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489화
그래도 결국 <신이>의 2화를 보긴 했다.
“자기들은 막 방송 하나 나오면 우아아앙 그러면서 내 거는 안 봐 줄라고 그러고.”
“무서우니까 그렇지.”
“이건 저에 대한 관심의 문제예여. 생각해 봐여. 우주 형, 할머님이 공포 영화 보러 가자고 하면 보러 갈 거잖아여.”
“그, 그건 그렇지.”
“이거 봐! 맞잖아여!”
서운하네, 형들이랑 말 안 할 거네 하며 불퉁하게 나오는 막내 때문에 정말이지 어쩔 수가 없었다.
다 같이 눈을 딱 감고 시청하기로 했다.
약속 하나를 걸면서.
“너 대신에 다음에는 무서운 거 출연 안 하는 거야. 알았지?”
“제 거 봐 줄 거예여?”
“응!”
“안 나올게여! 다시는 무서운 거 안 할게여! 누가 억을 줘도 안 할게여…!”
흥분한 막내가 좋아서 하핫 웃는 가운데 우리는 다소 침울한 얼굴로 TV 앞에 앉았다.
비주의 눈에 그늘이 졌다.
“무서운 거 진짜 싫은데.”
“나도 그래요.”
다들 오들오들 떨면서 신이의 2화를 시청했다.
그래도 맨 처음 볼 때만큼 무섭지는 않았는데, 이게 다 댓글창에 등장한 의인님 덕분이었다.
[무서운 거 보면 떠는 사람]
00:37 오들오들..
01:47 오들오들!!!
02:59 아 시발
04:11 오들오들..
..더 보기
무언가 갑툭튀 한다거나 소름 끼치는 장면이 나올 때마다 미리 알려 준 댓글 덕에 우리는 불상사를 피할 수 있었다.
리혁이가 말했다.
“이제 곧 2분 59초네요!”
“모두 눈 깔아!”
볼륨을 1로 맞추고 TV 화면에서 시선을 뗐다. 그러고는 실눈을 뜨고 고개를 빼꼼히 들어서 확인하고는 안심하는 식이었다.
“…….”
우리를 한심하게 바라보는 지호와 눈이 마주쳤다.
괜히 머쓱한 마음에 말이 나왔다.
“……사람이 무서운 거 좀 못 볼 수도 있지.”
“맞아.”
“기껏 내가 좋은 마음으로 봐 주려고 했더니 그런 눈으로 보기나 하고. 우리가 정말 무서워서 이런….”
“저기 봐여.”
지호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방향을 따라 TV를 바라보았다.
“으아아악!”
못 볼 걸 봐 버렸다.
놀라서 순간적으로 눈물이 찔끔 나올 뻔한 것을 훔치며 TV 화면을 바라보았다.
진짜 막내 하나 잘못 둬서 이게 무슨 고생일까. 보는 내내 남은 시간이 얼마나 되는지 시간을 계속 확인했다.
그리고.
“중현아.”
“네, 형.”
“그… 그건 또 뭐니.”
티셔츠 목을 얼굴에 끼운 중현이가 행복한 가오나시처럼 TV를 보고 있었다.
푸근한 얼굴이 엄지를 들며 웃었다.
“이러면 덜 무섭던데요.”
“그래?”
비주와 내가 따라 하는 동안 품위가 없다면서 리혁이가 캐시미어 담요를 뒤집어썼다.
“오.”
확실히 효과가 있긴 했다.
가족 품에 안겨 있으면 안전한 느낌이 들 듯이 티셔츠의 모가지가 나를 안전하게 해 주는 기분.
덜 떨리는 걸 느끼며 웹 드라마를 시청했다.
그리고 느낀 건.
“잘하네…….”
“그져? 저 잘하는 것처럼 보여여?”
인정할 수밖에 없는 지호의 연기 실력이었다.
TV 화면 속에서 ‘신이한’이라는 이름의 고등학생으로 살아가고 있는 아주 신비로운 존재.
[선생님, 안녕하세요. 저희 이번에 수학여행 때문에 여쭤볼 게 있어서….]
[삿된 주술이로구나.]
활발하고 차분한 반장 같은 고등학생과 아주 오랜 세월을 살아온 신적인 존재가 한 얼굴에서 나온다.
분명히 같은 사람인데 여러 개의 얼굴이 공존하는 걸 보고 있자면 신기하다.
내가 평소에 아는 막내의 본모습까지 연기가 아닌가 생각이 들 만큼 TV 속 모습이 연기 같지가 않고 실제 같다.
“진짜 천 년 정도 살아온 사람이 있으면 저럴 것 같긴 하다.”
“맞아여. 그래서 오래된 소나무 같은 거 보면서 연구하고 그랬어여. 시청자가 등장인물에 담긴 시간을 느껴야 하는 배역이라서. 호흡도 더 느릿하게 하고,”
그 말마따나 안에서 살아 숨 쉬는 캐릭터는 마치 오래된 나무처럼 무감정해 보이고 깊어 보인다.
저 캐릭터에게 향이 있다면 도서관에서 오래된 책을 펼쳤을 때 바스락거리는 종이 냄새가 아닐까.
이내 희희낙락하던 막내가 TV 속 자기 모습을 보고는 축 처졌다.
“근데 보다 보면 완전 어설퍼여. 실수한 것도 많구…….”
“아니야. 내가 보기에는 완벽해.”
“…….”
“진짜 잘하네. 우리 막내.”
팔을 툭 치며 말하니 말없이 나를 바라보던 막내가 미소를 지었다.
무서운 부분이 지나가고 뒷부분에 접어들자 비주가 말했다.
“지호 진짜 잘한다….”
“인정.”
“볼 만하게 하네. 뭐.”
막내가 에헤헷 웃으면서 우리도 웃었다.
동시에 가슴이 조금 설렜다.
내가 지금 TV를 통해 보고 있는 건 단순한 웹 드라마가 아니라 가능성이었다.
어떤 배역이든지 소화할 수 있는 빼어난 연기자의 가능성.
앞으로 뻗어 나갈 가지가 무궁무진해 보이는 그 잠재력과 가능성을 보며 괜히 흐뭇한 기분을 느꼈다.
그동안 TV 속에는 퇴마를 마친 주인공이 걸어 나오며 평온한 아파트의 불빛들이 조명되고.
“끝났나!”
우리의 안색이 밝아질 때.
두둥!
[NEXT EPISODE]
미처 피할 새도 없이 무서운 장면이 흘러나왔다.
숨 쉬는 것도 까먹고 TV를 바라보던 우리가 막내에게 물었다.
“지호야.”
“넹.”
“……이거 총 몇 부작이라고?”
“10부작이에여.”
흐뭇했던 기분도 잠시.
‘망했다….’
이걸 앞으로 8편이나 더 봐야 한다는 소식에 우리의 눈앞이 캄캄해졌다.
* * *
지호의 웹 드라마는 좋은 성적으로 순항하고 있었다.
-‘신이’ 초대박 웹드 대열 합류, 회당 200만 뷰
-웹 드라마 ‘신이(神異)’, 역대급 조회수.. ‘뉴블랙 효과 통했다’
-[칼럼] 소재, 구성 톡톡 튀는 웹 드라마 ‘신이’.. 대중에게 통한 이유?
우리의 해외 팬들 덕분인지는 몰라도 거의 어지간한 아이돌 뮤직 비디오처럼 조회수가 나오고 있었다.
국내와 해외 OTT 플랫폼에서도 벌써부터 시즌 2 등을 거론하며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나.
그런 좋은 소식이 들리는 와중에 우리의 앨범에도 좋은 소식이 도착했다.
“안녕하세요!”
“또 보네요.”
바로 다음 타이틀곡 Empire의 안무가 완성되었다는 소식이었다.
직접 완성한 안무를 보여 주기 위해 한아윤 안무가님이 크루 댄서들을 데리고 우리 연습실을 찾았다.
비주가 내게 속삭였다.
“형, 저 너무 행복해요.”
“그래?”
“네, 한아윤 안무가님 안무를 받는다고 생각하니까….”
평소 동경하고 있던 안무가로부터 안무를 받는다는 게 몹시도 행복한 둘째였다.
양 뺨에 손을 올린 채 기뻐하는 모습에 웃었다.
하지만 곧바로 안무가 시작되면서 우리는 웃음기를 잃었다.
“뉴블랙 하면 빡센 퍼포먼스로 유명하잖아요. 그래서 이번 안무는 더욱더 까다롭게 만들었어요.”
“우와……!”
비주가 활짝 웃는 동안 우리가 멍하니 바라보았다.
리혁이가 손을 들었다.
“저, 안무가님.”
“네.”
“방금 댄서 분들 중에서 저기 ‘리혁’이라고 이름표 다신 분이 제 파트 하는 거 맞죠?”
“네. 보다시피 이름표도 달았는데…?”
“잠시 현실을 외면하고 싶었어요…….”
리혁이의 말에 다들 웃음을 터뜨렸다.
하지만 우리 입장에서는 마냥 웃을 수가 없었다.
“저거를…….”
“우리가……?”
매번 안무가 나올 때마다 역대급 난이도다! 하곤 했는데 이번 안무는 또 그 이상의 레벨이었다.
무슨 게임 같다.
이제 겨우겨우 스테이지 하나를 공략해서 올라가면 다음 스테이지에서 크하하하! 하며 춤들이 있고.
“…….”
익히는 거야 바로 복사가 가능해서 어려운 게 아니긴 한데.
근육의 움직임들을 보자마자 알 수 있었다.
이웃집 미소년들의 격한 표현을 인용하자면, 저건 정말로 온몸의 근육을 조지겠다고 만든 안무.
“관절에 무리가 가는 건 뺐어요.”
“……!”
“대신에 건강한 안무로 바꿨어요. 이거 하고 나면 근력 강화 운동할 필요 없을 걸요? 하하하하!”
“…….”
한아윤 안무가님이 호탕하게 웃으면서 큼지막한 귀걸이들이 흔들렸다.
그러면서 안무에 대해 설명을 해 주었다.
“갈등이 주제라고 해서 두 가지 면을 담으려고 했어요. 하나는 고귀한 자들이 춤을 추듯이, 궁중 안무 같은 느낌을 넣었고.”
“오.”
“또 하나는 사자나 호랑이 같이, 동물의 왕 같은 야성적인 느낌을 주려고 했어요.”
리혁이가 실제 동물의 왕은 아프리카 코끼리라고 속삭였다.
“트렌디하게 섞으려고 노력을 많이 했어요. 우주 씨랑 비주 씨가 요청한 게 조금 난해하기도 했는데.”
“조금 그랬죠?”
“그래도 잘 조화가 된 것 같아요.”
우리가 요청한 사항은 지금까지 불렀던 타이틀곡들의 포인트 안무가 이번 타이틀에 자연스럽게 섞였으면 좋겠다는 거였다.
이게 될까 싶어서 가능하면 이러는 게 좋다, 정도로만 이야기를 했는데 우리의 예상을 뛰어넘는 결과물이 나왔다.
‘되는구나!’
왕좌의 주인을 두고 다투는 다섯 태자들의 싸움이라는 컨셉.
각자 맡은 주요 파트가 나올 때마다 그간의 포인트 안무가 자연스럽게 섞여 들었다.
멍하니 바라보는 우리에게 안무가님이 물었다.
“어때요?”
“최고예요.”
클레이의 안무를 받았을 때와는 또 다른 느낌의 완성도 높은 안무였다.
하지만 난이도와 별개로 습득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다들 잘하네!”
“감사합니다~”
“근데 우주 씨는 뭐라고 해야 될지 좀…….”
한아윤 안무가님이 춤을 따라 추는 내 모습을 보더니 말을 고를 때.
근처에 서 있던 댄서들이 말했다.
“표정이 되게 아윤 쌤이랑 비슷한 거 같아요!”
“맞아, 맞아.”
“나도 깜짝 놀랐다니까. 순간적으로 어… 안무가님? 이러고 나왔다니까.”
무의식적으로 안무가님의 표정까지 따라 했던 모양이다.
늘 있는 일이었다.
예전에 마스커레이드의 안무를 가르쳐 줄 때도 클레이가 비슷한 얘기를 한 적이 있었다.
그러면서 한국에서만 쭉 살았냐고 물었는데. 아마 낯선 아시안에게서 친숙한 바이브가 느껴진다, 뭐 그런 게 아니었을까 싶다.
“흐하핫!”
“이 형 또 따라 했어여!”
영상을 확인하고 웃음을 터뜨리는 졸개들과 댄서들에게 내가 말했다.
“이게 저도 모르게 이렇게 돼서요.”
“표정까지 따라 하나 보네?”
“네, 어쩌다 보니…….”
그래서 안무를 배우는 것보다 표정을 빼는 시간이 더 오래 걸리는 편이다.
남의 동작을 또 내 몸에 맞게 해체해서 다시 재조합을 해야 되기도 하고.
어쨌거나 빠르게 안무를 습득했는데, 나와 비주뿐만 아니라 다른 동생들도 마찬가지였다.
“진짜 빨리 배우네. 우리도 연습실에 시계를 없애봐야 되나.”
“역시 원조 독사과팀…….”
엄지를 들고 웃는 댄서들의 말에 우리가 웃었다.
“독사과 팀 그런 건 어떻게 아셨어여?”
“요새 댄서들 사이에서 엄청 핫하거든요. 아이무브.”
“오오…….”
“아는 사람 만나면 다 그 얘기해요.”
춤을 다룬 예능인 만큼 업계인들 사이에서 관심이 대단한 모양이었다.
그런 까닭인지 유독 비주를 바라보는 시선이 많았다.
“연습 장면 나오는데 춤 진짜 잘 추시더라고요. 그거 어지간하면 예쁘게 나오기 힘든 춤 같은데.”
“엇…….”
“너무 잘 춰서 깜짝 놀랐어요.”
“감사합니다.”
댄서들의 칭찬이 민망한지 어쩔 줄 몰라 하는 비주의 모습에 다들 웃었다. 그러곤 더 놀리듯이 칭찬을 했다.
“경연 나오는 게 오늘 밤이죠? 진짜 너무 기대돼요. 엄청 잘했을 것 같아서.”
“허어, 아니에요! 아니에요!”
“비주 씨 춤 보고 우리가 반성했다니까.”
“아닌데, 그 정도 아닌데……!”
비행기를 띄워 주는 이들 때문에 홍시가 된 비주가 손사래를 쳤다.
그럴수록 더 놀리고 싶어 하는 것이 사람 본성인지, 한아윤 안무가까지 가세해서 김비주 최고! 했다.
“비주 형, 지금 너무 귀여운 거 같아여. 근데 제가 더 귀엽져?”
“아니.”
“까비, 거의 넘어왔는데.”
뺨이 발그레하게 달아오른 모습에 귀엽다고 하자 리혁이가 분발하듯이 귀를 빛내려 했지만 귀가 응답하지 않았다.
그동안 어쩔 줄 몰라 하는 비주의 반응에 댄서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반응 진짜 귀여워요…!”
“아니에요. 저 안 귀여워요. 우주 형이 제일 귀여워요.”
내가 맞다고 손을 들었지만 아무도 답해 주지 않았다.
지호가 리혁이에게 자주 쓰는 짤이 떠올랐다. ‘그리고 아무도 관심을 주지 않았다고 한다’였나.
3초간의 정적 후.
다시금 왁자지껄하게 대화가 오갔다.
“우주도 귀여울 수 있는데.”
내 중얼거림에 3인이 반발했다.
“3인칭 한 번만 더 해 봐요. 톡 차단할 거야.”
“아, 싫어. 진짜 하지 마여. 형.”
“형은 방금 저의 옐로카드 50장 중에 한 장을 썼어요.”
동생들의 말을 무시하며 비주를 바라보았다.
다가가기 어려워 보였던 비주가 편하게 느껴졌는지 댄서들이 즐겁게 이야기를 하는 게 보였다.
그리고.
“저, 번호 교환해도 될까요?”
“대박…! 너무 좋아요!”
수줍은 비주의 물음에 댄서들이 경계심 하나 없이 환히 웃었다.
자기들끼리 ‘뉴블랙 연락처…!’ 하면서 놀라워하는 모습에 우리가 대리 기쁨을 느꼈다.
그렇게 한아윤 안무가님 휘하의 댄서들과 비주가 연락처를 교환하고 헤어질 때.
“하핫.”
우리는 보았다.
수줍게 웃고 있던 비주가 핸드폰 속 댄서들의 연락처들을 보며 음산하게 웃는 모습을.
비주가 나를 바라보았다.
“형.”
“응.”
둘째가 악당 꿈나무 같은 표정으로 눈을 빛냈다.
“형이 알려 준 대로 경계심을 허무니까 연락처가 들어왔어요…!”
“해냈구나…!”
성공적으로 잠재적 노비들을 수집한 둘째와 우리가 하이파이브를 하며 기뻐했다.
* * *
그날 밤.
한창 연습실에서 Empire의 새 안무를 습득하던 우리는 노트북을 두고 모여 앉았다.
의 2화를 보기 위함이었다.
“오늘은 경연이 다 나오는 거지?”
“네.”
“잘됐다. 진짜 보고 싶었는데.”
현장에서는 즐기지 못했던 무대였다.
비주네 팀이 나올 때까지 우리가 더 긴장해서 생수를 벌컥 마시고, 다른 팀 무대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으니까.
오늘 한 번 제대로 봐 둬야지.
노트북으로 TBC 채널의 광고들을 보는 동안, 아이 무브의 라이브 채팅창도 살폈다.
-싀바 왜 떨리지
-오늘 너무 재밋을 거 같아요 +_+
-문투 하나요 문투
-문투 안함
-광고가 뭐 이리 많아ㅠㅠ 얼른 보여 줘 현기증나
다들 오늘 경연에 잔뜩 기대한 듯한 모양새였다.
막내가 후후 웃었다.
“이제 비주 형이 나가서 춤을 쑉 하고 추고, 쑥 하고 추고 그러면 댓글창 난리나겠져?”
“난리 나지~”
“아, 진짜 궁금하긴 하네요. 다들 뭐라고 할지.”
한아윤 안무가님의 댄서들처럼 업계인이라면 모를까.
비주한테 따라붙는 수식어를 보면 보통 뉴블랙의 요리사, 길치 등의 예능 이미지가 더 많은 상황이다.
오늘 회차 나오고 나면 아마도 다들 놀라지 않을까.
그렇게 라이브 댓글창을 보고 있을 때.
“오!”
비주가 핸드폰을 바라보며 웃었다.
“민준이한테 톡 왔어요. 지금 가족들이랑 같이 보고 있대요.”
사진을 보니 민준이와 비주네 누나, 부모님이 브이를 한 채 화목하게 웃고 있었다.
중현이가 그걸 보고는 자기도 폰을 들어 보였다.
“우리 가족도 보고 있는데.”
“어? 왜?”
“너 나온다고 하니까 동네 모임해야 된다고 하던데. 친구 나온다고.”
어르신들 취향에 맞을지는 모르겠지만, 중현이네 아버님과 마을 분들이 모여서 술을 마시는 사진이었다.
“그냥 다들 술을 드시고 싶었던 것 같긴 한데.”
중현이의 말에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김덕순 여사로부터 지금 TV를 보고 있다는 메시지를 받아서 동생들에게 공유를 해 주었다.
비주가 웃었다.
“너무 좋아요. 다들 봐 주신다고 하니까.”
지금 어디 있는지는 저마다 다르겠지만, 이렇게 문자로 공유를 하니 다 같이 TV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들어 기분이 좋았다.
그러는 동안.
마침내 I MOVE의 2화가 시작됐다.
두둥!
시작부터 나오는 비주의 얼굴에 우리가 꺄르륵 웃으며 좋아했다.
오늘 환상의 무대가 펼쳐집니다! 하는 예고편이 지난 후.
[자자! 마지막 연습이에요! 마지막!]
[맞춰 볼게요!]
경연의 시작을 앞두고 청춘만화의 한 장면처럼 연습에 열중한 아이돌 멤버들의 모습이 나왔다.
다 같이 진지하게 준비를 하고.
각 팀별로 연습하는 장면도 나왔다.
[비주야. 넌 집에 안 가니…? 아… 여기가 이제 새로운 집이라고… 그렇구나… 그래…….]
[선배님, 저 잠깐만 쉬어도 될까요? 숨이 차서……. 누워서 춤 연습을 하라고요?]
비주가 머쓱한 표정으로 딴 곳을 바라보는 동안 우리도 딴 곳을 바라보았다.
-[속보] 아이돌 김모씨 인성논란.. ‘휴식 시간에는 누워서 춤을 춰라’
-ㅋㅋㅋㅋㅋㅋㅋ상냥하게 웃으면서 그런 악독한 말 하지 말라고
-팬들이 꼽은 멀리서 보고 싶은 아이돌 1위 뉴블랙
-그 와중에 시계 없는 거 보소ㅋㅋㅋㅋ
-하루는 얼굴이 내일이 됐네
다른 때라면 그 정도는 아니라고 항변을 하겠지만 TV 화면 속에서 란과 하루의 얼굴이 폭삭 늙어 있었다.
“흠흠…….”
독사과팀의 연습장면이 지나간 후.
TV 화면에서는 [경연 당일]이라는 자막과 함께 TBC 방송국 일산 스튜디오의 전경이 비춰졌다.
[안녕하세요~! 날이 덥죠?]
[너무 떨려요. 정말.]
차에서 내린 댄서들이 출근을 하고, 본격적인 리허설을 하는 그런 장면들이 그려지면서 분위기가 고조됐다.
출연자들이 마른침을 삼키고 긴장하는 장면들이 나올 때.
[비주 씨, 잠시만…….]
[아, 네!]
비주가 인터뷰 장소로 불려 가는 장면에 우리의 뇌리에 퍼뜩 스친 게 있었다.
‘어.’
저마다 다급하게 핸드폰을 붙잡았다.
가족들에게 잠깐 동안 채널을 돌리라고 메시지를 보낼 때, 화면 속에서 비주가 제작진과 인터뷰를 했다.
멤버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다는 훈훈한 메시지에 가슴이 따스해져야 하는 장면.
하지만 우리는 떨떠름할 뿐이었다.
“하, 저거…….”
살랑살랑이는 식탁보를 보여 주면서 테이블 아래에 뭔가가 있다고 암시를 해 주고 있을 때.
TV 화면이 분할되더니 테이블 아래 숨은 우리가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를 했다.
오오오~ 하는 방청객 효과음과 함께 어둠 속에서 히죽 웃고 있는 우리의 밑에 화려한 자막이 떠올랐다.
[국민 아이돌이 왔다!]
[비주를 격려하기 위해 찾아온 뉴블랙 멤버들!]
“아니. 세상에 누가 자막을 저런 장면에다…….”
우리의 속도 터지고, 그와 동시에 댓글창도 터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