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778화
뉴블랙이 레몬 엔터의 대주주가 되었다는 소식은 빠르게 퍼져 나갔다.
-[속보] 뉴블랙, 레몬 엔터 대주주 된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보인 반응은 비슷했다.
‘아직도 안 받았어?’
마치 지분을 가진 사람처럼 미친 듯이 활동을 하는 까닭에 이미 지분이 있는 줄로 오해하고 있는 이들이 태반이었다.
-진짜 받을 만해..ㅋㅋㅋㅋ
-워; 뉴블랙 들어오고 나서 매출이 지금 4배가 됐네
-매출 네 배 시켜 주면 지분 드려야지
-저건 지분을 주는 게 아니고 드리는 거임ㄹㅇㅋㅋㅋㅋ
-왜일케 당연히 줘야될 거 같지ㅋㅋㅋ
100억 매출을 올리는 회사가 몇 년 만에 400억 매출이 됐다면 사람들은 그것을 어마어마한 성장이라고 불렀을 것이다.
그런데 수백억 매출의 회사가 고작 3년 만에 4배가 되어 수천억 매출을 올린다면?
어마어마하다는 말로도 모자란 업적이었다.
‘그런데 지분을 얼마나 받은 거지?’
호기심을 품은 사람들의 눈에 기사 전문에 있는 ‘멤버당 전체 지분의 4%’라는 소식이 들려온다.
사오는 이십.
자연스럽게 계산을 마친 이들이 결론을 내려놓았다.
-결론: 우주선 20퍼센트
-졸개들의 의결권 따윈 없다ㅋㅋㅋㅋㅋㅋㅋ
-???: 형 의결권이 뭐예여? / ???: 나한테 주면 되는 거야 / 넹!
-음성지원 ㅁㅊㅋㅋㅋㅋㅋㅋㅋ
-나같아도 선우주가 뭐 한다고 하면 무조건 찬성함ㅋㅋㅋㅋ
-오너일가 뉴블랙 탄생이네ㅋㅋㅋㅋㅋ
-ㅇㅈ 피로 이어진건 아니지만 돈으로 이어졌다
분명히 20퍼센트를 5분의 1씩 나눠가지긴 했는데 왠지 모르게 선우주가 20퍼센트로 보이는 착시현상이었다.
그러면서 커뮤니티에 유머글이 퍼졌다.
[레몬 엔터 망조 들었네.. 라고 써]
(독재자가 컴퓨터를 하는 군인 옆에서 훈수를 두는 사진.jpg)
대충 현 시각 프로듀싱팀 상황.JPG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불법적으로 일을 시키는 상사에서 이젠 합법적인 상사로 진화
-대주주(20프로)
-프로듀서들은 눈물날만 하지ㅋㅋㅋㅋㅋ
-저런.. 다들 너무 안 됐군요..
-선생님 입가를 내려 보십시오. 입꼬리가 씰룩이십니다
-악독한 왕세자가 진짜 왕으로 집권ㅋㅋㅋㅋ
-??? : 주인님이라고 불러보세요
실제로도 레몬 엔터의 프로듀싱팀과 A&R팀 직원들은 망연자실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대주주…….”
“아니, 대표님은 왜 이런 결정을…….”
“너무 신경 쓰지 마요. 어차피 지분 없었을 때도 괴로웠는데, 지분이 생긴다고 뭐 달라질까요.”
“그건 그렇긴 해.”
“우주가 갑자기 반말하면 어떡하죠? 저 존댓말 나올 거 같은데.”
예나 지금이나 똑같이 갈릴 운명이라는 것을 직감한 프로듀서들이 하하하 웃음을 터뜨리는 한편.
뉴블랙이 지분을 받았다는 소식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바로 증권가였다.
[뉴블랙이 지분을 보유한다는 것은 레몬 엔터의 가장 큰 리스크가 사라졌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런 보고서를 작성하는 애널리스트들.
최근 들어 레몬 엔터가 TV 사업, 컨텐츠 제작 등으로 분야를 넓혀가고 있지만 아직은 초창기 단계일 뿐.
엄연히 회사의 주력 사업은 뉴블랙 그 자체였다.
그랬기에 뉴블랙이 ‘안녕히 계세요~! 저는 이 세상의 속박과 굴레를…!’ 하면서 떠나면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되는 상황인데, 이번에 지분을 대거 건네주면서 그 문제가 해결이 됐다.
안 그래도 수익성이 좋은 상품에 리스크까지 없다?
주목할 만한 매물이었다.
그 때문에 증권가는 물론이고 주식에 발을 담그고 있는 사람도 눈여겨보는 중이었다.
-레몬 엔터는 상장 안하냐???
-국민연금: 할짝
-지금 국민연금 레몬 엔터 문 앞에 서 있을듯
-뉴블랙 코인 타게해 주세요ㅠㅠㅠㅠ
-살 돈은 있고?
-비겁하게 팩트로 승부하지 마라 개샛갸
-제 주식 인생 30년을 걸고 말할 수 있습니다. 레몬 엔터 상장하면 상한가 세 번 칩니다.
-선생님 근데 주식인생 30년이신 분이 왜 여기 계신가요
-제가 잘하면 30년이나 했겠습니까..
-아앗ㅠㅠㅠㅠㅠ
주식 관련 사이트에도 ‘레몬 엔터’가 검색어에 오르고.
경제와 증권 채널에서도 뉴블랙의 지분 취득 소식과 함께 레몬 엔터에 대한 언급이 나오고 있었다.
[블록체인에 대한 이야기는 여기까지 하고, 다음은 레몬 엔터 소식인데요.]
[레몬 엔터가 최근 공격적으로 사업을 확장하고 있거든요. 콘텐츠와 미디어 사업으로 확장을 하는데…….]
[아유. 상장만 한다면 대박이죠. 상상상! 그야말로 치솟을 겁니다.]
하지만 그렇게 군불을 지피는 소식에 찬물을 끼얹듯 레몬 엔터가 해당 추측에 입장을 밝혔다.
-레몬 엔터, 내년 상장설에 “상장계획 無.. 추측성 보도 삼가달라”
내실을 다져야 할 시기이므로 상장을 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힌 레몬 엔터.
합리적인 결정이었다.
상장을 하게 되면 그다음부터는 회사의 모든 역량이 주가에 초점을 맞추게 되니까.
온갖 주주들과 외부 관계자가 유입되는 기업공개.
무엇인가 로드맵을 가지고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상황에서 회사를 상장하는 것은 좋은 선택지가 아니었다.
‘나중에 상장하면 사야지.’
주식을 하는 이들이 그런 생각을 하며 머릿속에 레몬 엔터를 기억하는 한편.
아이돌 팬들이 모인 커뮤니티에도 주식에 대한 이야기가 오르내리고 있었다.
[실시간 TJ 엔터 주가]
(붉은 글씨로 쭉쭉 올라간 그래프.jpg)
박태준 퇴임식 끝나자마자 쭉쭉 올라감ㅋㅋㅋㅋㅋ
-ㄹㅇ 돈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진짜 공도 많고 과도 많은 영감탱이
-아 근데 한영준도 잘할지는 모르겠는데; 솔직히 관리직에 최적화된 거지 감 뛰어난지는 모르겠음
-난 요즘에 텐티가 너무 아까움.. 영감탱이 상술만 아니었으면 지금도 현역인데
-뭐 그래도 영감님 덕분에 빌딩도 사고 잘 살자너ㅋㅋㅋㅋ
-팬덤 입장에서 아쉬운 거지 돈만 따지면 역대급으로 쓸어 담긴 했음; 멤버들 지금 빌딩이 몇 개야
박태준 회장의 역량이 어떻다, 신임 CEO가 어떻다 하는 평론들이 갑론을박처럼 오가는 가운데.
대체로 박태준 회장이 왜 퇴임을 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모두가 비슷한 추측을 하고 있었다.
-백 퍼센트 배아픈거ㅋㅋㅋ
-우주선 방출의 업보가 깊다 영감탱ㅋㅋㅋㅋㅋㅋ
-선우주 텐티 데뷔조라는 썰 있지 않았나?? 그대로 데뷔시켜놨으면 지금 잭팟쳤을 텐데
-저 영감님이 그렇게 길게 보는 사람이 아님ㅋㅋㅋㅋ
-선명주씨 공연 예고뜬 뒤로는 더 미스테리임;; 않이 왜 방출하신건데요
-진짜 연예계 3대 미스터리중 하나임
우주의 과거 춤 실력에 대해 모르고 있는 이들이 올리는 댓글에 어느 전 회장이 부들부들하고 있을 때.
뉴블랙의 지분 보유 소식은 오프라인에서도 흘러나오고 있었다.
“뉴블랙이 주식 받았다면서?”
“엄청 많이 줬던데. 원래 연예인한테 대표가 그렇게 많이 주고 그러나?”
“그 대머리 사장 욕심이 가득해 보이던데. 주고도 아까워서 잠 못 자겠어.”
주변 어른들이 그런 이야기를 하며 이러쿵저러쿵하고 있었지만.
진실을 알고 있는 수플레들은 조용히 미소를 짓고 있을 뿐이었다.
어느 SNS에 올라온 직캠 프리뷰.
[대머리 남캐 홀릭]
@Mu_mu_holic
171208 박규호 출근길 프리뷰
출근길에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표정으로 웃고 있는 박규호 대표.
얼마 전까지 집에 우환이 있는 사람처럼 시무룩하게 다니던 이가 온 세상을 환히 비추고 있었다.
‘행복하구나. 규호쨩.’
수플레들이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다가…….
곧바로 멈칫했다.
“음?”
너무나 자연스러워서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던 사실이었다.
‘근데 규호한테 왜 홈마가 있는 거지?’
* * *
우리의 지분 보유 소식이 꽤 이슈가 된 모양이다.
지금도 실시간 검색어에 ‘졸개 지분’, ‘우주’ 같은 검색어가 떠 있었으니까.
“흐아아암~”
기지개를 쭉 켜고는 녹음 부스에 서서 몸을 풀었다.
방금 전까지 중현이가 써서 살짝 높아진 마이크 높이를 내리고, 아이스 초코를 한 모금 들이켰다.
스피커를 통해 나상윤 팀장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준비되셨습니까, 주인님.]
방음유리 너머로 공손한 표정을 짓는 프로듀싱팀 팀장의 모습에 웃음을 터뜨렸다.
“그만 놀려요. 피디님.”
[대주주이신 분을 어찌 제가 놀리겠습니까.]
은근히 즐기는 표정으로 놀리는 이에게 눈을 흘겨 주었다.
어제부로 레몬 엔터의 새로운 대주주로 등극하긴 했으나 딱히 내 일상에선 달라진 게 없었다.
굳이 차이점이라면 톡으로 [대주주님, 저도 지분 주세요] 하는 친구들의 장난 섞인 문자 정도.
[준비됐어?]
“네.”
[2번째 파트부터 먼저 갈게.]
“그 전에 헤일리가 부른 파트부터 먼저 들려주시겠어요? 전체적으로 스케치 한 번 하게요.”
[네. 알겠습니다요.]
고개를 까딱까딱하면서 흐름을 잡고는 가사지에 쓰인 영어를 읽으며 성대근육을 조절했다.
영어 노래는 또 영어에 맞는 발성이 있으니까.
헤드폰에서 흘러 들어오는 멜로디를 들으면서 작게 감탄사를 내뱉었다.
역시.
미국 최고의 싱어송라이터가 쓴 곡답게 경쾌한 팝 사운드가 인상적인 곡이었다.
가사지에 쓰인 제목이 눈에 들어온다.
[Haley Blue - Popsicle! (feat. The New Black)]
지금 듣고 있는 곡은 우리가 헤일리에게 피처링을 약속했던 바로 그 곡이었다.
내년도에 발매할 앨범의 수록곡 중 하나인데 선공개하는 싱글 중 하나가 될 거라고 들었다.
미국의 앨범 발매 방식이 그렇다나.
좋은 곡을 먼저 리드싱글로 공개해서 몇 달 텀을 두고 그다음에 앨범을 공개하는데 이번에 녹음하는 곡은 그중에서 두세 번째 순서로 공개할 곡이라고 했다.
그 때문인지 퀄리티가 몹시 좋다.
Baby
it’s time to say goodbye
리혁이의 여자 버전이라고 해도 될 만큼 맑고 투명한 목소리가 상쾌한 보컬로 부르는데.
목소리에서 윤기까지 느껴진다.
푸른색으로 진동하는 소리들을 느끼며 노래의 심상이 머릿속에 자연스럽게 구성이 된다.
알록달록한 색채로 이루어진 세상.
젤리 같은 주민들이 푹신한 스펀지 케이크 위에서 통통 튀어다니고 있고, 하늘에선 불꽃놀이 대신에 사탕들이 팝! 팝! 소리를 내며 터진다.
그런 것들을 상상하면서 자연스럽게 내 파트의 흐름을 탔다.
삼. 이. 일.
Pop pop pop
You’re my popsicle
후렴구의 ‘팝’에 동글거리는 발음을 넣어서 부드럽게 입술을 튕겼다.
[좋았어. 넘어갈까?]
“아뇨.”
조금 더 완벽하게 할 수 있을 거 같다.
“한 번 더 갈게요.”
[OK.]
녹음 과정은 순탄했다.
“또 한 번.”
[OooK….]
“딱 마지막으로 한 번이요.”
[…….]
완벽한 녹음 퀄리티가 나올 때까지 녹음을 하고는 부스에서 빠져나왔다.
“화이팅.”
“디렉팅 좀 잘해 줘요.”
리혁이와 바톤 터치를 하고는 자리에 앉았다.
헤일리에게 피처링을 해 주는 곡은 나와 대부분의 멤버들이 후렴에 화음을 쌓아 부르고, 리혁이가 몇몇 파트를 부르는 곡이었다.
“리혁아. 이거 헤일리가 딸한테 들려주겠다고 쓴 곡이야. 그거 감안해서 조금 부드럽게 부르자.”
[네.]
“잘 모르겠으면 지호한테 들려준다는 마음으로 불러.”
“아, 형!”
[조용히 해요!]
동시에 발끈하는 막내 라인에게 에베베 해 주고는 녹음에 들어갔다.
지금까지 너무 섹시하거나 메시지가 강하거나, 염세주의적인 곡을 불렀다면서 이번에 좀 부드러운 곡을 불러보겠다는 헤일리의 의도에 맞춰 세세한 부분을 컨트롤했다.
리혁이는 보컬 중에서도 디렉팅에 따라 결과물 편차가 큰 편이라 특히 더더욱 세심하게.
1mm 방향을 틀어도 원래 방향과 10km 오차가 나는 우주비행선 같다고 할까.
우리 애가 그만큼 노래를 잘 불러서 그렇다.
다행히 녹음은 금방 끝났다.
“고생하셨습니다.”
“어어, 수고했어.”
“녹음본은 정리해서 헤일리 블루 측 에이전시에 전달 부탁드릴게요.”
“오케이.”
짐을 챙기고는 스트레칭을 하는 우리에게 나상윤 팀장님이 질린다는 표정을 지었다.
“안 쉬고 바로 연습실 가게?”
“네.”
“살살 해. 그러다 또 위염으로 쓰러질라.”
“그래도 이제는 좀 여유롭긴 해서요.”
그래미 어워즈는 무대 없이 몸만 가면 되고.
월드 투어를 돌 때처럼 하루 종일 콘서트 연습을 할 필요도 없고.
적당히 밤샘만 해서 준비하면 되는 연말 방송 3사 무대를 제외하면 특별한 스케줄이 없었다.
걱정스러운 기색으로 바라보는 나상윤 팀장님에게 우리가 웃어 보였다.
“저희 최근에 진짜 여유롭거든요.”
“그나마 중요 행사 중에서 가장 가까운 게 평창 올림픽인데 그것도 2월 말에 폐회식이니까…….”
“저희 진짜 별일 없어요.”
하지만 중현이의 말이 들린 그 순간이었다.
지이이이잉-
“…….”
“…….”
[수학귀신]이라고 적힌 우리 TF팀장님의 발신자 명이 내 핸드폰 위로 떠올랐다.
삐걱.
내가 고개를 돌리자 곰 같은 얼굴이 강조했다.
“우연이에요. 형.”
“…….”
“진짜 이건 우연이에요.”
아무도 안 믿었다.
* * *
“축하한다. 우주야.”
석환 형이 내 손을 덥석 붙잡았다.
“개회식이야!”
“…….”
“평창 올림픽 개회식!”
“…….”
행복함에 눈물이 주룩주룩 나오려고 한다.
아. 행복하여라~
선우주는 행복합니다. 여러분!
“왜 그래? 좋아서 그런 거야?”
“응. 너무 행복하네…….”
처음에는 이제 좀 휴식을 한다고 좋아했는데, 그러자마자 새로운 일거리가 또 나를 찾아왔다.
그래도 행복하다는 건 거짓말이 아니었다.
“진짜 개회식?”
“그래!”
석환 형이 환한 얼굴로 말했다.
“조직위에서 개회식 무대에도 설 수 있냐고 연락이 왔다니까. 일단 OK라고 답을 하긴 했는데.”
“잘했어. 이건 무조건 해야지.”
올림픽에서 개막식과 폐막식 중에 중요도를 고르라면 무조건 개막식이다.
폐막식에 화려한 팝 가수들이 많았던 런던 올림픽에서도 개막식에 나온 가수는 비틀즈 정도뿐이었으니까.
물론.
아마 나를 대중음악 가수로서 부르는 것은 아닐 것 같다.
“우리 아빠랑 연관된 거지?”
“맞아.”
석환 형이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자세한 기획안은 아직 못 받았는데, 아마 선명주 씨의 곡이 흘러나오고 네가 거기에 피아노 곡을 연주하는 것 같아.”
“연습 엄청 해야겠네.”
“아버님의 곡이 먼저 나오고, 거기에 네가 뉴블랙의 곡 중 하나를 피아노 버전으로 답가로 연주하면 어떠냐고 하더라.”
좋은 아이디어였다.
“꼭 뉴블랙 곡이 아니어도 상관없고. 그 외에 자작곡이나 아니면 다른 좋은 곡이 있으면 이야기를 해 달라는 요청이었어.”
“한 번 찬찬히 생각을 해 볼게.”
그러고는 석환 형에게 물었다.
“내 단독 무대인 거지?”
“응.”
“근데 개회식이 언제야? 2월 초였던 거 같은데.”
“2월 9일이야.”
달력을 내년으로 넘기고 확인한 석환 형의 대답에 시간 계산을 했다.
정확히 딱 두 달.
분량상으로 3분 정도 될 텐데, 아무리 중요하다고 해도 그 정도 분량의 무대를 준비하기에 두 달은 충분한 시간이었다.
“좋은 기회네.”
아빠 공연을 좀 더 홍보할 수 있는 기회기도 하고.
올림픽의 개막식은 가수로서 설 수 있는 영예로운 무대 중 하나였다.
“참.”
석환 형이 말했다.
“이번에 뉴욕 다녀오지 않아? 거기서도 아이디어 구하면 되겠다.”
“응. 마침 잘 된 거 같아. 동생들 의견도 듣고, 뉴욕 가서 사람들 의견도 한 번 들어 보고 결정하지 뭐.”
이번에 뉴욕에 하루 정도 가서 재즈 앨범 녹음에 대해 코멘트를 해 줄 예정이었다.
거기 있는 재즈계의 거장들에게 의견을 구해 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고는 TF팀 사무실을 떠났다.
어느덧 밤 시간.
삼삼오오 뉴리단길의 야식을 먹으러 떠나는 회사 직원들에게 손을 흔들어 주며 복도를 거닐었다.
“안녕하십니까!”
“네, 안녕하세요.”
“인턴 정! 우식! 입니다!”
꼭 회사 CEO를 대하는 것처럼 부담스럽게 인사하는 직원 분에게 그러지 말라고 손사래 쳤다.
내가 무슨 회사 오너도 아니…….
“맞네.”
“네?”
“아니에요. 아무것도.”
직원을 보내고 나서 복도를 다시 돌아보았다.
문이 열린 틈으로 보이는 사무실들.
텅 비어 있는데 불이 켜진 회의실을 보고는 들어가서 바로 불을 껐다.
“에헤헷… 꺄륵!”
근엄한 미소가 절로 나왔다.
“이게 바로 대주주의 마음인 건가.”
회사의 비품을 왠지 모르게 소중히 대해야 할 것 같고, 불이 켜진 화장실을 보면 불을 꺼야 될 것 같고.
텔레비전에 내가 나왔으면 정말 좋겠다는 동요를 부른 뒤에 진짜로 TV에 나왔을 때처럼.
회사가 내 것이 된 기분은 참으로 오묘하고 좋았다.
그런 인자한 마음으로 휴게실로 향하니 졸개들이 청소를 하고 있었다.
“뭐 해?”
“휴게실이 너무 더러워서요.”
“아니, 안 하던 청소를 왜…….”
라고 말하던 나는 깨달았다.
‘그렇군.’
끄덕.
‘우리의 것이니까요.’
끄덕.
동생들과 훈훈한 웃음을 교환하고는 자리에 앉았다.
소파에 앉으려는 내 스웨터에 묻은 먼지를 리혁이가 돌돌이로 돌돌돌하는 한편.
“시작했어?”
“아뇨. 아직.”
비주가 사과 주스를 내밀며 말했다.
“지금은 광고 중이에요. 근데 광고가 엄청 많은가 봐요.”
“오.”
휴게실 TV에 나오는 PBS 채널의 로고 아래로 곧 방영하는 다큐멘터리의 제목이 떠올라 있었다.
[PBS 특집 다큐 : 그는 마치 태양과 같았으니 <1부>]
저번에 내가 인터뷰를 했던 프로그램이자 음악인 선명주의 일생을 조명한 다큐멘터리.
우리 아빠에 대해 잘 모르는 요즘 사람들에게 음악인 선명주가 누구인지 소개해 줄 프로그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