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764)화 (764/1,031)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764화

전설적인 패션 칼럼니스트 로라 맥코넬이 칭찬한 차세대 패션 아이콘!

르블랑의 수석 디자이너 지미 로빈스의 뮤즈!

패션 잡지들이 극찬한 17년도의 신예 패셔니스타!

바로 그가 AMA의 레드카펫에 첫 발을 내디뎠다.

“와아아아아아-!”

한국의 꽃신을 재해석한 구두.

주황색 계통의 바지 위로 하얀 셔츠.

또 그 위로 주황색 재킷을 걸치고 있었는데, 동양과 서양의 꽃이 얽혀들어 동서양의 조화를 보여 주고 있었다.

일반인이 입으면 평생 웃음거리 짤이 될 법한 패션이었지만…….

‘세상에, 기가 막히게 어울린다.’

몸매와 얼굴빨로 소화해 버리는 최고의 K팝 스타였다.

화려한 팝 스타 같은 느낌.

뉴블랙 멤버들이 팬들을 향해 손을 흔들면서 복화술을 나누었다.

“어떠냐. 졸개들아. 형의 패션이?”

“인정하기 싫지만 예쁩니다.”

“흐하핫! 그렇지!”

어깨동무를 한 채 포토그래퍼 앞에서도 한 차례 자세를 취하는 뉴블랙 멤버들.

셔터가 부지런히 움직였다.

‘여긴 다 패셔니스타들이네.’

독특하면서도 근사한 선우주와 더불어 저마다 멋들어진 수트 핏을 보여 주고 있는 가수들이었다.

저마다 앰버서더로 있는 명품 브랜드에서 ‘뒤처질 수 없지!’ 하고 보내 준 수트들이었다.

체크 격자무늬를 한 정장을 입은 지호에게도 플래시가 쏟아졌다.

“뉴블랙!”

“오늘 기분이 어때요? 이쪽 좀 봐 주세요!”

“리혁! 오늘은 파운데이션을 바르고 왔나요! 티가 하나도 안 나요!”

여느 톱스타들을 대하듯 포토그래퍼들이 친근하게 말을 걸었다.

뉴블랙이 빌보드 어워즈에 첫 상륙했을 때와는 또 달라진 태도였다.

그야 당연한 이야기였다.

그때의 뉴블랙과 지금의 뉴블랙은 완전 다르니까.

빌보드에서 5주간 1위를 차지해서 완벽하게 대성공을 거둔 영어 싱글 METRO 이후로 뉴블랙의 전체적인 몸값과 주목도는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이 올라간 터였다.

8월이 아니라 1월에 발매됐다면 올해 빌보드 Hot 100 연간차트에서 10위 안에 들었을 거라는 말을 들을 정도니까.

현재 핫하게 떠오른 라이징 스타 포지션.

“써니! 오늘 Favorite Duo/Group에 노미네이트됐다고 하던데 기분이 어때요?”

“너무 설레죠.”

우주가 눈을 찡긋하며 말했다.

“어젯밤에 잠을 못 잤다니까요.”

“윙크! 이쪽에도 윙크 한 번 더 해 주세요!”

5인조가 어깨동무를 한 채 윙크를 하면서 포토그래퍼들이 쾌재를 불렀다.

‘비싸게 팔아먹는다!’

그림같이 잘생긴 미남들의 사진을 보며 희희낙락해하는 한편.

“뉴블랙!”

“잠시만요. 뉴블랙이 왔다는데요?”

“Yo, my friend~!”

레드 카펫에 있는 매체 인터뷰어들, 인터뷰에 응하고 있던 가수들이 뉴블랙에게 슬금슬금 다가갔다.

단순히 노래가 흥했기 때문이 아니었다.

METRO로 대성공을 하긴 했지만 아직은 핫한 신인 가수 같은 포지션.

반짝하고 사라지는 경우도 많은 포지션이라 평소 같으면 ‘안녕!’ 정도 하며 반갑게 인사를 했겠지만.

‘얘네들은 보석이야.’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것은 가치가 넘치는 물건이었다.

빌보드 1위 곡을 두 곡이나 만들어 낸 천재 작곡가이자, 최근 들어 다시 조명된 예술계 천재의 아들이 리더고.

멤버들 모두 현재 리더와 함께 패셔니스타로 주목 받고 있다.

핫한 아이콘 같은 느낌이라고 할까.

“꺄르르륵! 꺄륵!”

“Kka-rrr-!”

한국인들과 미국인들이 사이좋게 섞여 갸르륵, 갸륵 거리고 있는 동안.

실시간 중계를 보는 한국인들은 몸서리를 치고 있었다.

-선우주가 패션 아이콘이래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어우,, 난 이 레드카펫 거북해서 못보겠어

-미국애들 단체로 집단 최면 걸렸나ㅋㅋㄱㅋㅋㅋㄱㅋ

-레카 의상 꽃무늬 왜일케 많지

-미안하다. 이건 전적으로 한국이 잘못했다.

-한국이라니??? 저기 한국인이 어디있죠?? 저히ㅡ는 모르는 일입니다

-아ㅋㅋ 아무튼 한국가수 아니라구ㅋㅋㅋ

거북해서 못 보겠다며 시선을 회피하는 한국인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TV 속 뉴블랙을 주목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   *   *

미국 패션의 중심지 뉴욕.

세계 최고의 마천루들이 즐비한 도시.

무려 104층으로 뉴욕에서 가장 높은 빌딩의 어느 사무실 TV에 AMA 레드 카펫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Wow.”

그들이 보고 있는 것은 리무진에서 내리는 그림 같은 미모의 청년이었다.

선우주.

지미 로빈스가 한 땀 한 땀 만들어 낸 의상을 멋지게 소화해 낸 모습에 직원들의 눈빛이 몽롱해졌다.

“어쩜 저렇게 옷을 잘 입지?”

“로라가 극찬한 이유를 알 거 같아요. 레드 카펫 패션도 저런 식으로 멋들어지게 소화를 하다니!”

“패션 아이콘이란 말이 정말 딱이야.”

이곳은 바로 세계 최대의 패션 매거진 의 본사.

TV 앞에 선 직원들이 입을 떡하니 벌리고 우주와 다른 멤버들의 패션을 칭찬하고 있을 때였다.

“회의 들어갑시다.”

선임자의 말에 프로젝트 담당 직원들이 회의실로 향했다.

택시가 노란 점처럼 보이고 뉴욕 맨해튼이 한눈에 들어오는 전경.

회의실 벽에는 테이블들이 그려진 거대한 화이트보드와 함께 프로젝트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멧 갈라.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에서 매년 열리는 패션계 최대의 행사 중 하나이자 전 세계 최고의 셀럽들이 방문하는 날.

이 멧 갈라를 진행하는 곳이 바로 패션잡지 였다.

“3차 커버리지 미팅을 시작하죠.”

행사 규모가 워낙 큰 탓에 참석자를 선정하는 커버리지 미팅을 최소 6개월 전부터 할 정도.

멧 갈라 프로젝트 담당 직원이 서류를 보며 말했다.

“일단 르블랑은 뉴블랙 우주, 알렉 웨스트, 레지나가 있고요. 데샹은 후미카 곤도, 레아 드 뤼지냥…….”

명품 브랜드들이 ‘우리 이 셀럽 보낼게’ 하는 명단들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좁디좁은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전시실에 500여 명의 유명인을 수용해야 하는 작업.

그 때문에 테이블도 아무나 앉을 수 있는 자리가 아니었다.

빅테크 기업이나 명품 브랜드에서 테이블 하나당 20억에서 30억가량을 주고 구매해서 자신들의 CEO나 VIP를 앉히는 시스템.

“새로운 사람들의 자리는 편집장님이 오시면 정하는 걸로 하고…….”

유명인들의 이름표가 붙은 테이블 자리표를 슥 둘러본 프로젝트 팀장이 화제를 돌렸다.

“그러고 보니 이번에 뉴블랙 멤버 전원이 오는 건가?”

“네. 브랜드마다 자기 브랜드에 소속된 멤버들을 보내겠다고 의사를 타진해 왔어요.”

“신기하군. 그룹이 오는 건 또 처음이네.”

대개 그룹으로 된 가수 중에서도 패셔니스타로 알려진 한두 명 정도만 참석하는 식이었는데.

이번 멧 갈라에는 특이하게 그룹 가수 전원이 참석한다.

“잘됐네.”

팀장이 말했다.

“우리가 따로 초청을 하려고 준비 중이었는데, 문제가 손쉽게 해결이 됐어.”

칼럼니스트 로라 맥코넬의 강력 추천과 이번 멧 갈라의 공동 호스트인 이사벨라 도리스의 추천 동의.

그 때문에 잡지사 차원에서 초청장을 보낼까 고민하던 차에 문제가 해결됐다.

한 직원이 말했다.

“이런 건 처음 봐요. 보이밴드 전원이 멧 갈라에 오는 게.”

“자기 소속 연예인한테 잘 보이려고 브랜드끼리 경쟁이 있었대요. 이번에 르블랑이 우주 내보낸 패션쇼로 한몫 단단히 잡았잖아요. 브랜드들이 굉장히 의식하나 봐요.”

르블랑이 먼저 ‘우리는 우주 보낼게!’ 하자, 다른 브랜드들이 ‘우, 우리도 보낼 거야!’ 하면서 뉴블랙 멤버들을 앞다투어 보냈다는 이야기였다.

소속 앰버서더인 멤버들에게 ‘우리도 할 거 다한다!’ 하면서 생색내는 브랜드들의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그래도 이번에 엄청 기대가 되는걸요.”

한 직원이 두근거린다는 얼굴로 말했다.

“오늘 AMA 레드카펫 보니까 저번 패션쇼 이후로 뭔가 남자들도 패션에 변화가 생긴 거 같더라고요. 뉴블랙이 이번 멧 갈라에 참석해서 또 그런 패션을 선보인다면…….”

직원들의 얼굴에 기대감이 감돌았다.

굳이 브랜드에서 보내지 않더라도 잡지사 측에서 참석 요청을 보내려고 한 이유.

그것은 바로 뉴블랙이 남자 연예인이라는 사실도 있었다.

“제발 아무 특색 없는 까만 정장 좀 그만 입었으면 좋겠어요.”

“진짜.”

“우리 코스튬 파티란 말이야. 코스튬 파뤼-!”

매년 패션 테마를 정하고 그에 맞춰 코스튬을 착용하는 파티.

여성 셀럽들은 3개월에서 6개월 전부터 미리 드레스나 의상을 준비하는 것과 반대로, 많은 수의 남성 셀럽들은 당일 테마에 안 맞는 턱시도 하나 입고 오는 경우가 많았다.

-이번 테마에 맞는 의상 입고 와 줘! 얘들아! 독특하거나 이상해도 괜찮아!

-응. 턱시도.

-아니! 턱시도 좀 그만 입으라구!

성의 있게 입고 오는 사람들도 있지만, ‘나는 마초! 색깔 있거나 여성스러운 건 입지 않지!’ 하면서 턱시도를 입고 오는 이들을 볼 때마다 괜스레 불만이 가득했던 잡지사 직원들이었다.

이제 그런 문화에도 변화가 필요할 때였다.

‘믿는다. 뉴블랙!’

‘믿습니다.’

눈을 반짝반짝 빛내는 직원들의 기도에 답하듯 그들의 귓가에 꺄르르 하는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꺄르르.

꺄륵!

“음?”

진짜 들리는 소리에 직원 하나가 머쓱한 얼굴로 핸드폰을 들어 보였다.

“죄송합니다. 핸드폰을 꺼놓는 것을 깜빡했어요.”

“벨소리가 신기하네. 웃음소리야?”

“네, 하핫.”

직원이 핸드폰을 끄며 얼버무렸다.

‘들킬 뻔했다.’

정체를 들킬 뻔했던 수플레가 헛기침을 했다.

그러곤 커버리지 미팅 서류에 적힌 사진을 바라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후후. 얼른 와라, 나의 최애들아!’

오늘도 전 세계 곳곳에서 암약하고 있는 수플레였다.

*   *   *

“졸개들아.”

“예.”

“이제 좀 편하게 풀자.”

“Yeah.”

레드 카펫에서 벗어나자마자 표정을 편하게 풀었다.

방금 전까지 똘망똘망한 눈의 팝스타 같았던 동생들의 얼굴이 삽시간에 빙구처럼 변했다.

중현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연예인 코스프레 성공.”

“저기, 우리 연예인이에요. 중현이 형.”

“아, 좀 살 거 같다.”

기지개를 켜면서 굳은 어깨를 풀었다.

‘아니! 너는 패션 아이콘!’ 하면서 관심을 보이는 미국인들 때문에 치명적인 척을 하느라 힘들었다.

본 식장으로 입장하는 동안 막내가 핸드폰을 보며 빵 터졌다.

“형, 이거 봤어요? 한국 댓글인데 형이 치명적인 윙크 날릴 때마다 치명타 날리고 싶대요.”

“흐하하핫!”

방정맞게 웃다가 주변에 모르는 연예인이 지나가면서 헛기침을 했다.

다시금 셀럽 모드로 돌아간 뒤.

오늘 어워즈가 열리는 마이크로소프트 극장 내부로 입장하면서 빨간 좌석들이 우릴 맞이했다.

“Over here.”

덩치 큰 경호원의 안내에 따라 좌석으로 향했다.

장내에 잠입해 있는 수플레들의 환호성에 손을 흔들며 답하며 자리에 앉았다.

AMA 측에서 건네주는 다과이나 물건을 턱시도를 입은 원석이 형에게 건네주는 것도 잠시.

「잘 지냈어?」

주변에서 말을 걸어오는 이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대체로 노래 잘 듣고 있다, 너네 오늘 의상 끝내준다 하는 이야기인데… 결론은 대부분 비슷했다.

「이번에 뉴욕에서 큰 규모로 모금 파티 연다고 하던데. 아버지 공연 관련해서 말이야.」

「맞아.」

「혹시 괜찮으면 초청장이라도 하나 받을 수 있을까? 조금 무리한 부탁일 수도 있지만…….」

「자리 여유 있으니까 편하게 와.」

명단에 이름을 올려 주겠다고 할 때마다 다들 표정이 밝아진다.

“뭐지.”

만나는 셀럽들마다 ‘참석해도 돼?’ 하는 모습에 동생들을 바라보았다.

“우리 아빠 공연 이야기가 그 정도로 많이 퍼졌나?”

“그런가 본데요. 다들 그 얘기하네.”

우리의 궁금증을 뒷자리에 앉은 원석이 형이 풀어 주었다.

“팀장님한테 들었는데 이번 뉴욕 자선기금 파티가 굉장히 크게 홍보가 나갔나 봐.”

“그래요?”

“응. 미국에서 아버님과 연이 있는 예술계 쪽 인사들이 총출동했다고 하더라고. 미국에서도 전설적인 사람들이라서, 지금 이 파티 오고 싶어 하는 기업인이나 연예인이 한둘이 아니래.”

참석자들이 누구누구 올 것인지는 대충 이야기를 들었다.

기업인으로는 라스베가스의 유명 카지노 회장부터 관종으로 유명한 빅테크 CEO, 재즈 업계의 전설적인 색소폰 연주자와 이른바 ‘선명주 키즈’로 불리는 현재의 톱클래스 연주자들까지.

-우리만 믿어 줘요.

-스케일 아주 팍팍 키워 놓을게!

문득 저번에 화상 회의를 했던 사람들의 면면이 떠오른다.

아니.

이건 커도 너무 커지는 거 아닌가요.

“그런데 사실 가장 일이 커지게 된 이유는 너야. 우주야.”

“네?”

원석이 형이 훈훈한 미소를 지었다.

“네가 뉴블랙 월드 TV에 예고편을 올려서 전 세계적인 이슈가 된 거니까.”

“…….”

“지금 몇천만 뷰라고 그러더라.”

모른 척하며 딴청 피우는 내 모습에 동생들이 키득거렸다.

아무튼 원래 구상은 소소하게 아빠 지인들끼리 모여서 ‘화이팅!’ 하는 파티였는데.

뭔가 내 예상과 다르게 굴러가고 있었다.

-와, 우아하고 고상한 예술계의 명사들이 모이는 자선 모금 파티! 나도 갈래!

-나도 우아한 척할 수 있는 기회!

대충 이런 분위기였다.

그리고 이렇게 참가를 희망하는 연예인들 속에서 홀로 독야청청 우리와 시선을 안 마주치는 인물이 하나 있었으니.

「헤일리~」

우리가 이름을 불렀지만 귀만 쫑긋할 뿐 삐딱하게 다른 곳을 쳐다보고 있다.

누가 봐도 삐친 티가 역력한 연예인에게 다가가 말했다.

「헤일리. 당신의 친구들이 왔어요!」

「친구라니.」

헤일리가 나를 위아래로 보고는 시선을 휙 돌렸다.

「한국에서는 중요한 파티에 초청도 안 해 주는 사람을 친구라고 부르는지 모르겠군.」

「가끔 리혁이가 혼자 하는 브런치 파티에 우리를 초청 안 해 주거든요. 그래도 우린 리혁이를 친구라 불러요.」

리혁이가 맞다며 고개를 끄덕였지만 헤일리의 표정은 풀어지지 않았다.

「일리가 있지만 내 기분은 이미 상했어. 그날 있는 약속까지 취소하고 존나게 기다렸는데… 너희가 상처 받은 여자의 시발 같은 마음을 알아?」

시발 같은 마음을 우리가 어떻게 알겠어요. 헤일리….

틴스피릿만 좀 이해하겠지.

아무튼 파티라는 게 미국인들한테는 그만큼 뭔가 의미가 있는 행위인 모양이다.

다행히 초청해 주고 선물도 주겠다고 하니 금세 풀어진 얼굴로 내게 물었다.

「그래서 공연에 얼마가 필요해?」

「얼마까지 알아보고 왔나요, 헤일리?」

「대충 요 정도?」

귀를 가까이 대라는 손짓에 얼굴을 내리자, 귓가로 달러의 홍수가 밀려들어왔다.

‘Enough?’ 하고 묻는 스타에게 황망히 고개를 끄덕였다.

터덜터덜 멍한 얼굴로 돌아온 나에게 동생들이 물었다.

“얼마 기부하겠대요?”

“그, 그건… 나중에 이야기해야 할 거 같고.”

헤일리 1명이 기부하겠다는 액수만 해도 그 정도인데, 나머지 사람들의 기부금까지 계산하면…….

“잘하면 월드 투어도 가능하겠는데.”

한국을 비롯해 미국, 일본, 프랑스 등지에서 적당한 규모로 공연을 하려던 계획이 뭔가 어그러지는 느낌이었다.

내 손을 떠나 스노우볼처럼 거대하게 굴러가는 듯한 모습.

머릿속에서 여러 나라에서 [선명주 : Last Tour] 하는 깃발이 펄럭이는 장면이 그려졌다.

“…….”

멍하니 먼 곳을 바라보며 웃었다.

-아, 아들?

어디선가 환청처럼 아빠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한 기분에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아빠.

아무래도 작은 공연은 불가능할 거 같네요.

*   *   *

대개 기본으로 서너 시간 정도는 하는 한국 어워즈와 달리 미국 시상식답게 AMA는 컴팩트하게 끝났다.

우선은 시상.

이번에 우리는 두 개 부문에서 노미네이트가 됐다.

하나는 Blue Moon으로 올해의 콜라보레이션 부문이고, 다른 하나는 가장 좋아하는 듀오/그룹 부문.

-올해의 콜라보레이션은…!

콜라보레이션 상은 올해 연초부터 빌보드를 휩쓸었던 라틴팝 음악이 차지했다.

그리고.

-Favorite Duo/Group!

-이 친구들의 이름을 제가 부를 수 있어 영광이네요. 뉴블랙!

팝과 락 부문에서 가장 좋아하는 그룹 부문의 상은 우리가 차지했다.

아메리칸 뮤직 어워즈는 ‘인기’가 척도인 시상식이라 어느 정도 수상을 예측하고 있던 부문이었다.

석환 형이 미리 말을 해 줬다.

-이게 일정 기준을 충족해서 후보에 오르고 나면 나머지는 투표로 뽑는다더라. 그러니까 수상 소감 준비해 둬.

가족들, 회사 사람들, 수플레들.

감사해야 할 사람들에게 짤막하게 소감을 전하고는 내려왔다.

그다음은 무대였다.

“와아아아아아아아-!”

이번 AMA 무대의 무대는 한국에서 온 K팝 가수가 미국에서 뿅~ 하고 나타나는 컨셉.

그 때문에 부산 만덕역에서 찍은 VCR로 시작했다.

마침 국내에서 가장 깊다는 지하철역을 찾던 차에 또 부산 지하철이란 말에 반색했다.

그동안 너무 서울 위주 지하철역만 내보낸 터라 기왕이면 다른 지역도 다루고 싶었으니까.

[B1… B2… B3…….]

B9에서 띵 하고 열리는 엘리베이터.

말없이 선글라스를 쓴 우리가 걸어가 부산 지하철 3호선에 탑승하고, 그리고 덜컹덜컹하다가 어두워진 다음에.

팟! 하고 조명이 들어오면 LA 지하철로 바뀌는 VCR과 함께 우리가 지하철 모형 세트에서 등장하는 무대였다.

아무튼 취지는 그랬는데.

“크와아아아아악!”

수플레들의 반응이 좋았던 것을 보면 나름대로 나쁘지 않게 잘한 거 같다.

미국 시상식이라 좀 떨리긴 했지만, 이제 좀 적응하기도 했고.

MCA에서 엔딩 무대를 18분 가까이 하다 보니 3분 정도는 이제 중압감이 덜한 느낌이다.

「굉장히 인상 깊은 무대였어요. 무대에서 지하철 영상이 나오던데 B9까지 내려가는 것은 합성인가요?」

만덕역이 합성이라고 생각하는 미국인 인터뷰어에게 설명을 해 주고.

수상에 대한 소회도 밝히고.

공연이 끝나고 기념사진도 남기고.

“끝났다…….”

“끄읕.”

졸린 눈을 비비는 비주를 필두로 우리는 다음 날 인터뷰 스케줄을 마치자마자 바로 LAX 공항으로 직행했다.

추수감사절 시즌이 기다리고 있는 뉴욕.

-그럼 뉴욕에서 만나요. 아드님.

-뉴욕에서 봐요.

아빠의 오랜 인연들을 만날 시간.

명절 퍼레이드와 함께 모금 파티가 기다리고 있는 뉴욕이 바로 우리의 다음 목적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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