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561화
손에 든 말티즈 인형을 보고는 송훈 선생님에게 시선을 돌렸다.
“선생님.”
“안 가.”
“아니, 선생님. 목소리 연기는 선생님이 하셨잖아요.”
“아이고, 허리야…….”
못 들은 척하면서 얼른 나가라고 손짓하는 원로 배우였다.
아니.
내가 분명히 송훈 쌤 촬영장에서 훌라우프 돌리는 거 봤는데. 이제 와서 허리가 아프다는 이야기에 눈을 깜빡였다.
“……저는 오늘을 잊지 않을 거예요.”
그 한마디를 남기고 시상대로 향하자 <우리 가족은 외계인> 식구들이 빵 터져서 자기들끼리 키득거렸다.
“베스트 커프… 흡, 축하해요. 우주 씨.”
“감사합니다.”
한 손에는 말티즈 인형, 다른 손에는 베스트 커플상 트로피.
환한 조명 너머로 MC들과 테이블에 둘러앉은 예능인들이 웃음을 터뜨리고 있는 게 보인다.
고개를 살짝 돌려보니 스크린에서 내가 영식이를 품에 안고 달리는 장면이 계속 흘러나오고 있다.
-네…….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떨려 나왔다.
-정말, 이런 큰 상을 주시다니…….
아련한 미소를 짓자 방청객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동물 관련 프로도 아니고 강아지와 케미가 좋다고 베스트 커플상을 주는 건 처음 보는 것 같다.
아니다.
처음은 아니긴 하구나.
-그러고 보니 재작년에 저희 멤버 중에 중현이가 베스트 커플상 후보에 들었던 게 기억이 나네요.
‘대길-중현’ 해서 14년도 TBC 연예대상의 베스트 커플상 후보에 들었던 것이 기억났다.
-중현아. 지금 보고 있니? 형 상 탔어.
카메라를 향해 생긋 웃어 주고는 진지하게 나머지 소감을 전했다.
-올해 ‘우리 가족은 외계인’이라는 드라마에 참여하면서 정말 귀중한 인연을 많이 맺은 것 같습니다. 송훈 선생님, 양옥분 선생님, 서노을 선배님… 그리고 우리 영식이까지.
손에 든 말티즈 인형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
-정말 감사드리면서, 이 상의 영광은 영식이에게 돌리도록 하겠습니다.
자연스러웠다.
박수를 치면서 웃는 사람들에게 미소를 지어 보이고는 스탭의 안내에 따라 백스테이지로 내려왔다.
바로 다음 시상이 이어지는 가운데.
“흐하하하하하!”
백스테이지 쪽에서 익숙한 웃음소리들이 들려왔다.
제발 아니어라.
눈을 지그시 감으면서 내려오자 우와아아아 하는 환호가 들려왔다. 나를 둘러싼 두 쌍의 거머리들.
“조용히 해.”
“우우우우~~”
“조용히 해. 나 무기 들었다.”
배를 잡고 깔깔 웃어 대는 졸개들을 무시하고는 제자리로 돌아왔다.
입꼬리를 씰룩이며 한마디씩 하려는 우가외 식구들의 눈빛에 내가 웃으며 말했다.
“혼자 있고 싶어요.”
다들 소리 없이 웃음을 터뜨렸다.
* * *
그 이후로 시상식은 무난하게 진행됐다.
-둘 셋!
-안녕하세요! 뉴블랙입니다!
동생들과 함께 연예대상에서 주는 인기상도 수상하고.
1부에 이어서 2부 오프닝 무대로 나온 Empire의 커버 무대도 감상했다. ‘사람이 간다’ 팀에서 준비한 무대였다.
센터를 맡은 은성이가 윙크를 날리자, 곧바로 카메라가 웃고 있는 나를 잡아 주었다.
“…….”
정색하는 우주선 표정으로 눈을 가늘게 뜨니 다들 웃는다.
Empire 무대가 끝나고, 예능인 MC가 테이블 사이를 돌아다니면서 올해 대상은 누구냐 하는 토크를 이어 갔다.
내게도 마이크가 넘어왔다.
-방금 엠파이어의 커버 무대가 있었지 않습니까?
-네, 정말 잘 봤어요.
최선을 다해 준비한 무대에 박수를 보냈다.
MC가 깐족거리며 물었다.
-방금 케빈 씨가 화면에 잡혔을 때는 표정 관리가 안 되던데요?
-아. 그건…….
군대 후임과 내 사이가 잘 알려져 있어서 그런지, 거북해하는 내 모습에 다들 공감 간다는 듯 웃었다.
-케빈 씨 무대 어땠나요?
멀찍이서 은성이가 눈을 반짝이며 손을 흔들어 주는 모습에 내가 말했다.
-너무 과하게 끼를 뽐내시는 게 아닌가. 엠파이어가 저렇게 윙크하고 그런 곡이 아니거든요. 진지한 곡인데.
-그럼 어떤 느낌으로 해야 됐을까요?
-요런 느낌으로요.
아까 무대에서 은성이가 했던 표정을 고스란히 따라 하면서 생긋 웃어 보였다.
내가 공중 발차기만 해도 박수를 쳐 주는 수플레들답게 방청석에서 요란한 환호 소리가 들려왔다.
잠시 나를 바라보며 오 하던 MC가 말했다.
-표정은 똑같은데. 왠지 우주 씨가 이겼네요.
눈을 슥 흘기는 예능 표정을 짓는 은성이가 카메라에 잡히고, 내가 웃으면서 마이크에다 대꾸했다.
-농담이고요. 엄청 잘했습니다, 케빈 씨.
금세 헤벌쭉하게 웃는 녀석을 보며 나도 웃었다.
그런데 확실히 잘하긴 했다.
다들 일주일 벼락치기 정도로 연습했을 텐데, 그럼에도 퀄리티가 나쁘지 않았다.
특히나 은성이가 중심을 잘 잡아 줘서 주변에는 시선도 가지 않았다. 무대에서 센터가 중요한 이유였다.
-정말 멋진 무대였습니다. 아마 일주일 정도 되는 촉박한 시간 동안 준비를 하셨을 텐데.
그때 사간 팀이 웅성웅성 하더니 뭐라고 외쳤다.
MC가 듣고는 물었다.
-한 달 내내 연습했다는데요?
우리 테이블과 근처 테이블들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일어나서 사간 테이블을 향해 정중하게 꾸벅 숙이며 사과를 하자, 도준기 피디가 괜찮다는 미소를 지었다.
다른 쪽으로 바로 시선을 돌렸다.
곧바로 MC가 다른 쪽으로 넘어가서 토크를 하는 동안, 생수병으로 목을 축였다.
“일주일?”
옆에 앉은 아라가 키득거리며 묻는 말에 내가 입을 가리고 말했다.
“저 오늘 말리는 날인가 봐요. 누나.”
“그럴 때가 있지.”
“저 이상한 소리는 안 했죠?”
“응, 잘했어. 넌 이런 거 실수 안 하는 것 같더라.”
말 하나 꼬투리가 잡혀서 논란이 되는 게 생방송 시상식인 만큼 말투나 표정 등을 조심했다.
예능용일 때는 모두가 장난이라는 걸 알도록 하고.
그동안 2부 토크가 끝나고 바로 시상이 이어졌다.
사실상 <우리 가족은 외계인>에 상을 주기 위해 부활한 시트콤 부문에서 황정구 감독님, 황정연 작가님과 함께 올라가 상을 받고. 예능 파트에서 주세한, 사간, 신토끼가 돌아가면서 수상하는 모습에 박수를 쳤다.
-촬영하면서 정말 즐거웠던 것 같습니다. 시트콤을 찍으면서 이렇게 웃었던 건 처음인 것 같아요.
시트콤 부문 최우수상은 서노을 선배가 타고, 공로상은 송훈, 양옥분 선생님이 함께 올라가 받았다.
은성이도 개인상을 따로 받았다.
PD님들이 꼽은 PD상이었다.
-피디님들이 저를 예뻐해 주셔서 주시는 상이네요. 저도 알고 있습니다. 제가 사랑스럽다는 걸요.
군 후임의 자기애 넘치는 소감에 다들 웃음을 터뜨렸다.
진짜 특이한 애라서 군대에서도 행보관님이 ‘쟤 뭐냐’ 하면서 당황하고 그랬는데.
사람들 반응을 보니 예능 이미지도 그쪽으로 잘 잡힌 것 같다.
-항상 방송에서 선 넘지 말라고 조언해 주시는 우리 대표님. 못난 형이라고 이름을 저장한 우리 멤버들. 저는 그럼에도 여러분을 모두 아낍니다. 제 그릇이 넓기 때문입니다.
단아하게 웃던 은성이가 웃으면서 말했다.
-진담은 아니고요. 정말 감사합니다. 정말 열심히 노력하는 예능인이 되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그리고.
시선이 내 쪽으로 향했다.
-늘 얘기하지만 저를 군대에서 가수로 키워 주신 우주 선배님께도 감사의 말씀 드립니다.
은성이가 흐릿한 미소를 지었다.
-부디 만수무강하세요.
다들 웃음을 터뜨렸다.
서노을 선배가 ‘미치겠다’ 하면서 눈물을 닦는 동안, 나도 박수를 치면서 특별상을 탄 은성이에게 환호를 보내 주었다.
예능 쪽으로 잘 풀려 나가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그렇게 시상식이 끝나는 자정 무렵까지 자리에 앉아 축하를 하고, 때로는 나가서 같이 상도 받고.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둘 다 눈이 퉁퉁 부은 황정연 작가님과 황정구 감독님이 대표로 출연진 모두에게 인사를 했다.
“우리 배우들 정말 고생 많았어요. 처음에 시트콤을 찍을 때만 해도 이렇게 쟁쟁하신 분들이 모여 줄 줄은 몰랐거든요.”
“TBC에도 편성 되고 별일이 다 있네요.”
최근에 와서야 시트콤 부활에 방송국들이 숟가락을 얹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사장되는 장르였던 시트콤이었다.
그런 시트콤 프로젝트를 편성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충이 있었을지, 감독님의 일렁이는 눈망울에서 감정이 읽혔다.
감독님이 말했다.
“아무래도 연기 대상이 아니니까, 배우 분들은 조금 아쉬운 부분이 있었을 텐데…….”
“황 감독.”
송훈 선생님이 고개를 저었다.
“그런 소리 말어. 상이 대수인가?”
“대수긴 하죠. 쌤.”
“그래도 상은 중요하죠.”
다른 배우들이 한마디씩 얹자 송훈 쌤도 눈을 깜빡이며 수긍했다.
“그렇긴 한데… 배우로서 이런 작품 해 보는 것도 흔치 않은 기회야. 우재용이 말이야.”
“주세한의 우재용 쌤이요?”
“그래. 고놈이 옛날에 시트콤에서 인기 많았다고 어찌나 자랑을 해 대는지 나도 꼭 찍어 보고 싶었다니까. 황 감독 없었으면 내가 시트콤을 어떻게 찍었겠어?”
너스레를 떨면서 감독님을 다독여 주는 송훈 쌤이었다.
황정구 감독님도 멋쩍게 웃었다.
아무래도 그런 부분을 신경 쓰셨던 모양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시트콤으로 명연기를 펼쳐도 연기 대상에는 못 가니까. 커리어를 신경 쓰는 배우들에게 조금 그렇지 않을까 하고.
서노을 선배가 웃었다.
“감독님.”
“응?”
“저 이걸로 광고 4개 찍어요.”
자본주의 가득한 미소에 그제야 감독님도 편하게 웃고 다들 웃음을 터뜨렸다.
유쾌한 분위기 속에서 다 같이 함께 인증샷을 찍고는 손을 흔들며 덕담과 연말 인사를 건넸다.
“다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황정구 감독님이 미소를 지었다.
“내년에는 한국예술대상에서 뵙겠습니다.”
* * *
“지호야. 한국예술대상은 뭐야?”
“아, 그거여.”
막내가 말했다.
“형도 알지 않아여?”
“영화상이라고 알고 있어서.”
“그거 TV 부문도 수상할 걸여? 그래서 황 감독님이 그렇게 말씀하신 걸 텐데.”
아하.
흔히 3대 영화상으로 알고 있는 시상식 중 하나였는데 TV 부문도 수상을 하는 모양이었다.
“그렇구만.”
기지개를 쭉쭉 켜면서 몸을 풀었다.
리허설 순서가 꽤 뒤에 있는 편이라서 이런 식으로 미리 몸을 풀어 둬야 부상 위험이 적다.
찰칵. 찰칵.
대기실 벽에서 화보를 찍듯이 다양한 포즈를 잡는 비주와 귀찮은 기색으로 찍는 중현이가 보인다.
내가 웃으며 물었다.
“그렇게 좋아?”
“네. 형도 좋지 않아요?”
“엄청 좋지.”
비주의 뒤편으로 큐시트가 붙어 있었다.
‘2016 PBS 가요제전 (킨텍스).’ 라고 되어 있는 제목 아래로 가수들의 무대 순서와 시간 등이 나열된 가운데.
마지막에 ‘뉴블랙’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었다.
“후우…….”
다 같이 큐시트 앞으로 모여서 뜨거운 콧김을 내뿜었다.
다시 봐도 기분이 좋다.
현장에 와서 큐시트를 딱 봤는데 우리가 마지막 순서에 있는 이 기분.
“에이텐 덕분인가.”
올해의 가수상을 받은 것도 이유겠지만, 아마 현실적으로 그런 이유일 것 같다.
미스터 프로듀서의 프로젝트 그룹을 도와준 보답으로 마지막 순서를 받은 듯하다고 할까.
예능국에서 ‘내년에도 우리 찐하게 예능 한 번…?’ 하며 눈을 찡긋하는 느낌.
중현이가 말했다.
“일단 기분은 진짜 좋네요.”
“그러게. 내 예상보다 훨씬 더 빨랐어.”
내년, 내후년 정도는 되어야 연말 엔딩 무대를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는데, 예정보다 이르게 찾아온 엔딩 무대였다.
우리 다음 순서로는 전 출연자가 함께 하는 ‘손에 손잡고’ 같은 무대 정도.
“근데 이거 되게 옛날 노래 아니에여?”
“피디님이 88 올림픽 보신 세대라서 그런 걸 거야.”
“아하.”
2002 월드컵부터 아는 젊은 세대인 나로서는 까마득히 먼 예전 일이었다.
“우와, 88년이면 형 태어났을 때 아니에여?”
“93이다. 93.”
“구삼은 27.”
“중현아, 너 지호랑 손 잡고 나가.”
비주와 리혁이가 키득거리는 가운데, 중현이와 지호가 바로 일어나 대기실 문 앞으로 향했다.
중현이가 검지와 중지를 관자놀이에 올리며 튕겼다.
“그럼 갈게요.”
“……어디 가?”
“저희 연습이요.”
“아.”
그제야 막내와 중현이의 합동 퍼포먼스가 있다는 사실을 기억했다.
98년생끼리 하는 합동 무대와 래퍼들끼리 요요얍얍 하는 랩 무대. 연습 잘하라고 응원의 말을 건넸다.
“지호야.”
“네?”
“연습할 때 스트레칭 꼭 하고. 오늘 보니까 어깨 쪽이 잘 안 풀려 있는 것 같은데, 춤추기 전에 꼭 풀어 주고.”
“넹!”
“여기서 퀴즈. 내가 방금 뭐라고 했을까?”
“……사랑한다?”
전혀 듣고 있지 않았구나.
중현이한테 눈짓을 하자, 바로 지호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끼요오오오옷 하며 어깨가 완전히 풀린 지호가 우리가 밉다며 방을 박차고 나갔다.
중현이도 따라 나가려다가 멈칫했다.
“형.”
“응.”
“저는요?”
지나치게 튼튼해 보이는 로봇의 질문에 내가 미소를 지으며 화제를 토스했다.
“비주야, 리혁아. 너희가 대신.”
“야.”
비주가 야, 라고 하자마자 듣기 싫었는지 중현이가 줄행랑을 쳤다.
대기실 밖으로 뛰쳐나간 동생들을 보고는 나도 일어나서 무대 소품을 하나씩 챙겼다.
리혁이가 물었다.
“벌써 가게요?”
“나도 태현이랑 무대 있잖아. 가서 우리 TNT 선배님들한테 미리 인사도 할 겸.”
비주와 리혁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합동 무대 연습을 하러 떠나는 나를 보며 근심스러운 표정을 짓고는 한마디씩 하려고 했다.
“형.”
“내 얘기 잘 들어요.”
물가에 내어 놓은 아이를 걱정하듯 이것저것 말하는 동생들에게 내가 말했다.
“걱정하지 마. 오늘 이상한 거 안 해.”
“…….”
“진짜라니까?”
“…….”
전혀 안 믿는 눈으로 바라보는 멤버들의 모습.
내 마음에서 비가 주룩주룩 내렸다.
* * *
일산 킨텍스 회의장.
여기저기 가벽으로 세운 대기실이 가득했다. 대기실 안에서 싸우는 소리들도 종종 들려오고.
-야, 나 네 냉면 계란 먹어도 되냐.
-어?
-왜.
-이 소리 들리냐?
-뭔 소리.
-네 양심이 디졌다는 소리. 아아아악!
우당탕탕 하면서 뒹굴뒹굴하는 듯한 익숙한 소리를 들으며 대기실과 거리를 벌렸다.
잘못 걸렸다가는 포청천으로 초빙되어서 ‘행님, 어떤 새끼가 디져야 할까요?’ 하며 재판관으로 불려갈 터였다.
“음?”
소리가 들려오는 그곳에서 쭈뼛쭈뼛 하는 원더 차일드 멤버들이 보였다.
“엇! 안녕하십니까!”
“안녕하세요.”
두 손을 모으고 ‘틴스피릿’이라는 팻말이 붙은 대기실 앞에서 눈치를 살피는 이들에게 말했다.
괴물의 둥지를 앞에 둔 것처럼 긴장했다.
“인사하려고요?”
“네. 적당한 타이밍을 재고 있습니다. 선배님들께서 기분이 많이 언짢으신 것 같아서…….”
“?”
“뭔가 분위기가…….”
나름 이미지를 신경 쓴다고 욕할 때만 소리가 작아지는데, 서로를 향해 개와 소로 친근하게 부르는 소리가 적나라하게 들려온다.
내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래요? 오늘 완전 기분 좋아 보이는데.”
멈칫.
“아니, 진짜예요.”
차마 선배라고 불신 가득한 눈으로 보진 않고 있는데, 원더 차일드 멤버들이 멈칫하는 기색이 느껴졌다.
“저 선배님들 오늘 기분 최상인 것 같은데.”
“그, 그렇습니까?”
“무서우면 같이 인사해 줄까요?”
“아닙니다! 저희 이제 프로입니다.”
가슴을 쭉 피는데 위풍당당한 병아리들 같은 표정이었다.
하기야 나도 연말 무대 때 틴스피릿한테 인사하러 갔을 때 엄청 긴장하긴 했지.
파이팅, 하고 작게 웃어 주고는 손을 흔들었다. 오늘도 멋진 선배 1 포인트 적립이었다.
“저 그런데 선배님, 지팡이는 왜……?”
“아. 이거 무대 소품인데.”
손으로 빙글빙글 돌리고 있던 마술 지팡이를 선풍기처럼 돌리며 기예를 선보이자 신인 아이돌들이 감탄했다.
“그럼.”
우와 하는 이들에게 뿌듯한 미소를 보내며 떠났다.
그렇게 손으로 빙글빙글 돌리던 지팡이를 멈추고는 ‘TNT’라는 팻말이 붙은 대기실 앞에 섰다.
안에서 두런두런 대화 소리가 들려온다.
“선배님들.”
대화 소리가 뚝 끊겼다.
곧바로 굉장히 거북해하는 반응들을 느끼며 대기실로 들어서자, 우왁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야!”
대기실 의자에 앉아 있던 TNT의 형 라인이 반갑게 인사했다. 리더인 구선웅이 나를 툭 쳤다.
“잘 지냈어? 연락 좀 하지.”
“했는데.”
“캬, 선웅이 형 저거 대답 잘 해야 된다.”
상대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올해의 가수상 받았다며, 축하한다!”
다들 웃음을 터뜨렸다.
고맙다고 인사하고는 우왕우왕 하는 동생라인과도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특히나 한별이는 간만에 본다.
“잘 지냈어?”
“응.”
“아직 밥을 못 사 줬네.”
“뭘 우리끼리 그런 걸 신경 써, 그냥 이체해. 형.”
어깨동무를 하고는 조용히 하라고 속삭였다.
눈을 게슴츠레 뜨는 TNT의 멤버를 바라보며 웃고는 태현이와 한빈이, 지훈이와도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백승제와도 가볍게 눈인사를 하고.
메인 보컬 신주영이 물었다.
“맞다. 이번에 미국 다녀왔다며? 너네 토크쇼 나온 거 봤는데.”
“그거 봤어? 민망한데.”
재계약을 앞두고 있는 연습생 동기들이라서 예민할 것 같은 화제는 피했다. 적당히 웃으면서 기분 좋을 화제만 얘기하고.
전반적으로 부드러운 분위기 속에서 축하한다, 잘 돼서 좋다 하는 이야기를 주고받을 때였다.
“근데 나 아까부터 그거 신경 쓰였는데.”
지훈이가 내가 들고 있는 지팡이를 가리켰다.
“그건 뭐야?”
“아, 이거 태현이랑 무대할 때 쓸 소품.”
“지팡이로 춤추는 그런 무대?”
“응.”
내가 물었다.
“잠깐 보여 줄까?”
“오오.”
태현이가 뿌듯한 표정을 지으며 다른 멤버들에게 보라고 손짓하는 가운데, 다들 자리를 벌려 주었다.
댄서들과 TJ 스탭들도 궁금하단 표정으로 바라볼 때.
내가 손을 슥 들어 올렸다.
그리고.
“……!”
허공으로 둥실 떠오른 지팡이가 알아서 춤을 추기 시작하면서 다들 눈을 크게 떴다.
“지팡이가 추, 춤을 춘다…!”
“뭐야. 네가 춤을 추는 게 아니라 지팡이가 춤을 추는 거였어?”
“쉽지 않다, 올해의 가수.”
마술 도구인 댄싱 케인을 이용한 동작.
‘그렇다.’
‘이것이 마술이다.’
눈을 휘둥그레 뜨는 머글들의 반응에 나와 원조 졸개가 뿌듯한 미소를 지으며 하이파이브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