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769)화 (769/1,031)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769화

제대로 읽은 것인지 다시 한번 숫자를 확인했다.

일, 십, 백, 천… 정확하게 400만 달러라고 적혀 있는 문장을 보고는 고개를 들었다.

지호가 눈을 크게 뜨고 물었다.

「바이올린 하나에 400만 달러요?」

「네.」

경매사 직원과 폴 로랑이 당연하지 않느냐는 표정으로 답했다.

「스트라디바리우스잖아요.」

「……그렇죠.」

수긍하는 나에게 지호가 고개를 획 돌렸다.

“형, 이거 스트라디바이러스? 아무튼 이거 뭐예요?”

“일종의 바이올린 브랜드야.”

짤막하게 설명해 주었다.

“옛날 이탈리아에 안토니오 스트라디바리라는 악기 명장이 있었거든. 대중적으로 그 사람이 만든 현악기를 ‘스트라디바리우스’라고 불러.”

“아니, 근데 300년이나 지난 악기가 그렇게 가격이 돼요? 소리는 제대로 나나?”

“소리가 엄청 좋은 걸로 유명해.”

이 부분에 대해서는 전문가들끼리 그렇다, 아니다 하는 갑론을박이 있지만 아무튼 유명한 바이올린 하면 대표적으로 꼽히는 것이 바로 저 스트라디바리우스 바이올린이다.

전 세계에 800개 정도밖에 없다고 하던가.

보존 상태에 따라 가격이 천차만별이지만 비싼 것은 150억 원 가까운 가격에 낙찰된 적도 있다.

그러니 44억이라는 낙찰 추정가도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놀라운 것은 다른 부분이지.

「스트라디바리우스를 오늘 자선 경매에 내놨다고요?」

「네.」

침을 꿀꺽 삼키는 나에게 폴 로랑이 슬며시 웃어 보였다.

「라일라도 원한 일입니다. 자선 경매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자마자 본인이 먼저 이야기를 하더군요.」

나와 폴의 시선이 멀찍이서 우아한 검은 드레스를 입고 있는 중동계 미국인에게 향했다.

눈이 마주친 이가 아름다운 미소를 지으며 칵테일 잔을 들어 보였다.

중현이가 속삭였다.

“이 정도면 가서 절이라도 해야 되는 거 아닐까요.”

“마음속으로 하자.”

마음속으로 절을 하면서 시선을 돌렸다.

스트라디바리우스를 시작으로 경매사 직원에게 전달 받은 리스트를 주르륵 살폈다.

재즈계의 거장인 윈스턴 로스가 제출한 색소폰을 비롯하여 대중음악의 거장인 글렌 데이비스 씨가 특별한 공연에 쓴 기타. 거기에 헤일리 블루가 그래미 공연에서 입었던 푸른 드레스 등등.

그런 개인적인 물품을 지나 스트라디바리우스처럼 입을 떡 벌리게 만드는 것들도 있었다.

「청나라 도자기요?」

「예. 그렇습니다.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

「…….」

청나라의 강희제가 서양 음악교사에게 선물로 주었다는 도자기.

「저, 여기 있는 루벤스가 그 루벤스가 맞나요? 바로크 시대의 화가?」

「예? 그야 당연히 그렇죠…?」

17세기 바로크 시대를 대표하는 화가의 그림까지, 그야말로 곳곳에서 도움이 쏟아지고 있었다.

300년 된 바이올린이 귀엽게 보이는 수준이었다.

목록 마지막 장을 넘겨 새로운 페이지를 펼치자 경매사 직원이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사전에 누락한 품목들인데 확인이 필요하여 보여 드립니다.」

제출한 품목 중에서 거절된 것들을 살피는데 중간에 웃음이 나왔다.

미국의 유명 리얼리티 쇼 스타이자 관종으로 유명한 레슬리 톰슨이 제출한 품목이었다.

사진상으로는 병에 담긴 물건.

[(Declined) 레슬리 톰슨의 방귀]

비주가 문화 충격을 느끼고 동공에 초점이 사라지는 동안 내가 황당한 얼굴로 물었다.

「이거 진짜인가요?」

「진짜입니다.」

「이걸 사는 사람이 있다고요?」

「저번에 경매에 나왔을 때 1만 달러에 팔렸다더군요.」

그리고 거절된 이유도 웃겼다.

웨더비 경매사 직원이 먼 곳을 바라보며 말했다.

「방귀가 정말 진짜 레슬리 톰슨의 방귀인지 확인할 방법이 없어서요. 저희는 예술품 등을 전문으로 하는 곳이라 이런 분야에 대해서는 진위 확인이 불가능하여…….」

「그, 그렇군요.」

「네에, 톰슨 양께서 상당히 아쉬움을 표하셨습니다. 이것을 제조하기 위해 일부러 삶은 계란 등의 음식을 많이 먹었다고…….」

리혁이가 먹고 있던 굴 접시를 내려놓고 입을 헹구는 동안 우리가 레슬리 톰슨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멀찍이서 파티걸처럼 활짝 웃고 있는 금발의 미인이 우리를 향해 손을 흔들며 손키스를 날렸다.

초청해 줘서 고맙다는 뜻 같은데 어색하게 웃으며 엄지를 들어 보였다.

「그래서 다른 품목을 내놓으셨습니다.」

본인이 가지고 있는 유명 컨템포러리 아트를 제출했다는데 아마 저 방귀는 언플용이 아닐까 싶다.

미디어에 ‘또 이상한 짓 했구나!’ 하면서 이슈가 되기 위한 메이킹.

아무튼 그런 독특한 아이템들을 확인하고는 다시 돌려주었다.

「…….」

하지만 목록을 돌려주는 우리 표정은 밝지 못했다.

리혁이가 근심 가득한 얼굴로 턱을 뾰족거렸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어요. 경매 품목 철회하고 다른 걸 넣든지 해야 될 것 같은데.”

“진짜 그래야 되나.”

우리가 모여서 쭈글쭈글한 표정을 짓고 있는 이유.

그것은 바로 오늘 자선 경매에 내어 놓은 품목 때문이었다.

[뉴블랙과의 저녁 식사권]

“이걸 누가 사겠냐고.”

“진짜.”

“게다가 마지막에 나오는 거라서 더 민망하지 않아요? 아, 진짜 너무 쪽팔린데…….”

경매 품목에 유명인들의 애장품이나 귀중한 소장품이 나올 거라고 예상하긴 했다.

하지만 이 정도로 큰 스케일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스트라디바리우스 같은 게 나온다는 걸 알았다면 글렌 데이비스 씨에게 받은 19세기 금화 같은 거 내보낼걸.

“아니…….”

이거 아무도 안 사면 진짜 민망해서 죽을 텐데.

바로 앞에서 ‘아니, 저건 앤디 워홀의 그림!’ 이러고 있는데 그 뒤에 뉴블랙과의 식사권이 나오면…….

“아으으으으…!”

경매사 직원이 돌아간 후, 괴로워하는 우리에게 폴 로랑이 눈썹을 치켜떴다.

「왜 그래요?」

우리의 근심을 전해 주자 그가 목젖이 보일 만큼 큰 웃음을 터뜨렸다.

「왜 웃어요, 폴? 당신이 식사권을 경매로 넣으라고 한 바람에 이렇게 된 거잖아요!」

「그랬죠.」

피아니스트를 향해 원망 어린 시선을 던졌다.

-저기 폴, 우리가 이런 자선 경매 문화에 대해 잘 모르는데 저희가 뭘 내놓으면 좋을까요?

-식사권 정도는 어떨까요? 여러분 모두와의 식사권이요.

-그걸로 되나요?

-그럼요.

폴 로랑이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원래 계획은 여러분과의 식사권을 제가 사서 기부할 계획이었어요. 뭐, 지금은 예상과 다르게 상황이 달라지긴 했지만요.」

그가 주변 사람들을 둘러보며 아리송한 말을 던졌다.

「지금 이 분위기라면 저도 경매에서 떨어질 수 있을 것 같네요.」

「네?」

「조금 있으면 무슨 이야기인지 알게 될 겁니다.」

의미심장한 말에 우리 모두 고개를 갸웃거렸다.

*   *   *

슬슬 경매가 시작할 때가 되면서 동생들과 함께 좋은 자리를 잡았다.

물론 자리는 좋았는데.

「으으음.」

주변 사람들까지 좋은지는 모르겠다.

내 옆에서 심술궂은 얼굴의 백인 할아버지가 지팡이를 짚은 채 오만상을 찌푸리고 있었으니까.

KFC 할아버지와 비슷한 외모지만, 치킨을 튀겨달라고 했다가는 내가 튀겨질 듯한 분위기였다.

「허풍선이들 천지로군.」

할리우드의 유명인들이나 셀럽들을 바라보는 노인의 표정에 못마땅함이 가득했다.

그러고는 내게 몸을 기울였다.

「내가 자네 부친의 후원자 중 하나였다네.」

「아, 그렇군요.」

「에릭슨이라고 하네.」

라스베이거스의 카지노 재벌로 유명한 에릭슨 회장이 아빠와의 인연을 이야기했다.

「좋은 친구였고, 좋은 시절이었지.」

「하하.」

「하지만 요즘 들어선 못난 것들이 쇼 비즈니스 업계에 암약을 해서… 으으음…….」

나이 지긋한 80대 노인이 요즘 세태를 꾸짖는 것을 시작으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그러더니 넌지시 물었다.

「자네는 공화당인가, 민주당인가?」

「저는 한국인인데요.」

데모크랏이냐, 리퍼블리칸이냐 하는 노인에게 ‘I’m Korean’하자 상대가 호탕한 웃음을 터뜨렸다.

뭐가 그리 재미있었던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내 어깨를 두드리며 즐겁게 웃는다.

아무리 봐도 내가 한국인인 걸 모르시는 것 같다.

음. 그럴 수 있지.

화사하게 웃으며 클라이언트 관리를 하는 나에게, 파티를 주최한 사람 중 하나인 라울 곤살레스 씨가 속삭였다.

「저분이 알려진 재산만 1조 원이 넘을 겁니다. 잘하고 있어요. 지금.」

나의 미소가 더욱더 환해지기 시작했다.

에릭슨 회장을 시작으로 주변에 모인 부자들과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대화는 어렵지 않았다.

특히 우리 막내가 기업가들과 대화가 잘 통했다.

“이야, 우리 막내 잘한다.”

칭찬을 해 주자 지호가 가슴을 쭉 내밀고 으스댔다.

“어렵지 않아요. 여기 사람들 다 울 아빠랑 비슷해서요. 어차피 자기 이야기만 하는데 잘 들어 주면 돼요.”

“그런 비결이…!”

“토만 안 달면 돼요. 토 달면 그때부터 해고할 사람처럼 노려보니까.”

유경험자의 조언에 고개를 연신 끄덕일 때였다.

「자!」

장내가 정돈되자 정장 옆구리에 서류철을 낀 누군가가 등장했다.

은발을 깔끔하게 넘긴 40대 미남자가 연단 위에 섰다.

「지금부터 자선 경매를 시작하겠습니다. 저는 오늘 경매를 진행할 경매사 닉 크로포드라고 합니다.」

주변 누군가가 저 사람이 뉴욕 최고의 경매사라고 귀띔해 주었다.

곧이어 시작되는 경매.

「1번 아이템, 스트라디바리우스 바이올린입니다. 들어오실 때 받으셨던 책자에서도 설명을 보셨죠?」

간단한 경매품 소개와 함께 시작가에서 경매가 시작됐다.

그리고 우리는 그 속에서 감탄했다.

“와, 전문가는 전문가인 이유가 있네요.”

“대박이다. 영어를 어떻게 저렇게 빨리 말하지?”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손을 들어 호가를 올릴 때마다 페이스를 높이고.

호응을 유도하고, 경매의 흐름을 자유자재로 다루는데 그야말로 전문가다운 솜씨가 느껴졌다.

1번 아이템인 스트라디바리우스가 어느 철강 기업의 CEO에게 700만 달러로 낙찰된 것을 시작으로 하이라이트의 경매까지 그야말로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그렇게 마지막 경매가 끝난 후.

번외편이 진행되는 분위기에서 우리의 경매품이 나왔다.

「다음 품목입니다.」

디저트를 소개하듯 경매사 닉 크로포드가 유쾌하게 외쳤다.

「어쩌면 오늘의 메인 디쉬라고도 할 수 있겠군요. 저도 경매를 진행하는 입장이 아니라면 꼭 참여하고 싶은 품목이네요. 다음 품목 보시겠습니다!」

웨더비 경매사 직원들이 드르륵 화이트보드 같은 것을 끌고 나왔다.

거기에 걸려 있는 우리의 사진.

청중들이 동시에 웃음을 터뜨렸다.

「오늘의 주인공 뉴블랙과의 식사권입니다, 뉴블랙!」

그가 우리에게 손짓했다.

「인사 좀 해 주시겠어요?」

호감 가득한 눈으로 바라보는 장내의 손님들에게 우리가 손을 흔들며 작게 인사를 했다.

「떠오르고 있는 스타죠? 예술적으로 재능이 넘치는 이 청년들과 예술의 미래에 대해 논할 수 있는 귀중한 기회입니다. 먼 미래의 전설이 될 사람들과 미리 식사를 하는 것도 좋은 기회 아닐까요?」

그러면서 다시 한번 오늘 기금은 선명주의 공연과 함께 음악을 하고 싶어 하는 취약계층의 아이들에게 지원된다는 안내가 이어졌다.

「그럼 1만 달러부터 시작하겠습니다.」

1만 달러라는 말에 거의 모든 사람들이 손을 들었다.

웅성웅성.

초반부터 폭발적인 반응에 동생들과 내가 서로를 바라보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경쟁자가 너무 많군요. 10만 달러로 올리겠습니다. 호가는 만 단위로 올라갑니다. 10만. 네, 숙녀 분. 11만…….」

10만이라는 말에 경쟁자들이 훅 떨어졌다.

그럼에도 여전히 많은 수의 사람들이 손을 들었다.

20만이 되었을 때였다.

「20만, 톰슨 양!」

관종으로 유명한 스타가 손을 들면서 여기저기서 ‘허억’ 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아빠의 지인들이 다급하게 손을 들기 시작하는 모습에 우리가 웃음을 참았다.

레슬리 톰슨이 투덜대며 빠질 때였다.

「42만, 블루 양이군요!」

헤일리 블루가 42만에 손을 들면서 레슬리 톰슨 때보다 더한 경악성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아빠의 지인들은 거의 기절할 것 같은 표정이었다.

‘보, 보호해야 돼!’ 하는 표정으로 손을 다급하게 드는데… 대체 헤일리는 과거에 무슨 일을 하고 다닌 걸까.

그렇게 경쟁자들이 하나둘 빠질 때.

「72만. 에릭슨 씨.」

에릭슨 씨가 삐뚜름한 입매로 손을 들면서 우리의 표정이 살짝 어두워졌다.

-자네… 냉전에 대해 알고 있나? 소비에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지?

암울한 예상을 하며 경매 상황을 지켜보았다.

‘어, 저 사람이랑 저녁 식사…’ 하다가 ‘아, 저분이면!’ 하면서 기대감이 주식 그래프처럼 요동칠 때였다.

83만에서 경쟁이 치열하게 벌어지는 그 순간.

누군가 손을 스윽 들었다.

「100만 달러.」

곧바로 호가가 뚝 끊겼다.

장내의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둘러보는 가운데, 원 밀리언을 외친 사람이 휘황찬란하게 등장했다.

우리와 구면인 사람이었다.

「그 식사권, 100만 달러에 사죠.」

우리가 올해 파리 패션 위크의 패션쇼에 참석했을 때 만난 사람.

손뼉을 치며 ‘우리 회장님!’ 하는 지미 로빈스의 옆에서 위풍당당하게 서 있는 중년 남자.

「오랜만이네요.」

명품 브랜드 르블랑의 회장 조르주 벵거가 우릴 바라보며 자본주의의 미소를 짓고 있었다.

*   *   *

파티가 끝난 후.

참석자들을 배웅해 준 우리는 바들바들 떨리는 다리로 호텔까지 돌아왔다.

“중현아.”

“네, 형.”

“나 좀 업어 주… 지호가 이미 업혀 있구나.”

막내가 나를 슥 밀었다.

“저리 가여. 형. 여기 내 자리.”

“…….”

어차피 업어 달라는 건 농담으로 한 말이었다.

그냥 그만큼 피곤하다는 뜻.

턱시도 웃옷을 대충 팔에 감은 채, 셔츠를 풀어헤치며 호텔 방 안으로 들어섰다.

“으허어어어…….”

들어오자마자 소파에 얼굴을 파묻었다.

청소한 지 얼마 안 된 냄새가 코로 들어오는 가운데, 멍하니 뒹굴뒹굴할 뿐이었다.

“고생했다.”

석환 형이 회의용으로 쓰는 대형 테이블에 앉아 탄산수를 들이켜며 말했다.

“진짜 고생했어.”

“휴우.”

TF팀 직원들이 호텔 스위트룸 테이블에 둘러앉아 넋이 나간 얼굴로 있는 가운데.

굼벵이처럼 꾸물거리던 졸개들이 내게 붙었다.

“저리 가.”

“저리 갈 힘도 없어요. 형…….”

비주가 그런 말을 하며 옆으로 들어왔다.

뉴욕의 야경이 비치는 유리에 초췌해진 얼굴의 5인조와 그 뒤편의 쓰러질 것 같은 어른들이 가득했다.

중현이조차 좀 지친 얼굴이었다.

“대체 미국인들은 이런 파티를 어떻게 하는 걸까요.”

“그니까 말이야.”

물론 파티가 대규모기도 했고, 우리가 주최자에 공연까지 해서 그런 것도 있지만 그걸 감안해도 체력 소모가 장난이 아니다.

하도 오래 서 있어서 끊어질 것 같은 허리를 두드리고는 동생들을 두드렸다.

“일어나자. 마무리 회의는 해야지.”

“으어어.”

리혁이가 엎드린 채로 고개를 숙인 채 말했다.

“나 일어날 힘도 없어요. 정말.”

“정말로?”

발을 쏙 내밀어서 리혁이의 셔츠 근처로 가져다 대자마자 바로 벌떡 일어났다.

“힘 있네.”

“아, 진짜 냄새나는 걸 어디다…….”

“가자.”

졸개들의 어깨를 토닥토닥해 주며 테이블에 둘러앉았다.

오늘 파티에 대해 결산을 할 시간이었다.

“일단.”

석환 형이 탄산수를 들이켜고는 후- 하며 말했다.

“파티는 성공적으로 끝났습니다.”

“와아아아…….”

“기록적인 모금 액수가 나왔고요. 자선기금 덕분에 공연비용에 대한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박수를 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말했다.

“아직 확정은 아니지만 이 정도 금액이라면 월드 투어를 열어도 될 거 같아요. 본래 계획보다 열 배를 더 키워도 남는 액수가 어마어마하니까.”

“그 부분은 내일 얘기하자.”

“그래요. 그건 내일…….”

석환 형의 말에 동의했다.

지금은 어차피 머리가 잘 안 돌아가기도 하고, 내일 오늘 참석자들 중 일부와 만날 예정이었다.

TF팀 직원 하나가 말했다.

“조르주 벵거 회장과의 저녁 식사는 내일로 잡아 뒀어.”

“네.”

“그쪽에서 장소 전달한다고 하더라. 프라이빗한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대접하겠대.”

오늘 100만 달러라는 거금을 투척해 식사권을 따낸 조르주 벵거 회장.

내가 르블랑의 앰버서더인 이유도 있지만.

“너희 꼬시려고 하는 거 같은데.”

“오호.”

졸개들이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아마 내일 밥도 사 주고 선물도 주고 하면서 ‘너네 자유의 몸이 되면 우리랑 단체 계약 할래?’ 하며 꼬드기려는 것 같다.

그런 이야기를 나누며 오늘 성과에 대해 간략하게 이야기를 나눴다.

“현지 미디어에서 굉장히 호의적으로 보도를 해 준 덕분에 홍보 걱정은 안 해도 될 거 같아. 레슬리 톰슨이 인스타에 올린 짧은 영상이 엄청 유명세를 타기도 했고, 할리우드 사람들이 정말 잘 해 줬어.”

오늘 파티에 참석한 유명인들, 그중에서 특히 우리에게 초대해 달라고 부탁한 이들이 정말 제 역할을 톡톡히 해 줬다.

어떤 식으로 해야 유명해지는지 잘 아는 사람들답게 딱 포인트를 잘 잡아서 홍보를 해 줬다.

그리고.

전 세계 연예계의 중심지에서 시작된 이 소식은 아마 내일쯤 되면 곳곳으로 퍼질 것이다.

아빠가 이야기해 준 대로 모금 파티는 홍보 전략으로서 좋은 선택지였다.

“한국은?”

석환 형에게 물을 때, 홍서영 과장님이 대신 답했다.

“모니터링 중인데 아직 오전이라 큰 반응은 없는 거 같아. 아무래도 크게 보도되진 않고 단신 처리가 돼서.”

“다행이네요.”

“뉴블랙이 선명주 씨 공연을 위해 미국에서 큰 규모로 자선 파티를 열었다 정도?”

안티들이야 어차피 안티들이니 상관없고.

대중들의 보편적인 성향을 생각했을 때 이런 파티 류의 소식은 딱히 크게 알려질수록 좋은 게 아니었다.

있는 듯 없는 듯 넘어가는 게 최선이라고 할까.

“좋아요. 오늘 모두 고생 많으셨습니다.”

고생 많았던 TF팀원들을 격려해 주고는 내일 보자며 배웅했다.

그리고 마침내 우리끼리 스위트룸에 남았을 때.

“…….”

화려하게 빛나는 뉴욕의 마천루들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하루 종일 영어만 써서 그런 걸까.

간판에 꼬부랑 영어 글씨만 봐도 뭔가 속이 느글느글하고, 칵테일 파티에서 먹었던 주전부리들이 위장에서 ‘Hi~!’ 하는 느낌.

“…….”

무언가 격렬하게 땡긴다.

마침 허기가 져서 그런지 그 순간 머릿속에 떠오르는 무언가.

뜨끈한 국물.

면발.

쭈욱 찢어지는 김치.

“나만 그 생각 하는 거 아니지?”

“아닐 거예요.”

눈을 빛내며 고개를 끄덕이는 동생들에게 말했다.

“김치 가져왔지?”

끄덕.

“라면 먹자.”

*   *   *

같은 시각.

음악 방송에 출연하기 위해 지상파 방송국 대기실에서 밍기적거리던 6인조 미소년.

지이이이잉-

갑자기 울리는 핸드폰 위로 [뉴블랙 선우주 형]이라는 이름을 본 휘연이 몸을 벌떡 일으켰다.

“뭐야? 뭔데?”

“뉴블랙 형들한테 전화 왔는데?”

“미국 가지 않았어?”

얼마 전에 AMA인가 하는 어워즈에 나갔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미국에 있을 이들이 왜 전화를 걸었을까.

“여보세요.”

곧이어 영상 통화 화면에 떠오른 5인조.

테이블에서 뭔가를 먹고 있는지 후루룹- 하는 소리들이 들려오고 있었다.

[안녕.]

“행님…? 뭐 뱀파이어한테 물리셨어요?”

HP가 존나게 떨어진 사람들처럼 흐물흐물해진 선우주와 졸개들이 있었다.

뉴블랙이 아니고 노(老)블랙이라고 불러야 할 것 같았다.

그런데 틴스피릿 멤버들이 건넨 말을 듣자마자 곧이어 HP가 뾰로롱 회복된 것처럼 안색이 좋아진다.

[휘연아.]

“예?”

[라면을 먹는 중인데… 김치가 있는 줄 알았는데 없다.]

우주가 초췌한 미소를 지었다.

[미안한데 계속해서 한국어로 말 좀 걸어 주라. 이게 하루 종일 영어만 들었더니 구수한 한국어가 듣고 싶어…….]

[아무 단어라도 좋으니까.]

한국어로 말을 걸라고 하니 당황스러울 때.

연후가 조심스럽게 한국어를 말했다.

“시발?”

[허어.]

10년 동안 빵만 먹다 국밥을 먹는 사람처럼 개운한 표정을 짓는 5인조.

마치 극락을 체험하는 것 같은 표정에 틴스피릿 멤버들이 눈을 깜빡거릴 뿐이었다.

하현이 말했다.

“Jonna-?”

[액센트 빼라. 하현아…….]

“예, 형님….”

이윽고 목청을 가다듬고 다시 말하는 하현.

“존나.”

[허어어어…….]

틴스피릿 멤버들이 다시 서로를 바라보았다.

“……?”

영문을 알 수 없지만, 왠지 모르게 미국에 가서 조금 이상해진 이웃집 형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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