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849화
“후우…….”
“후하후하…….”
동생들과 숨을 몰아쉬며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신사옥으로 향하는 차 안에는 설렘 가득한 공기가 흐르고 있었다.
비주가 가슴에 손을 올렸다.
“저 너무 떨려요. 형. 신사옥이라니…….”
“나도.”
같이 설레서 방방 뛰니 조수석에 앉아 있던 민기 형이 물었다.
“너희는 신사옥 안 가 봤어?”
“네. 형은요?”
“나는 잠깐 TF팀 사무실 들러보러 몇 번 정도 갔는데, 거기가 어떠냐면…….”
“으아아아아아!”
귀를 막으면서 ‘안 들린다!’ 하는 우리 5인조의 모습에 상대가 벙찐 표정을 지었다.
“10분 뒤면 보게 될 텐데?”
“그래도 이 설렘을 간직하고 싶어요. 선물이 뭔지 알고 포장 푸는 거랑 모르고 푸는 거랑은 다르잖아요.”
“그건 그렇지.”
“저희 일부러 신사옥 얘기 들려오면 안 듣고 그랬거든요.”
TNT 멤버들이 너희 신사옥 어떻더라 하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아아아! 하며 안 들었던 나였다.
-형. 이번에 형네 신사옥 보니까 완전…….
-아아! 안 들리! 안 들리!
-초딩이냐.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스포일러도 막았던 판이니, 마지막까지 이 설렘을 유지하고 싶었다.
과연 신사옥은 어떨까.
코끼리를 본 적 없는 사람들끼리 코끼리 이야기를 하듯이 토론이 이어졌다.
“제 생각에는 신사옥에는 게임 방이 있을 거 같아요. 제가 원하면 거기서 영화도 볼 수 있구…….”
“식물원처럼 식물 키울 수 있는 온실이 있지 않을까요?”
“구내식당에 고깃집도 있고.”
각자의 희망사항을 담아 신사옥에 대한 상상의 나래를 펼칠 때였다.
보통 때라면 ‘뭔 소리야’ 하며 웃거나 타박을 했을 민기 형이 조용히 앉아 있었다.
“왜 그래요. 형?”
“예리한데…?”
“네?”
뭐가 예리하다는 거냐고 물어보려고 할 때였다.
차량이 청담대로로 접어들면서 우리의 눈에 어떤 건물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깔끔한 외관에 큰 규모를 자랑하는 건물.
과거 내가 6년에 가까운 세월을 바쳤던 TJ 엔터의 건물이었다.
“저기가 TJ 엔터네요.”
리혁이가 손가락을 움직였다.
“그렇다면 저 반대편이…….”
TJ 엔터의 바로 맞은편으로 우리가 시선을 돌렸다.
그 순간, 입이 떡하니 벌어졌다.
TJ 엔터보다 조금 높은 8층 건물.
문제는 높이가 아니고 너비였다.
“와.”
지호가 눈을 휘둥그레 떴다.
“TJ 엔터가 리혁이 형이면 우리 건물은 중현이 형 같아요. 아니다. 중현이 형보다 더 큰데…….”
“씨름 선수 같아.”
“진짜 넓어 보인다….”
TJ 엔터 건물보다 너비가 더 커서 그런지 육중하고 거대해 보인다.
깔끔하고 미래적인 디자인.
황금빛 레몬 로고와 함께 [레몬 엔터테인먼트]라는 간판이 한글로 적혀 있었다.
“와아아아아아아…….”
우리가 입을 벌리며 감탄하는 가운데 조수석에 앉아 있던 민기 형이 씩 웃으며 말했다.
“엄청 크지?”
“네….”
“자랑스럽게 생각해도 돼. 너희가 올린 사옥이니까.”
동생들과 기분 좋은 웃음을 터뜨렸다.
좋다.
그래. 이게 성공의 맛이지.
* * *
신사옥 로비.
샹들리에를 달아야 할 것 같은 고급스러운 로비에 진입하면서 탄성을 터뜨렸다.
“와아.”
“저기 봐요. 안내 데스크도 있어요.”
안내 데스크에 정장을 단정하게 입은 남자 직원이 앉아 있었다.
머리가 띵했다.
“안내 데스크…!”
“이, 이거 뭐라고 하죠? 컬처랜드?”
문화 충격이었다.
쑥스럽게 인사하는 직원과 눈인사를 하고 있을 때, 와하하 하는 아재 웃음소리들이 들려왔다.
“왔구나.”
“대표님!”
함박웃음을 짓는 대표님에게 우리가 달려갔다.
“대표님! 진짜 사옥 대박이에요!”
“벌써부터?”
“네! 이… 이런 로비라니……!”
“아직 놀라기에는 이른데.”
박규호 대표님이 사옥을 소개해 주겠다면서 나섰다.
그 뒤로 조규환 이사님과 본부장님, 그리고 석환 형도 기분 좋은 웃음을 흘리고 따라나섰다.
석환 형이 최근 들어서 이렇게 행복하게 웃는 건 처음 본다.
“그렇게 시설이 좋아. 형?”
“기대해도 좋아. 비데 수압이…….”
“그것까지 알고 싶진 않아.”
대표님을 따라 1층부터 훑었다.
1층 로비를 기준으로 양옆으로 나뉘어 있었다.
“우선 여기는 카페.”
“우와!”
유명 커피 프랜차이즈가 사옥 1층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족히 50명은 수용할 수 있을 법한 사이즈였다.
지점 이름 란에 [레몬 엔터점]이라고 되어 있는 게 신기해서 사진을 찍었다.
“직원들은 할인이 30퍼센트 정도 들어간다고 하더구나. 정확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와아아.”
“그리고 여기는 굿즈 샵.”
왼쪽이 카페라면 오른쪽은 굿즈샵이다.
우리의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는 곳은 마치 서점에 있는 음반판매점 같은 분위기였다.
중현이가 오 하며 말했다.
“핫트랙스에 앨범 사러 온 거 같아요.”
“진짜 그런 느낌이다.”
우리와 스칼렛의 굿즈가 진열되어 있는 걸 바라보며 신기한 기분을 느꼈다.
그리고 우리뿐만이 아니었다.
최근에 발매된 스트릿 보이즈의 앨범도 떡하니 진열되어 있었다.
“대표님! 스보 앨범도 있어요.”
“산하 레이블 굿즈도 함께 살 수 있게끔 만들어 놨단다. 이제 DNS 미디어가 완전히 레이블로 들어왔으니까.”
“와. 이따 스보 애들 오면 보여 줘야지.”
오늘 저녁에 열리는 사옥 오픈 기념 파티에 스트릿 보이즈도 방문할 예정이었다.
굿즈 샵을 끝으로 1층 탐방을 끝낸 후.
레몬 엔터의 소속 아티스트를 소개하는 거대 전광판을 지나 개찰구 앞에 섰다.
석환 형이 우리에게 출입증을 나눠 주었다.
“아티스트용 출입구는 따로 있거든. 앞으로 너희 팬들도 있고 혼잡하니까 지하주차장에서부터 들어오면 될 거야. 거기서 연습실까지 직행으로 갈 수 있으니까.”
“대박…!”
“일단 출입증은 받아 봐.”
삐빅.
출입증을 찍는 소리가 이렇게 기분 좋게 들릴 줄이야.
아직 이사가 진행 중이라 바닥에 박스 껍데기들을 깔아두긴 했지만, 엘리베이터도 근사했다.
지하 3층에 지상 8층 규모.
지하주차장을 시작으로 지하부터 시설 안내가 이어졌다.
“지하 1층에는 헬스장이랑 샤워실이 있어. 중현이도 이제 홈짐에서 운동할 필요가 없을 거야.”
“저 너무 좋아요. 대표님.”
“그리고 여긴 직원 수면실이고…….”
지호가 둘러보면서 감탄했다.
“와. 울 아빠 회사보다 더 큰 거 같은데요? 아빠 놀려야징.”
곧이어 사옥 사진을 찍은 막내가 아버님에게 톡을 보내는 모습에 다들 고개를 저으며 웃었다.
다음 안내는 2층이었다.
“여기는 녹음실 및 프로듀싱팀 사무실 공간.”
“와아.”
“지상으로 올라오니까 더 큰데요? 진짜 이러다가 길을 잃을 수도 있을 거 같아요.”
너무 넓어서 길을 잃겠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프로듀싱팀 이사는 현재 진행 중이기에 아직 사무실 안이 어떻게 생겼는지는 못 봤다.
그리고 녹음실은 정말…….
“흐허허허허허.”
“우주 형 우는데요?”
“흐허허허허!”
메인 녹음 스튜디오를 바라보는 내 얼굴에 눈물이 머금어졌다.
장비가 너무 좋다.
미국 메이저 레코딩 스튜디오를 방문했을 때 보았던 장비가 정확하게 설치되어 있었다.
“진짜 대박이네요.”
“우주 네가 전에 미국에서 봤던 스튜디오가 좋다고 했던 기억이 나더라고. 그 부분에 신경을 써서 꾸몄지.”
“대표님!”
“대표님 잘했지?”
민머리를 긁적이며 웃는 대표님에게 환히 웃으며 엄지를 들어 보였다.
녹음실과 작업실로 가득한 2층에는 연습생들이 생활하게 될 연습생 공간들도 있었다.
개인 라커룸에 붙은 ‘진후’, ‘복수’ 같은 이름을 바라보고는 발걸음을 옮겼다.
연습실 안에서 음악이 들려오는 걸 보니 한창 연습 중인 듯했다.
“오늘도 연습을 하나 보네요.”
“역시 우리 후배들이야.”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연습실을 바라보고는 다른 층으로 이동했다.
3층부터는 대체로 사무 공간이었다.
“안녕하세요!”
“얘들아아아!”
신사옥이 너무 좋다며 행복해하는 홍보팀 직원들과 같이 둥가둥가 춤을 추고.
TF팀 사무실과 매니지먼트 사무실도 방문하고.
신인개발팀을 비롯해 다양한 팀과 인사를 나누고 있을 때였다.
“와아아아아아아아!”
[법무팀]이라는 팻말이 적힌 사무실에 들어가자 어마어마한 환호성이 우리를 맞이했다.
이번에 새롭게 인력 충원한 분들이라 전부 모르는 얼굴이었다.
그런데 어디선가 익숙한 표정들이다.
조규환 이사님이 속삭였다.
“법무팀은 채용 우대 조건으로 수플레나 커튼을 걸었거든.”
“……!”
“너희 팬들이야.”
‘수플레였어요?’ 하고 물으니 수플레 변호사들이 고개를 끄덕끄덕했다.
종종 커피 사서 들르겠다는 말을 하고는 수플레들과 같이 기념사진도 찍었다.
사무실을 나서는 우리 뒤로 ‘대박’, ‘저 눈물 나요’ 하는 말들이 웅성웅성 들려왔다.
비주가 말했다.
“진짜 신기하네요. 회사에서 수플레를 보다니…….”
“그러게.”
우리 회사가 팬들을 우대 채용하는 분야가 있긴 하다.
바로 덕심이 중요한 자체 컨텐츠 제작부서. 이쪽은 덕질이랑 시너지가 나는 분야니 당연한 말이다.
그런데 법무팀은 왜 우대 조건인 걸까.
막내가 내 궁금증을 대신 물었다.
“왜 법무팀 채용 우대 조건이 수플레인 거예요?”
“악플 고소 고발도 맡고 있거든.”
조 이사님의 말에 우리가 아 했다.
“정말 열정적으로 악플러들을 처단하고 있는 사람들이야. 너희와 관련해 법적인 도움을 줄 사람들이라서 수플레를 채용 우대 조건으로 걸었지. 조건을 좋게 걸었더니 지원자가 정말 많았어.”
“경우가 다르지만 덕업일치긴 하네요.”
다들 웃음을 주고받으며 다른 층으로 이동했다.
대표님과 임원 사무실, 경영지원팀 등이 위치하고 있는 꼭대기 8층.
“와.”
리혁이가 감탄했다.
“이거 도청 방지도 되어 있네요. 레이저 도청 방지 필름.”
“아무래도 중요한 공간이다 보니까. 하하.”
뷰가 어마어마하게 좋은 8층을 지나 이번에는 7층.
어마어마하게 널찍한 구내식당이 우리를 맞이했다. 점심을 준비 중인지 벌써부터 냄새가 향기롭다.
“허어어어어!”
“대박. 벌써부터 고기 냄새 나요.”
호텔 카페테리아에 온 것처럼 우아한 인테리어를 둘러보았다.
메인 메뉴가 두 곳으로 나뉘어 있는데, 내가 여태까지 본 기획사 구내식당 중에 제일 좋다.
그리고.
더 신기한 것은 바로…….
“허어어어어어!”
눈을 크게 뜨고 있는 우리에게 대표님이 말했다.
“이, 이건 뭔가요. 대표님.”
“고깃집이란다.”
“!!!”
“맞아. 회사 근처에 너희가 자주 가는 그곳이야.”
우리의 단골 고깃집이 회사 구내식당 옆에 입점해 있었다.
[2호점]이라는 팻말을 바라보며 눈을 휘둥그레 뜨고는 영업 준비 중인 가게를 바라보았다.
“처음에는 구내식당에 고기 굽는 코너를 만들까 했는데 이게 쉬운 문제가 아니더라고. 그래서 고깃집을 사 왔단다.”
“대표님…….”
“허허허허.”
그리운 단골 고깃집을 회사에서 맛볼 수 있다는 생각에 너무 행복했다.
고기도 고기지만, 백반 메뉴도 워낙 맛있는 집이라 그리워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회사에 입점한 걸 보니 침샘과 눈물샘에 물이 고였다.
그리고 그 옆에는.
“허어! 편의점도 있어요.”
“지, 진짜네?”
유명 편의점까지 [레몬 엔터점]이라고 입점해 있는 모습에 그저 눈물이 나올 뿐이었다.
13년도 겨울에 연습생으로 처음 들어왔을 때, 추위를 뚫고 편의점에 갔던 기억이 난다.
나보다 구사옥에서 연습생 시절이 길었던 졸개들도 묘한 표정을 짓고 있을 때.
“자. 마지막으로 6층에 가자.”
두근두근.
대망의 6층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6층. 문이 열립니다.]
문이 열리자마자 사방에 있는 유리창을 통해 청담동 일대가 훤히 보였다.
6층은 바로 아티스트들이 전용으로 사용하는 공간이었다.
이 드넓은 층 하나가 바로 우리 거였다.
“일단 연습실들이 몹시 많으니까 스칼렛이랑 너희가 잘 나눠서 연습을 하면 될 거고.”
“네.”
“저쪽은 개인 연습실.”
SNH에서 보았던 것보다 더 커다란 대형 연습실.
피아노가 있는 개인별 연습실.
지호가 그리 원했던 게임방이나 휴게실도 있고, 내가 작업을 할 수 있는 개인 작업실도 있었다.
비주가 흥분한 얼굴로 말했다.
“조리 공간도 있어요.”
“맞아. 간단한 요리 정도는 해 먹을 수 있도록 장비를 마련해 두었거든. 불편함 없이 생활할 수 있을 거야.”
“진짜 여기서 살아도 되겠네요.”
의상 피팅룸을 비롯해 회사 바깥으로 한 발짝도 안 나가도 될 만큼 모든 편의시설이 구비되어 있었다.
솔직히 이 넓은 층 전체를 우리와 스칼렛, 윤찬혁 등의 소속 아티스트가 쓴다는 게 신기하긴 하지만….
“중현이가 좋아하는 정원은 옥상에 있으니까 이따 구경하도록 하고… 아, 어차피 이따 보게 되겠구나.”
“네.”
“그럼 소개는 여기까지 하고 편히 둘러보렴.”
“감사합니다.”
박규호 대표님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고맙기는 내가 고맙다고 해야지. 정말… 고생이 많았다. 얘들아. 고맙다는 말밖에 할 수가 없구나.”
훈훈한 웃음과 함께 이따 보자는 말을 하며 손을 흔들었다.
달칵.
우리가 머무르고 있던 연습실의 창가로 다가갔다. 지호가 입가에 손을 올리며 와하 했다.
“형들. 진짜 높아요.”
“그러네.”
매번 지하 1층에서 연습을 해서 그런지 이렇게 채광이 좋은 연습실이 뭔가 이상하고 어색하다.
여기가 정말 우리 공간이라는 사실이 신기하고.
말로 표현하기 힘든 감정들이 가슴속에서 소용돌이치는 듯했다.
멤버들과 몸을 밀착한 채 맞은편에 보이는 TJ 엔터 건물을 바라보았다.
“신기하네.”
“뭐가요.”
“옛날에는 저 건물이 엄청 높아 보였거든. 그런데 막상 보니까 그 정도로 또 높은 건 아닌 거 같고.”
“그러네요.”
뉴블랙으로서 처음 TJ 엔터를 방문했을 때가 떠오른다.
교복 광고 회의를 위해 방문했는데, 그때 유독 크게 보였던 회사가 지금은 그냥 평범한 건물 중 하나로 보였다.
왠지 모르겠지만 만족스러운 높낮이였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아직도 뭔가 성에 안 차는 느낌도 들고. 뭔가 부족하다는 감각이 온몸을 간질이는 기분이다.
더 높이.
더더 높이.
“일단…….”
동생들과 짐을 풀고는 마주 보며 미소를 지었다.
“안무 연습부터 할까?”
“좋아요.”
신사옥에서의 첫 번째 일과는 바로 컴백 연습이었다.
* * *
오전에는 타이틀곡 <백야>의 안무 연습을 비롯해 컴백 준비를 하는 한편.
오후 들어서 동생들이 6층 탐방을 하는 동안 나는 8층의 대표님 집무실을 찾았다.
이브닝 파티를 앞두고 손님이 찾아왔기 때문이었다.
“와! 대주주님 오셨네!”
경박한 웃음을 흘리며 반겨 주는 누군가에게 내가 웃어 보였다.
“왔어?”
“얼마 안 됐어.”
자기 집 안방처럼 편하게 앉아 있는 한별이 맞은편에 내가 앉았다. 테이블 위에 깔끔하게 정리된 계약서가 눈에 들어온다.
오늘은 바로 한별이가 레몬 엔터와 계약하는 날.
박규호 대표님이 너스레를 떨었다.
“둘이 잘 아는 사이라고 들었어요. 하하.”
“대표님, 말씀 편하게 하세요~ 저도 이제 소속 아티스트인데요. 뭐.”
“차차 적응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정중하게 말하던 대표님이 계약서를 내밀었다.
한별이의 개인 변호사와 우리 법무팀이 마지막으로 확인 절차를 거치는 동안, 조 이사님이 커피를 홀짝이며 말했다.
“한별 씨를 영입하는 데 있어서 우주 씨의 강력한 추천이 있었어요. 국내 활동 면에서도 정말 두각을 드러낼 친구라고.”
한별이가 ‘그래?’ 하는 눈으로 바라보는 동안 내가 작게 웃었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이사님과 대표님에게 ‘국내에서도 잘 먹힐 것 같다’ 하고 적극 추천하긴 했으니까.
다만, 처음에 대표님과 이사님은 미묘한 반응이긴 했다.
-중국 쪽이면 음…….
대표님이 우려를 표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내가 짐작했던 반응이었다.
-중국 연예계는 정치 쪽과 연관이 안 될 수가 없거든. 자칫하면 국제 정치 이슈가 끼어들 가능성이 높아서…….
-얘 미국인이에요.
-음?
-엄밀히 말하면 미국인이거든요. 좀 상황이 복잡한데… 국적만 따지면 미국인이긴 해요.
-그…래?
출생은 미국이라 어린 시절은 미국에서 보내고, 나이 조금 들어선 중국과 한국에서 생활을 했다.
그 때문에 영어, 중국어, 한국어 3개 국어가 능통하기도 하고.
편의상으로 다들 중국인 멤버라고 하기는 하는데… 법적으로 따지면 미국인이긴 했다.
아무튼 리스크에 대한 걱정이 해소되어서 그런지 분위기가 화기애애하다.
“자. 그럼 사인을 할까요?”
날인을 마치고 나서 한별이는 정식으로 레몬 엔터의 식구가 됐다.
계약서를 바라보며 묘한 표정을 짓던 한별이가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한국에서 기반을 만들고 싶어요. 7년 동안 활동하면서 한국에서 아무런 기반을 만들지 못해서… 정말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최선을 다할게요. 한별 씨.”
“처음에는 소속사 권유로 중국 활동을 했는데, 나중에는 중국 활동밖에 할 수가 없더라고요. 회사에서 제가 한국에서 개인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기반을 다 끊어놔서…….”
박규호 대표님이 누군가를 떠올리며 못마땅한 표정을 짓는 동안 한별이가 말을 이었다.
“소속사를 고를 때도 고민이 정말 많았어요. 워낙 불신이 심하기도 했고, 그런 고민 끝에 이곳에 왔거든요.”
보증인을 바라보듯이 한별이의 눈이 내게 향했다.
“한 번 더 믿어 보고 싶네요.”
회사 사람들에게 말은 그렇게 하지만 상대의 시선은 날 바라보는 듯했다.
널 믿고 왔다고.
내가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이는 동안 대표님이 말했다.
“저희가 부족할 수 있지만 최선을 다해 보도록 할게요. 한별 씨.”
“네. 정말 잘 부탁드립니다.”
대표님과 한별이가 악수를 나누고 다 함께 자리를 나섰다.
곧 있을 이브닝 파티를 위해서 옥상으로 가야 할 시간.
엘리베이터 앞에서 담소를 나누고 있을 때였다.
띵.
[8층입니다] 하는 목소리와 함께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그리고.
“…….”
“…….”
엘리베이터에 탑승하고 있던 한영준 대표와 태현이와 우리의 시선이 딱 마주쳤다.
이웃으로 초대한 이들이 꽃다발을 들고 있는 가운데.
상대를 바라보던 한별이가 환한 표정으로 손을 들었다. 마침 잘 만났다는 듯이.
“오우!”
3개 국어가 자유로운 한별이의 특징.
그것은 필요할 때마다 외국인 자아가 탈부착 된다는 점이었다.
한별이가 해맑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이사님 하이~”
꾸깃 구겨지는 한영준 대표의 웃는 얼굴.
아무래도 범상치 않은 인재를 영입했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