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725화
충격적인 비주얼 쇼크를 보여 준 오프닝을 시작으로 패션쇼는 성공적으로 진행 중이었다.
“흐으음.”
유명 패션 칼럼니스트 로라 매코넬이 주름진 손으로 턱을 쓰다듬었다.
‘꼬마 로빈스가 다시 감을 되찾았군. 작년에 비해 확실히 더 진일보한 패션 세계를 보여 주고 있어.’
재작년에 비해 다소 실망스러웠던 작년 컬렉션을 떠올리면서 그녀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올해는 좀 좋은 평을 써 줘야겠군.’
일반적인 평론가나 칼럼니스트가 이런 시혜하는 시선으로 바라본다면 거만하다는 말을 들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녀는 그래도 되는 위치에 있었다.
패션계의 트렌드와 평가를 좌지우지한다고 알려진 3인방.
그 3인방 중 하나에 속한 사람이 바로 로라 맥코넬이었다.
스무 살 때부터 시작해 패션계에서 구른 경력만 반세기가 넘는 노익장이자, 날카로운 시선으로 리뷰를 기고하는 에디터. 한 달에 그녀의 기사를 보는 패션 피플만 1억 명에 이르는 인물.
다소 앙상한 체구에 얼굴에 베일을 두른 이 노부인이 패션쇼장에 안 보이면 ‘여기 쇼에 문제가 있는 건가?’ 할 만큼 패션계에선 유명한 인물이었다.
“……마음에 드는군. 아주 마음에 들어.”
튀기 쉬운 플로라 패턴을 자연스럽게 변주해서 마치 꽃의 축제에 온 것 같은 패션들을 선보이고 있다.
그리스의 고전적인 미를 재해석한 것도 눈에 띄고.
아시아의 유명 모델들을 기용함으로서 동서 문화가 융합된 헬레니즘 시대에 대한 경의도 보인다.
“흐으음.”
스마트폰을 들어 모델들을 촬영하던 로라 맥코넬이 얼마 안 가 폰을 내려놓았다.
‘계속해서 떠오르는군.’
아직도 오프닝의 충격이 잊히지 않았다.
최근 수십 년 동안 저 정도로 옷과 잘 어우러지는 사람은 처음 봤다.
화관을 쓴 신이 걸어가는 듯했던 광경!
색색의 꽃 아래로 싱그럽게 빛나던 눈동자가 그녀의 가슴에 화인이 되어 찍히는 듯했다. 누군가는 과장이라 할 수도 있겠지만, 로라 맥코넬에겐 오랜만에 느끼는 두근거림이었다.
그녀가 평소 생각하던 아름다움이 눈앞에서 구현된 느낌!
‘다른 의미로 클로징이 기다려지는군.’
평소에 ‘어휴, 허리도 쑤시는데 얼른 보내 주지’ 하던 것과 완전히 다른 태도였다.
보고 싶다.
격하게 그의 패션을 보고 싶다!
‘세기의 패션 아이콘이 될 재목이야.’
솔직히 뉴블랙이 누군지는 잘 모르겠다. 일흔 살이 넘은 입장에서는 요즘 가수들이 다 비슷비슷했으니까.
하지만 패션이란 관점에서 보았을 때 눈앞의 청년은 최고의 패션 아이콘이 될 재능을 지니고 있었다.
깍지 낀 손을 무릎에 올리던 그녀가 시선을 돌렸다.
‘뉴블랙이라…….’
선우주라는 멤버가 유독 특출나게 옷을 잘 입는 편인 것 같았지만 저기 있는 다른 멤버들도 제법 차림새가 괜찮았다.
특히 저 중에서 가장 반듯하게 생긴 미청년의 경우, 패션에 대한 안목도 돋보이는 편이었다.
‘오랜만에 친구한테 한 번 이야기를 해 봐야겠군. 재미있는 친구들이 나타났다고.’
중요한 자선 행사를 개최하는 친구에게 연락을 해 봐야겠다고 생각하는 패션계의 권력자였다.
* * *
차근차근 진행되는 패션쇼.
수많은 볼거리들을 보며 소곤거리던 셀럽들은 패션쇼의 또 다른 요소에도 주목하고 있었다.
‘음악이 좋네.’
패션쇼에서 흘러나오는 뉴블랙의 음악.
우주가 뉴블랙의 타이틀과 수록곡을 런웨이 스타일로 절묘하게 편곡한 버전들이 흘러나왔다.
그 때문에 스트리밍으로 시청하고 있던 한국 사람들과 전 세계 수플레들의 걸음걸이가 이상해졌다.
“음?”
카페에서 쟁반을 돌려주려고 돌아갈 때 왠지 모델처럼 걷고, 지하철에서 내릴 때 혼자 모델에 빙의한 것처럼 걷게 되고.
왠지 모르게 혼자 치명적인 척하게 되는 음악이었다.
-아니 왜일케 편곡 잘했어ㅋㅋㅋㅋㅋ
-선풍기 틀어 놓고 모델처럼 화보 찍는 시늉하다가 동생새끼랑 눈마주침 ㅅㅂ
-ㄹㅇ 패션쇼 브금 같아ㅋㅋㅋㅋㅋ
-하씨 갑자기 아울렛 가서 쇼핑조지고 싶다
-이거 듣고 술마신 우리 아빠 걸음걸이가 모델이 됐어요
-햐 뉴블랙이 띵곡이 이렇게 많다..
세계 최고의 모델들이 뉴블랙의 음악에 맞춰 런웨이를 걷는 모습이 묘하게 비현실적이면서도 신기한 한국인들이었다.
그러는 한편.
영어와 스페인어로 된 댓글이 쉴 새 없이 쏟아지던 미튜브 댓글창이 점점 더 혼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이제 곧 클로징이다.’
클로징에서 과연 어떤 패션을 입고 나올까?
두근거리는 마음을 안은 수플레들이 두 손을 모으고 기다릴 때였다.
-나온다!
-저기 우리의 태양이 나온다! Our SUN!!!
-드디어!
선우주의 실루엣이 보이면서 수플레들이 ‘Yes!’ 하면서 주먹을 쥐고 환호하려고 할 때였다.
벅. 버버벅.
‘아니?’
버버버벅. 버버벅.
‘아니 이럼 안 되지!’
미튜브 특유의 빨간 동그라미가 빙글빙글 돌아가면서 수플레들이 단체로 비명을 질렀다.
그중에서 미술관 앞에 운집한 수천여 명의 팬들!
“캬아아아아아아악!”
허공을 향해 늑대인간처럼 울부짖는 팬들의 모습에 경찰과 경호원들이 두려움에 떨었다.
* * *
수플레들이 비명을 지르고 있을 무렵.
곧이어 다가오는 클로징에 현장에 있는 셀럽들의 시선이 런웨이 끝으로 모였다.
‘나온다.’
‘또 나온다…!’
수많은 사람들이 반복해서 볼 만한 명장면을 만들어 낸 주인공이 나올 시간이었다.
바로 그때.
뉴블랙의 정규 1집 타이틀 가 편곡된 버전으로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강렬한 음악과 함께 장막 뒤편에서 누군가 걸어 나왔다.
“……!”
화관을 쓴 화려한 신 같았던 오프닝 의상과 달리 세련된 올블랙 의상이었다.
금색 수실로 꽃과 화려한 것들이 자수가 놓인 옷.
오프닝 때보다 더 짙어진 메이크업으로 살짝 스모키한 눈매가 무심한 눈으로 허공을 바라본다.
‘잘생겼다!’
‘우리 형이다! 우리 형!’
‘가지고 싶다. 저런 얼굴.’
뉴블랙 멤버들이 저도 모르게 물개 박수를 치며 기뻐했다.
일국의 왕처럼 당당하게 워킹하던 우주가 잠시 멈춰 포즈를 슥 취하고는 몸을 돌려 사라졌다.
오프닝과 마찬가지로 뇌리에 깊게 각인되는 듯한 장면.
스타들이 감탄사를 터뜨렸다.
‘이제 최신 트렌드는 꽃무늬인가. 스타일리스트한테 플로라 패턴 의상들을 모조리 가져오라고 해야겠어.’
‘올해는 르블랑이다.’
‘LA로 돌아가기 전에 비슷한 옷을 좀 몇 개 사 둬야지.’
전 세계의 패션 트렌드를 선도하는 셀럽들.
그들이 곧 뜨게 될 차기 트렌드로 ‘꽃무늬’를 택하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마지막 워크가 끝나고, 강렬한 Empire 속에서 런웨이에 섰던 모든 모델들이 걸어 나왔다.
곳곳에 앉아 있던 이들이 스마트폰을 높이 들어서 그 모습을 촬영했다.
그리고.
안경을 쓰고 다소 예민해 보이는 인상의 수석 디자이너, 지미 로빈스가 장막 너머에서 걸어 나왔다.
곧이어 선우주도 따라 나와 디자이너와 함께 서자, 좀처럼 볼 수 없는 기립박수가 흘러나왔다.
“우와아아…….”
런웨이에서는 무심하고 담담한 표정만 짓던 최고의 미남이 활짝 웃으니 그야말로 극락이었다.
서로의 등에 손을 올린 채 관객들에게 손을 흔드는 디자이너와 그의 뮤즈.
스마트폰을 들어 찍거나 박수를 치는 사람들에게 우아하게 턴을 해서 사라지는 두 남자였다.
「보이시나요? 저게 바로 저희 형입니다!」
「웃을 때는 두 배로 잘생겼거든요! 심지어 저것도 제일 잘생기게 웃은 건 아니에요!」
흥분해서 방방 뛰는 뉴블랙 멤버들.
바로 그 옆자리에 앉아 있던 르블랑의 회장 조르주 벵거가 허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와아악! 하며 귀에다 대고 소리 지르는 꽃미남들.
‘귀에서… 피가 날 것 같구만…….’
다음에는 옆자리를 피해야겠다고 다짐하는 르블랑의 회장이었다.
* * *
「여러분 덕분에 오늘 쇼를 성황리에 마칠 수 있었습니다! 브라보! 모두의 앞날에 축복이 있기를!」
「와아아아-!」
「수고했어요!」
여기저기서 박수와 인사가 오간다.
중요한 행사를 무사히 마무리했다는 사실 때문인지, 날카롭기만 하던 스탭들의 눈빛이 조금 부드러워졌다.
“후우…….”
지미가 모델들에게 다가가 격려 인사를 하는 동안 잠시 무릎을 붙잡고 심호흡을 했다.
온몸에 가득했던 긴장이 연기처럼 흩어지는 기분이다.
“고생했다.”
다가와서 어깨를 두드려 주는 석환 형에게 웃어 보였다.
“나 잘했지? 분위기 보니까 잘한 것 같은데.”
“최고였어. 안 그래도 끝나고 너 만나고 가겠다는 사람들이 엄청 많아서, 다들 기다리는 중이야.”
“그래?”
기분 좋게 웃으며 다시 몸을 일으켰다.
마음 같아서는 대자로 드러누워서 에라 모르겠다 하고 싶은데, 아직 할 일이 남아 있었다.
먼저 디자이너와의 포옹이었다.
「이 세상 최고의 패션을 보여 준 썬! 그대여! 너무 고생 많았습니다! 난 이루 말할 수 없이 감동했어요!」
「아닙니다. 사상 최고의 디자이너 지미 로빈스의 쇼에 선 것이 영광이죠.」
「하하하하하!」
「하하하하하하!」
사이좋게 웃고는 카메라를 들고 달려온 기자들과 인터뷰를 나누었다.
「오늘 쇼가 정말 인상 깊었습니다. 지미, 굉장히 도발적인 패션도 많았는데요. 기분이 어떻습니까?」
「너무 행복했습니다. 사실, 오늘의 패션쇼는 제가 어린 시절부터 꿈꿔 왔던 패션을 현실로 이룬 것입니다. 학창 시절부터 남들과는 다르다는 이유로 박해를 받곤 했죠, 하하. 화장실 변기에 머리도 몇 번이고 처박혔죠.」
지미가 진지하게 말했다.
「단지 남들과는 옷이 다르다는 이유뿐이었습니다. 패션계에 발을 들인 이후부터 꼭 해 보고 싶었던 컬렉션이에요.」
그가 내 어깨에 팔을 두르며 말했다.
「꿈에 그리던 패션을 현실로 만들어 준 썬에게 정말로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군요. 우린 여러모로 공통점이 많습니다. 썬도 학교에서 자퇴를 했다고 하더군요!」
그…런 이유 때문은 아니지만 틀린 말은 아니었다.
능숙하게 질의응답을 하던 지미에게서 이번에는 내게 포커스가 넘어왔다.
「VMA 때의 우주인 퍼포먼스도 그렇고, 요즘 들어 패션 아이콘으로 주목 받고 있는 뉴블랙인데요. 그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썬, 당신의 패션 철학은 과연 무엇입니까?」
「음…….」
진지하게 고민을 하고 말했다.
「패션이라는 것은 진정한 나를 보여 주는 것이 아닐까요? 사회적인 통념과 관습에도 구애받지 않고 내가 입고 싶은 옷을 입는 게 패션이 아닐까 싶어요. 패션이란 저를 보여 주는 것이니까요.」
「오오오오…….」
기자들이 감탄하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렇다.
세계적인 패션 아이콘이 될 사람, 그것이 바로 나였다.
“후후후후.”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인터뷰를 마치자 주변이 부산스러워졌다.
백스테이지로 들어온 유명 인사들 때문이었다.
시장통처럼 복잡해지는 백스테이지를 두리번거리자 졸개들의 얼굴이 삽시간에 가까워졌다.
다다다다다!
중현이의 얼굴이 큰바위 얼굴처럼 커졌다.
“혀어어어어엉!”
“얘들아아아아!”
“보면서 너무 자랑스러웠어요. 저게 우리 형이다!”
“크으으으으.”
동생들의 열렬한 반응에 입이 귀에 걸리는 느낌이다.
사실 런웨이를 걸어가는 동안에는 진짜 마음속으로 혼비백산해서 아무 생각도 못한 터였다.
혹여 눈 마주쳐서 웃음이라도 나올까 봐 졸개들 쪽은 아예 쳐다보지도 못했다.
……좋아해 줬구나.
“뭐.”
리혁이가 뺨을 긁적이며 시선을 회피했다.
“간만에 좀 자랑스러웠어요.”
“리혁이 형이 얼마나 잘생겼다고 칭찬했는지 몰라요. 이 형이 ‘잘생겼어…’ 하면서 몇 번이고 중얼거리고.”
“조용히 해!”
“형, 근데 지금 그 화장한 상태로 같이 사진 찍어도 돼요? 저 프사 하게요.”
졸개들이랑 손을 맞잡고 알프스 소녀 하이디처럼 빙글빙글 뛰는 것도 잠시.
주변에서 인사하러 온 사람들을 대응하느라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오 마이 갓! 유명한 사람이다! 썬!」
「당신 정말 멋져요!」
여기저기서 셔터가 번쩍이는 가운데 시끌벅적한 고함과 웃음소리가 오갔다.
그중에서 누군가 내게 다가오면서 길이 촤악 펼쳐졌다.
“음?”
맥고나걸 교수처럼 생긴 노부인이 다가와 지미에게 인사를 건네고는 내게도 덕담을 건넸다.
「아주 인상 깊었어요.」
「감사합니다.」
「조만간 다른 곳에서도 봤으면 좋겠군요.」
쿨하게 웃으며 뒤돌아가는 노인의 모습에 지미 로빈스가 ‘와우’ 하면서 내게 속삭였다.
「…저 마녀가 내게 칭찬을 할 줄이야. 방금 녹음기라도 틀어 놨어야 되는 건데.」
「유명한 분인가요?」
농담이라고 생각했는지 지미가 엄지를 들고 ‘농담 좋았어~’ 하며 웃었다.
졸개들에게 눈짓하며 물어보자 유명한 칼럼니스트라는 답이 돌아왔다.
미국 쪽에서 유명한 비평가인 모양이다.
다시 만나자고 어쩌고 하시긴 했는데 뭐 큰 의미는 아니겠지.
“형, 그리고 여기 이분은 르블랑 회장님이시래요.”
“오.”
부담스러운 명품으로 치장한 중년 남자가 오늘 너무 멋졌다면서 엄지를 들고 칭찬해 줬다.
조르주 벵거 회장이 웃으며 내 손을 흔들었다.
「오늘 인파도 그렇고, 인기가 어마어마하더군요. 앞으로도 좋은 관계로 지냈으면 좋겠어요.」
「영광이에요.」
벵거 회장이 우리에게 물었다.
「오늘 쇼도 성공적으로 끝난 것도 그렇고, 뭔가 보답을 하고 싶은데. 필요한 게 있다면 이 자리에서 바로 말해 주세요.」
「오…….」
「소원을 하나 들어 드리죠.」
뭔가 선물 세례를 해서 빚을 지워 두겠다는 속셈인 듯했다.
딱 잘라 없다고 거절하기에는 조금 그런 분위기라서 동생들이랑 눈빛 교환을 하며 웃었다.
이런 때는 나중에 먹튀해도 무방한 소소한 것을 부탁하는 게 좋다.
「그럼 한 가지 부탁드려도 될까요?」
「물론!」
정말이지 소소한 부탁이었다.
「맛있는 빵집이 어디 있는지 아시나요? 내일 출국하기 전에 먹고 가려고요.」
「빵집? 알고 있다마다.」
조르주 벵거 회장이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 * *
파리 최고의 제빵사로 유명한 장 브리옹은 가족들과 저녁 시간을 보내던 중에 급작스런 연락을 받았다.
-잠깐 나와서 빵 좀 구워 주게.
세계적으로 유명한 제과제빵의 나라 프랑스.
이곳에서도 유명한 장인으로 꼽히는 그에게 갑자기 나와서 빵이나 구우라는 부탁이라니!
건방져도 너무나 건방진 제안이었다.
아무리 조르주 벵거 회장이라 해도 말이다.
-이 시각에 말입니까? 가족들이랑 시간을…….
-자네가 저번에 말했던 사업 투자 제안 말일세. 얼마가 필요하다더라?
정신이 번쩍 들었다.
-…가족들이랑 시간은 언제든 보낼 수 있죠. 어딥니까? 지금 바로 총알처럼 출발하겠습니다.
-귀한 손님이니 접대 좀 잘해 주게.
-하하하! 아무렴요!
거부하기에는 너무나도 많은 돈이었다.
그리하여 베이커리에 도착한 장 브리옹은 미친 듯이 빵을 굽기 시작했다.
‘벵거 회장의 투자 제안이라니!’
갓 구운 바게트와 크로와상 등을 바구니에 담은 그가 콧노래를 부르며 손님들에게 다가갔다.
“맛있게 드십시오.”
얼떨떨한 얼굴로 ‘여긴 어디? 나는 누구?’ 하던 이들이 환한 미소를 지었다.
「감사합니다!」
어디선가 본 듯한 느낌을 주는 5인조였지만 장 브리옹은 신경을 껐다.
그저 손님들의 표정이 신기할 뿐.
‘뭐지?’
빵이 나오자마자 한 명이 눈물을 닦았다.
마치 십수 년은 굶은 사람처럼 살라미, 살구잼 등을 곁들여서 빵을 먹는 꽃미남.
빵의 냄새를 후우웁 하고 음미한 미남이 울 것 같은 얼굴로 한 조각을 먹었다.
우물우물.
눈이 번쩍 뜨이더니 그에게 눈물 섞인 미소를 보냈다.
“C'est très bon(너무 맛있어요)!”
유창한 프랑스어로 건네 오는 인사에 호감이 간다.
“프랑스어를 할 줄 아시오?”
“그럼요. 이 맛있는 빵을 먹으니 더 술술 나오는 것 같네요. 정말 제가 먹어 본 빵 중 최고의 빵이에요.”
“하하하.”
“정말 빵의 달인이시네요.”
이토록 자신의 빵을 먹으며 감동해 주던 사람이 얼마 만이던가.
나머지 넷이 뭐라고 낯선 말로 그 멤버를 토닥토닥해 주는 동안 장 브리옹은 더 많은 빵을 굽기 위해 팔을 걷어붙였다.
‘애들은 배부르게 먹고 자라야지.’
그리고.
이런 장면은 실시간으로 보고가 이뤄지는 중이었다.
-지금 빵집에 도착한 뉴블랙.
-내부가 보이지 않아 추정은 어려우나 멤버들이 굶은 리더를 위해 부탁한 것으로 보임
-조르주 벵거 회장의 계략을 본받을 필요가 있음.
-따뜻한 빵으로 꼬드길 것.
곳곳에 숨은 패션 회사의 첩자들이 눈을 번뜩이며 보고를 보내는 중이었다.
‘후후후. 성공적으로 조사했다.’
뉴블랙에게 들키지도 않고 조사를 끝낸 자기 스스로에게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는 조사관들!
하지만 그것은 그들만의 착각이었다.
“중현아. 왜 그래?”
“밖에서 자꾸 인기척이 느껴져서요.”
푸근한 얼굴로 눈을 지그시 감는 곰돌이 같은 인상의 멤버.
“파파라치들이 따라붙었나 봐요. 자꾸 구경하고 있는 것 같은데….”
“뭐래?”
“프랑스어로 뭐라고 통화하는데 해석은 안 되는 거 같아요. 열두 명 정도인 것 같은데…….”
“별일 아니겠지.”
일어나서 조치를 취하려는 매니저들에게 손을 들어 만류하던 우주가 웃으며 그들을 앉혔다.
“오늘은 빵을 즐기도록 해요. 우리.”
곧이어 꺄르륵 웃으며 빵을 음미하는 리더와 졸개들.
「여기 더 많은 빵이 있네-!」
「더 많은 빵!」
「빵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다음 날 그들에게 선물로 오게 될 빵의 양에 대해선 전혀 감도 잡지 못하고 있는 5인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