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837화 (837/1,031)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837화

리앤.

가창력 좋기로 소문난 데일라잇에서도 압도적인 가창력을 보유한 메인보컬로, 빼어난 댄스 실력까지 겸비해서 이 팀의 마스코트와 같은 존재다.

"안녕."

리앤이 TNT 멤버들에게 손을 흔들며 인사하는 동안 동생들과 나는 멍하니 바라보았다.

신기하다.

연습생 시절부터 음악 방송이나 무대 영상으로만 접했던 최고의 스타가 눈앞에 서 있었다.

익숙하게 인사하던 리앤이 우리 앞에 섰다.

"허어!"

상대가 놀란 얼굴로 중얼거렸다.

"연예인……."

"네?"

"나 진짜 연예인 보는 거 같아."

그, 그건 저희가 드려야 할 말씀 같은데요.

우리가 황송한 얼굴로 '안녕하세요!' 하는 동안 리앤이 신기하다는 얼굴로 우리를 요모조모 살폈다.

"와. 진짜 신기하다. 우리 만난 적 없지?"

"처음이에요."

"실제로 보니까 아우라가 장난이 아니네. 내가 생각한 것보다 뭔가… 더, 더… 뭐라고 해야 되지? 멋있네."

"아니에요. 선배님이 더 멋있으세요."

서로 손사래를 치면서 겸양을 떠는 모습에 TNT 멤버들이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신주영이 물었다.

"누나. 저희는요."

"너네한테 아우라를 느끼기에는 너희를 너무 아기 때부터 보지 않았니?"

"와. 진짜 가차 없다."

작게 웃음이 흘러나오는 동안 리앤이 손짓했다.

"왜들 불편하게 서 있어? 앉아."

"누나가 서 있는데 어떻게 저희가 앉아요."

"그런 게 어디 있어. 연예계에서는 위아래가 없는 거야~ 우리끼리 뭘 그런 걸 따지고 그래?"

"그럼 반말해도 돼요?"

"선웅이는 저기 가서 머리 박아."

큰 웃음이 터져 나오는 동안 자연스럽게 리앤을 중심으로 둘러앉았다.

우리도 신기한 얼굴로 상대를 바라보았다.

콧대가 높고 서구적으로 생긴 이목구비가 화려하다. 별빛을 담은 듯 눈이 반짝반짝하는 것도 그렇고.

"어때. 나 오늘 좀 예쁘지?"

"아름다우십니다."

"화보 촬영한다고 진짜 간만에 빡세게 힘 줬거든."

수더분하게 분위기를 풀던 리앤에게 우리가 물었다.

"저, 선배님. 그런데 다른 선배님들은 언제 오시는 건가요?"

"조금 이따가?"

뭔가 웃긴 게 떠올랐는지 리앤이 풉 하며 혀를 찼다.

"아니. 애들이 못 올라오겠다는 거야. 기 센 어린 애들이랑 같이 연습하는 거 무섭다고. 우리 애들 안 그래 보여도 낯가림 심하잖아."

"그걸 낯가림이라고 부르나…?"

"선웅이 엎드려."

"조용히 있을게요."

"아무튼 낯가림이 좀 있어서 내가 먼저 가서 선발대로 있기로 했어. 내가 다 기선 제압한다고 했으니까, 이따가 걔네 올라오면 너네가 좀 기선 제압당한 척 좀 해 주라."

우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걱정 마세요."

"리혁이는 항상 기선 제압당해 있거든요."

주목을 받은 리혁이가 귀와 얼굴이 벌게지면서 내 옆구리를 꾸우욱 찔러 댈 때.

키득거리던 리앤이 말했다.

"정신없지? 내가 좀 처음 만나는 사람들이랑 있으면 어색해서 말이 많아. 잘 부탁해."

"저희도 잘 부탁드려요."

"그리고…."

길쭉한 손이 가방을 뒤적거리더니 A4 용지 더미를 내밀었다.

영문 모르는 표정으로 앉아 있는 우리에게 상대가 히죽 웃었다.

"사인 좀 해 주라."

"사인이요?"

"응. 아니, 우리 조카가 7살인데 그러는 거 있지. 이모 유명하냐는 거야."

2세대 걸그룹의 상징이라 불리는 가수의 말에 TNT와 우리가 웃음을 터뜨렸다.

"왜 그러냐고 하니까 이모 유명하면 뉴블랙 사인 받아다 달래."

"그래서 뭐라고 했어요?"

"뭐라고 하기는. 두 눈 마주치고 경고했지. 각오해라. 멤버별로 하나씩 받아오겠다……."

조카 앞에서 작아지는 이모의 모습에 다시 또 웃음이 터졌다.

리앤이 눈을 찡긋하며 말했다.

"여기 '사랑하는 예은이에게' 하고 사인 좀 각자 부탁할게. 비주는 두 줄 써 줄 수 있니? 네가 최애래."

"세 줄 쓸게요."

그 말이 웃겼던지 상대가 귀엽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때, TNT 멤버들도 정신을 차렸다는 얼굴로 가방에서 사인지를 냉큼 들고 오기 시작했다.

내가 눈을 깜빡이며 물었다.

"그대들은 뭔가요?"

"저희도 사인을 부탁드립니다. 우주선 전하."

"여러분 것까지 해 주기에는 너무 피곤하네요. 어깨도 좀 뻐근하고…."

공짜로 TNT 멤버들에게 안마를 받으며 사인회를 열었다.

각자의 삼촌, 할아버지, 이모, 조카 등에게 건네줄 사인과 메시지를 적을 때, 장한별이 말했다.

"아, 그거 알아요. 누나?"

"뭐?"

"저기 우주 형이 누나랑 진짜 똑같은 포지션이에요. 그룹에서 맡고 있는 역할이 되게 비슷하다고 해야 되나."

"비슷해?"

"우주 형이 10년 묵으면 누나처럼 될 것 같아요."

"…늙어 보인다는 거야?"

"그… 그 이야기가 아니고 그만큼 경륜이 있어 보인다는 이야기지요. 헤헤."

죽음의 위기를 모면한 한별이가 도망치는 동안 나와 리앤이 눈을 마주쳤다.

"저기… 너 나랑 비슷하니?"

"저도 처음 들어 보는 이야기라서요."

그러자 TNT 멤버들이 끼어들었다.

"아니야. 뭔가 느낌이 비슷한 게 있어."

"진짜 비슷한데."

"멤버들이랑 관계도 좀 비슷하고."

영문 모를 이야기를 들으며 사인을 하고 있을 때였다.

똑똑.

노크 소리가 들려오면서 지호가 뛰어가 문을 열었다.

쭈뼛쭈뼛.

어딘가 모르게 소심하게 입장하는 여섯 멤버들의 모습에 동생들과 내가 멈칫했다.

'어디서 많이 본 구도인데.'

'뭐죠.'

TNT 멤버들과 우리도 일어나면서 3자 대면 구도가 완성됐다.

이 자리의 막내인 우리가 먼저 인사를 올렸다.

"처음 뵙겠습니다. 선배님. 저희 뉴블랙입니다."

"허어어!"

"연예인이다…!"

낯가림이 조금 있으신지 호탕하게 웃는 미인들.

두 그룹 다 잘 알고 있는 TNT와 달리, 서로 잘 모르는 데일라잇과 우리가 각자를 소개하고 있을 때였다.

"어?"

무언가 발견한 듯 지한빈이 말했다.

"이제야 뭐가 비슷한지 알았다."

"뭔데?"

"독재자와 졸개 구도였어."

서로의 눈이 딱 마주쳤다.

리더 뒤에 졸개 대형으로 선 데일라잇과 내 곁의 졸개들이 눈을 딱 마주쳤다.

"어?"

데일라잇 멤버들이 동생들에게 물었다.

"호, 혹시 너희도 억울한 거 있으면 말 못 하고, 맨날 구박하거나 잔소리해도 눈물만 삼키니?"

"네…! 선배님도요…?"

"응!"

"허어어어……."

동변상련의 표정이 양쪽 얼굴 위로 사악 스쳐 간다.

곧이어 두 팔을 벌리는 데일라잇 멤버들.

"얘들아!"

"선배님!"

"정말 만나서 반가워!"

"저희도요…!"

여행지에서 한 달 만에 처음 한국인끼리 마주친 것처럼 좋아하면서 손뼉을 부딪치는 이들.

낯가림 심한 이들이 꺄르륵 웃는 동안, 리앤과 내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너희가 남자 데일라잇이라 불리는 이유가 있었구나."

"잘 부탁드립니다. 선배님."

찐한 악수를 나누며 웃었다.

어떻게 친해져야 하는지 고민이었는데… 그 문제는 해결된 거 같다.

* * *

약간의 소란이 끝난 후.

본격적으로 인사하는 시간을 가졌다.

"안녕하세요. 데일라잇에서 맏언니를 맡고 있는 차현정이에요."

"서나입니다."

"수전이에요. 예명은 수전증이 있어서 수전인 거 알죠? 하하핫!"

"다봄이에요."

막내라인인 예슬과 하랑까지 소개를 마치면서 우리도 소개를 했다.

그때마다 TV에서 본 거랑 똑같다며 신기해하는데 우리도 마찬가지라서 뭔가 좀 웃음이 나왔다.

2000년대 중후반에 학생이었던 사람이라면 데일라잇을 모를 수가 없다.

걸그룹 누구 좋아해가 아니고 데일라잇에서 누가 좋냐는 말이 나오던 시기였으니까.

각종 CF를 섭렵한 것은 물론이고 우리 이전에 대상 2관왕을 처음으로 달성한 아이돌 그룹이었다.

일본 돔 투어, 아시아 투어를 비롯해 걸그룹 역사의 한 획을 긋기도 했고.

뛰어난 예능감으로 국민들에게 국민 걸그룹이라고 사랑 받기도 했는데, 이분들이 유명해진 계기가 우리처럼 독특했다.

-안녕하세요! 데일라잇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데뷔할 당시 중소기획사의 걸그룹이었던 데일라잇은 성공을 거두지 못하고 있었다.

2006년만 해도 대형과 중소의 기획력이 하늘과 땅만큼 차이 나던 시기였으니까.

1년 활동하고 사실상 활동 중단으로 가려던 때.

그들에게 어느 예능 기획안이 도착하면서 운명이 바뀌었다.

[시골 농사]

…라는 전설의 예능이었다.

걸그룹이 1년 동안 틈틈이 시골에서 농사를 짓는다는 독특한 컨셉.

어차피 망할 거 될 대로 되라 하는 마음으로 출연했는데, 이게 국민적인 인기를 가진 예능이 되어 버렸다.

-시골 농사, 시청률 30.8% 돌파.. '농사 잘 짓쥬?'

-시골 농사 추석 특집, '수확의 철이 돌아왔다..' 역대급 시청률 돌파

-웰빙 열풍 타고 부는 농사 열풍? '시골 농사' 신무록 PD 인터뷰

훗날 국민 예능 <미스터 프로듀서>를 제작하는 신무록 PD가 입봉작으로 제작한 예능.

천재 PD의 기획력과 멤버들의 예능감이 결합한 시너지는 그야말로 어마어마했다.

내 기억으로 아마 1년 정도 방영하고 끝났는데, 진짜 인기 있던 예능 중 하나였다.

특유의 분위기라고 해야 되나.

밀짚모자를 쓴 멤버가 낡은 자전거를 타면서 농촌을 거니는 장면이라든가. 다들 대청마루에 앉아 맨발을 동동거리며 노을을 바라보는 장면이라든가. 강가에서 그물을 들고 물고기 잡이를 한다든가.

일시적으로 농촌 붐을 일으켰던 명장면들이 나왔던 예능.

그런 행운과 본인들의 실력이 시너지를 내면서 국민 걸그룹으로 도약한 데일라잇이었다.

"선배님. 저 시골 농사가 제 최애 예능이었어요."

중현이의 말에 데일라잇 멤버들이 웃었다.

"진짜? 고마워."

"중현이는 좋아할 거 같더라."

"그거 진짜 본 사람이 많긴 한 거 같애. 나 시골 가면 어른들이 아직도 그 얘기한다니까. 요즘엔 너네 이야기로 많이 옮겨 가긴 했는데……."

우리가 그런 이야기를 주고받는 동안, TNT 멤버들이 박수를 치며 말했다.

"이야. 훈훈하다."

"정말 국민급들의 만남이네요."

"국민 아이돌, 국민 걸그룹… 그리고 국민."

지한빈의 말에 우리가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고는 말했다.

"아니, TNT가 그러시면 어떡해요."

"저희도 좀 잘나가긴 했지만 두 그룹 앞에 서니 작아지네요."

일부러 약한 척하는 모습에 그저 웃을 뿐이었다.

각자 꼭대기까지 찍어 본 자들끼리 농담을 흘리며 친목을 도모한 후.

"자. 그러면 연습 이야기를 해 볼까요?"

"네~"

연습실 벽면에 스크린이 주르륵 내려오고 우리 PPT 담당인 리혁이가 그 앞에 섰다.

[2018 평창 동계 올림픽 폐회식 최종연습 점검]

느긋하게 풀어져 있던 베테랑 가수들이 시선을 집중했다.

날카로운 시선들을 한몸에 받은 리혁이가 고개를 끄덕이며 PPT를 한 장씩 넘겼다.

"이번 올림픽 폐회식 무대의 목표는 바로 올림픽 정신인 '화합'입니다."

화합과 올림픽 정신에 대한 문구.

"그런 주제에 K팝을 접목시킨 무대를 보여 줄 예정입니다. 하지만 그런 의문이 있을 수 있어요. 과연 K팝이라는 키워드와 '화합'이 어울리는가? 지금까지 K팝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무한경쟁' 같은 키워드잖아요. 외국에서도 주로 그런 느낌을 많이 상상하고요."

"그렇지."

"저 역시도 크게 틀린 말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힘겨운 경쟁을 뚫고 피라미드 꼭대기에 오른 그룹들이라면 더더욱 공감하는 바였다.

리혁이가 말을 이었다.

"하지만 저는 그에 대해 반론을 제기하고 싶어요. 세계 가요계에서 경쟁을 안 하는 곳이 있나요?"

"그건 아니지."

"저희가 최근에 미국 가요계도 경험해 봤지만… 오히려 한국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더라고요."

관심을 보이는 두 그룹에게 우리가 이야기를 해 주었다.

"미국은 포지션별로 돌아가는 시장이거든요. 한국으로 따지면 아이돌 가수는 대충 2팀. 발라드 가수는 3명. 이런 식으로 포지션마다 쿼터가 정해져 있는 시스템이에요."

"그럼 저 쿼터에 들지 못한 가수들은?"

"사실상 사라져요. 활동을 하긴 하지만…."

"……."

와, 살벌하네 하는 중얼거림들이 들려오는 가운데 내가 웃으며 말했다.

"의자 게임이랑 비슷해요. 정해진 의자 개수가 정해져 있어서 거기 앉아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시스템이거든요."

"어우. 난 못 버티겠다."

"그에 비하면 저희는 블루 오션 같은 분위기고요."

"인정…."

아이돌 그룹이 매년 100~200팀 정도 쏟아져 나오지만, 적어도 미국처럼 의자 한두 개에 못 앉는 모두가 죽는 시스템은 아니니까.

우리도 경쟁이야 어마어마하게 치열하지만 미쳐 돌아가는 저쪽에 비하면 따스한 분위기라는 이야기였다.

가수들이 공감하는 동안 리혁이가 말을 이었다.

"그런데 서구권 언론들을 보면 K팝에 대해 부정적으로 다루거든요. 무한 경쟁이나 그런 키워드를 자극적으로 써 가면서요. 아마 빌보드 매거진 기사 등으로 한두 번쯤은 본 적 있으실 거예요."

"난 동남아 쪽에서 저런 거 많이 봤어."

"대만 애들이 저거 심하더라."

어느 나라 연예계든 이상한 건 똑같다.

그런데 유독 K팝이 무한 경쟁이라고 비난하는 외국 기사들을 보면 가끔 '음?' 할 때가 있다.

'영미 가요계, 경쟁 너무 치열.. 비정상적' 하는 기사를 본 적은 없으니까.

리혁이가 말했다.

"엄밀히 말하면 무한 경쟁이라는 말도 틀리지 않겠지만, 경쟁과 더불어 화합이라는 키워드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경쟁에서 승리를 거두는 데 있어서 무엇보다 팀 내의 팀워크나 화합이 중요하다는 것도 있고.

무한 경쟁이라고는 말하지만 미국처럼 서로를 죽여 가며 아이돌이 딱 한 팀만 존재하는 구조가 아니었다.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하는 시스템.

아이돌 그룹마다 저마다 특색이 다 다르기 때문이었다.

보이밴드나 걸그룹이라는 포지션이 정형화된 미국 쪽에서는 딱 원하는 이미지가 있다. 귀엽고 깜찍한 백인 소년들이나 섹시한 20대 초반 여자들이 퍼포먼스를 하는 식으로.

하지만 K팝에서는 워낙 수요가 다양해서 각 그룹만의 특색이 다양한 편이다.

독점적으로 혼자 존재해서는 그 수요들을 모두 맞출 수 없고, 시장도 더욱 작아지기 마련이다.

올림픽 종목처럼 메달이 존재하지만 선수 혼자 출전하면 의미가 없듯이….

"올림픽과 K팝이 어떤 면에서 비슷하지 않나 하는 게 저희의 생각이었어요. 올림픽 경기처럼 서로 메달을 걸고 경쟁을 하지만… 팀워크도 중요하고, 또 혼자서는 아무 의미가 없으니까요."

폐회식 무대의 취지에 대해 설명을 마친 후.

이번에 전체적으로 어떤 그림의 무대를 꾸미는 것인지에 대해 다시 한번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다.

평소 궁금했던 부분들에 대해 질문하는 데일라잇과 TNT 멤버들에게 우리가 설명을 마친 후.

"자. 그럼 일단 연습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와아아아!"

"메인보컬은 메인보컬끼리! 메인댄서는 메인댄서끼리! 각 그룹 포지션별로 모여 보도록 할게요!"

열정 가득한 분위기 속에서 연습이 시작되었다.

* * *

메인댄서끼리 모인 연습실 한구석.

데일라잇의 메인댄서 수전이 손을 떨며 아메리카노를 한 모금 들이켰다.

'재미있겠다.'

아이돌로서 할 수 있는 모든 활동은 이미 다 겪어 봤다.

팬들을 위해 매년 앨범 하나씩 내면서 요즘에는 소일거리 하는 기분으로 개인 활동을 하고 있었는데.

'평창 올림픽이라니…….'

올림픽 폐막식에 선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다들 밤잠을 이루지 못했을 정도였다.

그랬기에 뉴블랙을 바라보는 눈이 따스했다.

-뉴블랙이 김익환 감독님한테 강력 추천했다던데.

-진짜?

-감독님이 그런 식으로 이야기 하더라고.

할 거 다 해 본 베테랑 가수들에게 찾아온 새로운 무대.

그걸 기획해 준 뉴블랙 멤버들을 바라보며 귀엽다는 미소를 지었다.

'애기들이다. 애기들.'

거의 10살 차이 정도 되려나.

백승제, 한태현과 김비주가 옆에서 쭈우욱 기지개를 켜는 모습에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잘해 보자. 우리 춤 잘 추는 사람들."

"누나 살살 부탁해요."

데일라잇의 연습량을 아는 한태현이 그런 너스레를 떨 때.

처음 파티에 참석한 시골 귀족 같은 미소를 짓던 비주가 눈을 초롱초롱 떴다.

"저 너무 설레요."

"그래?"

"네. 진짜 제가 항상 존경하던 선배님들이랑 같이……."

거의 울먹거릴 기세로 이야기하는 비주의 모습에 두 선배 가수가 입을 오므리며 웃음을 참았다.

'우주 형 다음으로 제일 마음에 들어.'

'귀여워!'

이윽고 시작한 연습.

동글동글하게 웃던 메인댄서들의 표정이 순식간에 변하며 안무 연습에 돌입했다.

처음 호흡을 맞춰보는 것인데도 척척 맞는다.

한태현과 김비주가 서로 손을 크로스하면서 수전이 그 아래로 빠져나오며 골반으로 웨이브를 타고. 곧이어 두 멤버가 백업을 서면서 격정적이고 관능적인 춤사위가 흘러나왔다.

물결치듯이 허리를 부드럽게 흔드는 그녀에 이어 백승제가 각 잡고 안무를 추면서 감탄이 나왔다.

"와……."

"메댄 팀은 그냥 저대로 바로 올라가도 되겠는데?"

"랩이 개꿀이었구나."

하지만 첫 연습을 끝낸 메인댄서 팀의 표정은 빈말로도 좋지 못했다.

시무룩한 영애님이 말했다.

"이건… 뭔가 아니에요."

"아니야."

"진짜 이건 아니었어."

지켜보던 사람들의 눈이 뚱해졌다.

'뭐가 아닌 건데.'

'또 저런다. 한태현.'

'김비주가 복사가 됐네….'

평소 조용한 메인댄서 백승제마저도 아니라는 듯 고개를 저을 정도.

남들이 볼 때는 완벽한데 자기들끼리 뭐가 못마땅한지 심각하게 회의를 거듭하는 메댄팀.

그러면서 몇 번이고 연습이 반복될 때였다.

'성향이 비슷해서 좋네.'

지독한 연습 귀신들끼리 함께 모인 것에 수전이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근데 란 언니는 왜 그렇게 경고를 한 거지?'

친하게 지내는 트윙클의 란이 과거 라는 댄스 경연에서 겪은 비주를 경고해 준 적이 있었다.

-걔 진짜… 너무 심하게 연습해.

그런데 지금 보니 별로 걱정할 것이 없었다.

그냥 귀엽고 잘생기고 깜찍한 메인댄서 정도.

'뭐가 걱정할 게 있다고.'

…라고 생각할 때였다.

점점 시간이 지날수록 수전이 뭔가 이상한 점을 깨닫기 시작했다.

"음?"

한태현과 백승제가 쪼그려 앉아서 땀을 털어 내고, 그녀가 아메리카노를 쭈르륵 마시고 있는데.

비주는 여전히 거울 앞에서 춤을 추고 있었다.

그야말로 끊임없이 무한하게 나오는 체력의 화신 같은 느낌.

"쟤는 체력이 진짜 좋나 보다…."

처음에는 체력이 적당히 좋나 보다 생각을 했는데, 몇 시간이 흘러도 비주는 여전히 같은 모습이었다.

여전히 눈을 빛내며 웃는데….

슬슬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힘드시죠?"

그러면서 자기가 직접 챙겨 왔다는 간식거리들을 내미는데… 그건 또 그거대로 맛있었다.

문제는.

'뭔가 눈빛이 정상인이 아닌데…….'

겉보기로만 보면 수줍고 싱그러운 미소인데… 왜 저리 음흉한 느낌이 느껴질까.

한태현이 뭔가 쎄한 느낌을 받으며 수제 과자를 우물거릴 때였다.

"어?"

지나가던 왕지호가 그를 발견하고 말을 걸었다.

"형, 그거 먹어요?"

"응?"

"비주 형이 준 간식이요."

"어… 이거 비주가 주던데."

"아……."

굉장히 안타까워하는 표정의 지호에게 메인댄서들이 눈을 깜빡거렸다.

"왜 그래?"

"그게… 비주 형이… 어디 있지? 아 연습하는구나."

그가 속닥거렸다.

"보통 연습하다가 지쳐서 못하겠다고 쓰러질 때 있잖아요."

"응."

"쓰러지지 못하게 사람들을 고칼로리 음식으로 먹여 두는 거예요."

"……."

"지금 딱 칼로리 보니까 이틀 정도 밤새우려고 들고 온 거 같은데요."

그들이 자신들의 손에 놓인 고칼로리 누뗄라 수제 과자와 에너지 부스트 음료를 바라보았다.

"……."

"……."

그제야 지금까지 찜찜하게 느꼈던 김비주의 미소가 어딘가 익숙하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어느 동화 이야기.

'헨젤과 그레텔…!'

자신들이 과자로 만들어진 댄스 요정의 집에 들어왔다는 것을 알게 된 메인댄서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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