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683)화 (683/1,031)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683화

“어흐흠.”

동생들과 내가 뺨을 씰룩이며 먼 곳을 바라보았다.

‘고맙습니다.’

멀찍이 TJ 엔터가 있는 방향으로 감사 인사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다.

리혁이가 중얼거렸다.

“영어 곡은 진짜 처음에 말 나올 수밖에 없는데…….”

아직까지 K팝 가수 중에서 본격적으로 영어 곡을 내거나 한 케이스가 많지 않기 때문이었다.

이미 십수 년 넘게 관행처럼 굳어진 일본어 곡과는 또 다르다.

원곡을 영어 버전으로 내는 것과도 좀 다르고.

정확하게 설명은 힘들지만 ‘저희 이번에 영어 곡 낼 거예요~’ 하는 말에 담긴 미묘한 의미 같은 게 있다.

그렇기에 처음으로 ‘영어 곡으로 미국 진출하겠다!’라고 하는 아이돌에게는 필연적으로 어그로가 끌릴 수밖에 없었다.

무엇이든 처음은 반감이 생길 수밖에 없으니까.

-K팝 가수가 영어로 노래 부르면 그게 팝이지, K팝이니?

-미국 진출에 눈 돌아갔구만~

-국문학과 교수입니다. 작금의 사태는 몹시 우려할 만한…….

-문화학자입니다. 독자적으로 형성된 K팝이 문화 종속으로…….

-일본입니다. J-Pop의 영향을 받은 K팝이 이번에는 영어 곡으로….

물론, 긍정적인 반응도 있겠지만 이런 식의 부정적인 반응들도 생길 수밖에 없다.

그런고로 처음으로 나선 그룹한테 이렇게 집중포화가 쏟아지다가….

며칠 지나면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이다.

-어? 근데 이게 이렇게까지 난리를 칠 일은 아니지 않나? 그냥 영어로 노래 내면 내는 거지, 뭐.

-일본에서 일본어 곡으로 활동하면서 이건 왜…?

…라는 분위기가 형성되면서 후발주자들이 끼얏호우! 하고 등장하며 달콤한 과실을 음미하는 것이다.

물론, 원래는 우리가 저 역할을 담당할 예정이었다.

어느 정도 부정적인 반응이 나올 수도 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서도, 긍정적으로 보는 사람들이 더 많을 거란 생각을 해서 추진한 거였다.

대다수 아이돌 그룹이 일본에서 일본어 곡을 내고 활동하듯이 우리가 북미 시장에 진출하기 위해 영어 곡을 낸다는 것을 이해해 줄 것이라고 생각했으니까.

“근데…….”

막내가 도무지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왜 트릭스터는 먼저 이렇게 나온 걸까요?”

“그러게….”

우리가 스마트폰으로 보고 있는 댓글창에서는 그닥 좋지 않은 반응들이 가득했다.

-갑자기요..?

-왜?

-태준아 tj 엔터 주식에 숏쳤냐

-????????????

-뉴블랙 보고 나서 영감탱 머리가 넹글 돌아 버렸나

-2주 후 기사 예상 : “박태준 회장, 마이너스의 손 등극하나”

-뭐야 씨발 우리오빠들한테 뭔짓거리하는 건데

트릭스터의 팬들조차 안 반기는 분위기였다.

대대적으로 보도자료를 뿌렸는지 포털 메인에 굵은 글씨로 뜬 기사를 보면서 우리가 다시 한번 고개를 갸우뚱했다.

“……뭐지?”

“진짜 뭘까요.”

갑자기 왜 이 타이밍에 기사를 내보낸 것인지 도무지 이해가 가질 않았다.

주변에서도 우리와 비슷한 표정으로 핸드폰을 보고 있는 TF팀을 바라보았다.

살짝 어처구니가 없다는 얼굴로 안경을 고쳐 쓰고 있는 석환 형에게 내가 시선을 돌렸다.

“왜 이러는 거 같아?”

“아마 내부에서 정치적으로 상황이 복잡하게 돌아가고 있는 것 같다.”

수학귀신이 보도자료의 구절들을 짚어 주며 말했다.

“메시지가 내부적으로 통일이 안 됐어. 보도자료 보면 아직 홍보 전략도 다 정리가 안 된 거 같고. 그렇다는 건 정리가 안 된 상황에서 윗선이 재촉을 했다든가, 그런 거지.”

“오오오오.”

“아니 뭐 그렇게 보인다는 거지.”

매니저의 혜안에 우리가 물개 박수를 치며 감탄했다. 중현이가 엄지를 들자 석환 형이 헛기침을 하며 뺨을 씰룩였다.

비주가 물었다.

“저희 그러면 이제 어떻게 할 거예요?”

“그건 좀 고민을 해 봐야지. 일단 홍보 자료 내는 건 며칠 뒤로 미뤄야 할 것 같고.”

“왜 미뤄요?”

막내의 물음에 내가 말했다.

“지금 타이밍에 똑같이 보도 자료 내면 손해니까. 괜히 엮여서 기사 나기 좋고.”

“아. 그러네요. 울 아빠가 이런 거 제일 싫어하던데.”

‘킹콩치킨, 업계 1위 호호치킨 잡나?’ 같은 헤드라인을 말하는 지호의 말에 우리가 웃음을 터뜨렸다.

리혁이가 말했다.

“어쨌거나 의도가 뻔히 보이네요. 영어 곡 내는 거 우리랑 비교 기사 내면서 화제성 가져가겠다는 거잖아요.”

비교 기사를 통해 화제성을 챙기는 것도 좋은 전략이다.

예를 들어 ‘차세대 누구누구’ 하는 것도 처음에는 욕하고 반감을 가지는데, 나중에 유명해지고 나면 아무 상관이 없어지듯이.

막내가 으으음 했다.

“근데 이 경우에는 진짜 답이 없네요. 어차피 우리가 기사 내는 순간부터 계속 비교 기사 내고 그럴 테니까.”

“뭐, 방법이야 있지.”

곰곰이 생각하고는 말했다.

“비교 기사는 애초에 비교가 되는 공통점으로 묶어서 내는 거잖아. 리혁이와 나의 유일한 공통점이 사람이라는 것처럼. 공통점에 주목해서 편승하려고 하는 전략인데.”

“잠깐만, 뭐요?”

“이럴 때는 차이점을 확 부각시켜서 비교 자체가 성립이 안 되도록 만들면 돼. 비교하려고 하는 사람만 우스워지게.”

지금이야 ‘영어 곡’ 정도로 공통점을 잡아서 물고 넘어지는 걸로 홍보하려는 것 같은데.

그런 기사도 내보내는 게 머쓱할 만큼 차이점을 확 부각시켜 주면 된다.

내 이야기를 옆에서 듣던 석환 형도 동의했다.

“맞아. 그런 전략으로 가면 저런 기사들이 안 나오게 할 수 있지. 잡음 자체가 아예 없도록.”

TF팀도 우리 이야기를 들었는지 같은 생각이라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때.

생각이 어디까지 미쳤는지 석환 형의 입가에 흐뭇한 미소가 떠올랐다.

“좋은 생각이 하나 떠올랐어.”

“응?”

“잠시만.”

석환 형이 우리에게 아이디어를 속삭였다.

“……어때?”

“좋은데?”

우리의 얼굴에 흐뭇한 미소가 떠올랐다.

*   *   *

같은 시각.

일단의 홍보 자료를 돌리는 데 성공한 TJ 엔터의 홍보팀 직원들이 데스크에서 축 늘어져 있었다.

“아, 기 빨리네…….”

모니터로 댓글창 반응을 살피는 홍보팀장이 아메리카노를 쭉 들이켰다.

평소보다 맛이 쓰다.

“팀장님, 거기는 반응은 어떤 것 같으세요?”

“어떻기는.”

커뮤니티, SNS, 포털.

어딜 가든 간에 ‘갑자기? 왜?’, ‘웬 영어 곡?’ 하는 안 좋은 반응들이 가득했다.

TJ 홍보팀이 이미 예상한 반응이었다.

‘거 보라니까…….’

뉴블랙보다 기사를 늦게 냈다면 ‘뭐야 따라 하냐?’ 하는 말이 나왔어도 이런 어그로까지는 안 끌렸을 텐데.

첫 타자로 나서는 바람에 뭔가 잡음이 많다.

홍보팀장과 홍보팀 직원들의 눈가에 짙은 그늘이 깔렸다.

‘이거 아무리 봐도 나가리 될 프로젝트인데.’

기본적으로 홍보 전략이라는 것은 상품을 더 많이 판매하기 위한 것이다.

그 말인즉, 상품 자체의 매력이 떨어지면 아무리 홍보 전략을 잘 세워도 말짱 황이라는 이야기였다.

지금의 트릭스터 영어 곡이 그런 상황이었다.

‘이건 아무리 봐도 트릭스터한테 마이너스야.’

현시점에서 잘나가는 보이그룹을 꼽을 때 다섯 손가락 말석에 들어가고 있는 트릭스터였다.

작년도에 데뷔하고 좋은 성적을 보이는 보이그룹.

뉴블랙, 틴스피릿, 스트릿 보이즈 같은 존재들 아래에 KM 엔터의 서바이벌 그룹 ‘원더 차일드’와 경합을 벌이고 있는 상황이었다.

물론, 지상파에서 높은 시청률을 찍은 원더 차일드에는 한참 밀리는 상황이었으나 성장 동력이 무궁무진한 그룹이었다. 이제 앨범 두어 개 정도 더 대박을 치면 확 올라갈 상황인데…….

무슨 바람이 들었는지 갑자기 윗선에서 명령이 틱 내려왔다.

영어 곡을 내겠다고.

‘이 타이밍에……?’

국내 기반을 완벽하게 다지지 않은 상황에서 아예 기반도 없는 미국 진출? 누가 들어도 안 될 소리였다.

하지만.

-저 이건 조금…….

-왜? 신규 프로젝트 시작하면 일 늘어날까 봐 그래?

-절대 아닙니다.

-그래. 해 보지도 않고 안 된다고 하면 안 되지.

그런 이유로 윗선이 미는 신규 사업은 언제나 추진되기 마련이었다.

실무자들도 그런 점을 잘 알고 있었다.

무리수 같으니 안 된다고 말하는 것보다 그냥 원하는 대로 추진해 주고, ‘보시다시피 망해 버렸지롱’ 하는 것이 더 쉬운 길이라는 것을.

그랬기에 현재의 영어 곡 프로젝트는 실무자들 선에서 ‘아 이건 좀’ 하는 상황에서도 차근차근 추진되어 가고 있었다.

아주 삐걱거리는 소음과 함께.

“후…….”

방금 전, 회장실과 기획팀으로부터 내려온 지침도 이런 삐걱대는 상황을 보여 주고 있었다.

-오늘 뉴블랙 영어 곡 보도자료 돌린다고 하더만? 우리가 먼저 내보내. 늦게 기사 내면 뉴블랙을 따라 하는 거 같잖아.

-그래도 이게 홍보 특성상…….

-요즘 회장님 심기가 불편하셔.

뉴블랙이 나타나기 전까지 항상 트렌드를 선도해 왔던 박태준 회장의 심기가 불편하다는 소식에 ‘예’ 하고 말았다.

“일단 할 수 있는 건 다 해 보자고.”

“네.”

말은 그리하고 있었지만 ‘좀 사리자’ 하는 의미를 담은 눈빛을 보내는 홍보팀장이었다.

그에 동조하는 직원들.

‘책임 소재는 일단 피해야지.’

‘기획팀 놈들은 또 구렁이처럼 빠져나갈 텐데.’

망할 프로젝트라는 조짐이 군데군데 보인다.

그런데 추진은 해야 되고.

이런 상황에서 가장 베스트는 일이 다 끝났을 때, ‘망한 거 누구 책임이냐!’ 할 때 홍보팀 잘못이 아니라는 말이 나오도록 하는 것이었다.

“아으으으…….”

그래도 벌써부터 골이 아프다.

지금 상황에서 TJ 엔터가 취할 수 있는 홍보 전략은 딱 하나다.

뉴블랙 물고 넘어지기.

트릭스터가 누군지도 잘 모르는 대중들에게 어필하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그런 전략을 취할 수밖에 없었다.

-비슷한 시기 발매 영어 곡.. ‘뉴블랙 vs 트릭스터’ 관전 포인트는?

-K팝의 진화? 이젠 영어 곡까지, ‘뉴블랙, 트릭스터의 곡을 통해 알아보는..’

-트릭스터, 뉴블랙과 영어 곡으로 미국 진출 경쟁 시작하나?

대충 이런 느낌으로 헤드라인을 뽑다가도 느낌이 쎄한 것이 당장이라도 어디선가 날아온 돌에 헤드샷을 맞을 듯한 기분이다.

“뉴블랙 팬덤 규모가 얼마나 되더라?”

“역대 K팝 아이돌 중에 최대예요.”

“해외 팬 때문에?”

“아뇨. 국내 팬만 따져도 다른 보이그룹 다 합친 것만큼 될 거예요…. 해외 팬은 아예 논외고.”

“…….”

여기에 트릭스터 팬들까지 ‘회사 뭐 해? 돌았어?’ 하며 보낼 팩스들까지 떠올리니.

“아으으…….”

홍보팀이 단체로 꿈틀거렸다.

하지만 저런 구질구질한 전략 빼고는 윗선을 충족시켜 줄 만한 방법이 없다.

TJ 엔터 홍보팀이 무능해서가 아니라 정말로 상황 자체가 답이 없기 때문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내일 영어 곡 내놓고 ‘보셨죠? 망했습니다’ 한 다음에 ‘프로젝트 종료!’ 하고 땅땅 치고 싶다.

그때 어느 직원이 말했다.

“그래도 곡이 좋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 어쩌면 뉴블랙이 내놓은 곡보다 더 좋을 수도…….”

“그럴 수 있지.”

“그죠…?”

어렴풋이 희망을 품는 직원에게 팀장이 한숨을 쉬었다.

“그런데 우리가 미국에 기반이 있냐고…….”

“…….”

“그리고 조 대리는 그거 상상이 되니. 저 우주선이 들어가 있는 송 캠프가 질 거 같아? 이번에 송 캠프에 참석한 작곡가들 대거 레몬 엔터로 들어갔다는 말 들어 봤을 거 아냐.”

“예.”

“송 캠프에서 무슨 일이 있어서 그 사람들이 입사를 했겠어? 대한민국에서 작곡이라면 다들 알아주는 사람들인데.”

어마어마한 가능성을 봤다는 거지.

그런 말을 생략했지만 다들 알아들은 모양새였다. 그러면서 어딘가에 있을 다른 회사의 홍보팀을 떠올렸다.

‘레몬 엔터는 좋겠다.’

현재 시점에서 단연 회사로서의 규모는 TJ 엔터가 더 크지만, 업계 관계자로서 직감하고 있었다.

부상하는 새로운 강대국을 지켜보는 듯하다고 할까.

TNT가 사실상 해체된 상황이니 이제 트릭스터라는 새로운 동력이 필요한데 윗선에선 이상한 짓을 하는 상황에 갑갑한 기분을 느꼈다.

“그런데 이렇게 홍보하고 나면 트릭스터 좀 힘들 텐데…….”

“아마도 그렇겠지.”

하지만 위에서 그렇게 하라는데 뭐.

마땅한 방법이 없어서 고민하고 있을 때였다.

“음?”

그로부터 얼마 안 가 등장한 기사에 TJ 엔터의 홍보팀에 화색이 돌았다.

‘이거다!’

그들이 기다리고 있던 소식이었다.

‘이거면 명예롭게 죽을 수 있어!’

*   *   *

바다 건너 미국.

거대 자본들이 크라켄처럼 촉수를 꾸물거리고 있는 엔터 업계에 새로운 소식이 도착했다.

-얘들아~

-왜?

-뉴블랙 신곡 낸대. 영어 곡.

복잡한 외교정치적 수사들을 제외했을 때.

흘러가는 대화의 흐름은 다음과 같았다.

-영어 곡?

-앞으로 앨범 내면서도 1년에 한 번씩은 영어로 디지털 싱글을 낼 거래. 대박 소식 아님?

-좀 대박인 듯.

뉴블랙을 담당하는 거대한 레코드사가 다른 거대 자본들에게 전해 오는 소식에 그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성좌들의 회의처럼 근엄한 분위기 속에서 오가는 소통.

-확실히 노선을 정했나 보네. 우리랑 친구하기로.

-그럼 이제 입금해 줘야지.

미국 시장에 융화될 의도가 있다는 메시지를 보낸 뉴블랙에게 거대 자본들은 결심을 마쳤다.

꾸물거리는 거대한 돈의 촉수들.

[거대 자본 ‘어린이들의 돈을 빨아들이는 자’가 뉴블랙을 응원합니다.]

[거대 자본 ‘돈에 환장한 음료 기업’이 뉴블랙의 무대 비용을 후원합니다.]

[거대 자본 ‘시청률에 미쳐 버린 어둠의 방송국’이 뉴블랙을 토크쇼에 섭외합니다.]

외국 가수 좋은 일만 시켜 주는 게 아닌가 싶어서 망설였던 연예계의 거대 자본들이 돈을 굴리기 시작했다.

뉴블랙의 신곡 발매에 대해서 홍보도 좀 세게 때려 주고.

협찬도 넉넉하게 넣어 주고.

자본주의의 나라답게 같이 돈 먹을 수 있는 방법을 무궁무진하게 개발하고 있을 때.

-저기요.

뉴블랙의 영어 곡 프로젝트 마케팅을 담당 중인 레코드사에게 한국에 있는 윤석환 팀장으로부터 메시지가 왔다.

-제안할 게 하나 있습니다.

한국에서 뉴블랙을 담당하고 있는 팀장의 연락.

그의 요청에 레코드사는 흔쾌히 4대 시상식 중 하나인 VMA 측과 미팅을 잡았다.

-뉴블랙 이번에 나올 영어 곡 무대 세워 주셈.

-왜요?

-노래 끝내주게 좋음.

레코드 사가 자신만만한 태도를 고수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한국에서 보내 준 노래가 좋아도 너무 좋았다.

‘이건 반드시 대박 친다.’

뉴블랙의 신곡 발매 날짜는 VMA로부터 며칠 전 금요일.

곡을 발매하고 나서 VMA에서 ‘METRO’ 무대까지 추가로 선보인다면 홍보 효과가 어마어마할 터였다.

‘흐으음.’

VMA 측이 고민을 하기 시작했을 때.

한국에서 온 윤석환 팀장이 마법 같은 화술을 보여 주기 시작했다.

뿔만 없다 뿐이지 묘하게 선량한 악마 같은 느낌을 주는 외모에 어울리는 말투였다.

“제가 VMA를 보았던 기억이 나네요. 그때 당시 한국에서도 미국 방송 챙겨보기 힘들었는데도 봤어요. 아마 2003년이었던가? 지나고 보니 참 추억입니다. 하하하.”

해석) 너네 2000년대 이후로 시청률 나락이더라.

계속되는 부드러운 설득.

-게다가 이번 어워드는 왕겜 시즌7 피날레랑 겹친다면서? 어라? 시청률 그럼 더 떨어지겠네?

-…….

-그런데 뉴블랙 신곡이 나오는데, 이게 VMA를 통해서 미국 최초 공개를 한다? 그러면 완전 상승 각이죠?

-하, 할게. 하면 될 거 아니야.

솔직히 과거의 명성에 비해 점점 화제성이 떨어지고 있는 VMA 입장에서는 마다할 일이 아니었다.

비밀 엄수 계약 아래 들려준 신곡은 정말…….

‘이건 잡아야 한다.’

그런 생각이 드는 퀄리티였으니까.

그리하여 그 모든 복잡한 정치적 과정을 거쳐 뉴블랙의 VMA 무대가 Coin과 Metro로 구성되는 걸로 합의가 됐다.

악수를 나누면서 화기애애한 어워드 측과 레코드사 측.

“하하하하!”

“하하하하하!”

막대한 돈과 시청률에 대한 예감으로 모두가 행복한 시간이었다.

물론.

“…….”

골동품을 쓰다듬으며 부들부들하는 한국의 어느 기획사 대표를 제외하면.

*   *   *

METRO의 뮤비 촬영을 마친 후.

우리의 VMA 출연에 대한 소식이 온라인을 뒤덮기 시작했다.

-뉴블랙, 美 VMA 시상식에서 신곡 무대한다.. ‘제목은 METRO’

-뉴블랙, VMA 2개 부문 노미네이트, ‘단독으로 2곡 무대’

-뉴블랙 참석하는 VMA 어워드는 어디? ‘미국 4대 가요시상식 중 하나’

어워드에서 무대를 한다는 소식과 함께 신곡 ‘METRO’에 대한 홍보도 스무스하게 해결이 됐다.

영어 곡과 관련된 어그로는 TJ 엔터에서 미리 끌어 주었고.

앞으로 있을 비교 마케팅도 칼같이 선을 긋는 데 성공했다.

“와, 근데 저쪽 회사에서는 기사 내보내기 좀 그렇겠네요.”

“확실히 좀 그럴 거야.”

아마 우리한테 착 붙어서 ‘우리의 공통점은 영어 곡!’ 하려던 것 같은데.

VMA에서 신곡 무대까지 한다는 소식이 나오고 나서는 딱히 별 반응이 없었다. 성공적으로 퇴치한 모양이다.

리혁이가 말했다.

“일단 이 부분은 걱정 덜었네요. 괜히 홍보 관련해서 잡음이 생기고 그러면 별로인데.”

다 같이 고개를 끄덕이며 홍보팀으로 향했다.

며칠간 홍보 관련해서 고생하셨다는 감사 인사와 함께 조각 케이크 등을 선물하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음?”

안쪽에서 들리는 뭔가 소란스러운 분위기에 우리가 벽에 착 붙었다.

뭔가 쩔쩔매고 있는 우리 홍보팀.

팩스가 쉴 새 없이 들어오고, 전화기가 미친 듯이 울려 대는데 누가 보면 비상 상황이라고 착각할 만한 느낌이었다.

‘뭐지?’

졸개들이 내 등딱지에 착 붙어서 있는 동안, 우리가 빼꼼히 고개를 내밀고 홍보팀 안을 살폈다.

가까이 다가오면서 점점 들려오는 소리.

-아이! 사람들이 계속 팩스 보내고 있어요! 뉴블랙 VMA 무대 추천 계획이래요.

-또? 몇 장이야?

-27페이지요!

우리가 눈을 깜빡이는 동안 전화를 응대하는 홍보팀 직원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예, 아버님. 이번에는 무리하지 않게 저희가 스케줄 관리하고 있고요. 네, 미국 무대 준비 잘 되어 있죠.

-어머니. 너무 걱정 안 하셔도 돼요.

-아, 도깨비로 임팩트를 줘야 한다고요. 네… 저도 동의합니다만 어워드 측에서 Coin 무대를 요청해서요. 네, 우리의 것도 소중하지만…….

처음에는 멤버들 가족들이 전화라도 한 건가 싶었는데.

다른 집 아버지, 어머니들이었다.

쉴 새 없이 전국으로부터 날아오는 훈수에 응대하는 우리 홍보팀 직원들의 모습은 뭐라고 할까.

리혁이가 뺨을 긁적이며 말했다.

“아무리 봐도 학원 같은데요. 학부모 상담하는…….”

“…….”

전국의 뉴버지, 뉴머니들과 상담을 하고 있는 홍보팀 직원들의 모습에 우리가 먼 곳을 보며 따스한 미소를 지었다.

뭔가 굉장히 미안한 느낌.

나중에 대표님을 뵈면 조심스럽게 홍보팀 분들 상여금에 대한 이야기를 한번 해 봐야겠다.

“화이팅…….”

당분간 바깥을 나돌아다니지 말아야겠다는 결심을 하며 동생들과 함께 뒷걸음질을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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