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411화
웃음 가득한 모습들도 잠시.
“…….”
다행히 얼마 안 가 영상의 톤이 바뀌었다. 벙 찐 표정의 우리에게 ‘놀랬지?’ 하며 웃듯이.
시간 순으로 우리가 지나온 여정을 비추기 시작했다.
음악방송에서 1위를 거머쥐었던 Something.
데뷔 쇼케이스 때, 음향 문제로 쌩라이브로 진행한 불꽃놀이 무대.
[네, 저희가 들려드릴 노래 제목은 ‘밤바다’입니다.]
라디오 프로에 출연해서 선보였던 밤바다의 무대도 나오고.
[아, 아… 안녕하세요! 뉴블랙입니다!]
첫 팬사인회 영상도 흘러나왔다.
팬들 앞에서 쭈뼛쭈뼛한 우리 모습이 뭔가 민망하고 부끄럽다.
[가까이서 응원해 주시지 않아도 괜찮아요. 멀리서도 괜찮으니까, 그저 편한 마음으로 응원해주셨으면 해요. 그러면 저희가 한눈팔지 않고 열심히 노력해서 좋은 결과 보여 드릴게요.]
그렇게 수플레라는 팬덤 이름이 정해지고.
케이블 음악방송 1위 후보에 오른 우리 모습도 흘러나왔다.
[네! 1위는 조애나 씨의 ‘Starlight’입니다! 축하드려요!]
선배 가수를 축하해 주고는 1위 후보에 올랐다고 방방 뛰는 우리의 모습이 흘러나왔다.
“흐하하하핫!”
이내 등장한 펭귄탈 5인조가 명동에서 춤추는 광경에 수플레들과 함께 웃음을 터뜨렸다.
이건 진짜 까먹고 있었는데.
다큐멘터리 스크린을 뚫고 등장한 것 같은 황제펭귄의 춤사위에 내가 민망한 웃음을 흘렸다.
[굴려굴려! 주사위!]
[와아아아!]
우리가 처음으로 대중들에게 이름을 각인시켰던 주세한 추석 특집 내용도 흘러나왔다.
전설의 대길이가 또 한 번 등장해서 웃음바다가 된 것도 잠시.
마스커레이드 활동을 하면서 망고 차트 어워드의 신인상을 수상하는 장면과 함께.
[형! 우리가 1위에요!]
[…어, 진짜네.]
멍 때리고 있다가 음악방송 1위에 화들짝 놀라는 내 모습이 보였다.
“되게 바보 같네.”
“흐어?! 뭐야. 지금 제 생각 읽은 거예여?”
“…….”
사람들의 웃음소리 속에서 막내의 옆구리를 쿡 찌를 뿐이었다.
그렇게 시간 순으로 흘러가는 영상을 감상하며 묘한 감흥에 잠겼다.
연말평가 때부터 계산해도 아직 2년 반 정도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참 많은 일이 벌어진 것 같다.
파티시에 코리아 대만 촬영.
PBS의 경연 프로그램, 명곡 발굴단.
돌림픽.
[축하드립니다! 뉴블랙의 바람꽃!]
작년 이맘때쯤 나와서 연간 1위를 거머쥐었던 바람꽃.
나와 중현이가 출연해서 예능에서 큰 임팩트를 남겼던 ‘사나이가 간다’ 속 장면도 나오고.
대망의 첫 번째 콘서트도 등장했다.
[첫 콘서트까지 오는 데 정말 오랜 시간이 걸린 거 같아요.]
[여기까지 오는 데 다 합쳐서 20년이란 시간이 걸렸네요. 이 순간을 위해 그만큼 걸어온 거 같아요.]
작년 여름, 핸드볼 경기장을 가득 채운 관객들의 열기를 조용히 감상했다.
가끔은 말이 필요 없을 때도 있다.
이어서 Nine과 연말 무대들이 이어졌다.
이야기의 끝을 장식하듯 망고 차트 어워드에서 올해의 노래상을 수상한 우리 모습이 나왔다.
[2015 망고 차트 어워드. 그 영예로운, 올해의 노래상의 주인공은?]
[축하드립니다. 뉴블랙의 바람꽃!]
대상 발표에 벌떡 일어난 우리가 얼싸안고 있었다.
그때 당시 수플레들의 환호와 더해 이곳에서 보고 있던 수플레들도 같이 환호했다.
내 어깨에 슥 손이 올라와 돌아보니 비주가 웃고 있었다.
나도 웃으며 어깨동무하듯 손을 얹었다.
그렇게 다 같이 이어진 채로 대상 수상 장면과 연말 무대에서 Nine의 안무를 추는 우리를 바라보았다.
금세 지금 내 고향이 나오면서 감동이 깨지긴 했지만.
[음머어어-]
“아이, 정말…….”
울려고 하다가 눈물이 들어갔다는 듯 막내가 투정 부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옆에서 울려다가 웃는 리혁이의 모습과 함께.
스페셜 앨범 활동과 함께 전국적으로 소극장 투어를 위해 돌아다녔던 장면들이 흘러나왔다.
최근 활동까지 마무리 된 후.
“아…….”
이거 나올 줄 알았다.
제주도 리얼리티에서 내가 동생들에 대해 ‘얘는 이렇고요’ 하는 장면이 마무리를 장식했다.
코흘리개들이 눈물범벅이 되어서 ‘혀어엉!’ 하고 그때 당시의 나도 분위기에 취해서 ‘얘들아!’ 하며 얼싸안는.
그리고, 인터뷰에서 따온 우리의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더 높게 올라가고 싶어요.」
「…저희를 좋아했다는 이야기를 나중에 누군가에게 예쁜 추억으로 들려줄 수 있도록.」
「저희 음악을 듣고… 행복? 행복해지셨으면 좋겠어여.」
「사랑합니다.」
「언제나 최선을 다할게요.」
4분짜리 영상의 마지막에 잔잔한 글귀가 흘러나왔다.
가장 어두운 이름으로
가장 환하게 빛나는 너희에게
가슴 뭉클한 문구에 동생들과 서로를 바라보았다.
“…….”
그나저나 다들 꼴이 말이 아니다.
지호는 이미 코를 슥슥 훔치고 있고, 리혁이는 흐물흐물한 토마토처럼 고개를 젖히고 있다.
비주는 눈을 비비며 웃고 있고, 중현이도…….
“…….”
양파 썰 때도 웃으며 도마를 써는 애가 이렇게 눈물을 훔치는 건 처음 본다.
나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앞이 살짝 뿌연 걸 보면…….
그런 식으로 서로의 못난 얼굴을 보며 나만 그런 게 아니구나 하며 안도하고 있을 때.
객석에서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말하는 대로 이뤄진다면
이 세상 모든 계절이
우리의 시간이길 바래요
우리가 팬송으로 만든 별빛이었다.
만이천 명의 관객들이 함께 불러주는 노래에 귀를 기울이며 한 발짝 내디뎠다.
팬들이 들고 있는 슬로건의 문구를 보기 위해서였다.
찬란한 봄의 끝에서
다음 봄을 기약하며
며칠 전 우리가 공개한 낙화에 대해 자신들의 대답을 들려주는 듯했다.
저거 봤냐는 듯 잔뜩 신이 난 동생들의 눈동자가 내게 향했다.
‘봤어요? 봤어?’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객석에 가득한 슬로건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러곤 입모양으로 감사 인사를 전했다.
‘고마워요.’
정말이지 올해 최고의 선물이었다.
* * *
수플레들이 불러준 별빛 떼창이 끝난 후.
-수플레에에에!
-뭐야. 이거 뭐야? 어떻게 이런 걸 준비했대여~?
싱글벙글한 막내가 방정맞게 웃으며 기쁨의 춤을 선보였다.
우리도 잠시 동참하고는 객석을 향해 말했다.
“깜짝 놀랐어요. 처음에.”
-저도요.
비주가 말했다.
-막콘이라고 오늘 정말 완벽하게 해야지, 하고 순서를 다 암기하고 있었거든요. 근데 갑자기…….
-화면에 모르는 영상이 나와서 깜짝 놀랐어요.
-이거 여러분이 만든 거 맞아요?
중현이의 물음에 그렇다는 수플레들의 화답이 돌아왔다.
동생들과 시선을 교환하고는 입을 열었다.
“영상을 정말 잘 만들어 주셔서 감동했어요. 개인적으로 따로 모셔 보고 싶을 만큼…….”
눈을 번뜩이는 우리의 모습에 수플레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영상을 만든 우리 수플레 님! 지금 보고 계시다면 저희 회사로 찾아와 주세여.
-레몬 엔터 최고의 고연봉 부서, 영상제작팀이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유쾌하게 웃는 소리들이 돌아왔다.
화기애애하고 왁자지껄한 분위기에 웃으며 마이크를 잡았다.
“물론, 당연히 농담이고요. 정말 이렇게 멋진 영상 만들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실장님, 저희 끝나고 이 영상 좀…….”
-주신다고 하네여.
“정말 두고두고 간직할게요.”
현장 스탭에게 건네받은 슬로건을 보며 물었다.
“근데 문구 진짜 예쁘다. 이런 건 어떻게 생각하시는 거예요?”
-너무 예뻐요. 정말.
이런 것도 투표해서 정하고 그런 건가?
다 같이 머리에 띠를 두르고는 ‘애들 감동시킬 문구 만들어요!’ 하는 빵들의 모습이 상상됐다.
그런 상상을 하며 동생들에게 시선을 돌렸다.
“자, 이제 마지막으로 인사를 드릴…….”
-아아아아아아!
“헤어지기 싫죠?”
-네에에에!
“기왕 이렇게 된 거 우리 여기서 텐트 치고 같이 살까요? 뉴블랙 캠프 만들고?”
크게 화답하는 팬들에게 내가 슬픈 미소를 지었다.
“근데 여기서 우리 9월까지밖에 못 살아요.”
-경기장이 공사 들어가거든여.
크게 웃는 팬들을 둘러보고는 동생들에게 말을 걸었다.
“자, 그럼 마지막의 마지막 인사를 드려볼까요? 누구부터 인사를 해 볼까요?”
-저여!
“네, 우리 막둥이.”
막내가 코밑을 슥 비비며 마이크를 잡았다.
-진짜 여기 오게 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저는 제가 이런 곳에서 콘서트를 할 거라곤 상상도 못했어여. 14년도에 망고 차트 어워드 때 와서 ‘와, 체조 짱 커…’ 이랬는데.
천장부터 객석까지 찬찬히 훑던 막내가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제가 여기서 콘서트를 다 해 보네여. 정말로.
화답해 주는 수플레들에게 지호가 고개를 꾸벅 숙였다.
-정말 감사합니다. 수플레들도 너무 감사하고, 스탭 분들, 댄서 분들… 무엇보다 우리 형들.
“형들……?”
눈을 빛내며 기대하는 우리의 모습에 지호가 객석으로 시선을 돌렸다.
-팬들이랑 형들 보고 있으면 제가 더 좋은, 더 나은 사람이 돼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느낌…?
“와아아아아!”
-앞으로도 더 나은 지호가 되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팬분들과 함께 우리가 ‘막내 철들었다!’ 하면서 환호했다.
그러곤 한마디 남았다는 듯 막내가 객석 2층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오늘 가족들도 왔는데… 아빠가 그랬거든여. ‘야, 지호야. 내가 콘서트는 잘 모르는데 만이천 명이 그렇게 많은 거냐?’ 라고.
지호가 개구쟁이처럼 웃으며 객석을 가리켰다.
수플레들이 함성과 함께 응원봉을 흔들었다.
-보셨져? 이게 다 저희 팬분들이에여. 그러니까 앞으로 저한테 더 잘하세여~
하여간 못 말리겠다. 우리 막내.
지호에 이어서 다음 순서는 옐로우 스테이지를 맡았던 비주였다.
-여러부우운…….
갑자기 멘트를 하려니 눈이 그렁그렁해지는 비주였다.
-정말 감사해요. 정말로.
-와아아아아!
-아까 지호가 말한 것처럼 저희한테 체조경기장은 정말 의미가 큰 곳이에요. 모두의 소원이기도 했고.
비주가 눈시울을 붉히며 조곤조곤 말했다.
-제가… 제가 진짜 열심히 할게요. 앞으로 다 같이 뼈가 부서질 각오로. 아니, 뼈가 가루가 될 각오로… 그만큼 정말 감사해요.
우리 메인댄서가 뼈를 거의 돈가스 소스에 들어가는 깨처럼 갈아 버리겠다는 포부를 밝힌 후.
중현이가 등판했다.
-중현이는 오늘 일을 잊지 않을 것입니다.
센스 있는 멘트에 웃음이 터져 나왔다.
-오늘 콘서트 재미있으셨나요?
-네에에에!
-저는 여러분이 재미있게 보셨다는 사실에 행복해요.
중현이가 웃으며 말했다.
-큰 공연을 준비하게 되면 그런 생각을 해요. 준비하는 데는 몇 달인데 무대에선 3분이구나 하고.
우리도 공감했다.
석 달 가까이 만들고 연습한 노래가 음악방송에서 리허설 포함 총 10분 하고 끝나니까.
-그런데 이렇게 여러분이 좋아해 주시면, 무대를 하는 그 3분 동안에도 정말 보람이 커요.
환호로 답하는 팬들에게 중현이가 말했다.
-여러분이 환호해 주신 3분, 3분이 모여 올해 가장 행복했던 세 시간이 됐습니다. 정말 감사해요.
-와아아아!
그 뒤로 길게 이어진 인사가 끝나고 메인보컬이 달달 떨리는 손으로 마이크를 잡았다.
-어… 확실히 콘서트는 하면 할수록 덜 긴장되네요.
“……?”
-아, 그렇게 비웃지들 마요. 이거 손은 힘들어서 떨리는 거라니까?
헛기침을 하던 리혁이가 주섬주섬 긴 종이를 꺼냈다.
그러곤 당황했다.
-어… 이거 준비한 건데……?
땀에 푹 절어서 잉크가 번져 있는 편지지에 다들 웃음을 터뜨렸다.
벙 쪄서 당황하는 리혁이의 모습이 콘서트 DVD를 찍고 있던 카메라에 원샷으로 잡혔다.
솜사탕을 씻어 먹으려다가 실패한 너구리의 표정이었다.
-그럼 떠오르는 대로 말할게요. 우선 1조 1항부터…….
거의 5분 가까운 시간 동안 역대급 수상소감 길이의 감사 인사가 흘러나왔다.
마지막으로 리혁이가 소심한 하트를 그리며 말했다.
-…모두 사랑합니다. 제가 많이 좋아하고 아껴요.
5분 동안 ‘흐아아암아앗!’ 하는 지루한 함성을 보내던 수플레들이 큰 환호를 쏟아냈다.
당사자만 왜 소감보다 하트를 더 좋아하는지 이해를 못할 뿐.
그렇게 동생들의 차례가 끝나고 마지막인 내 순서가 왔다.
“에고, 체조경기장에 온 소감을 길게 준비해 놨는데… 동생들이 이미 감동적인 걸 다 해 버렸네요. 그죠?”
환하게 웃는 수플레들에게 내가 말했다.
“다시 한번, 리더로서 뉴블랙을 대표해서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려요. 정말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저 개인적으로도 정말 의미가 큰 공연이고, 또… 이 부분은 낙화를 설명할 때 말씀 드렸으니 넘어가도 되겠죠?”
-아아아아아!
다시 듣겠다는 듯 아우성을 치는 졸개들과 팬들을 향해 내가 웃으며 말했다.
“네, 우리 헤어지지 말아요.”
-와아아아아!
“여기서 약속했으니까 이제 헤어지는 거 없기예요.”
-약속! 약속!
군인들처럼 우렁차게 약속을 연호하며 달봉이를 흔드는 모습에 잠시 움찔했다.
“불과 2년 남짓한 시간 동안 정말 마법 같은 일들이 벌어진 것 같아요.”
동생들을 둘러보았다.
“데뷔 때만 해도 아무도 몰랐던 저희 다섯을 이렇게 특별하게 만들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여러분이 지금의 저희를 만들어 주셨어요. 그리고…….”
객석을 향해 웃으며 말했다.
“항상 옆에 있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고마워요!
그 뒤로 길게 소감을 말했지만, 구구절절 말하지 않아도 무슨 말을 하는지 안다는 반응이 돌아왔다.
한마디, 한마디 할 때마다 격하게 반겨 주는 팬들에게 내가 작별인사를 전했다.
“이제 이번 앨범으로 Five Colors 5부작의 마지막을 장식하게 되었는데요. 마무리를 짓는 의미에서 이제 마지막 곡을 불러 볼까 합니다.”
-와아아아아아!
“작별이 새로운 만남으로 이어지듯이, 마무리 곡으로 시작을 다루는 노래를 불러 볼까 해요.”
객석에서 응원봉을 흔들어 주는 수플레들을 향해 다가갔다.
그 동안 잔잔하게 sing along 버전으로 편곡한 노래의 전주가 흘러나왔다.
마지막 곡은 당연히 불꽃놀이였다.
* * *
“끝났다아아!”
“끝!”
“와. 끝났네…….”
백스테이지에서 내려오자마자 동생들과 포옹을 나누었다.
“진짜 고생했다. 얘들아.”
“형도 너무 고생 많았어요. 진짜로.”
“고생했어, 고생했어…….”
서로의 등과 어깨를 두드려 주며 한참 동안 그렇게 서 있었다.
땀내가 진동하고 옷이 땀에 푹 젖어 있어 찝찝했지만, 왠지 모르게 붙어 있고 싶었다.
온몸에 진이 빠진 얼굴로 서로를 향해 웃은 후.
“얘들아, 정말 고생 많았다!”
“고생하셨습니다!”
“수고했어!”
“고생하셨어요!”
우리에게 박수를 쳐 주며 고생했다고 말해 주는 스탭들에게 인사했다.
라이브 밴드, 댄서들과 만나 기념사진도 촬영하고 서로 고생했다며 인사를 나누었다.
그리고 대기실에는 오매불망 우리만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었다.
“할머니이이이!”
“아유! 아유! 땀내 나!”
찰싹 달라붙으려는 내 얼굴을 막으려는 할머니에게 짐짓 서운한 표정을 지었다.
“자꾸 서운하게 그럴 겨? 손주가 이렇게 콘서트도 끝내고 짜잔! 하고 온 건데.”
“어휴우…….”
혀를 끌끌 차던 할머니가 비죽 웃음을 흘렸다.
“고생혔다.”
“잘했지?”
“……얼굴이 왜 이렇게 반쪽이 됐냐. 가진 거라곤 얼굴밖에 없는데 이것까지 상해 버리면.”
“아. 할머니.”
“뭐.”
어쩌라고 하는 얼굴로 바라보는 김덕순 여사에게 내가 주머니를 뒤적거렸다.
그러곤 손가락 하트를 꺼내들었다.
“사랑한다구. 헤헷!”
“어휴, 이놈의 거…….”
그러면서도 등을 토닥토닥해 주며 고생했다고 말해 주는 할머니의 품에 잠시 안겼다.
너무 보고 싶었다.
낙화 무대를 할 때도 내 머릿속에 제일 먼저 떠오른 사람이 바로 할머니였으니까.
“저거들도 얼굴이 반쪽이 됐네.”
저마다 가족들 품에 안겨 투정을 부리거나 웃는 동생들을 보며 웃었다.
“아이구! 중현이! 이 피골이 상접한 거 봐.”
“그러니까 거 뭐시기냐 미스타 프로듀사에서 팔씨름을 1초 안에 못 끝낸 거 아녀.”
“어쩌다 이 여리디 여린 것이…….”
씨름선수 같은 분들이 중현이를 아기새 취급하는 광경은 아직도 적응이 안 되지만 말이다.
어머니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눈이 마주친 리혁이에게 웃어 주고 있을 때.
따악!
등짝이 따가웠다.
“아얏! 왜 갑자기 때려?”
“생각해 보니까 창피해서 그런다. 너 때문에 내가 못 살어.”
“언제는 또 어떻게 잘 살았다고.”
“아주 점까지 찍고 나와 가지고, 백반집에 손님들이 올 때마다 우주선인가 하는 놈팽이를 찾아대는데 내가 민망해서…….”
아. 미프 어제 했지.
그러고 보니 주변 가족들이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요상하다.
힐끔힐끔.
분명 저번 콘서트에 본 얼굴들인데, 어딘가 신기한 생명체를 바라보는 듯한 낯선 시선이라고 할까.
“…….”
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숙소 돌아가자마자 봐야겠다고 생각할 때.
우리가 기다리고 있던 또 다른 손님들도 찾아왔다.
“선배니이임!”
“왔어?”
“저희 콘서트 봤어요!”
우리보다 더 상기된 얼굴로 찾아온 연습생들이었다.
“어땠어? 재미있었어?”
“네!”
연습생들이 병아리들처럼 날개를 파닥파닥하며 삐약거렸다.
“와! 진짜 대박! 저 낙화 보고 막…….”
“선배님 멘트할 때 저 울었어요.”
“콘서트 처음 와보는데 와, 막 옆에서 응원봉이 팔팔팔 흔들리고, 저는 팟팟팟 흔들리고.”
콘서트의 흥분에 젖어 횡설수설하는 이들을 보며 웃었다.
그만큼 공연이 인상 깊었던 모양이었다.
멤버들과 함께 ‘사인해 주세요!’ 하며 티켓을 내미는 연습생들에게 사인을 해 주고 사진을 찍을 때.
“가문의 보배로 간직할 거예요!”
신이 나서 외치는 진후에게 내가 물었다.
이 자리에 있어야 할 사람이 없었다.
“그런데 대표님도 같이 참관 오신다고 하지 않았어?”
“아…….”
“먼저 가신 거야?”
“아뇨. 그건 아니고요.”
연습생들의 안색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끌려가셨는데 그 뒤로 어떻게 되셨는지 모르겠어요.”
“응? 그게 무슨 소리야?”
“그게요…….”
이어지는 연습생들의 설명에 우리가 그만 웃음을 터뜨렸다.
* * *
뉴블랙이 낙화에 대한 코멘트를 할 때.
“크흐흐흡!”
연습생들은 입을 틀어막은 채 눈물을 줄줄 흘리는 중년인을 바라보았다.
‘대표님 우신다.’
‘우리 어떡해?’
‘휴지? 휴지 드려야 되나?’
가방을 뒤적이던 김복수가 조심스럽게 물티슈를 건네주었다.
“고, 고맙구나.”
박규호 대표는 물티슈로 눈가를 콕콕 찍어가며 멤버들의 멘트를 듣고 있었다.
‘그래, 고생 많았다. 얘들아…….’
참으로 멋진 순간이었다.
그와 함께 이 순간을 놓쳐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박규호 대표가 주섬주섬 핸드폰을 꺼내 멘트를 하는 뉴블랙을 동영상으로 담았다.
당연하게도 그것은 현장 시큐리티의 눈에 띄었다.
“선생님.”
“……예?”
“선생님, 핸드폰 내려 주시죠.”
“아… 저는.”
바로 그때.
가까이 다가와 박규호 대표의 얼굴을 발견한 시큐리티의 표정이 굳었다.
뉴블랙을 도촬하던 중년 남자가 굉장히 수상쩍은 표정으로 웃고 있기 때문이었다.
“……잠시 나와 주시죠.”
“예?”
“나와 주시죠.”
“저 말입니까?”
근처에 있던 다른 시큐리티들도 신호를 받고 다가왔다.
어리둥절한 얼굴로 끌려 나가던 박규호 대표가 연습생들에게 애타게 말했다.
“얘들아, 내 몫까지 보거라!”
“엇, 네…….”
연습생들이 눈을 휘둥그레 뜨고 있을 때.
주변에서 벌어지는 소란에 고개를 돌린 수플레들이 당황했다.
‘규호? 규호가 왜 갑자기 떠내려가고 있지?’
시큐에 둘러싸인 반들반들한 뭔가가 끌려가고 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자기 아이돌 콘서트에서 소속사 대표이사가 퇴장을 당하는 요상한 광경을 바라본 후.
‘뭐, 관람에 방해돼서 민원이라도 들어왔나?’
쿨하게 관람을 이어가는 수플레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