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781화
나는 억울하다.
분명히 윈스턴 로스 선생님이 유리잔을 가리키면서 ‘이걸로 연주해 보게’라고 해서 시키는 대로 했는데.
「하하하!」
지팡이를 짚은 노인이 웃음을 터뜨렸다.
목젖이 보일 만큼 크게 웃던 윈스턴 선생님이 고개를 흔들었다.
「세상에 어떤 바보가 유리잔으로 연주하란다고 연주를 하나? 나는 누가 시킨다고 해도 못 하겠군.」
「그러니까요. 이게 되나?」
다른 연주자들도 맞장구를 치며 유리잔이 가득한 테이블로 다가왔다.
손가락으로 톡톡 치면서 연주를 시도하더니 어렵다고 혀를 내두르는 이들.
「어렵네.」
「역시 아무나 되는 게 아니었나.」
그런 대화를 중얼거리면서 나를 힐끗 바라본다.
아까와 확연히 달라진 시선이었다.
마냥 귀엽게만 바라보던 분들이 지금은 대등한 눈높이에서 나를 바라보는 듯하다고 할까.
「일단.」
카밀라 베이커가 두툼한 손으로 색소폰을 들고 내게 말했다.
「피아노로 가서 앉아 봐요. 우주.」
「넵.」
「뭔가 나도 감이 살살 오는 거 같으니까. 한번 연주를 같이 해 보자구요.」
좋은 비하인드 감이라고 생각했는지 우리 매니저들이 핸디캠을 들어 촬영을 시작했다.
내가 피아노 의자에 앉는 동안 연주자들이 재빨리 자기 자리를 찾는다.
비브라폰 연주자가 금속 막대를 들고, 드럼 연주자가 하이햇을 다시 조정했다.
“어디 보자.”
곡을 쓰기 전에 여기 있는 사람들의 면면을 바라보며 핸드폰에다 이름을 하나씩 적었다.
연주를 기다리던 이들 곁에 서 있던 윈스턴 로스가 물었다.
「자네 지금 뭐 하고 있나?」
「저작권 문제 때문에요. 연주에 참여하신 분들의 성함을…….」
「우우우우!」
흥분해서 기다리던 연주자들이 야유했다.
「그런 건 필요 없다니까!」
「얼른 연주나 해요!」
「쓸데없이 꼼꼼한 성향까지 닮았어. 누구 아들 아니라고 할까 봐.」
얼른 이 영감이 사라지기 전에 연주를 해야 한다며 재촉하는 이들에게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곤 건반 위에 양손을 올렸다.
아까 유리잔으로 연주할 때는 부족한 음계도 있어서 제대로 재현하기 힘들었는데, 지금은 제대로 연주할 수 있을 것 같다.
「잠시만요.」
피아노 연주에 앞서 재즈에 쓰이는 코드들을 누르며 손가락을 풀었다.
그러는 동안에도 흥을 주체하지 못한 연주자들이 치는 드럼과 색소폰 소리가 치고 들어온다.
나도 모르게 흥이 서서히 올라온다.
왜 재즈 연주자들이 솔로 연주를 할 때 몰입해서 미친 듯이 피아노를 치거나 드럼을 치는지 알 거 같다.
이렇게 장단을 찰떡같이 맞춰주는데 누가 안 신날까.
「그럼 시작할게요.」
곧바로 방금 떠올린 멜로디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재즈는 아니었다.
작곡가마다 스타일이 다르기 때문에 내가 떠올린 멜로디는 재즈와는 거리가 있었다.
같은 달리기라고 해도 마라토너와 단거리 선수의 달리기 방식이 다르듯이 내 멜로디는 대중음악 쪽에 가까웠다.
하지만 이 사람들이 그걸 재즈로 만들어 주고 있었다.
‘우와.’
우리 매니저 중 하나가 입 모양으로 감탄하는 게 보인다.
내가 건반을 부드럽고 경쾌하게 누르는 동안 그 공백과 틈을 비집고 악기들이 들어온다.
이미 한 차례 들은 멜로디여서 그런지 합이 척척이다.
클래식 음악이 아름다운 이야기를 관객들에게 읊조리는 느낌이라면 재즈는 악기들끼리 대화를 나누는 느낌이다.
「잠깐 숨 좀 돌려보게.」
내 어깨에 손을 올린 윈스턴의 말에 잠시 피아노에 올린 손을 멈추고 반주로 바꿨다.
곧바로 내가 방금 연주한 멜로디에 대응하듯이 트럼펫 솔로가 나온다.
내가 들려준 이야기에 자기 이야기를 들려주는 느낌.
「자, 이제 돌아가게.」
등을 살짝 미는 손짓에 나도 가볍게 연주를 이어 갔다.
그렇게 정신없이 5분 정도가 지나갔을까.
피아노 건반에 올린 손을 내려놓은 채 다른 연주자들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스튜디오에 진한 여운이 감돌았다.
「이건 정말…….」
트롬본 연주자 CJ가 웃으며 말했다.
「끝내주는 곡이네요.」
방금 전의 즉흥 연주에 만족한 얼굴의 연주자들과 함께 즐거운 웃음을 터뜨릴 때였다.
퉁. 퉁.
지팡이를 쳐서 유리창 너머의 엔지니어를 부른 윈스턴 로스 선생님이 물었다.
「녹음은 됐나?」
-네.
「한번 들어보자고.」
전체 스피커를 통해 음악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와…….”
정말 내 생각을 뛰어넘는 결과물이었다.
수만 번의 연습 끝에 나오는 녹음도 멋지지만, 즉흥 연주만이 주는 매력이 느껴진다.
「제목은 정했나?」
윈스턴 로스의 말에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Question에 대한 곡이니까… 당연히 Answer요.」
「Answer.」
재즈계의 거장이 고개를 끄덕이곤 내게 웃어 보였다.
「좋은 곡을 만든 것을 축하하네.」
* * *
연주자들이 즐거운 미소를 지었다.
‘재미있었다.’
즉흥 연주에 관해서 누구보다 진심인 재즈 음악인들이 신이 나서 제안했다.
“몇 번 정도 더 해 볼까요? 더 좋게 살릴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럴까?”
그런 말에 우주가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그럴 필요 없어요. 다들 너무 피곤할 텐데 여기까지 하고 마무리하는 게 어때요?”
“어허!”
“말도 안 되는 소리!”
“시작을 했으면 끝을 봐야지!”
완벽한 결과물이 나올 때까지 포기하지 않겠다는 결연한 다짐을 보이는 이들이었다.
카밀라 베이커가 색소폰 리드에서 입술을 떼고 말했다.
“편히 생각해요. 우리도 즐거워서 하는 일이니까.”
“그런가요.”
우주가 그들에게 미소를 지었다.
“감사합니다. 정말로.”
그리고 연주자들은 이상한 것을 목격했다.
있는 힘껏 도와준다는 말에 우주의 입꼬리가 싸악 말려 올라간다.
‘음?’
어딘가 음험한 미소에 흠칫한 연주자들이 눈을 깜빡였을 때, 그 미소는 어느새 사라져 있었다.
왠지 모르게 월척을 낚아 올린 낚시꾼 같은 표정.
처음에는 헛것을 보았나 의심을 하던 연주자들이 이내 머릿속을 뒤적이고 경악했다.
‘잠깐만.’
저 위로 그림처럼 겹쳐 보이는 얼굴이 있었다.
하도 오래 전 일이라 지금은 추억만 남아 있지만 선명주가 남긴 것은 추억만은 아니었다.
-어디 한 번 연습을 좀 해볼까? Torture라고 한 사람 누구야? Practice라고 해야지.
-하하하! 즐겁지? 즐겁지? 즐겁다고 어서 말해.
-재능은 소중한 거야. 그 소중한 보석 같은 재능을 아껴두는 것은 옳지 않은 일이란다.
다양한 방면으로 선명주를 접했던 그의 아이들이나 동료, 선후배들이 흠칫하며 몸을 떨었다.
그러고는 고개를 저었다.
‘에이~ 잘못 봤겠지.’
아무리 유전자가 이어졌다고 해도 아버지의 녹음 과정을 지켜보지도 못한 아들이 똑같을 확률이 얼마나 될까.
연주자들이 그런 생각을 하는 동안 우주가 매니저와 뭐라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무슨 이야기를 나눈 거예요?”
드럼을 맡은 레이먼드 어윈의 질문에 우주가 답했다.
“비행 일정을 하루 미뤘어요.”
“아.”
“처음에 티켓 예매를 다시 해 달라고 했는데 알고 보니 제 전용기더라구요. 하핫. 여러모로 일이 편하게 됐네요.”
“아하, 그렇군요.”
…라고 대답하던 레이먼드 어윈이 멈칫했다.
‘음?’
그가 물었다.
“비행기를 왜 하루 미뤘나요?”
“…….”
말없이 웃는 팝스타의 모습에 재즈 음악인들의 등골이 서늘해지기 시작했다.
* * *
강원도 평창.
동계 올림픽을 2개월가량 남기고 올림픽 조직위는 오늘도 바쁘게 준비를 하는 중이었다.
“바람이 몇 미터라고?”
“오늘 초속 18미터랍니다.”
“…….”
무전기를 든 김익환 감독이 헛웃음만 터뜨렸다.
“바람에 날아갈 수 있으니까 LED 패널은 나중에 보기로 하고. 봉사자들도 잠깐 대기하라고 해.”
“예.”
“이거 바람이 잠잠해지든지 해야지. 나 원 참.”
평창 올림픽 스타디움이 한눈에 훤히 들여다보이는 유리창.
스타디움 꼭대기의 컨트롤 룸에 선 김익환 감독이 후우우웅- 들려오는 바람을 보며 한숨을 쉴 때였다.
“감독님.”
“어? 왜.”
“우주 씨가 메일을 보냈어요.”
다른 사람들에게 안 들리도록 구석으로 간 김익환 감독이 스탭에게 물었다.
“메일을 보냈다고?”
“저번에 말씀하셨던 곡 관련인 것 같더라고요.”
“곡?”
온갖 다양한 사안이 머릿속에 떠다니는 까닭에 말을 이해하는 데 시간이 꽤나 걸렸다.
‘아! 그거구나.’
선명주의 마지막 공연이 이슈가 되면서 올림픽 주최 측이 특별히 준비하기로 결정한 무대였다.
기나긴 회의 끝에 나온 제안.
-과거 국민 스타와 지금의 국민 스타를 연결하는 거죠! 88년도 올림픽과 18년의 올림픽을 연결하는 느낌으로요. ‘과거와 현재의 연결’하면 좋은 테마가 되지 않을까요?
그런 아이디어가 나오면서 천만 영화를 찍은 명감독의 머릿속에 구상이 떠올랐다.
아버지의 곡을 연주하는 아들.
이어서 자신의 곡도 연주하면서 본격적인 올림픽 개회식이 진행된다.
그가 생각한 것은 뉴블랙의 곡 중에서 상징성이 있고, 또 피아노로 옮겼을 때 근사한 곡.
“어디 보자.”
개인 사무실로 돌아온 김익환 감독이 노트북을 켰다.
하루 만에 안 읽은 연락 수백 개가 쌓인 복잡한 메일함.
그 속에서 레몬 엔터가 보낸 메일을 클릭했다.
“음? 자작곡이라고?”
근처에 있던 개회식 연출 감독과 주요 관계자들이 물었다.
“자작곡이래요?”
“그런가 봐. 우주 씨가 아버지 미공개 곡이랑 자기 곡을 보냈어.”
“아…….”
관계자들이 미묘한 미소를 지었다.
‘좋아야 할 텐데.’
아버지가 쓴 미공개 곡이야 당연히 좋겠지만 우주가 쓴 피아노 곡에 대해선 미묘한 기분이 든다.
작곡 천재라 하여 모든 분야를 다 잘할 리가 없지 않은가?
이건 올림픽 무대다.
최고의 곡들이 연주되는 무대인지라 어지간한 곡으로는 만족하기가 힘들었다.
사실, 그보다 더한 문제는…….
‘곡이 별로면 어떻게 거절하지?’
현 시점 국내에서 비교불가한 위상을 지니고 있는 톱스타에게 듣기 싫은 말을 하기 힘들다는 것.
누군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감독님. 이거 퀄리티가 영 아니면…….”
“아니면 거절해야지. 그건 걱정하지 마.”
김익환 감독이 웃으며 말했다.
“그리고 까 보기 전부터 판단하진 말자고. 나는 우주 씨가 쓴 곡이 왠지 좋을 거 같거든.”
자신의 영화에 출연할 배우들과 미팅을 할 때마다 그들의 특징을 유심히 살피는 감독이었다.
그런 습관 덕에 선우주의 특징도 파악한 터였다.
‘확실하지 않으면 안 나선다.’
대중들에게는 덜렁대는 이미지로 유명하지만, 비즈니스적인 면에 있어서는 어마어마하게 꼼꼼하다.
스스로 확신이 들 때까지 준비하고 나서는 스타일.
그 때문에 지금 보낸 곡의 퀄리티가 기대가 되는 김익환 감독이었다.
“자. 들어보자고.”
파일은 세 개였다.
첫 번째는 선명주가 쓴 곡인 이란 곡으로 보안에 유의를 바란다는 메시지가 담겨 있었다.
곧이어 시작되는 피아노 솔로.
‘Moanin과 비슷한 시작이네.’
아트 블래키의 노래처럼 가벼운 피아노로 시작한 노래가 이어지면서 스탭들이 입을 크게 벌렸다.
“와…….”
천재는 천재인 이유가 있었다.
2017년도에 나온 곡이라고 해도 될 만큼 과거의 향취가 느껴지지 않는다. 정말 세련되고 우아하다는 말이 절로 나오는 곡.
동시에 진중한 분위기도 느껴져 올림픽 개막식에도 어울리는 곡이었다.
“다음은 우주가 보내준 Answer.”
“Q&A네요. 합치면.”
이윽고 우주가 보내준 곡을 재생하면서 사람들의 심장이 콩닥거렸다.
‘좋았으면 좋겠다.’
하지만 그런 긴장감은 오래 가지 않았다.
“어?”
“어어?”
방금 전의 선명주가 자신의 곡에 이어서 파트 2를 쓴 것처럼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음악.
물론 아버지와 차이점이 보이기는 했다.
재즈의 향기가 물씬 풍기는 아버지에 비해 아들의 곡에서는 팝과 같은 분위기를 풍겼으니까.
곡 재생이 끝나자마자 누군가 말했다.
“한 번 이어서 들어볼까요?”
Question과 Answer를 바로 이어서 들으면서 스탭들이 감탄을 터뜨렸다.
특히나 음악 감독이 혀를 내둘렀다.
“우주 씨, 제대로 작정한 것 같은데요.”
“진짜 피가 어디 안 가네요.”
“하나를 잘하면 다른 것도 잘한다는 게 진짜 맞는 말인가 봐요. 와, 이걸 이렇게 살려서…….”
방금 전까지 안 좋으면 어쩌나 걱정하던 이들이 앞다투어 밝은 미래를 말하고 있었다.
개회식 연출자가 총연출자에게 시선을 돌렸다.
“이대로 올려도 될 것 같은데요?”
“그래. 이대로 가 보자.”
총감독의 승낙이 흔쾌히 떨어지면서 스탭들이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할 때였다.
홀로 남은 김익환 감독이 미소를 지었다.
‘개회식이 정말 기대되는군.’
높은 수준의 퀄리티로 이뤄진 곡들.
전설적인 음악인의 아들이 국민 스타가 되어 연주하는 피아노 무대.
머리에 새치가 수십 개는 생겨날 만큼 지쳐있던 연출자의 입가에 흐뭇한 미소가 감돌 때였다.
“아.”
그러고 보니.
“이건 안 들었네.”
첨부 파일 중에서 보너스로 보내준 3번째 파일.
재즈 뮤지션들과 오케스트라처럼 협업을 한 것이라는 설명이 달려 있다.
그 파일을 재생하면서 김익환 감독이 크으 했다.
“대단하네.”
솔로일 때는 느낄 수 없는 풍성함이 느껴지는 사운드.
재즈 매니아로서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잠시 시름을 더는 김익환 감독이었다.
‘좋네.’
더할 나위 없이 좋다.
“그런데…….”
김익환 감독이 파일명에 붙은 숫자를 바라보며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Answer_69.wav
파일명 뒤에 붙은 숫자 69.
이건 뭘까.
“뭐 연주한 회차라도 되나? 하하하!”
설마 그게 사실일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 올림픽 연출자였다.
* * *
뉴욕에서 재즈 뮤지션들과 아름다운 시간을 보낸 후.
올림픽에 쓸 라는 곡을 완성한 나는 홀가분한 마음으로 한국에 돌아왔다.
-즈, 즐거웠어요.
-색소폰으로 맞으면 어떤 느낌인지 알고 있나요? 잘하면 그걸 알게 될지도 모르겠네요, 우주.
-그래. 선명주 선생님은 그런 분이었지…….
감사했습니다. 연주자 분들.
마지막에 완벽한 연주가 나왔을 때쯤에는 거의 파김치가 된 이들을 떠올리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이렇게 또 노래를 얻고 친구들을 잃었구나.
하지만 괜찮다.
“나에겐 너희들이 있으니까!”
두 팔을 벌리며 연습실에서 쉬고 있던 졸개들에게 달려갔다.
“형!”
“얘들아아아아-!”
“보고 싶었어요!”
“나도!”
서로 마음에도 없는 거짓말을 하며 꼬옥 포옹했다.
“이제 형의 소중함을 좀 깨달았니?”
“아뇨.”
배은망덕한 지호에게 먼저 히어로 영화에 나온 한정판 피규어를 안겨 주고.
“이제야 형의 소중함을 깨달은 것 같아요!”
“그래. 덕분에 형은 마음의 상처를 얻었단다.”
“아이구~ 우리 형 예쁘다!”
흐뭇하게 웃어 주고는 각자 준비한 선물들을 주었다.
비주에게는 해리 포터에 나올 법한 크리스마스 스웨터를, 중현이에게는 각종 간식거리들을.
“파, 팝업북!”
13세 이하 아동에게 추천하는 팝업북을 바라보며 귀가 벌게지도록 좋아하는 누군가까지.
확실히 선물 사 온 보람이 느껴지는 리액션들이 이어졌다.
김덕순 여사나 태현이, 한조한테 줄 선물들은 옆으로 치워두고 졸개들과 근황을 공유했다.
“…그렇게 해서 Answer라는 곡을 만들었어.”
“대박.”
나는 재즈 뮤지션들과 있었던 에피소드들을 이야기하고.
“저희는 뭐 진짜 별거 없었어요.”
“진짜 연습만 해서.”
졸개들은 지난 이틀 간의 일상을 이야기해 주었는데, 딱히 특별한 에피소드가 없었다는 모양이다.
“아, 근데 그건 나왔어요. 빌보드 연말 결산이요.”
“연말 결산?”
빌보드 잡지에서 매년 12월이 되면 올해의 Hot 100 차트, 올해의 가수 순위 같은 것을 발표한다나.
거기에 우리가 처음으로 순위에 들었다는 이야기였다.
8월에 발매한 메트로가 20위권에 들어가 있고, 우리 이름도 Top Artist 랭킹에도 들어가 있다고.
“잘됐네.”
미국에서 신인 보이그룹으로서 첫발을 잘 내디딘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비주가 웃으며 물었다.
“미국에선 어땠어요? 형 알아보고 그랬어요?”
“알아보는 사람들도 있긴 하던데, 놀라는 사람보다 쿨하게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많더라.”
“그래요?”
“응. 뉴욕 사람들은 쿨한 거 같아. 유명한 사람 보여도 그냥 그렇구나 하는 느낌?”
그렇구나 하는 동생들에게 기지개를 켜면서 웃어 보였다.
“내년에는 좀 더 노력해야지.”
“그래야겠어요.”
비주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 * *
같은 시각.
최근 들어 미국에서 유행하기 시작한 쇼트 영상 플랫폼에서 비디오 하나가 인기 영상으로 올라왔다.
[길을 가다가 스타를 만났을 때]
그런 자막이 화면 가운데에 떠올라 있는 영상이었다.
-I know you.
한 무리의 일행이 뉴욕 길거리를 거니는 미남에게 쿨하게 말을 건다.
뉴블랙의 리더가 ‘Hi’ 하며 손을 흔들고, 일행도 쿨한 표정으로 우주에게 손을 흔든다.
그리고 우주가 몸을 돌려 사라진 그 순간.
‘Ahhhhhh-!’
‘세상에!’
‘유명인이다!’
음소거로 소리를 지르며 흥분하기 시작하는 미국인들.
유명인을 봤다며 자기들끼리 눈을 크게 뜨고 비명을 지르는 이들의 모습을 끝으로 영상이 끝났다.
그 영상을 다시금 재생하며 보는 누군가.
“좋다…….”
“뭐가? 비주야?”
“아무것도 아니에요. 형.”
미국에 가 있던 최애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고 있던 레인알콜이 재빠르게 정체를 숨겼다.
그러곤 즐겨찾기한 영상 주소를 지웠다.
“자! 더 유명해지자!”
“유명해지기!”
기합을 넣으며 연말 무대 연습을 준비하는 멤버들의 모습에 비주가 화사하게 웃었다.
‘이건 비밀로 해야지.’
오늘도 환히 웃고 있는 뉴블랙의 흑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