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495화
바깥이 소란스러워졌다.
고개를 빼꼼 내민 여희찬이 멀찍이 움직이는 카메라들을 보며 말했다.
“또 누가 왔나 본데.”
“이번에는 누구야?”
자리에 앉은 이들의 시선이 입구 쪽으로 향했다.
곧이어 웃음소리가 들렸다.
“하하하하~”
듣기만 해도 기분이 상쾌해지고, 아 세상이 이렇게 아름다운 곳이구나 하고 느껴지게 만드는 명랑한 웃음소리.
“누군진 몰라도 귀엽게 웃네~”
“그러게. 애들인가 보다.”
나미리와 양옥분 쌤이 흐뭇하게 웃고 있을 때, TNT의 3인방이 고개를 몇 번 정도 갸웃했다.
그리고 그동안 우리는 웃음을 참았다.
‘왔구나……!’
아랫집에 사는 변신 미소년들이 등장한 듯했다.
로비에서 무엇이 더 먹고 싶게 생겼는지 투표를 마친 틴스피릿이 입구 안으로 들어왔다.
“오……!”
현재 아이돌 판에서 탑을 달리고 있는 아이돌의 등장에 주세한 멤버들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송진우가 당황한 목소리로 말했다.
“틴스피릿이 왔어……?”
“저 친구들 예능 잘 안 나오지 않아?”
출연진들의 얼굴에 땡 잡았다는 표정이 감돌았다.
그동안 틴스피릿이 세상 천사 같은 얼굴로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틴스피릿입니다!”
해석) 인사 오지게 박습니다!
왜 엉뚱한 해석본이 눈앞을 스쳐 가는지 잘 모르겠다.
평소 행적 때문인지 인사말이 뇌에서 자동으로 필터링이 되는 기분이었다.
개그맨 오형석이 눈을 크게 뜨며 물었다.
“아니… 틴스피릿이 여기는 어쩐 일이에요? 예능에서 보기 힘든 얼굴들인데.”
연후가 수줍게 웃으며 말했다.
“뉴블랙 분들이랑 저희가 숙소가 같아서요~ 저희가 아랫집 살고 뉴블랙 분들이 윗집에 살아서 친해졌는데, 그런 지인 찬스로 왔습니다!”
해석) 불백 존나 맛있으니까 오라고 하던디요.
옆에 있는 중현이가 귀를 살짝 후비적거렸다.
나만 그런 게 아니라 다른 동생들에게도 틴스피릿의 말이 자동 필터링이 되는 모양이다.
그때 예능인 나미리가 물었다.
“진짜야? 두 그룹이 이웃집 사이야?”
“네.”
“어머, 어머!”
“틴스피릿 선배님들이 원래 살고 계셨는데, 저희가 윗집으로 이사를 가게 됐습니다.”
“진짜 신기하다. 그것도 인연이네.”
누군가의 말에 휘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지금 방송이라서 격식 차리는 거지… 저희가 원래부터 좋아하던 형들이어서, 평소에는 친한 형동생 사이로 지내고 있어요.”
해석) 존나 세 보여서 행님들로 모시고 있슴다.
그 말에 오오- 하며 고개를 끄덕이는 주세한 출연진과 이견우였다.
우리와 TNT만 슬그머니 시선을 돌려 웃음을 참고 있을 뿐.
‘아, 적응 안 돼.’
‘이걸 어떻게 안 웃냐.’
그러는 한편, 정말 틴스피릿의 천사 모드를 일상처럼 대하는 주세한 출연진의 프로 의식에 감탄이 나왔다.
생각해 보면 연예계에 실제와 방송 이미지가 다른 사람이 한둘이 아니니 급식 친구들의 일탈 정도는 귀여운 걸지도 모르겠다.
“이야~”
다시 요리 준비를 시작하는 동안 송진우가 주변 풍경을 둘러보며 말했다.
“라인업이 무슨 시상식이네. 돌림픽에서도 보기 힘든 아이돌들이 이렇게…….”
“그러네. TNT랑 틴스피릿….”
그런 말을 하는 이들에게 지호가 에헴 하며 헛기침을 했다. 우리도 몸을 후웁 하며 부풀려서 존재감을 키웠다.
그제야 주세한 출연진이 옆에 선 우리의 존재를 눈치챘다.
“아.”
아?
아아?
눈을 깜빡이며 어이없는 기분을 느낄 때, 주세한 출연진이 우리의 시선을 피하며 말했다.
“맞다. 너희 가수였지…….”
“미안하다. 너희를 가수라고 생각을 못했네.”
“와! 저희 히트곡이 얼마나 많은데여-!”
지호가 서운하다고 하는 말에 다들 키득거리며 웃었다. 알고 보니 놀리고 싶었던 모양이다.
그때 여희찬이 계란을 휘휘 저으며 말했다.
“그러면 뉴블랙이랑 TNT는 우주 때문에 아는 사이고, 틴스피릿이랑 뉴블랙은 이웃집이라 아는 사이고….”
그 손가락이 TNT와 틴스피릿을 향했다.
“두 그룹은 그러면 어떻게, 좀 아는 사이에요?”
“아.”
휘연이 태현이와 한빈이, 지훈이 쪽으로 두 손을 공손하게 내밀면서 말했다.
“정말 까마득한 선배님이십니다.”
“아유, 무슨…….”
태현이가 손을 내저으면서 그 정도 아니라고 말을 하고 있는 동안, 여전히 자리에 서 있는 틴스피릿을 보며 나미리가 웃었다.
“진짜 어려워하긴 하나 보네. 아직도 서 있는 거 봐.”
“TNT도 무시무시하구만. 저거 봐. 평소에 얼마나 기강을 잡았으면…….”
“아니아니! 그런 거 아니에요!”
예능인들의 놀림에 한빈이가 놀라서 손사래를 쳤다.
그때 태현이가 눈치 좋게 말했다.
“정말 친해지고 싶었던 분들이었는데 항상 기회가 없어서 친해지질 못했거든요.”
“맞아요.”
틴스피릿 멤버들이 말을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오, 그러면 이번 기회를 통해 친해지면 되겠네!”
“좋죠~”
태현이가 넉살 좋게 웃으며 손을 내밀고, 긴장한 휘연이 손을 슥슥 닦고는 그 손을 맞잡았다.
분위기가 훈훈하다.
조금 어색해 보이기만 하지, 누가 봐도 나빠 보이는 사이가 아니라 다들 농담을 한 것에 가까웠다.
자리에 앉으며 연후가 말했다.
“저희가 12년도 데뷔를 했는데, 선배님들은 10년도부터 활동을 하셨거든요. 저희가 그때 다 중학생이고 해서…….”
어떻게 된 것이지 다들 파악을 했다.
틴스피릿이 데뷔를 했던 시기에 3년차였던 TNT는 식스티 세컨즈와 함께 업계 탑 아이돌 자리에 있었다.
틴스피릿이 엄청 잘나가기 시작한 것이 2014년도 초쯤의 일이니, 그때까지 TNT가 얼마나 높고 까마득하게 느껴졌을지는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처음 중고등학교에 입학해서 3학년들을 보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지 않을까.
대충 그런 이야기가 오가며 틴스피릿과 TNT가 아하하하 하고 있을 때, 송진우가 이견우에게 시선을 돌렸다.
“견우 씨도 알죠, 여기?”
“아, 네.”
화기애애한 분위기에 같이 하하 웃고 있던 이견우 씨가 끄덕끄덕했다.
조용히 분위기에 묻어가는 게 너무 좋았던 내향성 배우가 부담스러움을 감추며 틴스피릿에게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허어어……!”
틴스피릿 멤버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조, 조…….”
“존, 잘이세요!”
“존, 경합니다! 드라마에서 봤어요!”
자연스러웠다.
틴스피릿 멤버들이 우와아아 하며 호기심 가득한 고양이들처럼 바라보는 표정에 한류 스타가 웃었다.
그러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설거지를 하기 위해 개수대 쪽으로 갔다.
“와, 저렇게 잘생긴 분도 설거지를 하는구나.”
그런 말을 하고 있는 틴스피릿에게 내가 돼지불백 양념을 하면서 나를 보라는 듯 웃었다.
앞으로 들려올 말을 기대하고 있을 때.
틴스피릿이 살짝 식은 천사 같은 얼굴로 말했다.
“저, 우주 형.”
해석) 행님.
“응?”
미소년들이 환하게 웃었다.
“요리 멈추지 말고 계속 해 주세요.”
해석) 쓸데없는 짓 말고 요리나 하십쇼.
리혁이와 태현이, 다른 졸개들이 박수를 치면서 깔깔거렸다. 옆에서 지켜보던 출연진들도 웃음을 터뜨렸다.
내가 돼지불백을 팍팍 치대며 말했다.
“오늘 대진운이 안 좋네.”
“그러긴 하네여. 천적들만 모여 있어여.”
지호가 말을 하는 동안 비주가 ‘그래도 저는 형 편이에요’ 하는 눈빛을 보내 주었다.
그때 태현이가 틴스피릿에게 물었다.
“요즘도 저래요?”
“네. 저번에는 갑자기 막내 하시겠다고 우주 갈게용~ 이러시고.”
“여전하구만. 여전해. 저게 연습생 때부터 유구하게 이어져 온 그거거든요. 교통 카드도 어린이 카드 쓰고 싶어 하고.”
“진짜요?”
그때 후라이팬에 기름을 두르던 내가 물었다.
“저, 태현아.”
“응?”
“너희는 언제 가니?”
주세한 출연진이 웃음을 터뜨렸다. 태현이가 뻔뻔한 얼굴로 불백을 가리키며 말했다.
“한 그릇 더 준다고 해서 이것만 먹고 가려고.”
“그냥 가.”
“돈 내고 먹을게.”
“아니, 내가 돈을 줄게. 얼른 집에 가.”
어떻게든 보내려고 하는 내 모습에 TNT의 졸개들이 깔깔 웃었다.
그러더니 틴스피릿과 금세 의기투합했다.
“흐하하핫!”
우리 측 졸개들도 나를 놀려 대는 모습을 보며 깔깔거릴 때.
곧이어 졸개들의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어…….”
틴스피릿의 멤버가 지호가 다듬는 야채를 보며 말했다.
“그거 맞아? 아닌 것 같은데.”
“맞아.”
“아닌 것 같은디….”
다른 멤버가 손을 들었다.
“참고로 저는 매운 거 잘 못 먹어요~!”
“저는 짠 거.”
“저는 너무 단 건 또 못 먹어요~”
“야채도 같이 주나요?”
“으으으음, 중현이 형 칼을 반대로 쓰시는 것 같은데…….”
상냥한 얼굴로 이리저리 참견을 해 대는 틴스피릿이었다.
눈동자들에 장난기가 가득하다.
중현이가 콧김을 후우우 하고, 리혁이가 스마트폰의 복수할 사람 ver.1 리스트에 지금의 행동들을 적을 때.
“선배님들~”
“네?”
비주가 사근사근 웃으며 여섯의 물잔에 물을 가득 담아 주었다.
“물 드세요.”
“네…….”
여섯 명이서 물잔을 보며 각을 재고는 동시에 고개를 쭉 내밀어 사바나의 얼룩말처럼 물을 마셨다.
여희연이 감탄했다는 듯 말했다.
“나 비주가 저렇게 강하게 얘기하는 거 처음 봐.”
“윗집 사람들이 아주 무서운 사람들이었네.”
그런 말에 우리가 아니라고 항변할 때, 옥분 쌤이 말했다.
“근데 얘네도 우주네가 편하기는 한가 보다. 우리 쪽으로는 안 오고 저쪽 테이블에만 붙어 있고.”
TNT 3명까지 포함해 9명이 우리 쪽 테이블에 오밀조밀하게 붙어 있는 모습에 다들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는 동안 마침내 요리가 완성됐다.
“자, 기다리던 불백 나왔습니다.”
“돈까스도 나왔어요!”
김이 모락모락 나는 음식을 바라본 틴스피릿의 얼굴이 환해졌다.
불백을 몇 점 쏙 집은 연후가 눈을 휘둥그레 떴다.
“와, ㅅ……!”
격하게 감탄했는지 무심코 나올 뻔한 욕을 불백과 함께 목구멍으로 삼키는 연후였다.
석지훈이 의기양양하게 웃었다.
“맛있죠?”
“네.”
“이 사람이 요리를 좀 잘해요.”
왜 자기가 뿌듯해 하는 건지는 모르겠다.
그 말에 휘연이 웃으며 답했다.
“네, 저희도 알고 있어요. 저번에 닭갈비 같이 먹고 볶음밥 해 주셨거든요.”
“……우리한텐 안 해 줬는데?”
잔뜩 배신감을 느껴하는 한빈이의 말에 내가 말했다.
“너희도 그럼 이사 와.”
“진짜? 우리 진짜 간다?”
“아니, 오지 마…….”
어딘가 엉망진창으로 변해 버린 대화에 주세한 출연진이 배를 잡고 웃었다.
이윽고 틴스피릿이 식사를 시작했다.
식사가 끝나는 데까지 걸린 시간은 단 5분.
돈까스 소스와 돼지불백의 남은 양념까지 삭삭 긁어먹은 틴스피릿이 접시를 내밀었다.
“너무 맛있었어요!”
TNT와 마찬가지로 엄청난 호평을 하던 틴스피릿이 얼마 안 가 눈치를 살폈다.
“근데요…….”
“네.”
“저희도 이거 두 그릇 먹을 수 있어요?”
“어…….”
그 말에 출연진과 우리의 시선이 멀찍이 제작진으로 향했다.
게스트가 계속 머물기를 원하는데, 어찌하면 좋겠느냐는 눈빛을 보내자 곧바로 구재영 피디 쪽에서 답이 왔다.
‘상관없음.’
현재 아이돌판에서 가장 잘나가고 있는 게스트들을 불러서 그런지 제작진도 분량을 더 뽑아도 좋겠다는 판단을 내린 모양이다.
다만 문제는.
“이거 재료가 될려나…?”
여희연이 오늘 올 게스트들을 위해 준비한 재료들을 살피며 말했다.
“부족할 것 같은데.”
“그죠. 인원은 넉넉하게 준비를 했는데…….”
틴스피릿이 한 번 더 먹는다고 쳤을 때 6인분이라서.
재료 통을 바라보다가 우리가 흘깃 바라보자 틴스피릿이 ‘하, 시발…’ 하는 표정을 감추며 아련하게 웃었다.
“저희는 괜찮아요…….”
“불백은 또 다음에 먹으면 되는 거니까! 저희가 아랫집이니까 올라가서 달라고 하면 되고.”
그러면서도 촉촉한 눈을 빛내는 급식 친구들의 모습에 우리와 주세한 출연진이 머리를 맞대고 좋은 방법을 떠올렸다.
이번 주세한 특집에 더욱더 풍성한 장면을 넣을 수 있는 방법.
“그러면…….”
오형석이 대표로 말했다.
“지금 재료 때문에 못 해 드리는 거니까. 마트 가서 재료를 좀 더 사 오는 게 어떨까요?”
“재료요?”
“뭐, 바쁘면 상관없고.”
“아뇨! 사 올 수 있어요! 눈이 와도 비가 와도 다녀올 수 있어요!”
다행히 당사자들은 의욕 만땅이었다.
얼른 추가로 재료를 사 오겠다며 틴스피릿 멤버들이 호다닥 자리에서 일어날 때.
“흠흠~”
자연스럽게 자리를 벗어나려고 하는 TNT 멤버들에게 시선을 돌렸다.
태현이와 눈이 마주쳤다.
‘분량?’
‘그러면 몹시 감사.’
내가 TNT의 동생들을 불렀다.
“자, 여러분도 같이 가셔야죠.”
“예? 저희가요?”
“드셨으니 밥값을 해야죠~”
“…….”
싫은 척하지만 방송에 몇 분 더 나갈 수 있다고 생각했는지 얼굴이 환해지는 녀석들이었다.
“그런데 우리 재료 같은 거 볼 줄 모르는데.”
“그러면…….”
뒤를 돌아보고는 적임자를 찾았다.
“중현아.”
“네, 형.”
“네가 좀 같이 가 줘.”
“네.”
카메라 감독님이 재료 원정대를 찍는 가운데, 중현이가 근엄하게 앞으로 나섰다.
“저를 따라오세요.”
“네!”
도도도도도도.
10명의 아이돌이 돌림픽 경보 대회를 하듯이 빠르게 걸어 나갔다. 순식간에 출구로 사라지는 뒷모습.
그리고 30초 후.
도도도도도도도.
10인조가 다시 돌아왔다.
“형.”
“응. 중현아.”
“근데 우리 뭐 사 와야 되죠?”
“…빨리도 왔구나.”
중현이와 나의 대화에 다들 웃음을 터뜨렸다.
우리 쪽에서는 리혁이가 한숨을 삼키며 리스트를 적어 주고, 주세한 측에서는 나미리가 리스트를 적어 주었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무사히 돌아오겠다고 말하는 원정대에게 손을 흔들어 주었다.
그동안 이견우 씨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저도 가 볼게요.”
“벌써 가세요? 더 있다가 가셔도 되는데.”
“저도 재료 사 오려고요…….”
아련하게 사라지는 배우의 모습에 다들 웃음을 터뜨렸다.
여희연이 웃으며 말했다.
“근데 이거 괜찮은 것 같은데?”
“그죠.”
이윽고 주세한 멤버들과 우리 사이에서 합의하는 눈빛이 오갔다.
그리고.
“리혁아.”
“왜요.”
“안내문 한 장 쓰자.”
“지, 진짜요? 나 안내문 써도 돼요?”
규칙을 사랑하는 우리 메인 보컬이 이내 예쁜 글씨체로 안내문을 하나 만들어 내걸었다.
[리필 관련 안내문]
현재 재고가 충분치 않은 관계로 요리의 리필을 원하시는 경우, 직접 재료를 사 오시기 바랍니다.
주세한과 우리의 콜라보 식당에 생긴 첫 안내문이었다.
* * *
동네 대형 마트.
그곳에 마스크를 쓴 10인조가 위풍당당하게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장을 보던 손님들이 걸음을 멈췄다.
‘뭐여. 이순신 장군이여?’
카메라 두어 대가 따라붙은 가운데 아홉 명이 한 명을 앞세우고 학익진처럼 걸어오고 있었다.
그때 가운데 서 있던, 어딘가 익숙한 목소리의 청년이 말했다.
“다른 분들 지나가기 힘드니까 우리 일렬로 갈까요?”
“그거 좋은 생각입니다. 행님.”
그러더니 마치 먹이를 찾아 떠나는 오리 떼처럼 일렬로 걷기 시작했다.
마스크 때문에 표정이 보이지 않았지만 맨 뒤에 따라붙은 셋은 굉장히 즐기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연예인들인가?”
“누구지? 모여 있는 게 아이돌 같은데.”
“그런가…?”
아이돌에 잘 모르는 사람들도 뭔가 느낌이 올 만큼 이것저것 다른 느낌들이 섞인 듯한 분위기였다.
몇 명은 여유롭고 느긋하고, 뒤따라 가는 몇몇은 또 뭔가 삶에 대한 분노로 가득찬 질풍노도의 시기 같고.
그런 가운데 맨 앞에서 걷는 이를 모두가 알아보았다.
“……!”
김중현이었다.
마스크를 쓰고 후드까지 눌러썼지만 전체적인 선이 김중현이었다.
추석 제사에 쓸 과일을 고르고 있던 노인 한 명이 아는 체를 했다.
“중현아~!”
“오, 안녕하세요.”
“뭣 하냐.”
“저 지금 불백 재료 고르러 왔어요. 근데 저인지 어떻게 아셨어요?”
“어떻게 알기는 맨날 보니까 알지~!”
노인의 말과 함께 주변에서 장을 보고 있던 손님들 사이에서 웃음이 흘러나왔다.
장을 보느라 바쁘기도 하고, 방송을 하는 것 같아 가까이 다가가지 않았지만 중현을 향해 눈이 따라붙었다.
그런 대중적 인지도에 휘연이 속삭였다.
“우리도 노력하자.”
“응. 그러자, 형.”
…이라는 말을 한 틴스피릿의 멤버들이 눈으로 웃었다.
‘너나 잘하셈.’
‘형이다. 이 새끼들아.’
화기애애한 눈의 대화가 오가는 동안 TNT의 세 멤버도 즐거운 기분을 느꼈다.
“장 진짜 오랜만에 보네.”
“기분 좋다. 마트 온 게 얼마 만이야. 우리?”
평소였다면 지나가던 사람들이 어…? 했을 텐데 맨 앞에서 걷는 중현이 모든 어그로를 끌어 주고 있었으니까.
기분 좋은 묻힘이라고 할까.
그동안 위풍당당하게 걸음을 옮기는 중현을 누군가 불러 세웠다.
“중현이~!”
“네.”
“삼겹살 하나 먹고 가~”
시식 코너였다.
중현이 난처한 기색을 드러내며 손을 저었다.
“저희 얼른 장 보고 가야 되는데…….”
“친구들도 데리고 와. 내가 요거 제일 맛난 데로 다 구워 줄게.”
“…….”
중현이 뒤를 돌아보았다.
“선배님?”
“잠깐이면 괜찮지 않을까요?”
TNT의 세 멤버가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이웃집은…?”
“행님 덕분에 고기 먹네요, 사랑합니다.”
틴스피릿이 하트를 그렸다.
그렇게 그들이 공범자 같은 눈빛을 교환하며 후후훗 하고 있을 때.
마스크를 쏙 내렸다가 올리며 고기를 질겅질겅 먹는 이들을 바라보는 사람 중에는 아이돌 팬도 있었다.
‘미, 미친……!’
존재할 수 없는 그림이 눈앞에서 움직이고 있었다.
그녀가 달달 떨리는 손으로 아이돌 커뮤니티에 글을 썼다.
[미친.. 나 지금 마트인데 텐틴뉴 멤버들 같이 있는 거봄]
대박이야;;
곧바로 댓글이 달리기 시작했다.
-엥
-인증 없으면 뭐다?
-주작을 해도 이런 걸 하고 앉아 있냐
-뭔 말이되는소리를 해ㅋㅋㅋㅋㅋ
-돌림픽에도 안 나오는 그룹들인데 같이 있는데 말이 됨??
-어그로인데 왜 상대해줌
그제야 사진을 찍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을 때, 수플레 닉네임을 가진 댓글 하나가 눈에 띄었다.
-야 이거 진짜면 주어를 바꿔서 올려 봐
-2222
그 조언에 따라 주어를 바꿔 보았다.
[지금 동네 마트인데 뉴블랙 중현이 텐티랑 틴스 데리고 장보는 듯]
대박 ㄷㄷㄷ
그러자 댓글들의 분위기가 바뀌기 시작했다.
-ㄹㅇ????
-ㅁㅊ 뭐 예능찍나
-뉴블랙TV 뭐 찍는 거 아님?
-거기 마트 어디야???
-사진 좀
뉴블랙으로 주어를 바꿨을 뿐인데 180도로 달라진 댓글 반응에 그녀가 눈을 깜빡거렸다.
‘뭐야?’
……왜 개연성이 확보되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