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869화
시끌시끌.
바깥에서 들려오는 복작복작한 소리에 의 스탭들이 발걸음을 멈췄다.
“누가 왔나?”
“콜린의 팬들 아니야? 이 정도 소리라면 콜린의 팬들밖에 없을 것 같은데.”
“또 시위하는 건가. 맨날 공평하게 편집해 달라고 시위야.”
오디션 참가자 중에서 압도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는 콜린 에반스의 팬들이 아니냐는 말이 나올 때였다.
-와아아아아아아아!
여태컷 단 한 번도 들은 적 없던 환호성이 들려오면서 제작진들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
‘누구지?’
허리케인이 들이닥치듯이 어마어마한 것이 찾아온 듯한 분위기.
바깥을 살피고 돌아온 누군가가 혀를 내둘렀다.
“뉴블랙이야.”
“아…….”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방송계 사이에서 익히 돌고 있는 소문이긴 했다.
-뉴블랙을 볼 때면 허리케인을 보는 것만 같다.
어딜 가든 팬들을 구름 떼처럼 몰고 다니는 데서 나온 말이었다.
허리케인이 휘몰아치듯이 거대한 빵들의 물결이 방송국에 그림자를 드리우는 것이다.
그 모습을 보게 되면 누구든 뉴블랙에게 친절해지게 된다나.
“소문이 진짜였군.”
“…함성 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네.”
그동안 웃어넘겼던 소문을 직접 목도한 이들이 침을 꿀꺽 삼켰다.
‘잘해 줘야지.’
저절로 예절이 주입된 의 제작진들이 손님맞이를 위해 분주하게 움직일 때.
컨벤션 센터의 위층에서 바깥 풍경을 바라보는 사람들이 있었다.
“워우.”
잘생긴 백인 남자가 바깥을 바라보며 감탄사를 내뱉었다.
“테리? 이거 봤어요? 장난 아닌데요.”
“보고 있어.”
“잠깐 무대하러 온 걸로 팬들이 무슨 레드카펫까지 준비를 했대요. 저기 경찰까지 출동해 있네.”
그 말에 방금 전 테리라고 불린 중년 남성, 테리 오스틴이 눈살을 찌푸렸다.
‘마음에 안 들어.’
업계에서 전설적인 프로듀서로 불리는 그였다.
인기 있는 팝 디바, 유명 싱어송라이터 등을 비롯해 지금까지 그는 다양한 가수들을 키워 냈다.
그중에는 인기 있는 보이밴드와 걸그룹도 몇몇 있었다.
대표적으로 섹시 팝스타 로건 스미스와 유명 배우로 활동 중인 티파니 벨이 그가 키워 낸 보이밴드와 걸그룹 출신이었다. 그야말로 가요계에서 그의 손을 안 거친 가수가 드문 것이다.
하지만 그런 그에게도 유일한 실패가 있었다.
-Next 5tyle
넥스트 스타일이라는 이름으로 기획한 5인조 보이밴드.
재능 있는 인재들을 모아 데뷔시켰지만 특별한 반응을 얻지 못하고 실패로 돌아갔다.
거기까진 괜찮았다.
‘음악 트렌드가 달라진 줄 알았지.’
이제 보이밴드 음악은 안 통하는 건가 보다 생각을 하고 있던 터였다.
그런데 2010년대 이후로 보이밴드가 빈집이 된 시기에 갑자기 K팝이 치고 들어왔다.
처음에는 비웃었다.
잘 될 리가 없다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쑥쑥 크더니 작년도의 METRO 이후로는 새로운 보이밴드의 자리를 완벽하게 꿰찼다.
자신의 실패를 비웃듯이 웬 정체불명의 그룹이 들어와서 희희낙락하는 꼴을 볼 때마다 심기가 불편했다.
-꺄르륵!
환청처럼 들리는 웃음소리.
‘에잇!’
게다가 왜 웃음소리는 맨날 그렇단 말인가.
이제는 뉴블랙이 방정맞게 웃는 소리들을 들을 때마다 자꾸만 실패를 상기시키는 것 같아 불쾌했다.
‘하지만 이제는 다를 거다.’
테리 오스틴이 주먹을 꼬옥 쥐었다.
작년도에 뉴블랙의 영어 곡이 대박이 난 이후로 한 레코드사에서 제안을 해 왔다.
-테리. 새로운 보이밴드를 만들어 보지 않겠어요?
최근 들어 인기를 끌고 있는 K팝에서 일부 요소를 차용해서 미국적인 보이밴드를 재건하자는 계획.
그리하여 이라는 오디션이 탄생하게 되었다.
-K팝 오디션처럼 트레이닝 과정을 상세하게 내보낸다.
-주제곡을 하나 정해서 단체 무대를 펼치고, 이후에는 생방송 경연 등을 통해 탈락자를 가려낸다.
-센터를 강조해서 팬들끼리 경쟁시킨다.
K팝 오디션에서 흥했던 성공 공식과 미국 보이밴드의 특징을 교묘하게 조합하여 탄생한 오디션 프로그램.
그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프로그램의 흥망을 좌우하는 초반 개인팬들을 모으는 것이 미국 정서와 잘 맞았기 때문이었다.
[요즘에 저는 Light It Up이라는 오디션을 보고 있거든요. 저의 원픽은 바로 헌터예요. 어린 친구지만 범상치 않은 것 같아요. 핫한 느낌. 학교마다 한 명씩 있던 핫 가이 알죠?]
주부들의 토크쇼에서도 참가자의 이름이 언급되고.
[이곳 패서디나에서는 ‘Light It Up’의 참가자들을 응원하기 위해 새벽부터 팬들이 줄을 서 있습니다. 누구를 제일 좋아하시나요?]
[콜린! 콜린!]
[캐나다 사람이라면 제이콥을 응원해야죠.]
패서디나에는 연일 참가자들의 팬이 집결하고 있었다.
언론에서는 ‘새로운 사회현상!’ 하면서 띄워 주고, 곳곳에서 자국의 보이밴드를 띄워 주기 위해 손을 뻗어 주고 있었다.
우승 혜택만 해도 무려 빌보드 뮤직 어워드에서의 단독 공연.
거기에 고공 행진하는 시청률.
데뷔만 하게 되면 저절로 성공가도를 밟도록 철저하게 준비가 되고 있었다.
“뭐.”
은발을 섹시하게 빗어 넘긴 중년 남성의 입가에 여유로운 미소가 떠올랐다.
잠깐 찌푸렸던 눈매가 부드러워지면서 제법 너그러운 표정이었다.
“뉴블랙의 인기가 높을수록 좋지. 우리가 이제 저걸 다 뺏어 올 거니까.”
“그럼요.”
근처에 있던 잘생긴 남성과 흑인 여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노아 테이트와 홀리 잉그램.
전직 아이돌 출신인 심사위원들과 프로듀서가 입술을 핥으며 바깥 풍경을 바라보았다.
‘부러워할 필요 없다. 저 팬들은 곧 우리 애들의 품에 안길 거니까.’
지금 추세대로 가면 불가능한 일은 아닐 거라 믿었다.
바깥에서 환히 웃으며 팬 서비스를 하는 우주를 바라보며 그들이 음험한 미소를 짓고 있을 때.
“…….”
유일하게 불안한 표정인 인물이 하나 있었다.
테리 오스틴이 고개를 돌렸다.
“미스터 햄?”
“예?”
“왜 그렇게 안절부절못하는 건가요? 어디 몸이 아픈가요?”
친절한 말투에 미스터 햄, 함필수가 침을 삼켰다.
과거 K넷의 제작국장 출신이자 지금의 을 만들어 낸 공신 중 하나였다.
“그… 우주가 무대를 하는 것에 대해 좀 불안한 감이 있어서요. 솔직히 저는 이게 좋은 생각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함필수는 부정적이었다.
“뉴블랙 우주 하면 퍼포먼스로 정평이 나 있거든요. 저 친구가 무대를 하고 나면 상대적으로 우리 참가자들 무대가 심심해 보일 수 있어요.”
“또 그 이야기군요. 하하.”
테리 오스틴이 합리적인 의문을 제기했다.
“여태까지 많은 기성 가수들이 찾아와 축하 무대를 해 줬지만, 딱히 우리 참가자들이 못나 보이는 경험은 없었던 것 같은데.”
“그렇긴 합니다만…….”
뉴블랙은 경우가 전혀 다르다는 말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가 애매했다.
‘무대를 씹어 먹고 다니는 애들이라고.’
매년 KMA를 주관할 때마다 가장 놀랐던 팀이 바로 뉴블랙이었다.
하필이면 같은 아이돌 포지션이라 이곳 참가자들과의 실력 차이만 각인시킬지도 몰랐다.
그래서 그런 걱정을 설파했지만 이곳 제작진과 심사위원들은 모두 태연자약했다.
-콜드 브라운과 우주가 와서 무대를 한다? 일단 시청률에 도움이 될 텐데 그걸로 된 거 아닌가?
시청률이 높게 치솟으면서 이들의 경계심은 몹시 낮아져 있었다.
국가의 경제가 나쁘면 문을 걸어 잠그고, 경제가 좋으면 관대하게 문호를 개방하듯이.
워낙 잘 되고 있다 보니 그의 말도 먹히지 않았다.
“미스터 햄.”
테리 오스틴이 그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잠을 좀 자는 게 어때요? 축하 무대 하나 가지고 과하게 부정적인 쪽으로만 생각을 하는 것 같은데.”
“…….”
“저 우주라는 친구는 이게 좋은 프로모션 기회니까 온 겁니다. 우리 프로가 시청률이 어마어마하니까.”
“그…….”
말이 목구멍에서 맴돌았다.
‘뉴블랙이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은데.’
뉴블랙은 자기들을 은근슬쩍 디스하는 프로그램에 나올 만큼 관대한 이들이 아니다.
차라리 안 나오면 안 나오지.
똑똑하기로 유명한 뉴블랙의 리더가 찾아온다는 건 백 퍼센트 노림수가 있다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이미 무대가 결정된 상황에 굳이 입씨름을 할 필요는 없었다.
“…걱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편히 쉬어요. 미스터 햄.”
자신의 말을 대수롭지 않게 넘기는 이를 바라보며 함필수가 한숨을 내쉬었다.
‘다시 한국으로 가야 되나.’
작년도 일본 KMA가 엉망진창으로 진행된 이후로 입지가 좁아지던 타이밍에 러브콜을 받았던 그였다.
처음에는 Executive Producer라는 직함까지 주면서 엄청 극진히 대접했는데.
프로그램의 숨통이 트이고 잘나가게 되니 이제 뭔가 그를 귀찮게 생각하는 것 같다는 느낌이 강했다.
주변의 미국인들을 바라보던 함필수가 핸드폰을 들었다.
‘그 녀석은 잘 지내려나.’
자신을 유독 잘 따랐던 K넷의 CP.
최근에 힙합 오디션 <넥스트 미션>이라는 프로그램을 맡아서 잘나간다던데.
요즘 K넷의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그가 문자를 보냈다.
[봉철아. 잘 지내고 있냐?]
* * *
측에서 준비해 준 대기실은 몹시 좋았다.
콜드와 헤어져 널찍한 대기실에 앉아 있으니 곧이어 손님들이 하나둘 들어오기 시작했다.
“안녕하세요!”
한국어 인사를 준비한 메인 프로듀서의 모습에게 웃으며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이렇게 유명한 분이 찾아오실 줄이야! 우주 씨를 직접 만나게 되어 정말 반갑습니다.」
「감사합니다. 저도 여기 출연하게 되니 기쁘네요.」
서로서로 웃으며 인사를 주고받은 후.
프로그램의 제작진을 비롯해 심사위원이라는 사람들도 하나둘 방문을 했다.
「오!」
은발을 멋들어지게 빗어 넘긴 중년의 미남이 인사를 해 왔다.
테리 오스틴.
이름만 대면 다 아는 유명 제작자이자 이번 프로젝트를 주관하는 핵심 인물이었다.
「정말 반가워요. 우주 씨.」
분명 잘생기고 인상도 좋은데 뭔가 느낌이 별로다.
리혁이처럼 손이 차서 그런가.
-당신이 수족냉증의 아픔을 알아!?
아무튼 개인적인 인상이 별로였다.
테리 오스틴이 매력적인 미소를 지었다.
「오늘 축하 무대에 와 줘서 정말 고마워요. 우리 참가자들에게도 정말 좋은 기회가 될 겁니다.」
「제가 도움이 된다면 정말 좋겠네요.」
「하하! 당연히 도움이 되고말고요.」
서로 별로 안 좋아하지만 앞에서는 활짝 웃는 특유의 분위기 속에서 인사를 마쳤다.
뭔가 미국인들 특유의 자신감이 느껴졌다.
말은 안 하지만 ‘너네 우리가 금방 따라간다’ 하는 분위기.
「하!」
우리의 미국 활동을 담당하는 디안젤로 씨가 닫힌 방문을 보고 씨근덕거렸다.
「개자식들. 벌써부터 눈에서 깔보는 게 느껴지네요.」
「하하.」
「돈만 있으면 자기네가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돈은 우리도 많습니다. 우주 씨.」
눈에서 불이 활활 타오르는 미국 에이전트를 바라보며 웃고는 의상을 갈아입었다.
생방송까지 약 1시간 남은 상황.
대기실 TV에서 흘러나오는 참가자들의 리허설 무대를 바라보았다.
“호오.”
생각보다 괜찮았다.
내가 예전에 봤던 클립들보다 실력이 일취월장해 있었다. 확실히 실전이 좋긴 좋다는 생각이 든다고 해야 하나.
우리 스탭들과 함께 미국 아이돌 지망생들의 무대를 지켜볼 때였다.
지이잉-
핸드폰 진동에 버튼을 누르니 영상 통화가 흘러나왔다.
[형!]
비주였다.
[뭐 하고 있어요? 저희는 지금 점심 먹으러 왔어요.]
“나 지금 리허설 기다리고 있어. TV로 미국 연습생들 리허설 보는 중.”
[오.]
화면 속에서 4인조가 고개를 쏘옥쏘옥 내민다.
내가 ‘보여 줄까?’ 하면서 핸드폰을 돌려서 보여 주자 우리 애들이 호오 하며 눈매를 좁혔다.
[생각보다 나쁘진 않네요.]
리혁이가 흐음 했다.
[보컬 쪽에 재능이 보이는 인물이 몇 있네요. 하지만 말을 아끼겠어요. 도청이 될지도 모르니까. 내가 선물로 준 도청 탐지기 써 봤어요?]
“아니….”
[사람이 그렇게 조심성이 없어서야.]
리혁이가 선물로 사준 도청과 몰카 탐지기를 지잉 하면서 한 바퀴 휘둘러서 보여 주었다.
‘봤지?’ 하는 나에게 지호가 아쉬워했다.
[까비. 그거 삐빅삐빅했으면 대박 사건인데.]
내가 웃음을 터뜨렸다.
그동안 참가자들을 바라보던 동생들이 흥미로운 표정을 지었다.
대체로 평은 비슷했다.
좀 다듬으면 잘 될 원석들은 보이는데, 아직 대중들에게 내어 놓을 만한 수준은 아니라는 것.
“너희의 도움이 필요해.”
[그럼 공손하게 부탁해 보세요.]
“중현아.”
[네.]
냐아 하며 끌려가는 고양이처럼 지호가 화면에서 사라졌다.
내가 물었다.
“조금 이따가 칭찬을 해 줘야 할 것 같거든. 뭐, 프로그램 참가자들이 어떠냐고 의례적으로 물어볼 것 같아. 칭찬을 해 줘야 하는데… 너무 성의가 없으면 안 되니까.”
나도 떠오르는 게 있지만 동생들에게 더 좋은 아이디어가 없는지 물색했다.
‘열정적이다’, ‘젊다’, ‘숨을 쉰다’ 같은 아이디어들이 나오는 걸 보니 나와 큰 차이는 없는 듯했다.
잠시 수다를 떨다가 이내 손을 흔들었다.
“나 조금 이따가 무대하니까 꼭 시청하고.”
[녜.]
“확인할 거야.”
[뉘에뉘에.]
대충 대답하는 졸개들에게 ‘끊는다’ 하면서 통화를 종료했다.
석환 형에게 웃으며 말했다.
“외국이라 그런지 좀 외롭네. 넥스트 미션 나갈 때만 해도 그런 게 없었는데, 외국이라 그런지 좀 허한가 봐. 괜히 애들 목소리 듣고 싶고 그러네.”
“너 여기 온 지 이틀 됐는데.”
“아이고. 옆구리가 허하다….”
못 들은 척하며 기지개를 켰다.
하지만 평소처럼 무대 올라가기 전에 올망졸망 있어야 하는 4인조가 없다는 건 굉장한 단점이긴 했다.
괜스레 매니저들과 수다스럽게 잡담을 떨고 있을 때.
「헤이, 써니.」
콜드가 노크를 하고 문을 열었다.
올 때 입던 수트가 아니라 후드티 차림으로 갈아입은 걸 보니 시간이 된 모양이었다.
「리허설하러 갈 시간이야.」
「가 볼까요?」
하이파이브를 가볍게 하고는 대기실을 나섰다.
콜드의 스탭들과 경호원, 우리 스탭들이 군단처럼 뒤따라오는 동안 제작진이 길을 비켜섰다.
백스테이지에 있는 TV에서 마지막 리허설을 구경하고 있을 때.
의 비하인드 카메라가 콜드와 나에게 따라붙었다.
「참가자들의 리허설 무대를 본 소감이 어떠신가요?」
「뜨거운 에너지가 느껴지는군요.」
콜드의 의례적인 칭찬을 들은 카메라가 내게 앵글을 돌렸다.
내 코멘트를 어떻게든 써먹겠다는 심보가 보이는 것 같아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귀여운 후배들을 보는 것 같네요.」
「…….」
원하던 코멘트가 아니었는지 그 뒤로는 질문이 없었다.
* * *
모든 참가자들이 생방송 준비를 하기 위해 각자 대기실로 떠난 후.
텅 빈 무대 위로 콜드 브라운과 우주가 올라왔다.
이제 생방송을 하기 전에 마지막으로 초대 가수들의 무대를 리허설할 시간이었다.
-OK. 무대 장치 마지막으로 확인을 해 보겠습니다.
조명을 비롯해 무대 장치를 꼼꼼하게 체크하는 제작진.
생방송이기 때문에 더욱더 긴장감 감도는 분위기 속에서 리허설 준비가 완료됐다.
메인 프로듀서가 마이크를 들었다.
-그럼 지금부터 두 분 리허설 시작하시죠.
고개를 끄덕이는 우주와 콜드 브라운.
신화 속에 나오는 우로보로스라는 뱀을 형상화한 듯 붉은 원이 그려진 검은 후드티.
두 남자가 마이크를 들고는 가볍게 리듬을 타기 시작했다.
곧이어 시작되는 의 무대.
그리고.
‘……어?’
본격적으로 리허설이 시작되면서 제작진과 심사위원들이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퍼포머로 유명한 두 가수의 리허설 때문이었다.
환한 조명이 햇살처럼 내리쬐는 곳에서 무대 곳곳을 누비는 이들의 모습은 정말이지 굉장했다.
눈처럼 새하얀 피부의 가수의 눈이 조명에 별처럼 반짝이고, 섹시한 피부의 래퍼가 마이크를 들고 무대를 휘젓는다.
두 사람의 존재감이 무대를 꽉 채우는 듯한 느낌.
‘그러고 보니…….’
제작진이 멈칫했다.
‘초대 가수 중에 퍼포머가 나온 건 처음인가?’
지금까지는 대체로 싱어송라이터나 래퍼 위주로 출연했던 초대 가수들이었다.
보컬이나 랩으로 무대를 장악했던 이들.
지금처럼 퍼포먼스로 무대에 자신들의 존재감을 어필하는 이들은 없었던 터였다.
문제는 이들의 무대가 오프닝이라는 것.
“…….”
“…….”
제작진이 묘하게 불안한 느낌을 받았지만 고개를 저었다.
‘그래도 이 정도면 뭐….’
리허설에서 보여 줬던 대로라면 그리 걱정할 만한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런 이들과 달리 전 K넷의 국장이었던 함필수는 멍한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일 났네.’
리허설도 대단하지만 본무대와 또 얼마나 차이가 나는지 뉴블랙을 알고 있는 그가 멍하니 서 있을 때였다.
그의 등 뒤에서 한국어가 들려왔다.
“안녕하세요….”
“히이익!”
화들짝 놀라 몸을 돌렸다.
무대가 끝나고 백스테이지로 내려온 우주가 반갑게 웃고 있었다.
“오랜만에 뵙네요. 함필수 국장님.”
“하하. 그러네요.”
“예전에 헤일리 블루 건으로 뵀던 게 마지막 같은데, 그때 이후로 정말 오랜만이네요. 잘 지내셨어요?”
해석하자면 다음과 같은 뜻이었다.
-우리한테 압박 넣어서 헤일리 블루 KMA에 섭외하려고 했던 거 나 안 잊고 있다.
함필수가 어색하게 웃고 있는 동안 우주가 맑게 웃었다.
“그럼 또 뵙겠습니다.”
“예. 하하….”
미국 최고의 톱스타인 콜드 브라운과 함께 우아하게 사라지는 뒷모습을 바라보던 함필수가 침을 삼켰다.
‘미국에 있는 것도 글렀나.’
미국에서 영향력을 높여가는 우주를 바라보며 그가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는 걸 고려할 때였다.
딩동.
요즘 K넷이 어떠냐고 물었던 그의 문자에 후배가 답장을 보내왔다.
이봉철 [형님.. 한국 상황 별로입니다.. 요즘 미국은 어떠신지요..]
‘뭐지?’
미국으로 오고 싶다는 후배의 말에 함필수가 고개를 갸웃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