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521)화 (521/1,031)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521화

곧바로 대기실 소파에 둘러앉아 작가님의 설명을 들었다.

“그러니까 카메라 한 대를 두고 일렬로 서서 춤을 춘다는 거죠?”

“네, 맞아요!”

“이렇게요?”

우리가 일렬로 서서 팔을 현란하게 움직였다.

흔히 아이돌 안무에서 천수관음이라고 부르는 동작이었다.

“이런 거요?”

“아, 아뇨! 아뇨! 아니에요!”

작가님이 다급하게 종이를 꺼내 졸라맨을 그렸다.

“그러니까… 한 명이 춤을 추고 나서 맨 뒤로 가면, 바로 뒤에 있던 사람이 이어서 춤을 추고. 말 그대로 릴레이댄스예요.”

“아! 이해했어요.”

“조금 낯설 거예요. 저희도 시작한 지 얼마 안 돼서.”

참고를 위해 작가님이 보여 주는 영상을 시청했다.

환한 배경 속에서 신인 걸그룹 멤버들이 한 명씩 춤을 추면서 바톤 터치를 한다.

비주의 눈이 커졌다.

“완전 재미있을 것 같은데요…?”

“재미있을 거 같네.”

아이돌 쇼 프로에서 랜덤 플레이 댄스는 해 본 것 같은데 이런 식의 안무 영상은 처음이라 구미가 돋았다.

다만…….

“오늘 찍어야 되나요?”

리혁이가 물었다.

“저희 연습 하나도 안 되어 있는데.”

“아, 이건 연습해서 찍는 게 아니어서요.”

작가님이 설명했다.

“프리한 느낌으로 가는 거예요. 각 잡고 찍는 컨텐츠가 아니라 중간에 실수하면서 머쓱하게 웃는 자연스러운 모습까지 어필하는.”

우리가 오오 했다.

“정말요? 근데 저희는 실수하면 눈물 나던데…….”

“울어도 되나여?”

안무 실수하고 눈가가 촉촉해지는 막내의 모습을 떠올렸는지 작가님이 멈칫했다.

“그, 그… 어쨌든 자연스럽게 찍으면 되는 거니까요. 혹시 괜찮다면 찍을 의향이 있는지…….”

말끝을 흐리며 의향을 묻는 상대의 모습에 우리가 눈빛을 교환했다.

어차피 대기 시간도 넉넉하게 남는데, 그 시간에 새로운 걸 해 보는 것도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할게요.”

“정말요? 감사합니다!”

작가님이 환한 미소를 지으며 인사하고는 대기실을 나섰다.

아마도 우리가 안 할 거라고 예상했던 모양인지 대기실 밖의 발걸음 소리가 경쾌했다.

리혁이가 말했다.

“다들 안 한다고 했나 보네요.”

“그러게.”

K넷 미튜브 채널을 보니 연차 있는 가수들의 릴레이 댄스 영상은 몇 개 없어 보였다.

“그만큼 우리가 어리다는 뜻인 거져.”

“맞아. 우린 아가야. 흐핫!”

우리 좋을 대로 해석하기로 했다.

곧바로 비주가 A4 용지에 어떤 식으로 안무 동선을 펼칠지 설명해 주는 한편, 대기실에도 손님이 계속 찾아왔다.

“하나둘 셋, 럭키럭키! 럭키걸입니다!”

“안녕하십니까! 신인 보이그룹 물티슈입니다! 네…! 물티슈라서 닫힌 뚜껑 머리입니다!”

“둘셋! 1월부터 12월까지, 월간소년입니다!”

갓 데뷔한 그룹도 있고, 올해 초에 데뷔한 그룹도 있고.

20팀 중에서 8팀 정도가 올해 데뷔한 그룹들이었다. 우리보다 연차가 높은 선배들은 서너 팀 정도.

“저기…….”

물티슈의 리더 곽이 우리에게 사인 CD를 건네주었다.

“저, 저희 사인 CD입니다!”

“아, 감사합니다. 저희도 사인 CD 있는데, 잠시만요.”

달달달달.

사인 CD를 주고받는 팔이 목욕탕의 덜덜이처럼 떨린다.

“정말 팬입니다! 저희가 뉴불백, 아니 뉴불… 죄송합니다! 자꾸 혓바닥이 자동완성이 돼서.”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괜찮아요.”

“저희 진짜 팬입니다!”

다들 만날 때마다 팬이라고 해 주는데, 립서비스 같긴 했지만 나름대로 기분이 좋았다.

물티슈 멤버들이 나가면서 리혁이가 참았던 숨을 토했다.

그러더니 핸드폰을 빠르게 검색하기 시작했다.

“뭐 해?”

“곽 씨라서 곽인지, 물티슈 갑인데 곽이라고 잘못 예명을 정한 건지 궁금해서요.”

“각 아니었어?”

“갑이 맞아요.”

“검색해 보니까 뭐래? 맞대?”

“곽 씨라서 곽이래요. 다행이다…….”

그나저나 참 잊히지 않는 이름이다.

물티슈라니.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방금 나간 신인 보이그룹의 멤버들이 서 있던 자리에 뚝뚝 떨어진 땀들이 보였다.

막내가 혀를 내둘렀다.

“되게 신기한 거 같아여. 우리랑 만나는 게 떨리나? 제가 후배였으면 별로 긴장 안 됐을 것 같은데.”

“글쎄다. 너 썸씽이랑 불꽃놀이 때 맨날 우리 뒤에 숨어 있지 않았냐.”

내 말에 중현이와 비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내 뒤에 맨날 숨었지.”

“지호 맨날 제일 뒤에 들어와서 제일 먼저 나갔잖아요.”

“아니, 그때는… 제가 고1이어서 그런 거구여.”

“여?”

“요.”

지금은 고3이어서 자신감이 충만하다는 드립에 다들 웃음을 터뜨렸다.

우리가 계속 놀리자 막내의 얼굴이 슬쩍 벌게졌다.

“아, 진짜 기다려 봐요! 저 이제 곧 요 할 거니까.”

“그래yo.”

왜 요가 어른의 징표가 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몇 달 있으면 어른이라고 어필하는 모습에 웃음만 나왔다.

그러고 보니 시간 참 빠르다.

처음 만났을 때는 중3인가 그래서 진짜 꼬꼬마 같았는데. 어느새 정신을 차리고 보니 지금은 체격도 꽤 좋고, 키도…….

잠깐만.

얘, 왜 이렇게 커져 있지?

“……왜 그래요?”

리혁이의 물음에 내가 고개를 저었다.

“아, 아냐. 아무것도.”

중현이가 테이블 위의 과자를 하나씩 까서 막내에게 건네주는 동안 일어나서 기지개를 쭉쭉 켰다.

책으로 시선을 돌리려던 리혁이가 물었다.

“이번에는 또 뭐 해요…?”

“숨은 키 3cm 찾기 프로젝트.”

“…….”

그렇게 스트레칭을 하면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동안 비주가 오 하며 말했다.

“형, 그거예요.”

“뭐?”

“우리 릴레이 댄스요. 오프닝 포즈 그걸로 해요.”

“이걸로…?”

*   *   *

K넷 C-스튜디오.

밝게 돌아가던 조명과 함께 음악이 멈추면서 신인 보이그룹 물티슈의 멤버들이 꾸벅 인사했다.

“수고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릴레이 댄스 촬영을 마친 신인 보이그룹이 나가고, 스탭들이 카메라를 조정하고 있을 때였다.

“안녕하십니까!”

스튜디오 입구에 누가 들어왔는지 쩌렁쩌렁한 인사 소리가 들려왔다.

동시에 울려 퍼지는 꺄르륵 소리.

‘뉴블랙 왔네.’

매니저들을 대동하고 온 뉴블랙이 촬영 감독들에게 다가와 꾸벅 인사했다.

“잘 부탁드립니다, 감독님.”

“아유. 반가워요~”

“저희가 지금 안무를 몇 개 급조해서 조금 촬영 시간이 더 걸릴 수도 있을 것 같은데, 괜찮을까요?”

“당연히 괜찮죠. 원하는 만큼 찍어요.”

릴레이 댄스를 담당하고 있는 조연출이 답했다.

‘뭐든지 들어줘야지.’

다른 연차 있는 가수들이 별로 생각 없다고 거절했던 컨텐츠였다.

그런 상황에서 제작진이 미튜브 쪽을 타깃으로 공 들이고 있는 컨텐츠에 뉴블랙이 출연한다니.

아무리 무리한 부탁이라도 들어줘야 할 상황이다.

“몸 좀 푸시고 준비되면 말해 주세요.”

“네!”

목을 부드럽게 돌리거나 스트레칭을 하던 멤버들이 이윽고 환한 배경을 바탕으로 일렬로 섰다.

곧이어 촬영이 시작됐다.

맨 앞에서 자리를 잡고 있던 우주가 음악과 함께 두 팔을 위로 쭈욱 들었다.

꽃이 피어나듯 올라가던 팔이 탄력적으로 내려오면서, 눈앞에 느릿한 잔상이 남는 것만 같았다.

‘오…….’

그러면서 카메라를 바라보며 여유롭게 웃는 모습에 스탭들이 감탄했다.

종을 울려라

멀리 퍼지도록

가사를 립싱크하듯 부르는 동안, 짙은 눈썹 아래로 빛나는 눈이 뇌리에 강하게 남는다.

‘잘한다.’

‘이야, 잘해…….’

Empire의 전주가 끝나면서 리드보컬이 스윽 고개를 돌아보고는 맨 뒤로 걸어갔다.

나풀거리는 무대 의상과 함께 사라지는 뒷모습에 시선을 빼앗길 때.

이어서 서브보컬이 등장했다.

빠른 템포의 음악에 맞춰 손발이 자유분방하게 움직이는 한편, 그 와중에도 각이 착착 맞는다.

‘오.’

서브보컬의 양옆으로 나온 중현과 비주가 같은 동작을 보여 주고 있었다.

셋으로 갈라진 동선이 다시금 하나로 합쳐지고.

곧바로 양손으로 권총 모양으로 만든 비주가 걸어 나와 부드럽게 웨이브를 타며 손을 교차했다.

누군가 저도 모르게 이야… 하는 소리를 냈다.

‘비주는… 진짜 잘 춰.’

각 그룹의 춤꾼들이 모여 있는 댄스 경연 프로그램 에서도 에이스로 활약하고 있는 멤버답다.

직각에 가까운 동작인데도 부드러운 느낌.

보통의 춤이 접었을 때 흔적이 남는 종이라고 한다면, 비주의 춤은 접었다 펴도 구겨진 흔적조차 없는 부드러운 비단 같았다.

중현의 파트를 다르게 보여 주던 비주가 수줍게 웃으며 뒤로 물러나고.

리혁이 걸어 나왔다.

비주와 손뼉을 마주치며 살짝 웃던 리혁이 곧바로 뒤바뀐 눈빛으로 두 손을 움직였다.

이제 다시

내게 주어진 왕관을

되찾아

메인과 리드댄서가 양옆에서 다시금 백업을 해 주는 한편.

후렴 파트에서 걸어 나온 래퍼가 웨이브를 타면서, 동시에 멤버들도 뒤에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좌우로 상반신이 나왔다가 들어가기도 하면서 복잡한 동선이 얽혀든다.

“얘네 이거 준비해 왔대?”

“아닐걸요…?”

즉흥적으로 안무를 짜온 것 같은데도 막힘이 없었다.

그런데 뉴블랙의 Empire 안무하고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촬영이 끝나고 조연출이 놀란 얼굴로 물었다.

“너무 잘하던데요. 미리 맞춰 본 거예요?”

“아, 이거요.”

우주가 이마의 땀을 훔치며 슬쩍 웃었다.

“이게 저희 이전 Empire 안무 중 하나였거든요.”

“아…….”

리더가 고개를 뒤로 돌렸다.

“이게 몇 번째였더라. 최종-27이었나? 아니면 최종-32_최종 이었나?”

“최종-32_최종이었을 거예요.”

“그렇대요.”

왠지 모르게 안무의 이름에서 비슷한 공감을 느끼는 직장인들이었다.

어쨌거나 분위기는 좋았다.

미튜브에 올라가기만 해도 바다 건너 사람들이 뀨우우우 하면서 날뛰는 뉴블랙인데 무대까지 좋다.

“고생들 많았어요. 하하하하!”

“아니에요. 이제부터 시작인걸요.”

맞다. 이제부터 시작이다.

이 릴레이 댄스가 사람들에게 관심을…….

“예? 지금부터 시작이요?”

“저희 리허설 끝난 거 아니었어요?”

“어…….”

조연출이 말을 멈췄다.

그러고 보니 뉴블랙의 태도가 이상했다. 이제 몸이 슬슬 풀렸다는 듯이 기지개를 켜고 있는 멤버들.

불현듯 ‘온더스’에서 시계를 떼어 가던 멘토들의 모습이 눈앞의 뉴블랙과 겹치기 시작했다.

“…….”

조연출은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느꼈다.

*   *   *

목요일 저녁.

‘좋았다…….’

Empire의 첫 음방 무대를 시청한 수플레들이 인터넷으로 돌아와 주접을 떨려고 할 때였다.

[케이넷 릴레이댄스에 애들 영상 떴어!]

릴레이 댄스?

처음 들어 보는 컨텐츠에 팬들이 링크를 클릭했다.

그러자 환한 배경을 바탕으로 검은 무대 의상을 입고 있는 뉴블랙이 일렬로 서 있는 영상이 떴다.

곧바로 음악이 흘러나오면서 동선이 현란하게 움직인다.

‘우와아…….’

그냥 무대 영상을 보는 것과는 또 다른 맛이 있었다.

실수에서 자유로운 무대라 그런 것인지, 멤버들의 동작이 조금 더 과감하게 펼쳐지는 듯한 느낌.

중간중간 자기들끼리 손뼉을 마주치거나 눈을 마주치며 웃는 모습 등이 눈에 들어왔다.

‘사이 진짜 좋아.’

온 세상과 불화설 논란이 있는 메인 보컬을 제외하면, 참으로 합이 척척 맞는 최애들이었다.

릴레이 댄스 영상을 흐뭇하게 바라보던 수플레들이 댓글을 남겼다.

-우주 : 정석 / 비주 : 부드러움 / 리혁 : 깔끔+포인트 / 지호 : 끼 / 중현 : 김중현

-뭐지 나 뉴불백 홈쇼핑 보고 있는데 왜 여기로 넘어왔지..?

-불백으로 입덕했습니다

-02:17 리혁이 저만 귀여워할게요 다들 나가주시죠

-중독성 ㄹㅇ 대박이다ㅋㅋㅋㅋ

-왕지호의 수능 등급을 위해 우주선이 다시 한번 수능금지곡을 만들었다는 게 정설

-근데 이 안무 무대랑 다른 거 같은데 느낌 있다

간만에 한국인 댓글이 많아 편안하게 댓글창을 감상하던 것도 잠시.

우측에 추천 영상으로 떠오른 리스트를 바라보던 수플레들이 눈을 깜빡였다.

‘에러인가?’

같은 썸네일이 주르륵 떠 있었다.

방금 보았던 릴레이 댄스 영상처럼 우주가 고개를 살짝 숙인 채, 두 손을 모으고 있는 썸네일.

똑같은 영상을 주르륵 올린 모양이다.

‘케이넷 놈들 하여간 일…….’

그런데 어딘가 다른 게 눈에 띄었다.

제목.

Empire 뒤에 [Version 1.0], [Version 1.1], [Version 1.3] 하는 제목이 주르르 붙어 있었다.

바로 뒤 영상을 재생하자 방금 보았던 것과는 또 다른 느낌의 릴레이 댄스가 펼쳐지고 있었다.

‘영상이 몇 개야…?’

10개 가까이 올라온 릴레이 댄스 영상.

마지막에 [2.0]으로 끝나는 영상을 보며 다들 웃음을 터뜨렸다.

보통 때였다면 방송국 놈들이 애들을 굴렸다, 어쩌구 할 텐데 이건 상황이 너무나 명백해 보였다.

-영상 10개 올리라고 했을 때 K넷 업로드 담당자 반응 개웃겼을 거 같다ㅋㅋㅋㅋㅋㅋ

-담당자 : 예? 몇 개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메일 잘못 받은줄 알듯

-뉴블랙에게 릴레이댄스를 찍자고 했던 피디는 어떤 기분이었을까

-??? : 여러분이 어떤 엠파이어를 좋아할지 몰라서 다 준비해 봤어요

-중간값 없이 극단값만 존재하는 아이돌

-하.. 근데 버릴 것 없이 다 좋다

제작진의 눈물 어린 사정이 있긴 했지만 뉴블랙이 나온 릴레이 댄스 영상은 그들이 원하던 파급력을 보여 주고 있었다.

아이돌 팬들 사이에서 [진정한 ‘릴레이’ 댄스를 보여 준 아이돌] 하는 글들이 올라오고 있었다.

-이 정도면 마라톤 댄스라고 불러야되는 거 아님??

-ㄹㅇ 마라톤ㅋㅋㅋㅋㅋㅋㅋ

-존나 쩔었던 계주경기가 안 끝나는 느낌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케이넷에서 이제 다시는 안찍자고 할듯

-version 2.0쯤 가서는 카메라가 좀 흔들리는 듯한 느낌적인 느낌

-아 그래도 홍보 한번 제대로 했네ㅋㅋㅋㅋ 이런 거 있는지도 잘 몰랐는데

-근데 다 잘춘다 진짜ㅋㅋ 이럴 때 보면 진짜 프로 아이돌 같음

-응.. 왜냐면 진짜 프로 아이돌이니까

득달같이 메인 보컬의 춤 실력에 대해 까려고 들어왔던 이들도 아무 말이 없다는 사실에 왠지 모를 뿌듯함을 느낄 때.

인터넷 반응을 살피며 히죽거리던 수플레의 귓가에 거실에서 무슨 소리가 들려오는 게 느껴졌다.

부우우욱.

“……!”

다급하게 거실 밖으로 나간 수플레의 눈앞에 들어온 것은 스티로폼 상자를 뜯고 있는 아빠였다.

무언가 들여 놓는 소리가 들리긴 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아빠의 손에 커터칼이 들려 있고, 이미 뉴불백 통에 붙은 캐릭터 로고 띠지가 반쯤 끊겨 있었다.

“야, 이거 홈쇼핑에서 시킨 거 왔더라. 이거 얼른 냉장고에다가…….”

껄껄 웃던 아빠의 말에 수플레는 그제야 가족에게 ‘통을 절대 훼손하지 말라’고 말하는 것을 까먹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빠아아아아아!”

“왜… 왜?”

“아이 그거 그흐케 아흐! 아이! 아흐으으! 아!”

“어……? 이렇게?”

이제는 완전히 끊긴 띠지.

자리에서 콩콩 뛰다가 바닥에 주저앉아 대성통곡 하는 딸의 모습에 당황하는 아버지였다.

뉴불백의 배송이 시작된 첫날.

수플레들이 있는 전국의 가정에서 비슷한 상황들이 벌어지고 있었다.

*   *   *

정규 앨범의 첫 주 음방은 무난하게 끝났다.

K-net에 이어서 PBS와 TBC의 음악 방송도 무사히 끝냈고, 일요일의 음악 방송은 HBS 대신에 뉴블랙 TV의 별도 무대로 대신했다.

“오오…….”

조회수를 볼 때마다 감탄이 나온다.

오히려 음방을 안 나가고 이렇게 미튜브 무대만 내보내는 게 더 이득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고.

“덕순아아아~ 덕순아아아~”

노래를 흥얼거리며 침대를 뒹굴었다.

오늘은 컴백하고 7일차인 일요일.

DA 면세점에서 진행하는 올림픽 주경기장 패밀리 콘서트를 마치고 돌아와 숙소에서 쉬고 있는 시간이었다.

아마 막내는 게임을 하고 있을 거고, 리혁이는 십진분류법으로 책 정리를 할 테고.

비주는 방에서 춤 영상을 보면서 연습하고 있을 거다.

중현이는….

“…….”

안에서 대체 뭘 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중현이 방은 늘 미지의 영역이어서 들어갈 때마다 무언가 새로운 게 하나씩 등장하곤 했다.

1미터짜리 선인장을 본 적도 있고.

어쨌거나 각자 개인 정비를 하면서 휴식 시간을 보내고 있는 이 시각, 나는 침대에 누워 핸드폰을 보고 있었다.

심장이 콩닥콩닥했다.

이제 곧 일주일 간의 앨범 판매량인 초동 판매량 집계가 끝나고 결과가 나올 예정이었다.

저번 낙화 앨범의 경우에 36만 장이었던가. 1위인 틴스피릿은 얼마였더라.

‘보는 순간 시발 세 번 나왔슴다, 행님.’

18 곱하기 3… 54만인가? 검색을 해 보니 56만 장이라고 되어 있었다.

어쨌거나 이번에 우리 앨범 초동 판매량이 얼마나 나올지 촉각을 곤두세우며 지켜보는 중이었다.

지금 어느 정도까지 와 있나 지켜볼 수 있는 지표 중 하나니까.

매번 성적에 연연하지 말아야지 결심하긴 하는데… 프로로서 늘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었다.

테라스 바깥에 떠오른 달을 보며 손을 모았다.

“앞으로 말 잘 듣겠습니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고. 프로듀싱 팀 분들에게 조금 더 따스하게 대하고, 형섭이도 적게 구박하고. 꽃무늬 옷도 자제하겠습니다. 리혁이도 따스하게 보살필게요.”

그러니 잘 나오게 해 주세요…!

대표님처럼 인자하게 웃어 주는 달님을 바라보고 있을 때.

딩동!

미리 부탁했던 대로 석환 형으로부터 이미지 파일이 도착했다는 메시지가 보였다.

“후우…….”

심호흡을 길게 하면서 핸드폰을 멀리 떼고는 눈을 가늘게 떴다.

톡.

눈앞에 스크린샷이 떠오른다.

그리고 그걸 본 순간, 나도 모르게 놀라서 핸드폰을 얼굴에 떨어뜨렸다.

“악!”

잇몸에서 피가 났지만 아픔을 느낄 새도 없었다.

허겁지겁 핸드폰을 들어서 눈앞에 떠오른 숫자를 보고는 놀라서 방을 뛰쳐나갔다. 그러곤 옆방으로 향했다.

“히호야! 히호야!”

아우. 잇몸.

그러곤 나와 눈이 마주친 막내에게 씩 웃으며 달려갔다.

*   *   *

헤드폰을 끼고 게임을 하고 있었던 왕지호가 식겁했다.

“히호야! 이히히히히!”

“으아아악!”

입가에 피를 줄줄 흘리고 있는 맏형이 깔깔깔 웃음을 터뜨리며 방에 들이닥치고 있었다.

“히호야, 히호야! 헝 얘히 좀 들허 봐!”

“히이익! 저리 가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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