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520화
KG 홈쇼핑에서 뉴불백 쇼가 끝났을 때.
바쁘거나 혹은 그닥 TV 등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에게도 뉴불백의 여파가 여지없이 전해져 왔다.
‘응?’
퇴근 시간대를 조금 넘겨, 늦은 퇴근을 하고 있던 사람들은 눈을 깜빡거렸다.
귀찮아서 음원 사이트의 ‘랜덤 재생’을 눌러 놓고 있었는데, 실시간 차트의 내용이 뭔가 이상했다.
‘이거 어디서 들어 봤는데.’
감미로운 목소리가 겨울을 노래하고 있다.
여름 속에서만 살던 누군가가 겨울을 겪는 소회를 노래하는 가사가 쭉 이어진다.
지하철을 타면 창 너머로 터널의 불빛이 깜빡거리고, 버스 차창 너머로 거리의 야경과 활발하게 웃고 떠들며 움직이는 사람들의 풍경이 눈앞에 지나가는 시간대.
마치 이 세상의 즐거움에서 소외되어 홀로 외딴 섬에 있는 듯한 기분을 느끼는 사람들에게 위로처럼 다가오는 노래였다.
이 겨울의 끝에서
봄이 기다리고 있다는 걸
잊지 말아요
따스한 목소리에 몸이 노곤노곤해지며 잠이 스르르 들기도 하고, 왠지 모르게 숨을 길게 내쉬며 자세를 바로 하기도 하고.
‘누구 노래지?’
목소리도 그렇고, 노래 스타일도 그렇고.
어디선가 들어 본 듯한 느낌에 휴대전화를 슥 터치하자, 노래 제목이 떴다.
[뉴블랙 - Intro : Nineteen]
겨울에 어울릴 법한 파란색과 하얀색이 그림같이 섞여 있는 앨범 아트에 익숙한 이름이 있다.
“응?”
뉴블랙이었어?
이내 자신을 따스하게 위로해 준 목소리의 정체가 리혁이라는 것을 깨닫고 경악하는 사람들이었다.
‘리혁이가 이렇게 따스하게 부를 줄도 알았어…?’
게다가 뉴블랙한테 이런 앨범도 있었나?
그런 생각을 하면서 앨범 정보를 보니 올해 초에 나왔던 ‘겨울잠’이 들어가 있었다.
‘아! 겨울잠 앨범에 있는 노래인가 보네.’
‘Winter Trip’이나 중년 가수 백상교와 함께 부른 ‘동행’, 뉴블랙의 크리스마스 캐럴 등이 수록되어 있다.
지금 다소 낯설다고 생각했던 Intro와 다르게 아는 노래들이 많다.
왠지 모르게 숨겨진 취향저격의 곡을 발견한 것만 같아 기분이 좋았다.
‘뭐 어디 예능에서 나왔나?’
불꽃놀이처럼 어디 방송에 나와서 또 이슈가 됐나 보다 생각할 때였다.
다른 가수들의 노래가 나오더니 또 다른 노래가 흘러나왔다.
“음……?”
이번에는 뉴블랙의 목소리.
얼씨구! 하는 듯한 시원한 보컬과 함께 국악풍이 곁들인 듯한 사운드가 귀를 즐겁게 했다.
이것도 들어 본 노래.
[뉴블랙 - 꽃놀이]
앨범 정보를 눌러보니 ‘낙화’가 들어 있다.
에이텐의 Attention, 세레니티의 REALITY와 함께 2016년 상반기의 최고 히트곡 중 하나.
좋은 노래를 또 발견한 것 같아 기분이 좋긴 한데…….
뭔가 이상했다.
그렇게 실시간 차트에서 ‘자세히 보기’를 누른 사람들은 눈을 깜빡거렸다.
‘……이게 뭐지.’
상위권을 검게 물들인 뉴블랙의 신규 앨범 아래로 뉴블랙, 뉴블랙, 뉴블랙… 하며 이름이 이어지고 있었다.
Masquerade, 이건 뉴블랙의 예전 노래 아닌가?
“…….”
어쨌거나 뉴블랙이 또 뭘 한 게 분명했다.
꾸벅꾸벅 쏟아지는 졸음도 싹 달아난 사람들이 자동적으로 미튜브에 들어갔다.
아니나 다를까.
인기 동영상이 하나 떠 있었다.
[뉴블랙 - THE 불백 쇼]
별도 썸네일 없이 홈쇼핑의 한 장면인 듯한 영상이 소리 없이 자동으로 재생된다.
애니메이션에서 온천을 운영하는 무시무시한 할머니처럼 생긴 캐릭터의 입에서 뉴블랙이 뚠딴땅땅 등장하더니.
두루마리를 펼쳐서 ‘불백 팔아용 오호홓’ 하고 있고.
‘뭐지. 이건.’
소리 없이 지나가는 장면들을 바라보던 이들에게 영상이 올라온 채널 ‘KG 홈쇼핑’이 눈에 들어왔다.
대충 검색을 추가로 해 보니 뉴블랙이 오늘 홈쇼핑에서 뉴불백을 팔았는데 초대박이 난 모양이었다.
인터넷 커뮤니티 등을 눌러보니 다 뉴불백 이야기를 하고 있다.
백문이 불여일견.
급작스러운 호기심에 사람들이 하나둘 KG 홈쇼핑에 올라온 1시간짜리 영상을 클릭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레?’
정신을 차리고 보니 집 현관에 이어폰을 끼고 핸드폰을 든 채 서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히죽히죽 웃고 있는 얼굴과 멈춰 있는 영상.
‘언제 다 본거지?’
1시간짜리 영상이라서 처음에 망설였는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이미 다 보고 난 뒤였다.
댓글창에 있는 베스트 댓글들에 시선이 간다.
-수플레가 노래 알려 드려요 02:17 꽃놀이 04:19 Masquerade 07:11 …[더보기]
-본격 뉴블랙의 띵곡 파티
-ㄹㅇ 오 저거 브금 좋은데.. 할 때마다 인터넷에서 뉴블랙 노래라고 해 줘서 놀랐음ㅋㅋㅋㅋ
-오늘 무대들도 좋았는데 중간중간 bgm으로 깔리던 뉴블랙 옛날(?) 노래들도 너무 좋았어요!
-불백쇼를 미끼로 한 뉴블랙 입덕 방송이 아니었을까
-컴백쇼 다음 날에 불백쇼를 하는 아이돌이 있다?!
-이렇게 노래들이 다 좋았는데 어떻게 2014년부터 빵 못 뜬거지
┕그때부터 떴어요!
┕알못은 나였구나..
노래가 좋다는 댓글들에 공감이 가면서 좋아요를 소심하게 눌러 주는 사람들이었다.
그렇게 한 시간 동안 전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뉴불백의 스토리에 대해 몰랐던 사람들까지도 알아 가고 있는 한편.
인터넷에서는 뉴불백에 대한 이야기로 시끌시끌했다.
[뉴불백 구매 못한 놈도 있냐?]
나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여기 1인 추가요
-불백 하나 먹는 게 이렇게 힘들다 햐
-힘내라,, 뭐 그렇게 특별한 맛도 아님ㅇㅇ 나 헬평 가서 직접 먹었는데 그냥 일주일 정도 생각나는 맛임
-글케 맛있음?
-한입 먹으면 달콤한 향이 퍼지면서 숯불맛이 진하게 올라오는데, 참기름향이랑 합쳐지면서 입에 침이 쫙 고임
-신고했습니다 ㅅㅂ
-아 왜
곳곳의 커뮤니티에서 눈물의 구매 실패 후기가 올라오는 가운데.
아이돌 커뮤니티도 복작거렸다.
[뉴불백 구매 못한 사람도 있어?ㅋㅋㅋㅋㅋ]
나야..
근데 엄마가 해 줬워!!!!!!
꺄아아아아아아아아아ㅏㅏㅏ
-눈치 챙겨 학생,,
-지금 분위기 몰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왜일케 신났어 귀여워
-우리집도 엄마가 성공함ㅋㅋㅋㅋ 홈쇼핑 짬바가 ㄹㅇ 대단하긴 하더라
-규호야 통이라도 좀 팔자
-나 숯불.. 내일부터 아파트 분리수거장 매일 돌아다닌다. 분명 어딘가는 한통 버리겠지
-ㅋㅋㅋㅋㅋㅋㅋㅋ집념들 봐
-않이.. 선생님들 아니 통이 너무 예쁘단 말이에요ㅠㅠㅠㅠㅠ
-아 근데 나 너무 먹고 싶다ㅠㅠㅠ
-n년차 돌덕.. 드디어 머글들의 무서움을 알았읍니다
-ㄹㅇ 내 티켓팅 실력을 깨닫고 겸허해짐
뉴불백의 구매에 실패한 팬들이 눈물을 머금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윽고 한을 흥으로 승화시키는 한국인들답게 대형신인 뉴불백의 초동 판매량 등에 대한 드립이 나오고.
“아, 뭐야. 오늘 팔았대?”
“뉴불백 이거 또 놓쳤네. 아 난 왜 몰랐지…?”
“다 팔렸대?”
일반인들도 뒤늦게 소식을 접하고 한탄할 때였다.
좋은 소식이 날아들었다.
-뉴불백, 편의점 도시락에 이어 냉동식품 출시예정
오늘 팔았던 불백을 냉동음식으로 판다는 소식이었다.
조만간 전국 마트에 깔린다는 소식에 사람들의 마음이 푸근해졌다.
‘출시될 거니까.’
이번 주 목요일에 나온다는 뉴불백 도시락도 꼭 놓치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사람들이었다.
통을 구매하는 데 실패한 수플레들만 슬쩍 울적한 표정을 지을 뿐.
하지만 그리 슬프지는 않았다.
‘차트 대박……!’
머글들이 음원총공을 하면서 실시간 차트에 뉴블랙의 지난 노래들이 쭉쭉 올라왔다가 내려가기도 하고.
오늘 불백쇼 덕분에 정규 앨범의 나머지 수록곡 무대들을 보게 되어 행복한 수플레들이었다.
더군다나 KG 홈쇼핑 담당자가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직캠] 161018 THE 불백쇼 4K ‘우주’ - ‘It’s OK’
무대마다 멤버별 직캠을 음악 방송처럼 올려놔서 차근차근 최애들의 무대를 감상할 수 있었다.
간만에 한국인들끼리 어우러진 댓글창도 좋고.
중간중간 해외 팬들의 댓글도 눈에 들어왔다.
-저기 이건 뭐야?
-나 좀 헷갈리는데.. 어째서 멤버들이 홈쇼핑 채널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는 거야?
┕그것이 뉴블랙이니까
┕아하. Got it.
-K팝에 대해서 잘 모르는데 보통 가수들이 홈쇼핑에 출연하는 거야?
-이 음악 방송은 뭘까
-대단한 홈쇼핑 채널인가 보네. 뉴블랙을 부를 정도면
-Bool-Back? Come-back과 비슷한 한국식 영어인 것입니까?
혼란스러울 만하지, 하며 훈훈하게 웃는 수플레들이었다.
그러는 한편.
늦은 밤까지 덕질을 하고 있는 팬들에게 얼마 안 가 깜짝 놀랄 만한 소식이 날아들었다.
* * *
그날 밤의 홈쇼핑 방송은 즐겁게 마무리가 됐다.
-아이고! 고생들 했어요! 하하하!
-이 정도로 잘 팔릴 줄은 몰랐는데… 아니, 콜 수도 그렇고! 이게 반응이 보통 반응이 아니에요!
홈쇼핑 국장님으로부터 주차장까지 배웅을 받았다.
지금까지 홈쇼핑 시청률 역대 최고가 2%인가 그렇다던데, 오늘 주문량이나 문자를 보면 최소 네 배는 될 것 같다나.
KG 홈쇼핑이 역사를 새로 썼다며 좋아하는 임직원들이었다.
홈쇼핑 측도 역대급 판매량과 화제성으로 흐뭇해하고, 우리도 정규 앨범 홍보를 해서 윈윈인 상황이었다.
-또 팔 건 없으세요? 저희가 다 팔아 드릴게요.
-괘, 괜찮아요.
열정적인 눈빛을 불태우던 직원들이 또 팔고 싶은 게 있다면 언제든 나와도 좋다는 말을 했다.
우리가 구두약을 판다고 해도 좋다고 할 분위기였다.
그리고, 우리 김덕순 여사도 몹시 만족한 듯한 분위기였다.
김덕순
[지금이 청춘]
방송 잘 봤다고 통화를 한 것도 그렇고, 할머니의 메신저 프로필이 뽀샤시하게 바뀌었다.
고양이를 품에 안은 할머니가 선글라스를 쓰고 스웩 하는 느낌의 사진.
어떤 첩보영화에서 매너가 사람을 만든다고 했던가. 역시 돈은 위대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잘 키운 손자, 할머니도 춤추게 한다. 어때?”
“제발 이상한 속담 만들지 마요. 좀…….”
리혁이가 핀잔을 주자, 내 속담이 좋다고 박수를 치려던 중현이가 허공에 짝 하며 모기 잡는 시늉을 했다.
“왜여~?”
막내가 나른하게 기지개를 켜며 말했다.
“저는 마음에 들었는데여, 우주 형의 속담.”
“봐. 리혁아.”
“되게 저랑 비슷한 수준인 거 같아서 넘 좋았어여. 동질감도 들고. 하핫, 원래 맏형이랑 막내랑 통한다고 그러잖아여.”
“…….”
헤헷 웃는 막내의 시선을 외면하다가 픽 웃었다.
아무렴 어떠랴.
지금은 무슨 말을 들어도 기분이 너무나 좋았다.
어제 홈쇼핑 방송까지 끝내고 잠을 푹 잔 것도 좋았는데, 자고 일어나니 기쁜 소식이 기다리고 있었다.
-뉴블랙 ‘Empire’, 1일 6시간 만에 1,000만 뷰 돌파.. “역대 최단기록”
-‘Emprie’.. ‘30시간 만에’ K팝 최단기록 1,000만 뷰
-뉴블랙, 낙화에 이어 Empire도 1천만 뷰 최단 돌파
그러니까 어제, 화요일 자정 기준으로 월요일 오후 6시에 공개된 Empire가 천만 뷰를 돌파했다는 이야기였다.
아침에 일어나니 석환 형과 매니저 형들, 주변 친구들이 보내 준 톡이 어마어마하게 쌓여 있었다.
“진짜 대박이다…….”
“저번에 우리, 낙화가 음방 때 천만 뷰 아니었어요?”
“그랬을걸?”
아마 목요일 오전 10시인가 11시쯤이었나 그랬던 것 같다.
궁금해서 검색하니 저번에는 65시간, 그러니까 3일가량 걸렸는데 이번에는 그 절반으로 단축된 듯했다.
“수플레들이 더 많아지긴 했구나.”
“아니면 짭플레 분들이 와르르르 오신 걸 수도 있어여.”
“그럴 수도 있겠네.”
뉴블랙 TV의 특수성 때문인지 워낙 조회수에 영향을 끼치는 요소가 많았다.
정말 우리를 좋아해 주는 사람들이 더 많이 늘은 것인지 시청자들이 늘은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좋다.
일단 좋았다.
“다행이에요.”
비주가 가슴을 쓸어내리며 말했다.
“그래도 저번보다 좋잖아요.”
“맞아. 그게 진짜… 다행이야.”
단순히 조회수가 몇이다, 신기록이다! 하는 마음으로 좋아한다기보다는 이번 앨범의 성과 측면에서 좋았다.
일단 저번보다도 반응이 더 좋다는 거니까.
‘낙화’나 ‘Attention’ 때보다 더 크게 성공해야 한다는 강박이 좀 있었는데, 뮤비 반응에 대한 기사를 보니 긴장이 좀 풀리는 것만 같다.
동생들과 눈을 마주치며 웃었다.
“이번에도…….”
“그러네요.”
우리는 이번에도 살았다.
넘어지지 않았다.
조금이라도 멈추면 가라앉는 세계에서 위로 올라가고 있다는 것. 그게 중요했다.
그제야 습관처럼 들여다보던 음원 차트를 잠시 내려놓고 편안한 마음으로 웃었다.
불현듯이 몰려오는 다음 앨범에 대한 두려움이나 압박감을 물리치면서.
잠시 그렇게 웃다가 동생들에게 웃으며 물었다.
“이제 출근할까? Empire 마무리 연습 좀 해 둬야지.”
“준비할게요.”
이제 본격적인 Empire의 음악 방송 활동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 * *
목요일 아침.
이른 아침에 K넷 사옥으로 들어가는 문 앞에 내리자, 카메라 셔터들이 번쩍번쩍 터지기 시작했다.
“안녕하세요~!”
반갑게 손을 흔들거나 꾸벅 인사하면서 카메라 앞을 지나갔다.
파이팅! 해 주는 목소리에 똑같이 주먹을 들어 보이며 파이팅 하고 웃었다.
아마 다음 주나 다다음주쯤 되면 ‘화이티잉……’ 하며 끄어어어 하며 충혈된 눈으로 웃겠지만.
“좋다~!”
“좋네여~ 좋아! 흐하하핫!”
오랜만에 음악 방송에 출근하니 기분이 째진다.
이번에는 회사에서 굵직굵직한 3사 음악 방송만 출연할 예정이라 전해 줬기에 음방 무대가 귀하기도 했고.
-HBS와는 결렬됐어.
-또?
-뭘 또 요구하는 게 많아 가지고.
PBS의 미스터 프로듀서와 TBC의 주세한 ‘장사합시다’ 특집이 대박을 쳐서 그런 건지.
같은 지상파 경쟁사인 HBS 측에서 음방 불러 줄 테니 이 예능 나와라, 저 예능 나와라 했다는 모양이었다.
그런고로 우리의 첫 주 음방은 K넷, PBS, TBC 이렇게 세 곳이었다.
중현이가 말했다.
“분명히 월요일에 왔는데도 또 느낌이 다르네요.”
“그치. 음방이라 그런가 봐.”
K넷 로비를 지나가자 구내 프랜차이즈 카페에서 커피 볶는 냄새와 달착지근한 케이크 향이 코끝을 간질인다.
이따 초코 케이크랑 아이스 초코 사 먹어야지.
점심은 뭐 먹을까.
“오늘 저녁은 뭐 먹을까여, 우리?”
“그건 진지하게 고민해 보자.”
대기실을 향해 같이 걸어가던 민기 형이 헛웃음을 지었다.
“너네는 아침 8시부터 저녁 얘기를 하냐.”
“원래 이런 건 아침부터 얘기해야 신나요, 형.”
그런 이야기를 하면서 대기실에 도착했다.
저번 낙화 때와 같은 대기실이었다.
[뉴블랙 님]이라고 되어 있는 하얀 A4 용지 너머로 방송국에서 가장 널찍한 대기실이 우릴 맞이했다.
다시 한번 느끼는 성공의 맛이었다.
사녹 시간대가 일찍 잡힌 터라 스탭들도 분주히 움직이고, 우리도 리허설을 위해 이름표를 달고 준비했다.
-네~ 고생 많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시간이 빠르게 흘러갔다.
대기 시간도 거의 없이 드라이 리허설을 마치고, 곧바로 예정된 사전 녹화도 순탄하게 진행됐다.
“수플레들!”
-와아아아아아!
“네, 저희가 돌아왔어요~”
짤막한 한두 마디를 하는 동안에도 기뻐해 주는 수플레들이었다.
팬들이 쩌렁쩌렁하게 외치는 응원 속에서 Empire의 카메라 리허설도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하게 끝났다.
“…….”
백스테이지에서 다 같이 눈매를 모으며 리허설 장면을 바라보았다.
아무래도 컴백 첫 주다 보니 신경 쓸 게 많았다. 인트로 외에도 별도 수록곡 무대가 하나 더 있으니까.
중현이가 화면을 가리켰다.
“리혁아, 인이어 저거 잘못하면 빠질 것 같은데. 그냥 주머니에 넣는 게 낫겠다.”
“어, 그러네요?”
리혁이가 손을 허리춤 뒤로 옮겨 마이크팩 위치를 조정했다.
다 같이 안무를 꼼꼼하게 살피는 동안, 매니저 형들이 스타일리스트들에게 의견을 전달했다.
우리가 의상 때문에 동작이 조금 버벅거릴 수 있는 부분들을 빠르게 고친 후.
-지금부터 녹화 시작하겠… 저 태양 같은 응원봉은 뭔가요?
마이크를 든 스탭이 특이하게 빛나는 응원봉을 가리켰다.
붉은빛이 들어온 응원봉.
팬들이 엇 하는 동안 우리가 설명했다.
-저게 배터리가 부족할 때 저런 색깔 빛으로 빛나도록 설계가 되어 있어서요.
-리혁이 형은 적색 거성이라고 부르는데… 저희는 탄봉이라고 불러여.
지호의 탄봉이 이야기에 스탭이 흥킷캭 하는 이상한 소리를 내면서 마이크를 멀찍이 뗐다.
수플레들도 같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적색 거성이 블랙홀로 변한 후에 사전 녹화가 시작됐다.
-선우주! 김비주! 김중현! 서리혁! 왕지호!
-으아아아아아악!
Empire의 전주가 흘러나올 때부터 쏟아지는 응원에 나도 모르게 입가가 씰룩였다.
스튜디오가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응원.
수록곡 무대까지 엔딩 포즈로 서 있는 내게 카메라가 클로즈업 되면서 사전녹화가 끝났다.
“이른 시간부터 와 줘서 정말 고마워요! 다들 바쁠 텐데…….”
-퇴직했어어어!
퇴직의 기쁨에 사로잡힌 한 수플레의 말에 웃음을 터뜨렸다.
팬들과 서로 손을 흔들면서 Empire의 사전녹화를 마무리하고, 다시금 대기실로 돌아올 때였다.
“어! 저기…….”
K넷 음악 방송의 작가님이 대기실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엇, 네!”
“저희 뭐 해야 되나요?”
“아, 이번 달부터 저희가 시작한 컨텐츠가 하나 있어서요. 피디님이 혹시 뉴블랙 분들도 찍을 생각이 있는지 여쭤보라고 하셔서.”
“뭔데요?”
우리의 질문에 작가님이 말했다.
“릴레이 댄스예요.”
“릴레이 댄스요?”
그게 뭐지?
왠지 재미있을 것 같은 컨텐츠에 우리의 눈이 반짝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