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876화 (876/1,031)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876화

제작진이 자랑스럽게 고개를 들었다.

“군산에서 현장 조사를 하면서 선명주 님에 대한 사소한 것들까지 하나하나 다 파악할 수 있었죠.”

“정말 한국 정서를 파악하는데 심혈을 기울였어요.”

“자료 조사하려고 면담한 한국 분들만 몇백 명은 될걸요.”

과연 할리우드 최고의 스탭이라 불릴 만한 분들이었다.

내가 박수를 치며 말했다.

“진짜 대단하시네요. 저는 거기까지 파악하셨을 줄은 몰랐거든요.”

“노력을 좀 했어요.”

김보라 감독님이 생긋 웃으며 답했다.

“다른 분도 아니고 선명주 님 영화인데 자료 조사가 미흡해서 누가 되면 안 되잖아요?”

“맞아.”

한국계 미국인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이 앞다투어 말했다.

“이거 망치면 저 집에 돌아가서 아버지한테 욕 엄청 먹을 겁니다. 선명주 씨 영화를 네가 망쳤다고.”

“한국말로 그거 될 거예요. 온 집안의 traitor. 그거 뭐죠? 아. 역적.”

“역적이 뭐야. 쓰레기가 될걸요.”

한국계 미국인들에게 자부심의 상징과도 같았던 사람이 우리 아빠였다는 말에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시끌벅적하게 이야기하던 사람들이 하나둘 잠잠해질 때.

내가 웃으며 말했다.

“일단 가장 큰 장벽이라고 여겼던 부분들은 해결됐네요. 한국 정서와 관련된 부분은 이제 걱정 안 해도 될 것 같아요.”

게다가 한국과 관련된 씬은 스튜디오 LM에 소속된 한국인 작가들이 자문해 줄 거니까.

수정된 대본을 받아 들면서 미팅을 시작했다.

이곳에서 내 역할은 바로 영화의 기획에 관한 일이었다.

특히나 영화가 뮤지컬로 기획이 되었기 때문에 음악적인 지식이 있는 나의 역할이 컸다.

이번 영화의 목표가 바로 음악을 알리는 거니까.

-저희 아버지가 어떤 사람인지 그걸 음악으로 보여 주고 싶어요.

어마어마한 성공을 거두었지만 솔직히 내 생각에 선명주라는 음악인은 아직도 저평가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백인이나 흑인이었다면 지금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세계적인 전설이 되었을걸.

그만큼 알려지지 않은 명곡들이 많다.

-그런 곡들에 가사를 붙이고 싶어요. 아버지의 음악 중에 가사가 붙은 음악도 있지만 대부분은 가사가 없으니까요.

그리하여 나와 제작진이 생각하는 기획은 다음과 같았다.

-선명주의 인생이 녹아 있는 재즈 음악들에 가사를 붙인다면? 그것을 뮤지컬 영화처럼 만든다면?

사람들이 잘 모르는 사실이지만 곡이 대중적으로 흥하는 데 있어 가사는 정말 중요하다.

물론 가사가 없어도 음악의 감동을 느낄 수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영화적인 스토리텔링에 있어서는 가사가 있는 편이 압도적으로 유리하다.

음악에 가사가 붙으면 대중들이 몰입하기 쉬운 이야기가 되니까.

클래식 음악을 들을 때 배경설명이 없으면 저마다 다른 감상을 하지만, 사랑에 대한 발라드곡은 가사를 들으며 쉽게 이해하듯이.

특히나 영상 매체에서 가사가 없는 건 불리하다.

-저기 봐. 선명주가 울면서 피아노를 치고 있어. 왜 울지?

가사가 있다면 주인공이 왜 울고 있는지 쉽게 답을 줄 수 있다.

하지만 말없이 눈물을 주르륵 흘리며 피아노만 친다면 전후 사정을 통해 관객이 맥락을 이해해야 한다.

보자마자 직관적으로 이해되는 것이 좋은 영화가 아니겠는가.

그러니 가사는 필수적인 선택.

최종적으로는 영화라는 압도적인 대중매체를 통해서 아빠의 인생과 음악을 쉽게 소개하는 것이 우리의 목표였다.

“음…….”

그러므로 당면 과제는 바로 어떤 곡들을 선정할지에 대한 것.

수많은 곡들 중에서 후보군을 추리는 작업이 계속해서 이어졌다.

“저는 재미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선명주 님의 음악 중에서 재미있는 곡들도 좀 뽑아서…….”

“일단 초창기에 선명주 씨가 습작처럼 쓴 곡들도 살리는 게 어떨까요? 선명주 씨의 성장을 보여 줄 수 있을 거 같아요.”

토론이 이어지면서 얘는 빼고, 얘는 넣고 하는 작업이 이어졌다.

투표를 통해 곡이 하나 빠질 때마다 여기저기서 아쉬움의 탄성이 나오는 현장.

이미 한 차례 걸러졌던 곡들이 필터에 걸러지면서 최종 후보군의 2배수에 달하는 곡이 남았다.

내가 리스트를 보며 말했다.

“스물두 곡이 남았네요.”

“진짜 저기서 또 절반이나 탈락을 시켜야 한다는 게…….”

울상을 짓는 김보라 감독님의 말에 내가 웃으며 답했다.

“아쉽지만 영화 러닝타임을 생각하면 어쩔 수 없으니까요. 이중에서 10곡 정도를 골라서 편곡해서 컷팅해도 40분은 될 거예요. 영화 러닝타임이 100분 정도 될 걸 생각하면….”

그런 말을 하며 리스트를 정리했다.

이제 여기서 최종본을 뽑아내 프랭크 차우 등과 함께 뮤지컬 넘버 작업을 할 예정이었다.

김보라 감독님이 말했다.

“잘 부탁드릴게요. 우주 씨.”

“열심히 해 보겠습니다. 정말 최선을 다해서….”

다른 사람도 아니고 우리 아빠 음악이다.

이건 진짜 몸을 갈아서라도 해내야 할 작업이었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에 제작진들이 미소를 짓는 가운데.

“아.”

손목시계를 본 김보라 감독님이 말했다.

“이제 시간이 다 됐네요.”

“그러네요.”

시계를 본 사람들이 다들 회의 서류를 정리했다.

김보라 감독님과 캐스팅 디렉터 존 덕규 최 씨를 비롯해 주요 인물들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 주연배우를 만나러 갈 시간이었다.

* * *

이견우.

30대 배우 중에서 현재 대한민국에서 가장 주가가 높은 배우 중 하나다.

그리고 이번에 내가 아빠의 ‘성인’ 배역으로 원하는 배우기도 했다.

아역과 청소년기의 배역은 따로 뽑아야겠지만… 성인이 된 아빠와 가장 이미지적으로 어울리는 배우.

“음.”

캐스팅 디렉터 존 덕규 최 씨가 이견우의 프로필을 훑으며 말했다.

“캐스팅이 된다면 체중감량이 좀 별도로 필요할 것 같습니다. 조금 더 선이 날카로워야 선명주 씨와 어울릴 거 같아요. 지금으로서는 조금 화려해 보이는 얼굴이라….”

“일단 지켜보고 나서 이야기해도 늦지는 않죠.”

조규환 이사님이 느긋하게 답했다.

“아직 캐스팅이 된 건 아니니까요.”

“한국에서 이견우 배우는 어떤 배우입니까?”

캐스팅 디렉터의 물음에 이사님이 답했다.

“현재 가장 주가가 높죠. 마스크 좋고 연기 잘하고. 촬영 현장에서 매너도 좋아 드라마 감독들이 1순위로 채 가고 싶어 하는 배우죠. 일단 연기력에 기복이 없습니다.”

“호오….”

흥미로워하던 김보라 감독님이 물었다.

“그런데 그런 사람이 우리 영화에는 왜 관심을…? 그, 무시하는 게 아니라 우리 영화가 지금 각광 받는 위치는 아니잖아요.”

“그 질문에 대한 답을 하자면…….”

조규환 이사님이 눈을 찡긋하고는 내 쪽을 가리켰다.

“여기 있는 우리 우주가 큰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죠. 우주가 이견우 씨와 상당히 절친한 사이거든요.”

“…제가요?”

생일이나 명절, 축하할 일 생길 때마다 톡하고 불백 주고받는 사이 정도인데.

조규환 이사님이 말했다.

“얼마 전에 이견우 씨가 인터뷰에서 너 언급했던데.”

“……?”

그 말에 핸드폰을 들어서 인터넷 뉴스를 검색했다.

고개를 빼꼼히 내민 김보라 감독님이 ‘어머 맞네’ 했다.

-[Hot터뷰] 배우 이견우, “친한 친구요? 뉴블랙 우주…”

기사 내용이 눈에 들어온다.

-그는 친한 연예계 동료로 뉴블랙 우주를 꼽았다. 주세한과 뉴불백으로 시작된 그들의 인연은….

인터뷰만 보면 ‘우주랑 친해요!’ 라고 읽힐 인터뷰였지만 왠지 내 눈에는 다르게 보인다.

기자의 질문에 당황한 이견우 선배님의 모습.

-그냥 친구들 말고 연예계에서 친한 친구요? 어….

-연예계 활동이 10년이 넘었는데 제대로 친한 친구가 설마 없는 건 아니겠죠? 이견우 씨?

-어어어….

-말해라!

-그… 뉴블랙 우주…?

…같은 상황이었을 것 같다는 직감이 강렬하게 든다.

그런 생각을 하며 웃으며 메신저를 켰다.

어디쯤 오고 계시냐고 물어보려고 하는데…….

텅 빈 프사 옆에 프로필 메시지가 눈에 들어왔다.

이견우 선배님 [톡X 전화X]

혹시 내가 요새 자꾸 메시지로 친한 척해서 그런 건가.

친해지고 싶은 고슴도치에게 다가가다 손가락이 찔린 듯한 느낌이었다.

왠지 살짝 시무룩한 기분을 느낄 때.

조규환 이사님이 핸드폰을 보며 말했다.

“매니저 말로는 지금 도착했다고 하네요. 곧 들어온답니다.”

“오셨대요?”

그 말에 다들 자세를 정돈했다.

캐스팅 디렉터와 감독, 프로듀서들, 그리고 내가 자리를 잡은 가운데.

똑똑-

노크 소리에 조규환 이사님이 ‘들어오세요’ 했다.

그리고 문이 열린 순간.

“…….”

“…….”

다들 눈을 휘둥그레 떴다.

지금 문을 열고 들어온 배우 때문이었다.

“어…….”

이건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는 듯 김보라 감독님의 눈이 튀어나올 것처럼 부풀었다.

한국계 미국인들이 입을 떡하니 벌리고, 조 이사님만 예상했다는 듯 능글맞게 웃고 있을 때.

“…….”

나 역시 놀란 표정을 숨길 수 없었다.

나도 모르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날 뻔했으니까.

그곳에는….

“안녕하세요. 오늘 오디션 보러 온 이견우입니다.”

이견우가 아니라 선명주라 불러도 될 듯한 남자가 있었다.

하얀 셔츠에 검은 슬랙스.

거기에 안경까지 갖춰서 얼핏 보면 진짜 우리 아빠와 분간이 힘들 것 같은 얼굴.

아니.

아니. 이걸 뭐라고 설명해야 하지.

나도 모르게 막 가슴이 벅차고 설렌다. 심장이 풍선처럼 부풀어 오르는 기분. 기억 속에 있던 아빠와 재회하는 것만 같아 손가락이 꿈틀거렸다.

“어…….”

외모만 보면 분명히 다르다.

하지만 지금 온몸으로 풍기는 분위기를 보면 아빠가 되돌아왔다고 해도 믿을 정도였다.

뒤에서 이견우의 매니저가 코를 슥 비비며 뿌듯해하는 가운데.

“어우….”

김보라 감독님이 먼저 운을 뗐다.

“정말 선명주 씨가 들어온 줄 알았어요. 이거 진짜 흔치 않은데… 들어오자마자 딱 그런 느낌이 드는 게…….”

“감사합니다. 하하.”

“우주 씨가 왜 추천을 했는지 알 것 같네요.”

이견우 선배의 눈이 슥 내게 향하면서 나도 모르게 시선을 피했다.

왠지 모르게 아빠랑 눈을 마주치는 기분이라 부끄럽다.

다행히 캐스팅 디렉터가 입을 열었다.

“한국에서 굉장히 유명한 배우라고 들었는데… 이 정도로 준비를 해 오셨을 줄은 몰랐습니다.”

“배우 활동하면서 지키고 있는 철학입니다.”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려온다.

“감독님들께 제가 준비한 걸 보여 드리고, 배역과 어울린다 싶으면 캐스팅을 하는 걸로요.”

“떨어진 적이 있나요?”

“아직까진 한 번도 없네요.”

사실상 내정자나 다름없는 포지션이긴 했지만 제작진의 눈에 호감이 깃들었다.

앉아 있는 모습만 보아도 얼마나 준비가 되어 있는지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우선… 그럼 대본을 한 번 읽어 보겠습니다.”

김보라 감독님이 엄마의 대사를 읊고, 아빠의 역할을 맡은 이견우 선배가 대답하는 장면이었다.

내가 괜히 가슴이 콩닥거린다.

“걱정되지 않아? 관객이 어마어마하다던데….”

“글쎄.”

나지막하면서도 부드러운 톤.

분명 다른 목소리지만 풍기는 분위기가 비슷하다.

여유롭고 자신감 가득해서, 주변에서 보는 사람들을 매료시키는.

“걱정은 오히려 그 사람들이 해야 하지 않을까? 다른 사람도 아니고 내가 무대에 오르는데.”

부인을 바라보며 따스하게 웃는 동시에 자신감을 드러내는 장면.

자신이 아끼는 사람에게 따스한 빛을 비추고, 스스로의 빛을 뿜어내는 태양과 같은 사람.

아빠라는 사람을 정말 잘 요약해서 보여 준 연기였다.

“……!”

캐스팅 디렉터와 프로듀서들이 미소를 지었다.

합격증이 있다면 도장이 쾅 찍히는 듯한 순간이었다.

김보라 감독님이 말했다.

“그, 그럼 혹시 영어 연기도 볼 수 있을까요?”

“네.”

곧이어 이어지는 유창한 영어에 제작진이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당장 계약서를 꺼내려고 하는 분위기 속에서 내가 웃으며 말했다.

“진짜 준비를 엄청 하셨네요.”

“네.”

이견우 선배가 웃으며 말했다.

“준비 기간이 짧아서 미흡할 수 있지만, 우주 씨한테 이야기를 들은 이후로 캐릭터 구축을 해 봤습니다. 여러 가지 상상을 통해 캐릭터를 만들었고, 또 생활 환경을 바꾸면서 적응했어요.”

“…생활 환경이요?”

“80년대와 90년대에 주로 활동했던 분이잖아요. 그 시대에는 휴대전화가 없었으니까 휴대전화도 꺼놓고.”

이견우 선배는 이른바 메소드 연기를 추구하는 배우라고 들었다.

캐릭터에 동화되기 위해서 일기장을 쓰거나 생활 환경을 바꾸는 것도 그런 노력의 일환이라나.

배우가 자신의 철학을 밝혔다.

“연기라는 것은 결국 그 캐릭터가 되어야 하는 건데, 캐릭터가 된다는 것은 그 캐릭터의 사고 구조를 자연스럽게 따라가야 한다는 거거든요. 스마트폰을 쓰던 시대의 사람과 아닌 시대의 사람은 사고 구조부터가 다르니까요.”

신기하다는 표정을 짓는 나에게 배우가 설명해 주었다.

“예컨대 그리움의 감정도 상관이 있죠. 그리운 마음을 전하기 위해 편지를 쓰던 시대와 이메일을 보내던 시대의 마음은 다를 겁니다. 우주 씨도 알겠지만 그런 사소한 부분들이 연기를 좌우해요.”

분명 오디션 현장인데 왜 연기에 대해 배워 가는 기분이 드는지 모르겠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며 상대의 노력에 감탄하는 동안, 김보라 감독이 말했다.

“이제 마지막으로 노래만 가볍게 볼까요?”

“아, 네….”

그리고 그때.

베테랑 배우를 연기하던 이견우 선배의 얼굴에 살짝 균열이 일었다.

깨진 가면 틈 사이로 ‘떼잉!’ 하며 당황하는 본모습이 잠시 보인 듯하다고 할까.

“그…….”

이견우 선배가 말했다.

“노래는 살짝 부족한 편인데…….”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돼요. 그냥 기본 실력만 보려는 거니까. 정 안 되면 가수를 따로 섭외해서 목소리를 깔아도 되고.”

뮤지컬 영화에 없는 케이스는 아니었다.

따로 가수의 목소리를 녹음해 더빙하듯 입히기도 하고.

“그, 그럼 부르겠습니다.”

곧이어 이어지는 노래.

차렷 자세로 눈을 질끈 감은 한류스타가 입을 열면서 나는 무언가를 직감했다.

♪ 동해물과 백두산이 ♬

“…….”

“…….”

목소리는 좋지만 음정과 박자가 불안한 상황.

김보라 감독님이 캐스팅 디렉터와 속삭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쩐지 너무 완벽하다 했어요.”

“아무리 대단한 배우라도 완벽할 수는 없는 거니까. 그래도 트레이닝을 시키면 될 것 같은데…….”

보컬 트레이닝을 어떻게 시켜야 할지 고민을 하고 있을 때.

이견우 선배의 노래를 경청하면서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무엇을 해야 할지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 * *

왠지 얼굴이 벌게지는 기분이었지만 이견우는 개의치 않았다.

‘서리혁 파데를 발랐으니까.’

홍조를 숨겨 주는 서리혁 파데의 도움.

그리고 이런 순간 특유의 얼굴땀도 없었다.

‘얼굴땀 억제제를 발랐다.’

얼굴이 후끈거리긴 하지만 땀은 나오지 않았다.

겨드랑이만 조금 축축해질 뿐.

그리고 여기에 마지막으로….

‘마시는 청심원 2개.’

그야말로 오디션을 보기 위해 만반의 준비가 된 상황이었다.

마지막에 노래를 부르는 것이 조금 부끄럽긴 했지만, 뮤지컬 영화니 당연한 이야기 아니겠는가.

“흠흠.”

애국가를 끝낸 이견우가 눈을 떴다.

하지만 실망한 표정을 지었을 거라고 생각한 것과 달리 제법 나쁘지 않은 반응이었다.

특히나 선우주는 반짝반짝 웃고 있었다.

“말씀하신 대로 노래를 부르긴 했습니다만….”

“네. 잘 들었어요.”

김보라 감독이 웃으며 말했다.

“워낙 목소리가 좋으셔서 보컬 트레이닝만 받으셔도 될 거 같네요.”

“예…. 안 그래도 그럴 생각이었습니다.”

국민학교 시절 동요대회에서 탈락한 이후로 노래에 자신감을 잃었던 배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부끄럽긴 하지만 배역을 위해서 해야 하는 일이니까.

그는 이 배역을 꼭 따내고 싶었다.

특별한 이유는 아니었다. 대본이 좋았고, 무엇보다 그의 눈에 무언가 보였기 때문이었다.

‘이 영화에는 뭔가가 있어.’

톱스타들이 지니고 있는 특유의 직감이었다.

톱스타는 단순히 연기만 잘한다고 해서 이 자리에 오를 수 있는 게 아니다.

자신에게 가장 도움이 될 만한 작품을 보는 눈. 그것이 배우가 지녀야 하는 덕목이다.

그런 눈으로 보았을 때 이라는 영화에는 뭔가가 있었다.

“일단….”

김보라 감독이 그에게 말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견우 씨.”

“…저도 잘 부탁드립니다.”

계약서에 도장을 찍은 것은 아니지만 배역을 따냈다는 것을 느꼈다.

단순히 인기 배우라서가 아니라 그의 연기력으로.

한동안 영화에 대해서 이야기와 스케줄 조율에 대한 이야기를 주고받은 후.

“그리고….”

김보라 감독이 말을 이으려고 할 때.

우주가 그녀의 귀에다 대고 뭐라고 속닥속닥했다. 그 말에 ‘오’ 하면서 고개를 끄덕이는 감독.

‘뭐지.’

이견우가 왠지 모를 불길함을 느낄 때였다.

김보라 감독이 생긋 웃었다.

“그리고 우주 씨가 보컬 트레이닝을 해 주시겠다는데 어떠신가요?”

“어…….”

독사과 등장.

달콤해 보이지만 먹어서는 안 되는 거였다.

“…우주 씨도 워낙에 바쁘시니까.”

“저 시간 여유 있어요. 선배님.”

“그…….”

“전문가에게 보컬 트레이닝도 당연히 받으셔야겠지만, 저에게 별도로 따로 코치를 받는 건 어떠신가요? 솔직히 저보다 아빠의 표정과 목소리를 더 잘 알고 있는 사람은 없거든요.”

“…….”

“어떠신가요?”

너무나 맞는 말이었다.

같이 있기만 해도 기가 빨리는 인물을 피하기 위해 이런저런 말들이 떠올랐지만, 결국 상대의 말에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 감사히 받겠습니다.”

“네. 저도 잘 부탁드릴게요.”

주연 배역의 가족이 직접 봐주는 트레이닝.

누구든 박수 치고 반길 만큼 좋은 조건이다.

‘……그런데 왜 이렇게 불길하지?’

마치 거대한 끈끈이주걱에 휘감긴 기분.

반짝이는 선우주의 맑은 눈망울에 이견우는 알 수 없는 불길함을 느꼈다.

* * *

이견우 선배의 오디션이 끝난 후.

방금 전 오디션의 여파가 대단했는지 다들 어깨가 들썩였다.

“진짜 선명주 님이 걸어들어온 줄 알았어요.”

“한국에서 탑으로 불리는 이유가 있네요. 우주 씨가 진짜 섭외를 잘했네요. 와…….”

가장 고민이 컸던 주연 배우가 낙점되어서 그런지 다들 표정이 밝다.

이제 자잘한 배역들에 대한 섭외나 오디션에 대한 회의가 이어지려고 하는 가운데.

“참.”

조규환 이사님이 내게 말했다.

“우주야. 아버님 배역 오디션 말이야. 꼭 한 번 오디션이라도 봐 보고 싶다고 한 배우가 있었거든.”

“네.”

“한 번 볼래?”

“음…….”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확정한 상황이긴 한데 그래도 괜찮다면요.”

“그럼 들어오라고 할게. 얘가 그래도 하고 싶다고 하도 성화를 부려서…….”

“얘요?”

이윽고 문이 열린 순간.

미남이 등장하면서 다들 웃음을 터뜨렸다.

분명 잘생겼다.

어딜 가든 천상계의 미모라 찬양 받을 만큼 잘생겼고, 신체의 비율도 감탄이 나올 만큼 좋다.

거기에 아까 이견우 선배님처럼 아빠의 패션을 따라 입었다.

하지만….

“안녕하세요. 왕지호입니다.”

그 한마디에 몰입이 깨진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리고, 나는 관자놀이를 주무를 뿐이었다.

초롱초롱.

반짝이는 눈망울로 나를 바라보는 막내에게 내가 말했다.

“그래요. 어디 한번 해 보세요.”

“네.”

굳게 고개를 끄덕이던 지호.

이윽고 지호가 날 아련하게 쳐다보며 연기했다.

“아들….”

“나가.”

현장의 사람들이 박장대소하며 뒤집어지는 가운데, 나가라는 내 말에 지호가 뒷걸음질 치며 슬픈 미소를 지었다.

“아들…….”

“야!”

오디션 현장에 큰 웃음이 터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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