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684화
61장. 저길 봐, 떡밥이 쏟…으아악!
같은 시각.
뉴블랙의 VMA 출연 소식은 대한민국 온라인을 뒤덮고 있었다.
-뉴블랙, 美 VMA 어워드 노미네이트.. “신곡 무대도 선다”
대중들에게는 그야말로 신기한 소식이었다.
“야야, 이거 봤어? 뉴블랙 미국 또 간대!”
“또?”
“이번에 또 가?”
사람들이 기사 내용을 빠르게 훑었다.
VMA.
그래미, AMA, 빌보드와 함께 이른바 미국의 4대 시상식이라 불리는 유명 시상식이라고 했다. 한국인들에게는 2001년도에 유명 가수가 목에 비단뱀을 두르고 나온 것으로 유명한 시상식.
하지만 대중들이 주목한 것은 따로 있었다.
바로 이번이 뉴블랙의 두 번째 미국 시상식이라는 점이었다.
‘……빌보드가 끝이 아니었다는 거네?’
지금까지 대다수 한국인들은 빌보드 어워드를 일회성 이벤트로 여겼던 터였다.
헤일리 블루와의 콜라보 곡이 빌보드 Hot 100 차트를 씹어먹으면서 벌어지게 된 이벤트성 사건.
그랬기에 어워즈를 시청하면서도 ‘어휴, 팬이 많네~’ 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던 터였다.
그런데 이번에는 VMA라는 또 다른 주요 시상식에서, 그것도 단독 무대라니.
‘이거 진짜 각인가?’
소위 말하는 ‘각’이 나오고 있었다.
미국에서도 잘 될 각.
워낙 미국 진출을 시도하다가 좌초된 케이스가 많아서 미국 시장 하면 ‘어차피 어렵다’라고 생각하던 한국인들의 시선이 바뀌기 시작했다.
“진짜 얘네 미국에서 잘 될라나 봐. 신기하네. 이번에 단독 무대까지 준대. 영어로 노래 낸다고.”
“와, 완전 챙겨 주네.”
마치 아카데미 시상식에 진출하는 한국 영화를 바라보는 듯한 심정이다.
내 일도 아닌데 왠지 모르게 자꾸 관심이 가고. 뭔가 가서 상이라도 탔으면 좋겠고.
무엇이든 두 번째라는 것은 그런 의미였다.
첫 번째는 1회성으로 끝날 수 있어도, 두 번째부터는 항상 그 안에 내포하고 있는 의미가 있다.
앞으로 세 번째, 네 번째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는 뜻.
그 때문에 유머글이나 밈이 가득했던 빌보드 어워드와 다르게 한국인들 사이에서 정보 공유가 이뤄지기 시작했다.
[미국 4대 시상식에 대해서 (정보)]
커뮤니티마다 비슷한 글들이 베스트가 되어 올라오기 시작했다.
한국에 망고와 KMA가 있다면, 미국에는 4대 시상식이 있는데 그 시상식들의 테마를 살펴보는 내용들이었다.
“빌보드는 기록으로 상을 주고, 여기는 화제성으로 점수 매기는 시스템인가 봐.”
“AMA라는 것도 있네. 이건 또 뭐지?”
“아메리칸 뮤직 어워드라는데… 그것도 유명한 시상식 중 하나래. 나도 처음 들어 보긴 하는데.”
“그래미는 백인 노인네들이 자기들 내키는 대로 주는 곳… 확인.”
수상 난이도는 그래미 어워즈가 가장 어렵다는 것부터 시작해서 최근의 시상식별 논란들까지 섭렵하는 한국인들.
그리고 그중에서 적극적인 이들은 전화기를 들었다.
“네, 의견 감사 드립니다~”
레몬 엔터에서 전화를 받고 있던 홍보팀이 사근사근한 미소를 지으며 통화를 종료했다.
주변에서 질문이 날아들었다.
“누구셔?”
“안동에 사시는 70대 할아버지 분이신데, 기똥찬 전략이 있으시다고. 무대에서 하회탈을 써 보라고 하셨어요.”
“오, 그건 은근 괜찮은데?”
뉴블랙에게 전달할 만한 좋은 아이디어들은 따로 메모를 해 두고.
저마다 다들 기지개를 켜고는 쉴 새 없이 쏟아지는 전화를 응대하기 시작했다.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다.
‘이것도 다 관심이 있어서 그런 거니까.’
소속 배우가 음주운전이나 SNS 논란을 일으켰을 때를 생각하면 선녀 같은 일이었다.
기자들이 ‘확인 중이시라고요? 그럼 사실 확인 중이라고 기사 내겠습니다’ 할 때마다 심장이 바운스바운스하던 시기에 비하면 업무 난이도는 쉬운 축에 속했다.
-…근데 저 말고도 전화 건 사람 많았죠? 제가 너무 걱정이 되고 신경 쓰여서 전화한 거거든요.
“아니에요. 의견 주셔서 너무 감사하죠.”
-고생 많으세요. 화이팅입니다! 뉴블랙 짱!
뭔가 국가대표를 케어하는 소속사처럼 응원도 들려오는데 그런 목소리를 들을 때마다 힘이 난다.
홍보에서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
한 사람이라도 더 우리 가수의 편이 되어 줄 사람을 만들기 위해 홍보를 하는 것인데, 이렇게 대중들이 같은 편이 된다는 것이 홍보 관계자 입장에서는 얼마나 든든한지 모른다.
잠시 전화가 잦아드는 타이밍에 홍보팀장이 월간 업무 일정표를 바라보았다.
“이제 며칠 지나면 8월이네.”
“어우! 시간 빨라.”
그리고 8월은 중요한 달이기도 했다.
뉴블랙이 지난 두어 달 가까이 준비한 것들이 하나씩 공개가 되는 시기였다.
우주의 스칼렛 신곡.
선우주의 휴식 일기를 비롯한 각종 자체 컨텐츠.
신곡 METRO.
VMA 무대.
일정표에 빼곡히 적인 것들을 바라보는 홍보팀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그럼 다시 한번 화이팅 넘치…….”
똑똑.
노크 소리가 들리더니 이번에 레몬 엔터로 입사하게 된 신규 작곡가 유웅이 들어왔다.
키는 훤칠하지만 비쩍 말라서 다소 야윈 인상.
나상윤 피디와도 비슷한 인상인 것이, 회사 사람들 사이에서 ‘선우주픽’ 이라는 말이 괜히 도는 게 아닌 듯했다.
“아이고, 이번에 처음 인사드리네요.”
“안녕하세요!”
“바쁘신데 찾아온 거 아닌가 모르겠네요.”
“아유, 아닙니다. 어쩐 일이세요?”
“별건 아니고, 인사도 드릴 겸, 이것도 전달을 해 드릴 겸 왔어요.”
“어머! 어머!”
커피 박스와 조각 케이크를 내미는 유웅 작곡가에게 잘 먹겠다는 말이 날아들었다.
그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뉴블랙 분들이 사는 거예요.”
“아.”
머릿속에서 홍보팀 사무실을 들여다보다가 ‘어엇’ 하며 뒤로 물러나는 5인조의 얼굴이 그려진다.
그러다 ‘엇! 작곡가님!’ 하며 반가워하는 모습까지.
직원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배달하신 거예요?”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는데, 이런 기회가 있어서 정말 다행입니다. 후후후.”
“예?”
“우주 씨한테 점수를 땄거든요. 후후후…….”
레몬 엔터의 권력자에게 점수를 땄다며 좋아하는 신규 작곡가의 모습에 홍보팀 직원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 보니 저기는 직속 상사가 우주지…….’
‘우리는 행복한 사람들이었어.’
왠지 모르게 비쩍 야윈 작곡가를 보며 훈훈하게 웃는 홍보팀이었다.
* * *
TJ 엔터 홍보팀이 어느 골동품 애호가의 채근에 스트레스를 받고, 레몬 엔터의 홍보팀이 꺄르륵거리고 있을 때.
VMA 소식은 아이돌 팬들이 모인 곳에도 퍼져 나가고 있었다.
-ㅁㅊ
-대박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우리애들 단독무대선다ㅠㅠㅜㅜㅠ
-ㅁㅊ 이거 진짜야???
-오피셜임. vma 공식 트위터 계정에도 떴드라
-신곡 벌써부터 설레ㅜㅜㅜ
수플레들에게는 하루 종일 만세를 부르고 싶은 소식이었다.
투어 일정 때문에 올해는 더 이상 신곡이 없을 거라고 여겼던 차였다.
‘신곡이다!’
그것도 미국 메이저 시상식에서 신곡 무대를 한다는 소식에 가슴이 뛰다 못해 터질 것 같았다.
물론, 어그로들도 적지 않았다.
-또 미국???
-작작 가
-빌보드 다녀온 뒤로 직원들이고 가수들이고 마음이 뽕밭에 가 있는 게 좀 보임ㅋㅋㅋ
-바로 영어 곡 내는 거 넘 없어 보여ㅋ
-슨스에서도 보면 얘네 팬덤 다른 가수들 일본어곡 내는 거 보고 비웃던데 부메랑 쳐맞겠네~
-니네 가수는 바로 영어 곡~~
-얼마 전까지 트릭스터 영어 곡 낸다고 쳐패더니 뉴블랙이 영어 곡낸다니까 조용하네ㅋㅋㅋㅋㅋㅋ 팬덤 많은 게 최고지 뭐
-222 트릭스터 팬들 왜 욕먹었냐ㅋㅋㅋㅋㅋㅋ
-맨날 따뜻하고 작은 팬덤 ㅇㅈㄹ하는데 보면 옛날에 자기들 당한 거보다 더 심함
-내로남불 역겹다
수플레들 입장에선 황당한 일이었다.
‘우리가 언제 욕했어?’
도리어 자기들이 욕해 놓고서는 뒤집어씌우는 모습에 어처구니없는 기분을 느꼈다.
수플레들은 오히려 트릭스터 소식 때 최대한 조용히 있었다.
‘우리도 낼 수도 있으니까.’
평소 영어 곡도 내려면 낼 수 있다는 태도를 보였던 뉴블랙이기에 수플레들은 오히려 조용히 있던 터였다.
자칫하면 부메랑 맞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그런데 이런 식으로 오가는 정치질을 볼 때마다 황당할 뿐이었다.
‘뭐 어쩌라고.’
하지만 별다른 타격은 없었다.
오늘 날 잡았다는 듯이 부들부들대는 안티들의 가면 너머로 표정들이 보이기 때문이었다.
귓가로 자동 번역되어 흘러들어오는 느낌.
-시발. 부럽다. 존나 부럽다!
-나쁜 새끼들아! 좋은 거 있으면 나눠 먹어야지! 지들만 혼자 다 처먹네.
-왜 존나 잘나가? 개빡치네.
이미 필터링해서 듣는 데 익숙해진 수플레들은 신경을 끄고 긍정적인 태도로 돌아갔다.
‘긍정적으로 밀어 버린다.’
창궐한 안티들에 맞서 비폭력주의로 대하기로 결정했다.
곧이어 수플레들이 가져오는 뉴블랙에 대한 기사들이나 ‘점심 뭐 먹을까’ 같은 글들을 작성했다.
띠릭.
작성 버튼을 누르면서 삽시간에 휩쓸려 사라지는 안티들.
마치 변기 안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안티들에게 손을 흔들어 주고는 시선을 돌렸다.
-신곡 이번에 뭐 나올까ㅠㅠㅠㅠ 기대된다
-메트로니까 서울메트로.. 지하철.. 지하철아님???
-ㅋㅋㅋㅋㅋㅋㅋㅋ그건 넘 의식의 흐름이자나
-메트로폴리탄 아닌가요
-상상도 안간다ㅋㅋㅋ 항상 예측한 거랑 넘 다름
-애들한텐 미안한데 이번엔 안무 왠지 좀 빡센? 그런 거 보고 싶음ㅎㅎㅎ
-믿고듣는 메이드인 우주
-메이드 우주도 보고 싶다
-(캡틴 플라워 사진.jpg) 그런 당신에게 캡틴 플라워를 드리겠습니다.
-볼 때마다 느끼는데 저게 바로 여성성과 남성성을 동시에 보여 주는 사진 아닐까
-글쎄.. 그냥 보고 싶지 않은 사진 같은디
몽실거리며 의식의 흐름대로 대화를 나누는 수플레들.
바닥에 떨어진 호빵을 발견한 것처럼 먼지를 털고 후후 불면서 ‘METRO’의 떡밥을 즐기고 있을 때였다.
하늘에서 무언가 똑 떨어졌다.
“음?”
미튜브에 신규 컨텐츠가 업로드 되었다는 소식에 수플레들이 헐레벌떡 달려가기 시작했다.
버벅거리는 미튜브.
-[친절한 우주선] Ep.1 리혁이는 우주를 좋아해
우주선을 탄 미니미 우주 아래로 <친절한 우주선>이라 적힌 로고.
리혁이는 우주를 좋아한다는 제목에 홀린 듯이 클릭을 하자, 곧바로 리혁이 나타났다.
리혁 : 난 당신이 싫어요.
우주 : 전 좋아해요.
리혁 :
우주 : 저 자신을.
시작부터 투닥대는 메인과 리드 보컬. 이른바 보컬즈의 케미를 보여 주고 있는 장면에 흐뭇한 미소가 흘러나온다.
‘드라마 OST 녹음하는구나.’
떡밥이 적었던 시기에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보고서를 제출하는 듯한 느낌의 컨텐츠였다.
하악 숨을 내쉬며 수플레들이 영상을 감상했다.
그러면서 중간중간 검색도 해 주고.
‘나의 곰과 호랑이? 10월 초에 나오는 드라마네.’
곧이어 올라가는 실시간 검색어 ‘나의 곰과 호랑이.’
홍보 대행사가 수십억 원을 들여서 홍보해야 할 것이 컨텐츠 하나로 끝나는 상황이었다.
아주 약간만 나왔지만 벌써부터 OST 퀄리티가 심상치 않다.
수플레들과 짭플레들, 호일이 한데 뒤섞여 그런 컨텐츠를 감상했다.
‘3일에 한 편씩 업로드. 오케이.’
동생들의 개인 스케줄을 하나씩 찾아가는 에피소드.
[친절한 우주선]의 다음 에피소드 ‘비주 편’을 기대하며 뒤에 살짝 붙은 예고를 바라볼 때였다.
“군산에 갔나?”
그러고 보니 얼마 전에 우주와 비주를 군산에서 목격했다는 목격담이 쏟아졌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란 프로그램이었던가.
‘곧 나오겠네.’
비하인드가 올라온다고 하는 것을 보니 본방송도 곧 다가올 듯했다.
아니나 다를까.
-얘들아! ㅍㅂㅅ에서 예고 올린 거 봐봐!!!!
공영방송의 공식 SNS 계정에 올라온 예고편과 미튜브 링크.
PBS의 미튜브 계정인 ‘팥빙수 테레비’에서 뉴블랙과 관련된 클립을 하나 올렸다.
-[예고] 네? ‘금식후’에 춤신춤왕이 떴다고요?! “우비즈”의 강렬한 첫 등장!! (직캠 Ver.)
마치 예능 예고와 같은 분위기였다.
썸네일부터가 범상치 않다.
‘……이건 뭐지?’
보라색 우비와 노란색 우비를 뒤집어쓴 우주와 비주가 선글라스를 낀 채 훗 하고 웃고 있었다.
하찮아 보이는 비주얼.
도무지 영문을 알 수 없는 상황이기에 얼른 클릭을 했다.
그리고.
“허어어! 귀여워!”
수플레들이 쿠션이나 베개를 주먹으로 쿠쾅쾅 때리면서 화면 속에서 느껴지는 귀여움을 온몸으로 표현했다.
I’m singing in the rain~~♬
유쾌한 분위기의 음악에 맞춰 피겨스케이팅을 하듯이 미끄러져 들어오는 댄서 듀오.
수플레들이 잇몸 만개한 미소를 지을 때였다.
EDM 분위기의 전주가 흘러나오면서 두 우비소년이 나긋하게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오.’
선글라스를 쓴 채 기가 막힌 댄스 합을 보여 주는 2인조.
비주가 손을 위로 뻗으면 우주가 아래로 손을 뻗고, 그런 식으로 비대칭적인 데칼코마니를 보여 주더니.
“오오오.”
본격적으로 스냅이 강한 힙합 댄스를 추면서 무대가 시작됐다.
불과 30초의 짧은 무대.
하지만 뉴블랙의 메인 댄서와 리드댄서가 기가 막힌 합을 보여 주며 잔상을 남기고 있었다. 색색의 우비와 선글라스라는 웃긴 복장임에도 그 안에서 뿜어져 나오는 아우라가 느껴진다.
춤선 자체가 확실히 보통이 아니라는 느낌.
멍하니 입을 벌리며 바라보던 수플레들이 춤이 끝나 갈 때쯤 다시 커서를 중간으로 옮겨 갔다.
몇 번 정도 우비즈의 춤을 보던 팬들이 댓글창으로 내려갔다.
‘나만 그런 게 아니었구나.’
댓글창이 복작거리고 있었다.
-직캠 생각한 담당자 누구야 칭찬해
-쩐다..
-존멋ㅋㅋㅋㅋㅋㅋㅋ
-이 좋은 걸 모르고 있었구나
-방송사는 눈치가 있으면 지금부터 우주 ver 비주 ver 그리고 full cam을 올리도록 하여라. 그리하면 수플레들의 무수한 박수를 받게 될 것
-왜일캐 잘해ㅋㅋㅋㅋㅋ
-눈빛만 봐도 서로 춤이 통하는 거 같음
-비주 춤선 대박이다.. 안 잊혀짐ㅋㅋㅋㅋㅋㅋㅋㅋ
-머글입니다 유엔 무대 소취합니다
-그거 유닛이에요
-존나 힙한 텔레토비 같다
평상시 무대를 보면서 ‘어, 댄서들 조합하면 재미있겠다’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이런 간단한 무대에서도 우주와 비주의 조합이 빛을 발휘하고 있었다.
누군가 댓글에서 말한 대로 눈빛만 봐도 통하는 사이 같다고 할까.
길게 연습을 한 것이 아님에도 척척 손발이 맞는 맏형과 둘째를 보니 흐뭇해진다.
‘아. 저 복장이 진짜 아쉽네.’
저절로 머릿속에 무대 의상을 그려 넣고, 2인조의 무대를 상상하던 수플레들이 헤벌쭉한 미소를 지을 때였다.
화면이 꺼지고 히죽히죽 웃는 얼굴이 반사됐다.
“아씨. 극혐.”
자기 얼굴을 회피하기 위해 다시 폰 화면을 밝혔을 때.
댓글 하나에 시선이 갔다.
-근데 님들 이거 금강산도 식후경인거 아시나요 ㅋㅋㅋㅋ
우주와 비주의 댄스 합에 취해서 깜빡하고 있던 사실이 떠올랐다.
이 영상의 출처.
제정신을 차린 수플레들이 계속 돌려보느라 안 보고 있었던 영상의 마무리를 감상했다.
-와우! 와아아!
제작진과 중견배우 김정남이 손뼉을 치며 감탄하고, ‘안녕하세요 우비즈입니다!’ 하는 장면을 끝으로.
몹시 구수한 한국적인 폰트가 떠올랐다.
[금강산도 식후경]
[본방송 시청 부탁드립니다!]
“아…….”
이런 프로그램이었지.
교양 프로그램의 직캠을 바라보던 수플레들이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볼 것 리스트에 <금강산도 식후경>을 추가했다.
‘교양 쪽이니까 재방송으로 보는 사람들도 좀 있겠지?’
나라도 본방을 봐야지 하는 무수한 손길.
그것이 바로 PBS <금강산도 식후경>의 시청률이 평소보다 몇 배가 나오게 된 이유였다.
* * *
“와아아아아!”
토요일 저녁 8시.
식사 시간을 맞이하여 PBS 채널을 틀어 놓은 우리가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고기를 잡으러 바다로 갈까나~”
“고기!”
단백질 가득한 소고기 식단을 먹으며 행복한 웃음을 터뜨렸다.
지호가 꺄르르 웃었다.
“아, 저 미국 너무 좋아요.”
“나도.”
“사랑해요! 미국!”
이번에는 미국 시장을 노린 곡이니만큼 에서는 비쩍 마른 몸을 유지할 필요가 없었다.
어느 정도의 체격이 있으면 더 좋은 상황.
그랬기에 라면처럼 나트륨 가득한 음식만 자제할 뿐 너무 빡센 다이어트는 할 필요가 없었다.
인간의 행복은 탄수화물과 고기에서 나온다는 말이 참으로 옳다.
“사랑해요!”
“사랑해!”
마음속으로 외쳤는지 리혁이의 뺨이 불그스레해지는 동안, 나와 비주가 출연한 <금강산도 식후경>이 본방을 시작하고 있었다.
메인 출연자 김정남 선생님 앞에서 우비즈로 춤추는 우리 모습.
“와…….”
젓가락으로 고기를 집다 말던 막내가 말했다.
“형들 진짜 춤 완전 잘 추네요. 저건 인정.”
“너도 같이 유닛 할래?”
비주의 말에 막내가 목이 메었는지 생수를 들이켜고는 고개를 저었다.
“…절대 안 해요. 저기 둘 사이에 끼면 고통 받을 거 뻔히 보이는데… 저는 연기나 할래요.”
“나도 안 해요.”
“음? 형한테는 아무도 안 물어본 것 같은데요. 아아악!”
투닥거리는 녀석들을 보다가 다시 TV로 시선을 돌렸다.
예고편으로 나온 바 있는 우비즈 댄스가 지나갔다. 집중해서 모니터링을 하는 비주에게 말했다.
“그냥 이건 편하게 보자. 교양 프로그램이라 예능적으로 의식할 부분은 없다고 생각해.”
“아, 그렇긴 하네요.”
“방송 끝나고 특별히 무슨 일이 생길 것도 아니고.”
그러는 한편, TV에서는 본격적인 군산 먹방이 시작되었다.
우선은 아침의 해물 칼국수.
TV 화면 속에서 나와 비주가 칼국수 국물을 들이켜면서 ‘흐어어’ 하고, 입속으로 면을 호로록 빨아들인다.
“…….”
꿀꺽.
중현이의 목울대 소리가 TV 소리를 압도했다.
[이야. 너희들 참 맛나게 먹는다. 이거 TV 보고 있는 사람들은 토요일 저녁에 난리 나게 생겼네.]
[저희 잘 먹죠?]
[그거 나가도 되겠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먹…보?]
[먹방이요. 선생님.]
참 잘 먹는다는 칭찬과 함께 제작진이 공을 들인 편집이 지나갔다.
먹고, 또 먹고.
그런 자막들이 나오면서 나와 비주가 해물 칼국수를 바닥까지 싹싹 긁어먹어 바지락 껍질 등만 남긴 모습.
근데… 왜 내가 봐도 너무 맛있어 보이는지 모르겠다.
마치 밤 11시에 라면 나오는 TV 장면을 본 듯한 느낌.
“……형.”
중현이가 말했다.
“우리 해물 칼국수 쪼금만 시켜 먹을까요?”
“그, 그럴까?”
“국물은 안 먹고 면만 조금 먹으면 되잖아요. 국물도 딱 한 숟갈만 먹고.”
“맞아여. 내일 굶으면 돼여!”
동생들의 유혹에 조심스럽게 배달 어플을 켜 보았다.
“음?”
그런데 배달 어플에서 창이 떴다.
[연결 상태가 일시적으로 불안정합니다. 다시 시도해 주십시오.]
다시금 재접속을 했지만 똑같았다.
“다른 배달 어플 켜 봐봐. 거긴 괜찮아?”
“아뇨. 여기도.”
“……거기도 안 돼?”
배달 어플들이 뭔가 버버벅하는 상황에서 짧게 한 번 접속을 성공했지만 그마저도 금세 먹통이었다.
우연하게 발견한 것은 배달 어플의 실시간 검색어 랭킹뿐.
[해물 칼국수]
[군산 칼국수]
다시금 튕기는 어플.
TV와 배달 어플을 번갈아 보던 우리가 멍한 눈으로 허공을 바라보았다.
“…….”
“…….”
먹통이 된 배달 앱.
나중에 가서야 알게 되었지만, 네티즌들이 ‘뉴블랙의 난’이라는 별명을 붙인 사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