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648)화 (648/1,031)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648화

시상자가 미소를 지으며 호명했다.

-Blue Moon!

그 순간 객석에서 요란한 함성이 터져 나왔다.

“와아아아아아아—!”

귀청을 찢을 정도로 큰 함성에 가수들이 수군대는 동안 동생들과 내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형!”

“얘들아!”

탔다. 탔어.

살짝 흥분했는지 중현이가 숨이 꼬옥 막힐 정도로 우리를 끌어안았다. 요란하고 시끄러운 소리 속에서 동생들과 내가 내뿜는 뜨거운 숨이 느껴졌다.

꼬옥 끌어안았다 풀고는 다 같이 헤실헤실 웃었다.

“얼른 올라가자.”

저마다 일어나서 ‘축하해요!’ 하면서 손을 내밀거나 박수를 쳐 주는 주변 가수들에게 인사를 하고는.

남편과 포옹을 하고 딸내미의 뺨에 입을 맞춘 가수와 함께 움직였다.

휘적휘적 걸어가는 헤일리를 따라 무대 위로 걸어올라가는데, 내 다리가 자꾸만 후들후들 떨리는 느낌이다.

「진심으로 축하해요.」

2개의 트로피를 내미는 슈퍼모델에게 고맙다고 미소를 지어 보이고는 헤일리와 하나씩 나눠 받았다.

“으허어…….”

무대에 올라와서 보니까 더 떨린다.

공연을 할 때는 무아지경으로 정신없이 했는데, 차분하게 소감을 말하려니 1열에 앉아 있는 가수들이 눈에 띈다.

콜드 브라운, 맨디 스파이스, 로건 스미스… 이게 실화인가.

연습생 때 가끔 ‘미국 가수들이 환호해 주는 아시아의 최고 스타인 나’를 상상하다가 스스로 민망함을 느껴서 관두고 했는데.

어쩜 이렇게 현실이 더한지 모르겠다.

두 손을 모은 채 잔뜩 긴장한 동생들을 돌아보고는 헤일리의 소감을 기다렸다.

「고마워. 빌보드.」

마이크가 한 대밖에 없어서 헤일리와 우리가 소감을 나눠서 하는 구조였는데.

대상격인 Top Artist 같은 부문이 아니고서는 대체로 30초에서 1분 정도만 하고 내려오는 추세였다.

헤일리의 투명한 눈망울이 기쁨으로 반짝였다.

「저번처럼 욕은 하지 않을 거야. 생중계니까.」

관객들이 웃음을 터뜨린다.

한국에서는 미국에서 말썽 부리는 사고뭉치 셀럽으로 알려져 있지만, 여기 사람들이 그녀를 보는 눈은 뭐라고 할까.

학교에서 한 반에 한 명씩 있는 재미있는 친구를 바라보는 듯한 눈빛이었다.

「Top 콜라보레이션이라는 상을 줘서 진심으로 고마워. 나 보고 작년에 퇴물이라던 매체들 보고 있냐? 너희가 방 안에서 기사를 쓰거나 연예 프로에서 나를 음해하고 있을 때….」

갸날픈 손가락이 트로피를 톡톡 두드린다.

「나는 이 트로피를 챙겨들고 잘생긴 남편, 사랑스러운 딸과 함께 전용기를 타고 집으로 돌아간다고.」

타블로이드지나 가십지에 질린 것은 매한가지인지 그녀의 소감에 셀럽들이 웃음을 터뜨리며 환호했다.

헤일리가 트로피를 들고 외쳤다.

「사랑해, 크리스. 세계 최고의 딸 써머 블루도 엄마가 사랑한다. 그리고… 이 상을 받게 해 준 작곡가이자 가수이자 내 친구, 뉴블랙에게 이 상의 영광을 돌릴게.」

트로피를 들고 살짝 물러나는 헤일리에게 목례하고는 내가 대표로 스탠딩 마이크 앞에 섰다.

「우선, 이 상을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관객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방금 전의 헤일리 블루와 정중한 우리 모습이 대비되었던 모양이다.

「저희도 이 Top 콜라보레이션 상의 영광을 헤일리에게 돌리고 싶어요. 당신이 없었다면 이 곡은 탄생하지 못했을 거예요. 헤일리.」

상대가 권총 모양의 손짓을 하며 윙크했다.

「한국에서도 매년 시상식에 서면서 느끼는 기분인데, 정말 제가 선망하고 좋아하는 가수들의 앞에서 상을 받을 수 있어서 영광이라고 생각해요. 작곡 공부할 때도 미국의 노래들을 들으면서 많이 공부했거든요.」

미국 사람들 괜히 으쓱으쓱하게 리스펙 한 번 해 주고.

고마운 사람들 이름도 부르고.

「블루문도 그런 결과물에서 탄생한 작품이에요. 우리 프로듀서들의 도움도 컸고요. 감사합니다. 우리 프로듀싱 팀.」

시간 관계상 고마운 사람들을 모두 열거할 수 없기도 했고, 여기 시상식도 그런 소감 분위기가 아니었다.

그랬기에 가장 중요한 사람들을 언급했다.

「수플레!」

“와아아아아아아아아!”

「사실 오늘 어워드 무대에 서는 순간, 여러분의 환호성을 듣는 순간부터 수상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여러분이 보내 주는 응원과 열기가 가장 값진 상이었어요.」

잠시 시상식장이 마비되었다.

그렇게 소감을 마무리하고 내려가려고 할 때.

“형! 형!”

지호가 나를 불렀다.

“할머님이여! 할머님!”

“아.”

내가 마이크에 얼른 대고 외쳤다.

「우리 멤버 가족들 모두 사랑합니다. 특히… 나의 러블리한 덕순! 내가 몹시 아낍니다!」

그러고는 한국어로 ‘할머니 사랑해요!’ 하고 외치고 내려왔다.

*   *   *

같은 시각.

“오호.”

헤일리 블루의 천방지축 소감이 끝나고 마이크를 잡은 미남의 모습에 미국 시청자들이 미소를 지었다.

‘캬. 잘생겼다.’

잘생긴 게 최고야. 짜릿해. 너무 좋아.

여성 시청자들의 입가에 흐뭇한 미소가 걸렸다.

“성격도 엄청 괜찮아 보여.”

“그치?”

“미국 노래 들으면서 작곡 공부했대.”

이국의 소년이 낡은 라디오를 끼고 다락방에서 음악 공부를 하는 광경이 그려진다.

뿌연 흙먼지와 낡은 자동차가 돌아다니는 동네에서 성공해 마침내 아시아 최고의 보이밴드가 되는….

얼굴이 개연성이라 그런지 슬럼독 밀리어네어 한 편이 뚝딱이었다.

그렇게 자기 주 아니면 바깥 사정에 문외한인 미국인들이 상상의 나래를 이어 갈 때.

-특히… 내가 사랑하는 러블리 덕순, 내가 제일 아껴.

미국인들이 오 했다.

“로맨티스트네.”

“Duck-Soon….”

“저 정도 얼굴이면 여친도 장난 아니겠지? 아시아 최고 모델이라든가, 배우든가 그럴 것 같아.”

“아니야. 어쩌면 어릴 적부터 같이 지내온 사이 그런 걸 수도 있어.”

가난해서 꽃반지를 끼워 주며 슬퍼하는 소년과 아름답게 웃는 소녀.

그들의 사랑이 이루어지는 한 편의 아름다운 러브 스토리가 망상의 나래로 펼쳐졌다.

‘Duck-Soon은 과연 누구일까.’

존예 모델이다, 배우다, 아니면 일반인 여자 친구다 하면서 갑론을박이 오가고 있을 때.

TV를 보고 있던 한 무리가 검색 사이트를 켰다.

그리고 Duck Soon을 입력했다.

“……얼레?”

‘뉴블랙 위키’라고 되어 있는 팬 정보 사이트에 관련된 정보가 있었다.

[Kim Duck-Soon]

……웬 할머니가 나와 있다.

걸프렌드가 아니고 그랜마더라는 정보.

“……아.”

망상의 나래를 펼치던 미국인들이 먼 곳을 바라보며 훈훈한 미소를 지었다.

“아니네.”

“오히려 좋아. 싱글이네.”

“독신 남성 인기투표하면 투표해 줘야지.”

한국에 있는 누군가 본다면 ‘옘병하고 있네…’ 하는 말이 나왔을 만한 장면이었다.

*   *   *

수상 소감을 마치고 나서 백스테이지로 내려오자 가슴이 홀가분했다.

“후우.”

심호흡을 하기가 무섭게 동생들이 손을 내밀었다.

“형.”

“저부터.”

“저부터, 저부터!”

가장 팔짝팔짝 뛰는 막내부터 시작해서 마지막 비주까지 트로피가 동생들의 손을 주르륵 거쳤다.

황금색 트로피.

옛날 70년대에 썼을 법한 마이크 모양 트로피에 우리 이름과 ‘Top Collaboration’이라는 수상 부문이 쓰여 있다.

비주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진짜 탔네요.”

“별일이 다 있다니까. 그치?”

“너무 행복해요. 저.”

환히 웃던 동생이 트로피를 다시 내게 건네고,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던 막내가 다시 쏙 빼 갔다.

“하앍!”

골룸처럼 트로피를 품에 안는 모습에 리혁이가 손을 내뻗어서 뺏으려고 했다.

중현이가 감탄했다.

“오. 이게 바로 빌보드 수상자들의 트로피 쟁탈전.”

중현이의 말에 나와 비주가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고 보니 맞는 말이었다.

Top 콜라보레이션 부문이긴 하지만 우리 이제 빌보드 수상자라고 어디 가서 말해도 되는구나.

태현이나 은성이 만나면 놀릴 거리 생겨서 좋다.

-선우주 바보.

-그래서 빌보드 수상하심?

-부들부들! 너무 대단해서 말문이 턱 막혀 버렸어!

머릿속으로 행복한 장면을 그리는 동안, 시상자인 모델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던 헤일리가 백스테이지로 내려왔다.

그런데….

「엣헴.」

왠지 모르게 갑자기 거만해졌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상 타러 올라가기 전에 ‘못 탈 수도 있다능…’ 하면서 소심하게 말했던 것은 어디로 간 걸까.

소심한 블루가 가고 건방진 블루가 나타났다.

「너희들 말이야.」

헤일리가 턱끝을 살짝 들며 으스댔다.

「지금에 와서 말하지만 사실 이건 나의 큰 그림이었어.」

「…….」

「너희에게 상을 주지 않으려는 주최 측을 도발해서, 상을 주게 만드는 나의 계략이었던 거지.」

「헤일리.」

내가 웃으며 말했다.

「거짓말하지 마요.」

「건방진 써니…….」

이내 픽 웃으며 우리에게 어깨동무를 하는 스타였다.

이미 트로피를 두 개인가 수상한 상태인데도 상 하나가 더 추가됐다는 게 연신 기쁜 모양이다.

「상은 많을수록 좋거든. 이제 이 정도 커리어쯤 되면 상 하나는 기본으로 타는 거라 몇 개인지가 중요해.」

「우우우우!」

야유를 퍼붓는 우리에게 그녀가 말했다.

「너희도 곧 그렇게 될 거다.」

「와아아아!」

「단순한 녀석들….」

익숙하게 복도를 걷는 헤일리를 따라서 우리도 같이 걸었다.

KMA에서 수상하고 나면 내려와서 포토월 앞에서 별도로 인터뷰를 하듯, 빌보드 어워드도 수상하고 나서 매체들과 인터뷰를 하는 시간이 있었다.

낯선 경험이었지만 헤일리가 하는 것을 보고 적당히 따라 했다.

“후우우우.”

일정을 모두 마치고 객석으로 돌아가는 동안 리혁이가 깊은 숨을 내쉬었다.

“어우, 힘 빠져.”

“그러게. 온몸의 진이 쑤욱 빠지네.”

“나 좀 잠깐 벽 좀 붙잡을게요.”

“아. 잠깐만.”

마임으로 가상의 벽을 만들어 주는 시늉을 했다가 리혁이에게 등짝을 맞았다.

“아얏.”

식은땀에 푹 절여져서 그런지 손맛이 유독 맵다.

근데 왜 이렇게 나도 다리가 후들거리지.

리혁이뿐만 아니라 우리도 거의 탈진한 상태였다. 신체적인 피로와 정신적인 피로가 모두 겹친 탓이었다.

무대와 수상 모두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는 기쁨보다 할 일을 다 했다는 사실에 기운이 쭉 빠진다고 할까. 계속 긴장하면서 붙잡고 있던 마음의 끈을 놓아 버리자, 몸에 있는 기력들이 스르륵 빠져나간 것 같다.

그런 이유 때문일까.

“졸지 마.”

“졸면 바로 한국에 생중계되는 거야. 버텨.”

“버텨.”

나머지 어워드를 감상하면서 졸지 않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사람이란 게 참 신기하다.

빌보드 어워드 식장에 딱 들어올 때만 해도 우와아아! 했는데, 한두 시간이 지나니 모든 게 원래 보던 것처럼 익숙하다고 할까.

-올해의 Top 아티스트! 그 영광의 주인공은 바로 누구일지 후보 만나 보겠습니다.

빌보드 어워드의 대상격인 ‘Top Artist’ 부문은 헤일리 블루가 거머쥐었다.

그녀가 14년도 빌보드 어워즈 이후로 다시 받는 Top Artist 상이라나.

눈물이 살짝 그렁그렁한 헤일리가 타이타닉 감독의 수상소감을 패러디해서 ‘나는 이 세상의 여왕이다!’ 하면서 어워즈가 막을 내렸다.

“고생했다.”

“진짜 고생 많았다.”

동생들과 함께 포옹을 하면서 기쁨을 교환하고는 마지막까지 남아 수플레들에게 손을 흔들었다.

고마워요.

덕분에 우리 빌보드도 오게 됐어요.

*   *   *

확실히 무대를 잘하기는 했던 모양이다.

「무대 보면서 그런 생각했다니까. 허어… 내가 지금 뭘 보고 있는 거지? 완전 너희가 보여 준 건 신세계였어, 친구.」

「콜드 브라운이 애프터 파티를 열 거라고 하던데. 거기에 올 거야?」

「진짜 마법이 벌어진 줄 알았어. 춤을 추는 순간, 시상식장의 공기가 화악 바뀌었다니까. 보면서 오… 나도 저기 헤일리 블루처럼 같이 노래를 부르면 좋겠다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

식전에 인사를 나누었던 가수들을 비롯해 인사를 나누지 않았던 가수들과도 만나면서 이야기가 길어졌다.

대충 해석하자면 이런 내용들이었다.

-팬덤 진짜 많더라. Coin인가 그것도 팬덤 힘으로 빌보드 Hot 100에 들었다면서? 우리 함께 진하고 깊은 사이가 되어 보자.

-너희 관련해서 어그로를 끌어 보고 싶으니 애프터 파티에 오거라.

-콜라보 한 곡 하실?

한국보다 더 마굴 같은 연예계였다.

스멀스멀 손을 뻗치는 이들과 미소를 지으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콜라보 욕심을 드러내는 어느 가수에게 비주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우리에게 관심을 보여 줘서 고마워요. 평소에도 존경스럽게 보고 있던 가수와 만나서 너무 영광이에요.」

칭찬과 찬사가 가득하지만 결국 안에 담긴 것은 아무것도 없는 이야기였다.

허허 웃으며 돌아가는 가수의 뒷모습에 비주가 뿌듯한 미소를 지었다.

“<지금부터 우리는>에서 영애 역할을 하고 나서 많이 배웠어요. 형. 저는 이제 영애식 화법을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어요.”

“자, 잘됐구나….”

전부 다 잘됐다.

조금 피곤하긴 했지만 좋은 쪽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이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이던가.

이득이 되면 달라붙고 손해가 되면 손절하기로 유명한 연예계 사람들이 친하게 지내자고 착 달라붙는 건 좋은 신호였다.

사실, 공연하기 전까지만 해도 우리는 ‘한국 망고 차트 어워드에 참석한 스페인의 가수 안토니오 페레즈 씨’ 같은 포지션이었다.

레드카펫에서부터 한국 팬들이 수천 명 모여서 ‘안토니오!’ 하면서 꺼이꺼이 우는데… 국내 셀럽들은 의아하고 그런 상황. 망고 어워즈 스크린으로 안토니오가 나올 때마다 ‘와아아!’ 하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무대에 올라와서 안토니오 페레즈 씨가 갑자기 차우현 선배와 듀엣으로 나타나 한국어로 ‘푸른 달’을 열창하는 거다. 그리고 듣도 보도 못한 근사한 춤을 추는 모습을 선보이는 거다.

그걸 본 한국 가수들이 ‘아! 납득했다’ 하는 느낌이라고 할까.

“그래서 그 안토니오 씨가 누군데요. 저번에는 아르헨티나에서 온 곤살레스 씨라고 그러더니.”

리혁이의 물음에 내가 답했다.

“대충 그런 느낌이라는 거지.”

“그런… 것 같긴 하네요. 이번에 영어로 노래를 불러서 이미지가 더 플러스된 것 같긴 해요.”

처음으로 선보이는 무대에서 이미 히트한 블루문을 보여 줘서 그런지, 현지 반응이 경계심보다는 호의에 더 가까웠다.

쉽게 말해서, 무던하게 데뷔전을 치렀다.

“뭐, 사후 분석은 나중에 TF팀이랑 하고… 일단은 수플레들이랑 인사합시다.”

“예이!”

수상 기쁨을 나누기 위해 Y앱 라이브 방송으로 수플레들에게 짧은 소감을 마친 후.

오늘 무대를 함께 한 헤일리 블루와 스탭들과 함께 기념사진 촬영을 했다.

SNS에서 올릴 셀카 등을 찍고는 댄서들과 악수를 나누었다.

그리고.

「왔구먼.」

식인종 분장을 했었던 핸슨 씨가 멀끔해진 얼굴로 우리와 포옹했다. 할아버지의 눈망울이 촉촉하게 빛나고 있다.

「자네 덕분에 정말 값진 경험을 했네. 추수감사절에 아들들 만나면 이야기할 거리가 엄청 생겼어. 고마우이.」

「아니에요.」

「죽기 전에 자서전을 쓴다면 자네들의 이름을 꼭 서두에 박아 주겠네.」

「……가, 감사합니다.」

드라큘라의 신부들을 연기했던 헬렌 씨와 두 동료와도 반갑게 웃으며 사진 촬영을 한 후.

열심히 헤일리 옆에서 드라큘라 연기를 선보였던 루카스 론슨과 마주했다.

분장을 지운 미남이 웃으며 말했다.

「고마워요. 정말.」

모든 게 고맙다면서 우리 손을 꼬옥 잡는 배우 지망생이었다.

「정말 큰 기회를 얻었어요. 일전에 들었던 Bone Crash의 정신으로 열심히 활동해 볼게요.」

「잘 될 거예요.」

그럴 것 같다는 예감이 든다.

음악 방송에서 신인 가수들의 무대를 볼 때, 저 친구들 분명히 뭔가 잘 될 것 같다는 예감이 들 때처럼.

그런 우리의 말에 루카스가 말했다.

「그리고 만약에 제가 언젠가 정말 잘 된다면… 반드시 이 도움 받은 것을 돌려줄게요.」

「오오오.」

돌려준다는 말에 우리가 매니저 형을 불러서 비하인드 캠을 가지고 왔다.

막내가 활짝 웃으며 말했다.

「잘 못 들었는데… 다시 말해 주세요.」

「……어… 그, 저 루카스 론슨은 언젠가 뉴블랙에게 큰 도움을 줄 수 있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어떤 도움이든지?」

「그… 어…? 네.」

루카스가 얼떨떨한 얼굴로 ‘보은할게요!’ 하는 모습에 우리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구두계약 체결 완료.

“하하하하하하!”

미래에 노비를 획득하는 희망찬 계약까지.

정말이지 행복한 하루였다.

*   *   *

“꺄륵! 꺄르르륵!”

하찮게 웃어 대던 뉴블랙 멤버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루카스 론슨이 몸을 돌렸다.

‘고마운 사람들.’

어찌 보면 가볍기 그지없는 태도를 고수하는 사람들이었지만 절대 우습게 볼 수 없는 사람들이었다.

예능 촬영을 할 때만 해도 몰랐는데 같이 리허설을 해 보니 좀… 무서운 사람들이었다.

계속 웃던 사람들이 웃음기 싹 빼고, 리허설에서 이런 점을 개선해야 한다고 말하는데 정말 딱 맞는 말이기도 했고. 리허설에서 안무 동작 하나 실수해도 입술을 꾹 깨문 채 홀로 삭이는 모습들을 보았다.

그 상냥한 B마저도 동선을 실수했다고 혼자 머리를 쓸어넘기며 구석에 앉아 있는데 말을 붙이기도 힘들 만큼 살벌해 보였다.

그렇게 혼자 삭이다가 또 금세 자기들끼리 모이면 웃고.

-흐하하하!

오늘 어워드 무대에서 박수를 받은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본인들이 스스로에게 채찍을 잔뜩 휘둘러 대며 연습을 하니, 실제 무대가 되면 누군가 채찍을 던질 만한 거리가 없었다.

그 자리를 채우는 것은 감탄의 박수뿐.

하루 이틀 정도였지만 그런 뉴블랙의 모습에서 큰 영감을 받은 루카스 론슨이었다.

“루카스!”

멀찍이서 크리스 카일이 손을 흔들며 걸어왔다.

그가 소개해 주겠다고 했던 배우 전담 에이전트인 모양이었다.

가볍게 인사를 나눈 에이전트가 그를 살피며 물었다.

“오디션 볼 준비는 됐나. 루카스 론슨?”

“아.”

루카스가 답했다.

“이제 예명을 쓰기로 했어요.”

“예명?”

“네, 루카스 론슨이라는 이름이 딱 입에 안 붙는 느낌이라 예명을 사용하려고요.”

“좋지. 어떤 이름으로 할 텐가?”

루카스가 몇 주 전 기억을 떠올렸다.

예명을 어떻게 지으면 좋을지, 부대찌개 집에서 뉴블랙의 막내 멤버에게 들었던 정보가 있었다.

‘일상적으로 눈에 들어오는 걸 써 보는 것도 좋아요. 예를 들면 여기 있는 이 마카로니 같은 거라든가.’

‘마카로니… 로니 루카스. 나쁘지 않네요.’

루카스 론슨이 지그시 감고 있던 눈을 번쩍 떴다.

“저는 이제부터 로니 루카스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려고 합니다.”

“오!”

뉴블랙 멤버들이 들었다면 달려와서 막았을 테지만… 그의 마음은 확고하기 그지없었다.

그리하여…….

‘나는 로니 루카스다!’

뉴블랙이 미국에 뿌린 흑역사의 씨앗이 발아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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