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460화
지금 당장 만들자는 말에 우리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여기서요?」
「응.」
헤일리 블루가 어깨를 으쓱했다.
「안 될 거 있나?」
「그건 아니지만 조금 갑작스러워서요. 치킨 먹고 있다가 갑자기 노래를 만들자고 하니까.」
내 말에 상대가 치킨을 우물우물하면서 물었다.
「부담 없이 재미있게 곡을 써 본 게 언제야? 마지막이 언제인지 기억해?」
「재미있게 쓴 적은 많아요.」
계속해서 수정하고 또 수정하면서 재미가 사라지는 거지. 앨범 작업을 하는 건 언제나 재미있었다.
불꽃놀이부터 시작해서 낙화까지.
곡을 처음 쓸 때는 언제나 진짜 재미있겠다 하는 생각으로 가슴이 설렌다.
다만…….
「부담감 없이 쓴 건…….」
「꽤 됐지?」
장소원 선배와 썸씽을 쓸 때가 마지막이었나 싶은데 그때도 솔직히 부담감 백 배였다.
마지막으로 부담 없이 곡 쓰고 했던 건 TNT 데뷔조에서 떨어진 이후부터 군 복무를 할 때까지. 자유롭게 습작을 하고 놀았던 그때 정도.
헤일리 블루가 싱긋 웃었다.
「특별한 걸 하자는 게 아니야. 날씨도 좋고. 기분도 좋으니 재미있게 한 번 놀아 보자는 거지.」
「부담 없이요?」
「제대로 된 쓰레기를 만들자는 각오로.」
우리가 웃음을 터뜨리자 헤일리도 상쾌한 미소를 지었다.
「아까 그 갱스터 친구들.」
「틴스피릿이요.」
「그 친구들을 보면서 떠오른 거야. 솔직히 너희도 가끔 해 보고 싶은 음악이 있을 거 아냐.」
「맞아요. 독특한 거 해 보고 싶고.」
뮤지컬 넘버 같은 음악도 해 보고 싶고. 재즈도 해 보고 싶고.
다만 앨범이라는 건 우리가 하고 싶은 대로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성공을 거둘수록 주렁주렁 달린 게 하나씩 늘어나지. 에이전트, 매니저, 댄서들. 그리고 팬들의 기대까지. 그 무게를 달고 궤도를 벗어나는 건 불가능해. 가끔 랩이 미치게 당기지만 랩을 할 수는 없는 것처럼.」
「그건 사람들이 기대하는 게 아니니까요.」
「맞아. 피자를 먹으러 오는 손님들에게 스테이크를 주는 건 예의가 아니지.」
상대가 포크로 잡채를 스파게티처럼 돌돌 말면서 말했다.
「그래서 내 안에 있는 에너지 중에서 일부는 분출하고. 일부는 서서히 쌓여 가거든.」
「그걸 풀어 보자는 말이네요.」
「그치. 말하자면 내 안의 똘기를 개방하는 시간이라고 할까.」
쉽게 말해, 그 무엇에도 신경 쓰지 않고 그냥 내키는 대로 아무 곡이나 하나 써 보자는 이야기였다.
그녀가 말했다.
「혼자 할 수도 있지만, 같이 하면 더 재미있을 거야. 너희가 여기 후라이드 치킨이면, 난 양념 치킨이니까.」
「안 돼요. 우리가 양념이에요.」
지호의 말에 다들 웃음을 터뜨렸다.
어쨌거나 ‘Deal?’ 하며 눈을 찡긋하는 파란 머리칼의 가수의 모습에 동생들을 바라보았다.
‘할까?’
‘해요.’
나만 그런 게 아니라 동생들도 설레 보였다.
도화지에 마음대로 휘갈겨 보라고 붓과 물감을 받은 화가들 같은 모습.
「Deal.」
내 대답에 상대가 그거지! 하듯이 손뼉을 마주치며 웃었다.
헤일리 블루가 답답했다는 듯 비녀를 빼고 머리를 흔들자, 파란 머리카락이 풍성하게 흘러내렸다.
즉흥적으로 성사된 제안에 비하인드 카메라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모두가 설레는 얼굴로 앉은 가운데.
「근데…….」
리혁이가 중요한 걸 지적했다.
「무슨 곡을 써요?」
「…….」
「아무거나 해 보자고 하긴 했는데. 이것도 어떤 큰 틀은 있어야 할 수 있는 거잖아요.」
「요점 잘 짚었다. 오른다리.」
내 칭찬에 리혁이가 웃다가 멈칫하고는 인상을 찌푸렸다.
비주가 말했다.
「그러면 각자 평소에 써 보고 싶었던 곡을 말해 봐요.」
나를 시작으로 하나씩 대답했다.
「어린이들을 중독시키는 동요.」
「자연 속의 랩이요. 폭포수 쏟아지는 데 앞에서 부를 것 같은 랩으로.」
「저의 귀여움을 찬양하는 곡이요.」
「가끔 뭔가를 존나게 부수고 싶을 때가 있지. 부르면서 다 때려 부술 수 있는 그런 곡으로…….」
어딘가 글러먹은 이야기들이 이어진 후.
헤일리 블루와 우리가 다 같이 눈을 마주치며 허헛 웃었다. 쓰레기 속에서 피어오르는 우정과 동질감이었다.
‘어디서 이런 쓰레기 같은 아이디어를…….’
‘잘 만났네여. 우리.’
오늘 밤 샌다! 하면서 호언장담했는데, 막상 할 게 없어서 원 카드만 주구장창 하다 잠들 듯한 분위기였다.
보드게임처럼 뭔가 할 거리가 하나 딱 던져지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
「아……!」
좋은 생각이 하나 떠올랐다.
헤일리 블루가 눈을 반짝이며 좋아했다.
「왜 그래, 써니? 쓰레기 같은 생각이 떠올랐어?」
「딱 좋은 게 하나 있어요.」
일전에 TJ 엔터에 Survivor를 보내 줄 때의 일이었다.
깜짝 카메라 해 주겠다고 태현이가 싫어하는 공포영화의 BGM 같은 소리를 섞어 보낸 게 있다.
마치 드라큘라가 후하하하! 마늘 좋아! 하면서 일어날 듯한 음악.
선물이라고 가지겠냐고 했더니 절대 안 받겠다고 거절한 데모곡이 하나 있었다.
「제목 없는 곡이 하나 있거든요. 한 번 들어봐요.」
내가 음악파일을 재생했다.
곧이어 우우우- 하는 올빼미 소리, 풀벌레 소리가 나오더니 천둥 번개 소리가 이어졌다.
음산한 BGM 속에서 느아아아-! 하는 가이드가 흘러나오면서 스탭들이 뒤집어졌다.
헤일리에게 물었다.
「어때요?」
「어떠냐고?」
악동처럼 변한 상대의 눈빛에서 대답을 예상할 수 있었다.
「존나 좋아.」
친근한 대답에 우리가 웃음을 터뜨렸다.
* * *
내 생애 최고로 근본 없는 작곡이었다.
막내가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그러면 여디에 코러스로 우우우우~ 하는 귀곡성 같은 거 넣어볼까요? 저 그거 엄청 잘하거든요!」
「해 봐. 해 봐.」
「우우우우우~~」
실감나게 귀곡성을 내뱉는 지호의 모습에 다 같이 웃음을 터뜨렸다. 헤일리 블루도 웃다가 킁 하는 소리를 냈다.
처음에는 한국인들은 왜 박수를 치며 웃냐고 물었는데, 지금은 우리랑 같이 박장대소하고 있다.
「여기에는 랩이 한 번 들어가야죠. 여긴 Nowhere. 하릴없이 돌아다녀 No air.」
「되게 느리네?」
「해골이 랩하는 컨셉이에요. 달그락… 달그락.」
「달그락은 뭔데?」
「덜렁거리는 턱뼈요.」
그야말로 근본 없는 드립에 웃음이 흘러나왔다.
내키는 대로 곡을 쓰는데 의외로 재미있었다.
처음에는 솔직히 ‘헤일리 블루와 즉흥작곡 해 보았습니다!’ 하는 컨텐츠를 노리고 뛰어들었는데, 막상 시작하고 나니 다 같이 진심이 되어 있었다.
「호러 느낌이 나는 곡이니까. 기왕 쓰는 거 듣는 사람이 으스스하게 만들 포인트도 넣어 줘야지.」
헤일리 블루가 기타를 튕겼다.
내 멜로디를 간단하게 변주하더니 자기 식으로 변형해서 색을 넣는다.
음산한 보름달이 연상되는 라인에 내가 물었다.
「방금 떠오른 건데 오프닝에 가야금 곡조를 살짝 깔아 보면 어떨까요? 현악기 용도로.」
「한번 해 봐.」
내가 가야금을 가볍게 튕기며 오프닝에 곡조를 추가했다.
어두운 구름이 보름달 앞을 연기처럼 스쳐갈 때 나올 법한 으스스한 곡조가 흘러나왔다.
헤일리 블루의 눈썹이 높게 올라갔다.
「기다려 봐. 여기에 그러면 내가 이걸 넣어 볼래.」
「합 맞춰 볼까요?」
최고의 싱어송라이터답게 기타 연주가 곧바로 내 가야금과 우아하게 얽혀 들었다.
처음부터 운명이었던 퍼즐조각처럼.
내가 가야금 현을 퉁기며 라인을 조금 바꾸자 곧바로 그에 맞춰 어쿠스틱 기타가 따라온다.
「…….」
상대가 말없이 웃으며 윙크를 하고, 나도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동안 동생들이 코러스를 추가하며 우우우~ 우우우~ 하며 몸을 흔들었다.
리혁이가 흥얼거리듯 코러스를 주도했다.
그러자, 별 생각 없이 시작했던 노래에 뭔가 보이는 느낌이었다.
물감을 마구 흩뿌렸는데 그 속에 문양 같은 게 보인다고 할까.
「생각보다 괜찮은데요?」
「괜찮은데…?」
30분 정도 걸렸을까.
대충 기타 튕기고 가야금 튕기고, 거기에 사람 목소리 한 스푼 두 스푼 얹은 곡이 완성됐다.
평소 넣고 싶었는데 못 넣었던 것도 첨가하고.
MSG를 마구 넣은 요리인데 냄비를 열자 고소하고 맛 좋은 냄새가 올라오는 듯했다.
「다시 재생해 볼게요.」
비주가 노래를 틀었다.
그야말로 요상한 소리의 총집합이었지만, 안에 담긴 무언가가 빛을 발하고 있었다.
대청마루에 놓인 핸드폰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고개를 들어 눈을 마주했다.
「…….」
「…….」
좋다.
생각지도 못하게 좋은 결과물에 다들 눈을 깜빡였다.
「헤일리.」
「어?」
「저작권료는 6분의 1이에요.」
내 말에 상대가 웃음을 터뜨리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이건 예상 못했는데.」
「우리도 마찬가지예요.」
「우리만 알고 있기에는 존나 아까운 곡이야. 너희도 그렇게 생각하지?」
공포영화 BGM을 만들듯이 장난스럽게 시작했는데, 소리가 그럴싸하게 어우러진다.
몇 가지 아이디어가 훅 떠올랐다.
전자음이라든가, 몇 가지 독특한 효과음을 넣으면 어떨지.
그리고 그건 상대도 마찬가지인 듯했다.
눈이 마주치자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걸 알았다.
「작업하기 좋은 곳 있어?」
「있어요.」
「잘됐네. 공연 끝나고 나면 스케줄이 여유로우니까. 내가 방문하는 걸로 하고.」
가장 중요한 질문이 나왔다.
「제목은 뭘로 할까?」
「음, 달이 들어간 거였으면 좋겠어요. 달 느낌이 나니까.」
「Blue Moon 어때?」
나쁘지 않은 제목이었다.
부담 없이 만든 곡이라 그런지, 사실 곡 제목이야 뭐 될 대로 되라 싶은 분위기였다.
중요한 건 재미있었다는 거니까.
나도 머릿속에 대충 떠오르는 의견을 제시했다.
「가수 이름은 Blue와 Black이 모였으니 Blue Black으로 하는 게 어때요?」
「좋아.」
그리고 이 노래의 테마를 뭘로 할지 고민했다.
납량특집의 계절이 이미 지난 터라 호러 느낌이 나는 곡의 테마를 웃으며 고민하고 있을 때.
우우우- 하는 음산한 코러스를 듣고 있던 헤일리 블루가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할로윈.」
「할로윈이요…?」
「마음 정했어. 할로윈에 내자.」
할로윈이라고 하면 영미권에서 10월 31일에 여는 축제다.
영화에서 미국 꼬마들이 내게 과자를 주다니 죽어라! 하면서 분장을 하고 돌아다니는 그런 장면을 본 것 같다.
악마, 괴물 같은 사악한 존재들이 돌아다니는 축제.
머릿속에서 껄껄 웃는 호박과 지금 만들어 낸 노래를 매치시켜 보고는 웃었다.
「좋네요.」
지호가 기대 가득한 눈으로 물었다.
「그럼 할로윈 기념으로 내는 거네요?」
「재미있을 것 같지?」
「진짜 재미있을 거 같아요!」
동생들과 함께 우리가 노래 만들었다! 하면서 우와아 하고 있는 동안.
카메라 너머에서 시선이 느껴졌다.
「……?」
성 PD님을 비롯해서 스탭들이 멍하니 바라보고 있고, 매니저 형들도 눈을 껌뻑이고 있다.
헤일리 블루 측 스탭들도 어어? 하고 있다.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모르겠다는 표정에 우리가 웃음을 터뜨렸다.
“우리 노래 만들었어요~!”
비하인드 카메라를 향해 노래 만들었지롱~ 하면서 꾸러기 춤을 추는 막내의 모습에 다들 웃었다.
30분 만에 벌어진 일이라 그런가.
나도 약간 얼떨떨하긴 하다. 이게 뭐가 어떻게 된 건지 싶고.
한 가지 확실한 건.
‘미국에도 지점이 생겼어여!’
‘직영점 낸다!’
지금까지 한 번도 해 보지 않은 프로젝트를 진행한다는 거였다.
이제 협상이나 홍보 등 현실적인 절차들이 들어가겠다고 생각하고 있을 때.
「Hey, 친구들!」
헤일리 블루가 핸드폰을 들더니 우리를 비추고 있었다.
「인사해! 내 팔로워들이야.」
「안녕하세요! 뉴블랙이에요~!」
SNS 라이브 방송을 향해 그녀가 씩 웃었다.
「뭐 하나 알려 주려고 라이브를 켰어! 오늘 여기 있는 개쩌는 친구들과 개쩌는 곡을 만들었거든! 궁금하지? 궁금하면 기다리라고. 그럼 이만~! 잘 있어.」
방송을 뚝 끊은 헤일리 블루를 보며 멍하니 눈을 깜빡였다.
‘방금 뭐가 지나간 거지.’
‘지금 뭐가 어떻게 된 거예여?”
헤일이… 아니 해일이 지나간 것 같다.
나도 어디 가서 실행력이 부족하다는 말을 듣는 편이 아닌데, 내 정신이 아득해질 만큼 비범한 실행력이었다.
「홍보 완료.」
「…….」
「내 팔로워들한테 말해 놨으니 홍보는 문제없어.」
생긋 웃는 헤일리 블루에게 우리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물었다.
「팔로워가 몇 명인데요?」
「아마 7천만 명 정도? 아, 이번에 7천 500만 됐네.」
「…….」
정신이 아득해지는 스케일이었다.
* * *
정신줄을 다시 부여잡는 데 5분 정도 걸렸다.
그도 그럴 것이 30분 전에 ‘곡 써 볼까~?’ 이러고 있었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전 세계에 홍보가 되어 있었다.
5분도 지나지 않아 연예란 메인이 바뀌었다.
-헤일리 블루X뉴블랙, “깜짝 콜라보 성사?”
-헤일리 블루 ‘뉴블랙과 비밀 프로젝트 준비 중이다’
-헤일리 블루, “뉴블랙과 오래 전부터 비밀리에 곡 준비…”
인터넷 반응까지는 보지 못했지만, 실시간으로 부정확한 기사가 쏟아져 나올 만큼 정신이 없어 보인다.
미국에서 SNS 팔로워 Top 10 안에 드는 가수와의 콜라보.
솔직히 누구라도 붙잡고 제발 하게 해 주세요 할 만한 기회기는 하나, 이토록 광속으로 일이 처리되는 건 처음이다.
그러고 보니.
「기사가 났나 보네?」
애초에 한국 공연도 미리 준비한 게 아니라 라방을 하다가 한국 팬의 댓글을 보고 ‘한국 갈래!’ 하고 즉흥적으로 정해진 거라 들었다.
내가 엄지를 들고 말했다.
「추진력이 진짜 대단하네요, 헤일리. 파스타 먹으려고 이탈리아 가는 사람 같아요.」
「어……?」
그녀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너 어떻게 알았어?」
「…….」
「와인 마시려고 프랑스 갔다가 겸사겸사 이탈리아에 파스타 먹으러 간 적이 있거든.」
존경스러운 추진력이었다.
헤일리 블루를 백악관으로, 같은 표어를 머릿속으로 떠올리고는 정신을 차렸다.
아직 방송이 끝나지 않았으니까.
멍하니 서 있는 동생들에게 말했다.
“정신 차리자. 호랑이가 물어 가도… 잠깐만. 정신이 하나도 없네. 그거 뭐 하면 안 죽더라?”
“잠을 안 자면?”
“반항하면…?”
“잘 보이면?”
평소 같으면 제대로 대답해 줬을 리혁이도 고장이 났는지 어버버 하고 있다.
다행스럽게도 다시 뉴블랙 TV 인터뷰를 진행하는 데는 무리가 없었다.
시청자들 입장에선 쟤네가 음식 먹고 났더니 단체로 식곤증에 걸렸나 할 정도로 조금 멍해 보이긴 했지만.
프로답게 인터뷰는 잘 마무리 지었다.
마지막 코너로 헤일리의 팬들이 보낸 메시지를 읽어 주는 시간과 팬들의 질문에 답하는 시간을 가졌다.
「루-블리?」
「이게 헤일리의 별명이에요.」
한국 팬들이 부르는 ‘파랑 언니’나 ‘루블리’ 같은 별명을 설명해 주자 상대가 눈에 띄게 기뻐했다.
「한국 팬들. 좋아해 줘서 고마워. 이 응원들 다 기억해서 본 공연에서 새빠지게 노래 부를게. 그럼 곧 보자고~!」
「와아아아아아-!」
「너희들도 고맙고. 다들 고마워! 오늘 진짜 재밌었어!」
마지막 순서로 나를 포함한 팬들을 위해 Blue Bird를 라이브를 연주해 준 후.
헤일리 블루가 상기된 얼굴로 우리를 포옹해 주었다.
「존나 훌륭한 인터뷰였어. 쓰레기 같은 질문이 없었고.」
「열심히 인터뷰 해 줘서 고마워요.」
또 다른 인터뷰 스케줄이 있다며 저쪽 스탭들이 분주히 준비할 때.
우리 측 스탭들에게 사인을 해 주고 셀카를 찍어 주던 헤일리가 말했다.
「공연 끝나고 마무리 작업하자.」
「헤일리도 공연 잘해요.」
「한국에 좀 길게 체류했다가 갈 생각이니까 뭐 할 거 있으면 불러. 너네 진짜 웃기더라.」
너네랑 있으면 존나 재미있다는 말에 우리가 미소를 지었다.
-행님들이랑 놀면 일단 존나 재밌습니다!
아랫집 어린이들을 떠올리며 웃을 때.
뭐 재미있는 거 있으면 부르라는 말에 내가 마침 떠오른 게 있었다.
「헤일리.」
「어?」
「혹시나 해서 묻는 건데요. 재미있는 거 해 볼 생각 있어요?」
* * *
대학로의 한 소극장.
TBC에서 방영예정인 시트콤 <우리 가족은 외계인>의 촬영 준비가 한창 이뤄지고 있었다.
“박스! 박스는 저쪽에 놓고!”
“마술사 의상 준비됐어? 다른 의상도 넉넉하게 준비하고!”
요원 김우주가 외계인 가족들 앞에서 ‘마술쇼’를 선보이고, 외계인 가족이 재미있겠다며 초능력으로 따라하다가 반경 100미터가 끝장나는 그런 내용이었다.
스탭들이 바쁘게 세팅을 하는 동안, 객석에 앉은 배우들이 믹스 커피를 호로록 마셨다.
주연배우 서노을이 말했다.
“준비 다 된 것 같네요, 선생님.”
“그러니? 근데 우주 얘는 어디를 갔대? 통 보이지를 않네.”
“주선이 어디 갔어?”
원로배우 양옥분과 송훈의 말에 후배들이 고개를 빼꼼 내밀 때.
근처에서 대본을 체크하고 있던 황정구 감독이 답을 대신했다.
“지금 밖에서 카메오 배우 데려온답니다.”
“카메오?”
“예, 이번에 마술사 조수 역할에 카메오 넣으면 어떠냐는 의견이 있었는데, 우주가 데려오겠다고 하더라고요.”
“누구를?”
“그것까진 안 물어봤어요. 뭐, 적당히 미남미녀 데려오라고 했으니까.”
친한 친구라도 오는 건가 싶어서 호기심을 품을 때.
소극장 바깥이 웅성웅성하더니 곧바로 김우주 복장을 입은 우주가 손을 흔들며 걸어왔다.
“감독님!”
“어, 우주야.”
“조수 역할을 할 카메오를 데려왔어요!”
입을 떡하니 벌리고 있는 스탭들이 양옆으로 갈라지더니 조수가 등장했다.
파란 머리카락에 파란 눈.
어딘가 흥미로운 표정으로 소극장 내부를 훑어보는 이의 모습에 제일 먼저 스칼렛 아라의 눈이 커졌다.
“헤… 헤…… 컥!”
“안뇽하세요. 나 헤일리 블루.”
“푸흡-!”
아라를 시작으로 커피를 홀짝이고 있던 배우들이 단체로 사레가 들렸다.
그 속에서 칭찬을 바라는 아이처럼 눈을 똘망똘망하게 뜨고 있는 우주.
황정구 감독의 손이 달달 떨렸다.
‘이게 대체 어딜 봐서 그냥 카메오인데…?’
과자 심부름을 시켰더니 아예 과자 회사를 인수해 온 뉴블랙의 리더였다.
‘아이고, 내 정신이야…….’
칭찬을 해야 되는데 혼절부터 할 것 같은 황정구 감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