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696화
뉴블랙 TV 「METRO 비하인드 컷 Ep.04」
어마어마한 크기의 세트장.
백여 명이 넘는 미국 스탭들이 돌아다니는 곳에서 뉴블랙 멤버들이 촬영장 안내를 듣고 있다.
스탭 : 여기는 LA 메트로 레드라인에 있는 할리우드 역 승강장을 재현해 놓은 곳이에요.
뉴블랙 : 우와아아.
스탭 : 여기 그린 스크린에 CG를 합성하면 감쪽 같은 지하철역이 탄생하죠.
영상 속 지하철 세트는 ‘대체 얼마를 들인 걸까’ 하는 감탄이 나오는 퀄리티였다.
꿀꺽.
단체로 침을 삼키는 뉴블랙 멤버들.
리더가 졸개들을 바라보았다.
우주 : 얘들아.
졸개들 : 네, 형.
우주 : 마시자.
졸개들 : 네.
페트병 뚜껑을 따고 음료수를 꿀꺽꿀꺽 마시는 멤버들.
누가 봐도 PPL 같아 웃음을 자아내고 있었다.
그걸 시작으로 미국의 레코드사가 지어 놓은 세트장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스탭 : 여기는 뉴욕 지하철이고요. 저쪽에 B 섹션으로 넘어가면 시카고 지하철을 재현해 놓았어요. 현장 출장비 등을 고려했을 때, 이게 가장 경제적인 선택지였거든요.
뉴블랙 : …….
미국에서 유명한 지하철역이란 역은 다 만들어 놓은 분위기에 멤버들이 서로를 바라보았다.
졸개들 : 형.
우주 : 으, 응?
졸개들의 표정이 사뭇 진지했다.
졸개들 : 마실까요?
우주 : 이건 마셔야지.
다시금 페트병 뚜껑을 따고 음료수를 꼴깍꼴깍 들이켜는 뉴블랙 멤버들의 모습에 관계자들이 박수를 치며 좋아했다.
음료수 회사가 보았다면 박수를 칠 만한 PPL이었다.
* * *
아침부터 저녁까지.
꼬박 하루 동안 촬영하면서 우리는 미국 연예계가 얼마나 돈이 넘쳐흐르는 곳인지 알게 되었다.
“형들, 형들. 제가 아까 저기 스탭 분한테 들었는데요. 미국은 현장 촬영이 돈 진짜 많이 들어서 어지간하면 CG 많이 쓴대요.”
막내가 눈을 크게 뜨고 말했다.
“그래서 미드에서 나오는 뉴욕 배경이나 그런 거 다 합성이라던데요.”
“……그게?”
“우리처럼 이렇게 그린 스크린에서 행인들 돌아다니게 촬영하고, 그다음에 뉴욕이나 막 다른 도시 배경 합성하는 거래요. 씬 하나 찍자고 뉴욕까지 가는 건 돈이 너무 많이 든다고.”
“…….”
손익 비용에 대한 관점 자체가 우리와는 좀 다른 나라였다.
하기사 우리나라도 요즘에 드라마나 영화에서 CG를 엄청 쓰고 있는 편이니, 현대 문화 산업의 원조는 얼마나 더할까 싶었다.
우리가 찍은 영상에서도 허한 부분은 대부분 다 CG로 채운다던데. 뭔가 이상해서 ‘여기는…’ 이라고 하면 감독님이 ‘CG로 메울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웃었다.
정말 감쪽같을 거라고.
그렇게 LA 외곽에 있는 거대 스튜디오에서 머문 채 LA 지하철, 시카고 지하철, 뉴욕 지하철 세트 촬영을 마쳤다.
“으어어어…….”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
좌석에 몸을 뉘이고 눈을 감았다. 평소처럼 사생들이 부르는 목소리도 금세 멀어지는 느낌이다.
“비주야.”
“네, 형…….”
몽롱하니 떠오르는 것이 하나 있다.
“이렇게 누우니까 떠오른 건데 말이야. 너 저번에 군산에서 돌아올 때 뭐라고 중요한 얘기 하지 않았어?”
“…….”
“비주야?”
갑자기 담요 펄럭이는 소리가 뺨을 스쳤다.
눈을 슬쩍 뜨고 옆자리를 바라보았다. 담요를 얼굴까지 뒤덮고 있어서 얼굴이 안 보인다.
“자니?”
콧구멍으로 보이는 위치가 숨 쉴 때마다 벌렁벌렁거린다.
“…….”
뭔가 숨기려는 기색에 눈을 가늘게 뜨고는 창가의 구름을 바라보았다.
아. 뭐였지. 근데.
성층권에 둥둥 떠다니는 구름처럼 손만 뻗으면 잡힐 듯한데 떠오르지는 않고 있었다.
“중요한 건 아니겠지.”
“…….”
벌렁거리던 담요가 새근새근 잠잠해졌다.
“중요한 건가?”
“…….”
담요의 코 부분이 펄럭펄럭였다.
반응이 재미있어서 계속 놀릴까 하다가 이내 관뒀다. 담요를 슥 밀어 내리자 턱 끝을 당긴 채 숨을 쉬고 있던 비주와 눈이 마주쳤다.
“…….”
“안 물어볼게. 뭐 중요한 것도 아닌 것 같으니까.”
“……저, 저는 아무 말도 안 했어요. 형.”
금세 땀방울이 성글성글 맺힌 동생에게 급한 대로 리혁이의 손수건을 건네주고는 창밖을 바라보았다.
“뭐야. 내 손수건 어디 갔어?”
“없어졌어요?”
비주가 쓴 손수건을 앞좌석의 지호 자리에 슥 놓았다.
“야! 너 내 걸로 뭐 닦았지?”
“뭔 소리예요. 제가 형 걸 왜… 어? 뭐야? 내가 썼나?!”
나중에 손수건 하나 사 줘야지. 꽃 들어간 걸로.
어쨌거나 미국에서의 일정도 마쳤고.
이제 이번 주에 있는 필리핀 마닐라와 말레이시아의 쿠알라룸푸르에서 콘서트를 마치면 동남아 투어도 끝이 난다.
이제 콘서트 투어도 거의 막바지라고 할까.
다음 달에 오사카 돔을 필두로 일본 콘서트를 마치고, 10월에 상암 월드컵 경기장에서 서울 파이널 콘서트를 마치면 진짜 끝이다. 장장 85만 명 가까이 동원한 콘서트도 막을 내리는 것이다.
“많이 컸다. 진짜.”
300명 앞에서 덜덜 떨었던 쇼케이스에서 오늘까지, 진짜 3년 만에 커도 어마어마하게 커 버린 것 같다.
솔직히 국내 아이돌 중에서는 이제 적수가 없었다.
객관적으로 보아도 2위에서 엎치락뒤치락하는 스트릿 보이즈와 틴스피릿 둘을 합쳐도 우리와 거의 몇 배 넘게 차이가 나는 상황이었다.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 팬덤을 위협할 만한 세력도 없고.
이제는 도전하는 위치에서 도전을 받는 위치에 올라왔다.
누구나 염원하는 1위.
물론 모든 순간이 좋고 편하기만 한 건 아니다. 누구나 나름의 고충이 있다고 하듯이 1위로 올라오게 되면 고민이 생긴다.
-이걸 어떻게 유지하지?
망고 차트 어워즈나 KMA에서 ‘올해의 가수상’ 같은 대상을 타자마자 우리의 머릿속을 스친 생각이었다.
우리만 그런 게 아니라 다른 탑 가수들 모두 비슷한 고민일 것이다.
그래미 어워즈의 최고상인 앨범상을 수상하면 기분이 어떠냐는 물음에 헤일리도 이런 대답을 해 줬으니까.
-그날 하루는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았지. 존나 행복하고. 그런데 다음 날 되니까 시발, 골치가 아픈 거야. 이제 뭘 해야 하지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
올라와야 할 곳을 끝까지 오르고 나면 유지하는 것 빼고는 답이 없다.
하지만 성취지향의 끝판왕이 모인 연예계에서 위치를 유지하는 것에만 크게 흥미를 느낄 사람은 없을 것이다. 대부분 여기서 떨어지면 안 된다는 공포심 때문에 절박하게 일하는 거지.
그 때문에 어느 분야든 정상에 오르고 나면 사람들은 새로운 도전 분야를 찾기 위해 이런저런 곳으로 시선을 돌린다.
아카데미상을 수상한 배우가 환경 문제에 목소리를 내고, 그래미 상을 수상한 가수가 정치적인 목소리를 내거나 봉사 활동에 뛰어드는 것도 이런 이유들 때문이 아닐까.
우리도 마찬가지였다.
국내에서 현재 위치를 유지하는 것 외에도 새로운 도전이 필요했다.
그런 이유로 동생들과 이런 주제에 관해 자주 가족회의를 하곤 했다.
-으음, 새로운 음악 장르를 해 보는 건 어때요? 지금까지 안 해 본 장르를 매번 새롭게 도전하는 걸로.
-이제 우리한테 영향력이 생겼으니까 이걸 이용하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지금 없어진 가요제 같은 걸 추진해 본다든가. 아니면 오디션의 규모를 조금 키워 본다든가.
-우리 뮤지컬 드라마 찍어 봐요.
-뭐. 평상시에 안 한 메인이나 리드 보컬… 콜라보라든가. 아 턱에다 오구구 하지 마요. 죽일 거야!
주로 음악적으로 안 해 본 분야에 도전하자는 것들이었다.
그 외에도 예능이나 드라마 등을 비롯해 새로운 도전거리들을 찾았는데, 지금 그 리스트만 수십 장이었다.
그만큼 새로운 도전에 대해 의욕적인 우리였다.
그런 까닭일까.
“비주야.”
“네?”
“오늘 좀 재미있지 않았어?”
무슨 의미냐는 듯 둥그런 눈으로 바라보는 비주에게 웃으며 말했다.
“다른 나라에서 안무 영상 찍고 이런 거 말이야. 새로운 도전거리가 생겼다는 느낌도 들고.”
“아.”
“뭔가 재미있었던 거 같아.”
백두산 정상을 등반한 다음에 이번에는 히말라야 정상 등반을 시작한 느낌이라고 할까.
비주도 생긋 웃으며 말했다.
“저도요.”
둘이 마주 보고는 씩 웃었다.
명목상 미국 진출을 위한 영어 곡이긴 하지만, 어쩌면 우리에게 필요했던 새로운 도전거리 중 하나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기왕이면 엄청 잘 됐으면 좋겠고.
“이제 슬슬 준비해야지.”
그런고로 이번 METRO의 프로모션은 꽤 독특하고 신선하게 진행될 예정이었다.
“후후후후후…….”
“우후후후.”
나와 비주가 흐뭇한 미소를 흘리자, 근처 자리에 있던 졸개들도 영문을 모른 채 웃음에 동참했다.
“후후후후후후후.”
“우후후후훗…….”
그런데 왜 대표님도 같이 웃고 계시는 거지…?
* * *
어느 우당탕탕 5인조가 한국으로 오고 있을 무렵.
“끄으으으응.”
TJ 엔터 사옥 최상층에서는 앓는 소리가 나오고 있었다.
바로 도자기를 쓰다듬으며 태블릿 PC로 뉴스를 감상하고 있는 어느 나이 든 남자였다.
“으으으으으음.”
박태준 회장이 미간을 찌푸렸다.
‘어떻게 트릭스터 뉴스가 하나도 없지?’
당장 이번 주 금요일에 트릭스터가 영어 곡을 발매하기로 되어 있다.
그런데 어찌 된 것이 포털 메인에 걸려 있는 기사는 전부 다 뉴블랙에 대한 것뿐이었다.
-K넷, 뉴블랙 신곡 비하인드 담긴 “선우주의 휴식일기” 공개한다
-레몬 엔터, ‘리얼리티에 김덕춘 작곡가도 출연’ 예고.. 네티즌 “김덕춘=우주선 설 증명되나”
-스칼렛, ‘Not Fine’ 차트 1위 독주 계속.. SNS서 “김덕춘 작곡가님 덕분”
당연한 일이긴 했다.
현재 트릭스터는 라이징이라 불릴 만한 그룹이고, 뉴블랙은 명실상부한 국내 원탑 아이돌이다.
화제성 면에서는 비교가 될 수 없었다.
“허허허.”
하지만 돈은 TJ 엔터가 더 많았다.
그랬기에 그동안 기자들 밥 먹이고 술 사 주고, 기자 관리하는 데만 어마어마한 돈을 들였다.
‘그러면 돈값은 해야지…….’
TJ 엔터가 밥 사 줄 때만 해도 충성충성~ 하던 이들이 뉴블랙 소식을 줄기차게 보도하고 있었다.
트릭스터에 관한 소식은 그야말로 받은 만큼만 보도하고.
“으음.”
박태준 회장이 불편한 침음성을 흘리며 탁자를 두드렸다.
‘설마 내가 틀린 건가.’
태준 레코드라는 이름의 회사를 세웠을 때부터 한 번도 하지 않았던 자기 의심이 요즘 들어 샘솟고 있다.
아무리 자기 확신으로 가득한 그라도 이쯤 되면 쎄한 느낌이 들지 않을 수가 없었다.
기획팀은 아 괜찮슴다~ 하면서 걱정하지 말라고는 하는데.
“……돌아가는 판이 영 찜찜한데.”
아무리 행복회로를 돌려도 희망적인 각이 보이지 않았다.
뉴블랙의 파이를 잘하면 빼먹을 수도 있다는 막연한 생각과 실제 현실은 엄연히 다르다고 할까.
트릭스터의 영어 곡 프로젝트의 공개를 앞두고, 내부적으로 동요하는 분위기가 이곳 꼭대기까지 느껴지고 있었다.
‘어쩌면…….’
어쩌면 너무 안일하게 준비한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잠시 스쳤다.
그동안 TJ 엔터는 박태준 회장의 번뜩이는 기획력에 힘입어 일을 진행했다.
철저하고 치밀한 전략보다는 최고 프로듀서인 회장이 ‘이게 잘 될 것 같은데’ 하고 점쟁이 문어처럼 찍어 주는 구조.
그리고 지금까지의 모든 기획은 실패 없이 성공했다.
“으으으음…….”
막상 영어 곡 공개를 앞두고 불길한 예감이 스쳐 지나가면서 박태준 회장이 관자놀이를 주물렀다.
하지만 그라고 무슨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한 이사.”
“예, 회장님.”
“거… 미국 일은 말이야. 어떻게 진행이 되고 있나? 요즘 들어 소식이 뜸한 것 같아서 말이야.”
미국 프로모션을 위해 접촉 중인 방송국들에 대해 그가 묻자, 한 이사가 금테안경을 고쳐 쓰며 말했다.
“아직 답신이 없습니다.”
“아직도?”
“예, 재촉은 하고 있습니다만 내부적으로 회의 중이라는 답변만 오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뉴블랙이 곧 컴백을 하게 되는데, K팝 아이돌을 연속으로 토크쇼 무대에 세우는 게 고민이라고.”
“미국 놈들도 하여간…….”
한국 방송사면 휘두르기 쉽다.
그간 방송국 피디나 국장들과 인맥을 다져온 기획사의 힘을…….
-끄앙. HBS 죽는당.
-저거 봐. HBS가 뉴블랙한테 발길질을 하다가 자기가 넘어졌어!
-와, 뉴블랙이 HBS를 죽였다……!
잠시 멈칫한 박태준 회장이 입맛을 다셨다.
‘요즘은 국내 방송사도 어려울지도…….’
한영준 이사가 말을 이었다.
“지속적으로 컨택 중입니다만… 성사되지 않을 가능성도 염두에 두셔야 할 것 같습니다.”
“사실상 파투났다고 봐야겠구만.”
“……예.”
음반 발매가 이 정도로 가깝게 다가온 시점에서는 이미 어느 쇼에 출연하게 될 것인지까지 확정이 되었어야 정상이다.
“레몬 엔터의 박규호 대표가 미국으로 간 이후부터 방송사들 반응이 조금…….”
“안 봐도 훤하지.”
사람들은 허허 웃는 박규호 대표를 보며 실권 없이 돈만 지출하는 사장으로 알고 있지만.
박규호 대표는 문어 같은 인물이었다.
세상 사람들은 문어가 얼마나 영리하고 위험한 동물인지 모른다.
“끄으으응.”
미국 판로가 막힌 상황에 박태준 회장은 점점 퇴로가 막혀 가는 기분을 느꼈다.
결국 고심 끝에 그가 택한 방법은 하나 남은 선택지였다.
“홍보비용을 두 배로 늘리도록 해.”
“예, 회장님.”
“홍보… 지금 상황에서는 홍보밖에 답이 없으니까.”
과할 정도로 홍보비를 쏟아붓기.
영화가 망했을 때, 제작사나 배급사가 사용하는 방법을 택한 박태준 회장이 불안감을 억누르며 고개를 저었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혹시 모르지 않은가.
홍보비를 너무 많이 뿌려서 어쩌면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트릭스터의 노래가 크게 흥하게 될지.
‘아직 살릴 수 있다.’
어떻게든 홍보비를 뿌려서 트릭스터에게 관심을 가게 만들면 된다는 생각이 그의 머릿속에 자리 잡았다.
나름대로 그럴싸한 계획이었다.
아직까지는.
* * *
다음 날. 오전 10시.
-뉴블랙, 오늘부터 신곡 프로모션 시작한다.. “많은 기대 부탁”
핸드폰을 바라보던 대학생이 호오 하고 관심을 보였다.
‘이번에도 뭐 하나?’
저번에 도깨비 발매할 때, 보물찾기 열풍이 불었던 것이 떠오른다.
혹시 일반인도 참여할 만한 무언가가 있나 하며 관심 있게 지켜보는 대학생이었다.
바로 그때, 지하철이 도착한다는 알림음이 울려 퍼지면서 대학생이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열차가 지하철역으로 접근하고 있었다.
그녀의 목적지는 학교가 있는 홍대입구역으로 여기서 한 정거장 가면 나오는 곳이었다.
[지금…….]
평소처럼 안내 방송을 들으며 하품을 하던 대학생이 열차를 기다렸다.
그런데.
“어라……?”
순간적으로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여기는 합정역.
승하차 인원이 적은 역이 아니었다.
한산한 시간대라고는 하나 그래도 내리는 사람이 좀 있어야 할 텐데, 내리는 사람들이 평소보다 훨씬 더 적었다.
그리고.
“……?”
열차 안에 사람들이 평소보다 많았다.
앉을 자리는 있지만… 이 시간대에 이 정도로 붐비나? 하는 느낌.
게다가 사람들도 뭔가 이상했다.
‘뭐 있나?’
마치 뭔가 녹음하거나 영상을 찍듯이 허공을 향해 단체로 핸드폰을 들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봐도 허공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
대학생이 침을 꿀꺽 삼키며 전공서적을 끌어안았다.
이상한 분위기 때문이었다.
사람들이 단체로 허허허 웃고 있고, ‘언제 또 나오지?’ 하면서 천장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녀가 옆자리에 앉은 인상 좋은 아주머니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저기…….”
“네?”
“저기 지금 지하철에서 뭐… 하나요?”
“아, 지금 탔어요? 그럼 모를 수도 있겠네. 안내방송해요. 우주가.”
“네……?”
우주?
그 우주?
눈을 깜빡이던 그녀가 다시 물었다.
“우주선할 때 우주요?”
“네, 그 우주.”
그러더니 조금 있으면 목소리가 나오니 잠시 기다려 보라는 말을 한다.
이윽고 사람들 사이에서 ‘나온다, 나온다’ 하는 웅성거림이 들리더니 우주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안녕하세요.]
목소리가 어찌나 좋은지 순간적으로 ‘헉’ 하는 감탄사가 나올 뻔했다.
대학생도 친구들한테 톡 보내는 것을 멈추고 핸드폰을 들었다.
[저는 오늘 여러분의 안내를 맡게 된 뉴블랙 우주입니다. 비록 누추한 목소리지만 승객 여러분의 편안한 이용을 위해 최선을 다하도록 하겠습니다~!]
승객들이 박수를 쳤다.
그 소리가 옆 칸에서도 들려온다.
마찬가지로 박수를 치던 대학생이 ‘미친! 지금 뉴블랙이 안내방송해줌!!!!!!’ 하는 톡을 친구들에게 보낼 때였다.
[다음 역이 곧 다가오네요.]
우주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다음 역은 홍대입구, 홍대입구역입니다. 내리실 문은 왼쪽입니다. 인천국제공항을…….]
차분하게 환승 안내를 해 주는 우주.
전문적인 성우 교육을 받은 것처럼 잘해 내는 모습에 노약자석에 앉은 노인들이 ‘옳지!’ 하면서 껄껄 웃을 때였다.
역이 가까이 다가오면서 우주가 잡담을 했다.
[홍대입구, 말 그대로 홍익대학교의 입구죠. 하지만 홍대의 입구는 여기서 한참은 더 가야 합니다. 대학교 입구인 줄 알고 내린 사람에게 가파른 언덕이 빵긋 웃어 주는 역입니다.]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방학 중일 텐데, 도서관이나 학교에 가는 대학생 분들이 계신다면 화이팅이에요!]
우주의 응원 목소리에 대학생이 어머 하고 웃을 때.
아련한 목소리가 이어졌다.
[멋진 대학생활 보내시길 바랍니다. 아시다시피 저는 대학을 가지 못했거든요. 수능을 보지 못해서…….]
“콜록!”
“켁!”
“아이고…….”
현장 사람들을 들었다 놨다 하는 안내방송에 여기저기서 기침과 웃음소리가 잔뜩 터져 나왔다.
유쾌한 분위기.
곧이어 목적지인 홍대입구역이 다가왔지만, 엉덩이를 들썩이려던 대학생은 다시금 자리에 앉았다.
그러면서 왜 사람들이 안 내리는지 이해를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학교는 이따 가면 되지만 뉴블랙은 한 번뿐이다.’
여기가 아니라면 어디서 뉴블랙의 목소리를 또 실감나게 들을 수 있겠는가.
홍대입구역에서 얼떨떨한 얼굴로 탑승하는 뉴비들을 보며 대학생이 미소를 지었다.
사람들 사이에서 피어나는 동지애.
‘끝까지 간다.’
한 번 탑승한 자는 내리지 않고.
타지 않은 자는 타고 싶어 하는 지하철.
가장 한산한 시간대에 지하철 대란이 벌어지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