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682화
군산에서 서울로 가는 동안 꿈을 꿨다.
-형!
공항에서 막내가 조잘거리는 꿈이었다.
-이번에 목성에서 투어하는 거 너무 신나지 않아요?
-목성 투어?
우리가 목성까지 진출을 했구나.
장하다. 선우주!
목성 투어의 기쁨을 즐기며 출국 심사를 받으려고 할 때였다. 막내가 갑자기 품에서 이상한 색깔의 여권을 꺼냈다.
-어? 너 여권 색깔이 왜 그래? 빨간색이네.
-몰랐어여? 저 중국인이잖아여.
-어?
-왜 제 성씨가 왕씨겠어여? 후후후.
빨간색 여권을 내보이는 지호의 모습에 놀랄 때였다.
지호의 머리카락이 나윤이처럼 트윈테일로 변하더니 갑자기 프로펠러처럼 돌아가기 시작했다.
부우우우웅.
지호가 손을 흔들며 멀어졌다.
-사요나라~!
-어디 가는 건데?!
그러더니 지호가 사라지자마자 리혁이가 나타나서 수줍은 얼굴로 고백했다.
-사실 그동안 싫어하는 척했지만 좋아해요.
-으아아아악!
-이제 멤버들에 대한 나의 사랑을 숨김없이 고백하려고요. 내가 최고로 사랑하고 애정하는……!
사랑 고백하는 물고기로부터 도망치다가 나를 구해 주러 온 중현이와 눈이 마주쳤다.
-중현아. 도와줘.
-형, 사실 저도 고백하고 싶은 게 하나 있어요.
-응?
-저 사실 힘이 약해요.
물근육이라면서 갑자기 물로 변해 버리는 중현이 때문에 인천공항이 물바다가 됐다.
그런데 왠지 모르게 알콜 향이 진한 느낌.
거기에 비까지 내리면서 어푸어푸 하는 상황에서 뗏목을 탄 비주가 내게 손을 내밀었다.
-형.
-응?
-저의 정체를 아시겠어요?
비주가 손을 내밀며 뭐라고 말하는데 하나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그러면서 꿈이 확 깨 버렸다.
* * *
“……그런 꿈이었지.”
소파에 누워서 꿈에 대한 내용을 진술하는 내 모습에 의자에 앉아서 차트를 작성하던 이가 고개를 들었다.
“음.”
중현이가 A4 용지에 큼지막하게 쓴 소견서를 내밀었다.
[개꿈]
“저의 소견으로는 개꿈입니다.”
“개꿈이네여. 개꿈.”
별 의미도 없는 꿈이라고 하는 중현이와 지호의 말에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런데 최근에 꿈을 꾼 게 정말 오랜만이란 말이야. 내 꿈에는 항상 뭔가 의미가 있었는데.”
골똘히 꿈의 의미가 무엇인지 고민을 해 보았지만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에이. 몰라.
뒤통수를 긁적이고는 셀프캠을 켜고 수플레들에게 인사했다.
“안뇽하세요! 오늘의 <친절한 우주선>! 저는 중현이의 믹스테이프 작업에 훈수를 두러 왔습니다!”
“환영환영.”
“진짜로 반가우신가요. 중현 씨?”
“아니요.”
솔직한 대답에 나와 지호가 웃음을 터뜨렸다.
오늘의 게스트는 지호와 중현이.
참견쟁이 컨셉으로 진행하는 나만의 미튜브 컨텐츠를 촬영했다.
먼저 노트북 앞에 앉아 열심히 비트를 주무르는 중현이에게 친절한 조언을 해 주고.
“중현아.”
“네.”
“과연 그 비트가 어울릴까…?”
“…….”
막내가 촬영하고 있는 웹 드라마 <신이神異> 시즌 2의 대본 리딩을 도와주기도 했다.
헛기침을 한 막내가 선비 말투로 말했다. 손으로 허공의 갓끈을 묶는 듯한 시늉을 하면서.
“게 무슨 일인가?”
“아이고, 나리. 큰일이 났습니다! 시커먼 배가 또 나타났습니다. 이양선이 또 나타났어요!”
“…이런.”
“큰일입니다!”
흥미진진하게 대본 리딩을 하면서 중간에 질문도 했다.
“근데 이번에는 쭉 사극 컨셉인가 보네.”
“네.”
시즌 1의 배경은 현대였던 것 같은데, 시즌 2는 전체적으로 조선이나 고려같이 옛 한국 땅인 것 같다.
막내가 설명했다.
“제 드라마가 그거잖아요. 불사의 존재가 비밀조직이랑 협력해서 기이한 존재들을 잡으러 다니는 이야기.”
“그치.”
“작가님이 프리퀄 어떠냐고 하시더라구요. 이 인물이 과거 한국 땅에서 어떻게 활동했고, 이 비밀조직과 어떤 식으로 예전부터 연을 맺게 되었는지… 그런 거 말이에요.”
“오오, 좋네.”
“사실 배경이 사극풍이란 게 너무 좋았어요. 요새 사극 나오는 게 엄청 드물잖아요.”
보통 사극은 돈 먹는 하마라고 불릴 만큼 제작비가 많이 든다.
요즘 TV에서 사극을 보기 힘든 이유가 바로 이런 제작비 때문이다.
수요가 없어서가 아니라 만드는 데 돈이 와장창 깨지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돈은 돈대로 드는데 드라마 예산의 상당수를 차지하는 PPL도 매우 넣기 어렵다.
이번에 지호가 출연하는 드라마의 경우 넷플러스의 통 큰 투자 덕분에 사극 세트 촬영이 성사됐다는 모양이다.
“배경도 좋은데 대본이 진짜네.”
“그죠? 우리 작가님 대박이라니까요.”
지금 보고 있는 에피소드만 해도 내용이 흥미진진하다.
19세기 조선에서 통상을 목적으로 하는 이양선(異樣船)이 자꾸만 해안가에 출몰하는데.
그런 이양선 중 하나가 서양의 유령선이면 어떨까? 하는 가정에서 출발한 내용의 에피소드였다. 배가 해안가에 출몰할 때마다 마을에서 기이한 일이 벌어지면서 민초들이 불안에 떨고.
“그때 제가 도포를 휘리릭 날리면서 해결하는 거죠!”
“……참 멋지겠구나.”
“제가 말을 이렇게 해서 그렇지. 촬영장에서 다들 겁나 멋있다고 막 칭찬해 주고 그래요.”
“응응~”
“아, 진짜 형들이 촬영장 한 번 와야 되는데.”
시간 될 때 꼭 놀러 오라는 말에 알았다고 했다.
어차피 연말까지 드문드문 계속 촬영이 들어가는 컨텐츠라서 촬영장에 방문할 시간이야 많다.
9월 초쯤 되면 시간이 좀 여유로워지니 그때 가 봐야지.
대본 리딩을 마치고 <친절한 우주선>의 촬영을 마무리하고 있을 때.
“촬영 끝났어요?”
“응.”
“형, 그러면 저 이것 좀 도와주세요.”
막내가 나한테 대본 뭉치를 내밀었다.
“이거 뭔데?”
“아, HBS랑 PBS, TBC. 요렇게 지상파 3사에서 단막극 공모하는 거 알죠?”
“응.”
“거기서 입상한 대본들인데 아직 영상화가 진행이 안 된 것들이 있거든요.”
대본을 골라달라는 이야기인가 싶어서 먼저 중현이를 호출하려고 할 때였다.
“중현이 형한테 이미 예감이 좋은 것들은 따로 빼달라고 부탁했어요.”
“잘했어.”
“이제 여기에 형의 조언이 좀 필요해요.”
테이블 위로 대본 뭉치를 펼쳐 보이는데 대략 10여 개 정도 되는 것 같다.
한참을 읽었는지 대본들 끝 부분이 해져 있었다.
“단막극에 나가게?”
“네.”
“왜?”
조금 의아한 느낌이다.
일반적으로 단막극은 신인 연기자에게 좋은 기회다.
1화짜리라서 부담도 덜하고, 대중들의 관심도가 높지 않기 때문에 많은 수의 신인들이 출연하는 것이 바로 단막극이었다.
“작년에 <신이>도 찍었고, 이제 내년에는 넷플러스로 시즌 2가 나오는 거잖아.”
“넹.”
“혹시 단막극에 출연하고 싶은 이유가 있어?”
우리 연기자의 동기가 궁금해서 물어보는 질문이었다.
지금 촬영하고 있는 작품으로 충분히 연기력을 증명해서 다른 기회들을 얻을 수 있을 텐데.
혹시 대중적 인지도를 얻을 기회가 필요한 거라면 이미 충분하지 않느냐 해서 물어보는 거였다.
“네. 있어요.”
제 나름대로 미래 계획을 세웠는지 지호가 입을 열었다.
“음, 일단 신이 시즌 2를 런칭하면 사람들이 관심 가지고 볼 것 같긴 해요. 넷플러스에서 홍보 엄청 때릴 거라고 그러더라고요.”
이번에 홍보 예산이 역대 최고치라나.
“그래서 대중적 인지도는 걱정 안 하는데, 제가 생각하는 건 그다음이에요. 이제 저는 형들이랑 다르게 사람들이 제 무대를 딱히 궁금해하지를 않으니까.”
“무슨 소리야. 왜 안 궁금해해?”
말도 안 되는 소리.
황당해하는 나에게 막내가 씩 웃으며 말했다.
“형이 또 저를 좋아해서 그런 말 해 주는 건 아는데, 솔직히 저는 객관적으로 제 자신을 알고 있어요.”
“…….”
“솔로 가수로서 메리트가 좀 떨어지는 상황이라 저도 고민을 좀 해 봤거든요.”
지호가 말했다.
“그래서 생각한 게 아, 가수 활동은 형들이랑만 해야겠다. 노래로 할 수 있는 건 뉴블랙으로서 전부 다 해 봐야지 하고 결론을 내렸는데. 이제 저 개인 활동으로 들어가니까 생각이 좀 많아지더라구요.”
짙은 속눈썹이 차분하게 가라앉는다.
“리혁이 형은 노래, 중현이 형은 랩, 비주 형은 춤. 형은 서커스… 이렇게 다 특기가 있는데. 저만의 특기는 연기잖아요?”
“그렇지.”
“그래서 커리어를 지금부터 조금씩 조금씩 쌓아 가고 싶어요. 10년이 지나도 저는 서른이잖아요.”
“…….”
10년이 지나도 서른이라는 말에 갑자기 짜증이 좀 났다.
실눈으로 째려보는 나에게 막내가 흐헹헹 웃으며 말했다.
“암튼 그래서 서서히 커리어를 쌓아 가고 싶은데, 그러려면 기회가 많이 생겨야 되잖아요?”
“그렇지.”
“제가 생각해도 기회는 엄청 많을 거 같아요. 형들이 열일해서 이렇게 뉴블랙이란 이름을 만들어놔서, 정말 어디 가서 ‘저 출연하고 싶어요!’ 하면 배역 다 얻을 수 있거든요.”
그것도 맞는 말이다.
“근데 그렇게 하고 싶지는 않아요.”
“이름값만으로?”
“네, 감독님이나 작가님들이 ‘아, 지호 오면 홍보 잘 되겠네’ 라는 생각보다는 ‘내 작품에 저 친구 진짜 캐스팅하고 싶다’ 라는 생각을 먼저 했으면 좋겠어요. 시청률도 시청률이지만 정말 진지하게 ‘쟤를 써먹고 싶다’ 이렇게요.”
“그러려면 연기력을 좀 보여 줘야겠네.”
캐스팅 디렉터들 사이에서 ‘지호 씨 데려오면 홍보도 대박인데, 배역을 기가 막히게 잘 살리잖아’ 그런 소문이 나는 걸 원하는 모양이었다.
곰곰이 막내의 고민을 따라가던 내가 물었다.
“그런데 신이 시즌2 나오면 해결되는 거 아니야? 연기력은 그걸로 증명하면 될 텐데.”
“아, 제 배역이 좀 그래요.”
“배역이?”
“네. 이게 설정상으로 하도 오래 살아 버려서 감정이나 그런 게 마모된 캐릭터거든요.”
우리 배우 분의 설명을 들었다.
관계자들에게 어필을 하기 위해서라면 감정적으로 넓은 폭을 보여 줘야 하는데, 본인 캐릭터는 좀 한정적이라고.
그렇게 결론까지 끝낸 지호가 손가락으로 대본을 톡톡 두드렸다.
“솔직히 단막극 요즘에 다들 안 보긴 하는데… 관계자들은 되게 눈여겨보거든요. 저한테는 이게 되게 좋은 기회라고 봐요.”
“음…….”
“일단 감정 연기의 폭이 좀 넓어 보이는 배역들로 골라 봤거든요. 형도 시트콤에서 김우주로 연기해 봤으니까, 대본을 고르는 데 조언 좀 해 주면 좋겠어요.”
연기 커리어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 상담을 하는 막내의 모습에 나도 덩달아 진지하게 대본을 살폈다.
막내의 나이대에 안 어울리는 멜로 드라마는 빼고.
소시오패스나 사이코패스 등을 다루는 스릴러나 지나치게 자극적인 배역도 빼고.
너무 판타지하거나 난해한 소재도 빼고.
그중에서 적절해 보이는 것들을 골라 후보군으로 내밀었다.
“내 생각에는 이 중에서 고르면 될 것 같아.”
“오, 저랑 되게 겹치네요.”
그러면서 대본을 골라 줘서 고맙다는 막내를 보며 웃었다.
항상 무슨 생각을 하면서 사나 궁금했는데, 이렇게 또 자기 일 관련해서 속이 깊은 것을 보니 뭔가 좋다.
손주들이 알아서 잘 크는 걸 바라보는 할아버지의 심정이 이럴까.
기특하게 바라보고 있을 때.
“아.”
잊고 있었던 것이 떠올랐다.
아까 막내한테 말해 줬어야 했는데 하고 떠올렸던 말.
“지호야. 이제 너는 이렇게 10년 동안 커리어를 서서히 쌓아 가면서 배우로서 누구도 무시 못 할 연기 자산을 쌓을 거야.”
“허어어어. 고마워요. 형…….”
“그렇게 지금으로부터 10년 뒤에 연기력이 최절정에 올랐을 때…!”
“허어어어! 연기 천재 왕지호 등극?!”
“너는 군대를 간다.”
“…….”
“그것까진 계산 안 했지~?”
흐헤헤 웃으며 약을 올렸다.
“국방의 의무 축하해~”
“…….”
“열 받죠~? 근데 아무것도 못하죠~?”
“……!”
곧이어 부들부들하던 막내가 나에게 달려들었다.
“거기 서!”
“아직 군대도 안 다녀온 사람 목소리는 안 들리는데~!”
“야!”
* * *
벌컥 열린 문 사이로 복도에서 아옹다옹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야!
-왜 반말 써?
-내 맘이다!
-지호 형~
-존댓말 쓸게요~!
수준이 딱 맞는 초등학생들의 대화를 들으며 작업실 의자에 앉아 있던 중현이 흐뭇하게 웃었다.
‘음. 좋은 소재를 얻었어.’
소나기가 내린 뒤에야 땅이 단단해진다, 갈등이 있어야 단단해지는 우정 같은 뉘앙스의 가사를 적어 내면서 중현이 마우스를 딸깍였다.
“제목은 ‘친구.’”
서서히 완성되어 가는 믹스테이프 앨범이었다.
* * *
7월도 어느새 서서히 막을 내리고 있었다.
싱가포르와 태국 투어를 다녀왔는데, 진짜 7월의 동남아는 엄청나게 습하고 덥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도 무엇보다 좋았던 것은 바로 투어 규모였다.
싱가포르에서는 이곳에서 가장 큰 공연장이라는 내셔널 스타디움에서 2만 9천여 명과 함께 공연을 했고.
태국 방콕에서는 라자망칼라 스타디움에서 2일간 4만 6천여 명과 함께 공연을 했다. 태국에서 가장 거대한 공연장인데, 아직까지 한국 가수 중에선 입성한 가수가 없다고 들었다.
주로 헤일리 블루나 맨디 스파이스 같은 미국의 슈퍼스타들이 공연을 할 때 쓰는 공연장이었다.
현지의 TV 리포터들도 흥분해서 물었다.
「라자망칼라 국립 경기장에서 공연이 매진되었다고 들었어요! 기분이 어떠신가요. 뉴블랙?」
「진짜 너무 행복합니다~! 오늘은 저희가 정말…….」
「정말?」
「모든 걸 다 가진 기분이네요!」
왕국에서 ‘왕이 된 기분이에요’ 라는 말실수를 할 뻔했던 것을 제외하면 스무스한 투어였다.
태국 공연의 열기는 진짜 어마어마했다.
거대한 스타디움에서 팬들이 슬로건 이벤트를 해 주며 무대에 호응하는데… 진짜 너무 행복했다.
흔히 쓰이는 ‘우주는 마트에서 살아’ 같은 말처럼 ‘우주는 콘서트장에서 살아!’ 하면 ‘응!’ 하고 대답하고 싶은 기분. 달봉이와 왕봉이 수만 개가 흔들리는 광경은 절대 잊을 수 없는 풍경이다.
벌써부터 올해 상암경기장에서 열릴 앵콜 콘서트가 기대된다.
그리고.
“아. 너무 좋다~”
요즘 들어 비주는 기분이 엄청 좋다.
이유는 잘 모르겠는데, 무언가 고민이 해소된 것처럼 상쾌하고 즐거워 보인다고 할까.
“비주 되게 기분 좋아 보이네.”
“당신이랑 유닛 한다고 해서 그런 거 아니에요?”
“그런가…?”
긴가민가하긴 하지만 뭐 좋은 게 좋은 거겠지.
기지개를 쭉쭉 켜고는 멀찍이 초록색 크로마키 스크린이 설치된 지하철을 향해 걸어갔다.
이곳은 2호선 지하철 촬영장.
2000년대에 어느 영화 촬영을 위해 이미 폐기된 지하철 칸 일부를 떼서 촬영장으로 사용했는데, 실제 지하철과 똑같은 구조라 드라마나 영화에서 촬영장으로 애용하는 곳이었다.
그래서 우리도 오늘 METRO의 뮤비를 찍기 위해 이곳을 찾았다.
“아유, 잘 부탁드립니다!”
곡 제목도 마침 메트로(METRO)라서 그런지, 서울교통공사에서 나온 관계자 분이 흐뭇한 미소로 응원을 했다.
발목을 돌리거나 목을 꺾으며 몸을 풀고 있는 우리에게 민기 형이 카메라를 들고 다가왔다.
“이번 컨셉에 대한 설명 부탁드릴게요~”
“네!”
유러피안, 이탈리안 등 다양한 스타일의 수트를 차려입은 동생들과 활짝 웃어 보였다.
“예전에 나온 Nine처럼 강렬한 안무를 기반으로 하는 곡이고요. 의상도 그에 맞춰 진화했습니다.”
“그때 뮤비에서 쫓기던 불량 청년들이 이제 어른이 됐습니다. 어른~!”
“저마다 수트 스타일이 다 달라요.”
초창기에 가죽 재킷 등을 입고 다니다가 미국에 진출할 때 수트를 입은 비틀즈의 오마주가 우리 TF팀의 의도였다.
대신 좀 더 현대적으로 다양한 스타일의 정장을 입는 식으로.
예컨대 나는 지금 줄무늬가 있는 짙은 색의 스트라이프 수트를 차려입고 있는 상황이었다.
비주는 조금 더 밝은 색상의 정장에 보타이를 하고 있고, 중현이는 큰 체격에 어울리는 수트와 멜빵을 입었다.
막내는 타이가 잘 어울리는 청색 수트를 맵시 좋게 차려입었다.
“이게 되게 그냥 수트 같은데 보시다시피 쭉쭉 잘 늘어나는 재질이에요~! 안무 중에 찢어질 일이 없어요.”
막내가 숭한 다리 찢기를 하자 민기 형이 카메라를 들어 올려 우리의 명예를 지켜 주었다.
비주가 화사하게 웃으며 말했다.
“네, 이렇게 정장을 입고 격하게 춤을 추다가, 이제 브릿지 파트에서 재킷을 벗고 셔츠 차림으로 춤을 요렇게~”
“치명적이죠? 수플레들에게 치명타를 날릴 생각이에요.”
후렴 안무를 보여 주면서 뮤비 비하인드 촬영을 마쳤다.
“한 달 남았네요. 이제.”
“그치.”
우리끼리 옹기종기 모여서 몸을 부르르 떨었다.
리혁이가 물었다.
“오늘 영어 곡 관련해서 보도자료 돌린다고 하지 않았어요?”
“응.”
“반응이 나쁘지는 않아야 할 텐데…….”
“나쁘지는 않을 거야.”
얼마 전에 촬영한 <금강산도 식후경>에서 할아버지들이 ‘영어 곡을 내!’ 하는 말씀을 하셨으니까.
다만 주제 자체가 주제다 보니 약간의 소란이 좀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어 곡을 낸다니! 한국 시장은 버렸다! 뉴블랙은 망한다! 아무튼 망한다!’ 같은 기도문이라든가.
부디 반응이 좋길 바라면서 동생들과 으아아 하고 있을 때였다.
“음?”
웅성웅성.
촬영장에 나온 우리 TF팀들 사이에서 소곤거리는 대화가 오가는 게 보였다.
표정은 웃고 있는데 내용이 심각해 보인다.
“뭐가 있나 본데?”
사람의 톤이나 어조에 예민한 강아지들을 위해 웃으며 부부싸움을 하는 사람들처럼 TF팀이 뭔가 이야기를 하고 있다.
어딘가에 전화를 거는 석환 형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홍서영 과장님에게 다가갔다.
“무슨 일이에요?”
“아.”
홍 과장님이 담담하게 답했다.
“TJ에서 갑자기 기습 홍보를 했어.”
“네?”
“트릭스터 영어 곡 관련해서 보도자료를 돌렸다고 하더라고. 원래 오늘 우리가 돌리기로 했거든.”
TJ 엔터에서 소위 선제공격을 했다는 소식에 우리가 핸드폰을 켰다.
-트릭스터, 내달 18일 신곡 발표.. “글로벌 시장으로 진출할 영어 곡”
포털 연예면 상단을 장악한 기사는 놀라울 만큼 빠른 속도로 댓글이 늘어나고 있었다.
굉장한 관심.
TJ 엔터에서 날린 회심의 일격에 우리가 눈을 크게 떴다.
기사 내용을 읽다 보면 마치 ‘우리가 너네보다 먼저 홍보했다’ 하는 말을 우리에게 하는 듯했다.
“허어…….”
우리 막내가 양손을 들어 입가를 가렸다.
“와. 이거 완전 개꿀…….”
제일 먼저 출발하는 애가 제일 많이 맞는 구조였는데.
의도는 모르겠지만 알아서 선봉장으로 어그로를 끌어 주는 모습에 할 말을 잃었다.
“허어어…….”
동생들과 함께 두 손을 들어 올려 입가를 가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