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868화 (868/1,031)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868화

영상이 이어질수록 방청객들의 웃음이 커져 갔다.

걸그룹 춤.

이 세상에서 간지를 무엇보다 중시하는 래퍼가 잔망스럽게 춤을 추고 있었다.

「맙소사. 이건 악몽이야.」

콜드가 손등으로 눈가를 덮고 중얼거렸다.

「이건 악몽이 분명해. 써니. 조금 이따가 날 깨워 주지 않겠어? 아무래도 내가 악몽을 꾸는 모양이야.」

「현실이에요.」

「젠장.」

영상이 끝나고 한바탕 웃음이 감돌 때.

토크쇼의 호스트인 래리 고든이 안경을 고쳐 쓰며 웃었다. 능글맞고 짓궂은 표정이었다.

「콜드. 당신이 춤을 그 정도로 잘 추는 줄은 몰랐네요. 저 숙녀 분들과 함께 활동해도 되겠는데요?」

「저거 방송에 안 나가는 줄 알았는데…….」

방청객들의 웃음에 콜드의 눈초리가 축 처졌다.

시무룩한 척하긴 했지만 실제로 그렇게 기분이 상하거나 그런 건 아닌 듯했다.

관객들이 자신에게 호감을 품게 될 기회라고 생각했는지 콜드가 능청맞게 손가락질을 했다.

「Guys! 내 커리어가 끝장나게 생겼는데 웃음이 나와요?」

「하하하하!」

「저는 써니와 함께 전기톱을 들고 미튜브 본사에 찾아가서 저 영상을 내려 버릴 겁니다.」

창피한 일에도 유머러스하게 대처하는, 미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반응이었다.

내가 물었다.

「저도 가요?」

「당연하지! 너 때문에 벌어진 일인 걸.」

「콜드가 먼저 춤을 알려 달라고 했잖아요? 저기 보면 영상에 나오는데…….」

옥신각신하며 방송 분량을 뽑는 우리에게 호스트가 두 손을 들어 보였다.

「좋습니다. 두 분 신혼여행은 다른 곳에서 하시고요.」

방청객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멘트 반응이 좋았는지 만족스럽게 웃던 호스트가 우리에게 시선을 돌렸다.

「콜드. 당신의 이 ‘섹시한’ 댄스와 관련해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이 있는데 무엇을 먼저 들어 보겠어요?」

두 손가락으로 콤마(“sexy”)를 표현하던 호스트에게 콜드가 양손으로 얼굴을 덮었다.

그러곤 소심하게 말했다.

「좋은 것부터…?」

「우선, 좋은 소식은 이 앵콜 직캠의 조회수가 수백만 뷰 정도밖에 안 된다는 겁니다.」

수백만 뷰라고 하면 어마어마한 것 같지만 콜드와 나에겐 꽤 적은 수였다.

우리 모두 1억 뷰가 넘는 영상들을 많이 가지고 있었으니까.

내가 웃으며 콜드의 옆구리를 쿡쿡 찔렀다.

「봤죠? 그 정도로 상황이 심한 건 아니라고요. 콜드.」

「후우.」

콜드 브라운이 안도의 한숨을 내쉴 때.

쇼 호스트가 씩 웃었다.

「나쁜 소식은… 물론 저희에게는 좋은 소식이지만, 콜드의 춤이 지금 바이럴(viral)하게 퍼졌다는 겁니다.」

「…….」

「한 번 보시죠.」

틱톡의 콜드 브라운 따라 하기 영상.

레딧이라는 커뮤니티에 퍼진 콜드의 댄스 짤.

걸그룹 춤을 추는 콜드의 사진에 온갖 글자들이 박혀 있는 밈들.

미튜브에서도 콜드의 춤 부분만 따로 편집한 영상들이 천만 뷰의 조회수를 훌쩍 넘기고 있었다.

「…….」

나를 원망스럽게 바라보는 콜드 브라운의 표정에 방청객들이 웃음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내가 손을 들고는 관객들에게 물었다.

「혹시 콜드의 춤을 다시 보고 싶은 분?」

「야!」

「미안해요. 콜드. 하지만 이건 좋은 홍보의 기회잖아요. 그래미에 한 발짝 다가갈 수 있는….」

그래미라는 키워드가 나오자마자 콜드가 벌떡 일어나 NYX의 춤을 추기 시작했다.

곧바로 나도 동참하면서 방청객들이 즐거운 웃음을 터뜨리는 가운데.

‘예고편에 쓸 만한 거 만들었으니 편집 잘해 줘요.’

‘사랑합니다. 써니.’

카메라 뒤에서 따봉을 든 프로듀서들과 미소를 교환했다.

* * *

여느 방송과 마찬가지로 미국 토크쇼에도 예고편이 있다.

그 방식은 다양하지만 대체로 하이라이트 한 장면을 미리 공개해서 방청객들의 관심을 끄는 식이었다.

“음?”

커피숍에서 노트북을 두드리고 있던 직장인, 정체되는 버스에서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는 대학생, 학교에서 핸드폰을 톡톡 두드리고 있던 학생들 등등.

다양한 곳에 있던 미국인들이 SNS와 미튜브에 뜬 영상 하나를 발견했다.

‘래리 고든 쇼 클립이네.’

래리 고든 쇼의 다음 출연자들을 예고하는 영상 클립이었다.

길이는 30초가량.

밈으로 놀림 받던 콜드 브라운이 ‘그래미’ 한 단어에 춤을 추기 시작하고, 우주가 동참하는 영상.

-lol (우는 이모티콘)

-오 래리.. 네가 거기서 웃고 있을 수준은 아닐 텐데. 우린 너의 춤을 기억하고 있다고

-방금 전까지 염소와 레슬링하는 사람 영상을 보고 있었는데 지금 난 콜드와 썬의 춤을 보고 있다. 고마워요 미튜브 알고리즘.

-그래미 이걸 보고 있다면 제발 콜드에게 상을 줘

-최근에 answer를 듣고 있는데 진짜 명반이라고 생각해. 콜드와 저 친구는 자격이 있음

-근데 쟤는 이름이 우주인 거야 썬인 거야?

-수플레로서 가슴이 두근거리는 조합이다

다양한 댓글이 빠르게 달리고 있었다.

평소였다면 수플레들로 꽉 차 있었을 댓글창에 머글들도 같이 북적거리는 느낌.

워낙 콜드 브라운이 미국 대중들에게 인지도가 높은 스타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단순히 그것 때문만은 아니었다.

이번의 가 그야말로 대중들 사이에서 대박이 터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콜드 브라운 신곡 나온 거 들었어?”

“좋던데.”

“뉴블랙? 걔네랑 콜라보 했다며.”

어떤 음원 사이트나 어플에 접속하든 간에 [1위]에 랭크되어 있는 콜라보 음원이었다.

미국뿐만이 아니라 캐나다, 영국 등의 국가에서도 대부분 정상에 오른 음원.

그것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다.

-이번 음원은 재즈가 담겨 있어서 그런지 클래식한 느낌이야. 마음에 들어.

재즈와 힙합의 기가 막힌 믹스에 힙합 리스너들은 새로운 음악이라며 만족하고 있었다.

중독되는 멜로디와 리드미컬한 벌스.

재미있는 거 하나를 찾으면 비슷한 걸 찾아보듯이 를 들은 힙합 리스너들은 대체로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Question] 이번에 콜드 브라운과 우주의 ‘Answer’는 진짜 끝내주는 거 같아. 혹시 비슷한 곡 아는 사람?

하지만 비슷한 곡을 찾으려고 해도 찾기가 힘들었다.

재즈 힙합이라 불릴 만한 곡은 지금까지 많았다.

문제는 만큼 대중적으로 듣기 좋고 중독성 있는 음원이 없다는 점이었다.

후발주자들이 곧 등장하겠지만 아직까지는 대체재가 없는 느낌.

그런 유니크함에 신선함을 느낀 힙합 리스너들이 주구장창 를 플레이하는 중이었다.

그리고.

“이건 좋네.”

“귀가 시끄럽지 않아서 좋구만.”

클린한 가사 역시 대중적으로 높은 점수를 받는 요인이었다.

평소 힙합에 대해 부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던 기성세대도 출근길에 라디오에서 나오는 노래를 들으며 흥얼거리고 있었다.

거기에 스트리밍에 적당한 2분 55초라는 시간.

노래가 빨리 끝나서 아쉽지만 반복 재생을 하기에는 이보다 더 적합한 노래가 없었다.

그야말로 2018년 상반기 미국 가요계를 강타한 신곡이었다.

그 때문에 미국 음반 업계를 이끌고 있는 레코드사들에서는 연일 회의가 열리고 있었다.

“콜드 브라운이랑 우주가 같은 레코드사였던가?”

“맞아요. 월드 레코드.”

“음반 발매 시기 하나는 기가 막히게 골랐군. 누가 이 빈집을 먹나 그랬는데…….”

벌써 3월이지만 2018년의 미국 가요계는 심심한 편이었다.

작년도 메가 히트곡이 아직도 빌보드 차트의 상위권에서 내려가지 않고 있었으니까.

미국 리스너들이 노잼 시기로 부르는 최근의 가요계.

그야말로 역대급 빈집이라고 할 수 있기에 레코드사들이 모두 노리고 있던 타이밍이었다.

-이 시기라면 적당한 히트곡도 메가 히트곡이 될 수 있다!

그 때문에 물밑에서 다양한 프로젝트를 준비 중이었는데….

이번 일 때문에 모든 게 꼬였다.

콜드 브라운과 뉴블랙의 우주가 메가 히트곡을 들고 나왔기 때문이었다.

“이건… 못 이길 것 같습니다. 경쟁이 치열한 타이밍에 나왔어도 1위를 먹었을 곡이라서.”

모두가 동의했다.

‘일단 빌보드 1위는 확정이다.’

대중성 있는 콜드 브라운과 수플레라는 무시무시한 팬덤을 거느린 뉴블랙의 조합.

한쪽만 있어도 1위가 가능한데 둘이 힘을 합쳤다.

경쟁해야 하는 가요계 관계자들에게는 악몽 같은 조합이었다.

그랬기에 모두의 의문은 다음과 같았다.

-과연 몇 주간 1위를 할 것인가?

다양한 데이터가 나왔다.

“이 추세대로라면 최소 2달은 1위로 차트인을 할 겁니다. 어쩌면 석 달이나 넉 달까지 가게 될 수도 있고요. 월드 레코드 측에서도 이 기회를 놓치지 않을 겁니다.”

“속단하기는 이르지만 빌보드 차트의 2018년 종합 1위가 가능할 수도…….”

“무한재생이 가능한 힙합 특성상….”

모두가 최소 두어 달 정도는 1위로 집권할 거라는 예측을 내놓으면서 레코드사 관계자들이 머리를 싸맸다.

“젠장.”

“우리 가수들은 발매 시기를 언제로 정해야 하지?”

“저 차트인이 끝나고 나면 콜드 브라운 정규 앨범도 나올 거 아니야? 뉴블랙도 음원 하나는 낼 거고.”

이전과 달리 이제는 뉴블랙도 음원 차트에서 조심해야 할 대상 중 하나였다.

작년도의 에서 어마어마한 화력을 직접 눈으로 보았기 때문이었다.

“이번에 스포티파이에서 역대 기록을 다 깼더군요.”

“뮤직비디오가 안 나왔지만 아마 나왔다면 지금 일주일도 안 돼서 1억 뷰를 넘겨 2억 뷰를 보고 있었을 겁니다.”

“지금도 뉴블랙 팬들 화력이 장난 아니던데요….”

가요계 관계자들이 혀를 내둘렀다.

‘…이런 건 처음 봐.’

보이밴드 팬들이 극성맞은 거야 옛날부터 유구하게 있어 왔던 일이다.

하지만 이 정도로 화력이 좋았던 팬덤은 없었다.

“메트로 이후로 확 커졌다면서요. 이러다가 몇 년 지나면 뭐가 되어 있을지….”

“지금도 Answer로 이미지가 꽤 달라진 거 같던데요.”

콜드 브라운과 콜라보를 선보인 우주는 이번에 대중들에게 이름을 각인시키는 데 제대로 성공했다.

그뿐만 아니라 독특한 이미지를 만들고 있었다.

-올림픽 무대에 천재의 아들로 선 가수.

-직접 작곡한 Answer로 콜드 브라운과 콜라보 음원을 발매.

기존의 보이밴드 멤버에게서 보기 드문 아티스트적인 면모를 지닌 인물이었다.

이번에 거의 모든 평론가들에게서 대호평을 이끌어 낸 라는 곡에서 그 면모를 아낌없이 선보인 우주.

그 모습에 관계자들은 혹시나 하는 생각을 품었다.

-만약 우주가 콜드 브라운과 함께 그래미를 수상하게 된다면?

지금까지 그래미는 보이밴드에게 상을 주지 않는 편이었다.

하지만 그래미 본상을 수상한 싱어송라이터가 있는 보이밴드라면?

아직은 가능성 없는 미래지만 보이밴드로서 최초로 그래미 수상을 하게 될 가능성이 생길 수도 있다.

쉽게 말하자면 지금의 콜라보가 그룹 전체의 호재로 이어지게 되는 상황이었다.

“이런 것까지 계산해서 곡을 낸 건 아니겠지만… 진짜 무섭긴 하네.”

“성장 속도가 미쳤으니까. 이 정도로 빠르게 텃밭을 넓혀 가는 외국 가수는 처음 봐.”

“뭐. 나쁘게만 볼 건 아니지.”

이런저런 계산을 마친 레코드사들은 결론을 내렸다.

‘친하게 지낸다.’

굳이 싸워야 할 대상이 아니라는 판단이었다.

이미 헤일리 블루나 콜드 브라운을 비롯한 기성 가수들과도 콜라보를 한 뉴블랙.

친하게 지내서 자신들의 가수와 콜라보를 하거나 하면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판단이었다.

그리하여 레코드사들의 판도가 바뀌기 시작했다.

-그냥 뉴블랙 쪽에 붙는다.

뉴블랙을 보유하고 있는 월드 레코드사와 그 친구들.

그와 반대로 이라는 오디션을 통해 새로운 보이그룹 파이를 먹으려는 경쟁자들.

그 사이 관망하던 중립 진영이 뉴블랙 쪽으로 가담하기 시작했다.

라는 음원이 물밑에서 불러오고 있는 변화였다.

그러는 한편.

레코드사들이 발 빠르게 움직이는 동안 가 불러온 가장 큰 변화를 느끼는 것은 바로 한국인들이었다.

“음?”

“어…?”

미국에서 고등학교를 다니거나 대학교를 다니고 있는 10대와 20대 한국인들이 눈을 깜빡였다.

‘뭐지.’

평소 미식축구만 하던 애가 Answer를 흥얼흥얼거리고 있고.

대학 기숙사 복도를 지나고 있을 때도, 방문 틈 사이로 선우주의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카페테리아에서도 들려오는 미국 래퍼와 K팝 가수의 목소리.

‘여기서도 우주, 저기서도 우주…….’

메트로가 발매됐을 때 쇼핑몰 등에서 들으며 ‘우와’ 하며 신기했던 한국인들이 눈을 크게 뜨고 있었다.

과거 썸씽이 한국에서 대박을 쳤을 때처럼 미국에서 앤서가 대박을 치고 있기 때문이었다.

수플레 유학생들의 손가락이 토도독 움직였다.

[미국거주하는데 앤써 대박인 듯]

지금 어딜 가든 나옴;;

체감 ㄹㅇ 장난아니야 미쳤음

거의 냉장고세탁기에어컨삽니다 수준으로 여기저기서 들림

하지만….

-인증 없네

-또 시작ㅋㅋㅋㅋㅋㅋ 미국에서도 잘나가는 우리오빠ㅠㅠㅠ 하고 싶어서 드글드글하네

-엥 나 미국인디 전혀 모름

-이거 맞아 나 아이오와 깡촌인데 앤써 들린다

-만약 그렇다 쳐도 콜드브라운 빨이지ㅋㅋㅋㅋㅋㅋㅋㅋ

-??? 곡을 우주가 썼는데 뭔 콜드브라운빨이야?

-원래 미국애들 힙합 많이 들음ㅇㅇ 무슨 노래 하나 나왔다고 세상이 뒤흔들리고 어쩌구ㅋㅋ

-콜드브라운도 미국 인기 있는 건 인정하는데 1020 급식이나 학식애들 사이에서지 머글들한테 그 정도는 아님

-한국에서 별로 체감 없는데

-지금 망고 2위로 내려감 ㅅㄱ

너무나 과장된 인기라며 안티들이 댓글을 몰아가는 분위기에 그들이 가슴을 팡팡 두드렸다.

‘진짠데!’

하지만 분하지는 않았다.

수플레들의 눈이 음험하게 빛났다.

‘이 분위기라면….’

나중에 눈에 보이는 지표로 결과가 나올 것이 분명하니까.

그게 무엇이든 간에 말이다.

* * *

「젠장.」

「…….」

「젠장….」

Damn 하는 목소리가 자진모리장단처럼 반복적으로 들려온다.

콜드가 핸드폰을 바라보며 울적한 표정을 지었다.

「써니. 이거 삭제는 안 되겠지?」

「콜드가 직접 PBS 측에 연락하면 삭제할 수 있긴 할 거예요. 하지만 이미 퍼진 건 못 막을걸요.」

「망할 인터넷…….」

중얼거리는 콜드를 보며 웃고는 시선을 돌렸다.

차창 너머로 캘리포니아의 근사한 풍경이 지나가고 있었다.

창문을 살짝 열 때마다 진한 봄 냄새가 풍겨 온다.

「패서디나는 처음 와 보네요.」

「심심한데 제법 괜찮은 동네야. 시트콤 중에 빅뱅이론 알아? 거기 배경이 여기거든.」

「오호.」

딱히 알고 있는 정보는 별로 없었다.

리혁이가 ‘거기 칼텍 있어요’ 하고 톡으로 보내 준 것 정도. 리혁이가 말하길 자기가 가고 싶었던 꿈의 대학교가 있는 도시였다.

오늘의 목적지는 바로 패서디나 컨벤션 센터.

원래 전시회장으로 사용되는 곳이자 이번에 오디션 프로그램 촬영장으로 쓰이는 장소였다.

「기분이 어때?」

콜드의 물음에 내가 어깨를 으쓱였다.

「그냥 평소랑 똑같아요.」

「그쪽 프로그램이랑 너희 팬들이랑 사이가 별로 안 좋은 것 같던데.」

「네.」

솔직히 수플레는 물론이고 우리와도 사이가 좋기 어려운 프로긴 했다.

은근슬쩍 돌려 말하면서 K팝을 디스하기도 하고, 우리를 무슨 한물 간 것처럼 포지셔닝을 하니까.

만약 이게 심사위원 출연이었다면 안 나갔을 것이다.

나가서 무슨 편집을 당할 줄 알고.

그건 마치 지호에게 ‘형 가만히 있을 테니까 한 번 놀려 봐’ 하는 것과 같은 이치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경우가 좀 다르다.

「생방송이니까요.」

생방송 무대라서 편집 장난을 칠 수도 없고, 무대만 3분 하고 내려오는 출연이었다.

이미 현장에 우리 미국 에이전트가 도착해서 꼼꼼히 상황을 살피는 중이기도 하고.

사실 사이가 나쁘긴 하지만 대체로 모든 관계가 그러하듯 막상 마주 보면 ‘어… 안녕’ 하는 느낌일 것 같긴 하다. 그러고 나서 뒤돌아보면 안 보는 곳에서 서로 욕하는 게 국룰 아니겠는가.

「일단 가서 분위기를…….」

그런 이야기를 할 때였다.

패서디나 컨벤션 센터가 가까워지면서 콜드와 내가 고개를 갸웃했다.

「어?」

「왜 레드 카펫이 깔려 있지?」

콜드 브라운이 미국에서 톱스타긴 하지만, 대통령도 아니고 의전을 준비할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콜드가 중얼거렸다.

「방송국에서 이런 걸 준비할 리가…?」

사이가 좋은 것도 아닌데 과도한 의전을 준비해서 의아해할 때였다.

가까워지면서 최소 수백에서 천여 명은 되겠다 싶은 인파가 우리를 반기고 있었다.

돌돌돌.

차량이 멈출 곳까지 돌돌돌 밀려오는 레드카펫.

「……저거 너희 팬들인데?」

「그…러네요?」

촬영장으로 향하는 입구까지 쫙 깔린 레드카펫을 사이에 두고 수플레들이 꽃길을 준비해 놓고 있었다.

콜드와 나의 뺨이 저절로 씰룩거리는 가운데.

문이 열리고 수플레들과 나의 눈이 마주쳤다.

포동포동한 얼굴들이 강인한 눈빛으로 날 바라보고 있었다.

‘Oppa.’

‘Souffle.’

서로 고개를 끄덕였다.

‘Oppa. 이 길을 행차하시오.’

마치 왕이 방문하는 듯한 분위기의 레드카펫 현장에 발을 내디디자 환호성이 흘러나왔다.

수플레들이 제작진에게 보내는 강렬한 메시지였다.

하지만….

지금 내 눈에 들어오고 있는 것은 수플레들이 내게 뿌려 주고 있는 꽃들이었다.

「덕순하구나….」

내가 제일 좋아하는 할미꽃의 미국 버전, 미국 할미꽃이 나의 눈앞을 아름답게 수놓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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