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445)화 (445/1,031)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445화

“시트콤?”

“네.”

“이게 제일 나은 거 같아?”

“넹.”

지호가 자신 있게 답하는 동안 우리는 대본을 바라보았다.

<우리 가족은 외계인>.

매주 일요일에 방영된다는 TBC의 주말 시트콤이었다.

지구에 불시착한 외계인 가족이 정체를 숨기고 숨어 살면서 대환장쇼를 벌이는 그런 내용이었다.

“처음 보는 내용이긴 한데 뭔가 익숙한 느낌이 드네요.”

“그러게 말야.”

왠지 모르게 친숙한 느낌을 받으며 대본을 훑어보았다.

내가 연기에 대해서는 잘 몰라서 그런지 앞선 두 대본과 큰 차이점은 모르겠다.

막내가 설명해 주었다.

“셋 다 좋은 대본이긴 한데 앞에 2개가 조금 애매해서 이걸로 골랐어여.”

“애매한 점이 있었어?”

“일단 편의상으로 사극을 1번이라고 하고, 코믹 장르물은 2번이라고 할게여.”

“응응.”

“이 1번이랑 2번의 공통점이 뭔지 알아여?”

우리가 고개를 저었다.

지호가 진지한 표정으로 두 대본을 가리켰다.

“둘 다 잘못 걸리면 겁나게 피 보는 배역이에여. 일단 사극 배역이랑 장르물 배역이랑 둘 다 감초 같은 역할이잖아여.”

“응, 맞아.”

“주인공 일행이 암흑가에 갔을 때 만나고, 평소에 카페 사장일 때 알바생으로 만나고.”

지호가 대본을 톡톡 두드렸다.

“이런 배역들이 진짜 위험해여. 주연한테 안 밀리고 티키타카를 잘해야 매력이 사는 배역들인데, 잘못하면 바로 밑천이 털리거든여.”

“아…….”

무슨 뜻인지 이해했다.

찬조 출연 수준의 분량이기는 하나 대사의 합을 맞추는 상대 배역이 주연들이었다.

그때 중현이가 물었다.

“음? 주연 배우랑 같은 씬에 나오면 좋은 거 아니야? 더 중요하게 나올 수 있는 거잖아.”

“아니져. 이게 쉽게 말하면 그거예여. 우주 형 클로즈업 한 번 됐다가, 주연 배우 클로즈업 한 번 됐다가.”

“아.”

중현이도 바로 이해했다는 표정을 지었다.

막내가 말을 이었다.

“대본이나 배역 모두 좋은 거긴 한데, 솔직히 말해서 위험 부담이 크다고 생각해여.”

지호가 날 바라보며 진지하게 말했다.

“제가 생각하는 형 연기력이면 충분히 할 수 있을 것 같긴 한데… 첫 드라마기도 하고.”

“맞네. 큰 위험 부담은 감수할 필요가 없지.”

“네, 둘 다 리스크가 장난 아닌 드라마들이에여.”

막내가 사극을 가리켰다.

“뭣보다 사극은 세트장이 겁나 멀어여. 거기다 한여름이라서 형 이거 촬영 들어가면 흙오이처럼 쩔어서 올 거고….”

우리 배우 지망생이 하나하나 설명해 주었다.

“그리고 이거 캐릭터 구축도 장난 아니게 어려워여. 사극에 어울리는 말투부터 시작해서… 아무튼 겁나 빡세다는 것만 알면 돼여.”

그러고는 2번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것도 마찬가지로 애로사항이 많아여. 그냥 장르물도 어려운데, 코믹 장르물이니까.”

“큰 차이가 있어?”

“엄청 어려워여. 연기 잘하는 배우들도 자칫하면 오버한다고 말 나오는 게 코믹 장르물이라서.”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적당히 연기하는 게 보통 일이 아니라고 말해 주는 막내였다.

“가장 중요한 건 작가님이… 쪽대본으로 유명하신 분이라서.”

“스케줄 꼬이기 쉽겠네.”

쪽대본.

마감에 쫓긴 드라마 작가들이 한두 쪽씩 ‘일단 이거라도 먼저 찍어라!’ 하며 보내 주는 게 쪽대본이었다.

물론 쪽대본이라고 드라마 퀄리티가 안 좋아지는 건 아니지만, 스케줄에서 피를 볼 가능성이 높았다.

-저기… 저희는 언제 찍나요?

-아! 몰라요! 저희도 대본 나와야지 알죠!

…같은 상황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그런 의미에서 이 ‘외계인’은 부담이 적어여. 촬영 기간이 길긴 해도 주 1회 방영이니까.”

“회당 40~50분이네.”

“이게 20분짜리를 두 번 방영하는 거라고 보면 돼여.”

게다가 내가 지원할 배역은 분량이 많지 않아서 촬영하는 데 오랜 시간을 들일 필요도 없었다.

“연기 난이도도 적당하고. 제가 봤을 때는 형이 진짜 잘할 수 있는 배역이에여.”

“그래?”

“일단 오디션을 통과해야 하잖아여.”

지호가 연기의 세계에 대해 말해 주었다.

“오디션에서 ‘다른 배우보다 제가 이 배역에 플러스 알파가 있습니다!’ 해야 하잖아여? 간절함이든 특기든 간에 연기력이 검증 안 된 형을 뽑아야 하는 이유가 있어야 되는데.”

<우리 가족은 외계인>을 가리키며 막내가 말했다.

“저는 이 배역에 형의 특기를 쓸 수 있을 것 같아여.”

다시 한번 대본을 받아들여 펼쳤다.

내게 들어온 배역은 바로 ‘요원 K’였다.

외계인들을 관리하는 비밀정보기관에서 외계인 가족을 감시하러 파견 나온 요원이었다.

그들을 관리해 주고, 그들에 대한 보고서를 쓰고.

지호의 말마따나 내가 이 배역에서 남들보다 잘할 수 있는 부분들이 하나씩 보였다.

“몸 쓰는 장면 있네. 이런 건 자신 있지.”

특수요원이 보여 줄 법한 액션을 할 수 있고.

“다른 신분으로 위장하는 것도 자신 있고. 필요할 때 속임수로 쓰는 언변도 자신 있고.”

“합법적으로 온갖 나쁜 짓 하는 배역이네요. 어울려요.”

엄지를 들어주는 중현이에게 나도 웃으며 엄지를 들어 주었다.

그 동안 대본을 읽던 비주가 말했다.

“진짜 잘 어울릴 것 같긴 해요. 여기도 굉장히 유능한 설정이에요.”

“오오.”

“설명에도 써 있어요. ‘너무 유능해서 쓸데없는 것까지 잘하는 캐릭터.’”

“……!”

그 말에 동생들이 손뼉을 쳤다.

“딱이네! 팬싸 때 마임으로 완벽 드립을 못하게 만든 사람이잖아요.”

“저는 우주 형이 자다가 굴러 떨어지면서 낙법으로 착지하는 것도 봤어여.”

“나는 엑소시스트 자세로 계단 내려가는 거 봄.”

중현이의 말에 움찔했다.

몰래 새벽에 연습한 걸 또 어떻게 봤대.

다음에는 장소를 좀 옮겨야겠다는 생각을 하는 한편, 비주에게 돌려받은 대본을 손에 쥐었다.

“…….”

뭘 할지 정해서 그런지 마음이 편하다.

연기를 해 보고 싶다고 막연하게 생각하고 있긴 했지만, 어떤 게 좋은 대본인지 몰라서 갈팡질팡하고 있던 터였다.

이렇게 결정을 도와준 막내에게 고맙다고 말할 때였다.

“형!”

막내가 엣헴 하며 웃었다.

“저 때문에 대본 잘 고른 거 같져? 막 고맙고, 기특하고 대견하고 그러져? 얼른 고맙다고 말해여.”

“……고마워.”

“에이~ 뭐 어려운 것도 아닌데.”

자기가 맏형이라도 된 것처럼 내 머리를 슥슥 쓰다듬어 주는 모습에 웃었다.

그래도 평소와는 다르게 대견해 보이곤 했다.

자기 분야에 대해서 이야기가 나와서 그런지 전문가 느낌도 나고. 어딘가 어른스러웠다.

그런 의미에서 중요한 이야기를 했다.

“지호야.”

“넹.”

“이제 연기 얘기할 때는 여 금지야.”

동생들이 박수를 치며 웃음을 터뜨렸다.

쳇 하며 투덜대는 막내에게 내가 웃으며 말했다.

“너무 진지하고 좋은 조언이라서 몰입하려고 하는데, 제 말이 들려용~? 이러고 있으니까.”

“알았어여. 에잉….”

다들 웃는 동안 대본을 다시 바라보았다.

시트콤이라.

처음 해 보는 연기 도전에 살짝 떨리면서도 설레는 느낌도 들고. 다른 한편으론 걱정도 된다.

“근데…….”

동시에 나를 바라보는 동생들에게 말했다.

“내가 이걸 잘할 수 있을까?”

“연기여?”

“이거 시트콤이잖아. 연기로 웃겨야 하는 건데…….”

“…….”

눈을 깜빡깜빡하는 녀석들.

중현이와 비주가 ‘어어…’ 하며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을 때, 리혁이가 내 어깨에 손을 얹었다.

“정말.”

정말?

“세상에서 제일 쓸데없는 걱정이에요.”

“…….”

“맞아여.”

지호가 말했다.

“형은 존재 자체가 웃겨여. 제가 TV에 나오면 울 누나들이 ‘애기다 애기’ 하면서 쯧쯧하다가 형만 나오면 웃는다니까여.”

“왜…?”

은근히 기대하고 있는 나에게 지호가 고개를 저었다.

“그냥 웃겨서여.”

“그렇구나…….”

나 대체 어떤 이미지로 방송에 나가고 있는 거지.

내가 아련하게 웃는 모습에 동생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리혁이가 나를 툭 치며 말했다.

“걱정 붙들어 매요. 잘할 것 같으니까.”

“그래, 잘해야지.”

“기왕이면 엄청 잘해서 쟤 좀 충격 받게 하고요. 쟤도 이제 추격당하는 기분을 느껴 봐야지.”

리혁이에게 눈을 흘기던 막내가 내게 웃어 보였다.

“그럼 일단 연습 조금 해 볼까여? 이것도 오디션 통과하려면 연기 연습을 해야 되잖아여.”

“그래 주면 나야 좋지.”

“흐하하하하하!”

막내가 기분 좋다는 듯 껄껄 웃었다.

“제가 오늘만을 기다려 왔어여.”

“어휴, 저 아저씨 앞에서 또 객기 부리네.”

“……제가! 이번에 아테네 식으로 업그레이드시켜 줄 거예여.”

“스파르타.”

“스파… 아무튼 업글시켜 주겠어여!”

지호가 대본을 촤라락 펼치고는 한 단락을 탁 짚었다.

“씬23. 제가 봤을 때는 여기를 해 보라고 할 것 같거든여. 자! 이제 형이 요원 K가 됐다고 생각하고 대사를 쳐 보세요.”

“잠깐만.”

“천천히 봐여. 시간은 많으니까~”

내가 손을 딱 튕기자 중현이가 지호를 끌고 갔다.

곧바로 대본을 훑어보며 요원 K란 배역이 어떤 느낌인지 머릿속에서 그려 갔다.

능력이 출중하지만 딱 필요한 일만 하는 인물.

검은색도 아니고 백색도 아니고, 어딘가 무미건조한 회색빛으로 칠해진 듯한 성격의 인물이었다.

감정도 결여되어 있고, 욕망도 결여되어 있는.

본격적으로 연습하기 전에 대충 스케치를 그리고는 입을 열었다.

“시작할까?”

“네. 바로 해도 돼여.”

잠시 눈을 감아 그런 느낌을 담고는, 씬23에 있는 요원 K의 대사를 읊었다.

지구에 불시착한 외계인 가족들을 심문하는 씬이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관리국에서 나온 요원 9762-1이라고 합니다. 오늘 여러분의 조사를 담당하게 되었습니다. 당신은 묵비권을 행사할 수 있으며….”

적당히 암기한 대사를 쭉쭉 들려주었을 때.

내 파트가 끝나고 바로 나와야 할 상대의 대사가 들려오지 않았다.

“……?”

맞은편을 보니 지호가 대본을 든 채 입을 살짝 벌리고 있었다.

옆에서 같이 대본을 보고 있던 동생들도 나와 대본을 번갈아 보고는 눈을 끔뻑거렸다.

살짝 낯선 사람을 보는 것처럼 바라보는 모습에 내가 표정을 풀자, 그제야 안심하는 모습들이 돌아왔다.

“어, 언제….”

지호가 물었다.

“연기 연습은 언제 한 거예여? 연기 레슨도 안 받았잖아여.”

“대충 남는 시간에 틈틈이? 독학으로 배우긴 했는데….”

“독학이여? 이게…? 아니, 시간은 대체 언제 난 건데여?!”

황당해하는 반응에 다른 동생들이 키득거렸다.

“지호야. 이제 우리 마음을 알겠지?”

“진짜 시간을 어디서 쪼개는지 제일 궁금하다니까요. 알고 보면 저거 마법의 시계 아냐?”

내 시계를 들여다보는 졸개들을 보며 웃을 때.

급격히 말이 사라진 채 구석으로 들어가 암울한 아우라를 풍기고 있는 막내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눈이 마주친 막내가 ‘에이’ 하며 시선을 피했다.

“…….”

입을 비죽이는 막내를 보며 다들 웃음을 터뜨릴 때.

리혁이가 피식 웃으며 물었다.

“왜, 이따가 숙소 계단에서 또 국물 떡볶이 먹으려고?”

“절대 안 먹어여!”

*   *   *

호로로록.

“에이…….”

호로로록.

“아니, 이게 말이 되냐구여. 저는 시간 빌 때마다 죽을 둥 살 둥 연습하는 건데. 짜투리 연습하는 사람이 무슨 턱 끝까지 따라와…!”

“내가 미안해.”

“아으으으으…! 저 오늘부터 밤 새서 연기 연습할 거예여. 진짜루.”

국물 떡볶이를 호로록 마시며 분개하는 막내를 토닥여 주었다.

탁.

그릇을 내려놓는 막내에게 물었다.

“더 줄까?”

“네!”

“중현아. 전자레인지에 새 거 하나 돌려라.”

“네에~”

회사 휴게실의 전자레인지가 돌아가는 동안 투덜투덜하는 막내를 다독여 주었다.

내가 보컬, 댄스, 랩 같은 분야에서 맹추격을 할 때는 하핫! 하며 웃더니 자기 일이 되니 심란해하는 녀석이었다.

호로로록.

한참 뒤에 기분이 조금 풀려 보이는 지호에게 물었다.

“근데 지호야.”

“왜여!”

“…….”

“왜여.”

내가 웃으며 물었다.

“아까 연습할 때, 나 괜찮았어?”

“……네. 완전 잘했어여. 솔직히 제가 봤을 때, 감독님이 오디션에서 통과 안 시키면.”

“안 시키면?”

“나중에 제가 성공해서 그 감독님 작품에 나가지 않을 거예여. 그 감독님은 바보인 거니까.”

다들 웃음을 터뜨리는 동안 지호가 떡볶이를 우물우물하며 말했다.

“뭐, 지금이야 많이 미흡하긴 한데, 즉석에서 한 거라고 치면 엄청 잘했어여.”

“이제 뭘 더 하면 될까?”

“캐릭터 구축을 해야 되는 건데. 그건 제가 나중에 도와줄게여. 그밖에는 뭐… 이미 잘하고 있으니까.”

오디션 일정을 잡아도 될 것 같다는 이야기였다.

내가 매니지먼트 팀 사무실로 향하려고 하면서 시선을 돌리자, 졸개들이 나머지를 맡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곧바로 막내를 에워싼 녀석들이 칭찬을 했다.

“우리 막내 연기 천재다.”

“흠흠.”

“저 아저씨가 아무리 날고 기어도 결국에는 네가 훨씬 더 어려.”

“흠흠흠!”

몹쓸 말들을 넘기며 매니지먼트 팀 사무실로 내려갔다.

“어, 왔냐.”

“형.”

“마침 나도 할 말이 있었는데 잘 됐네.”

TF팀장이 된 이래로 눈가에 다크서클을 달고 사는 수학귀신이 내 손에 들린 대본을 바라보았다.

“드라마 대본이네. 뭐 하고 싶은지 골랐어?”

“고르긴 했는데 형의 의견을 들어보고 싶어서. 형이 나라면 어떤 대본을 골랐을 거 같아?”

“글쎄다.”

석환 형이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더니 안경을 고쳐 썼다.

그러곤 대본집을 뒤적였다.

“내가 연기 쪽은 안 맡아봐서 모르겠지만 논란될 만한 거 다 피하고, 대중들이 선호할 만한 내용이어야 하고, 그중에서 너한테 어울리는 걸 고르면…….”

수북한 대본집 속에서 <우리 가족은 외계인>의 또 다른 각본이 빠져나왔다.

“이거.”

나도 모르게 그만 웃음을 터뜨렸다.

“왜 웃어?”

“우리도 그걸 골랐거든.”

금세 쭈글쭈글해진 대본을 내밀었다.

같은 제목.

잠시 둘을 번갈아 보던 석환 형이 씩 웃으며 말했다.

“제작사 측이랑 미팅 일정 조율해 볼게.”

“고마워, 형.”

웃으면서 화제를 돌렸다.

“그리고 할 얘기가 있다는 건…?”

“태현이 앨범 얘기였어. 7월 20일에 컴백하는데, 다음 주부터 프로모션 들어간다고 하더라고.”

그래서 우리도 그 시기에 맞춰 좌충우돌 TJ 엔터 방문기라든가. 태현이와 나의 콜라보 작업기 등의 영상을 공개할 거라고 했다.

일정에 대한 이야기를 간략하게 들은 후.

석환 형이 주변을 슥슥 둘러보며 말했다.

“리혁이는 없지?”

“응. 지금 지호 칭찬하면서 내 욕하느라 정신없을 거야.”

내가 안심하라는 듯 눈빛을 보내자, 상대도 결연한 눈빛으로 말했다.

“리혁이 생일 때 너희가 요청한 거 말이야.”

가슴이 콩닥거렸다.

“준비됐어?”

“준비됐어.”

리혁이의 생일 이벤트 준비가 완료됐다는 소식이었다.

기뻐하는 나에게 석환 형이 그날의 계획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   *   *

뉴블랙이 싱가포르와 자카르타에서 도합 2만 4천여 명을 동원한 콘서트를 마친 후.

다음 주 화요일인 7월 12일.

서리혁의 생일을 맞이하여 수플레들은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리혁이 생일이다!’

SNS에 ‘#리혁이의_스무번째_여름’ 등을 비롯해 각종 축하 문구와 짤이 올라오고 있었다.

실시간 트렌드에 ‘#리혁아_생일축하해’ 하는 문구들이 올라오고.

평소 친분이 있던 장소원과 차우현 등의 연예인들이 SNS에 셀카와 함께 축하 문구를 띄웠다.

@cha_cow

(차가운 인상의 리혁과 근엄한 인상의 차우현이 묵묵한 표정으로 찍은 투 샷)

오늘은 울 리혁이 생일 >< 정말 축하한다 뀨

#삼촌이랑_우정_영원히

1시간 가까이 멘트를 고민하다가 매니저한테 ‘네가 좀…’ 하고 넘겼던 차우현의 글이 화제가 될 때.

“리혁이 생일인가 보네.”

“푸흡!”

지하철역에도 서리혁의 생일을 축하하는 광고판이 걸렸다.

복식호흡에 단추가 폭발하는 전설의 장면과 함께 아름다운 글귀가 적혀 있는 생일축하 광고들.

[우리의 영원한 아기 토마토]

[이 아이는 저희 아이입니다. 저희 아이를 좋아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 선우주 외 3인 일동]

[뭐야..? 생일이야..? 축하해..♡]

팬덤계의 6두품을 자처하는 짭플레가 내건 광고까지.

수플레들이 단체로 축제 분위기가 되어 멤버의 생일을 축하하고 있을 때.

[깜짝 라이브 시작]

여러분! 지금이에요..!

Y앱 알림이 뜬 것을 본 수플레들은 핸드폰을 눌렀다.

시청자 수가 미친 듯이 증가하고 하트가 폭발하고 있는 가운데, 마침내 라이브 방송이 시작됐다.

-안녕하세요!

우주와 비주, 중현이 손을 흔들었다.

반갑게 팬들에게 안부를 묻는 이들의 뒷배경이 수플레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연습실인가…?’

연습실을 어딘가 모르게 조선의 궁궐처럼 인테리어를 바꿔 놓고 있었다.

팬들의 의문에 답하듯 우주가 말했다.

-네, 저희가 리혁이 깜짝 파티를 해 주려고 연습실을 좀 꾸며봤어요.

-엄청 좋아할 거 같지 않아요?

-좋아서 기절할 듯.

리혁의 반응이 기대된다는 듯 양손을 파닥파닥 흔들며 흥분하는 멤버들.

그때, 톡이 왔는지 핸드폰을 본 중현이 말했다.

-지금 지호가 데리고 오고 있대요.

-야야야! 얼른 불 꺼!

케이크를 든 우주가 문 앞에 서고, 두 졸개가 폭죽을 준비하는 가운데.

-뭔데… 또….

파아아앙!

-흐아아아악!

깜짝 놀라서 주저앉은 리혁의 모습에 다들 웃음을 터뜨렸다.

수플레들도 같이 웃음을 터뜨리고 있을 때.

어두운 연습실에 생일 축하 노래와 함께 축하 인사가 오갔다.

-생일 축하해!

-아, 뭐 이런 걸 준비했어요. 안 그래도 콘서트 끝나고 다들 힘들 텐데… 음? 이건 뭐예요?

그때 리혁의 머리 위에 고깔… 이 아닌 다른 모자가 씌워졌다.

조선의 왕들이 머리에 쓰는 익선관.

리혁이 모자를 바라보며 눈을 멀뚱멀뚱 뜨고 있을 때, 불이 탁 켜졌다.

-허어어어어…!

-어때?

궁궐처럼 꾸며진 연습실을 보며 리혁이 입을 떡하니 벌리고 있을 때.

우주가 말했다.

-이게 끝이 아니야.

-아, 아니에요?!

-너의 생일을 축하해 주려고 특별한 노래를 준비했어.

리혁이 침을 꿀꺽 삼키고 수플레들도 잔뜩 기대하고 있을 때였다.

우주가 BGM을 재생하자 연습실 스피커를 통해 국악풍의 음악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이, 이건…!

리혁이 양손을 들어 올려 입가를 틀어막았다.

어린 임금처럼 서 있는 그에게 중현이 곤룡포를 걸쳐 주면서 수플레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바로 그때.

‘어디서 많이 들어봤는데…?’

그들의 의문에 답하듯 전주가 끝나고 웅장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명금~♪ 일하~♪ 대취타~♬ 하랍신다!]

[예~ 이!]

조선시대 왕의 행차에 연주하던 대취타(大吹打)였다.

익선관을 쓴 리혁이 감동한 얼굴로 입가에 손을 모으고 눈을 글썽이기 시작했다.

마치 ‘내 인생 최고의 선물이에요!’ 하는 듯한 눈빛.

그리고 그때.

‘음……?’

가만히 있던 네 멤버들이 조용히 악기를 들기 시작했다.

우주가 태평소를 불면서 웅장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뭐야. 왜 잘하는 건데?’

수플레들이 감탄할 때.

-……!

리혁이 더욱 눈을 글썽였다.

그와 함께 다른 멤버들도 대취타에 맞춰 악기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우주의 멋들어진 태평소에 더해진 그 소리는.

[email protected]!#&!$&

역대급 불협화음이었다.

비주가 잘못 친 징이 뀌요오옹-! 울려 퍼지고, 심벌즈 같은 바라를 든 지호가 고장 난 원숭이처럼 쿠와앙 쾅쾅 쳤다.

드랍 더 비트 하는 박자로 북을 흐뭇하게 치는 중현까지.

국악 관계자가 본다면 반드시 고소할 것 같은 광경이었다.

-…의금부. 어디 의금부 데려와 줄 사람 없어요?

이마를 감싸 쥐던 리혁이 팬들에게 흐느끼듯 말했다.

-저 인간들 다 하옥시키고 싶어요. 진심으로…….

실시간으로 짜게 식어 가는 임금님이었다.

그러는 동안.

계속해서 흥겹게 대취타를 연주하는 못난 악사들의 모습에 수플레들은 웃음을 터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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