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770화
오전 시간대.
흐느적거리며 하루 일과를 시작하고 있던 수플레들의 눈이 반짝였다.
‘와이앱이다!’
[깜짝 라이브 시작!]
뉴블랙 : 라면은 구공탄에 끓여야 제 맛
독특한 제목에 와이앱을 누르자 영상이 재생됐다.
아니.
재생되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일시적인 오류가 발생하였습니다. 다시 시도해 주세요.]
어찌나 사람이 많이 몰리는지 접속 경쟁을 한 차례 뚫은 후에야 들어갈 수 있었다.
그제야 보이는 멤버들의 얼굴.
테이블에 둘러앉아 모락모락 김이 솟는 라면을 앞에 두고 있었다.
[수플레에에에-! 우리가 왔어요!]
[예이!]
활기차게 웃고 있는데 왠지 모르게 피곤해 보이는 얼굴이었다.
비주가 머리를 쓸어 넘기며 설명을 해 주었다.
[저희 지금 호텔방에 들어왔어요. 오늘 선명주 선생님 공연과 관련해서 자선 모금 파티를 했거든요.]
수플레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끝났구나.’
국내 언론에서는 크게 보도가 안 되고 있긴 한데, SNS 상에서는 이야기가 엄청 돌고 있는 모금 파티였다.
이름만 대면 다 아는 세계 최고의 부자들, 셀럽들과 뉴블랙이 어깨동무를 한 채 찍은 사진들이 SNS에 올라오고.
우주가 직접 연주한 재즈 공연이 현장에서 엄청 반응이 좋았다는 이야기도 들렸다.
‘이거 진짜인가?’
이역만리 땅에서 그런 소식들을 지켜보는 수플레들에게는 얼떨떨한 것들뿐이었다.
왠지 모르게 거리감도 조금 느껴지고.
[야심한 밤에 잠도 안 오고 하는데 여러분이 보고 싶었어요.]
우주가 웃으며 말했다.
[파티가 얼마나 힘든지, 하면서도 라면 먹고 싶다는 생각만 들더라고요.]
[진짜. 여러분이 생각하시는 파티랑…….]
뭐라고 말을 고르지 못하는 멤버들.
리혁이 멍한 얼굴로 말을 받았다.
[체력 소모가 엄청나더라고요. 하루 종일 서 있는데, 중요한 손님 분들도 응대해야 하고.]
[흐어어…….]
어쩐지 축 늘어져 있었다.
아무래도 파티 체질은 아닌 것 같다며 촉촉한 눈으로 허공을 바라보는 이들의 모습에 팬들이 웃었다.
바로 그때 중현이 중대 사항을 발표했다.
[그런데 여러분. 저희 라면 먹는데 김치가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그 말에 한국인들이 아이고 했다.
설렁탕엔 깍두기, 짜장면엔 단무지, 라면에는 김치 아니겠는가.
[미국에 와서 너무 맛있는 요리들만 먹어서 그런가. 간만에 한국의 맛을 느끼고 싶더라고요.]
[하지만 김치가 없고….]
[라면 불겠어요. 일단 먹어요.]
라면 면발을 쪼르릅, 쪼르릅 빨아들이며 울상인 멤버들.
그러면서 오늘 파티에 있었던 비하인드들 중에 재미있었던 이야기들을 풀어내는 5인조였다.
집에 돌아와 가족들에게 오늘 있었던 일을 미주알고주알 이야기하는 듯한 분위기에 수플레들이 웃을 때였다.
-근데 오빠들 라면 두 그릇째 먹는 거죠???
누군가 올린 댓글에 멤버들이 발끈했다.
[두 그릇이라니요!]
그러면서 손가락 세 개를 폈다.
[세 그릇째거든요.]
[여러분도 예상하셨겠지만 첫 번째랑 두 번째 그릇 먹을 때는 와이앱을 켤 수 없었어요.]
[아마 방금 전 저희 모습을 보셨다면 외면하시지 않았을까.]
리혁이 지호의 티셔츠에 국물 튄 거 보라고 가리키는데, 정말로 라면 국물 자국들이 여기저기 가득했다.
그러면서 다시 왁자지껄하게 떠드는데.
눈치가 빠른 일부 수플레들은 그들의 가수가 평소와는 조금 다르다는 점을 눈치챘다.
‘음?’
한국어 댓글들이 주르륵 올라올 때마다 그것을 마치 김치를 오독오독 씹듯이 음미하는 아이돌.
[헤헷.]
수플레들이 고개를 저었다.
‘기분 탓인가.’
하지만 다시금 영어 댓글 플로우가 지나가고 한국어 댓글이 촤르르륵 올라올 때.
멤버들의 코 평수가 기쁨으로 확장됐다.
[헤헤헷.]
대놓고 말은 안 하고 있지만 한국어 댓글을 볼 때마다 ‘하아악’ 하면서 입김을 뿜어내는 5인조.
수플레들의 눈이 음험하게 빛났다.
‘뭐지. 이 이용당하는 기분은.’
‘너희 그냥 한국어 댓글 보고 싶어서 와이앱 한 거지?’
그들이 그렇게 의심할 수밖에 없는 이유.
[에헤헷.]
양 뺨에 손을 올린 새침데기가 한국어 댓글이 올라올 때마다 독특한 웃음소리를 내며 좋아 죽으려고 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팬들이 흥 하며 손가락을 움직였다.
‘귀여우니까 봐 준다.’
꿈틀대는 최애들의 모습에 수플레들이 한국어 댓글을 입력하기 시작했다.
폭증하는 댓글들!
그리고.
이런 댓글들에 대한 최애들의 반응은…….
[여러분!]
띵.
환히 웃는 지호의 얼굴을 마지막으로 화면이 꺼졌다.
[일시적인 오류가 발생하였습니다. 다시 시도해 주세요.]
팬들이 눈물을 주르륵 흘렸다.
* * *
다행히 간밤에는 잠을 좀 잘 수 있었다.
아무래도 지인들과 통화를 하고, 수플레들과 와이앱으로 만나면서 심리적인 안정감을 얻어서 그런 것 같다.
“흐아아암.”
하품을 쩌억 하면서 매니저 형들에게 웃어 보였다.
“다들 잘 잤어요?”
“죽은 듯이 잤다. 정말.”
민기 형의 말에 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요즘 들어 잠을 잘 못 자고 있었는데 어제는 진짜 푹 잤다.
“이게 영어 쓰니까 두 배로 힘든 거 같아요.”
“우리는 통역 쓰는데도 힘들더라. 그런데도 피곤한데 너희는 오죽했겠다 싶어.”
“한국어로 스케줄할 때보다 두 배는 더 힘들더라고요.”
기분 좋게 웃으며 말했다.
“그래도 오늘은 어제보다는 훨씬 낫네요. 이제야 일상이 원래의 장르로 좀 돌아온 기분이에요.”
“무슨 말인지 알겠다. 우리도 그래.”
“어제 일부러 그래서 팬들이랑 이야기하고 그랬거든요.”
어제 일이 진짜 꿈같다.
좋아서 꿈같다는 게 아니고 진짜 꿈같은 느낌이어서.
대체로 영화에 로맨스, 코미디, 액션 영화 등이 있듯이 일상생활에도 장르가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어제의 모금 파티 같은 행사는 지금까지 살아온 내 일상의 장르와는 안 어울리는 행사였다.
재미있고 좋긴 한데 로맨스 영화에서 남녀 주인공이 갑자기 첩보물을 찍는 느낌이라고 할까. 리혁이가 갑자기 헬스장에 출근해서 ‘프로틴!’ 하고 외치는 광경이 이상한 것처럼 말이다.
“현실인데 현실감 없는 느낌 뭔지 아시죠?”
“알지, 알지.”
매니저들이 공감하며 웃음을 터뜨렸다.
차량이 내 단독 스케줄 장소로 출발하는 가운데 기지개를 켜며 말했다.
“아무튼 당분간 이런 파티랑은 좀 거리를 두고 살래요. 아무래도 저랑은 안 맞나 봐요.”
차라리 동생들과 고깃집에서 콜라 잔을 짠- 하고 부딪치는 게 더 취향이다.
“우주야, 이거 봤어?”
원석이 형이 큼지막한 손으로 태블릿을 내밀었다.
거기에 영어로 어제 파티에 대한 소식이 대문짝만하게 찍혀 있었다.
[20년 만에 돌아오는 천재를 위해 역대급 모금액이 모이다.]
동생들이 노래를 부르고 내가 피아노를 치는 사진 위로 굵직한 헤드라인이 있었다.
유명 연예 잡지와 예술계 사이트에 올라온 뉴스들.
태블릿을 돌려주며 만족스럽게 웃었다.
“홍보 제대로 됐는데요?”
“제대로 된 수준이 아니라 대박이지. 이쪽 소식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모를 수 없을걸.”
“어제 하루 종일 서 있었던 보람이 있네요.”
싱글벙글 웃으며 영어권 사람들의 반응을 살폈다.
그러고는 뉴욕 시의 풍경을 바라보았다.
오늘로서 미국 스케줄도 마지막이다.
동생들이 호텔에서 KMA 연습을 하는 동안 나는 미팅을 하고, 저녁에 르블랑의 벵거 회장과 식사를 하면 정말 끝이다.
“다 왔대. 내릴 준비하자.”
독특한 사각 디자인의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오늘의 모임 장소는 뉴욕 줄리어드 음대가 있는 건물인 링컨 센터였다.
* * *
“오셨어요?”
“어, 그래. 식사는?”
“대충 햄버거 먹고 왔는데 김치찌개가 너무 먹고 싶어요…….”
“한국 가면 내가 사 줄게.”
한국에서 온 하승주 PD를 비롯해 선명주 재단의 관계자들.
「100만 달러의 주인공이 왔군요!」
「하하하!」
폴 로랑을 비롯해 어제 안면을 튼 음악계의 저명인사들과 가볍게 포옹을 하며 인사를 나눴다.
이곳은 링컨 센터의 공연장 중 하나.
링컨 센터는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극단, 뉴욕 시립 발레단 등과 함께 그 유명한 줄리어드 음대가 속해 있는 건물이다.
음대 입시 준비를 할 때 가끔 꿈에 그리던 공간이었는데 어쩌다 보니 다른 이유로 오게 됐다.
인생이란 게 참 신기해.
「그런데 여기서 회의를 해도 되나요?」
「네.」
줄리어드 음대의 재즈 교수인 레이 바클리 씨가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이 정도 인원을 수용할 모임 장소가 몇 없거든요.」
「그렇긴 하네요.」
공연장 객석에 둘러앉은 이들을 둘러보고는 무대 위로 올라갔다.
핵심 관계자들이 무대 위에 놓인 의자에 편히 둘러앉은 가운데, 나도 의자에 앉아 300여 명이 넘는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마이크를 톡톡 두드리곤 말했다.
「한국식 인사로 시작을 해야겠네요. 다들 식사는 잘 하셨나요?」
「네!」
이곳에 온 이들은 아빠의 공연과 관련된 구체적인 디테일을 조율할 사람들이다.
연주자.
프로듀서.
공연 관련 인력 등등.
업계 최고의 인물들인 만큼 이 앞에 앉아 있는 게 떨리기는 하지만 그만큼 설렜다.
「우선, 다들 소식을 들으셨겠지만 정말 기록적인 액수가 모금이 됐습니다.」
즐거운 환호성과 박수.
「그래서 기존에 예상했던 것보다 규모가 훨씬 더 커질 것 같아요. 한국, 미국, 일본, 유럽 등의 주요 도시에서만 공연했을 일정을 좀 바꿔서 전 세계 투어 형식으로 하려고 합니다.」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여러분의 고견을 듣고자 합니다. 의견 있으신 분들은 손을 들고 발언해 주세요.」
첫 번째 안건은 ‘연주자를 어떻게 선정할 것인가?’
「스케줄이 되는 연주자들이 투어를 하는 형식으로 가죠.」
「그건 물리적인 시간이 안 될 텐데?」
「각 나라의 유명 퍼포머들이 공연을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지 않을까 싶어요.」
저마다 자기주장을 또렷하게 어필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안건을 조율하고, 때로는 의견이 격하게 붙는 이들을 중재하며 결론을 하나씩 이끌어 냈다.
우선은 연주자들을 어떻게 고를지에 대한 문제.
「파트를 세 개로 나눌게요.」
유럽 지역과 미국, 그리고 서로 다른 개별 국가들.
이중에서 북미 쪽 공연을 담당할 연주자들이 한국과 일본 등에서 공연하는 것으로 합의를 보았다.
하승주 PD에게 속삭이며 물었다.
“정말 연주자들이 없나요?”
“굳이 찾으려면 있긴 있는데, 아무래도 대부분 클래식 쪽에 진출한 사람들이라.”
안타깝게도 한국 공연은 국내 인력만으로 할 수가 없었다.
아빠가 발굴한 음악인들 대부분이 클래식 음악계에 진출한 까닭에 재즈 쪽은 인력이 부족했다.
아무래도 90년대 한국 사람들의 관점에선 ‘음악을 할 거면 클래식이지!’ 하는 것이 강했던 모양이다.
물론 지금 클래식 연주자가 된 분들도 여러 방면으로 도와주려고 애써 주시긴 했지만 연주자로서 도움을 주긴 힘들었다.
그래서 결국 미국 쪽 연주자들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
「공연 일정은 어떻게 생각 중이신가요?」
내 질문에 공연 기획 전문가가 답했다.
「한국 공연을 제일 먼저 해야 하는데… 미공개 악보의 양을 고려했을 때, 아마 빠르면 1월 중으로도 가능할 것 같습니다.」
「그게 가능한가요?」
「……사실 한국 공연을 그 시기에 시작을 해야 제대로 된 공연 스케줄이 되거든요.」
스케줄을 다 빼놨다고는 해도 엄연히 본업이 있는 분들.
그 때문에 내년 하반기가 오기 전에 모두 마무리를 지을 수 있도록 한다는 모양이다.
「저야 빠르면 빠를수록 좋죠.」
공연에 자원한 연주자들에게 감사의 미소를 지어 보이고는 녹음 일정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했다.
공연을 할 때쯤 곡도 나오면 좋으니까.
그런 식으로 이야기를 나누면서 으쌰으쌰하는 분위기가 감돌았다.
다 같이 한 번 열심히 해 보죠! 하는 분위기.
그리고.
「그럼 연주자 계약을 맺으신 분들은 잠깐 이리로 오실까요?」
딱 공연을 준비할 사람들만 남은 가운데.
PPT 슬라이드처럼 악보 복사본이 하나씩 공개되면서 현장의 열기는 어마어마하게 폭발하기 시작했다.
「와.」
연주자들의 눈이 반짝였다.
다들 어제 내가 연주한 것이 맛보기였다는 사실을 깨달았는지 흥분 가득한 목소리로 웅성거렸다.
그러는 가운데.
「이런…….」
나이 지긋한 드러머 분이 이마를 짚었다. 어딘가 난처하고 골치 아픈 표정으로.
다들 즐겁고 설렌 와중에 홀로 다른 분위기에 사람들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그러세요?」
다른 연주자들의 질문에 나이 지긋한 연주자 분이 한숨을 쉬며 악보를 가리켰다.
「얼마 전에 최신 연구까지 반영하여 재즈 교과서를 집필했는데… 이 걸작들을 보고 나니 그 생각부터 드는군요.」
머리가 허옇게 성성한 연주자가 아련한 미소를 지었다.
「교과서의 해당 파트를 처음부터 다시 써야겠다고 말입니다.」
자리에 모인 연주자들이 단체로 웃음을 터뜨렸다.
그 속에서 나도 같이 웃었다.
* * *
연주자들과 주기적으로 연락을 주고받기로 약속한 후.
마지막으로 우리는 조르주 벵거 회장과의 저녁 식사를 했다.
맨해튼이 한눈에 보이는 레스토랑으로 고급진 양갈비 스테이크가 메인 메뉴였다.
「리혁 씨가 음식의 향에 굉장히 예민하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래서 이 레스토랑을 골랐죠. 정말이지 냄새 하나 안 나는 집이거든요.」
「어? 진짜네요? 향긋해요.」
한국인들이 예민한 양고기 잡내가 하나도 없는 스테이크였다.
우리가 스테이크를 열심히 써는 동안 웨이터가 우리 잔에 와인과 콜라를 채워 주었다.
그리고 르블랑의 회장이 전하는 용건들은 예상한 대로였다.
「르블랑은 언제나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조르주 벵거 회장이 달콤하게 속삭이기 시작했다.
-너희 앰버서더 재계약 언제니? 나의 치명적인 재력이 너희를 유혹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단다!
-돈! 돈! 더 많은 돈!
-얼마면 될까? 얼마면 너희의 작고 소중한 마음을 살 수 있을까?
개인 요트. 미국에서 지낼 집.
세계 100위 안에 드는 부자가 돈다발을 살랑살랑 흔들고 있었다.
처음에는 왜 100만 달러까지 쏘면서 이렇게 공을 들이나 싶었는데, 석환 형이 비밀을 알려 주었다.
-조르주 벵거 회장이 몸이 달을 만하더라. 우주 네가 패션쇼 서고 나서 의류 부문 매출이 30% 올랐대. 특히 한국에서 의류 관련 매출은 400%가 됐고.
이른바 ‘그래니 시크’라고 불리는 룩이 퍼지면서 파생 상품들의 매출이 급격히 올랐다나.
한국 시장 매출만 1조 원이 넘는 명품 브랜드의 세계 매출이 30% 올랐다고 하니 이런 행동들이 절로 이해가 됐다.
자연스럽게 벵거 회장의 생각도 읽혔다.
-한 명만 있어도 이 정도 수익인데. 나머지가 다 있다면?
그리하여 엑조디아를 모으려는 사람처럼 벵거 회장의 눈이 빛나고 있었다.
미스터리들이 하나씩 풀린다.
자기네 최고의 셀럽들만 참가시키는 멧 갈라에 각 브랜드들이 왜 나와 동생들을 넣으려고 혈안이 된 것인지.
왜 패션 업계에서 갑자기 ‘패션 아이콘!’ 하면서 띄워 주는지.
정답은 바로 돈이었다.
그런 의도를 품은 벵거 회장이 동생들을 열심히 유혹하는 한편, 나에게도 달콤한 당근을 흔들었다.
「지미.」
「네, 회장님.」
「우리 써니의 멧 갈라 의상은 잘 준비가 되고 있나? 이제 6개월밖에 안 남은 것 같던데 말이야.」
「그럼요. 하하!」
천재 중의 천재, 지미 로빈스 디자이너가 내년 멧 갈라에 입을 의상들을 스케치한 것들을 보여 주었다.
“호오오오오!”
나의 호감도가 수직으로 올라갔다.
“흐으으으음.”
동시에 동생들의 호감도가 하락하는 게 느껴진다.
그렇게 지미 로빈스와 주거니 받거니 건배까지 하면서 저녁 식사는 아름답게 마무리 지었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 동생들은 결론을 내렸다.
“패션 스타일이 안 맞는 거 같아요.”
“저런 건 좀.”
자기들이 6개월 전부터 신경 쓰고 있다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해 지미의 스케치를 보여 준 것 같은데.
아무래도 동생들에겐 역효과를 낳은 듯했다.
내가 물었다.
“이게 이상해?”
핸드폰으로 스케치를 다시 보여 주자 동생들이 ‘어?’ 하는 반응을 보였다.
리혁이가 눈을 크게 떴다.
“어? 뭐야. 괜찮은데요? 뭐지? 아까 조명이 이상했었나?”
“아.”
그런데 이번에는 내가 보기에 뭔가 이상하다.
근사했던 옷이 갑자기 별로였다.
“아. 잠깐만.”
내가 스케치를 거꾸로 들어 보였다.
“거꾸로 들고 있었다.”
“…….”
리혁이가 입을 연 채로 석상이 된 가운데 막내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저는 절대 르블랑이랑 계약 안 할 거예요.”
“야, 김비주. 멧 갈라라는 거 꼭 같이 입장해야 되는 거 아니지? 우주 형이랑 따로 들어가도 되나?”
“으음, 그래도 같이는 가야 하는데… 그래도 저건 좀…….”
냉혹하게 고개를 젓는 동생들을 바라보며 먼 하늘을 바라보았다.
‘나의 치명적인 재력!’ 하면서 하하핫! 웃고 있을 르블랑의 회장님에게 조용히 사과를 건넸다.
죄송해요. 회장님.
아무래도 동생들을 꼬시는 건 실패한 것 같아요.
-아니 그럼 내 100만 달러는…!
어디선가 들려오는 듯한 환청을 외면하며 멀찍이 다가오는 JFK 공항을 바라보았다.
한국행 비행기가 기다리고 있는 곳.
그런데.
“으음?”
조르주 벵거 회장님 때문인가?
갑자기 왜 이렇게 뒤통수에 서늘한 느낌이 드는지 모르겠다.
* * *
뉴블랙이 한국으로 떠나고 있을 때.
여기 덕업일치를 이뤄 행복한 대학원생이 하나 있었다.
‘음음~’
가방에 걸린 키링에 뉴블랙 멤버들의 미니미 인형이 흔들리고 있었다.
룰루랄라 복도를 걷는 대학생.
‘드디어 끝이다!’
줄리어드에서 재즈 분야 석사 과정을 수료 중인 소냐 애덤스가 졸업 논문을 들었다.
[선명주의 음악에 담긴 자유개념과 미학에 대하여]
그녀가 이 주제를 고른 이유는 간단했다.
‘우주의 아버지!’
덕질을 깊게 파고들면서 최애의 아버지가 유명 재즈 음악인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우주의 아버지도 역시 아들만큼 대단했다.
과거의 영상을 보며 매료된 소냐는 곧바로 논문 주제를 ‘선명주’로 정했다.
“바클리 교수님?”
“들어와.”
뚱뚱한 풍채의 레이먼드 바클리 지도 교수가 안경을 쓴 채 무언가를 보고 있었다.
문을 열어 둔 채 그녀가 들어섰다.
“졸업 논문을 드디어 완성했습니다!”
“호오. 선명주 씨에 대한 그 논문 말이지?”
“넵!”
하지만 레이먼드 바클리 교수는 그녀의 논문을 펼치지도 않았다.
대신, 무언가 굉장히 난처한 표정으로 안경을 벗은 채 마른세수를 할 뿐이었다.
“있잖아, 소냐.”
“네, 교수님!”
“선명주 씨에 대한 논문 말인데… 이거 1999년도까지 기준이지?”
“당연… 하죠? 1999년에 작고하셨으니까.”
“얼마 전에 새롭게 공개된 악보들에 대한 이야기는 들어 봤지? 그 전까지와 또 음악 색채가 완전히 달라. 교과서를 다시 써야 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야.”
20년 후의 트렌드를 예측한 천재의 악보가 대거 공개되었다는 모양이다.
실시간으로 흙빛이 되어 가는 제자의 표정에 바클리 교수가 말했다.
“논문을 아무래도 다시…….”
“…….”
“유감이지만 그래야 할 것 같네.”
최애의 아버지를 주제로 논문을 쓴 수플레 소냐 애덤스.
얼마 안 가 지도 교수의 방에서 나온 그녀가 ‘Noooo-!’ 하며 복도에 주저앉아 절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