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556화
하시모토 겐지가 뭐라고 말할 틈도 없었다.
덥석.
비주가 상냥하게 웃으며 그의 손을 붙잡았다. 겨울철의 온기를 녹이는 따스한 감촉이었다.
“사인회에서는 못 봤던 거 같은데, 설마 이 앞에서 계속 기다리고 계셨던 거예요? 눈 오는데?”
동네 어르신을 대하듯이 살가우면서도 정중한 어조였다.
주변에서 핸드폰 카메라를 들고 지켜보던 일본 팬들이 ‘상냥해…!’ 하면서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아니, 이게… 찍지 마! 찍지 마!’
마음속으로 주변 핸드폰 카메라들에게 욕을 하던 하시모토 겐지에게 종이 한 장이 슥 날아들었다.
“에……?”
“잠시만요.”
품에서 사인펜을 꺼낸 비주가 가볍게 사인을 슥슥 해 주고는 미소를 지었다.
“죄송해요. 저희 스케줄이 바빠서…….”
“아니, 나는!”
“저희 팬이 되어 주셔서 감사해요-!”
“……!”
졸지에 사인을 받는 열혈 아저씨 팬이 되어 버렸다.
뭐라고 말할 틈도 없이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자상하게 웃어 주던 비주가 차에 올라타더니 매니저가 싱긋 웃으며 그를 물리고 문을 닫았다.
다른 멤버들도 멀어지는 차량 속에서 창문을 열고는 ‘감사합니다!’ 하고 손을 흔들어 주었다.
“와아아아아아아!”
전투 코끼리에 탄 장군을 따라 달리는 병졸들처럼 차량을 향해 팬들이 달리기 시작했다.
먼지 떼를 일으키며 사라지는 군중들.
그 뒤에 홀로 남겨진 하시모토 겐지에게 방송국 제작진이 다가왔다.
“……선생님.”
프로듀서가 침중한 얼굴로 말을 삼켰다.
그만큼 하시모토 겐지의 몰골이 좋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정갈했던 반백발이 산발이 되어 타임머신을 잘 만들게 생긴 미국의 박사처럼 변했고.
이리저리 비집고 들어가느라 단추가 몇 개 사라져 있다.
게다가 눈을 부릅뜨다가 충혈된 눈까지.
“아버지. 괜찮으신가요?”
“…….”
“아버지.”
하시모토 겐지가 눈을 지그시 감았다.
‘아버지나 아들놈이나…….’
선명주도 그렇고, 이제는 아들인 뉴블랙의 우주까지 그에게 이런 수치스러운 기분을 느끼게 하나 싶었다.
‘분하다.’
마음 같아서는 손에 들고 있는 사인지를 바닥에 내던져 버리고 싶었다.
분명히 기발한 기책이었건만, 매번 뉴블랙과 얽힐 때마다 일이 이상한 쪽으로 어그러지는 것 같았다.
마치 하늘이 방해하듯이.
하시모토 겐지가 눈을 지그시 감고 생각했다.
‘안 될 일이다. 포기한다.’
어떻게든 한 번 엮이고자 했는데 일이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이 정도면 포기하는 게 맞겠지.
‘언젠가 켄타가 세계적인 피아니스트가 된다면, 그때… 이 수모를 갚아 주는 거다.’
그런 생각을 하던 하시모토 겐지가 머리를 정돈하고는 평소의 온화한 미소를 되찾았다.
그제야 한때 일본을 풍미한 피아니스트다운 품새가 났다.
“별일 아니다.”
“아버지, 정말 괜찮…….”
“괜찮으니 그만 염려하는 눈으로 바라보아도 된다.”
프로듀서가 물었다.
“선생님, 그러면 오늘 촬영은….”
“없던 걸로 하지.”
“아, 역시 그게 좋겠군요. 촬영 테이프에 녹화가 되긴 했습니다만, 아무래도 이건 사용이…….”
“자네도 고생 많았네.”
그런 식으로 근엄하게 치하의 말을 하고 ‘선생님…’ 하고 그들끼리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였다.
프로듀서가 말한 ‘하시모토’라는 성씨를 들은 걸까.
“에?”
여전히 근처에서 카메라를 확인하고 있던 뉴블랙의 팬들이 ‘어?’ 하고 그들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이런!’
하시모토 일행이 다급하게 도망치기도 전에 손가락들이 더 빨랐다.
포털창에 토도독 하던 팬들이 다시금 고개를 들어 하시모토 겐지를 바라보고는, 다시 포털창을 바라보았다.
아마 이름을 검색한 모양이었다.
이윽고 한 팬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
“에에?!”
기왕 상황이 이렇게 된 것, 하시모토 겐지가 미소를 지으며 자신을 소개하려고 할 때였다.
눈을 크게 뜬 팬이 외쳤다.
“하시모토 겐지가 수플레였다!”
“수플레!”
“하시모토 겐지가 수플레였어!”
아니야! 아니라고!
속으로 그렇게 외쳤지만, 이미 찰칵, 찰칵 하는 소리들이 울려 퍼지는 것은 막을 수 없었다.
‘내가 어쩌다가 이런 수모를…….’
하시모토 겐지는 진심으로 울고 싶어졌다.
* * *
“대박이다.”
“진짜 대박이네요.”
우리가 감개무량한 얼굴로 손뼉을 마주쳤다.
방금 전, 비주가 사인을 해 드린 어느 열성 팬분 때문이었다.
“되게 나이 있으신 분이어서 놀랐거든요. 막 다른 팬분들 사이로 달려오시더니 절 딱 잡는 거예요.”
비주가 눈을 크게 뜨고 말했다.
“그래서 사인을 해 드렸는데, 뭐라고 말을 하시려고 한 것 같더라고요.”
“그 마음 알지.”
팬 사인회를 할 때 자주 겪는 일이었다.
우리가 처음에 팬분들을 만나서 당황했듯이, 수플레들도 간혹 우리를 처음 보고 당황하는 경우가 있었다.
말이 원하는 대로 안 나와서 갑갑한 마음에 눈물을 뚝뚝 흘리는 분들도 있고.
아마 아까의 팬분도 그런 기분 아니었을까.
“사인은 잘 해 드렸어?”
“네.”
“우리도 해 드릴 걸 그랬나 봐여. 근데 민기 형이 차에서 그냥 있으라고 했잖아여.”
매니저 형이 내리면 안 될 것 같다고 말했기에 그 판단을 믿었다.
하도 혼잡하기도 했으니까.
리혁이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도 우리가 가면서 인사는 했잖아요.”
“맞아. 그래도 할 건 했어.”
동생들과 미소를 교환하며 웃었다.
그나저나, 원석이 형과 민기 형이 뭐라고 말을 할까 말까 고민 중인 표정이기에 우리가 물었다.
“무슨 일 있어요?”
“아니, 아니야.”
고개를 젓는 모습에 우리도 원래 화제로 돌아왔다.
“되게 신기하지 않아여? 저렇게 나이 있는 팬분이 우리를 좋아한다는 거잖아여. 사인 받으려고 몇 시간 동안 밖에 서 있고.”
“그러니까 말이야.”
“다 같이 사인 못한 게 아쉬워요. 혹시 형이나 리혁이, 지호 좋아하는 분일 수도 있잖아요.”
비주의 말에 중현이가 화과자 시식을 중단했다.
“왜 나는 빼냐.”
“너는… 너잖아.”
흥 하던 중현이가 화과자 상자를 자기 쪽으로 끌어안더니 사과 맛을 제일 먼저 골라 먹었다.
동갑내기 녀석들이 투닥투닥 하고 있는 가운데.
여전히 눈이 내리는 도쿄의 밤거리를 바라보며 오늘 스케줄이 끝났다는 걸 자축할 때였다.
“어?”
일본어 실력을 활용해 ‘뉴블랙 리혁 사랑해’ 등을 검색하던 우리 메인 보컬이 눈을 크게 떴다.
무언가 놀란 반응이었다.
“왜 그래?”
“일본 쪽 SNS를 보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내 쪽을 바라보며 눈치를 살피던 리혁이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아까, 그 사람. 우리 팬이 아니었는데요?”
“어?”
우리가 물었다.
“무슨 소리야, 사인까지 받아갔는데…….”
“그게 다른 목적이었던 것 같아요. 알고 보니 우리가 아는 사람이었어요. 그 사람.”
“…….”
내가 눈매를 좁혔다.
“그러고 보니…….”
뭔가 허전하긴 했다.
집을 나설 때 버리려고 했던 분리수거 상자를 안 챙기고 나왔을 때의 그런 기분.
멀찍이서 봐서 긴가민가하긴 했는데 분명 내가 본 얼굴과 닮아 있었다.
눈을 감자 곧바로 매칭이 됐다.
“아……!”
“왜여, 형? 누군데여?”
“그! 그!”
워낙 존재감이 희미해서 이제야 기억이 났다.
“우리 아빠랑 라이벌이라고 자칭하시는 분 있잖아.”
“아, 그… 누구였더라?”
단체로 누구였지 하고 끙끙대자, 리혁이가 태블릿 PC를 반대로 들어서 보여 주었다.
“하시모토 겐지예요.”
“아, 맞다…….”
다시금 태블릿 PC를 든 리혁이가 말했다.
“아무튼 이 사람이 팬이라고 찾아왔을 리 없잖아요. 분명히 다른 목적이 있었을 텐데.”
“그런 분이었어?”
비주가 상냥한 미소를 지었다.
“종이에 소금이라도 뿌려 둘걸.”
“…….”
중현이가 그래서 밥이 짰던 건가, 하고 중얼거릴 때.
우리의 시선이 그제야 편안한 얼굴이 된 매니저 형들에게로 향했다.
“형들이 아까 얘기하려고 했던 게 이거죠?”
“응.”
민기 형이 웃었다.
“안 그래도 팀장님한테 지시받았거든. 자꾸 만나자고 하니까, 혹시 현장에 오거나 하면 조치하라고.”
“어쩐지.”
“뭐, 결과적으로 잘 됐지. 너희도 인터넷 반응 봤어?”
“아뇨. 아직.”
재미있을 거라고 하는 민기 형의 말에 우리가 리혁이가 보고 있는 태블릿으로 시선을 돌렸다.
아직 읽기에는 서툰 우리가 바라보자 리혁이가 말해 주었다.
“지금 일본 실시간 트렌드에 올라온 거예요. 하시모토 겐지가 우리 팬이었다고.”
“응?”
리혁이가 트윗 하나를 보여 주었다.
@KurikuriQ1
(열성적인 중년 남성 팬이 사인을 받으면서 오열하는 영상 클립)
뉴블랙의 팬사인회장 바깥!
어머어마하게 대단한 아저씨 팬을 목격해 버렸다. 이게 바로 아저씨의 순정인걸까
누가 봐도 열성적인 팬처럼 보이는 모습의 영상 아래로 달린 답댓글 같은 것이 달려 있었다.
-에? 저 사람 하시모토 겐지 아냐?
……라는 트윗을 시작으로 하시모토 겐지가 뉴블랙의 팬이다! 하는 것이 촤아악 퍼져 가고 있는 모양이었다.
나도 모르게 큰 웃음이 터져 나왔다.
뒤이어 왠지 모르게 처량한 얼굴로 떠나는 하시모토 부자의 모습이 SNS에 올라오고 있었다.
“뭐.”
리혁이가 짤막하게 말했다.
“내 생각이긴 하지만 앞으로 다시 볼 일은 없을 거 같네요.”
적절한 상황 요약에 우리 모두 웃었다.
* * *
팬사인회 스케줄을 마친 뉴블랙이 호텔로 돌아가 공연 준비에 들어가던 그 시각.
일본에서는 평일 8시가 지나면서 밤 시간대 정보 프로그램이 방영되고 있었다.
하루에 있었던 일들을 요약해서 보여 주는 연예, 생활 정보 프로들답게 오늘의 연예계 소식을 빠르게 전달했다.
-뉴블랙!
그중에서 대다수 프로그램이 다루는 화제는 바로 아침 방송을 뒤흔들어 놓은 뉴블랙에 대한 이야기였다.
‘뉴블랙이 도쿄에 왔나 보네.’
며칠 전 오사카에 도착한 것은 알고 있었다.
정보 프로그램들에서 하나같이 ‘뉴블랙! 일본 상륙!’ 하면서 간사이 공항의 어마어마한 인파를 보여 줬으니까.
그런데 도쿄에 왔다니.
바쁜 일 때문에 잠시 바깥소식에 무관심했던 이들에게도 오전에 있었던 일이 전해지고 있었다.
[이것은 오늘 오전! NTN <모닝Q>에 출연한 5인조 소년들의 모습!]
-귀여워!
-뭔가 남자인데 사랑스럽달까, 그런 기운이 물씬 풍기네요.
패널들과 내레이션의 목소리가 얽히는 가운데.
오전에 NTN에 출연한 뉴블랙 중현의 모습이 흘러나왔다.
[안녕하세요. 날씨 천재 중현입니다.]
황금빛 자막으로 처리된 중현의 대사에 패널들이 ‘날씨?’ 하면서 호기심을 보인다.
곧바로 TV 속 중현이 말했다.
[오늘 눈이 옵니다. 그것도 많은 눈이.]
그러자 화면이 잠시 멈추면서 좌측 상단으로 포커스가 이동했다.
중현이 말을 하고 있던 그 시각.
[9:39]라는 시간과 함께 절묘하게 ‘도쿄’ 하고 맑은 날씨가 지나가고 있었으니까.
곧바로 빨간 동그라미가 거기에 그려지면서 패널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뭐야, 하나도 안 맞잖아…!
-기상청이 그건 너의 생각인데 말이지, 하고 말하는 거 같네요.
-꽤 당황했어요, 이사기 씨.
자료화면 속 진행자인 이사기가 어색하게 웃으며 ‘이건 재미로 보라고’ 말해 주는 장면이 흘러나온다.
바로 그때.
[하지만!]
곧바로 화면이 전환되며 긴급 속보 장면이 나온다.
패널들이 ‘???’ 하기 시작했다.
[긴급 속보입니다. 기상청에서는 오늘 오후 도쿄에서 급작스럽게 눈이…….]
다른 뉴스 화면으로 장면이 넘어가면서 도쿄가 실시간으로 겨울 왕국이 되어 가는 모습들이 흘러나왔다.
성우의 내레이션이 웅장하게 울려 퍼졌다.
[날씨 천재의 예측은 그야말로 정확했다!]
[오늘 도쿄도 전역에 급작스럽게 내린 눈은 기상청조차 예측하지 못한 것이었다!]
[이 미스터리의 비밀을 풀기 위해 인터뷰를 해 보았다.]
기상학 관련 교수가 안경을 고쳐 쓰면서 나왔다.
[뭔가, 믿기 힘든 그런 일이란 말이죠. 공기 중에 비 냄새라고 하는 ‘지오스민(Geosmin)’과 관련된 것일 수도 있지만… 이건 그런 종류는 아니라고 봅니다. 뭔가…….]
[무언가 말을 머뭇하는 기상학 교수!]
[인간의 영역이 아니란 말이죠.]
한국 TV에서 신통방통하게 날씨를 맞히는 영상들을 보던 기상학 교수가 뒤통수를 긁적이며 ‘미안, 이건 분석이 무리’ 하고 있었다.
[기상학 교수도 분석을 포기!]
-슬슬 무서워지려고 하네요.
-대단해…….
곧이어 도쿄 시민들의 인터뷰가 이어졌다.
오전에 중현의 날씨 영상을 보았느냐는 말에 보았다는 답들이 돌아왔다.
[보면서 ‘무슨 소리 하는 거야?’ 하고 짜증을 냈었는데, 몇 시간 뒤에 우산을 사고 있었습니다.]
[신기하단 말이죠~]
[뉴블랙 덕분에 오늘 여자 친구에게 칭찬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압도적으로 감사합니다!]
미리 우산을 챙겨 센스 있는 남자 친구가 되었다며, 엄지를 척 든 대학생의 모습에 웃음이 흘러나왔다.
그리고.
중현을 시작으로 뉴블랙에 대한 이야기가 쭉쭉 이어지고 있었다.
[이리 오이소!]
오사카 사투리를 완벽하게 선보여서 간사이 지역 출신 방송인들이 놀라는 리더의 영상도 있고.
뉴블랙 TV에서 활약했던 멤버들의 모습이 자료화면으로 나오고 있었다.
비주와 지호를 붙잡은 중현이 빙글빙글 돌면서 놀이공원 기구처럼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인간인가?’
만화책에서 튀어나온 캐릭터들 같은 한국의 5인조를 보며 혀를 내두르는 시청자들이었다.
동시에 친근감을 느꼈다.
시사 프로들에서 하도 침을 튀겨 가며 어쩌네 저쩌네 했는데, 딱히 그런 느낌이 들지도 않았다.
“귀엽네.”
“저기 듬직한 애 말이야. 은근히 귀엽지 않아?”
“그치만 얼굴은 우주인 걸.”
“그건 맞아…….”
리더를 바라보는 여성 시청자들의 입가에 화사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좋아하는 연예인이나 스포츠 스타가 있다거나 상관없이, 그저 수려한 광채를 뿜고 있는 미모가 눈에 들어왔다.
뉴블랙이 해외 활동할 때 언제나 큰 도움이 되고 있는 압도적인 미모였다.
“진짜 잘생겼다…….”
“저런 얼굴로 한 번 살면 어떤 기분일까. 핸드폰 화면에 갑자기 얼굴이 비쳐도 행복할 거 아냐.”
동그란 보석을 섬세하게 깎아 놓은 듯, 턱 끝부터 시작해서 귀까지 우아한 곡선과 반짝이는 눈이 돋보였다.
부모의 좋은 점만을 물려받은 이목구비는 말할 것도 없었다.
“뭔가 좋네.”
“그러게…….”
그렇게 뉴블랙의 리더가 일본의 일반인들을 슈루루룹 늪으로 끌어당기고 있을 때.
날씨에 이어서 다른 화제로 넘어갔다.
잡지 인터뷰나 팬사인회 등 뉴블랙의 스케줄을 따라다니던 방송국들이 누군가의 모습을 비쳤다.
[그리고! 팬사인회장 바깥에선 놀라운 얼굴이 기다리고 있었다!]
-에?!
-하시모토 겐지 상?
유명 피아니스트가 뉴블랙의 비주에게 사인을 받고 있는 장면이었다.
이리저리 떠밀리면서도 사인을 받으려고 악착같이 달라붙는 모습에 패널들이 오 하며 감탄한다.
-하시모토 상이 뉴블랙을 응원하는 건가요. 훈훈하네요.
-역시 라이벌의 아들이라도 응원하겠다, 하는 훈훈한 마음이 느껴지는 거 같아요.
방송과 패널들이 적당히 포장을 해 주면서 시청자들도 ‘팬이었어?’ 하면서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눈썰미가 예리한 몇몇 시청자들은 심드렁한 표정을 지었다.
‘언제적 하시모토 겐지야.’
나이가 있는 세대야 오호, 하는 인물이지만 젊은 세대에게는 그냥 큰 이미지가 없는 인물이었다.
거물이라고 하는데 딱히 뭐가 있는지는 모르겠다.
TV 프로에서도 매번 라이벌, 라이벌 하는데. 한두 번을 해야 ‘오오’ 하지, 시청자들 입장에서 조금 물리는 느낌이었다.
‘민폐 같은데. 그냥 자기 길을 가면 안 되나.’
온라인에서도 비슷한 반응이 몇몇 보였다.
-무시당해 버렸다wwwww
-대체 저기까지 왜 간 거야. 뉴블랙이 우와 대단해!! 하시모토 겐지!! 하면서 반겨줄 거라고 생각이라도 한 거냐
-영감님도 이제 좀 스스로의 길을 갔으면 좋겠단 말이지
-훈훈한데 왜 그렇게 부정적으로 보는 거냐 너희
TV에서는 적당히 ‘팬이라니! 훈훈하다!’ 하며 끝내려고 할 때.
방송 패널 중 하나인 마에다 신이 반들거리는 머리를 매만지며 퉁명스럽게 말했다.
-조금 더 조용히 만날 수도 있잖아, 뭔가 저건 내가 만나고 있다! 과시하는 느낌인걸.
-아하하하!
-돈벌이가 시원찮으면 나처럼 패널로 나온다든가…….
폭탄 발언 및 독설을 담당하는 패널의 말에 진행자들이 다급하게 다른 쪽으로 화제를 돌렸다.
뉴블랙이 내일부터 국립 요요기 경기장에서 콘서트를 한다는 소식이었다.
그렇게 연예 소식이 끝나고, 다시금 생활 정보 소식으로 방송 코너가 넘어가는 한편.
“오오…….”
오늘 한 차례 일본 전역에서 화제가 되었던 한국의 아이돌에 대한 검색량은 시간이 갈수록 증가하고 있었다.
포털에서 이미지를 살펴보다가.
SNS에 돌아다니는 동영상이나 이런저런 소식을 보는 등.
그렇게 뉴블랙을 찾아 검색하던 이들이 탑승한 열차가 뉴블랙 TV라는 종착역에 도착했다.
그중에서 세계 다양한 언어로 된 World 채널.
“오.”
방송 은퇴 취급이었던 마에다 신이 다시 복귀하게 된 계기인 인터뷰부터 시작하여.
올해 초부터 다양한 해외 팬들을 공략하기 위해 만든 컨텐츠가 힘을 발휘하고 있었다.
“오오오…….”
점점 빠져드는 이들의 앞에 뉴블랙 월드 TV 송이 흘러나왔다.
오프닝에서 둠칫둠칫 춤을 추는 뉴블랙이 츄라이~ 츄라이~ 하듯 훌라 춤을 추고 있었다.
알록달록한 일본어 로고 속에서 울렁울렁하는 미남들의 바다에 빠져드는 기분이다.
-뉴블랙 월드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환영합니다)
-못 나갑니다~ (못 나갑니다)
정말 그 말대로 이루어지고 있는 뉴블랙 월드 송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