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825화 (825/1,031)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825화

71장. 여기가 뉴블랙의 나라입니까?

어부지리(漁夫之利).

제삼자가 힘도 들이지 않고 이득을 챙긴다는 사자성어.

참으로 이런 상황에 적합한 말이 아닐까 싶다.

-뉴블랙 리혁이 알려 주는 기내안전 수칙.. 코리아나 항공 "전 노선에 적용할 예정"

온라인에 올라오는 글들을 살피며 중현이와 내가 허공을 바라보았다.

"중현아. 우린 대체 뭘 위해 그렇게 열심히 한 걸까."

"허탈하네요."

"어떻게 직접 방송을 뛴 우리한테는 광고가 안 들어오고, 저 얄미운 애한테 쏙쏙 들어오고."

"뭔가 심란한 기분이에요."

중현이와 내가 그런 이야기를 주고받자, 옆에 있던 막내가 말했다.

"팀장님이 그랬잖아요. 우리가 하나는 괜찮은데 둘부터는 광고 단가가 엄청 높아져서 기업들이 꺼린다고."

"……."

이 웃픈 사건의 원인은 바로 우리의 광고 몸값이 어마어마하게 비싸기 때문이었다.

멤버 개개인만 해도 어지간한 톱스타와 비슷한 수준이라 개인 광고까지는 그래도 커버가 가능하지만, 우리가 둘 이상 출연하는 광고는 거의 이동통신사 급의 재력이 필요하다고 들었다.

쉽게 말해 어지간한 기업들은 접근하기 어렵다는 뜻이었다.

"뭐, 결국에는 시장에서 수요와 공급의 문제죠."

하얗고 얄미운 얼굴이 고개를 쏙 들이밀었다.

몹시 의기양양한 꼴이 보기 싫어 중현이와 내가 시선을 피했다.

"항공사 측에서 그만큼 내 이미지가 탐난 거 아니겠어요? 안전의 아이콘 서리혁이 홍보하는 안전 영상."

"……."

"아, 오늘따라 기분이 좋네. 왜 이렇게 기분이 좋지?"

나와 중현이 앞에서 율동까지 추면서 잔망스럽게 구는 메인보컬이었다.

그게 웃겼는지 웃음을 터뜨리는 비주에게 나와 중현이가 고개를 획 돌렸다.

"비주야. 너 웃는 거니?"

"김비주, 이게 웃겨?"

"왜 나한테…."

괜히 엄한 데에다 구박을 하고 있을 때였다.

달칵.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회의실로 A&R과 프로듀싱팀 직원들이 줄줄이 들어왔다.

"좋은 아침……."

"안녕하십니……."

왠지 모르게 흉흉한 나의 표정을 보고 슬그머니 눈치를 보기 시작하는 직원들이었다.

들려오는 속삭임들.

"우리 뭐 잘못한 거 있나?"

"일단 잘못했다고 해 봐."

그런 말을 주고받는 이들에게 내가 상황을 설명했다.

예능에서 힘겹게 뛴 건 나와 중현이인데, 어부지리로 리혁이가 광고를 가져갔다는 말에 다들 웃음을 터뜨렸다.

어제 예능 재미있게 봤다는 작곡가들과 웃음 띤 이야기를 나눈 후.

"자, 그럼 앨범 제작 회의 시작하겠습니다."

노트북을 켠 직원들이 필기를 시작하는 가운데, A&R팀의 서필근 대리가 나와서 프레젠테이션을 했다.

"우선 앨범 제작 회의에 앞서 현재 A&R팀이 분석한 가요계 트렌드와 상황을 보여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시장 상황에 대한 브리핑이 이어졌다.

PPT 화면에 망고 차트의 상위권 스크린샷이 떴다.

"우선 차트에서는 럭키걸이 작년에 새해를 기념하기 위해 낸 'Bada Bing, Bada Boom'이 역주행으로 대박이 났습니다. 현재 1위를 점하고 있죠? 그 아래로 싱어송라이터 홍샛별의 신곡과 솔로가수 한태현의 신곡이 두각을 보이고 있습니다."

"노래 좋더라고요. 바다 빙 바다 붐."

Bada Bing Bada Boom.

어떤 것을 쉽게 이룬다는 뜻을 가진 영어 관용구.

신인 걸그룹 럭키걸의 신곡으로 굉장히 신나고 경쾌한 노래다.

얼마 전 음악 방송에서 1위를 거두었다고 하던데.

내가 웃으며 말했다.

"처음 나왔을 때부터 올라갈 것 같다고 생각하긴 했어요."

"네가 작곡가 섭외하라고 했을 때만 해도 뭐가 있나 싶었는데, 바로 차트 역주행 하더라."

안타깝게도 작곡가를 섭외하진 못했다.

TJ 엔터 측에서 이미 작곡가로 계약을 한 상태라서.

A&R팀장님이 말했다.

"박태준 회장이 물러나고 한영준 대표 체제가 된 이후로 TJ가 매서워. 발 빠르게 움직인다고 해야 되나."

"맞아. 이번에 한태현 신곡도 진짜 잘 뽑았더라고."

"나 감탄했잖아."

태현이네 큰아버지인 한영준 이사가 대표가 된 이후로 TJ가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고 있다는 모양이었다.

나상윤 팀장님이 말했다.

"업계에 괜찮은 작곡가란 작곡가들은 다 쓸어가는 것 같던데… 우리를 따라잡으려고 하는 모양이야."

기존에 보유한 작곡가 숫자만 따지면 우리보다 훨씬 압도적인 TJ 엔터긴 하다.

하지만 작년부터 레몬 엔터 프로듀싱팀이 가요계 곳곳에서 성과를 내면서 우리가 우위를 점한 상태.

쉽게 말해 가요계 트렌드를 레몬 엔터가 선도하는 중이었다.

TJ 측에서 그런 헤게모니를 다시 가져오기 위해 분투 중이라는 소식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까지는 현재 가요계 상황이고요."

서필근 대리의 브리핑이 다시 이어졌다.

"이제 컴백을 앞둔 가수들의 명단입니다. 2월 초부터 솔로가수 조애나를 시작으로 SNH 엔터의 에노티, TJ 엔터의 NYX 등이 컴백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컴백이 죄다 2월 초에 몰려 있네요?"

"평창 올림픽 시즌을 피해서 그 전에 다들 컴백을 하려는 모양이야."

"아."

작년 서바이벌로 한껏 기세가 오른 걸그룹 NYX와 인기 보이그룹 에노티 등의 이름이 눈에 들어온다.

과연 어떤 곡들을 들고 나올지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그런 브리핑이 이어지는 가운데 내가 기다리고 있던 내용도 나왔다.

망고 차트 스크린샷.

[3위] 김하재 - 오늘 밤에도 취해

[4위] 진윤서 - 전화해 줘

현재 각종 차트 최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는 두 곡.

헤어진 여자 친구를 부르짖으며 소주 한 잔 한다는 내용과 남자 친구에게 이별 통보를 한다는 내용이 담긴 발라드 곡들.

저 두 곡이 바로 내가 이번에 분석을 요청한 이유였다.

-팀장님. 이게 뭘까요?

나상윤 팀장과 내가 일전에 차트를 보면서 의아했던 내용이었다.

-이상하네.

-이상한데요? 이게 하나는 16년도에 나온 노래고 하나는 작년 초에 나온 노래인데… 제가 그때 들어서 잘 알고 있거든요.

보통 역주행에는 계기가 있다.

16년도에 불꽃놀이는 '미스터 프로듀서'라는 인기 예능으로 올라왔고, 최근에 핫한 럭키걸의 노래는 직캠이 크게 떴다.

그런데 저 노래들은 SNS에서 조금 이슈가 됐다는 뉴스를 빼면 별다른 계기가 없었다.

물론 내가 모르는 계기가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런 계기가 아니었다.

-팀장님. 제가 모르는 트렌드가 있는 걸까요?

-글쎄다…. 나도 모르겠네.

망고 차트는 대중들이 현재 무엇을 듣는지를 보여 주는 대표적인 지표다.

내 취향이든 아니든, 일단 차트에 올라왔다는 것만으로 분석할 가치가 있다는 뜻.

그런 까닭에 보통 들으면서 '대중들이 이래서 좋아하는구나' 하는 부분들을 캐치하기 마련인데… 저 두 곡을 시작으로 최근에 차트에 올라오는 몇몇 곡들은 인기 포인트가 이해가 안 갔다.

대중음악을 하는 사람으로서 꽤 신경이 쓰이는 문제였다.

대중들이 저걸 왜 좋아하는지 알지 못한다면 작곡가로서 문제가 있다는 뜻이니까.

"안 그래도 최근 관계자들 사이에서 말이 많아."

A&R팀장님이 말했다.

"우리만 그런 게 아니라 다들 의아해하더라고. 16년도 17년도에 나온 곡이 왜 지금 올라오냐는데… 뭐 어떤 사람들은 이게 요즘에 핫한 바이럴 마케팅이라고 하기도 하고."

"마케팅만으로 이게 되나요?"

돈으로 인기곡을 만들 수 있다면 지금 차트는 4대 기획사들의 신곡으로 뒤덮여 있을 거다.

A&R팀장님이 말했다.

"마케팅만으론 어렵지."

"그러면요?"

"관계자들끼리 하는 추측이라 확실히 말하기는 힘든데… 인위적인 수단을 통해 차트 순위를 올리는 거 같아."

"아……."

뭔가 인위적인 조작이 들어간 것이 아니냐는 추측에 고개를 끄덕였다.

"어쩐지 좀 이상하다 했어요."

"확실한 건 아니야. 아직 들리는 소문도 없고, 전례가 없는 일이라… 일단 이 부분은 더 자세히 알아보고 올게."

"네."

그래도 일단 안심이긴 했다.

내가 갑자기 대중들의 취향과 괴리되거나 멀어진 건 아니니까.

그런 생각을 하며 다른 내용으로 회의 주제를 넘기려는데, 지호가 손을 들었다.

"한 가지 더요."

우리가 시선을 돌리자 막내가 말했다.

"제가 우주 형 얘기 듣고 검색하니까 이런 기사들이 종종 보이더라고요. 최근에 이렇게 올라오는 곡들이랑 썸씽이랑 닮은꼴이라고."

"그래?"

"이거 보세요."

막내가 핸드폰을 톡톡 조작해서 TV 화면에 자기 핸드폰을 연결해서 보여 줬다.

-2018 겨울 가요계를 핫하게 달군 발라드.. "뉴블랙 Something부터 짚어 보는 역주행 역사"

작곡가들이 눈을 가늘게 뜨는 가운데 지호가 웃었다.

"은근슬쩍 저희랑 엮어서 문제없는 것처럼 하려는 거 같더라고요. 나중에 안티들이 이거 가지고 물고 넘어질 수도 있고. 그러니까, 이 부분에 대한 대비가 필요할 거 같아요."

직원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TF팀이랑 혹시 모를 문제에 대비해 둘게."

"우리 지호 다 컸네."

마지막 말에 회의실에 웃음이 흘렀다.

하지만 다들 살짝 놀란 얼굴로 지호를 바라보긴 했다.

회의실에서 맨날 과자 쭙쭙 하던 아가가 대책을 논의해야 한다고 말을 했으니까.

왠지 모르게 잘 큰 동생을 보는 것 같아 흡족했다.

"자."

다시 회의로 돌아와 서필근 대리가 브리핑을 마무리 지었다.

"가요계 상황에 대한 브리핑은 여기까지고요. 혹시 더 궁금하신 부분 있으십니까?"

"저 있어요."

비주가 손을 들었다.

"저희가 컴백할 4월 가요계 상황은요?"

"어……."

서필근 대리가 웃으며 뺨을 긁적였다.

"그 부분은 브리핑할 부분이 없어서… 원래 4월에 원더 차일드와 블링크 같은 대형그룹이 컴백한다는 소식이 있었는데."

"…있었는데?"

"너희가 4월에 나온다는 소식 들리자마자 모든 그룹들이 3월 아니면 5월로 바꿨어."

"있었는데 없어진 거군요."

중현이의 요약에 다들 웃음을 터뜨렸다.

경쟁자들이 모두 다른 곳으로 갔다는 이야기에 왠지 모르게 머쓱한 기분으로 코만 슥 비빌 때.

본격 앨범 제작 회의에 돌입했다.

"제가 이번에 보내드린 백야는 다들 들어 보셨나요?"

"네."

"어떠셨어요?"

작곡가들이 하나둘 답했다.

"오랜만에 듣는 장르 같긴 한데… 신나긴 진짜 신나더라."

"솔직히 차트 상황은 알 수 없지. 곡이 잘 되고 안 되는 건 나와 봐야 아니까. 그런데 이건 꽤 오래갈 거 같아. 낮은 순위든 높은 순위든 간에."

"좋더라."

특히나 신나는 편곡 담당인 프로듀싱팀 막내 김형섭의 말에 내가 반색했다.

"형섭아. 마음에 드니?"

"응. 진짜 괜찮은데."

"좋아. 지금부터 열심히 편곡해 주면 돼."

"……?"

갑자기 곡을 떠맡은 형섭이가 눈을 깜빡이고 다들 웃음을 터뜨릴 때.

곡에 대해 칭찬을 해 주던 작곡가들에게 물었다.

"수록곡 작업은 어떻게 되고 있나요?"

"열심히 작업하고 있는 중이지."

"…힘들지는 않으세요?"

내 물음에 다들 웃음만 보일 뿐이었다.

블루문을 공동 작곡한 나상윤 팀장을 비롯해 차트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는 우리 프로듀서들.

저작권료와 성과급으로 부자가 돼서 쉬엄쉬엄하고 싶을 수도 있을 텐데.

매일 밤잠을 설쳐 가며 우리 앨범 작업에 매진하는 이들에게 고마움을 느꼈다.

"제가 요즘 들어 깨달은 게 하나 있거든요."

"뭔데?"

나상윤 팀장님에게 내가 말했다.

"일도 좋지만 건강도 챙기고, 휴식도 취하면서 일을 해야 한다고요."

"……."

"왜들 그러세요?"

프로듀서들이 이리저리 고개를 꺾으며 다양한 각도로 날 살피기 시작했다.

"저거 선우주 맞아?"

"저 악랄한 입에서 어찌 저런 말이……."

"휴식? 휴시이익? 우주선이 휴식?"

동생들이 박장대소하는 동안 내가 입을 파르르 떨었다.

"아무튼 그런 의미로 우리 작곡가들의 복지를 챙겨야 한다.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나 알겠다."

작년 송캠프 이후로 합류한 샌드걸 작곡가가 말했다.

"홍삼 선물인가요!"

"아뇨. 홍삼은 아니고요."

내가 손가락을 튕기자, 중현이가 불을 끄고 리혁이가 PPT 화면을 띄우기 시작했다.

스폰지밥의 오프닝에 들릴 법한 기타 소리가 들려오고.

하와이의 야자수를 배경으로 아름다운 글씨가 뾰로롱 떴다.

[2018 하와이 송캠프]

눈을 휘둥그레 뜨고 감탄하는 작곡가들에게 말했다.

"와이키키 해변이 보이는 리조트에 숙소를 잡으려고 해요. 여러분들이 쉬면서 작업도 할 수 있고."

"……!"

"다른 나라 작곡가들도 초청해서 워크숍을 열고."

음악을 하는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것은 바로 자기계발의 기회.

외국 작곡가들과 만난다는 소식에 프로듀서들이 눈을 초롱초롱하게 뜨기 시작했다.

"일정을 여유롭게 짰으니까 관광도 좀 즐기시고요."

"허어어……."

유웅 작곡가가 물었다.

"정말 저희 가도 되는 거예요? 이거 깜짝 카메라 그런 거 아니죠?"

"당연하죠. 제가 대표님에게 직접 건의를 드려서 승낙을 받은 내용이에요."

"우주 씨…!"

감격한 얼굴로 바라보는 작곡가들.

그런 작곡가들에게 끝나지 않았다는 듯 내가 손가락을 들었다.

"하지만 여러분이 가장 좋아할 내용은 따로 있어요."

"이것보다 더 좋은 게 있다고?"

"네."

내가 손짓하자 리혁이가 PPT 화면을 넘겼다.

빠밤!

팡파레가 울려 퍼졌다.

[2018 하와이 송캠프 주요 공지사항]

1. 우주선 불참 (중요) ☆☆☆☆☆

볼드 처리된 문구에 작곡가들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만세!"

"자유다!"

자기들끼리 환호하면서 얼싸안고 '우리 가서 재미있게 놀아 봐요!' 하는 말들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으하하하하!"

"아, 너무 기대된다!"

하와이 송캠프 소식보다 내 불참 소식이 더 좋은 걸까.

방금 전까지 하와이 송캠프를 보고 '어머 좋다…' 하고 반기던 작곡가들이 지금은 방방 뛰고 있었다.

웃음을 터뜨리는 멤버들 속에서 그저 나는 씁쓸할 뿐.

"아, 진짜 너무 좋아하시는 거 아니에요?"

"아니야."

너무 웃어서 눈물까지 난 나상윤 팀장님이 말했다.

"슬퍼서 그래."

"아무리 봐도 슬픈 사람의 표정이 아닌데요. 팀장님."

"사람이 너무 슬프면 눈물도 나는 거지. 아하하하하!"

"……."

그래도 하와이 송캠프를 보내 준다는 말의 효과가 좋긴 한 것 같다.

피곤한 얼굴로 노트북 자판을 두드리던 이들이 활기찬 얼굴로 만세를 부르짖고 있었으니까.

솔직히 보기 좋았다.

작곡가들의 눈에 의욕이 넘쳤으니까.

"정말…."

갑자기 구국의 충신처럼 표정이 변한 나상윤 팀장님이 활활 불타오르는 눈으로 말했다.

"최선을 다해 수록곡 만들어 올게. 우주야."

"기대하고 있을게요."

결의를 다지는 작곡가들을 바라보며 웃었다.

곧이어 리혁이의 송캠프 PPT가 짧게 마무리된 후, 작곡가들이 떠들썩한 웃음을 터뜨리며 나가기 시작했다.

"최고의 곡을 가져올게. 우주야!"

"열심히 일하고 올게요!"

의욕 넘치는 얼굴로 떠나는 이들을 보며 비주가 말했다.

"이번 앨범 걱정은 안 해도 되겠네요."

"그러게."

뻐근한 몸을 스트레칭으로 풀며 웃었다.

일단 앨범 준비는 여기서 일단락 지으면 될 것 같고.

"슬슬 연습하러 갈까?"

"좋아요."

우리 역시 결의에 찬 표정으로 눈을 마주쳤다.

이번 달에는 아주 중요한 행사가 우릴 기다리고 있었다.

* * *

인천 국제공항.

[2018 평창 동계 올림픽 개최국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올림픽 마스코트를 비롯해 한복을 입은 관광공사 도우미들이 외국인 선수들을 반기는 입국장.

얼마 전 선수촌이 문을 열면서 하나둘 입국하는 각국 국가대표들이었다.

그곳에서 한 여자가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

"후아."

영국 국가대표 유니폼을 입은 수지 클라크가 눈을 감고 은은한 미소를 지었다.

'Oppa들. 제가 왔습니다.'

한 번쯤 오고 싶었던 뉴블랙의 본고장에 마침내 도착한 수플레였다.

한복을 입은 도우미들도 건네주는 꽃다발에 다른 국가대표 선수들이 즐겁게 웃을 때.

한국 방송 카메라가 그녀에게 다가왔다.

"한국에 오신 소감이 어떠세요?"

"후우."

수지가 카메라를 향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여기가 바로 뉴블랙의 나라군요."

덕심을 표현하는 그녀의 모습에 취재진이 웃음을 터뜨리고, 다른 동료들도 웃음을 터뜨렸다.

"진짜 극성이야."

"비행기에서 오는 내내 뉴블랙 이야기했다니까. 한국은 뉴블랙의 나라라고 그러면서……."

영국 국가대표들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하여간.'

어찌나 과장된 이야기를 하던지.

모든 한국 사람들이 뉴블랙을 사랑하고, 뉴블랙이 만든 음식을 먹기 위해 고속도로를 지옥으로 만들고 하는 이야기들.

'그래 봐야 보이밴드 아닌가?'

영국인들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보이밴드는 대체로 그런 이미지였다.

소녀 팬들을 광적으로 몰고 다니지만, 일반인들에겐 '뭐 그런 애들이 요즘 핫하더라' 하는 정도만 알고 있는.

수지가 고개를 획 돌렸다.

"아니야. 내 말 맞다니까? 한국 사람들은 뉴블랙을 사랑한다고."

"하."

모두에게 사랑 받는 보이밴드~ 같은 말을 하는 수지의 말에 동료가 고개를 돌렸다.

'그게 말이 되나.'

영국인 선수가 근처에 있는 한복 도우미들에게 물었다.

"질문이 하나 있습니다."

"네."

"정말 뉴블랙이 한국에서 그 정도로 인기 있는 가수인가요? 모든 시민들이 사랑하는…?"

"음……."

도우미들의 시선이 움직인다.

그걸 따라 시선을 옮기는 영국 국가대표 선수들.

'어라?'

공항 곳곳에 걸린 다양한 광고들이 눈에 들어온다.

평창 올림픽 홍보 대사로 화이팅 하고 있는 뉴블랙 사진.

면세점에서 쇼핑하는 뉴블랙 멤버의 사진.

5G 등에 대한 홍보문구가 적힌 이동통신사 광고에서 스포츠 유니폼을 입고 있는 뉴블랙 멤버.

공항 광고 절반을 뒤덮고 있는 뉴블랙의 사진을 바라보던 도우미들이 말을 꺼냈다.

"모든 사람들이 다 뉴블랙을 좋아하는 건 아니에요. 그런데…."

"그런데?"

"전 좋아해요."

그걸 시작으로 이어지는 증언들.

"모두가 좋아하는 건 아니겠지만 전 좋아해요."

"저도 좋아해요."

"나도 좋아하는데."

통역사까지 '나도 좋아한다'고 증언이 이어졌다.

수지 클라크가 동료들에게 말했다.

"거봐. 맞지?"

"……."

영국 국가대표들이 눈을 깜빡이며 뉴블랙 광고판들을 바라보았다.

'뉴블랙의 나라라는 게 진짜였어…?'

아직 한국에 대해 잘 모르고 있는 외국인 선수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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