게 떴다.
예상했던 것보다 더 큰일이 벌어져 있었다.
-미프, 신인 작곡가 ‘우주선’의 발칙한 등장.. 폭소 유발
-“자체 프로듀싱돌의 위엄”.. 타이틀곡 작곡가는 뉴블랙 우주였다
-KM 허강민 “너희에게는 아까운 곡”.. Attention 극찬
콘서트를 보면서 웃고 우는 사이에 거대한 떡밥이 터져 있는 기분이었다.
그중에서 가장 놀란 건 작곡가의 정체였다.
“뭐야. 그거 작곡가 결국에 우주였어?”
“안 한다고 강조하지 않았어? 바빠서 못하는 그런 걸로 알고 있었는데….”
“실검에 우주선? 이건 또 뭐야.”
그 의문에 누군가 답했다.
“우주가 예명이라도 쓴 거 아닌가. 싸인이 우주선이잖아.”
“……근데 예명만으로 실시간 검색어에 오를 리가 없잖아.”
“……!”
올림픽 공원을 활보하던 이들이 동시에 멈춰 핸드폰에 얼굴을 파묻기 시작했다.
‘내가 뭘 놓친 거지?’
너희들만 재미있는 거 보지 말고 나한테도 공유해라! 하는 마음으로 실검 1위의 우주선을 눌렀다.
“어……?”
마성의 BGM과 함께 등장하는 점 찍은 신인 작곡가의 모습에 모두가 멍한 표정을 지었다.
이윽고 왁자지껄한 웃음이 쏟아졌다.
“흐하하하핫!”
노곤노곤함이 가득했던 팬들의 얼굴에 또 다른 설렘이 가득 차올랐다.
콘서트가 끝난 후의 공허함을 느낄 새도 없이, 또 다른 떡밥이 택배처럼 도착해 있었다.
* * *
실시간 검색어를 본 수플레들이 온라인 커뮤니티에 접속할 때.
이미 각종 커뮤니티에는 신인 작곡가 ‘우주선’의 움짤이 밈처럼 퍼져 있었다.
[신인 작곡가 인성 논란.gif]
(우주선이 ‘Attention’에 대해 설명을 하면서 다리를 꼬고 앉아 있는 장면)
(몹쓸 드립에 정색하는 신인 작곡가 우주선)
(비서 ‘고구마’를 감자 군이라고 소개하는 장면)
신인 작곡가인데 방송 나와서 표정관리도 안 하고 건방진듯 ㅂㄷㅂㄷ
-선 넘네
-이거 뭐냐ㅡㅡ 자숙의 의미로 군대 또 가셈
-와 비서 이름도 기억 못하네
-?? 이거 뭐야? 왜 갑자기 뉴블랙 얘 욕함??? 왜??
┕드립임. 링크 줄 테니까 미프 클립 보고 와
┕아 ㅇㅋ
┕와 우주선 인성 실화냐;
-감자 비서님 진짜 불쌍하네
-고구마라고 ㅋㅋㅋㅋㅋ
-선배 작곡가한테 영상편지 쓰게 하고 농락할 때부터 알아봤음
-우주선은 선우주 보고 좀 배워라 쯔쯧
신인 작곡가가 건방지다는 농담이 오고 가고 있을 때.
아이돌 팬들이 모인 사이트에는 틴스피릿과 뉴블랙이 풍선을 주고받는 장면이 화제가 되고 있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풍선 출처가 틴스였냐구
-틴스가 본진이라 매니저를 부탁해도 봤는데 거기서 복선이 깔려있을 줄이야ㅋㅋㅋㅋㅋㅋㅋ
-여러분은 지금 6층과 7층 주민의 친목을 보고 계십니다
-얘기듣고 처음에 안 믿음.. 틴스가 늅한테 헬륨 풍선을 줬는데 그걸로 미프에서 음성변조를 했다구요??
-(두 그룹이 수줍게 풍선 건네주고 받는 짤.gif) 내 기준으로 진짜 무해한 짤
-친해지고 싶다고 풍선 줬나봄 ㅠㅠㅠㅠㅠ 우리 순둥 틴이들 이러는데 내가 어떻게 안 사랑해ㅠㅠ
-우리 틴 와기들ㅠㅠㅠ 오구오구
그와 함께 예고에 나왔던 TNT의 한태현도 도마 위에 올랐다.
-예고편 분위기 보니까 선우주 지인으로 온 듯?
-뉴블랙은 친한 애들이 대체 몇 명이야 ㅋㅋㅋㅋ
-이쯤 되면 인간 만남의 광장 아니냐
-내가 돌 성격 본인피셜 안 믿는 이유) 뉴블랙 멤버들 자기 내향성이라고 말함
-어딜 봐서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나 어디 가서 활달하고 외향적이란 말 많이 듣는데 쟤네 앞에선 파워 아싸될 자신 있음
-태혀니 간만에 예능 나오네ㅠㅠㅠ 너무 행복해ㅠㅠㅠ
-태현아ㅠㅠㅠㅠㅠㅠ
TNT 최고의 인기 멤버답게 팬들이 다음 주에 출연할 한태현을 목 놓아 부르짖고 있을 때.
아이돌 커뮤니티와 일반 커뮤니티를 가리지 않고 가장 크게 화제가 된 것이 있었으니.
바로 에이텐의 데뷔곡 ‘Attention’이었다.
-얘는 진짜 천재 같다..
-노래 존나 잘 만들었어 진짜ㅋㅋㅋㅋㅋ
-실시간창 댓글 개웃겼음ㅋㅋㅋ 다들 1 5 6 이러면서 싸우고 있는데 12번 등장하고 조용해짐
-표형원이 보낸 곡도 좋았는데 어텐션이 넘 쎘다
-타이틀곡이 넘사라서 그렇지 저 중에 몇 곡 정도는 수록으로 해도 좋을 듯
-미프 팬으로서 진짜 우주갓이다 ㄹㅇ ㅋㅋㅋㅋ 진짜 귀한 손님임
-허강민이 5억 주고도 산다는 걸 5만원 주고 샀네
-곡 받은 뒤부터 미프 아조씨들 매일매일 싱글벙글해보임
곡의 퀄리티에 대한 감탄이 흘러나왔다.
디스코와 펑크가 절묘하게 조합되니 중독성 있으면서도 흥겨운 음악이 탄생했다고 할까.
오프라인도 그와 같은 반응이었다.
“노래 대박 날 거 같지 않아?”
“완전 대박 칠 거 같은데. 지금 미프 인지도에… 저 정도 곡이면 완전 난리 나지.”
“이거 언제 나와? 다음 달?”
그런 화제성을 반영한 것인지, 음원 사이트에는 나오지도 않은 음원이 검색어 1위를 달리고 있었다.
1위. 에이텐
2위. Attention
3위. 우주선
여기저기서 벌어지는 촌극에 연예부 기자들이 누구보다 빠르게 보도하려고 기사를 쓸 때.
일반 대중들보다 훨씬 더 놀라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와…….”
“쟤 몇 살이야? 스물넷? 진짜로 스물넷?”
“나는 저 나이 때 제대로 된 곡도 못 썼는데.”
바로 각 기획사의 A&R팀 직원들과 작곡가들이었다.
대중들이야 ‘듣기 좋쿠나~!’ 하면서 얼쑤할 뿐이지만, 전문가들 입장에선 더 대단하게 느껴지는 곡이었다.
방송에 나온 Attention을 몇 번이나 10초씩 돌려 가면서 혀를 내둘렀다.
‘얘는 인생 곡을 몇 번이나 쓰는 거야?’
남들은 일생에 한 번 쓰는 곡을 줄줄이 쏟아내는 아이돌 작곡가였다.
‘……앞으로 무조건 피한다.’
회사 소속 가수들이 컴백하거나 데뷔할 때, 절대 일정이 겹치지 않게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래부터도 경계대상 1호였지만 이번에 한층 더 위험 단계가 격상됐다.
꺄르륵! 하는 소리에 방심했다가는 음원 토네이도에 휘오오옹 날아갈 듯하다고 할까.
한편, 그 속에서 유일하게 웃고 있는 사람들도 있었다.
TJ 엔터 프로듀싱팀 사무실.
“태현아.”
“네.”
“그러니까 네가 이번에 미프 출연해서 우주한테 곡을 받기로 했다는 거지?”
“약속했어요. 손가락까지 걸고.”
느긋하게 답하는 한태현에게 프로듀싱 팀의 PD들이 환호했다.
“잘했다, 정말…!”
지금 가장 핫한 작곡가에게 곡을 받아 왔다는 소식에 한참 동안 칭찬을 건넸다.
“근데 어떻게 받았어? 우주 걔가 이런 거 쉽게 해 줄 성격이 아닌데.”
“짤 없지.”
공사구분 철저하기로 유명한 누군가에 대해선 TJ의 프로듀서들도 잘 알고 있었다.
한때 우주에게 작곡을 가르친 게 그들이었으니까.
핸드폰을 들여다보던 한태현이 웃으며 말했다.
“옛날에 곡 써 준다고 약속한 게 있거든요. 연습생 때.”
“어쩐지.”
“그래도 잘했죠? 덕분에 그 형한테 수록곡도 받고.”
“잘했다.”
어떤 곡이든 좋았다.
일단 ‘뉴블랙 우주에게 곡을 받았다’고 홍보할 수 있는 호재가 생긴 거니까.
TJ 프로듀싱팀 직원들이 말했다.
“걔는 우리가 옛날부터 얘기했잖아. 배우나 그런 걸로 빼지 말고 싱어송 라이터로 키우자고.”
“그때 기획팀이 배우 시키자고 한 걸 어떡해요. 솔직히 그 얼굴을 놀려 둘 수도 없고.”
“하여튼 그때…….”
지나간 일을 두고 이러쿵저러쿵 이야기가 오갈 때, 한태현은 핸드폰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비공개 계정으로 만든 SNS의 피드를 슥슥 둘러보고.
온라인 커뮤니티를 슥 살피며 턱을 매만졌다.
‘흐음…….’
Attention이라는 역대급 곡의 등장과 신인 작곡가 우주선 때문에 빵 터져서 그렇지.
수면 아래에서 불만스러운 반응들이 꽤 보였다.
무엇이든 화제가 되고 잘나가면 불편해하는 이들도 있기 마련이다.
Attention이란 곡이 좋다는 건 인정하지만 그것이 과연 공정하게 선정된 것인지 의문을 품는 이들이 보였다.
-다른 작곡가들은 이용당한 거 아닌가?? 누가 봐도 짜고 치는 거잖아;
-100퍼 미리 만들어놨음
-컨셉도 자기네가 정하니까 애초에 유리한 싸움이잖아. 눈 가리고 아웅임
곡이 너무 좋아서 생긴 의문이었다.
오랫동안 준비한 것처럼 좋은 퀄리티에 일부러 ‘미리 내정해 놓고 다른 작곡가들 이용한 거 아니냐’ 하는 글들이 드문드문 보였다.
선우주가 ‘부담 돼서 못하겠다’고 한 것도 연기라고 하면서.
정말 의문을 품는 이들도 있지만 대체로 공격적인 성향을 보이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나중에 꽤 시끌시끌할 수도 있겠네.’
하지만 그리 큰 걱정은 들지 않았다.
자신이 아이돌 생활을 하면서 도움이 되었던 팁들을 전수해 준 이가 뉴블랙에 있었으니까.
미리 예상하고 준비를 해둔 게 있을 터였다.
아니나 다를까.
‘선우주 작곡 천재ㅠㅠㅠ’이라는 글에 하트를 눌러 주고 있던 원조 졸개의 앞에 미튜브 알림이 떴다.
[미스터 프로듀서 - ‘Attention’ 작업기 비하인드]
방송 말미에 예고했던 ‘Attention’의 작업기 영상이었다.
그리고, 무심결에 알림을 누른 한태현은 큰 웃음을 터뜨렸다.
“흐하하하!”
“왜 그래? 태현아. 뭐 웃긴 거 있어?”
“이거 보세요. 이거… 흐핫.”
이내 TJ 엔터의 프로듀싱 팀 직원들도 웃음에 동참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영상이었다.
* * *
같은 시각.
4대 기획사인 KM 엔터의 대표이사 허강민은 당황했다.
“흐하하하!”
왜들 저러지?
비하인드 영상을 본 회사 직원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몇 시간 전, 미스터 프로듀서의 본방송이 끝나고 뜬 자막에 그는 몹시 흥분했다.
‘작곡 작업기가 뜬다고…?’
Attention이란 곡을 비롯해 줄줄이 타이틀을 히트 친 작곡가의 실제 모습을 감상할 수 있는 기회였다.
그랬기에 기획과 관련된 모든 부서에 메시지를 전했다.
-[필독] 오늘 미프 작곡 비하인드 영상 올라오면 꼭 감상할 것!!
다른 회사 작곡가가 어떤 식으로 일을 하는지 파악하라는 의미에서 준 업무였는데.
어째 다들 폭소하고 있었다.
진위를 파악하기 위해 그도 영상을 재생했다.
“……?”
허강민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생각보다 멀쩡한데?’
특별할 게 없는 영상이었다.
피곤한 얼굴의 나상윤 작곡가 곁에 후드티를 뒤집어 쓴 우주가 앉더니 곡을 뚠딴뚠딴 만든다.
시간이 빨리감기가 되며 작업실 시계가 새벽 1시를 가리킬 때.
[우주야. 나 잠깐 좀 밖에…….]
[안 돼요.]
칼같이 거절당하는 누군가의 모습과 함께 붓글씨로 쓴 듯한 자막이 떠올랐다.
-때는 뉴블랙 3년.
-새벽 1시, 나상윤이 물러나길 요청하였으나 윤허하지 아니하다
그 뒤로 고통 받는 누군가의 모습이 웃음이 나왔다.
마치 유명한 조선시대의 일화가 떠올랐다.
‘전하, 소인 늙어서 은퇴 소취합니다’ 하는 황희에게 ‘더 일하시구려’ 하던 세종대왕의 일화.
무수한 은퇴요청을 하다가 결국 늙어 죽은 황희의 일화였다.
“흐하하.”
허강민이 웃으며 영상을 감상했다.
어떤 식으로 Attention이란 곡이 즉흥적으로 탄생하게 된 것인지 상세히 보여 주는 한 편.
[우주야. 나 편의점에 좀….]
[안 돼요.]
그야말로 나상윤 작곡가의 수난기였다.
처음에는 작게 웃었는데, 그 내용이 심화될수록 웃음이 터져 나왔다.
대하사극의 BGM과 함께 어김없이 흘러나오는 붓글씨 자막.
-새벽 1시30분, 허기를 느껴 퇴청을 요청하자 마늘 족발을 주문해 주다
-새벽 2시, 손 씻기를 위해 화장실 방문을 요청하자 물티슈를 건네주다
-새벽 2시 40분, 나상윤이 사직을 청하나 허락지 않고 공동작곡으로 임명하다
-새벽 3시, 수면을 이유로 단독작곡을 청하나 듣지 아니하다
-새벽 4시 30분, 연로함을 이유로 잠을 청하자 리코더로 잠을 깨우다
영상이 흐를 때마다 급속도로 초췌해지는 작곡가의 얼굴에 웃음이 흘러나왔다.
그렇게 다음 날 오전까지 이어진 작업 영상을 보며 허강민 대표는 우주의 곡 작업에 얽힌 비밀을 깨달았다.
‘그냥 에밀레종이었구나.’
작곡가의 ‘작밀레… 작밀레…’ 하며 우는 소리가 영상에서 들려오는 듯했다.
허강민 대표가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사람을 갈아야…….”
“대표님…?”
흠칫한 직원들이 간담이 서늘한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볼 때.
“내가 깨달음을 얻었어.”
“아뇨. 그거 아니에요. 우리한테는 우주가 없다고요.”
“그럼 돈을 많이 주고 갈아…….”
“아니라니까요.”
자꾸만 잘못된 길로 빠져들려고 하는 대표이사를 다급하게 붙잡는 작곡가들이었다.
* * *
마침내 일요일.
3일차 콘서트 리허설을 끝낸 우리가 환호했다.
“막콘이다아아!”
“막콘! 막콘!”
“오늘 공연하면 드디어 끝난드아아아!”
“진짜. 우리 오늘 막콘… 막콘?”
잠시 해방감에 젖어들었다가 현실을 깨달았다.
“뭐야. 생각해 보니까 그럼 오늘이 마지막이네?”
“마지막이네요.”
서로를 멀뚱멀뚱 바라보던 우리가 이내 통곡했다.
“안 돼애애!”
“저도 안 돼여. 아직 보내 줄 수 없다구여. 이 체조…….”
“체조야……!”
“왜 오늘이 마지막인데… 왜…….”
서로를 붙잡고 으허엉 하는 우리의 모습에 지켜보던 석환 형과 매니저 형들이 혀를 찼다.
“하나만 해라. 하나만. 끝나서 좋아하든지, 아쉬워하든지.”
“둘 다인 걸 어떡해. 형도 콘서트 해 봐.”
석환 형이 웃으며 타박했다.
“그나저나 왜 이렇게 오늘따라 감정이 롤러코스터를 타?”
“마지막 날이라 그런가 봐.”
시원섭섭한 기분이었다.
몸이 힘들어서 얼른 끝내고 싶은데, 또 마음은 여기서 천년만년 콘서트만 하고 싶은.
올해 리모델링 공사 들어가면 2018년 여름이나 돼야 다시 열린다고 들었다.
이제 이곳을 앞으로 2년 정도 못 온다고 생각하니 너무 아쉽다.
“후우…….”
3일차라서 그런 걸까.
스트레칭으로 몸을 이완시키는 한편, 머릿속으로는 계속해서 콘서트의 모든 순간을 이미지 트레이닝했다.
마지막인 만큼 오늘은 모든 게 완벽해야 했다.
“연습생들은여? 대기실에 안 온대여?”
옆에 붙어 스트레칭을 하던 막내의 물음에 석환 형이 답했다.
“응. 부담된다고.”
“와도 되는데.”
“선배님들 공연에 혹시라도 방해되면 어떡하냐고, 오기 좀 그렇대.”
참 기특한 우리 집 꼬꼬마들이다.
놀러오면 이런저런 대기실 풍경도 보여 주고 싶었는데, 우리 공연에 방해될까 봐 안 온다니.
끝나고 찾아뵙겠다는 이야기에 리혁이가 눈을 슥 흘기며 말했다.
“참, 누구랑은 다르게 애들이 생각이 깊은 것 같아요. 한눈판 사이에 남의 도시락을 보쌈해 가는 애랑 다르게.”
“음? 누가 철 없었어여? 본인 얘기?”
“…너라고. 너!”
“에휴, 저처럼 어른스러운 막내가 어디 있다고 그래여~”
동의를 구하듯 바라보는 막내에게 우리가 고개를 저었다.
“어른스럽단 말을 듣고 싶다면 그 ‘여’ 자부터 어떻게 좀…….”
“이제 성인 되면 금지야. 지호.”
“그런데 이건 말투가 중요한 게 아니라 평상시 행동이 더 중요한 거 아닐까?”
“아, 비주 형!”
막내의 뼈를 때리는 비주의 발언에 우리가 웃음을 터뜨렸다.
그렇게 긴장을 푸는 한편.
공연을 코앞에 두고 의상과 메이크업을 점검한 우리가 모였다.
“자. 오늘 공연까지 완벽하게 마무리하고.”
“끝나고 고기 먹어요. 우리.”
“부모님도 뵙고요.”
“고기 먹으면서 그거 봐여. 미프.”
마지막 말에 우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미프의 3화가 어떤 식으로 방송에 나왔는지는 우리도 아직 모르는 상태였다.
마지막 콘을 완벽하게 끝내고 싶기 때문이었다.
기분이 업 되든 나빠지든, 어느 쪽이든 심리적인 면에서 영향을 줄 요소를 철저히 배제하고 싶었다.
석환 형이 우리가 안 볼 때마다 싱글벙글한 표정을 짓는 걸로 보아 엄청 좋은 일이 있었던 것 같긴 한데.
일단 동생들과 나는 핸드폰을 비행기 모드에 둔 상태였다.
“마지막이니까 완벽하게 해냅시다.”
밴드를 비롯해 댄서들과 하이파이브까지 마치고, 시끌벅적한 공연장의 배경음악이 들리는 백스테이지에서.
리프트에 선 동생들과 손을 맞잡았다.
“아낀다.”
“저두여.”
“저도.”
동생들이 손을 잡은 채로 웃었다.
낙화의 멘트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전보다 한층 더 가까워진 느낌도 들었다.
조용히 웃자 다들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다 함께 ‘소고기, 소고기, 소고기’를 되뇌며 에너지를 충전한 후.
“와아아아아아아!”
공연을 시작했다.
확실히 3일차라 그런지 팬들도 1일차와 2일차보다 함성이 더 컸다.
객석에서 몰려오는 열기에 땀을 뻘뻘 흘리고 정신을 못 차릴 만큼 공연 분위기가 뜨거웠다.
함성에 업된 덕에 첫 무대의 Nine을 더 완벽하게 소화했다.
“1일차나 2일차에 왔었던 분들, 손~!”
-와아아아!
“다들 알고 계시죠? 오늘 뭐가 나올지 알아도 모르는 것처럼, 마치 처음 보는 것처럼 환호해 주셔야 돼요!”
“자, 그럼 환호 한 번 해 보실게요! 우와아아!”
-와아아아아!
1일차와 2일차를 거치며 멘트도 한층 더 자연스러워졌다.
파도타기도 해 보고.
다섯 가지 스테이지에서 동생들도 저마다의 색을 또렷하게 드러냈다.
“와아아아아아아아!”
한 곡 한 곡 끝날 때마다 환호가 거세졌다.
콘서트의 신이 있다면 코를 쓱 훔치며 ‘훌륭하군’ 하며 감탄할 듯한 분위기였다.
신곡인 낙화를 소개할 때는 응원법까지 흘러나오며 우리의 춤을 더욱 멋지게 완성시켜 주었다.
퍼레이드라는 컨셉에 맞추어 오늘이 끝이라는 각오로 축제 분위기를 자아낼 때.
“……?”
앵콜 첫 무대를 끝낸 우리 앞에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이건 뭐야.
동생들이 당황한 눈으로 동시에 내게 고개를 돌리는 가운데 팬들의 환호가 쏟아졌다.
-뭐예요. 이게…?
비주의 물음이 공연장에 울려 퍼지는 가운데 전광판에 처음 보는 VCR이 흘러나왔다.
2013년 연말 평가라는 현수막 아래 연습생들이 인사를 하고 있었다.
[하나, 둘, 셋, 안녕하세요! 뉴블랙입니다!]
‘으아앗, 나 왤케 촌스러워’ 하는 막내의 중얼거림에 객석에서 웃음이 흘러나오는 한편.
우리는 금세 영상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체조경기장 콘서트를 기념하기 위해 수플레들이 만들어 준 동영상인 듯했다.
감동적인 BGM으로 시작하는 영상에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
[저희 수플레도 앞으로 열심히 노력해서, 지금 받는 사랑에 보답하도록…….]
올라가려던 입꼬리가 파르르 떨렸다.
[대길이? 불알 달린 놈이여.]
[느아아아…!]
팬메이드 영상이라고 생각했는데.
-흐하하하하!
……어쩌면 그냥 자기들이 보고 싶어서 만든 영상일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