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459화
대롱대롱 매달린 리혁이가 삽시간에 토마토로 변신했다.
그 동안 나머지는 웃음을 터뜨렸다.
“흐핫! 흐하하하!”
“아! 진짜, 웃지 말고. 나 좀 도와줘요!”
부끄러워하는 외침에 중현이가 일어나서 도와주었다.
막내가 키득거리며 놀렸다.
“형은 그거 빠져나오는 것도 못해여?”
“조용히 해.”
“솔직히 비주 형이었으면 거기서 한 바퀴 회전하고 내려왔어여.”
“맞아.”
비주가 생긋 웃더니 날 가리키며 말했다.
“우주 형이었으면 두 바퀴 돌았을 거야.”
“흐하핫! 맞아여, 진짜 그랬겠다.”
“두 바퀴? 세 바퀴도 가능하지.”
내가 호언장담하자 동생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리혁이만 다들 밉다는 얼굴로 자리에 앉을 뿐.
헤일리 블루도 깔깔 웃으며 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았다.
「너네 진짜 웃긴다.」
「저희 부업 중에 하나가 코미디거든요.」
「그래? 어울려.」
자기가 본 코미디언들보다 더 웃기다는 칭찬에 우리가 뿌듯하게 웃었다.
그러곤 무언가 멈추는 소리에 다 같이 고개를 돌렸다.
돌돌돌 돌아가던 룰렛이 멈춰 있었다.
「호오…….」
출연자의 특기를 바탕으로 구성되는 코너였다.
미리 나 이거이거 잘한다~ 하고 특기를 제출하면, 우리가 그 특기에 도전하는 식이었다.
예컨대 저번에 존 워커라는 배우가 ‘혀를 자유자재로 움직임’ 하는 특기를 제출했을 때 내가 곧바로 패배시킨 적이 있었다.
-으아아아! 이거 모자이크 처리해 주세요!
-할머님이 그러라고 물려주신 얼굴이 아니에여! 형!
-존, 당장 관둬! 저 친구는 네가 이길 수 있는 상대가 아니야.
자존심을 걸고 진행한 대결이었지만, 양쪽 모두 마음에 상처만 남은 승부였다.
어쨌거나 그런 식으로 헤일리 블루가 자신 있다고 제출한 여러 특기가 룰렛에 적혀 있었다.
비주가 담당할 ‘피겨 스케이팅 동작’이라고 되어 있는 특기를 지나서.
“어? 나네?”
“Oh.”
‘즉석 작곡하기’에 눈금이 멈췄다.
이게 걸리면 내가 나서기로 합의를 한 터였다.
“후후후후후!”
“후흐하하하!”
벌써부터 다 이겼다는 듯이 우쭐대는 졸개들에게 내가 자중하라는 눈빛을 보냈다.
조무래기들이 근엄하게 후후 할 때.
헤일리 블루가 말했다.
「즉흥 작곡은 내 특기라고 생각했는데, 너도 그쪽으로 재능이 있나 봐?」
「곡을 좀 빨리 쓰는 편이거든요.」
리혁이가 덧붙였다.
「빨리 쓸 때는 진짜 빨리 써요. 밥 먹고 뒹굴거리면서 천장 5분 정도 보더니 갑자기 ‘리혁아, 녹음 어플 켜 줘’ 하더니 멜로디를 흥얼흥얼 했어요. 그게 수록곡이 됐고요.」
「그리고 엄청 잘 써요.」
비주까지 보태면서 시작된 천하제일 리더 자랑대회에 내가 그만하라고 손짓을 했다.
뭔가 민망했다.
눈앞에 있는 사람이 13년도 빌보드 차트 1위를 했던 대표곡 Blue Bird를 쓰는 데 걸렸던 시간이 5분인가 그랬으니까.
내가 물었다.
「헤일리는 Blue Bird를 쓰는데 걸린 5분이 최단 기록이죠?」
「맞아.」
그녀가 손으로 슈웅 하며 비행기 이륙하는 시늉을 했다.
「비행기 이륙할 때 엔진 소리를 들으면서 썼지. 10분 정도 걸렸을 거야. 존나 대충 쓴 곡인데 잘 돼서 이상했어.」
「그런 곡이 있는 것 같아요. 오히려 힘을 빼고 쓴 곡인데 반응이 더 좋을 때가 있더라고요.」
「정말 미스터리야.」
희한하게 수록곡 중에서 수플레들 반응이 좋은 곡들을 보면 대부분 가볍게 썼던 곡들이었다.
내가 들인 시간과 리스너의 반응이 꼭 비례하지만은 않는다는 것을 느꼈다고 할까.
그러는 한편, 제작진의 요청에 따라 동생들이 2대 2로 나뉘어 양쪽에 붙었다.
상대가 물었다.
「왜 흩어진 거야?」
「아, PD님이 그러시는데 5대 1로 하는 건 좀 편파적인 느낌이라고. 응원조를 2대 2로 나누래요.」
「……차이가 있나?」
의아해하는 헤일리 블루에게 제작진이 모니터로 자료 영상을 틀어주었다.
공포영화 의 출연진과 우리가 담양에서 직배송한 떡갈비를 두고 명승부를 벌이고 있다.
-우리 팀 이겨라아아아아!
-리혁이 형, 음파 공격 한 번 더 가 주세여~!
-느아아아아~~
-한 번 더!
-느아아아아~~
상대팀의 집중력을 떨어뜨리기 위해 방해공작을 하고, 할리우드 배우들도 치사한 반격을 시도하지만.
피라루쿠의 음파공격에 산산이 흩어지고 있었다.
“What the…….”
멍하니 바라보던 헤일리 블루가 의견을 바꿨다.
「3대3. 좋은 생각이야.」
「흐하하하!」
「이렇게까지 더티하게 플레이하는 녀석들인 줄은 몰랐는데. 좋아. 내 맘에 쏙 들었어.」
그리하여 팀 블루와 팀 블랙이 나뉘었다.
제작진의 손부채질에 치킨 냄새가 솔솔 몰려오고, 헤일리 블루의 뒤에 선 두 막내가 후후후 웃었다.
「음식은 우리 것이다!」
「곡 쓰다가 손 미끄러져라, 꽃무늬 영감탱이.」
「아니, 저저…….」
바로 배신을 때리는 왼다리와 오른다리의 모습에 현장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내가 발끈했다.
“야, 내가 이기면 어떡하려고 그래? 너네 후퐁풍이 무섭지도 않아?”
발음이 꼬여서 아차 할 때.
아니나 다를까. 그 틈을 하이에나처럼 물어뜯는 막내들이었다.
“후풍풍~”
“푸퐁퐁이 무섭지도 않아~~”
“으이구, 그랬쪄여. 우리 퐁퐁이~?”
내 뒤에 앉아 있는 비주와 중현이가 빵 터져서 끅끅거렸다.
눈을 흘기자, 두 졸개가 ‘우주 형 놀리지 마~’ 하면서 반격을 시도했지만 애들이 너무 순했다.
밉살맞게 놀려대는 동생라인에게 헤일리 블루가 잘했다는 듯 하이파이브를 했다.
「내가 한국어는 잘 모르지만 너희가 잘하고 있다는 건 알겠어.」
「궁금한 약점 있으면 우리가 다 알려 줄게요.」
치킨 먹겠다고 맏형을 팔아먹는 두 녀석의 모습에 다들 웃음을 터뜨렸다.
그렇게 유쾌한 분위기 속에서 즉흥 작곡 대결의 룰이 정해졌다.
「곡에 대한 제한은 없어요. 머릿속에 떠오르는 걸 바로 써도 되고, 이미 있는 곡에 뭔가를 추가해도 되고요. 말 그대로 즉석으로 자유롭게 곡을 쓰면 돼요.」
「오호. 그리고?」
「각자 차례로 곡을 들려주도록 해요. 순서는 어떻게 할까요?」
헤일리 블루가 어깨를 으쓱했다.
「내가 먼저 하지 뭐.」
「좋아요.」
상대가 턱짓을 하자 매니저가 기타 케이스에서 어쿠스틱 기타를 꺼내와 건넸다.
굉장히 유명한 한정판 기타.
비싸냐고 묻는 비주에게 내가 속삭이듯 답했다.
「……저거 깨지면 우리 상반기 정산이 날아가.」
「진짜요?」
비주가 중현이의 양손을 붙잡고는 숨도 작게 쉬라고 말했다.
그 동안 헤일리 블루가 파란색으로 칠해진 어쿠스틱 기타를 쥐었다.
비녀를 꽂은 파란 머리카락에 한복, 거기에 기타가 더해지니 뭔가 독특한 인상이 느껴졌다.
그런 우리 눈빛을 보았는지 그녀가 기타를 첼로처럼 들고 현을 통통 튕겼다.
「좋아.」
팔을 걷어붙인 그녀가 기타를 쥐고는 읊조렸다.
「무슨 곡을 써야 할까. 한국에 왔고, 귀여운 친구들이 있는 토크쇼에도 왔고. 기분은 좋고. 날씨는 맑음. 하늘은 파랑. 파랑은 좋아. 좋은 건 한 번 더. 두 번씩.」
원숭이 엉덩이송처럼 낭랑하게 말을 하던 이가 기타를 부드럽게 두 번 튕겼다.
허공에 파란 선이 그어질 듯하다가 툭 끊겼다.
「별로네.」
혼잣말의 달인처럼 중얼거리던 헤일리 블루가 무념무상의 얼굴로 기타를 튕기다가 창문을 바라보았다.
잔디 마당에 펼쳐진 녹색 물결.
멀찍이 별채 너머로 보이는 하늘이 파란 눈동자에 담겼다. 흘러가는 구름을 응시하던 헤일리 블루가 가볍게 손을 튕겼다.
「역시 구름이 좋겠어.」
그러곤 입술을 내밀며 흥얼거렸다.
Bows and flows of angel hair-
하늘에 흐르는 천사의 머릿결, 하늘의 아이스크림 성 같은 식으로 구름을 묘사한 가사가 이어졌다.
Both Sides Now라는 60년대 팝송의 가사를 흥얼흥얼하던 헤일리 블루가 손을 움직인다.
하얀 구름이 몽실몽실거리는 하늘이 변하기 시작했다.
곧이어 가득해지기 시작한 구름이 태양빛을 가리고 빗줄기가 톡톡 쏟아진다.
비가 내리는 날이지만 희한하게 뭔가 기분이 좋고 추억이 감도는 날이 있듯이.
흐릿한 분위기였지만 어딘가 모르게 마음 한 구석을 따스하게 만드는 멜로디가 이어졌다.
“…….”
주변을 돌아보니 그녀가 물들인 파란색이 사방으로 퍼져 나가고 있었다.
동생들도 웃으며 고개를 까딱이고 있고, 스탭들도 우와 하는 얼굴로 보고 있었다.
우산으로 물웅덩이를 콕콕 찍는 듯한 멜로디가 끝난 후 상대가 슥 웃으며 고개를 들었다.
「이미 있던 곡을 변주해서 내 식으로 바꿔 봤어. 어때?」
「좋네요.」
「그럴 줄 알았지.」
코를 찡긋하며 기분 좋게 웃는 헤일리 블루에게 뭐라고 더 말을 하려다가 그만두었다.
딱히 말로 표현하기 힘든 느낌이었다.
그 대신 방금 노래를 들으면서 떠오른 게 있었으니, 내 방식대로 표현해 보기로 했다.
「이번에는 제가 해 볼게요.」
내가 웃으며 돌아보자 스탭들이 가져온 소품이 마루에 놓였다.
* * *
눈앞에 커다란 악기가 등장하면서 헤일리 블루의 눈도 같이 커졌다.
‘우와!’
처음 보는 낯선 악기의 등장에 그녀가 즐거운 웃음을 터뜨렸다.
‘현악기인가? 현이 달려 있는 걸 보면 그런 것 같은데. 활로 연주하나? 아니면 손으로?’
널찍한 나무판 위에 현이 12줄이 있었다.
대체 어떤 소리가 나는 악기일지 가슴이 콩닥거릴 때, 옆에 앉은 리혁이 설명을 해 주었다.
「가야금이라는 전통악기예요.」
「가야금?」
「섬세하고 여린 음색이 특징인데, 아마 들어보면 알 거예요.」
확실히 전통악기인 듯했다.
비단옷을 고이 차려입은 우주가 그 앞에 앉은 모습이 그토록 잘 어울리는 걸 보면 말이다.
곧이어 손가락이 미끄러지듯 움직이자 톡톡 튀는 선율이 귓가에 흘러들어 왔다.
저도 모르게 마음 속 말이 튀어나왔다.
「재미있겠다. 너 이거 잘해?」
「아뇨.」
우주가 머쓱하게 웃었다.
「취미로 배워 보고 있어요. 아직 초보자 수준이긴 한데, 그래도 기본적인 건 할 줄 알아요.」
리혁이 해석을 해 주었다.
「해석하자면, 잘한다는 뜻이에요.」
「아하.」
「못한다고 해서 그대로 믿으면 안 돼요. 헤일리.」
지호까지 강조하는 걸 보면, 못한다는 말로 평소에 멤버들을 방심시키고 기습하는 모양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가야금 현 위를 매끄럽게 움직이는 손가락이 하나의 선율을 만들어냈다.
‘아무 말도 안 믿어야지.’
그녀가 굳은 결심을 하고 있을 때.
우주가 갓을 벗고 팔을 걷어붙이고는 가야금을 빤히 바라보았다.
“으음… 어디 보자.”
집중했는지 한국어로 중얼중얼하는 모습에 중현이 화분에서 꽃 한 송이를 빼서 우주의 머리에 꽂아 주었다.
음악에 미친 사람 같이 보였다.
꽃과 어우러지는 미모에 헤일리 블루를 비롯한 모두가 흐뭇한 미소를 지을 때.
「시작할게요.」
상대가 가야금을 뜯으면서 듣기 좋은 가락이 울렸다.
미술가가 붓을 휘둘러 벽에 점점이 독특한 모양의 그림을 만들어 내듯이 어딘가 불규칙한 곡조.
규칙성이 없을 듯하면서도 있는 듯하기도 하고.
그저 느껴지는 것은 자주색을 연상시키는 음률이었다. 궁궐을 배경으로 자줏빛 밤하늘이 펼쳐지는 가락.
헤일리 블루의 기분이 동했다.
‘좋네.’
눈앞에서 가야금을 연주하는 미인이 그런 배경과 잘 어우러지는 듯 보인다.
서울에서 딱 한 가지를 액자에 담아갈 수 있다면, 길거리에서 봤던 사람들이나 서울의 풍경, 혹은 궁궐이 아니라 지금 눈앞의 청년을 고르고 싶다.
무척이나 훌륭한 연주였다.
다만…….
‘내가 이긴 것 같은데?’
즉흥곡에서 느껴져야 할 유니크함이 부족하다.
본인의 색이 느껴지긴 하지만 흐릿하기 짝이 없었다.
푹신한 구름 위를 사뿐사뿐 누비지만 결국에는 발자국이 남지 않듯이. 듣고 나면 기억에 안 남을 연주였다.
그녀가 곡을 만드는 기준은 간단하다.
‘기억에 남아야 돼.’
멜로디를 한 번 흥얼거렸다가 그게 며칠 뒤에도 기억에 남으면 곡을 쓰는 식이었다.
하지만 자신이 즉석에서 만들어낸 곡과 다르게 이쪽은 흐릿해도 너무 흐릿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우주가 연주를 멈췄다.
어딘가 허무한 끝에 그녀가 물었다.
「그게 끝이야?」
「내 연주는요. 그렇지만 내가 즉흥작곡으로 만든 노래는 여기서 끝나는 게 아니에요.」
「……?」
의뭉스러운 소리에 고개를 돌아보자, 뉴블랙 멤버들이 은은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무슨 상황인 거지?’
스태프들은 모르는 눈치고, 이쪽에선 마치 상대의 의도를 짐작했다는 듯 웃고 있다.
그녀가 궁금증을 못 이기고 입을 열 때.
우주가 웃으며 중현을 바라보았다.
“녹음했어?”
“했는 줄 알았는데 안 눌렀나 봐요.”
“그럴 줄 알았어. 비주야.”
“제가 했어요.”
한국어로 무슨 대화가 이어지더니 우주가 두 개의 연주를 동시에 재생하기 시작했다.
헤일리 블루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녀가 했던 기타 연주와 우주가 방금 연주했던 가야금 연주가 동시에 얽혀들었다.
“……!”
왜 이리 흐릿한 곡을 만들었나 했더니, 무언가에 섞여들기 위함이었던 모양이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가야금과 기타가 어우러져 아름다운 조화를 내는 것처럼 들리지만 그녀에게는 어딘가 색채가 어우러지는 기분이었다.
그녀의 캔버스에 낯선 미술가가 붓을 놀려 새로운 색을 하나씩 덧칠한다.
파란색이 가득한 소도시의 밤거리.
음영처럼 은은하게 더해지는 자주색이 활기를 더해 주고, 더 묘한 매력을 풍기고 있었다.
한 마디로 말해 더 완벽하게, 그리고 더 풍부해졌다.
‘……이걸 듣자마자 바로 생각했다고?’
그녀도 소리와 음악에 대해서는 일가견이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지만, 이런 식으로 해내는 이는 처음 봤다.
그리고 이걸 듣자마자 바로 눈치채는 것도 신기하고.
노래를 감상할 때 귓가에 듣기 좋은 목소리가 날아들었다.
「이미 있던 곡을 한 번 변주해 봤어요. 방금 헤일리가 그랬던 것처럼.」
그녀의 입에서 웃음이 새어 나왔다.
남이 완성한 그림에 덧칠을 해 놓고 자기 작품이라고 하며 능글맞게 너스레를 떠는 상대였다.
평소였다면 개소리 하고 자빠졌네, 하고 말이 나왔을 텐데 퀄리티가 완벽하니 오히려 기분이 좋다.
그래도 치킨은 양보할 수 없었다.
「반반씩 한 거니까 무승부로 해.」
「좋아요.」
피디까지 OK를 하면서 다 같이 음식을 먹는 걸로 합의가 됐다.
「우와아아아!」
“여러분! 뉴블랙 월드 최초로 음식을 먹는 게스트가 태어났어여!”
“탄생이라고!”
졸개들이 법석을 떨면서 어깨춤을 출 때, 같이 동참해서 놀던 그녀가 멤버들에게 물었다.
「근데 아까 곡 두 개 합칠 때 말이야. 너희는 어떻게 알았어?」
「아. 이거요.」
나긋하게 웃던 비주가 답했다.
「이미 당해 봤거든요.」
「……?」
「갑자기 자기가 쓴 곡이랑 합치자고 그러고….」
「곡을 막 뺏어요.」
나콰(?)라는 곡이 있다나. 뭐라고 설명을 하긴 하는데 알아듣긴 힘들었다.
이윽고 리더의 팔다리들이 신이 나서 음식을 날라 올 때.
포크로 큼지막한 양념 치킨을 콕 찝은 그녀가 벌써 우물우물하는 우주에게도 질문을 던졌다.
「방금 곡 있잖아.」
「네.」
「왜 그런 멜로디를 쓴 거야?」
「음, 글쎄요. 특별한 이유는 없고… 그냥.」
상대가 생긋 웃으며 답했다.
「재미있을 것 같았어요. 그쪽이.」
그 말에 헤일리 블루의 눈동자가 낯선 가수에게로 향했다.
곡 작업도 지지부진하고. 매너리즘에 접어들어 있었던 그녀에게 강렬한 흥미가 일었다.
낯선 악기부터 작곡까지. 지금까지 없던 새로운 자극이었다.
‘진짜 흥미로운…….’
그리고 그때.
머리를 털던 우주의 머리에서 꽃이 접시에 떨어지면서 우주가 화들짝 놀랐다.
“흐악! 이, 뭐, 뭐야. 꽃이 왜 갑자기 떨어져?!”
“제가 달았어요, 형…!”
벌떡 일어난 우주가 고장 난 고양이처럼 움직이고, 덩달아 놀란 리혁이 켁켁거리며 얼굴이 벌게지고.
중현이 다급하게 콜라를 따 주려다가 콜라가 폭발했다.
푸쉬시시식! 푸화아악!
브라운 볼케이노의 향연이 테이블을 장식했다.
“으악!”
그러더니 휴지를 찾으러 가던 비주가 이상한 방향으로 가더니 갑자기 훅 꺼졌다.
“…….”
그 속에서 헤일리 블루가 해맑게 웃으며 잡채를 먹는 막내와 눈을 마주치고는 웃었다.
그러곤 양념치킨을 포크로 콕 찍으며 키득거렸다.
‘개판이네.’
그녀가 사랑하는 분위기였다.
* * *
본격적으로 식사하는 동안은 잠시 녹화를 쉬기로 했다.
양념 치킨, 후라이드 치킨, 보쌈, 배달 삼겹살, 불고기, 잡채, 파전 같은 음식이 즐비한 테이블.
“Oooooh-!”
음식을 먹을 때마다 헤일리 블루가 미간을 꿈틀꿈틀하면서 돌고래와 비슷한 소리를 냈다.
가수가 흥분한 목소리로 물었다.
「이거 진짜 맛있다. 이름이 뭐야?」
「치킨이요.」
「한국에서도 치킨이라고 부르는구나!」
독특한 성격답게 반응도 특이했다.
식사를 하는 동안 헤일리 블루는 우리에게 이것저것 질문했다.
「그러니까 지금 한국 차트에서 1위부터 4위가… 전부 다 네가 쓴 곡이라고?」
「네, 어느 정도는요.」
「들려줘.」
우리가 치킨을 집은 채 일어나 낙화의 오프닝 포즈를 취하자, 그녀가 눈을 깜빡였다.
「그거 말고 폰으로.」
「아. 폰으로요.」
이윽고 우리가 폰으로 불꽃놀이, 낙화, Attention, 그리고 Survivor를 차례대로 들려주었다.
희한한 경험이었다.
우리 음악을 BGM으로 외국 가수와 순살 치킨을 먹는다는 건.
「이게 K팝이구나.」
「새로운 장르로 한 번 도전해 보게요?」
「그것도 나쁘지 않지. 춤이 좀 부족한데 괜찮으려나?」
「그런 건 걱정 안 해도 돼요.」
상냥하게 웃은 비주가 자리에서 일어나 간단하게 우리 대표곡들의 춤을 보여 주었다.
「요 정도만 하면 돼요.」
「……도전했으면 조땔 뻔했네.」
우리가 웃음을 터뜨렸다.
자꾸만 누군가 떠오르는 말투에 우리가 틴스피릿의 영상도 보여 주었다.
흥미롭게 바라보던 그녀가 아쉽다는 표정을 했다.
「안 어울리는 음악을 하네.」
「네…?」
「내면에 담긴 에너지를 제대로 분출하지 못하고 있어. 이 친구들은 락을 해야 돼. 기타 부숴주고, 공권력도 조까 해 주고. 가끔 뿔 달린 염소도 숭배해 주고.」
「……!」
「근데 왜 이렇게 면상들이 친근한지 모르겠네. 어디서 봤나…?」
마이크가 꺼져 있어서 천만다행이었다.
웃음이 나오는데 이걸 어떻게 웃기도 애매해서 다들 사레가 들릴 때.
「내면의 에너지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양념 치킨과 후라이드 치킨을 번갈아서 빤히 바라보던 헤일리 블루가 우리에게 물었다.
「나한테 방금 끝내주는 아이디어가 하나 떠올랐거든.」
「네.」
「나랑 재미있는 곡 하나 같이 써 볼래?」
밥 한 끼 하자는 듯 대수롭지 않게 이야기하는 상대에게 우리도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언제 곡 한 번 같이 써요.」
「언제가 아니고.」
헤일리 블루가 시원하게 웃었다.
「말 나온 김에 당장 쓰자.」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