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488)화 (488/1,031)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488화

금요일 밤.

아이돌 팬들이 TV 앞에 앉았다.

‘이건 꼭 봐야지.’

TV 상단에 라는 로고를 보면서 저마다 기대감에 가슴을 두근거리는 팬들이었다.

최애가 나오는 댄스 경연 예능.

그런 기대감 때문인지 아이돌 커뮤니티의 게시판이 복작거렸다.

-오늘 아이무브 출연하는 아이돌 15인 라인업 (재업)

-[아이무브] 출연자 중에서 연차 젤 높은 게 누구임?? 란 맞음??

-와ㅋㅋㅋ 근데 TJ 대단하다 데뷔한 지 얼마 안 된 애들을 바로 이런 프로에 꽂아버리네

-무브 청률 얼마 나올 거 같음?

-순위 어케 매긴다고 말 나온거 있음? 전문가 점수로 하면 ㅈㄴ 에바일 거 같은데;

경연이라는 프로그램의 특성 때문인지 복작복작한 와중에도 서로 견제하고 디스하는 듯한 분위기가 느껴진다.

SNS는 그보다 더한 반응.

핸드폰을 바라보고 있던 아이돌 팬들이 혀를 내둘렀다.

‘벌써 기 빨리네.’

출연자가 15명이란 것은 출연하는 아이돌들의 소속 그룹만 15개란 이야기였다.

벌써부터 1회가 끝나고 나서 ‘오늘 아이무브 1회 출연자별 분량’ 같은 식으로 올라올 글이 눈에 선하다고 할까.

누군 인지도 없어서 분량이 적고, 누군 인지도 많아서 분량 많고.

‘눈에 보인다. 보여.’

수플레들이 핸드폰을 바라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방송이 끝나고 나서 ‘오늘 뉴블랙 비주 분량’ 같은 제목으로 글이 올라오고, 차별 심하다는 둥 하는 글이 올라올 듯한 분위기였다.

‘아, 진짜 그럴 것 같은데…….’

머릿속으로 게시판에 상주하는 까들의 반응을 떠올리며 어떤 식으로 나갈지 궁리하는 한편.

오늘 방송을 보는 수플레들의 마음은 평소와는 조금 달랐다.

‘비주가 나온 방송이라 잘돼야 해.’

멤버인 비주가 처음으로 개인 활동을 하기 위해 고른 프로그램이라 잘 됐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그런데 이게 과연 잘 될지 긴가민가하다.

1회성으로 출연하는 노래 예능도 아니고 춤으로 자웅을 겨루는 댄스 예능. 거기에 두 달간이나 방영하는 장기 프로젝트다.

문제는….

‘지상파 놈들이 이런 걸 잘 만드나?’

서바이벌이나 경연에 노하우가 많은 K-net 같은 음악전문채널이라면 모를까.

노래도 아니고 댄스 경연 예능을 과연 TBC가 잘 만들어 낼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PD도 영 감이 없는 것 같은데.’

이런 프로그램은 최대 6~7명 정도여야 집중도가 높을 텐데. 무슨 생각으로 15명이나 부른 건지 모르겠다.

아무리 행복회로를 그리려 해도 떠오르는 건 15명이라는 숫자에서 비롯된 산만한 오디오, 산만한 편집 등이었다.

드라마가 작가빨, 영화가 감독빨이라면 예능은 무조건 PD의 편집빨이다.

‘뭐. 그래도 잘할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PD가 편집을 잘해서 재미있게 만들어 놨다고 해도 근심걱정이 컸다.

비주가 뉴블랙이기 때문이었다.

대중들의 관심까지 끌어모을 수 있는 탑티어 아이돌이라 필연적으로 제작진이 분량을 많이 줄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될 경우에 방송이 끝나고 나서 괜히 욕을 먹게 될 가능성이 높았다.

‘벌써부터 빌드업하네. 이것들.’

아이돌 커뮤니티의 게시판이나 SNS에서 미리 깔 준비를 하기 위해 슥슥 움직이는 무리들이 보인다.

은은한 뉘앙스의 글들을 보며 수플레들이 미간을 모을 때.

-악 시발 한다

-아직 치킨 안 왔는뎅

-시작한다ㅏㅏ

-개떨려

마침내 의 1회가 시작됐다.

처음에 나오는 예고편은 예상했던 그대로였다.

세계 최고의 K팝, 그 최고의 댄서들이 꿈의 무대를 보여 줍니다…! 하는 과장된 내레이션과 자막들.

-비주 진짜 잘생겼다..

-하루야ㅠㅠㅠㅠㅠ

-나무 화장 연해지니까 어색하다ㅋㅋㅋ 나뭇가지로 불러야할거 같음

-내돌도 안 나오는데 난 왜 이걸 튼것인가

-케빈 극혐하는 짤로 유명해진 애가 쟤 맞지?? 에이플비 리더

-우산 도베르만 닮았어

최애가 지나갈 때마다 아이돌 팬들이 흥분하고 있을 때.

자료화면이 나오던 영상의 분위기가 급반전됐다.

[…기존의 서바이벌은 잊어 주시길.]

시청자들이 고개를 갸웃하는 동안 TV에서는 그들이 예상한 것과 전혀 다른 분위기의 영상이 흘러나왔다.

출연자들이 닭 머리띠를 쓴 채 야유회 같은 곳에서 돌아다니거나, 병맛스러운 장난을 치는 영상들.

-??

-지금 내가 뭘보고 있는 거지..

-피디 도랏?

-ㅋㅋㅋㅋㅋㅋㅋㅋ왜 갑분 주말예능인데

모두가 얼떨떨해 하면서도 웃는 동안 거기에 화룡점정처럼 스쳐 간 장면이 하나 있었다.

테이블이 번쩍 들리고 네 쌍의 다리가 움직이면서 바선생처럼 움직이는 영상.

거의 1초 만에 지나갔지만 뇌리에서 잊힐 수 없는 장면이었다.

-잠깐만요 선생님 방금 뭐였는데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저거 뭐임???

-뉴블랙이라도 나온 줄 알앗네ㅋㅋㅋㅋㅋ

-지금 보다가 언니랑 눈마주침 너도..? ㅇ런 분위기엿음

-저건 또 대체 뭔 상황이냐

그리고 왠지 모르게 네 쌍의 다리가 익숙한 수플레들은 먼곳을 바라볼 뿐이었다.

‘아니겠지.’

아닐 거야.

우리 애들이 요즘은 인기가 많아져서 그런지 멋짐 뿜뿜한 모습을 보여 주고 있지 않던가.

아마도 아닐 것이다.

[제가 누군지 맞춰보세요~]

[꺄하하핳!]

온더스에서 나왔던 멘토 맞추기 게임의 기억을 애써 잊으며 방송을 시청하는 수플레들이었다.

어쨌거나 예고편의 어그로는 성공적이었다.

-방송 컨셉이 대체 뭐임..???

-피디가 도른 것 같은데 편집보면 잘하는 거 같고

-이거 먼가 내 예상이랑은 완전 다를거 같다

-서바를 어케 하려는건지 모르겟네

아이돌 팬들이 방송에 몰입하기 시작했다.

무슨 내용인지 짐작이 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대개 아이돌 경연 프로라고 하면 긴장감 어린 BGM 깔아주고, 마치 신성한 경연 같은 진지한 분위기를 조성하지 않던가.

그런데 이 프로그램은…….

‘좀 맛이 간 것 같은데.’

재미가 없는 것은 아닌데 그들이 예상하는 것과는 톤이 좀 달랐다.

그렇게 시청자들의 시선이 집중되는 동안 방송이 쭉쭉 진행됐다.

-톤만 따지면 주말예능이랑 비슷한 느낌인거 같긴 하다

-ㅇㅇ 1화에서 멤버들 모으는 거 보는 느낌.. 서바 풍의 인터뷰는 아닌듯

-PD 누구야?? 편집 깔끔하고 좋다

-일단 악편으로 어그로 끌겠다는게 안보여서 편-안

주세한이나 미프가 첫 회에서 멤버들을 모으고, 그들을 소개하는 것을 보여 주듯이 내용이 전개된다.

그 과정에서 출연자의 캐릭터성도 구축하고.

사전 인터뷰도 ㄱㄴㄷ 순서로 보여 주는 식이었다.

‘비주다!’

화면 속에서 뽀얀 피부를 자랑하는 미소년이 꼼지락거리며 사전 인터뷰를 한다.

[저는 춤이 정말 좋아요. 춤을 출 때마다 막 해방되는 느낌? 그 느낌이 너무 좋은 것 같아요.]

[이 프로그램을 보고 꼭 나오고 싶었어요…!]

[이번에 출연한 다른 선배님들, 후배님들하고도 꼭 친해지고 싶어요.]

차분하게 말을 하다가도 춤 얘기만 나오면 뺨에 살짝 홍조가 돌면서 흥분하는 비주의 모습에 팬들이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그래그래. 우리 비주 하고 싶은 거 다 해.’

까는 애들은 우리가 오함마로 때리면 되니까.

그들이 흐뭇해하는 동안 다른 아이돌 팬들도 비주의 비주얼에 감탄하고 있었다.

-새삼스럽지만 비주 진짜 예쁜거 같다

-어떤 걸그룹이 전에 비주 얼굴 때문에 근처에 앉기가 좀 그렇다고 한게 왜 그런지 이해함ㅋㅋㅋㅋ

-존예랑 존잘을 반반 섞으면 비주가 나올 거 같음

-친구 만들겠다는거 ㄱㅇㅇ

전반적으로 훈훈한 분위기에 게시판이 나름 동글동글해졌다.

그럼에도 여전히 불씨는 남아 있었다.

저 신인들은 대체 무슨 빽이냐, 음판 줄세우면 어디가 상위권이냐, 쟤는 그룹 인기멤이냐 하는 이야기들이 나오면서 다시 싸움판을 벌어지는 한편.

TV 속에서는 마침내 첫 녹화를 앞두고 대회의실에 모이는 장면이 흘러나왔다.

[안녕하세요!]

비주가 밝게 인사하며 들어와 자리에 앉고, 다들 데면데면하게 대했다.

실제로 보니 어딘가 아우라 같은 게 풍긴다는 출연자들의 인터뷰가 나오고 비주가 홀로 외롭게 있을 때.

수플레들은 웃고 있는 비주의 살짝 쳐진 눈초리를 보며 이잉 했다.

‘저거 슬플 때 표정인데.’

사람들이 말을 안 걸어 줘서 슬퍼하는 비주의 모습에 팬들이 귀여워할 때.

곧이어 TV 속에서 영상이 하나씩 흘러나왔다.

각 그룹이 자신들의 멤버에게 잘하라고 인사 메시지를 담아 보내는 훈훈한 영상 편지였다.

-란 메시지 보면서 내가 대신 감동

-트윙클도 말 나오는 거 하나없이 ㄹㅇ 오래가는 이유가 있는듯

-분위기 왜 따수운건데ㅠㅠㅠㅠ

-신인 애들 메시지 나올때 약간 찡했다ㅠㅠ 나오는 것만으로도 잘못하는 거같아서 떨렷다고

TV 속과 마찬가지로 인터넷 게시판도 분위기가 조금씩 따스해져 가고 있었다.

물론 그 분위기가 얼마 가지 못하리라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이 귀요미가 누군지 아시나요?]

[바로 저희 아이입니다…!]

비주의 어린 시절 사진과 함께 뉴블랙이 주접떠는 목소리가 흘러나왔기 때문이었다.

감동 어린 메시지에 팬들이 ‘얘들아…!’ 하며 통곡하는 것도 잠시.

곧바로 비주를 위해 우주가 작곡한 ‘비주야’ 송이 흘러나오면서 게시판이 웃음바다로 변했다.

-진짜 귀엽다ㅋㅋㅋㅋㅋㅋ

-뉴블랙이 잘된 이유: 귀여워서

-타그룹 덕인데 늅은 멤버들끼리 서로 위하고 챙겨주는게 눈에 잘 보여서 볼 때마다 기분 좋아짐

-비주 눈에서 꿀 떨어진다ㅠㅠㅠ

-이런 김비주를 단호하게 만드는 김중현은 도덕책..

그러는 한편 영상 속에서 멤버들이 ‘님들의 영상과 사진을 비주가 가지고 있어요!’ 하는 말에 출연자들이 관심을 보였다.

[정말 우리 영상이 있어?]

[네…….]

수줍게 웃은 비주가 어린아이가 아끼는 과자를 보여 주듯이 핸드폰에 담긴 영상들을 보여 주었다.

[엇… 이건 우주 형 사진이라.]

엄청난 숫자를 자랑하는 우주 형 폴더에 잠시 웃음이 나왔다.

-극한의 선우주 악개ㅋㅋㅋㅋㅋ

-방금 캡처한 사람 잇음??? 사진 개수가 세자리수엿던 거 같은데???

-진짜 수플레로서 반성하게 된다

-아 뭐얔ㅋ 지금 내 폰 사찰당하는줄ㅋㅋㅋㅋㅋㅋ

-아 갑자기 친근하다

-김비주 폰 비번 풀고 싶으면 우주 생일 1109 입력하면 될듯

-ㄹㅇ 그럴수 있음ㅋㅋㅋㅋㅋㅋ

최애의 사진과 영상으로 가득한 갤러리에 아이돌 팬들이 비주에게 친근함을 느끼는 한편.

곧바로 다른 갤러리의 영상들이 공개되면서 수플레가 아닌 다른 아이돌 팬들의 기분이 좋아졌다.

‘진짜로 있네?’

트윙클의 란, 와일드 우산을 비롯해 이 자리에 참석한 사람들의 영상이 다 있었다.

그들뿐만 아니라 스케줄 때문에 참여하지 못했지만 아이돌 대표 춤꾼으로 꼽히는 사람들의 영상까지.

이미지를 위해 컨셉용으로 준비한 게 아니란 건 지나가는 영상의 썸네일들로 알 수 있었다.

‘저거 아는 사람만 아는 직캠인데…?’

카메라가 클로즈업해서 담은 리스트.

마치 숨은 골목의 맛집과 간식이 맛있는 고속도로 휴게소까지 담긴 리스트를 보는 듯한 기분이었다.

-맛잘알 인정ㅋㅋㅋ

-리스트 갓벽하다 정말

-비주 폰에 있는 저 영상 리스트 게시글로 올리면 ㄹㅇ 싸움 1도 안날듯

-춤 잘 추는 사람도 보는 눈이 다 비슷한가

-1n년차 케이팝 덕후인데 감탄만 나온다 진짜ㅋㅋㅋ

아이돌 사이에서 손꼽히는 춤꾼인 비주가 자신의 최애가 나온 직캠들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서 왠지 모를 동질감과 흐뭇함이 느껴졌다.

평소에 비주에 대해 별다른 감정이 없었던 다른 아이돌 팬들도 왠지 모를 호감을 느꼈다.

내 최애를 좋아하거나 잘해 주는 사람은 언제나 호감이 가듯이.

특히나 레전드 직캠이라고 홍보가 된 와일드 우산의 팬들이 비주를 바라보는 시선이 더욱 고와졌다.

-비주 보면 왜 반장 도맡았다는지 알 거 같다ㅋㅋ

-착한 게 아니고 진짜 사람이 선하다는 게 이런 거구나 싶음

-멤버 피셜) 비주 형이 화내는 걸 한번도 본적 없다

점점 비주에게 동글동글해지는 게시판 분위기에 수플레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비주 싫어하면 나쁜 사람이지.’

어디서나 예쁨 받을 성격의 비주가 자연스럽게 출연진들의 친목 가교 역할을 하는 모습이 뿌듯했다.

역시 누구든 비주를 좋아할 수밖에….

[팀 독사과]

점점 메말라 가는 하루와 란의 모습이 미래 예고로 흘러나오면서 먼 곳을 바라보는 수플레들이었다.

그러는 한편, 팀을 선정하고 경연 방식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서 아이돌 팬들의 눈에 이채가 감돌았다.

‘하이스쿨 뮤지컬 같은 건가?’

고교생들이 모여서 으쌰으쌰 뮤지컬 만들자! 하듯이 다 같이 힘을 모아 무대를 만드는 듯했다.

승패가 그리 중요하지 않은 기획.

자극적인 서바이벌을 기대한 몇몇 이들이 실망감을 드러내긴 했지만, 여기까지 시청한 이들은 대부분 만족하는 모양새였다.

‘볼 만하다.’

경연은 흐름상 다음 주인 것 같긴 했지만 무대를 준비하는 과정이 재미있게 그려질 듯했다.

그렇게 아이돌 팬들이 경연 준비과정을 보며 편하게 최애의 주접을 떨 때.

일반인 시청자들도 꾸준히 유입되고 있었다.

“음……?”

다른 채널의 예능을 돌리고 있던 시청자들에게 라는 낯선 프로그램이 보였다.

‘어디서 많이 본 애들이네. 오! 비주다.’

TV 예능 여기저기서 왠지 모르게 본 것 같기도 한 얼굴들과 그 속의 비주를 보며 잠시 멈춘 시청자들.

이내 그들의 눈에도 흥미가 감돌았다.

‘볼 만하네.’

막 재미있고 그런 것은 아니지만 잔잔하게 따라가는 재미가 있었다.

다른 채널에서 더 재미있는 걸 한다면 모를까. 그게 아니라면 계속해서 볼 만한 류의 프로그램이었다.

더 붙잡을 만한 요소가 있다면 모르겠…….

“뭐야?”

그들이 춤으로 표현하려는 <에라트리아>라는 영화의 내용이 중간에 끊기면서 아이돌 팬과 일반 시청자들 모두가 들썩였다.

-아니 그래서 공주가 어케 되는 건데요???

-저거 미튭에 가면 있음ㅇㅇ 근데 자막이 없어

-뒷내용 ㅈㄴ 궁금하다

미튜브에 가서 흑백 영화 <에라트리아>를 검색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포털에서도 실시간 검색어에 에라트리아가 스멀스멀 올라오고 있었다.

그리고 시청자들에게 다음 주를 꼭 보라고 쐐기를 박듯이.

‘오…….’

방송이 끝나고 이제 ‘다음 주!’ 하며 나와야 할 예고편 대신에 짧은 영상이 하나 흘러나왔다.

교회 스테인드글라스 같은 풍의 그림이 눈앞을 지나가며 전문 성우의 내레이션이 깔려 나왔다.

용과 인간들의 싸움을 설명하는 게임 시네마틱 같은 영상.

그와 함께 경연의 오프닝 무대로 보이는 무대에서 클로즈업된 스칼렛의 리나가 고개를 들고 눈을 뜨면서 영상이 끝났다.

짙은 화장 아래로 붉은 눈동자를 표현한 컬러 렌즈가 번뜩이며 잔상이 남는다.

“…….”

그리고 그 영상의 시청을 마친 시청자들의 머릿속에는 모두 같은 생각이 떠오르고 있었다.

‘일단 다음 주 걸 봐야겠다.’

금요일 밤 예능의 신흥 강자가 등장한 순간이었다.

*   *   *

1회 시청률 5.9%.

비주가 출연한 의 1회는 좋은 성적으로 시작을 알렸다.

“5.9프로면 아무도 안 본 거 아니에여…?”

“이거 큰일인 거 같은데요.”

아니었다.

그런 우리의 이야기를 들은 석환 형이 황당하단 표정을 지었다.

“너희가 생각하는 좋은 시청률의 기준이 뭔데?”

“그래도 15%는 나와야 좀 좋지 않나…?”

상대로부터 핀잔만 엄청 들었다.

“동시간대 다른 방송국 예능들이 다 2프로, 3프로 하고 있는데 6프로 시작이면 엄청 잘 된 거지.”

그간에 출연한 다른 예능들이나 드라마 때문에 우리가 시청률 감각이 마비되어 있던 모양이다.

최근 몇 년간 금요일 밤 예능에서 그 정도 시청률이 나온 적도 드물다나.

거기에 지금 입소문까지 퍼졌다.

-새로 시작한 아이무브 볼만하네요ㅎㅎ

-소소잼인데 한데 다음주 경연이 존잼일듯

-어제 아이무브에서 에라트리아 보고 미튭 검색해서 한참 동안 봤네요

아이돌 댄스 예능이라는 소개에 시청을 하지 않았던 이들이 예상과 다른 내용에 관심을 보이는 듯했다.

하지만 아직까지 그리 큰 반응이 오는 건 아니었다.

본격적으로 무대가 안 나와서 그런지 소소하게 재미있다, 볼만하다 하는 평들이 많아 보였다.

“어제 검색어에 에라트리아가 잠깐 올랐다는데요?”

“그래?”

포털 검색어에 ‘에라트리아’가 잠깐 올라왔다는 모양이다.

미튜브 조회수도 급상승해서 원작 감독의 손녀딸이 관심이 고맙다는 글을 SNS로 올리기도 하고.

그렇게 서서히 반응이 오는 한편, 당장 좋은 반응들도 있었다.

“비주야, 비주야. 이거 봐봐. 너 글 엄청 올라왔다.”

“진짜요…?”

TF팀의 홍 과장님으로부터 좋은 반응들이라며 메시지로 받은 글들의 링크였다.

[아이무브 본 돌덕들의 감상]

(머리채 잡고 싸우는 애니메이션의 사진, 그 아래로는 빨간망토 소녀 옷을 입은 비주가 발랄하게 웃고 있다.)

보기 전 예상 : 지옥의 불닭맛 서바이벌

보고 난 후 : 귀염뽀짝랜드ㅋㅋㅋㅋㅋ

-ㄹㅇ 귀여움 파티였음ㅋㅋㅋㅋㅋㅋ

-이거 맞다ㅋㅋㅋ

-여기 보세요 우리 애들이 이렇게 귀엽다고요ㅠㅠㅠㅠ

-[충격] 메댄들 모두 순하다는 것 밝혀져..

-피디 : 귀엽지? 이래도 안 귀여워?

그중에서 특히 비주의 모습이 주목 받고 있었다.

[사과 드실래요…?]

[저기 사과 가져왔는데…….]

여기저기 친해지려고 사과 공세를 퍼붓는 비주의 모습이 귀여웠던 모양이다.

우리도 그런 둘째도 귀여웠다.

“형, 이건 저장해야겠어여.”

“이건 프사각이다. 바꾸자.”

“왜요? 왜 바꿔? 바꾼 지 얼마 안 됐는데….”

리혁이의 화보짤로 하고 있었던 4인의 프사를 비주가 사과 바구니를 들고 환히 웃는 짤로 바꿨다.

“안 바꿔도 괜찮은데…….”

“들었죠? 안 바꿔도 된다잖아요.”

“바꿔도 괜찮은데…….”

비주가 부끄러워하면서 좋아하는 가운데.

한참 동안 홍 과장님이 보내 준 링크들을 보며 좋아했다.

‘우리 형 귀여운 걸 세상이 다 안다…!’

‘둘째가 귀여움.’

제작진 중에 비주의 팬이 있나 싶을 만큼 우리 둘째가 사랑스럽게 비춰진 아이무브의 1화였다.

딱 한 가지 아쉬운 게 있다면 비주의 춤에 대해서 아무도 주목하지 않고 있다는 건데….

이건 다음 주에 본격적인 경연이 나오면 반응이 올 것 같다.

어쨌거나 바쁘게 앨범을 준비하면서 틈틈이 서로의 결과물을 모니터링해 주는 시간을 가졌다.

“오……! 그러니까 우주 형이 외계인인 건가요.”

“중현아, 너 드라마 안 봤지?”

“죄송해요. 사실 안 봤어요.”

총 12부작으로 예정된 <우리 가족은 외계인>도 4회 방송까지 끝나 어느덧 3분의 1지점.

그런 가운데 우리가 절대 감상하지 못하는 게 하나 있었다.

“진짜 안 무섭다니까여.”

“진짜지?”

“넹, 무섭다고 할 때마다 제가 만 원씩 줄게여.”

“…….”

이제는 ‘Modern Horror Stories’라는 영어 제목까지 생긴 웹 드라마 <신이>의 두 번째 화였다.

오랜 세월을 살아온 정체불명의 존재가 비밀 정부기관과 함께 현대의 괴담을 파헤치는 스토리.

아직도 1화의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 우리가 물었다.

“진짜 안 무섭다고 했지?”

“넹, 무서울 때마다 만원 준다니까여.”

그 말을 믿고 결국 시청했다.

2화의 시작 배경은 어두운 아파트 단지 바깥.

무리에서 따로 떨어져 놀이터에서 혼자 놀고 있는 아이가 멍하니 한 곳을 바라보자 엄마가 다가간다.

[서준아. 왜 그래?]

[저기…….]

아파트를 가리켰지만 아무것도 없다.

엄마가 왜 그래? 하면서 아이에게 시선을 돌리자, 그때 아파트에 변화가 일어났다.

누군가 층을 올라갈 때마다 계단의 불이 켜지는데, 5초도 안 되어 1층부터 20층 끝까지 불이 스스스슥 켜진다.

그리고.

맨 꼭대기 층에서 뭔가 거무스름한 형체가 모습을 드러낸다.

거꾸로 매달려서 웃고 있는 듯한 무언가.

그곳의 계단 불이 켜지면서…….

“으아아아악!”

다 같이 비명을 지르며 TV를 껐다.

“만원 줄게여!”

“너나 가져!”

“아니, 왜 제가 나온 건 안 봐주는 건데여…!”

막내의 웹 드라마는 우리가 절대 모니터링할 수 없는 컨텐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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