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782)화 (782/1,031)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782화

다시 돌아온 일상.

연말 무대와 평창 올림픽을 준비하면서 시간이 빠르게 흘렀다.

특히나 작년과 달리 올해는 HBS의 <가요대상>에도 출연하기 때문에 할 일이 많았다.

-뉴블랙 우주, 가요대상 MC 된다

평창 동계 올림픽의 주관 방송사인 HBS.

저번에 평창 G-100 광화문 콘서트에서 MC를 했던 것을 좋게 봤는지 HBS 측에서 내게 이번 연말무대의 사회를 맡겼다.

“안녕하세요. 2018 평창 동계 올림픽 성공 개최 기원, 2017 HBS <가요대상>의 진행을 맡게 된 뉴블랙 우주입니다!”

대본을 보면서 연습하자 맞은편의 관객들이 손을 들었다.

“제 점수는여. 70점입니다.”

“자신감 있는 태도가 마음에 안 드네요. 50점.”

“제 취향이세요. 100점.”

꿋꿋이 무시하며 대본에 있는 멘트들을 달달 외웠다.

임시 파트너 역할을 맡아준 중현이가 대본에 있는 다른 MC의 멘트를 읽고, 내가 답하는 식으로 연습을 했다.

“근데 이번에 형이랑 같이 하는 MC는 누구예요?”

“은성이.”

“케빈 님이면 완전 예능 조합이네요. 군대즈.”

“야. 군대즈라니.”

막내의 말에 웃음을 터뜨리면서도 반박은 할 수 없었다.

군대즈.

이번에 나와 특별 무대도 같이 하고 MC로서 호흡도 함께 맞출 멤버는 바로 나의 군대 후임이었다.

-우주 씨. 파트너로 원하는 분 있으세요?

메인 MC로서 서브 MC를 추천해 달라는 제작진의 질문에 곧바로 머리가 빠르게 굴러 갔다.

첫째, 일단 눈치가 빨라야 하고.

둘째, 생방송인 만큼 순발력이 뛰어나야 하고.

셋째, 예능감 있고.

넷째, 내가 부려 먹기 쉽고.

“…그렇게 조건을 따지다 보니 은성이만 한 적임자가 없더라.”

“예능 노비인 거네요.”

“그런 셈이지.”

뭐. 당사자도 만족스러운 반응을 보였다.

-헐, 저 추천했어요? 대박.

평소에 음악 방송을 별로 시청하지 않는 사람들도 연말이 되면 연말 가요제를 한 번쯤은 보지 않던가.

그만큼 대중들의 관심도가 높은 방송에서 MC를 한다는 것은 은성이 입장에서도 좋은 기회니까.

물론 내게도 흐뭇한 일이었다.

“진짜 연말 무대 MC는 꼭 한 번 해 보고 싶었거든. 연말에 TV 틀어 놓고 있을 때 그 기분 알잖아. 선배 가수들이 크리스마스나 연말 방송에 MC 맡아서 멘트하고 있고.”

“그 기분 알죠.”

“진짜 부러웠는데.”

TNT 연습생 시절에 연말이 될 때마다 MC를 맡은 선배들을 보며 부러워했던 기억이 난다.

나는 태현이나 지훈이, 한별이 그런 애들이랑 후줄근한 추리닝 입고 김치찌개 묻은 숟가락을 쭙쭙 빨고 있는데.

선배 가수들은 막 TV 속에서 화려한 드레스나 수트를 입고 그랬으니까.

아무튼 그게 7년 전인가 그랬는데.

“드디어 소원 성취했다.”

과거의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조금 다른 방향이긴 하지만 어쨌건 소원 성취를 했다.

“자! 연습! 연습!”

“1분만 더 쉬고 가요. 나 죽을 거 같아.”

“리혁아. 형이 늘 이야기하잖니. 사람은 쉽게 죽지 않아.”

“예에~ 난 사람 아니에요~”

그렇게 2017년의 마무리를 준비하는 한편.

바깥의 시간도 빠르게 흘러갔다.

-선명주 특집 다큐, 전 세대 시청률 1위 ‘4050세대 최다 시청’

음악인 선명주를 조명하는 PBS의 특집 다큐멘터리 <2부 : 위대한 유산>이 최근 3개년 다큐 최고 시청률을 갱신했다는 소식이 들려오고.

[어제는 20년 만에 찾아온 북극발 한파가 전국을 강타했습니다. 위협적인 한파에 한강도…….]

역대급 한파가 몰아치면서 한강이 얼어붙더니 아예 서울을 뒤덮는 폭설까지 내리고 있었다.

서서히 역대급 추위의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는 가운데.

우리가 올해 내내 기다리고 있던 소식도 도착했다.

“형들! 떴어요!”

“떴어?”

막내가 핸드폰을 들고 우리에게 달려왔다.

“우리 올해도 올해의 가수 1위래요!”

“크으.”

바로 매년 여론 조사기관에서 발표하는 ‘올해를 빛낸 가수들’ 같은 설문조사였다.

2017년 올해를 빛낸 가수 1위에 뉴블랙.

노래 1위에 도깨비.

보기만 해도 하루 종일 배가 부른 순위들을 바라보고는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이제 그걸 볼 차례예요.”

끄덕.

여기저기서 결연한 눈빛들이 오간다.

[올해를 빛낸 예능인]

가수와 가요 부문에서 1위를 할 것은 이미 예상한 결과.

그랬기에 우리는 예측이 불가능한 예능인 분야를 고대하고 있었다.

중현이가 물었다.

“작년에 우리 몇 위였지?”

“우리 7위였어요. 형.”

“7위.”

작년에 7위였으니까 올해는 조금 더 순위가 상승하지 않았을까?

그런 막연한 기대를 품고 동생들과 함께 여론조사 기관의 PDF 파일을 클릭했다.

“어디 보자.”

1위부터 10위까지 정렬된 표에 ‘뉴블랙’이란 이름이 촤악 들어온다.

그런데….

[9위. 뉴블랙]

무려 작년보다 두 계단이나 하락한 순위에 동생들과 내가 할 말을 잃었다.

“9위?”

“7위도 아니고… 두 계단이나 내려갔어요.”

“어째서…….”

세상이 무너진 것 같은 기분이었다.

“…….”

“…….”

연습실에 침묵이 감돌았다.

*   *   *

가수가 바빠지면 매니저들도 바빠진다.

그것은 만고불변의 진리였다.

“아이고. 허리야.”

뉴블랙을 관리하고 있는 서민기 팀장이 파스가 덕지덕지 붙은 허리를 두드리며 걸음을 옮겼다.

도원석이 물었다.

“괜찮으세요, 팀장님?”

“허리가 엄청 아프네. 어우. 안마의자나 받으러 가자.”

“예.”

가수들이 연말 무대 준비와 레슨으로 바쁘다면 매니저들은 실무로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뉴블랙의 콘서트 다큐멘터리 개봉과 배급에 관련된 문제.

그래미 어워즈 스케줄.

넷플러스 드라마 신이의 프로모션.

멤버들의 명품 브랜드 앰버서더와 관련된 개인 SNS 개설 등등.

“일이 끝나지가 않네.”

“그러니까요.”

“로드 매니저 애들은 어때? 이제 다들 적응한 거 같던데.”

“일 잘하던데요. 애들 다.”

매니저들이 어깨와 허리를 통통 두드리면서 안마의자 방으로 향할 때였다.

-흑, 흐흐흑…….

-흙!

-흐으으읍.

귀신이 흐느끼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

매니저들이 눈을 마주쳤다.

“나만 들었나?”

“아뇨. 저도 들었어요.”

“…….”

그들의 귀가 쫑긋거렸다.

그러면서 서서히 흐느낌이 들리는 방향을 향해 걸어갔다.

‘휴게실?’

바로 휴게실이 있는 곳이었다.

-흙!

울음이 나오려다가 흡 하고 참는 듯한 소리가 흙! 하고 들려온다.

‘누구지?’

…하고 휴게실의 문을 슬쩍 들여다본 이들은 이내 눈을 깜빡거렸다.

‘우리 애들이네.’

5인조 미남이 코가 벌게진 채로 흐느끼고 있었다.

“흙!”

“흐으윽!”

지호가 눈물을 훔치고, 비주가 벌건 코를 훌쩍이며 뭔가를 뒤적뒤적하고 있다.

바닥에 깔린 어마어마한 수의 서류들.

서류 더미에 파묻힌 뉴블랙이 코를 훌쩍이는 상황에 매니저들이 눈을 깜빡거렸다.

“악플이라도 봤나…?”

멤버들이 인터넷을 자제하고 있어서 볼 일이 별로 없긴 하지만, 국민 아이돌이 되면서 악플도 상상을 초월하는 상황이다.

그 때문에 최근 조규환 이사의 주도로 회사에 법무팀을 확대 개편하려는 중이었다.

“무슨 일이지?”

가수를 케어해야 하는 매니저로서 그들이 상황을 파악하려고 할 때였다.

등 뒤에서 목소리가 불쑥 들렸다.

“예능 기획안 보고 있는 거야”

“흡!”

“아, 깜짝이야.”

등 뒤에서 그들의 무시무시한 상관이 수학귀신같은 얼굴을 드러내고 있었다.

서민기가 물었다.

“예능 기획안이요?”

“응.”

윤석환 TF팀장이 손가락으로 멤버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오늘 갤럽 순위 때문에 저래.”

“아, 올해의 예능인이요? 9위나 했잖아요.”

“……애들 앞에선 그 이야기 안 하는 게 좋을 거다. 내가 그렇게 이야기했다가 얼마나 핀잔 들었는지 몰라.”

그들의 머릿속에 성난 얼굴들이 그려진다.

-9위! 두 계단이나 하락했다고요!

-7위에서 9위! 무려 35퍼센트 가까이 폭락을 한 거라고요! 주식도 그 정도면 매매 금지가 떠요!

-망했어. 세상은 망했어.

윤석환 팀장이 관자놀이를 주무르며 말했다.

“애들 욕심 많은 거 알잖아. 자기들 순위 조금이라도 하락하면 못 견디고.”

“그죠.”

자신들이 최고여야 직성이 풀리는 저 성격과 승부욕들 때문에 지금의 원탑 자리에 있는 것 아니겠는가.

“아무튼 국민들한테 버림받았다고 저 난리다. 내년에는 7위보다 더 높이 올라가야 한다고.”

“9위인데 국민들한테 버림을 받았다고요…?”

“쟤네 마음을 낸들 알겠니.”

아이돌 가수가 예능인들 이름 올리는 곳에 9위나 했다는 것도 대단한 거 아닌가?

뭔가 기준이 이상한 느낌이다.

눈을 깜빡이며 고개를 갸우뚱하는 부하 직원들의 모습에 윤석환이 뒷목을 주무르며 말했다.

“안마의자나 받으러 가자.”

“넵.”

“저거 잘못 걸렸다가 엮이면 하루 종일 한탄 들어야 돼.”

등 뒤에서 나오는 흙! 흐읅! 하는 추임새를 무시하며 도망치는 원조 매니저 삼인방이었다.

*   *   *

흔히 충격적인 일을 받아들이는 데는 5단계가 있다고 한다.

부정(Denial).

“이럴 리 없어! 이건 순위가 잘못된 거예여!”

분노(Anger).

“다 필요 없어요. 뭐 우리가 예능인인가? 가수지. 난 이런 순위 신경 하나도 안 써요.”

협상(Bargaining).

“앞으로 열심히 예능 하겠습니다. 그러니까 내년에는 순위 좀 높여 주세요.”

우울(Depression).

“우리 국민들한테 버림받은 거겠죠…?”

이렇게 남들에게 차마 보일 수 없는 단계들을 거쳐 우리는 마지막으로 수용(Acceptance)의 단계에 이르렀다.

“그럴 만하긴 했어요.”

“인정.”

처음에는 ‘어째서!’ 하면서 현실 부정을 했지만 곧바로 우리 피라루쿠의 주도 하에 원인 분석을 마쳤다.

“생각해 보니까 우리가 올해 초에만 예능에 좀 나갔지. 하반기에는 아예 활동이 없었잖아요.”

올해 초만 해도 예능 활동이 꽤 있긴 했다.

도깨비 프로모션을 하면서 노년층이 좋아하는 <지금 내 고향은>에서 고별무대도 했고.

TBC 인기 예능 <주사위로 세계 한 바퀴>의 설 특집에 짧게 대결 형식으로 출연하고.

같은 TBC 예능인 <사람이 간다>에서 스트릿 보이즈의 매니저 역할을 맡아 ‘주선우 실장’ 같은 캐릭터가 큰 화제가 됐다.

“하지만 그건 1월과 2월의 일이에요.”

리혁이가 레이저 포인터를 딸깍이자 회의실 화면에 PPT 슬라이드가 떴다.

강조하듯 빨간색으로 적혀 있는 글씨.

[예능 출연 시기가 17년 초에 몰려 있었음!]

리혁이가 안경을 고쳐 썼다.

“그리고 이후에 나왔던 <지금부터 우리는> 기억하나요?”

“네.”

방탈출을 컨셉으로 하는 예능에서 로맨스 판타지 소설을 컨셉으로 탈출을 벌였다.

그리고 그게 끝.

아이돌 E 스포츠 대회나 미튜브 채널의 지속적인 활동 등이 있었지만 정말 특별한 예능이 없었다.

중현이가 손을 들었다.

“그런데 우리 리얼리티도 있었잖아요.”

“리얼리티 있었죠. 하지만 모든 세대가 저희 리얼리티를 보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아…….”

“우리의 하반기 활동은 2030의 젊은 세대에게 치중되어 있었어요.”

드디어 나온 원인 분석.

슬라이드가 넘어가자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형상화한 이모티콘이 뿔이 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원인은 바로 중장년층과 노년층입니다.”

“아!”

“현재 고령화 사회인 대한민국에서는 중장년층과 노년층의 비중이 굉장히 높습니다. 전 세대에서 투표를 받는 여론조사에서는 자연스럽게 불리할 수밖에 없었어요.”

“그런…….”

“사실 9위도 굉장히 선방한 거라고 할 수 있죠.”

10위에도 못 들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니 가슴이 철렁한다.

리혁이가 앞머리를 쓸어 넘겼다.

“우리가 지금은 ‘국민’ 아이돌이라는 호칭으로 불리고 있죠. 모든 세대에게서 관심을 받고 있으니까요.”

“네.”

“하지만 이대로 활동한다면 과연 국민 아이돌이 될 수 있을까요?”

“아닙니다.”

리혁이가 고개를 끄덕이며 포인터를 딸깍였다.

PPT 화면에 뜬 [국민 아이돌]이란 글자에서 [국민]이 휘잉~ 하고 하늘로 날아가 버린다.

“아, 안 돼. 내 국민 타이틀……!”

내가 손을 뻗을 때.

리혁이가 냉정한 얼굴로 말했다.

“이대로라면 우리는 국민 아이돌이 아닌 그냥 아이돌이 되고 맙니다.”

“!”

“!!”

그러면서 계획을 말한다.

“계획은 이렇습니다. 집계기간 시작일인 2018년 1월부터 예능 출연을 다시 본격화하는 겁니다. 미국 진출? 한국에서 사랑을 못 받는다면 미국에서 받는 사랑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맞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전 세대를 대상으로 한 예능을 노려야 합니다.”

우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서 슬라이드가 넘어가자 후보군으로 꼽힐 만한 예능들이 떴다.

<어머님, 국이 짜요>

시어머니가 사돈댁에 가서 사돈댁살이를 하는 예능으로 50대 이상의 여성 시청자들에게 인기 있는 방송.

<서준이는 마트에서 살아>

유명 연예인들이 게스트로 자주 출연하는 육아 예능.

<멍멍! 오매불멍>

교육방송이긴 하지만 꽤 인기를 끌고 있는 애견, 애묘 등의 애완동물과 관련된 방송.

“대중적으로 인기가 많은 방송들을 한 번 리스트 업해서… 네, 왕지호 씨.”

“질문 있습니다!”

지호가 물었다.

“그거 또 나가면 안 돼요? <지금부터 우리는> 그거 방탈출 되게 재미있었는데.”

“그거 망했어.”

우리가 고개를 돌리자 회의실 한편에 있던 석환 형이 말해 줬다.

“너희 나오고 나서 미국에서 반응이 좋았잖아.”

“네.”

“HBS 수뇌부에서 갑자기 미국 노리겠다고 기획 방향을 틀어서 이도 저도 아니게 됐다더라.”

“…….”

그 외에도 고작 1년 만에 예능 트렌드가 많이 바뀌어 있었다.

“주세한은요?”

“주세한도 요새 마찬가지야.”

여러 관찰 예능이 대세로 떠오르면서 주세한의 시청률도 서서히 하락세를 그리고 있다고 했다.

스타 PD로 유명한 주세한의 연출자, 구재영 PD님도 조만간 퇴사한다는 설이 파다하다나.

우리가 흐음 하며 턱을 매만지고 있을 때.

“그래서.”

민기 형이 손을 들었다.

“대주주님들께서 저희를 여기 부른 이유가 뭔가요? 뭔가 제안할 게 있으시다고 했잖아요.”

“네.”

리혁이가 우리의 의견을 대신 말했다.

“앞으로 저희 예능을 픽스할 때 이러한 점을 눈여겨보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준비한 PPT고요. 본래 용건은 따로 있습니다.”

“용건?”

“네. 일반적으로 보이그룹이 가장 공략하기 어려운 세대가 누구일까요?”

곧바로 매니저들이 대답했다.

“중장년층 남성?”

“맞아요.”

내년도 예능인 순위 상승을 위한 첫 번째 밑그림.

우선 가장 공략하기 어려운 중장년층 남성을 먼저 노리는 것이다.

“그래서 저희가 이번에 출연해 보고 싶은 예능이 하나 있습니다.”

“호오.”

“우리의 웃음 제조기 둘을 내보낼 예능! 그것은 바로….”

리혁이가 슬라이드를 넘기면서 우리 매니저들이 ‘어?’ 하며 눈을 크게 떴다.

*   *   *

종합 편성채널 IBC.

예능국 한편에 있는 작은 사무실에서 소란이 일었다.

“뭐, 뭐?”

면도를 반쯤 하다 만 PD가 문을 벌컥 열고 들어왔다.

어찌나 다급하게 달려왔는지 얼굴 곳곳에 면도 크림이 묻어 있었다.

“누, 누가 온다고 했다고?”

“피디님! 우리 뉴블랙한테 연락 받았어요!”

“뉴블랙!”

어안이 벙벙한 피디에게 작가들이 흥분한 얼굴로 말했다.

“우주 씨랑 중현 씨가 꼭 나오고 싶다고 했대요. 최근에 우리 프로그램을 되게 재미있게 보고 있다고!”

“저, 정말?”

“아뇨. 뒤에 건 립서비스겠죠.”

냉정해졌던 작가들이 다시 외쳤다.

“아무튼 우리 프로그램에 나온대요!”

“허어어억!”

피디가 주먹을 꼭 쥐고 제자리에서 방방 뛰었다.

손이 달달 떨리면서 주체할 수 없는 흥분이 밀려온다.

‘이런 행운이……!’

뉴블랙이 누구인가.

출연하는 프로그램마다 빵빵 터뜨리는 이들 아니던가.

예능감도 예능감이지만 뜰 만한 것을 기가 막히게 알아보기로 유명한 뉴블랙이었다.

-서리혁이 OST를 고르면 그 드라마가 대박이 난대요!

-우주 봐요. 시트콤 대본 골랐는데 그 시트콤이 막회에 30프로까지 찍었잖아요.

-이번에 지호가 고른 드라마도 심상치 않다던데.

물론 뉴블랙의 철저한 분석과 중현의 똥촉이 합쳐진 결과물이었지만.

관계자들에게는 선후관계가 바뀌어서 뉴블랙이 고르기만 하면 대박이 나는 것으로 소문이 나 있었다.

“우리에게도 이제 볕들 날이 오는 건가? 진짜 볕이 오나?”

“피디님!”

“어흐흐흐흑!”

낡은 사무실에 선 이들이 서로를 부둥켜안았다.

그때 코가 시큰해진 작가 하나가 물었다.

“우리 출연자들한테도 알려 줘야 하지 않을까요? 우주 씨랑 중현 씨가 우리 프로그램에 나온다고…….”

“아냐. 일단 그게 먼저가 아니야.”

피디가 고개를 저었다.

“일단 기획부터 하자. 이거 뉴블랙이 나오는 특집이야.”

“아…….”

“일단 이번에 해외 로케이션부터 시작해서 해 볼 수 있는 거 다 해 보자. 뉴블랙 나온다고 하면 윗선에서도 제작비를 올려줄 테니까.”

“네. 일단 내년 1월쯤이니까, 준비할 시간도 충분하고….”

흥분한 얼굴로 회의를 시작하는 제작진.

온갖 아이디어가 나오는 가운데 그들이 있는 사무실 위에 반쯤 떨어져 나간 현수막이 붙어 있었다.

횟집에서 볼 법한 청새치 사진 옆에 쓰인 파란색 글씨.

[여보, 낚시 좀 다녀올게]

연예인 낚시꾼들이 출연하는 예능.

IBC에서 런칭한 신생 예능이자, 중장년층 남성에게 컬트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프로그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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