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563)화 (563/1,031)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563화

PBS 가요제전 무대.

두 번째로 등장한 우리가 중앙으로 나서자, 수플레들이 응원봉을 흔들며 반겼다.

-와아아아아아아!

크게 손을 흔들며 인사하는 동안, 고구마 트리오 선배들이 몸을 기울였다.

“이거 무슨 상황인지 아니?”

“아뇨. 하나도 모르겠어요.”

“그런 것치고는 준비한 것처럼 나와서 착지하던데. 너를 그렇게 관짝처럼 업고.”

“그게, 하도 이런 걸 많이 하다 보니까…….”

몸이 먼저 반응했다는 말에 상대가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와아아아아아!

뒤이어 다른 가수들도 하나씩 등장했다.

백스테이지에서는 ‘저거 뭐야? VCR 뭐야?’ 하고 당황했던 이들이 능청맞게 웃으며 나오고 있었다.

ㅅ 순서에 이르러 스트릿 보이즈가 근엄하게 걸어 나오더니 바로 우리 옆에 붙었다.

“야.”

한조가 속삭였다.

“이거 뭐야?”

“나도 모르겠는데.”

“……오프닝 미리 알고 있는 거 아니었어?”

눈을 빛내는 스보 멤버들에게 고개를 저어 보였다.

우리가 처음에 둠칫둠칫 하고 등장했던 장면을 보고 미리 알고 있었다고 오해한 모양이었다.

지호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한조 형, 우리가 미리 알고 있었으면 그 정도밖에 못했겠어여? 지금쯤 우주 형 와이어 타고 나왔어여.”

“아!”

“아?”

내 이미지가 어디까지 간 건지 진심으로 궁금했다.

관객들 앞이라 화사한 미소를 지으며 짐짓 눈을 부라리자, 스보 멤버들이 모른 척하며 리듬을 탔다.

이윽고 ㅌ 순서.

포메이션을 짜고 익살맞게 등장한 TNT 멤버들이 우리 옆으로 다가와 섰다. 원조 졸개의 눈이 이쪽으로 향한다.

‘형.’

‘몰라.’

대충 눈짓으로 답하자 상대가 고개를 끄덕였다.

[틴스피릿!]

화사한 미소년들이 등장하면서 장내의 열기가 후끈 달아올랐다. 팬들이 괴조 울음소리를 내고 있었다.

틴스피릿 멤버들이 설핏 웃는다.

우리가 보기에는 존나 강하다 하며 뿌듯해하는 표정이었다. 스트릿 보이즈 옆에 선 틴스피릿에게 LB가 입을 열었다.

“뉴블랙도 몰랐대요.”

“확인.”

틴스피릿이 바로 납득했다.

연출이 예능 담당인 신무록 피디님이어서 그런 걸까. 어째 뉴블랙이 모르면 아무도 모르는 거다 하는 분위기였다.

비주에게 웃으며 물었다.

“우리 이미지 때문은 아니겠지.”

“아닐 거예요.”

근처에서 입술을 꿈틀거리는 불순한 연예계 동료들을 향해 비주와 내가 미소를 지어 보였다.

“…….”

“…….”

아무 답이 없는 것을 보니 역시 이미지 때문이 아니었다.

*   *   *

오프닝에서 전 출연자가 함께 손을 흔들며 부르는 ‘촛불 하나’ 무대를 마치고 가수석에 앉았다.

웅성웅성.

오프닝에서 보았던 충격적인 VCR의 여운 때문인지, 가수석에 앉은 가수들이 소곤소곤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시청률 떨어졌다고 대놓고 언급해도 되는 거였어…?”

“이번에 가요제전 뭐야.”

“이거 어떻게 된 건지 뉴블랙 선배님들도 모른다던데.”

…라고 하는 말들을 중현이가 귀를 쫑긋하면서 전달해 주었다.

마지막 말은 우리와 멘토-멘티를 했던 원더 차일드가 한 말이라나. 잠시 슬픈 미소를 지었다.

“근데 이거 진짜 어떻게 된 걸까여? 저 연말 무대 보면서 이런 건 처음 봐여.”

“나도.”

리혁이가 입을 가리고 대꾸했다.

“시청률 떨어진다고 초강수 둔 것 같은데요. 신무록 피디님 불러서 연말 무대 재미있게 만들어 보겠다고.”

“……확실히 재미있기는 하네.”

보통 연말 무대라고 하면 다 비슷비슷하니까.

매번 같은 포맷을 반복하다 보니 가수 입장에서도 새로운 시도를 한다는 것에 호기심이 갔다.

다른 가수들도 비슷한 반응이었다.

[음악은 ‘이야기’입니다.]

오프닝이 끝나고 잠시 진지한 VCR이 흘러나왔다.

가뭄으로 말라 버린 시청률의 우물을 채우겠다는 게 컨셉이라면, 지금 보여 주는 것은 주제인 듯했다.

[우리의 기쁨, 슬픔, 즐거움, 추억… 그 모든 것에 음악이 함께하고 있죠. 그런 경험 있으신가요? 음악을 들으면 그때 당시의 기억이 새록새록하고.]

PBS 뮤직카페의 진행자인 하승주의 내레이션이었다.

[오늘 PBS 가요제전에서는 음악을 부르는 가수들, 그리고 그들의 노래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보고자 합니다.]

내레이션과 함께 깔리던 이미지들이 흐릿해지고는 그랜드 피아노 앞에 앉은 하승주가 나타났다.

뿔테 안경을 쓴 피아니스트가 우아하게 손가락을 튕길 때였다.

[……!]

[하승주 씨, 어디 가세요?]

하승주가 연주를 멈추고 자리를 화급하게 떴다.

“어?”

이어지는 장면에 나와 동생들, 다른 가수들이 크게 떴다.

하승주가 사라진 그랜드 피아노 연주실에 내가 들어오고 있기 때문이었다. 안녕하세요 하면서 들어오는 나.

수플레들이 끼요오오 비명을 질렀다.

“잠깐만.”

얼마 전에 PBS를 방문해서 이런 VCR을 찍었던 기억이 있었다.

그때 분명히 아무도 없었는데.

내가 눈을 가늘게 뜨고 있는 동안, 편집한 영상이 흘러나왔다.

[이 문구를 읽으면 되나요? 음악은 우리의 이야기다.]

그걸 시작으로 수많은 아이돌들이 ‘음악은 이야기다!’ 하는 것이 캠페인 문구처럼 흘러나왔다.

그리고 마지막의 쿠키 영상 같은 장면.

[음?]

내가 근처에서 모락모락 김이 나는 머그컵 커피를 바라보며 묻는 장면이었다.

[누구 거예요. 이거?]

그리고 그 뒤에서 다시 들어오려고 했던 하승주가 재빨리 발걸음을 돌려 사라지는 장면이었다.

관객들이 웃음을 터뜨리면서 [PBS 가요제전, 시작합니다] 하는 자막이 흘러나왔다.

리혁이가 웃으며 말했다.

“둘 다 연기 잘했는데요? 하승주 선배님, 진짜로 도망가는 거 같아요.”

“진짜 도망가는 거야.”

“…….”

“어쩐지 그날 이상하더라니까. 자꾸 누가 뒤에서 쳐다보는 거 같고. 연기 나는 컵만 덩그러니 놓여 있고.”

“와, 찐으로 도망치는 거였네여.”

끝나고 나서 하승주 피디님에게 연락을 해야겠다.

그동안 암전되었던 무대 스크린에 다시금 미스터 프로듀서의 멤버들이 왕국 귀족들의 복장을 입고 등장했다.

[시청률의 우물] 앞에서 서성이던 이들에게 추기석 씨가 양동이에 든 무언가를 들고 달려온다.

[여기 귀, 귀, 귀중한 보약이 있습니다!]

[보약이라?]

[네, 이걸 한 방울만 넣어도 막힌 시청률이 콸콸 흘러나온다고! 제가 분명히 들었습니다! 진짜예요!]

캐릭터 때문인지 누가 봐도 사기 당해서 온 듯한 분위기였다.

불신 가득한 눈으로 바라보는 왕국 사람들에게 추기석 씨가 보자기에 싸인 것을 공개했다.

[바로 상큼발랄 비타민입니다!]

[상큼발랄 비타민?]

[이걸 한 방울만 넣기만 해도…… 시청률이 콸콸!]

[한 번 넣어 보시게.]

추기석 씨가 거대한 알약을 우물에 집어던지면서 화면 위로 자막이 떠올랐다.

[Mission 1. 상큼발랄! 과즙 충만한 비타민!]

1막의 무대 컨셉을 보여 주는 모양이다.

‘어디 한번’ 하면서 미프 멤버들이 우물 안을 들여다보자 그 안에서 걸그룹 하이컬러가 무대 대형으로 모여 있었다.

그리고.

“오…….”

바로 현장 무대로 연결이 됐는데, 부감 카메라로 내려다본 하이컬러의 무대 대형이 VCR과 똑같이 펼쳐졌다.

-와아아아아아!

작년도에 데뷔한 걸그룹의 청순발랄 컨셉 무대가 이어지면서 관객들이 환호성을 보냈다.

VCR 타이밍도 적절하고.

무대 시간까지 충분히 확보해 놓은 국민 예능 PD의 센스에 절로 감탄이 나왔다. 그리고 그중에서 가장 신기한 건.

“형.”

중현이가 눈을 크게 뜨고 속삭였다.

“다시 봐도 신기하지 않나요. 카메라가 멀쩡해요.”

“그러니까 말이야.”

리허설 때 확인했던 것처럼 카메라 워크가 안정적이었다.

줌인 줌아웃하며 꿀렁꿀렁이는 것도 없고, 갑자기 화아아악! 멀어지는 것도 없다.

안정적인 풀샷으로 가수들의 무대 대형을 쭈욱 잡아 주고, 적절한 때 클로즈업을 사용한다.

고개를 돌려 바라보니 나이 지긋한 선생님들이 카메라 뒤편에 서 계신 게 보였다.

‘고인물은 위대한 거예여.’

‘인정.’

동생들과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실시간으로 TV를 보고 있는 수플레들이 어떤 표정일지 궁금하다. 이따 우리 무대도 예쁘게 나갔으면 좋겠다.

그렇게 1막의 무대를 감상하고 있는 동안, 1막의 엔딩인 98 라인 무대를 담당한 지호가 계속해서 속삭였다.

“저 무대 하는 거 알죠?”

“네.”

“두 눈 똑똑히 뜨고 저의 멋진 모습을 지켜봐야 돼요. 이거 놓치면 앞으로 40년 동안 뒤끝 부릴 거예여.”

“잘 볼게.”

염려하지 말라고 몇 번이고 말해 줬다.

곧이어 다른 98 라인과 함께 가수석 아래로 내려가는 지호에게 손을 흔들어 줄 때, 비주가 말했다.

“연습 엄청 많이 했나 봐요.”

“일단 박수 엄청 크게 쳐 주자. 기립 박수 정도 하면 되겠지.”

감격한 표정으로 박수 치는 시늉을 리허설로 보여 주자 비주가 웃음을 터뜨렸다.

리혁이가 눈을 찌푸렸다.

“자꾸 웃어 주지 마요. 형이 웃어 주니까 이 사람이 병맛에 자신감이 생기는 거잖아요.”

“리혁아.”

리혁이에게 손 하트를 보내며 찡긋하자 아무런 반응도 돌아오지 않았다. 손을 내려놓으며 웃었다.

“……난 이런 걸로 자신감이 하락하고 그러지 않아.”

“이따가 젤리 줄게요. 형.”

그런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마침내 1막의 엔딩 무대 차례가 됐다.

화면이 어두워지면서 VCR이 흘러나온다.

-와아아아아아아아!

‘Jiho’, ‘Hahyun’ 하는 영문 이름과 화보 사진이 매칭되어 나오면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윤기원, 길채경, 쁘띠펌킨, 요란 등등.

데뷔 년도가 다양한 98라인의 멤버들이 한 자리에 모이는 모습으로 영상이 시작됐다.

[이제 저희 98년생들이 며칠 뒤, 새해면 어른이 되잖아요? 그런 의미에서 준비한 무대입니다.]

[저희가 준비한 곡은 바로 트윙클 선배님들의 Twinkle!]

[낮에는 평범한 학생이지만, 밤이 되면 마법소녀와 마법소년이 되어 악당들을 무찌르는 컨셉의 곡인데요.]

어른과 아이의 경계선에 있는 그런 무대를 보여 주겠다, 하는 포부를 당차게 드러내는 VCR이었다.

곧이어 우리 막내가 VCR 인터뷰에 등장했다.

[이제 제가 어른이 되는데. 제가 생각하는 ‘어른’의 느낌을 무대에 녹여내어 보여 주고 싶어요.]

우리가 오오오~ 하며 웃었다.

다른 98인 하현도 ‘하현이는 어른이 되고 싶어요! 뿌잉’ 같은 느낌의 인터뷰를 이어 갔다.

틴스피릿 멤버들이 눈빛으로 시발 광선을 쏘아 보냈다.

그러면서 연습 장면이 나오는데 중간중간 우리 막내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무대에는 TPO라는 게 있잖아요. 타임, 플레이스, 오…….]

[오?]

[Oh~ 한다는 거죠!]

[오오오!]

내가 13년도에 연말평가를 준비하면서 했던 TPO 드립을 알차게 써먹기도 하고.

[안무 맞춰 볼게요.]

길채경과 함께 안무를 진두지휘할 때는 비주 표정이 나오고.

[음, 우리 반 키 정도 올려 볼까요?]

리혁이가 보컬 디렉팅할 때의 손짓이 보인다.

그리고 밥 먹을 때는 중현이 표정으로 먹고.

“…….”

잔뜩 기대하던 중현이가 시무룩하게 어깨를 늘어뜨렸다.

“형이 젤리 줄게.”

어쨌거나 막내가 최대한 어른스럽게 행동하려고, 누군가의 행동을 하나씩 따온 게 귀여우면서도 재미있다.

나름 자기 딴에는 형들이 어른이라고 생각한 모양이다.

우리도 아직 꼬꼬마인데.

“…….”

“눈빛으로 말 걸지 마, 리혁이.”

“흥.”

어쨌거나 훈훈한 VCR이었다.

서로 앙숙으로 알고 있는 걸스온탑 길채경과 지호가 하하하하 하며 웃고 있는 것도 그렇고.

연습 도중에 등장한 벌레를 보며 두려워하는 하현을 보면서 이웃집 냉장고의 냉동 번데기 위로 ‘하현 꺼’라고 적힌 것도 나왔다.

어른스럽게 거짓을 구사하는 98 멤버들을 보며 미소를 지을 때.

“형, 시작해요.”

막내에게 한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 눈을 부릅뜨고 암막 커튼이 올라가는 무대를 바라보았다.

*   *   *

팅커벨이 요정 가루를 뿌리듯 반짝이는 VCR이 뒷배경으로 떠오른다.

조명이 밝아 오르면서 스쿨룩 의상을 입은 98년생 아이돌들의 모습이 비춰졌다.

‘지호야……!’

온오프라인을 가리지 않고 수플레들이 환호성을 터뜨렸다.

흰 셔츠에 회색 조끼를 걸친 지호가 과즙이 톡톡 튀는 미소를 짓는데, 뺨에 그린 별 모양의 글리터가 조명에 반짝거렸다.

-아이돌의 별을 부수고 태어난 우리 애ㅠㅠㅠㅠ

-와 오늘 왜일케 상큼해

-객석에서 교복을 보고 부러워하고 있을 선모씨가 선명하게 그려진다

-지호 어른하지 마ㅠㅠㅠ

상큼한 포즈를 취하는 아이돌 멤버 속에서 지호가 맨 앞으로 튀어나왔다.

부드러운 목소리가 이어진다.

매일 같은 꿈에서 깨어나

같은 버스에 올라 기다려

손을 앞으로 내밀며 생긋 웃던 지호가 붉은 가디건을 걸친 하현과 바톤 터치를 했다.

뒷배경으로 막대사탕 같은 핑크빛 캔디 그래픽이 오르내리면서 상큼한 무대가 이어졌다.

단발을 한 길채경이 한쪽 다리를 까딱이면서 멤버들이 뒤를 받쳐 줬다.

그동안 수플레들의 시선이 사이드와 중앙을 오가는 갈색 머리의 막내에게 쭈욱 머물렀다.

‘좋다…….’

저도 모르게 헤벌쭉 입이 벌어졌다.

불꽃놀이, 마스커레이드, 바람꽃 등등으로 쭈욱 이어지는 타이틀 라인업에서 한 번도 못 본 컨셉이기 때문이었다.

빡센 안무만 보다가 부드럽게 살랑거리는 안무를 보니 기분이 묘하면서 좋았다.

‘이런 것도 잘하는구나.’

상큼하게 웃으며 아이돌미를 뿜뿜하는 막내의 모습에 수플레들이 미소를 지었다.

-우주야 다음곡은 귀여운걸로 가자

-상상만 해 보긴 했는데 이런 컨셉도 어울리는구나 우리애

-와 근데 비주얼 뭔일이야 애들 다 장난 아니다

-지호 잘하네.. 얘가 메보 역할인가

그 속에서 가장 뿌듯한 것은 지호의 포지션이었다.

마치 뒤에서 리혁이가 거만하게 웃는 모습이 보일 만큼 고음 파트에서 톡톡히 활약하는 지호였다.

그렇다고 춤이 약한 것도 아니었다.

‘잘한다. 우리 지호.’

누가 센터다 하고 명확하게 정해진 것은 아니지만, 자연스럽게 저 쟁쟁한 라인업에서 가장 눈에 띄었다.

중간에 박수를 치면서 눈물을 흘리고 있는 팬이…….

‘우주야?’

촉촉한 눈으로 박수를 치고 있는 우주의 모습이 흘러나오면서 모두가 웃음이 터졌다.

-깜짝이야 나 보는 줄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우주 하품 했나보네

-당연 하품이지,, 지호 보고 저랬을 리가 없다

-우가외 감독님: “눈물 연기를 요청했더니 우주가 어느 쪽으로 울면 좋겠냐고 물었다. 당황스러웠다.”

-ㅋㅋㅋㅋㄱㅋㅋㅋㅋ왜들 그래 우주한테

-(선우주를 냉랭하게 바라보는 서리혁의 표정.jpg) 리혁이 방금 표정ㅋㅋㅋㅋㅋㅋㅋㅋㅋ

수플레들이 그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였다.

‘와, 근데 진짜 잘 어울린다. 이 컨셉…… 어?’

발랄한 고교생들의 무대를 바라보며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을 때, 무대의 조명이 반짝반짝하며 분위기가 급변했다.

변신하듯이 한 자리에 멈춘 아이돌 멤버들 사이로 BGM의 느낌이 바뀌었다.

강렬한 느낌으로.

그 속에서 앞으로 걸어 나온 뉴블랙의 서브보컬이 낮은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면서 안무가 파워풀해졌다.

-오 편곡 좋네

-이제 어른이들이 된 건가???

-왕지호 절대 어른해

머리를 살짝 헝클어뜨린 덕분인지, 아니면 초반부와 달라진 표정 때문인지 인상이 더욱 강렬해졌다.

스트릿 보이즈의 메인 보컬인 기원과 함께 부르는 고음이 쭉쭉 올라갔다.

파앙! 하고 터져 나오는 꽃가루 사이에서 아이돌 멤버들이 박자를 맞추며 발을 빠르게 굴리는 댄스 브레이크 구간.

거친 안무 때문에 빠져나온 교복 넥타이를 흩날리는 막내를 바라보던 수플레들이 오묘한 기분을 느꼈다.

‘지호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긴 하는구나…….’

처음에 청량하고 애교 가득한 표정으로 시작한 무대와 다르게 어른스럽고 진지한 표정이었다.

데뷔 초만 해도 통통했던 젖살이 빠져서 턱선이 날카롭게 변하고.

전체적으로 이목구비의 선이 가늘고 선명해져 있었다.

데뷔 초만 해도 형들 사이에서 수줍게 에헤헤헤! 하던 막내가 어느새 대형견처럼 성장해 있는 모습.

무언가 아쉬우면서도 기특했다.

‘내가 키웠다…….’

‘나도.’

‘스밍으로 키운 내 새끼.’

‘저 교복 단추값 정도는 기여했겠지.’

전국의 수많은 수플레들이 미소를 지었다.

마지막으로 빙빙 돌리던 손을 멈추고, 양손을 교차해 마법소년 같은 포즈를 취한 지호와 다른 멤버들의 얼굴이 클로즈업 됐다.

숨을 헐떡이는 열아홉 청춘들의 무대! 같은 느낌으로 조명이 암전되기까지.

‘근데 되게 강렬하네. 뭐지.’

본인이 생각하는 어른의 모습을 보여 주겠다는 말답게.

마지막으로 카리스마 넘치게 웃는 지호의 표정이 계속해서 뇌리에 남는 듯했다.

*   *   *

환호를 받으며 내려가는 98년생 멤버들.

“날 따라 한 거야.”

“뭔 소리예요. 쟤 분명히 날 따라 한 거라니까요.”

“나 같은데.”

“춤출 때 왠지 모르게 제 모습이 보였어요.”

나와 동생들 사이에서 갑론을박이 오갔다.

방금 전 지호가 지었던 표정을 보면서 누구를 따라 한 것인지 토론하는 중이었다.

“지호가 생각하는 어른이 누구겠어? 당연히 제일 나이가 많은 나 아니겠어?”

“그러기에는 웃음이 천진난만했다니까요. 아저씨처럼 때 묻은 사람의 미소가 아니었어요.”

“너도 아니야.”

“나는 왜요.”

“웃음이 밝았어.”

“…….”

나와 리혁이가 서로 마음의 상처를 입고 비주와 중현이에게 기댈 때.

두 사람도 토론을 끝냈다.

“우리 아닌 거 같은데.”

“그런가 봐.”

정말이지 미스터리였다.

초반부에 학생들이 귀엽게 움직일 때는 본인 같았는데, 중간에 마법 소년으로 변신한 뒤에는 또 달랐다.

“어디서 봤는데…….”

동생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분명히 지호가 본인다운 어른스러움을 뽐낸 표정이긴 했다.

“조금 욕심 많은? 그런 느낌이었어요.”

“맞아.”

“약간 잘생긴 스크루지 영감님 같은 인상이었어요. 재벌 3세인데 조금 야비한 느낌으로…….”

“야심 많아 보이던데요.”

그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방금 전 막내가 지었던 표정을 따라 해 보고 있던 내가 어? 하고 동생들을 바라보았다.

“왜 그래요?”

“나 이거 알 것 같아.”

“뭔데요?”

지호가 어른스러움을 뽐내겠다고 무의식적으로 지은 표정은 내가 이미 알고 있는 사람과 닮아 있었다.

“이거 지호네 아버님 표정인데?”

“……!”

동생들이 엇 하며 입을 틀어막는 가운데, 우리 뒤편에서 잘생긴 얼굴이 쏘옥 내밀어졌다.

“무슨 얘기하고 있어여?”

“…….”

“저 되게 어른스러웠져? 어른스러운 표정 지었는데.”

“그…….”

누군가를 똑 닮은 미소를 짓는 막내의 뒤편으로 왠지 모르게 치킨 군단의 어두운 그림자가 일렁이는 듯했다.

-울 아빠가 그랬어여. 실수하면 모른 척하면 된다구.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안다? 오른손을 없애면 된대여.

-그거 알아여? 뭔가를 돈으로 살 수 없다면 그건 돈이 충분하지 않은 거래여.

해맑게 웃는 우리 꿈나무의 얼굴에 동생들과 내가 미소를 교환했다.

이거 괜찮은 거 맞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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