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458화
착시 현상처럼 두둥실 떠오른 6개의 존나 때문일까.
눈앞에 있는 사람이 갑자기 친근했다.
대청 마루를 올라와 한복을 입고 두 손을 모아 앉은 헤일리 블루가 우아하게 눈을 감았다.
「존나.」
불경을 외듯이 F 워드를 중얼중얼하는 모습에 우리가 훈훈하게 웃었다.
우리 프로덕션 스탭들이 ‘……?’ 하며 눈을 깜빡이는 동안, 그쪽 매니저가 통역사를 통해 말을 전했다.
“무대 올라가기 전이나 인터뷰하기 전에 긴장을 푸는 의식이니까요. 모쪼록 놀라지 않으셨으면…….”
“아아, 괜찮아요.”
“이런 거야 익숙한 일이니까여~”
익숙한 일이라는 듯 웃는 우리 모습에 오히려 저쪽 매니저가 당황했다.
헤일리 블루가 긴장을 풀기 위해 눈을 감고 Fuck 송을 부르는 동안 우리도 리듬에 맞춰 몸을 흔들었다.
「후우…….」
요정 같은 얼굴이 평온한 미소를 지으며 눈을 떴다.
낭랑한 목소리가 날아들었다.
「이제야 좀 마음이 평온해졌네. 쓰레기 같은 생각들이 사라졌어.」
「저기.」
리혁이가 궁금하단 얼굴로 물었다.
「……그러면 도움이 되나요?」
「딱히?」
그녀가 한옥 천장을 요모조모 뜯어보며 말했다.
「어렸을 때부터 공연을 하고 돌아다니면서 깨달은 건데. 내가 먼저 욕을 하면 누군가 욕이나 야유를 해도 덜 기분이 나쁘더라고. 뭐, 그런 것들이 하나씩 습관이 되는 거지.」
「오호…….」
틴스피릿도 비슷한 거 있던데.
-개새꺄 힘내!
-왈왈!
비슷한 구석이 꽤 보인다.
그 동안 긴장이 풀린 듯 편하게 웃는 스타에게 물었다.
「준비됐나요?」
「됐어.」
카메라 뒤에 서 있는 PD님에게 눈짓을 해 보이고는, 머리에 쓰고 있는 갓끈을 조였다.
동생들에게 눈짓했다.
“손님 맞이할 준비하자.”
“예이~”
갓을 쓴 성균관 유생들이 일어나면서 각자 악기를 하나씩 들었다.
징을 들고 일어나려다 휘청이던 리혁이가 에헴 하면서 헤일리 블루에게 설명을 해 주었다.
「원래 선비들은 이런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들이 아니…….」
1분간 이어지는 설명.
고증이 아니라 재미로 보아 달라는 말에 외국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징을 든 중현이가 채를 추파춥스처럼 들고 있을 때, PD님이 촬영 시작을 알렸다.
“촬영 시작하겠습니다! 하이~ 큐!”
그와 함께 울리는 풍악 BGM.
조선에 당도한 이를 환영하듯이 우리가 악기를 연주하기 시작하자, 자리에 앉아 있는 뮤지션이 귀를 쫑긋했다.
낯선 나라의 전통 음악이라 관심이 가는 표정.
「오……!」
내가 태평소를 불기 시작하자, 헤일리 블루의 눈이 즐겁다는 듯 반짝였다.
그리고 동생들이 국악 연주에 끼어들었다.
중현이의 징이 뀌오옹 울려 퍼지고, 지호가 든 북이 뚠딴딴 뚠딴딴 현란한 소리를 냈다.
동생들과 눈을 마주했다.
‘어떻게 이런 녀석들만 모였을꼬.’
‘형이 대장이에요.’
잘 연주한다면 황금색이어야 할 연주가 좋지 못한… 색으로 물들어 가는 모습에 내가 훈훈하게 웃고.
우리 스탭들과 헤일리 블루 측 스탭들이 박장대소를 할 때.
덩실덩실 춤을 추는 비주와 악기를 연주하는 우리에게 예상치 못한 반응이 날아 들어왔다.
「허어어……!」
바로 박수를 치면서 좋아하는 헤일리 블루였다.
* * *
헤일리 블루의 눈이 커졌다.
‘세상에.’
열심히 연주하는 태평소를 방해하겠다는 듯이 광기 어린 북소리와 징소리가 날아 들어온다.
갓을 쓰고 옷자락을 나풀거리는 미친 선비까지.
음악에서 느껴져야 할 형식과 규칙이 모두 붕괴되고 있었다.
연주에서 뿜어져 나오는 광기에 헤일리 블루의 가슴이 블루블루해지기 시작했다.
‘또라이들이다…! 너희도 제정신이 아니구나!’
낯선 땅에서 동지를 만나 기쁜 그녀였다.
헤일리 블루가 같이 일어나서 덩실덩실 춤을 맞춰 주자 뉴블랙 멤버들이 크게 기뻐했다.
‘우리 연주가 마음에 드는구나!’
‘너무 좋아. 이런 쓰레기 같은 연주!’
동상이몽으로 호스트와 게스트가 오프닝 국악 환영씬을 촬영하는 동안.
역사 탐험대부터 뉴블랙과 함께 해온 성 PD가 따스하게 웃으며 조연출을 불렀다.
“자막 꼭 넣어. 우리 프로그램은 국악에 대해 어떠한 폄하의 의도도 없다고…….”
“이미 메모했어요.”
“잘했다.”
“이제 일상이니까요.”
“그렇지.”
고개를 끄덕이며 서로에게 엄지를 치켜드는 제작진이었다.
* * *
보통 게스트까지 일어나서 같이 노는 경우는 흔치 않았는데.
헤일리 블루 덕분에 흥이 난 우리가 국악 연주를 마무리하면서 뿌듯한 웃음을 지었다.
「어서 와요, 헤일리~!」
「반가워!」
연주 한 번 듣더니 살짝 친근하게 변해 있는 헤일리 블루였다.
「연주가 마음에 들었어요?」
「응.」
그녀가 화사하게 웃었다.
「쓰레기로 만든 꽃 한 송이라고 할까. 예술적이라 좋네.」
「……그래도 이 정도면 나름 장족의 발전을 한 거거든요.」
「맞아요. 구석기 시대에서 신석기 시대 정도로 넘어간 거죠.」
농담을 한 리혁이가 혼자서 빵 터졌는데, 다들 뚱한 표정으로 바라보자 조용히 자리에 앉았다.
지호가 웃으면서 ‘No jam’ 하자 리혁이의 귀가 달아올랐다.
그렇게 한옥 마루처럼 꾸며진 방에 테이블을 두고 마주 앉고는, 머리에 꽂은 비녀를 만지작거리는 헤일리 블루에게 말했다.
「헤일리, 한국에 오니까 어때요?」
「좋아.」
그녀가 웃으며 말했다.
「공항에서부터 팬들이 기다려 주는데, 처음에 어디 총리라도 입국하는 줄 알았지 뭐야. 여기서 헤일리! 저기서 헤일리! 하는데 기분 진짜 째지더라고.」
「팬들이 엄청 많았나 보네요.」
「여기에도 팬이 있을 줄은 몰랐거든.」
K 하트도 배웠다며, 카메라를 향해 잔망스러운 손가락 하트를 날리며 웃는 헤일리 블루였다.
그쯤에서 내가 상대의 출연 이유를 짚어 주었다.
「한국 공연은 이번이 처음이라 들었는데, 10분 만에 전석 매진 됐다고 들었어요.」
「고마워, 한국 팬들~ 사랑해!」
카메라를 향해 방긋 웃으며 손을 흔드는 그녀의 모습에 슬그머니 웃음이 나왔다.
욕 잘하지만 내 팬에게는 따뜻한, 익숙한 인상이었다.
큐 카드를 본 비주가 헤일리 블루에게 물었다.
「이번 공연에 특별한 점이 있다면, 혹시 소개해 줄 수 있나요?」
「특별한 점이라… 많지.」
그녀가 웃으며 말했다.
「하나를 꼽자면 이번 공연에는 한국 팬들을 위해서 전세기를 두 대나 동원했어.」
「……두 대나요?」
「최고의 댄서들을 데려왔고, 음향 장비와 조명 장비도 직접 가져왔지. 60미터짜리 초대형 스크린도 설치해서 진짜 공연이 뭔지 보여 줄 예정이야.」
그 말에 내가 허어어 하며 바람 빠진 소리를 냈다. 고개를 돌리는 상대에게 지호가 말했다.
「이 사람이 팬이에요.」
「내 팬이었어?」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첫 앨범 나왔을 때부터 들었는데, 이번 콘서트에 못 가서 너무 아쉬워요.」
「표를 못 구해서?」
「스케줄이 바빠서요.」
「그럼 어쩔 수 없지. 돈이 최고야.」
그러더니 내 눈을 지그시 바라보던 헤일리 블루가 생긋 웃었다.
「이따가 시간 괜찮아?」
「네.」
「촬영 끝나고 기다려. 노래 한 곡 들려줄게. 혹시 몰라서 기타도 챙겨왔으니까.」
「……!」
좋아하는 곡이 있냐는 말에 냉큼 ‘Blue Bird’라고 답을 해 주었다. 상대가 흔쾌히 승낙했다.
내가 기쁨의 어깨춤을 추자, 간신배들이 같이 춤을 춰 주었다.
그렇게 내한 공연에 대한 프로모션을 해 주며 인터뷰를 한 후.
「헤일리는 우리에 대해서 알고 있어요?」
「당연히 알고 왔지.」
그러고는 아 하며 말했다.
「사실 한국에 오기 전부터 알고 있었어.」
「네?」
「미국에 있을 때 너희 영상을 봤거든.」
「아…….」
뉴블랙 TV를 봤다는 건가 싶었는데, 주섬주섬 한복 주머니를 뒤적이던 헤일리 블루가 폰을 꺼냈다.
「자.」
우리 눈앞에 영상이 재생됐다.
「어?」
「이거…….」
정말 오랜만에 본 영상이었다.
작년도에 노스탤지어 출연진이 입국할 때, 한국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려 준 가이드라인이었다.
-안녕!
푸근하게 웃는 중현이가 합장을 하며 인사하자, 리혁이가 삐딱한 표정으로 X를 들었다.
-안녕하세요.
꾸벅하면서 인사하자 지호가 속이 시원하다는 표정으로 배를 쓸어내리며 O를 드는 영상.
간만에 보는 영상에 추억에 젖어들 때.
리혁이가 물었다.
「헤일리, 이건 어디서 났어요?」
「남편한테 받았어.」
「……남편이요?」
헤일리 블루의 남편이 누구인지는 위키피디아를 통해 알고 있었다.
크리스 카일.
미국에서 잘나가는 의학 드라마의 남자 주인공으로 캐나다 출신 배우…인데 우리와는 일면식이 없다.
「크리스가 조앤 킨에게 받았다고 했던가…? 아무튼 남편이 받아온 영상이야.」
「아……!」
그제야 어찌 된 일인지 깨달았다.
노스탤지어의 주인공이자 우리 친구인 루퍼트 딘이 얼마 전에 누군가에게 한국 길라잡이 영상을 보내 줘도 되겠냐고 물었고. 업로드만 안 하면 배포야 OK라고 해 주었다.
문제될 내용도 전혀 없고.
그게 흐르고 흘러 여기까지 온 모양이다.
막내가 흐음 하며 말했다.
「돌다리만 건너면 다 아는 사이라고 하던데 진짜였나 보네여.」
「여섯 다리.」
리혁이의 목구멍에서 이 돌대가리야 하는 말이 나왔다가 들어갔다.
건강하면 됐지 하는 마음으로 막내를 슥슥 쓰다듬어 주는 동안 헤일리 블루가 말했다.
「한국에서 유명한 가수라는 것만 알고 왔어. 미리 자세하게 이야기를 들으면 판단에 지장을 줄 테니까.」
「그런가요?」
「친구가 전해 주는 말도 왜곡될 때가 많은데. 바깥에서 보이는 거랑 실제 모습은 다를 수 있으니까.」
본인이 악성 루머나 타블로이드에 시달린 적이 많아서 그런지 남에 대한 말을 일부러 안 보려 하는 것 같다.
동생들과 눈을 마주쳤다.
‘우린 사실이라고 해도 루머라고 믿던데…….’
‘이 형 얘기만 나오면 다 지어낸 줄 알아.’
내가 웃으며 말했다.
「그러면 우리가 누군지 자세하게 소개해 줄게요.」
우리가 하는 일보다 성격이나 특징에 더 관심을 가진 눈치라서 그쪽 위주로 소개를 했다.
내가 이 오합지졸의 두목이라고 소개할 때.
중현이가 바톤을 이어받았다.
「…랩을 하고 있고. 여기서 제 역할은 미스터 선의 오른팔이에요.」
「……!」
나를 시작으로 다들 웃음을 터뜨리는 동안, 옆자리에 앉아 중현이를 바라보는 비주의 눈망울이 커졌다.
오른팔을 뺏겨서 분하고 괘씸하고 그런 표정.
골똘히 고민하던 비주가 영어로 외쳤다.
「저는 이 사람의 왼팔이에요!」
지호도 질세라 외쳤다.
「그럼 저는 왼다리!」
「뭐, 남는 거 오른다리 할게요.」
헤일리 블루가 정신없이 웃음을 터뜨리고 있는 동안, 졸지에 엑조디아가 된 내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보시다시피 전 팔다리가 많아요.」
손을 들어 문어처럼 흐느적거리자 상대가 아예 자지러지기 시작했다.
외국 사람들은 이런 유머를 좋아하나?
「오징어도 보실래요? 오징어 왕자가 추는….」
동생들이 우르르 달려들어 내 팔다리를 붙잡았다.
“하지 마요!”
“우주 형! 제발 품위를 지켜요!”
“으아아! 국격 하락한다아아!”
* * *
오프닝을 마치고 본격적으로 토크에 들어갔다.
일전에 마에다 선생님을 소개했듯이 시청자에게 그간 헤일리 블루의 디스코그라피를 짚어가는 시간.
그 전에 제대로 소개부터 했다.
「본명은 헤일리 브룩스.」
「맞아.」
「캐나다 출신이고요.」
「그것도 맞지.」
고향 도시에 가면 동상이 세워져 있다는 말도 덧붙였다.
슈퍼볼 하프타임에도 나오고 그래미 어워드 탔다고 고향 도시에서 아예 ‘Haley Blue Day’까지 제정했다고 하는데.
역시 사람 사는 곳은 다 비슷하다는 생각에 웃음이 나왔다.
「예명으로 블루가 된 이유는 파란색이 좋아서인데, 특별하게 선호하는 이유가 있나요?」
「딱히 별 이유는 없고 적녹색맹이라서. 나한테는 파란색이 제일 잘 보여.」
어떻게 음악을 시작하게 됐고, 첫 앨범을 낼 때 어땠는지 등등.
커리어에서 가장 큰 획을 그었던 그래미 수상에 대해서도 물었다.
「08년도에 데뷔한 이후로 13년도에 마침내 그래미 어워즈에서 올해의 앨범상을 받았잖아요. 하필이면 그해에 명반들이 쏟아져 나와서 경쟁도 치열했고요.」
「좋았지, 그때. 28살 생일에 탄 거라 더 의미가 있었어.」
100가지가 넘는 부문을 지닌 그래미 어워즈에서도 가장 중요한 네 부문. 그 중에서도 가장 주목을 받는 것이 앨범상이다.
「기분이 어땠나요?」
「하루 동안은 기분이 존나게 째지다가 그 다음에는 팍 식더라고. 걱정이 스멀스멀 밀려오고. ‘내가 이걸 어떻게 유지하지?’ 하는 고민이 드는데…….」
다른 상이긴 하지만 우리도 작년도에 대상을 탄 이후에 느낀 기분이었다.
큰 상을 타서 좋은데 이걸 어떻게 해야 유지라도 할 수 있을까.
내가 말했다.
「그만큼 고갈에 대한 고민도 컸겠어요. 창의력이라는 게 무한정 퍼 올릴 수 있는 게 아니니까.」
「그치. 요즘에는 그게 고민이야.」
헤일리 블루가 답했다.
「기계적으로 한 곡 쓰는 거야 쉬워. 그냥 기타 하나 놓고 흥얼대다가 녹음을 하면 되니까. 그런데 사람 하는 일이라는 게 관성이 붙거든.」
「맞아요. 이번에 쓴 곡이 저번에 쓴 곡이랑 비슷하고.」
「내 색은 유지하면서, 저번보다 새롭고 다른 곡을 쓴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야.」
「거기다 저번과 다른 주제여야 하고요.」
「내 말이.」
곡을 쓰는 사람들끼리도 잠시 고민을 나누었다.
안 그래도 다음 정규 앨범 때문에 우리도 고민이 깊었다.
노래는 좋아야 하는데 저번과 다른 곡이어야 하고, 또 정규 앨범다워야 한다.
-우리 이번에 편하게 작업해 보자.
-우리끼리 편하게 한 번 써 봐요. 안 되면 그냥 외주 주면 되니까.
매일 아이디어 회의를 하면서 편하게 곡을 쓰자고 서로를 다독여 주긴 하지만.
그런다고 부담이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그럴 때는 도움이 되는 게 있어.」
「있나요?」
「뭔가 내 일이 너무 대단하고 중요하게 느껴질 때마다 이걸 외우면 조금 도움이 되거든. 자, 따라해 봐.」
헤일리 블루가 자기 어깨를 통통 치며 말했다.
「나는.」
「나는.」
「존나 아무것도 아니다.」
「흐하하하!」
스탭들까지 다 웃음이 터져 나왔지만 헤일리 블루가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누구나 자의식 과잉이 될 때가 있어. 그래미도 타고 내가 존나 쩌는 사람이 됐나? 싶어서 그럴 때가 있는데. 이렇게 스스로에게 되새겨 주는 거지. 나는 존나 아무것도 아니다.」
「한 번 해 봐야겠어요. 그 F는 빼고요.」
「F가 핵심인데. 뭐 편한 대로 해.」
중얼중얼해 보는 우리에게 그녀가 유쾌하게 웃어 보였다.
「가끔 힘 뺄 때 좋아. 평론가나 헤이터들이나 헤일리 블루 다음 앨범 망해라 기다리는 거지. 일반인은 관심 없거든. 그냥 노래 나와서 좋으면 리스트에 추가, 끝.」
「그러네요.」
「어차피 100년 후에는 아무도 기억 못해. 100년 전 사람 중에 아는 가수 있어?」
상대의 말을 인상 깊게 새기는 동안, 한 분야에서 탑에 올라간 사람들은 다 이유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칠고 직설적으로 말을 하면서도 깊게 생각한 게 보인다고 할까.
개인적으로도 도움 되는 이야기가 많아서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신이 났다.
그건 상대도 마찬가지인 듯했다.
「인터뷰 재미있네!」
「그래요?」
「이런 데서 멀쩡한 질문을 들어본 건 처음이야.」
헤일리 블루가 만족도 100프로인 표정으로 웃었다.
사건사고를 몰고 다니는 이미지라, 미국 언론에서 이런 부분을 전혀 조명해 주지 않는다나.
얘는 까도 되겠다 싶은 이미지가 형성되면 그때부터 사람 하나 죽일 기세로 달려드는 게 미국 연예계라고 들었다.
그래서 그런 것인지.
-내 앞에서 꺼져.
-가슴? 그러는 네 가슴은 진짜냐?
-하하하하! 엿 먹어라! 이 파파라치 새끼들아! 뻐큐 머거! 두 번 머거!
…우리가 본 영상 속에서는 이런 이미지였는데.
지금은 어린아이처럼 웃으며 노래에 대한 이야기를 이러쿵저러쿵해 주는 가수였다.
여러모로 색다른 면모를 발견해서 신기했다.
「자, 그러면…….」
다음 코너로 넘어가려고 할 때.
구르르르릉!
커다란 소리가 울려 퍼지자 헤일리 블루가 눈을 크게 떴다.
「무슨 소리야?」
「중현이 배에서 난 소리에요.」
「그게 배에서 난다고?」
「믿기지 않겠지만 사실이에요.」
중현이가 ‘쏘리’ 하며 웃을 때, 내가 웃으며 물었다.
「이제 한국 음식을 걸고 승부하는 코너를 진행할 텐데요. 헤일리가 저희에게 도전을 하는 거예요.」
「도전?」
「종목별로 하나씩 있는데, 거기서 승리를 거두면 음식을 쟁취하는 거죠.」
제작진 쪽을 가리키자 양념치킨과 후라이드 치킨을 비롯해, 각종 먹을거리가 포진해 있었다.
내가 손을 튕기자 제작진이 미친 듯이 손부채질을 하기 시작했다.
「참고로 아직까지 음식을 먹고 돌아간 스타는 아무도 없어요.」
「보통 약 올리다가 먹게 해 주는 거 아니었어?」
「저희는 음식에 최선을 다합니다.」
밀려오는 음식 냄새에 그녀가 침을 꼴깍이며 물었다.
「게임은 어떻게 골라?」
「랜덤으로 정하는 건데요.」
제작진이 룰렛을 가져왔다.
각자 우리의 캐리커처가 붙어 있고, 거기에 영어로 쓰인 종목을 헤일리 블루가 살펴볼 때.
「돌릴게요.」
슬쩍 룰렛을 돌리려고 손을 올릴 때.
덥석.
내 손목을 붙잡은 헤일리 블루가 단호하게 말했다.
「너는 안 돼.」
「…….」
「다른 사람이 돌려. 느낌이 좋지 않아.」
어딘가 찜찜하다는 듯 말하는 가수의 모습에 동생들이 박수를 치며 웃음을 터뜨렸다.
동물적인 감각으로 뭔가를 포착한 듯했다.
내가 멋쩍게 웃으며 손을 뗄 때, 졸개들을 살펴 본 헤일리 블루가 누굴 지목할지 고민하는 듯했다.
제일 하찮아 보이는.
여기서 지목되면 넘버 5라 중현이를 제외한 셋이 긴장할 때.
「오른다리! 부탁해!」
「……!」
곧이어 벌게진 누군가의 얼굴에 비주와 지호가 바닥을 팡팡 치며 웃었다.
그리고.
리혁이가 토라진 얼굴로 오른발을 룰렛에 내밀었다.
「오른다리답게 오른발로 굴리겠어요.」
새침한 점순이 표정에 헤일리 블루가 빵 터질 때, 리혁이가 흥 하며 말했다.
「곧 결과가 나올 거예요. 헤일리, 이제 당신은 날 고른 걸 후회하… 느엇?」
「……!」
“뜨헛! 느아아앗! 아악!”
룰렛이 돌아가면서 졸지에 다리 찢기가 된 리혁이의 모습에 다 같이 바닥을 구르며 웃음을 터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