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859화
PBS의 예능국장이 정중하게 꽃다발을 내밀었다.
“하하. 세계적으로 유명한 우리 콜드 브라운 씨께서 저희 방송국에 방문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꽃다발을 받아 든 콜드 브라운이 화답했다.
「저 역시 한국 최고의 역사를 자랑하는 공영방송에 방문하게 되어 영광입니다. PBS의 역사가 곧 한국 방송의 역사라고 할 수 있더군요. 정말이지 무한한 영광입니다.」
통역사가 말을 옮기면서 화기애애한 웃음이 흘렀다.
「하하하하하!」
“하하하하하!”
높으신 분들 특유의 웃음소리들이 들려온다.
내가 옆에 선 PBS의 담당 PD님에게 속삭였다.
“준비하시느라 고생이 많으셨겠어요.”
“사실 저보다는 국장님이랑 차장님이 고생하셨죠. 두 분이 아이디어를 내셨거든요. 레드카펫 깔아 놓고 현수막 거는 게 어떠냐고.”
담당 피디님이 아련한 미소를 지었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조금 과한 게 아닐까 싶었는데…….”
“효과가 엄청 좋네요.”
양쪽 다 입이 귀에 걸려 있었는데 이런 느낌인 것 같다.
-한국 최고의 방송국이 나를 최고의 VIP로 대접한다! Yeah!
-콜드 브라운이 우리 방송국을 겁나 띄워 줬다! 씬난다!
어른들의 세계를 살아가려면 저렇게 살아야 하는 걸까.
오늘도 인생의 가르침을 얻어가는 나 선우주….
바로 그때.
“강 피디.”
예능국장이 인상을 쓰고 눈짓하면서 담당 피디님이 부리나케 달려가 뭔가를 가져왔다.
음방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자처럼 보였던 피디를 눈짓으로 부린 국장이 내게 따스한 미소를 지었다.
“우주 씨도 이리 오시죠. 상패 수여식 해야 하니까.”
“아, 네.”
PBS의 신관 공개홀을 배경으로 콜드 브라운과 나, PBS 직원들이 활짝 웃었다.
콜드 브라운의 손에 쥐어진 상패.
[콜드 브라운 방문 기념]
찰칵찰칵!
PBS 방송국의 전담 사진기사가 기념사진을 촬영하면서 콜드가 행복하게 웃었다.
그리고 그 미소는 이어지는 국장의 말에 더욱더 커졌다.
“이따가 음악 방송이 끝나시면 사장님께서 뵙고 싶다고 하십니다.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다고.”
「워우우우.」
콜드의 뺨이 발그레하게 핑크핑크해졌다.
공개홀로 입장하는 동안 콜드가 내게 속삭였다.
「써니. 이게 흔한 일이야? 방송국 사장이 가수를 만나겠다고 하고 그러나?」
「아뇨. 그건 아마 콜드가 중요한 사람이라 그런 걸 거예요.」
「한국은 정말 멋진 나라구나.」
K 의전에 감동한 콜드 브라운을 바라보며 웃었다.
왜 옛날 미국 대통령들이 한국에서 구름떼 같은 인파가 환영하면 눈물 흘리고 그랬는지 알 것 같다.
“이곳이 바로 대기실입니다.”
PBS의 예능국장님이 가장 큰 대기실로 안내하며 말했다.
“모시는데 불편함이 없도록 최대한 많은 걸 준비했습니다. 콜드 브라운 씨가 평소 좋아한다고 밝히신 스낵도 있고, 휴식하실 만한 공간도 준비했으니까요. 필요하신 게 있다면 이 친구를 부르시면 됩니다.”
예능국장님이 담당 피디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뮤직On의 피디가 왠지 슬픈 얼굴로 필요한 것이 있으면 불러달라는 말을 전한 후.
PBS의 임직원들이 떠나면서 콜드 브라운과 우리 일행이 대기실에 남았다.
「벤!」
자신의 매니저를 부른 콜드 브라운이 상패를 건네며 말했다.
「잉글우드에 있는 세 번째 집 진열장에 이걸 전시해 줘.」
「네, 콜드.」
「그리고 이따가 방송국 연락처 좀 받아 놔. 다음 주에 1위 트로피 받으면 전달 받아야 하니까.」
매니저에게 상패를 넘긴 콜드 브라운이 대기실을 살피면서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꼼꼼하게 준비된 것을 보며 만족하는 분위기였다.
콜드 브라운이 스낵을 들면서 기뻐하기에 내가 물었다.
「엄청 좋아하는 간식인가요?」
「아니, 나를 대접하기 위해 이렇게 준비한 게 좋군. 하하하!」
「…….」
아까 쇼케이스장에서 들은 지호의 말이 떠오른다.
-콜드는 울 아빠랑 좀 닮은 거 같아요. 의전맨.
좀 그런 것 같기도 하다.
대기실을 둘러보며 좋아하던 콜드가 손을 비비며 물었다.
「그래서 우리의 일정은 어떻게 되는 거지? 큐시트가 있나?」
「여기 있어요.」
방송 큐시트를 가리키면서 설명해 주었다.
「조금 이따가 팬들 앞에서 사전 녹화를 할 거고요. 그리고 MC들과 인터뷰 촬영이 있고… 생방송에서 무대 한 번 더 서면 돼요.」
「오호.」
「사녹 이후로는 시간이 굉장히 빠듯하긴 한데, 특별하게 준비할 건 없으니 괜찮을 거예요. 궁금한 거 있어요?」
「음, 왜 우리의 무대가 엔딩이 아닌 거지?」
「엔딩을 하게 되면 무대를 절반밖에 못하거든요.」
마지막 순서라서 좋을 것 같지만 의외로 무대를 1절밖에 못한다는 단점이 있다.
무대가 끝나고 바로 1위 발표로 이어져야 하는데, 가수들이 올라오기 위해 2절은 사녹으로 내보내야 하기 때문이다.
「아하. 100퍼센트 이해했어.」
「더 궁금한 건 없나요?」
「없어.」
어깨를 으쓱하는 래퍼의 모습에 고개를 끄덕일 때였다.
똑똑-
노크 소리와 함께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곧장 문이 열리면서 화려하게 꾸민 보이그룹이 쭈뼛쭈뼛 들어왔다.
“헉!”
콜드 브라운을 보면서 식겁하는 모습에 공감이 가서 웃었다.
내가 인사했다.
“오랜만이네요.”
“네, 넵! 선배님! 잘 지내셨습니까!”
작년도에 데뷔한 신인 보이그룹 그래비티였다. 나와 콜드 브라운을 번갈아 보던 이들이 서로를 바라보았다.
“아, 아년하….”
혀가 꼬였는지 리더가 말을 하다 말고 혀를 얼럴러 했다.
“네?”
“아… 안녕하십니까! 그래비티입니다!”
“네, 안녕하세요.”
후배 그룹이 준비한 사인 CD를 내밀면서 나도 가방에서 CD를 꺼냈다.
Answer의 음원 발매 기념 비매품 CD.
거기에 내가 사인을 하면서 콜드가 아 했다.
「이래서 CD를 준비하자고 한 거군?」
「네.」
우리 둘이 사인한 CD를 건네주면서 덕담을 했다.
내가 하는 것을 적당히 지켜보던 콜드 브라운도 영어로 그들을 격려해 주었다.
뭔가 더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는데 그래비티 멤버들이 뒷걸음질을 치면서 물러났다.
“그, 그럼 가 보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쑈!”
뒷걸음질 치며 꾸벅하다가 자기들끼리 부딪치는 모습에 조심하라고 이야기를 했다.
문이 닫히자 콜드가 호기심을 보였다.
「방금은 뭐였어?」
「음악 방송에는 서로 인사를 가는 문화가 있거든요. 연차가 낮은 Hoo-bae들이 연차가 높은 Sun-bae들에게 인사를 가는 거예요.」
「그거 좋은데?」
「네. 뭐, 서로 머쓱하지 않게 미리 인사도 하고. 덕담도 주고받는 그런 자리예요.」
그러고 보니 나도 해야 할 게 있었다.
「오늘 선배나 동기들도 꽤 있거든요. 저는 가서 인사 좀 돌고 올게요.」
「나도 같이 가도 돼?」
내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요.」
마침 잘 된 듯했다.
다들 콜드 브라운이 와서 얼굴 구경하고 싶을 텐데, 내가 인사하는 자리를 좀 만들어 줘야지.
* * *
2013년도에 데뷔한 걸그룹 NYX.
작년도 걸그룹 서바이벌로 상승세를 타고 있는 TJ 엔터의 걸그룹이자 오늘의 유력한 1위 후보.
“…….”
“…….”
그녀들의 동공이 마구 흔들렸다.
방금 전까지 김밥을 먹으면서 룰루랄라하고 있던 터였다.
-되게 시끄럽네. 오늘 누구 왔나?
-콜드 브라운이랑 우주 왔대!
-진짜…? 대박…….
-지금 그래서 애들 다 인사간다고 여기저기서 시끌시끌한가 봐. 우리도 가 볼까?
-아냐. 이따가 우연하게 만난 척하면서 인사하자. 부담스러워.
하지만 영어로 말하는 것도 좀 낯설고, 부끄러움도 심하고 해서 숨어 있던 터였다.
그런데.
“안녕하세요. 선배님.”
“켁!”
우주가 찾아와 인사를 하면서 NYX 멤버들이 김밥의 우엉을 뱉었다.
우주 때문이 아니라 그 뒤에서 정령처럼 웃고 있는 흑인이 꾸벅 인사를 했기 때문이었다.
당황하는 그녀들의 모습에 콜드 브라운이 갸웃하자 우주가 말했다.
「그렇게 너무 꾸벅 안 해도 괜찮아요. 콜드. 당신은 Sun-bae입니다.」
「Sun-bae.」
「그냥 Sun-bae도 아니고 Big Sun-bae입니다.」
「그렇군.」
급격히 거만한 포즈를 취하는 콜드 브라운.
어딘가 모르게 한국 정서에 굉장히 적응을 잘하고 있는 미국인이었다.
콜드 브라운이 한국의 걸그룹에게 영어로 질문을 하며 호기심을 보일 때마다 NYX 멤버들은 체하는 느낌이 들었다.
그런 모습을 바라본 우주가 웃으며 CD를 내밀었다.
“이렇게 계속 서 있으면 선배님들 부담스러우실 것 같네요. 얼른 가 보겠습니다!”
‘부담스러운 거 알면 오지 마….’
“식사 중이셨네요. 그럼 남은 식사 맛있게 하세요~”
‘이미 체했어…….’
세계적으로 핫한 가수를 데리고 와서 인사를 하는 모습에 NYX 멤버들의 위장은 이미 부담으로 꼬이는 중이었다.
얄밉게 에헤헷 웃으며 사라지는 선우주.
그 뒤를 따라 성큼성큼 움직이는 콜드 브라운을 바라보며 NYX 멤버와 TJ 매니저들은 기시감을 받았다.
“왠지 모르게… 그 뉴블랙 멤버들 같네.”
이유는 모르겠지만 꼭 졸개를 달고 다니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들이 눈을 깜빡거렸다.
‘사주에 졸개를 데리고 다니는 팔자라도 있는 건가.’
그러는 동안 NYX 멤버들이 먹다 남은 김밥을 내려놓았다.
“나… 체한 거 같은데.”
“나도…….”
그녀들의 눈가가 촉촉해지는 동안 뉴블랙의 리더는 신나게 방송국을 돌아다니는 중이었다.
“안녕하세요! 콜드랑 제가 왔습니다!”
“컥!”
방문할 때마다 사레가 들리거나 부담감에 위장이 꼬이는 가수들.
게다가 미국 가수가 자꾸 영어로 덕담을 건네는 통에 부담스럽기 그지없었다.
2000년대 중반부터 활동한 연차 때문인지 아니면 세계적인 인기 때문인진 몰라도 절로 양손이 모아졌다.
‘좋기는 한데…….’
방송국에 모여 있는 모든 가수가 콜드 브라운을 알고 있었다.
음악에 종사하는 관계자들인 만큼 어지간한 일반인은 비교도 못할 만큼 음악을 많이 듣는 게 가수라는 직업이었다.
그중에는 당연히 미국 음악도 끼어 있었다.
그리고 미국 힙합을 듣는다면 그의 이름을 모를래야 모를 수가 없다. 스트리밍 시대의 최강자니까.
하지만.
‘부담스럽다.’
선우주 한 명만 인사를 와도 ‘왜 인사를 오는 건데…’ 하고 부담스러울 텐데.
거기에 콜드 브라운까지 껴서 같이 CD를 건네주고 있으니 속이 뒤집힐 것만 같았다.
미국과 한국의 원탑 가수들이 찾아와서 정중하게 문안 인사를 올리고 있었으니까.
“오빠. 나 활명수… 좀…….”
“아무거나 좋으니까 콜라랑 소화제 좀 사다줘. 둘이 같이 먹으면 안 되는 거 나도 알아. 왜 서리혁처럼 그래…?”
그렇게 PBS 구내 매점의 활명수 매출이 올라가는 한편.
그중에서 그 어떤 가수보다 큰 압박감을 느끼는 가수가 하나 있었으니….
“안녕하세요! 선배님.”
“아, 예…….”
“저희 중현이가 엄청 팬이에요. 옛날부터 좋아했다고.”
바로 작년도 힙합 경연 프로의 우승자이자 음원강자로 유명한 캐쉬카우(Ca$h Cow)였다.
그의 눈이 선우주 옆에 있는 콜드 브라운에게로 향했다.
‘대박….’
눈앞에 강림한 신을 마주한 종교인의 심정이 이럴까.
언더 시절부터 우상처럼 벽에 포스터를 붙였던 인물이 눈앞에서 하이 하면서 인사하고 있었다.
캐쉬카우의 입술이 꿈틀거렸다.
‘안녕하세요. 콜드 브라운 씨. 저는 언더 시절부터 당신을 몹시 존경해 왔던 한국의 래퍼입니다. 당신을 보면서 꿈을 키워 왔고, 당신은 많은 힙합인들에게 꿈과 같았던 존재였습니다. 지금 당신을 이렇게 눈앞에서 보니 저는 꿈을 이룬 듯한 기분이 드네요.’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안타깝게도 낯가림이 심하고 영어는 짧았다.
“하이.”
마음속으로 비가 흘러내리는 동안 캐쉬카우에게 콜드 브라운이 흥미를 빛내며 손을 내밀었다.
「한국에서 유명한 래퍼라고? 이름이 재미있네. 왜 캐쉬카우야?」
「그건…….」
캐쉬카우가 설명을 준비했다.
‘그것은 바로 제가 소띠이기 때문입니다. 아버지도 횡성에서 소를 키우시고 디아블로에서 카우 레벨을 좋아했죠. 소고기도 좋아하고. 유학 시절에 힌두교도 잠깐 믿어 봤고… 소와 인연이 깊은 터라 저의 랩 네임이 캐쉬카우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답했다.
“Because I’m a cow….”
「하하하! 재미있는 친구네. 한국 사람들은 정말 재치가 있단 말이야.」
다시 한번 마음속에 비가 내렸다.
최애를 만나서 하고 싶은 이야기는 많은데 말문이 막힐 때, 우주가 나서서 이야깃거리를 만들었다.
「저분 성함이 재섭 킴인데요. 당신과 이름이 비슷해요. 콜드.」
「정말이네?」
본명이 피니어스 제섭인 콜드 브라운이 환히 웃으며 좋아했다.
캐쉬카우가 빠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Yes. Yes.”
「기념으로 포옹이나 한 번 할까? Yeah. 그래. 힘내라고 친구. 나도 한때 그랬던 적이 있었어.」
얼떨결에 최애와 포옹을 하게 된 래퍼가 우주를 바라보았다.
‘감사합니다. 우주 씨. 역시 팬 사인회 경험 때문에 쭈뼛거리는 팬을 잘 대하는군요. 콜드 브라운과 말도 못 붙여보고 끝났을 뻔했는데, 덕분에 꿈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잊지 않을게요.’
그리고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다음과 같았다.
“땡큐….”
“감사하기는요.”
눈을 찡긋하며 웃던 우주가 콜드 브라운을 데리고 이동하기 시작했다.
그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는 가운데 캐쉬카우가 자신을 짠하게 바라보는 매니저에게 말했다.
“…형, 나 진짜 찌질했지?”
“응. 차마 눈 뜨고 보기 힘들 정도로….”
“영어 공부를 해야겠어…. 아 진짜 어떻게 입이 안 떨어지냐.”
그런 말을 하면서도 입가에 미소를 머금은 캐쉬카우였다.
‘최애와 만나서 사진도 찍었다.’
조금 창피하긴 했지만 나름대로 성과가 있었다는 생각에 미소를 지을 때였다.
“야. 재섭아.”
“응?”
“근데 큐시트 바뀐 거 보니까 너 뒷순서가 콜드 브라운인데?”
“…….”
인이어를 낀 채로 백스테이지에서 그의 무대를 지켜보게 될 콜드 브라운의 모습이 상상된다.
래퍼가 벽을 짚고 소리 없이 절규하기 시작했다.
* * *
그 시각.
수플레들은 간만에 여의도로 집결하는 중이었다.
‘공방이라니!’
예상치 못한 떡밥에 즐거운 웃음을 터뜨리며 PBS 방송국 앞에 모인 수플레들이었다.
[공방공지] PBS 뮤직 On 사전녹화 참여 안내
며칠만 기다리면 아까 낮의 쇼케이스가 EBS에서 <재즈와 힙합>이라는 제목으로 방영될 예정이긴 하다.
하지만 직접 무대를 볼 수 있는 기회는 정말 흔치 않았다.
뉴블랙의 리드보컬과 미국의 래퍼가 콜라보를 하는 무대를 직접 볼 수 있는 기회!
그것도 단 하루.
그 때문에 추첨도 어마어마하게 치열했다.
‘로또 추첨이라고 하던데.’
추첨에서 승리한 수플레들이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PBS 방송국에 다가갔다.
공방 시작까지 시간이 남았으니 이제 평소처럼 대기를 하면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거의 다 수플레들이네.’
따로 추첨을 받았는지 콜드 브라운의 팬으로 보이는 이들이 일부 있긴 했다.
수플레들의 인원을 보면서 침을 꼴깍 삼키는 이들의 모습에 그들이 푸근한 미소를 지었다.
‘이따 잘 모르는 것 같으면 도와줘야지.’
그런 생각을 할 때였다.
PBS 방송국에 도착한 수플레들은 눈을 크게 떴다.
“어?”
“어어?”
그곳에 있는 트럭 때문이었다.
트럭 문이 열리면서 그 정체가 드러났다.
‘역조공 트럭이다!’
곧이어 트럭 앞에 설치되는 현수막.
[저희 맏내를 잘 부탁합니다♡ - 4블랙 일동]
4블랙이 앙증맞게 포즈를 취하고 있는 가운데, 트럭에서 내린 사람들이 물건을 뿌리기 시작했다.
“허어어! 이건…….”
“제철 과일이네요. 중현이구나.”
“저희 엄마가 되게 좋아하세요. 뉴블랙 공방 좀 많이 다니라고. 저번에 미니 팬 미팅에서 중현이가 준 나물이 너무 맛있었대요.”
봄철 과일이 담긴 봉지를 받아 든 수플레들이 푸근한 미소를 지었다.
이어서 지호의 포토 카드.
“대박…! 지호 포카……!’
“와. 폴라로이드로 직접 찍었나 봐요.”
여기저기서 떠들썩한 웃음이 흘러나오는 동안 팸플릿이 나눠지기 시작했다.
마치 클래식 공연처럼 퍼포머의 이름과 약력, 오늘의 무대에 대한 소개가 적힌 팸플릿이었다.
‘귀, 귀한 굿즈!’
리혁이 준비한 것으로 보이는 물건에 수플레들이 감격했다.
팬들은 무엇을 좋아하는가.
바로 이렇게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물건을 좋아했다.
동시에 사인이 적힌 비매품 CD가 뿌려지면서 수플레들이 다음 품목을 기대했다.
‘이제 남은 건 비주.’
‘오늘의 주인공은 우주다. 그러니 선우주 극성팬 1호가 가지고 있다는 전설의 비공개 사진첩이…?!’
안타깝게도 비주가 준비한 것은 애플파이와 커피 트럭이었다.
어마어마하게 맛있어 보이는 수제 베이커리의 상품을 바라보며 수플레들이 군침을 꼴깍였다.
곧바로 트럭 앞에 줄을 섰지만 커피 트럭에 탄 직원들이 손을 저었다.
“이거 조금 이따가 드셔야 돼요.”
“네? 왜요?”
“여러분 드실 메인 메뉴가 따로 있다고.”
“……?”
그 말과 함께 사람들의 시선이 돌아갔다.
웅장한 트럭이 한 대 등장하면서 문이 열렸다.
그 순간 환하게 나오는 빛.
“저, 저건…!”
문이 열리면서 흑인 노인이 아들과 함께 등장했다.
「반갑습니다! 여러분! 콜드가 보내서 왔어요!」
「피자 드실 분은 이리로 오세요!」
거기에 적혀 있는 시카고 피자의 상호.
검색을 해 보니 시카고 피자 최고 맛집이라는 설명이 적혀 있었다.
“……!”
“……!”
시카고 출신인 콜드 브라운이 우주에게 ‘한국 팬들은 무엇을 좋아하느냐’ 라며 질문하고 준비한 음식이었다.
-우리 팬들은 음식을 좋아해요.
그리하여 직접 공수된 시카고 피자.
수플레들이 미니언즈처럼 꺄르륵 웃으며 손뼉을 치는 풍경을 바라보던 힙합 팬들이 속삭였다.
“저, 원래 아이돌 덕질이 이런 건가요?”
“저도 모르겠는데요.”
입이 떡하니 벌어지는 스케일에 힙합 팬들도 쭈뼛쭈뼛 줄을 서기 시작했다.
일사불란하게 줄을 서는 수플레들.
곧이어 피자와 제로콜라, 애플파이와 커피를 흡입한 수플레들이 이동을 하기 시작했다.
‘자! 이제 애들 만나러 가자!’
위풍당당하게 움직이는 수플레들.
소심하게 그 뒤를 따라가던 힙합 팬들은 처음 보는 아이돌 팬들에게서 무언가 기시감을 느꼈다.
어마어마한 크기의 배낭.
최애를 영업하기 위해 준비된 장사꾼의 표정.
계단을 힘겹게 오르는 강인한 의지.
‘이거… 그거 같은데…….’
지금 수플레들의 모습이 어딘가 낯익었다.
* * *
PBS 사옥.
“흐어.”
유리창 너머로 바깥 풍경을 구경하던 PBS의 신입 직원이 선배에게 물었다.
“대리님. 저 보부상들은 뭐예요?”
“뉴블랙네 팬들이야.”
“아하…….”
포동포동한 얼굴의 보부상들이 배낭을 메고 고개 넘듯이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