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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785)화 (785/1,031)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785화

고척돔.

[2017 HBS 가요대상]이라는 거대 현수막이 걸린 공연장에 팬들이 줄을 지어 입장하기 시작했다.

‘6시 방송인데 4시부터 입장을 시키냐. 이 새끼들.’

하여간 만만한 게 돌팬이지.

그런 푸념을 하며 공연장에 입장한 팬들이 주변 시야를 체크하면서 두리번거렸다.

“데이터도 안 터지네. 저, 혹시 데이터 터지세요?”

“아뇨. 저도.”

핸드폰을 이러저리 들어 보였지만 데이터는 터질 조짐이 안 보였다.

사람이 무지막지하게 많이 모이는 공연장 등에서 자주 벌어지는 일이었다.

‘엄청 꽉꽉 채웠네.’

1층 스탠딩 석에 사람들이 바글바글하다.

어찌나 꽉 채웠는지 위에서 보면 콩나물시루를 보는 기분.

구겨넣듯이 밀려들어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누군가 친구에게 말했다.

“너 작년에도 왔다며. 작년에도 이랬어?”

“아니.”

친구가 답했다.

“작년에는 이 정도 아니었을걸? 그때는 그래도 꽤 한산했는데.”

“그래? 그럼 올해는 왜…….”

왜… 라고 누군가 말을 하려고 할 때였다.

LED 스크린에 <가요대상>의 포스터가 뜨면서 고척돔에 환호성이 터졌다.

‘뭐, 뭐야?’

어마어마한 환호성에 시선을 돌리니 LED 스크린 속에 익숙한 두 얼굴이 보인다.

예능돌로 유명한 케빈.

뉴블랙의 리더 우주선.

첩보요원처럼 등을 맞댄 이들을 보는 순간, 왜 이렇게 사람이 많냐고 하던 이가 납득한 표정을 지었다.

‘작년에는 뉴블랙이 없었구나.’

HBS와 다툼이 벌어지면서 HBS의 모든 프로그램을 보이콧 했던 뉴블랙이었다.

그런 국민 아이돌이 다시 HBS의 연말무대에 나오니 관객도 그에 맞춰 더 받는 것은 당연지사.

“HBS 얘네 좀 신나 보인다.”

“완전 신난 것 같은데?”

가요대상 포스터를 시작으로 LED 스크린으로 ‘올해 우리 프로에 뉴블랙 나온다!!’ 하며 홍보하는 분위기였다.

스크린 너머로 HBS 제작진의 흥분과 기쁨이 보이는 듯한 느낌.

그걸 보면서 관객들이 웃을 때였다.

-네. 안녕하세요.

후줄근한 차림의 현장 감독이 무대 위로 올라왔다.

인원 체크를 하듯이 각 그룹의 팬들을 호명하는데 그때마다 호응하는 환호성이 들려왔다.

-뉴블랙.

그 순간.

거대한 함성이 물결처럼 고척돔을 뒤흔들기 시작했다.

-……어. 그.

다음 명단을 불러야 하는 감독이 순간적으로 말을 더듬을 정도.

익숙한 동작으로 귀에 손을 올렸다가 내린 아이돌 팬들이 의아한 기분을 느꼈다.

‘수플레들 환호성 저런 거 모르나?’

가요계에 몸을 담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수플레의 함성이 들릴 때 두개골이 뒤흔들린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런데 현장 감독은 그걸 마치 처음 겪는 것처럼…….

“아.”

아이돌 팬들이 훈훈한 미소를 지었다.

‘HBS는 이번이 처음이구나.’

‘안 겪어 봤네.’

HBS가 겪은 것은 15년도에 라이징이었던 뉴블랙의 팬들.

지금처럼 압도적인 원톱 자리에 오른 뉴블랙의 팬들을 겪는 것은 처음인지 여러모로 당혹스러워 보였다.

-네, 그다음으로…….

침착하게 다른 그룹을 호명한 감독이 오늘 호응 잘 부탁한다는 말을 마지막으로 내려간 후.

방송 시작 시간이 서서히 다가왔다.

데이터도 잘 안 터지는 핸드폰만 만지작거리던 아이돌 팬들이 슬슬 가방에 핸드폰을 넣을 때였다.

“어? 어? 올라온다!”

“와아아아아아아-!”

무대 위로 2인조가 걸어 올라오고 있었다.

인터컴을 낀 스탭이 그들을 의자로 안내하고, 턱시도를 입은 두 청년이 의자에 사이좋게 앉았다.

‘우주다!’

‘진짜 선우주다!’

멀리서도 훤히 들어오는 이목구비에 아이돌 팬들이 심장이 쿵 하는 느낌이었다.

잘생겨도 너무 잘생겼다.

성숙미를 강조하는 컨셉인지 머리를 반듯하게 넘겨 이마가 보이는데, 정말 피부가 하얗고 투명했다.

‘왜 저 얼굴로 개그를 하는 거지……?’

매년 연말 무대에서 선우주를 처음 보는 이들이 하는 생각이 또 한 번 관객들을 스쳐 지나가는 가운데.

기타를 멘 우주가 마이크에 입술을 가져다 댔다.

매혹적으로 움직이는 붉은 입술에 괜스레 모두가 침을 꼴깍 삼킬 때.

-생방송 무대라서 너무 떨리네요. 호응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잘 부탁해요!

옆에 앉아 있는 케빈도 잔망스럽게 손을 흔들며 흥을 돋웠다.

그에 호응하듯 수플레들이 익룡처럼 비명을 지를 때.

[생방송 시작 30초 전입니다.]

카운트다운이 시작되면서 마침내 무대에 환한 조명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눈이 부실 만큼 환한 조명 아래 선우주가 스트레칭을 하듯이 손끝을 부드럽게 털었다.

10, 9, 8…….

카운트다운이 모두 끝나고 마침내 그 손가락이 움직였다.

“와아아아아아아-!”

TV 중계 화면으로 <고척돔 생중계>라는 자막과 고척돔의 전경이 지나간 후.

현장 화면으로 어두운 공연장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는 두 청년의 모습이 흘러나온다.

먼저 시작한 것은 기타를 연주하는 선우주였다.

‘좋다.’

맑은 어쿠스틱 기타 소리가 고척돔에 울려 퍼졌다.

그리고 서늘하게 저미듯이 들려오는 목소리.

바람이 불어오는 곳

그곳으로 가네

전 국민이 다 알고 있는 <바람이 불어오는 곳>이 바로 오늘 오프닝 무대를 장식할 곡이었다.

우주가 눈을 감고 노래를 부르는 동안 케빈이 차분하게 어깨를 까딱인다.

곧이어 답가를 하듯이 케빈이 마이크를 든다.

‘메보는 메보인 이유가 있구나.’

음정과 박자의 정확성 등은 기본이고.

그걸 뛰어넘어서 가사를 전달하는 능력이 정말 발군이라고 느껴진다.

눈을 감은 채 눈썹을 파르르 떨며 노래를 부르는 케빈의 모습은 평소 보던 것과 전혀 달랐다.

TV를 시청 중인 전국의 가정들에서 드립이 나왔다.

“개그를 잘하면 노래도 잘하나?”

“쉿.”

“아빠는 맨날 얘기하면서.”

부모 세대가 드립을 날리면 자녀 세대가 ‘조용히 좀!’ 하는 것이 보통인데.

오프닝 무대를 하는 동안에는 오히려 나이 든 세대가 조용히 명곡을 경청하고 있었다.

‘잘 부르네.’

풍부한 표정과 호소력 짙은 목소리에 중년 세대가 새삼스러운 눈으로 지켜보았다.

뉴블랙에서 ‘노래=서리혁’이라는 인식이 너무나 강한 탓에 주목도가 덜한 우주의 보컬이 다시 주목을 받는 중이었다.

‘우주가 저렇게 노래를 잘하는 애였나?’

반은 맞는 말이고 반은 틀린 말이었다.

원래도 메인 보컬 서리혁이 위기감을 지닐 만큼 빼어난 보컬 실력을 지니고 있지만 표현적인 부분에서는 메인 보컬에게 조금 밀렸던 우주였다.

하지만 최근 들어 그 상황이 바뀌어 있었다.

[저, 선명주가 돌아왔습니다.]

부친이 남긴 악보 등을 공부하고, 피아노를 연주하면서 자신이 모르던 음악에 대해 새롭게 배우고.

최근에는 재즈 음악인들과 교류를 하면서 음악적인 성장을 거둔 뉴블랙의 리더였다.

종교적이고 희망적인 영가나 세속적인 블루스 등은 물론.

재즈 특유의 다양한 감정 표현까지 받아들이고 익히면서 발전한 결과물이 지금 나오고 있는 무대였다.

바람이 불어오는 곳

그곳으로 가네

차분하게 화음을 맞추는 두 가수의 무대가 끝나면서 현장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그러면서 사람들의 시선이 우주의 옆으로 이동했다.

“쟤는 까불이 아니야? 테레비에서 맨날 깐족거리는 애.”

“걔 맞아, 엄마.”

“노래 잘하네.”

저토록 노래를 잘하는 선우주 옆에 있는데도 뭔가 부족하다는 느낌이 안 들고 무난무난했다.

그렇다는 건 엄청 잘한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호기심을 품는 이들에게 자녀들이 신나서 이야기를 했다.

“쟤가 원래 거의 음치 박치 수준이었는데, 우주가 군대에서 쟤를 가수로 만들어 낸 거래.”

“군대에서?”

“응. 후임인데 목소리 좋다고 가수로 키워 놨대.”

“……?”

그러면서 온라인에서도 해당 이야기가 다시 퍼지고 있었다.

[다시 보는 은케빈 데뷔 썰]

흑역사 전문방송 ‘신토끼’에서 나왔던 우주와 케빈의 통화 장면.

최근에는 토크쇼 <귀곡산장>에서 자신의 군대 때 이야기를 푼 케빈의 캡처 장면이 담긴 글이었다.

노래 초보를 메인 보컬 수준으로 키워 낸 선우주에 대한 이야기에 다들 혀를 내둘렀다.

-군 후임을 아이돌로 데뷔시킨 썰.txt

-가수 트레이닝시키는 선임이나 그런다고 데뷔하는 후임이나ㅋㅋㅋㅋㅋㅋㅋㅋ

-군대에서도 후임 프로듀싱하는 능력자를 내친 TJ는 도대체..

-오늘도 패배하는 영감탱ㅋㅋㅋ

-태준쓰는 오늘도 밤잠을 설칩니다ㅠㅠㅠㅠ

-우주 목소리 너무 죠아

-저걸 키워 낸 사람도 대단함ㅋㅋㅋㅋ 나 같으면 걍 목소리가 좋네 하고 끝냈을듯

-이게 바로 찐광기 아니냐. 주어 바꾸면 개무서움

-내 목소리가 좋다면서 군대 선임이 아이돌 트레이닝 시킴.txt

-갑자기 또라이 사수 만난거 같자나ㅋㅋㅋㅋㅋㅋㅋㅋ

곧이어 다른 커뮤니티에도 ‘군 후임 아이돌로 데뷔시킨 썰.txt’ 하면서 퍼지는 글이었다.

그렇게 첫 무대부터 호평과 이야깃거리들이 쏟아지는 가운데.

[과거와 현재의 만남]이라는 주제로 나오던 VCR이 끝나면서 마침내 중계 화면이 현장으로 돌아왔다.

*   *   *

VCR이 끝나는 타이밍에 맞춰 인이어로 제작진의 목소리가 수신됐다.

이제 멘트할 타이밍이라고.

빨간 불이 들어온 메인 카메라를 향해 미소를 지었다.

-시청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평창 동계올림픽 성공 개최 기원, 하나 되는 대한민국! 2017 HBS 가요대상의 MC를 맡은 뉴블랙 우주입니다.

-MC를 맡은 에이플비의 케빈입니다.

미리 암기한 큐카드의 멘트를 읊으며 자연스럽게 오프닝을 이끌었다.

말 한마디만 해도 수플레들이 환호를 해 주는 덕에 에너지도 풀로 충전된 느낌이다.

-오늘 정말 화려한 가수들의 라인업이 준비되어 있죠. 케빈 씨?

-네. 맞습니다.

흘깃 큐카드를 훑은 은성이가 멘트를 이어 갔다.

오늘 출연할 가수들에 대해 흥을 올리고, 곧바로 하나씩 호명하는 시간을 가졌다.

-세레니티!

산타 망토를 걸친 걸그룹이 등장하면서 구워어어 하는 축구장 함성이 고척돔을 뒤흔들었다.

-틴스피릿!

방금 전까지 열심히 존나를 외쳤을 틴스피릿이 해맑은 미소를 지으며 총총총 뛰어왔다.

-스칼렛!

-스트릿 보이즈!

-원더 차일드!

하나씩 호명할 때마다 가수들이 걸어 나와 MC들의 뒤편에 섰다.

은성이가 운을 뗐다.

-그리고 이분들이 정말 올해도 뒤흔드셨죠? 정말 제가 존경하는 선배님들입니다.

-정말 대단한 분들이죠.

살짝 민망한 기분으로 ‘뉴블랙!’ 하면서 호명하자 동생들이 걸어 나왔다.

고척돔 천장이 날아갈 듯한 함성.

저마다 어깨에 초록 요정색 망토를 걸고 있는 동생들이 걸어 나와서 내 뒤편으로 쏘옥 섰다.

산타의 조수처럼 내게 붉은 산타 망토를 걸어 주는 졸개들의 모습에 현장에서 웃음이 터졌다.

-네. 정말 메리 크리스마스네요.

윙크를 하면서 카메라를 향해 말해다.

-자. 그럼 오늘의 무대 만나볼 준비되셨나요?

“느에에에에에엑-!”

-첫 무대입니다. 올해 데뷔한 상큼 발랄한 신인들의 합동 무대가 준비되어 있는데요. 먼저 만나 보시겠습니다!

현장에서 신인들에 대한 VCR이 흘러나오는 동안 가수들과 함께 우르르 무대를 내려갔다.

한조가 내게 어깨동무를 하면서 말했다.

“야, 진짜 잘한다.”

“그치?”

“은성 씨 말이야.”

“…….”

깔깔 웃는 한조가 요술봉에 대한 복수라며 말했다.

내가 뉴욕에서 한조의 요술봉을 사는 브이로그가 퍼지고 나서 상당히 슬픈 일을 겪었다나.

고작 은성이 칭찬을 한 걸로 복수라니.

본인이 왜 멤버들에게 놀림 받는 리더가 된 것인지 과연 모를 만했다.

“화이팅입니다. 행님.”

“어, 이따 보자.”

바쁘게 해산하는 이들에게 손을 흔들어 주고는 내 곁에 쏘옥 달라붙는 졸개들과 마주했다.

눈을 초롱초롱 뜨고 확인했다.

“나 무대랑 멘트 잘했지?”

동서남북.

주작과 청룡 같은 사방신처럼 나를 둘러싼 졸개들이 칭찬 감옥을 만들었다.

“포브스 선정 라이브 잘하는 1위 가수.”

“기네스 기록 선정 역대 최단 속도로 팬들을 심쿵시킨 아이돌.”

“김중현 선정 농사 같이 짓고 싶은 남자 1위.”

중간에 뭔가 이상한 게 끼어 있지만 행복한 기분이었다.

게다가 나만 그런 게 아니라 얘네들도 오늘따라 기분이 좋은지 엄청 흥부자 상태였다.

아까 나 리허설 할 때 후배들이 무슨 칭찬을 했다고 그러던데.

뭔지는 모르겠지만 후배님들에게 감사했다.

“아니…….”

그리고 그중에서 가장 나를 감격시킨 칭찬.

그것은 바로 망연자실한 표정의 메인 보컬이었다.

“노래 실력은 언제 또 그렇게 된 거예요?”

“좀 늘었지?”

“솔직히 좀 진드기 같아요…….”

꼭 등딱지에 뭔가 달라붙은 거북이처럼 리혁이가 자기 등의 먼지를 털어 냈다.

“시속 100킬로미터로 달리고 있는데 진드기가 안 떨어지는 기분.”

“그러니까 ‘나는 열심히 노력해서 거리를 벌린 것 같았지만, 라이벌이 맹추격을 해 와서 위기감이 느껴진다’는 말인 거지?”

“……몰라요. 나 연습하러 갈 거야.”

리허설 때는 무덤덤하더니, 라이브를 보고 잔뜩 위기감을 품은 리혁이의 모습에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내가 이래서 노래 연습을 많이 한다.

비주가 내게 칭찬을 했다.

“잘했어요. 형. 이대로 노래 쪽으로 정진을 하는 거예요. 정말 형의 목소리는…….”

“하핫.”

흐뭇하게 웃고는 동생들에게도 이따가 휴식 시간에 보자고 이야기를 했다.

MC로 돌아갈 타이밍이었다.

동생들에게 손을 흔들고 돌아오는데, 에이플비의 리더인 하루에게 잔소리를 들으며 귀를 후비는 은성이가 보였다.

“안녕하세요. 선배님.”

공손하게 인사하고 멀어지는 하루의 뒷모습을 보고는 은성이에게 물었다.

“무슨 일이야?”

“평소 같은 잔소리예요. 생방송이니까 선 넘는 개그는 치지 말라. 선배들한테 깝죽대지 말라…….”

“금과옥조 같은 격언이로구나. 새겨들어.”

“마음속 모래 사막에 새기고 있어요.”

“바람이 잘 안 부는 곳이어야 할 텐데.”

말을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백스테이지에 마련된 의자에 앉았다.

크리스마스의 연말 분위기 때문인지.

아니면 평소에 하고 싶었던 연말무대 MC를 맡아서 그런지 기분이 좋다.

우리 매니저들이 건네주는 생수병을 받아 들어 목을 축이고 있는데, 철골 구조물 너머에서 쭈뼛쭈뼛 긴장한 이들이 보였다.

“신인들이네.”

첫 연말 무대를 앞두고 긴장하고 있는 신인 가수들의 모습에 왠지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저때 진짜 긴장되지.

공감 가는 기분을 느끼며 신인 가수들의 모습을 멀찍이서 훔쳐봤다.

자기들끼리 열심히 구호를 외치며 화이팅을 외치는 모습.

몸을 바들바들 떠는 보이그룹 리더가 멤버들에게 ‘떨지 말자’ 하면서 다독이는 모습.

울 것 같은 얼굴로 제자리에서 총총 뛰는 걸그룹의 모습.

“무슨 생각하세요?”

“연말 무대가 참 소중한 기회구나 하는 생각.”

“뭐. 그렇죠.”

올해를 빛낸 가수들이 등장하는 연말무대.

방송 3사 연말 무대 중 하나에만 나와도 어느 정도 성공했다고 여겨지는 것이 신인이었다.

“다들 잘 됐으면 좋겠다.”

멀찍이서 우리를 발견한 것인지 허둥지둥 대는 이들에게 웃으며 손을 흔들어 보였다.

그러고는 입모양으로 ‘화이팅’ 하면서 웃어 주었다.

“저는요? 저는 화이팅 안 해 주심?”

“은성 씨. 부탁인데 제가 말씀드린 큐카드부터 암기해 주세요.”

“…….”

“은성아.”

“상병 하은성…….”

은성이가 옆자리에서 투덜투덜 암기하는 모습에 주변 스탭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우주 씨가 무서운 선임이었나 봐요.”

“제가요? 전혀요.”

정말 나처럼 착한 선임이 없었다.

*   *   *

하은성은 억울했다.

‘착한 선임은 무슨!’

지금이야 TV에서 국민 아이돌의 선량한 모습 어쩌구 하고 있지만 전부 다 가식이었다.

-은성아. 엑셀 함수를 누가 그렇게 쓰니?

-은성아. 잠깐만 나랑 얘기 좀 하자. 아니, 화 안 낼 거야. 그냥 잠깐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그래.

-비번을 모르겠으면 전화부터 하지 말고 1q2w3e4r을 쳐 봐.

그야말로 온갖 구박과 수모를 겪은….

“음?”

하은성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근데 다 내가 잘못한 것들이네.’

곰곰이 생각하니 잘못한 게 많아서 조용히 입을 다무는 하은성이었다.

작곡 공부한다면서 괴롭히거나 트레이닝 시켜 준다면서 괴롭게 만든 것을 제외하면 딱히 싫은 것도 없었다.

솔직히 인간적으로는 참 좋은 사람이다.

“컨디션은 어때? 괜찮아?”

“좋아요.”

“슬슬 올라갈 준비하자.”

주변 사람은 착실하게 잘 챙기는 자상한 성격.

다만 일적으로는 만나기 싫은 사이였다.

‘진짜 꼼꼼하고 빡세.’

굉장한 몸치만 아니었으면 주변에서 군대에서 말뚝 박으라고 사정했을 만한 일 처리 능력이었다.

그가 만든 결과물을 보고 눈을 가늘게 뜰 때마다 어찌나 쫄렸던지.

손짓을 하며 이름 세 글자를 부를 때마다 심장이 콩닥콩닥했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마이크를 손으로 감싼 우주가 큐카드에 적은 메모를 보여 주며 말했다.

“다음에 NYX 선배님들 무대인데 멘트할 때 이 부분 좀 주의하고.”

“넵.”

“멘트 주고받을 거는 암기했어?”

“네…….”

뉴블랙은 정말 대단한 선배들이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일전에 ‘병장님이 구박 많이 하죠!’ 라고 물으며 공감대를 형성하려고 한 적이 있었는데.

뉴블랙 멤버들은 금시초문이라는 표정이었다.

-음? 저희는 우주 형한테 무대 관련해서 구박 받은 적 없는데여.

그저 네 멤버의 능력치나 연습량이 어마어마하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눈물만 삼킬 뿐이었다.

‘어떻게 저런 사람들만 모여 있냐.’

가뜩이나 업무 기대치를 높이 잡는 사람에게 유능한 사람들이 졸개들처럼 붙어 있다.

그러니 끝을 모르고 눈높이가 올라갈 수밖에.

지금도 군 시절 선임은 백스테이지에서 아련한 표정으로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리혁이었다면 다 암기했을 텐데.”

‘그거야 칭찬해 주니까 그렇지. 나는 칭찬도 안 해 주면서.’

“지호여도 그 정도 분량은 솔직히 암기했다. 우리 막둥이가 노력을 안 해서 그렇지, 이게 다 열정과 노오오력이 부족해서…….”

‘집에 가고 싶다.’

올라가라는 신호에 눈물을 머금고 올라가는 하은성이었다.

곧이어 다시 대중들에게 보여 줄 상큼한 표정이 된 우주와 즐겁게 멘트를 주고받으며 진행을 했다.

그리고 선우주의 말이 맞다는 것을 깨달았다.

‘확실히 속도가 붙네.’

암기하라고 짚어 준 부분들을 외워 놓으니 진행에 탄력이 붙고 조금 더 자연스러워진다.

두 MC가 합을 맞춰 착착 진행을 이어 갔다.

그렇게 흐름을 타고 1부에 이어서 2부까지 진행을 이어 갈 때였다.

“……?”

2부 진행을 하던 두 MC에게 예기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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