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836화 (836/1,031)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836화

장소희 대표.

90년대에 국민적인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에서 주연을 맡았던 배우이자, 현재는 SNH 엔터의 대표이사인 인물.

연습생 때 이분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어왔다.

-SNH는 진짜 대표님이 완전 천사라고 그러던데. 월평 때도 임원들이 절대 욕 안 한대.

-이번 월평 망해서 잘리면 딴데로 가자. 꿈과 희망의 SNH로!

-춤 가지고 더럽게 치사하게 구네. 형. 그냥 형이랑 나랑 SNH로 가 버릴까? 거기는 인성만 좋으면 계속 버틴다며….

솔직히 연습생들이 뭘 그리 잘 알았을까.

그냥 학생들끼리 '야 8반 담임쌤 성격 진짜 좋대' 하면서 부러워하는 것과 비슷한 뉘앙스였다.

아무튼 특이한 점이라면 절대 나쁜 이야기는 안 들려왔다는 것이다.

보통 다른 기획사로 넘어간 친구들이 '아 씨발 박태준 존나 천상계였슴' 하는 문자를 보내기 마련인데, SNH로 넘어가면 애들이 말투도 유해지고 뭔가 금방 연락도 끊겼다.

과거의 인연이 떠오르지 않을 만큼 풍족하고 행복하다는 뜻이었다.

그때마다 태현이나 다른 동생들과 함께 대체 SNH는 어떤 곳이냐며 의문을 품었는데.

"와아아아아아아아!"

이제야 그 의문을 좀 해결할 수 있을 거 같다.

"뉴블랙이 오신 것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짜라짜라 짠짠짠~!"

SNH 엔터의 임직원들과 그 가족들이 환호성을 지르면서 우리를 반기고 있었다.

장소희 대표님이 뚜벅뚜벅 걸어와 우리에게 꽃목걸이를 씌워 주었다.

배우답게 우아하고 고상한 목소리였다.

"우리 회사에 온 걸 진심으로 환영해요."

"어… 네. 안녕하세요."

얼떨떨해하는 우리 모습에 SNH 직원들이 꺄르르 웃어 댔다.

리혁이가 멍한 얼굴로 물었다.

"회사… 쉬는 날이라고 하지 않았나요?"

"아. 그렇죠. 쉬는 날이에요."

장소희 대표님이 차분한 웃음소리를 내며 설명했다.

"쉬는 날이라고 직원들 자율에 맡겼어요. 가족들이랑 나와서 뉴블랙 보고 싶은 사람은 보고, 별로 구미가 동하지 않는 직원들은 그냥 하루 집에서 편하게 쉬라고."

"아하……."

"그런데 직원 95퍼센트가 나왔네요."

대표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직원들 사이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휴일이야 또 오지만 뉴블랙은 한 번이다!"

"그거 맞다!"

"제 이름 불러 주세요! 저는 경일고 3학년 김상혁입니다! 이 회사에 저희 누나가 다닙니다!"

어느 남고생의 외침에 다들 웃음이 터져 나왔다.

우리가 상혁 씨의 이름을 부르고 당사자가 호우! 하면서 다시 또 웃음이 터졌다.

뉴블랙 TV 카메라가 세팅이 되는 동안 우리는 임직원들과 담소를 나누었다.

"분위기 너무 좋네요!"

어느새 분위기에 적응한 우리가 마이크를 내밀듯 손을 내밀었다.

"이대로 오프닝 리허설 한 번 가 보겠습니다! 전국~"

"노래 자랑~!"

빰빰빰빰바밤~ 하면서 다 같이 율동을 추면서 흥을 높이기도 하고.

"뉴블랙!"

"잘생겼다!"

분위기 좋고.

"선우주!"

"작곡!"

"김비주!"

"춤 잘 춘다!"

"김중현 서리혁!"

"튼튼하고 허약하다!"

"왕지호!"

"건강… 하다?"

우리 막내가 '연기 잘한다구요! 연기!' 하며 삐죽대는 동안 장난스러운 웃음이 돌아온다.

그렇게 분위기가 절정에 달했을 때.

"자, 그럼 지금부터 뉴블랙 TV 컨텐츠! 4대 기획사 방문기의 마지막 시리즈! SNH 엔터 편 촬영을 시작하겠습니다!"

"와아아아아아아!"

우리가 최근에 찍은 뉴블랙 TV 컨텐츠 중 최고의 컨디션이었다.

* * *

『 4대 기획사 방문기 : SNH 엔터 편 』

우주 : 전국~!

직원들 : 와아아아아아!

딩동댕동.

빰빠바밤빰빰~ 하는 BGM이 깔리면서 직원들이 환호하는 모습이 나오면서.

[전국 노래 자랑]

[SNH 엔터 편]

…이라는 특유의 폰트 자막이 깔리는 것도 잠시.

곧이어 폰트가 깨지면서 자막이 새로 깔렸다.

[…가 아닌 4대 기획사 방문기!]

[여러분은 지금 뉴블랙 TV의 4대 기획사 방문기를 보고 계십니다.]

백여 명이 넘는 사람들이 뉴블랙의 이름을 연호하는 장면이 흘러나오면서 멤버들의 팬 서비스가 이어진다.

비주가 직원 가족들과 사진을 찍어 주고.

중현이 어린 남자아이를 목마 태워 주기도 하고.

자신의 포토카드를 내미는 소녀들에게 리혁이 도망치면서 사인을 해 주는 장면들이 흘러나왔다.

지호도 거기에 같이 추격하고 있었다.

우주 : 와.

회사 분위기가 좋다는 감탄을 하던 우주가 누군가의 곁에 선다.

40대 초반이라고 해도 믿을 만큼 방부제 미모를 보여 주고 있는 50대의 대표이사였다.

MC처럼 능숙하게 진행을 하던 우주가 장난스럽게 물었다.

우주 : 기획사에 방문할 때마다 저희가 대표님이나 임원 분들에게 드리는 질문이 하나 있는데요.

장소희 : 네에.

우주 : SNH 엔터가 왜 최고의 회사인가요?

대체로 복리후생이나 연봉, 구내식당 등을 농담조로 언급하기 마련인데.

장소희 대표가 대답하기 전에 임직원들과 그 가족들이 부산스럽게 움직였다.

직원들 : 대표님! 그럼 저희 들어가 보겠습니다!

장소희 : 어여 들어가~

직원들 : 수고하십시오!

뉴블랙과의 팬 미팅이 끝나자마자 우르르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모습에 뉴블랙 멤버들이 벙 쪘다.

지호 : 저분들은 어디 가시는 거예요?

장소희 : 아.

장 대표가 웃으며 답했다.

장소희 : 팬 미팅 끝나서 이제 집으로 돌아가는 거예요. 회사 쉬는 날이잖아요.

뉴블랙 : …….

장소희 : 저희 회사 좋은 건 모두가 알아서요. 굳이 홍보할 필요는 없을 것 같네요. 하하.

왜 SNH 엔터가 최고의 회사인지 오프닝부터 바로 증명해 버리는 장 대표.

이 모습을 바라보던 뉴블랙이 경악한 얼굴로 카메라를 휙 바라보았다.

우주 : 자막으로 띄워 주세요. 레몬 엔터 직원은 시청 금지.

비주 : 붉은 폰트로 해 주세요.

지호 : 삐라루쿠체 Danger로 써서.

두둥!

[VIP 지침사항]

[레몬 엔터 직원 시청 금지!]

그리하여 4대 기획사 후기 컨텐츠 중에서 가장 높은 조회수를 자랑하게 된 SNH 편이었다.

* * *

"정말 직원 분들이 아무도 없는 건가요?"

"아뇨."

삐빅.

장소희 대표님이 키 카드를 찍어서 회사 문을 열었다.

"필수 직원들은 남아서 일 처리를 하고 있죠. 드라마 프로모션 일정 때문에 남아 있는 직원들도 있긴 한데… 그런 직원들은 나중에 별도로 휴가를 쓸 계획이라서요. 걱정 안 하셔도 돼요."

우아하게 걷는 장 대표님을 따라 회사 시설을 둘러보았다.

다른 대형 기획사들에 비하면 사옥 규모가 작은 편이지만 내실이 탄탄하다 느껴지는 회사였다.

인터넷에서 '1위는 아니지만 4대 중에서 마지막에 망할 회사'라는 평이 왜 나오는지 절로 이해가 된다고 할까.

"와……."

지호가 말했다.

"저 SNH로 오디션 볼 걸 그랬나 봐요."

"그러게요. 지호 씨가 왔으면 우리 SNH 엔터가 두 배로 커졌을 텐데."

"그죠?"

푼수처럼 히히 웃는 막내를 바라보며 웃는 모습에 내가 물었다.

"그럼 제가 왔으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스무 배로 커지지 않았을까요?"

"오. 십지호."

10지호라는 중현이의 드립에 뉴블랙 TV 제작진과 우리가 웃음을 터뜨렸다.

짓궂게 놀려 대는 어른들에게 막내가 입을 삐죽거리며 투덜대는 동안, 대표님이 회사 안내를 이어 갔다.

"레몬 엔터랑 저도 인연이 좀 있더라고요."

"정말요?"

"네. 인터넷에서 보니까 제가 박규호 대표님과 비슷하다면서요? 김 주먹밥 그런 별명이 있던데."

"아… 그… 런가요?"

'긴머박(긴 머리카락의 박규호).'이라는 별명을 언급하지 않고 모른 척하는 우리였다.

하지만 회사 사옥을 둘러보면 둘러볼수록 적절한 별명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지금까지 방문한 4대 기획사 중에서 가장 우리와 결이 비슷하다.

그 때문인지는 몰라도.

"하하하."

장 대표님이 웃을 때마다 자꾸만 우리 대표님이 보였다.

"우리 회사는 크게 둘러볼 게 없어요. 소개는 여기까지 해야 할 것 같고… 음. 특별히 안내할 사항은 없네요. 합동 연습할 장소는 우리 직원이 안내해 줄 거고. 저는 여기까지네요."

"오늘 정말 감사했습니다. 대표님."

"아니에요. 뭐 감사할 것까지야…."

제작진이 촬영을 종료하는 동안 장소희 대표님이 지갑을 뒤적거렸다.

곧이어 개인 전화번호가 적힌 명함이 나왔다.

"혹시 회사에서 무슨 일이 있거나 필요한 일이 생기면 언제든 연락 주세요."

"오오, 영입 제안인가요?"

넉살맞게 대꾸하는 중현이에게 대표님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레몬 엔터의 대주주를 영입해 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하지만 뉴블랙 정도 되는 스타들과 인연을 맺어 둬서 나쁠 건 전혀 없으니까. 필요한 일이 있으면 언제든 연락을 줘요."

"감사합니다. 대표님."

"그럼."

우아하게 돌아가던 대표님이 아 하며 멈칫했다.

"그리고 구내식당은 열어 뒀어요. 오늘 직원들도 있고, 손님들도 여럿 온다고 해서."

"아."

"우리 회사 밥 진짜 맛있거든요. 한 번 먹고 가요."

사르르 눈웃음을 보이며 사라지는 대표님의 뒷모습과 방금 받은 명함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와……."

동생들의 감탄에 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최근에 내가 만나 본 회사 대표님들 중에서 정치력이라고 해야 할지, 그런 것이 가장 높아 보이는 분이었다.

* * *

"여기입니다."

SNH 엔터의 직원 분이 키 카드로 문을 열면서 말했다.

"여기가 저희 회사의 대형 연습실이에요."

"와아아아."

30명가량의 사람들이 여유롭게 움직여도 널찍한 연습실이었다.

뷰도 좋고, 채광도 좋고.

자동으로 온습도가 조절되는 에어컨을 바라보던 리혁이가 스흡 하고 숨을 내쉬며 놀랐다.

"어? 세팅이 진짜 잘 됐네요. 노래하고 목 풀기에 딱 좋은 습도예요."

"진짜네?"

우리도 '아아아~ 오백원' 하면서 목을 풀어 보는데 정말 리혁이 말이 맞았다.

직원 분이 웃으며 보안카드를 건네주었다.

"출입하실 때 이걸 사용하시면 됩니다."

"감사합니다!"

"필요하신 거 있으면 제 전화번호로 연락을 주시면 돼요."

연락처가 적힌 명함을 공손히 받고는 연습실에 우리들끼리 남았다.

이곳저곳을 둘러보는 것도 잠시, 동생들과 스트레칭을 하면서 몸을 풀었다.

SNH 엔터의 촬영이 생각보다 일찍 끝난 탓에 아직 약속 시간까지는 1시간이나 남은 상황.

"TNT 선배님들이나 데일라잇 선배님들은 좀 오래 걸리시겠죠?"

"스케줄 있는 사람들도 있으니까."

얼마나 연습 시간을 잡아 둬야 하는지 비주가 머릿속으로 계산을 할 때, 내가 웃으며 말했다.

"근데 그 중에 한 명은 진짜 금방 올 거야."

비주만큼 연습벌레인 누군가를 나는 알고 있었다.

비주가 누군지 바로 알아들었다.

"태현 선배님이요?"

"응."

호랑이도 제 말을 한다는 말답게 곧바로 문이 열렸다.

"하이!"

"안녕하세요! 선배님!"

"오랜만이에요. 아~ 왜 이렇게 부담스럽게 인사해. 우리 좀 친해진 줄 알았는데."

꾸벅 인사하는 동생들에게 태현이가 손사래를 치며 웃었다.

고급스러운 코트 위로 목도리를 돌돌 푸는 태현이의 귀에서 장신구들이 짤랑거리며 부딪힌다.

머리를 가볍게 털던 태현이가 내게 다가왔다.

"형~"

태현이가 내미는 손을 받으며 가볍게 등을 두드려 주었다.

"아 진짜 이게 얼마 만이야."

"두 달 됐지. TBC에서 연말 하고 처음 보는 거 같은데."

"맞아."

1월에 신곡 낸 거 축하한다, 그래미 후보 축하한다 하는 등의 반가운 이야기가 나오면서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만나면 마음이 편해지는 애가 있는데 그게 바로 얘였다.

상대도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평소였다면 바로 연습에 들어갔을 애가 미주알고주알 근황 이야기를 하는 걸 보면.

"뭐 타고 왔어? 회사 차?"

"아니. 운전하고 왔지."

"면허는 언제 땄어?"

"얼마 안 됐어. 요새 초보 운전자야."

그 말에 놀란 내가 운전을 하다가 혹시 접촉사고라도 나면 어쩌려고 그러냐, 꼭 차가 있는 게 좋은 건 아니다 하면서 말을 하니 태현이가 진저리를 쳤다.

"하여간 잔소리."

"잔소리가 아니라 다 이게 너를 걱정하는 마음에서 해 주는 이야기야. 너를 아끼니까 내가……."

"요즘에도 잔소리 심하죠?"

동생들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태현이가 맑은 웃음을 터뜨렸다.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면서 태현이도 스트레칭을 쭉쭉 했다.

우리 동생들과도 이제 친분을 제법 쌓았는지 이야기를 나누는데, 주로 비주랑 이야기를 많이 하는 것 같다.

"형 이번에 신곡 안무 정말 잘 봤어요."

"괜찮죠?"

"아이솔레이션으로 그 머리 꺾는 파트 너무 좋던데요."

같은 메인댄서들끼리 통하는 게 있는 모양이다.

한 명은 능글맞고. 한 명은 좀 부드럽고.

둘이 성격이 좀 많이 다르긴 하지만, 메인댄서들 특징인 특유의 성실함은 정말 결이 비슷했으니까.

그렇게 30분 정도 몸을 풀고 각자 안무 연습을 하고 있을 때.

TNT의 멤버들도 각자 하나씩 등장하기 시작했다.

"여어!"

TNT의 리더인 구선웅, 메인보컬 신주영 등을 시작으로 막내인 석지훈까지.

자기들끼리도 오랜만인지 서로 데면데면하면서도 반갑게 안부를 주고받았다.

겉으로 보기엔 엄청 반가운데 왜 데면데면한 걸 알 수 있느냐?

그것은 바로 나를 사이에 두고 이야기를 한다는 것에서 알 수 있었다.

"아, 선웅이 형한테 뭐라고 좀 해 봐. 저 형 맨날 요즘 군대 이야기 한다니까. 우주 형."

"갈 때가 됐으니까 그러지."

지한빈과 구선웅이 날 사이에 두고 이야기를 하는 모습에 작게 웃었다.

"후우."

90년생이라 올해 군 입대를 앞두고 있는 구선웅이 머리를 벅벅 긁었다.

"하씨… 군대……."

"국방의 의무는 신성한 거야. 형."

"너…. 너는 그런 말 해도 되는구나. 다녀왔으니까."

군대에 가는 게 이만저만 심란한 게 아닌지 울적해하는 구선웅의 곁에서 금세 물러났다.

내가 가 봐서 아는데 저렇게 울적한 기분은 어차피 입대해야 해결이 되는 거니까.

아. 나 진짜 망한 거구나 하고.

그런 이야기를 마음속으로 하면서 이런저런 근황 토크를 주고받았다.

그 사이에서 연기자로 전향한 막내 석지훈과 우리 막내의 대화도 들려온다.

"드라마 제작사에서 출연료 지급을 안 해 줘요. 배 째라고 나와서."

"미친. 진짜요?"

"네. 그것 때문에 소송 들어가는데… 회사에서는 미적거리고 진짜 환장하겠다니까요."

"헐……."

"레몬은 어때요? 나 이거 어차피 짧은 계약이라서."

새로 이적한 배우 매니지가 별로인지 은근하게 레몬 엔터에 대해 묻는 지훈이의 대화도 들려오고.

리혁이가 메인보컬 신주영과 OST 업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게 보인다.

그 속에서 누군가 내게 윙크했다.

"뭐."

"아잉~"

중국 무협 사극에 나올 것처럼 곧은 콧대를 자랑하고 있는 미남이 내게 눈을 찡긋했다.

"알지?"

"뭘… 아는 건데."

"우리 사이? 끈끈하게 얽힐 예정인?"

계약할 사이라는 것을 그렇게 표현하는 사람은 처음 본다.

과거 레몬 엔터와 계약하기로 한 것이 아직도 유효하냐는 질문에 내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애들한테는 비밀이야?"

"응. 선웅이 형은 특히 입이 싸니까."

"그… 렇긴 하지."

악의는 없지만 입이 가벼운 타입이다.

내가 속삭였다.

"그래서 언제 오려고?"

"작년에 말했던 대로 올해 가을쯤? 그때쯤이 딱 적기일 거 같아."

자세한 건 회사 통해서 조율을 하자고 이야기를 나눈 후.

지금까지 개인 활동하느라 만나지 않았던 TNT 멤버들의 서먹함이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나도 그 사이에 끼어서 '옛날에 우리 그랬지~' 하며 이야기를 풀기도 하면서 분위기를 풀었다.

매번 돌림노래처럼 나오는 옛날이야기들에 웃을 때였다.

"아. 맞다."

구선웅이 내게 물었다.

"우주야. 너 혹시 김주안 기억하냐?"

"아. 주안이 형?"

연습생 시절에 머리를 노랗게 물들이고 다니던 심술궂은 얼굴이 떠오른다.

여자 좋아하고 술 좋아해서 나랑은 잘 안 맞았던 사람이다. 맨날 바닷가 놀러가자고 그러고.

중간에 방출돼서 중소 기획사에서 데뷔를 했는데, 한 3년 하고 활동 중단한 걸로 알고 있다.

"결혼한대."

"오, 잘됐네."

"그래서 청첩장 받았는데, 걔가 혹시 너도 올 수 있냐고 나한테 물어봐 달라고 그러더라."

딱히 내가 보고 싶어서라기보다는 결혼식장에 유명인이 오는 걸 원하는 듯한 뉘앙스였다.

"날짜가 언젠데?"

"3월 30일."

"그때면 한창 컴백 준비 중이라 좀 힘들겠네. 결혼 진심으로 축하한다고 전해 줘."

"오키오키."

'저 형 눈치…' 하면서 태현이와 다른 멤버들이 혀를 끌끌 차고 있는 모습에 작게 웃었다.

아무튼 지나간 추억 얘기를 하면서 TNT 멤버들 사이의 분위기를 부드럽게 푸는 데 공을 들였다.

이번 폐막식 무대는 팀워크가 중요한 무대이기 때문에 무대에 지장이 갈 요소는 최대한 제거하고 싶었다.

활동 중단할 때 꽤 서먹했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걱정했는데.

다행히 TNT 멤버들도 오랜만에 만난 게 반가운지 분위기는 금세 좋아졌다.

"아."

내가 웃으며 말했다.

"나 그때 태현이가 진짜 대선배처럼 보였거든. 음악 방송에서 태현이를 처음 딱 만나는데 너무 대단해 보이는 거야."

"흐하하!"

"막 연예계에 대해서 빠삭하게 알 것 같고."

그때가 썸씽으로 첫 활동하던 시기였는데, 딱 4년 전이다.

"근데 그때 너희 연차가 지금 우리 연차더라."

TNT 멤버들이 큰 웃음을 터뜨렸다.

"별거 없지? 5년차로 올라와도?"

"여전히 연예계를 모르겠어."

뭔가 들은 것도 꽤 있고, 무대 경험도 꽤 쌓였는데… 아직도 연예계의 어린이 같은 기분이다.

"그때 너희도 좀 당황스러웠을 거 같더라. 내가 막 이것저것 물어보면 모르는 것도 많았을 테니까."

"그랬지."

"지금은 어때? 9년차잖아."

"몰라~ 여전히 모르지~"

넉살맞게 웃던 메인보컬 신주영이 말했다.

"데일라잇 누나들쯤 되면 모를까. 그 누나들은 이제 몇 년차지? 12? 13년 그쯤이니까."

마침 데일라잇 화제가 나와서 그런 걸까.

화보 촬영이 지연되어서 조금 늦을 것 같다는 데일라잇에 대해 우리가 호기심을 품었다.

비주가 물었다.

"저… 데일라잇 선배님들은 어떤 분들인가요?"

"안 만나 봤어요?"

"접점이 좀 없었어요."

가끔 연예계에서 그런 사이들이 있다.

서로 이름도 잘 알고 양쪽 다 유명한데, 희한하게 마주친 적이 없는 사이.

"음……."

TNT 멤버들이 무언가를 고민하듯 턱을 쓰다듬었다.

무슨 기억들을 떠올리는지 얼굴이 새하얗게 질리기도 하고, 웃기도 하고. 표정 변화가 다채롭다.

"그 누나들 생각만 하면 트라우마가 와서……."

"우리가 이번 노래 대박이다, 그럴 때마다 음방 나가서 된통 깨지고 그랬거든. 앨범도 보이그룹만큼 파는데 음원이 일단 항상 대박이 터지니까…. 거기 아저씨 팬들도 무섭고."

"진짜 신인 때 무서웠지."

신인 시절의 두려움이 각인된 듯한 표정에 우리가 더욱더 호기심을 빛낼 때.

지한빈이 말했다.

"그 누나들이 어떠냐면… 약간……."

정확한 묘사를 찾기 위해 고민하던 한빈이가 딱 우리와 눈이 마주치고는 말했다.

"뉴블랙 여자 버전."

"인정."

"우리가 활동할 당시에 여자 뉴블랙이었지."

더욱더 호기심이 짙어지는 가운데, 데일라잇에 대해 더 자세하게 물어보려고 할 때였다.

똑똑.

노크 소리가 들려오면서 모두 고개를 돌렸다.

"누구세요?"

-데일라잇 리앤이요.

"어어! 안녕하세요!"

대선배의 목소리에 모두가 스프링처럼 벌떡 일어나고 있을 때.

-저기, 미안한데…….

"네! 선배님!"

-문 좀 열어 줄래요? 나 못 들어가서.

"……?"

자기 회사 연습실에 못 들어온다는 가수의 말에 모두가 눈을 깜빡거렸다.

-회사에서 연습실 비밀번호를 바꿔 놨더라고…. 연습 좀 쉬라고 금지당한 게 안 풀린 모양인데…….

"……."

우리가 문을 여는 동안 구선웅이 물었다.

"누나, 보안카드 없으세요?"

"아, 그거?"

이제 육성으로 들리는 목소리가 당당하게 대답했다.

"잃어버렸어. 하하하!"

"……."

"……."

TNT 멤버들이 '어딘가 익숙하지 않느냐' 하는 표정으로 우리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우린 모르는 척했다.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