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877화
“흐하하하하!”
우리 막둥이가 보여 준 선명주 쇼는 몹시 반응이 좋았다.
김보라 감독이 눈물을 닦으며 웃고, 캐스팅 디렉터는 아예 뒤집어져서 웃음을 터뜨리고 있다.
그저 나만 짜게 식은 얼굴로 있을 뿐.
“……진짜.”
문고리를 잡고 반쯤 나가는 척을 하던 막내가 헤헤 웃었다.
자신감 넘치는 표정이 얄밉다.
“우주 형도 아닌 척하고 있지만 입꼬리 씰룩씰룩하고 있는 거 제가 다 봤어요.”
“한심해하는 웃음도 웃음이긴 하지.”
“에이. 아닌 거 다 아는데.”
지호가 확신하는 표정으로 말했다.
“방금 귀엽다고 생각했죠?”
전혀 그런 적 없다.
지호가 신난 앵무새처럼 내레이션을 했다.
“영화라는 낯선 프로젝트의 출발을 앞두고 긴장한 선우주에게 기적처럼 찾아온 왕지호라는 휴식! 형을 위해 재롱을 준비해 온 막냇동생을 바라보는 그의 눈은 따스해져만 가는데…….”
어처구니가 없어서 웃음이 나왔다.
하지만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었다.
중요한 프로젝트 때문에 바짝 날이 서 있던 제작진과 나의 긴장이 조금 풀어졌으니까.
내가 웃으며 물었다.
“그래서 우리 웃겨 주려고 온 거야? 의상까지 갖추고?”
“아뇨.”
지호가 당차게 이야기했다.
“저 오디션 보러 왔는데요. 진짜로.”
“합격자가 정해졌다는 건 알고 있지?”
“네.”
지호가 문을 가리키며 말했다.
“아까 이견우 선배님이랑 만났어요. 매니저 분이랑 하이파이브 하고 계시던데요.”
“그럼 합격자가 있는데도 온 이유는?”
“보여 주고 싶어서요. 제 연기를.”
너무나 당연하지 않느냐는 표정이었다.
지호의 표정에는 도전 정신이 가득했다.
“도전하고 까이는 거랑 도전도 안 해서 아무 일도 없는 건 완전히 다른 거잖아요. 이미 합격자가 있다고 해도 상관없어요. 제 연기를 심사위원 분들께 한 번이라도 보여 드리고 싶습니다.”
“호오….”
“물론 이견우 선배님과 비교하면 계란으로 바위치기라는 걸 알아요. 하지만….”
진지하게 말하던 막내가 주먹을 꼭 쥐었다.
“하지만 저는 강한 계란이거든요!”
“…….”
“솔직히 제가 타조알 정도는 되지 않을까요?”
그런 지호의 말에 제작진이 웃음을 터뜨렸다.
캐스팅 디렉터 존 덕규 최 씨가 ‘타조가 뭐야?’ 하는 말에 김보라 감독이 ‘Ostrich’ 라고 하자 덕규 씨가 웃음을 터뜨렸다.
아무튼 방금의 패기 있는 발언 때문인지 제작진이 지호를 바라보는 눈에 호감이 가득했다.
김보라 감독이 웃으며 말했다.
“나는 이렇게 당당한 배우들이 너무 좋더라. 그래요. 지호 씨가 연기를 보여 주고 싶다는 거죠?”
“네.”
“한번 보자고요. 그러면.”
처음에는 고려 대상조차 아니었던 표정이었지만 지금은 지호를 바라보는 눈빛들이 조금 달라졌다.
어떤지 한번 지켜보자 하는 눈으로.
스스로 기회를 창출하는 막내의 모습에 내가 대견한 표정을 짓고 있을 때.
“자.”
김보라 감독이 대본을 펼치며 말했다.
“그럼 연기를 볼까요? 특별하게 준비해 온 게 있나요?”
“음. 보여 드리고 싶은 부분이 있습니다.”
막내가 말했다.
“선명주 님이 어린 시절에 미국으로 유학을 갔던 때의 장면이요. 뉴욕으로 재즈를 배우러 왔을 때 있었던 그 장면을 보여 드리고 싶습니다. 페이지 37 하단에 있는 장면이요.”
“페이지 37….”
종이 넘기는 소리들이 사각사각한다.
김보라 감독이 볼펜으로 체크 표시를 하고는 고개를 들었다.
“영어 대사네요. 제가 윈스턴 로스 님의 대사를 할 테니 지호 씨가 선명주 님의 대사를 해 주세요.”
“네.”
“잠시 1분 정도 시간 드릴게요. 연기 준비하세요.”
지호가 눈을 살짝 감는다.
그동안 나는 대본의 씬을 바라보았다.
페이지 37에 있는 장면은 아빠가 어린 시절에 잠시 미국 유학을 갔을 때 벌어졌던 일이다.
-미국으로 오거라.
재즈계의 전설로 불리는 윈스턴 로스는 우연히 한국 방문을 했다가 천재적인 재능의 소년을 발견한다.
그리고 긴 설득 끝에 미국으로 데려온다.
하지만 천재적인 재능과 달리 딱히 음악에 대해 의욕이 없었던 어린 시절의 아빠.
미국 생활은 아빠에게 고된 일이었다.
로스 집안의 아이들이 친절하게 대해 주긴 했지만 낯선 언어와 낯선 인종들로 가득한 세계. 아빠가 인터뷰에서 ‘나는 화성에 온 금성인이었다’라고 밝혔을 만큼 외로웠다고 밝힌 시기였다.
그 시기에 아빠는 학교에서 한 친구를 만났다.
-뭐. 만나서 반갑다. 꼬맹이. 나는 스티브 맥퀸이야. 네가 피아노를 잘 친다면서?
마찬가지로 피아노에 놀라운 재능을 가지고 있던 친구였다.
하지만 아빠만큼은 아니었다.
-젠장. 너 같은 재능을 가지고 있다면 연습을 덜해도 될 텐데.
-명주. 넌 문제가 뭐야? 그런 재능을 가지고도 왜 음악에 아무런 흥미가 없는 거지?
-하느님도 무심하시지. 왜 이런 무관심한 놈에게 이런 재능을…….
한쪽이 열렬하게 음악적인 이야기를 하고, 다른 한쪽은 무심하게 적당히 맞장구를 쳐주던 관계.
그 관계는 스티브 맥퀸이 음악을 포기하면서 바뀐다.
자신이 더 이상 음악을 좋아하는지 모르겠다면서 포기하겠다고 하는 친구의 모습. 처음에는 너 알아서 하라고 했지만, 피아노실에서 쓸쓸히 앉아 있던 어린 시절의 아빠는 무언가 생각에 잠긴다.
그리고 윈스턴 로스를 찾는다.
그것이 바로 지호가 연기할 장면이었다.
「음…….」
김보라 감독이 윈스턴 로스의 대사를 읊었다.
색소폰 연주를 하고 있던 윈스턴 로스가 등 뒤의 인기척을 느끼는 장면.
「오늘은 또 무슨 문제를 일으킨 거냐. 망할 녀석.」
「…….」
「됐다. 나도 할 만큼 했어. 네 마음대로 해라. 네가 한국으로 돌아가든 말든 그건 이제 내 알 바가 아니니.」
중후한 흑인 남성의 목소리 대신 젊은 미국인 여성의 목소리.
몰입이 쉽지 않은 환경인데도 지호의 눈빛은 벌써부터 씬에 몰입해 있었다.
「…….」
잠시 침묵을 지킨 어린 시절의 선명주.
자신감 넘치는 태양과 같았던 이견우 선배의 연기와 지호의 연기는 조금 달랐다.
아직은 불안정하게… 별이 될지 무엇이 될지 알 수 없는 시기.
반항과 불안함, 자신감 등이 눈빛 하나에 담겨 있었다.
정말 아빠가 저 시기에 저런 느낌이지 않았을까 싶은 느낌.
「한 가지 묻고 싶은 게 있습니다.」
「뭔가.」
어린 선명주의 질문이 날아든다.
「음악으로 사람의 마음을 바꿀 수 있습니까?」
「…….」
「고작 음의 조합 따위로 사람의 마음을 바꿀 수 있는지요.」
과거의 아빠가 음악에 관심 없던 이유는 바로 무의미함.
「정치인이 된다거나 유명세를 떨치는 사업가가 된다면 세상을 바꿔 나갈 수도 있을 겁니다. 조금 노력한다면 어린 고아에게도 좋은 세상을 만들어 줄 수도 있겠죠.」
「그래서?」
「음악으로도 과연 그런 게 가능한 건지 궁금한 겁니다.」
성숙하면서도 어린 시절의 치기가 가득한 표정.
캐스팅 디렉터가 감탄하는 동안 김보라 감독이 윈스턴 로스의 대사를 읊었다.
‘그가 몸을 돌린다’라고 되어 있는 지문.
「글쎄.」
음악인이 답한다.
「답변하기 어려운 질문이군.」
「그렇습니까.」
「정말 궁금하다면 한 번 실험해 보는 게 어떠냐? 음악으로 사람의 마음을 바꾸는 게 가능한지.」
「…….」
그 말에 수많은 고민이 스쳐 간다.
그리고 여태까지 볼 수 없었던, 음악에 대한 진지한 눈빛이 처음으로 떠오른다.
「부탁… 드리고 싶은 게 있습니다.」
‘윈스턴 로스의 눈썹이 올라간다’는 지문이 보인다.
「음악으로 친구의 마음을 바꿀 수 있는 방법을 알려 주세요.」
「…….」
흑인 뮤지션의 웃음으로 끝나는 장면.
해당 씬이 끝나고 지호가 다시 눈을 감았다가 원래대로 돌아오면서 박수가 흘러나왔다.
“와아아…….”
연기를 하는 동안 사라졌던 뉴블랙 막내의 얼굴이 다시 돌아온다.
순간 착시 현상처럼 어린 선명주를 본 것 같다는 느낌에 모두가 묘한 기분을 느꼈다.
조규환 이사님도 ‘어?’ 하면서 이건 예상 못했다는 표정이었다.
“어…….”
김보라 감독에게 지호가 활기차게 물었다.
“어떠신가요!”
“어… 원래는 멘트를 준비하고 있었거든요. 어떤 식으로 거절을 해야 지호 씨가 기분이 상하지 않을지요.”
그 말에 지호가 짓궂게 웃었다.
“그럼 지금은 어떠신가요?”
“현실적인 제약 요건만 아니었다면 지호 씨를 바로 캐스팅했을 것 같네요. 정말 아쉬워요.”
지호도 수긍한 얼굴로 씩 웃었다.
캐스팅 디렉터 존 덕규 최가 아깝다는 표정을 지었다.
“지호 씨의 체격만 아니었다면 청소년 역할로 바로 캐스팅했을 텐데… 지금 키 170 정도에 중학생과 고등학생 사이 나이대의 배우가 필요한 거거든요. 그런데 지호 씨가 정말 몸이 좋아서.”
그렇다.
지나치게 몸이 좋은 우리 막둥이었다.
키 180에 모델처럼 좋은 비율.
게다가 미국 진출 이후로는 몸을 좀 더 근육질로 만든 편이라 청소년기라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건장했다.
아쉬워하는 제작진의 표정에 지호의 눈이 즐겁게 반짝였다.
조규환 이사님이 내게 물었다.
“우주는 어땠니.”
“음….”
나의 감평을 기다리는 졸개를 바라보며 말했다.
“솔직히 좋았어요. 제 동생이라 몰입이 와장창 깨진 것만 아니었다면….”
“저 잘했죠?”
“…잘했어.”
얄미운 홍학 인형처럼 춤추는 우리 막내.
제작진의 칭찬에 히히 웃는 막내를 바라보곤 조 이사님에게 속삭였다.
“지호가 똑똑하게 준비했네요.”
“저래 보여도 지호가 연기 쪽에는 잔뼈가 굵거든. 물론 나도 이번에 전략을 보고 나도 좀 놀랐지만.”
장르물 <슬립>에서 ‘허 의경’으로 연기 데뷔를 한 이후로 연기 쪽에 경험을 제대로 쌓은 느낌이다.
오디션에서 여러 가지 복합적인 계산들이 보인다.
처음에 장난스럽게 ‘아들!’ 하면서 했던 부분들에도 여러 포석이 보인다고 할까.
일단 심사위원들의 기대치를 낮추면서 이후에 있을 자신의 연기에 임팩트를 더할 수 있고.
-이번에 뉴블랙의 지호를 봤는데 연기 정말 잘하더라.
일단 할리우드에서 실무진으로 있는 사람들에게 제대로 눈도장을 찍는 셈이었다.
여기 있는 덕규 씨만 해도 할리우드 거장들에게 사랑 받는 캐스팅 디렉터니까.
어떤 결과가 있든 간에 ‘배우 왕지호’에게는 최상의 결과만이 가득한 오디션이었다.
“……진짜 영리하게 전략을 짰네요. 지호가.”
“지호도 일 욕심이 많으니까.”
그 말을 하던 조 이사님의 눈이 부드럽게 휘어졌다.
“너희도 보면 참 닮았다니까.”
“저랑요?”
“원하는 건 무엇이든 얻어 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 말이야. 그걸 얻기 위해 전략을 짜는 것도 그렇고.”
“전자는 인정이긴 한데… 후자는 이번에 저도 처음 알았어요.”
“너 보면서 배웠나 보다.”
조 이사님의 말에 작게 웃었다.
그러고는 제작진들에게 시선을 돌렸다.
방금 전의 빼어난 연기 때문인지 오디션이 끝났음에도 아쉬운 표정을 짓는 제작진이었다.
하지만 결과는 어쩔 수 없었다.
“음…….”
김보라 감독님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지호 씨의 연기를 보고 흔들리긴 했지만 현실적인 조건들 때문에 캐스팅은 어려울 것 같아요.”
“네! 알고 있습니다.”
체격이나 나이대의 문제도 있지만 가장 큰 문제는 그런 게 아니었다.
“하필이면 그 시기에 선명주 님과 이명은 님의 풋풋한 러브 스토리가 있기 때문에…….”
내가 아빠 배역을 하지 못하는 것과 같은 이유였다.
한국이 가장 큰 시장이 될 영화에서 뉴블랙 지호가 맡은 선명주의 러브 스토리는….
생글생글 웃는 지호에게 김보라 감독님이 웃어 보였다.
“일단 연기 정말 잘 봤어요. 지호 씨. 다른 건 몰라도 이거 하나는 확실하게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네요. 오늘 저는 정말 좋은 배우를 알게 되었다고요.”
“감사합니다!”
지호가 정중하게 고개를 꾸벅 숙였다.
제작진들에게 인사를 하고는 내게도 ‘이따 봐요~’ 하고 손을 흔들며 방을 나섰다.
나가자마자 여기저기서 흥분한 소리들이 나왔다.
“리견우 씨에 이어서 또 좋은 배우네요.”
“와. 그런데 방금 몰입감이 대박이지 않았나요? 순간적으로 선명주 님이 보였던 것 같은데…….”
“한국이 배우풀이 원래 이렇게 좋은가?”
그런 이야기들을 저마다 두서없이 내놓는 가운데 내가 감독님에게 물었다.
“감독님은 어떠셨어요?”
“순간 흔들렸어요.”
그 말에 다들 동감하듯 웃음을 흘렸다.
“솔직히 말해서 지호 씨는 페널티를 안고 있는 거잖아요. 뉴블랙이라는 페널티를.”
“그렇죠.”
“그런데 연기가 그런 페널티를 뚫고 들어오네요.”
김보라 감독이 말했다.
“진짜 저 나이대에 보기 드문 배우거든요. 지호 씨가 한국 나이로 스물한 살이죠?”
“네.”
“와…….”
김보라 감독이 침을 튀기며 큰 목소리로 칭찬했다.
“순간적인 집중력이 진짜 어마어마하더라고요. 게다가 에너지가 얼마나 좋은지… 조연이라면 단점이 될 수 있지만, 주연으로서는 정말 최고의 자질이거든요.”
“거기에 상대 배우의 톤에 따라 조절을 하더라고요.”
조감독이 말했다.
“지호 씨 연기할 때 보니까 감독님 톤에 맞춰서 조금 연기 톤을 바꾸더라고요. 그 말은 상대의 연기를 보고 자신의 연기를 맞춰 간다는 거니까. 그게 진짜 저 나이대 배우들에게서 없는 자질이거든요.”
“그런가요?”
“네. 연기는 상호간의 호흡인데, 보통 어린 배우들은 자기 대사를 준비해서 거기에 온 신경을 집중하거든요. 상대의 대사가 끝나는 순간, 자기 대사를 하는 데만 신경을 쓰는 거예요.”
젊은 배우들에게 보기 힘든 자질까지 됐던 건가.
항상 연기 관련해서는 지호에게 조언이나 디렉션을 받는 터라 그게 당연한 줄로 알고 있었다.
왜 내가 시트콤을 찍을 때 선배들에게 연기 잘 배워 왔다는 말을 들었던 건지 잠시 이해가 가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지호에 대한 칭찬 릴레이가 끝난 후.
본격적으로 선명주의 아역과 청소년기 배역에 대해 이야기를 하려고 할 때였다.
“잠시만요.”
내가 손을 들고는 문 쪽을 바라보며 말했다.
“지호야.”
“?”
제작진들이 고개를 갸웃하는 동안 내가 문을 향해 크게 말했다.
“칭찬 다 들었으면 이제 가야지.”
“지호 씨, 이미 갔는…….”
제작진이 그런 말을 한 순간 바깥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곧이어 빼꼼 열리는 문.
제작진이 웃음을 터뜨렸다.
막내가 억울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저 진짜 엿들은 거 아니에요. 모자 두고 가서 그래요.”
막내가 새초롬한 표정을 지으며 바닥에 내려놓았던 야구 캡을 집어 들었다.
탁탁 털던 지호가 야구캡을 쓰고는 미소를 지었다.
반짝이는 눈이 내게 향했다.
“그럼 아빠 간다. 아들~”
“야!”
“우웅~”
입으로 쪽쪽 뽀뽀하는 시늉을 하는 막내의 모습에 내가 눈을 지그시 감았다.
제작진이 더 큰 웃음을 터뜨렸다.
* * *
한참 동안 웃음이 흘러나온 후.
제작진과 나는 나머지 배역들에 대한 캐스팅에 대해 토론했다.
사실 초반부의 한국 장면 등을 빼면 대부분이 미국 촬영이기에 한국 출연진의 비율은 10퍼센트 정도.
그런 배역들에 대해 지원한 배우들의 프로필을 살피며 오디션 일정을 조율했다.
“일단 오디션 일정은 넉넉하게 잡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조규환 이사님이 말했다.
“일단 이견우 씨가 들어온 상황이잖습니까. 이전과는 상황이 달라질 겁니다. 우리 영화에 지원하려는 배우들이 확 늘어날 거예요.”
대본 보는 눈 좋기로 소문 난 이견우 선배의 차기작.
그 때문에 지원자가 더 늘어날 것이라는 말에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일정을 조율하는 한편.
내가 중요한 용건을 하나 꺼냈다.
“그리고 말씀드리고 싶은 게 하나 있는데요. 이 배역도 진짜 중요할 거 같거든요.”
“음….”
“제가 특별히 생각한 배우 분들께 제안을 보내도 될까요?”
“좋죠.”
흔쾌히 승낙한 제작진이 내게 물었다.
“우주 씨가 어떤 배우 분들을 생각하고 있는데요?”
“이분들이요. 일단 1순위로 꼽는 분에게 먼저 연락을 하고… 거절하시면 그다음으로…….”
내가 핸드폰을 들어서 배우들의 사진을 하나하나 보여 주었다.
그나저나.
나는 분명 진지하게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왜 조 이사님과 제작진들이 저렇게 웃음을 참는 이유를 잘 모르겠다.
* * *
80년대와 90년대에 대표적으로 미녀로 꼽혔던 배우들.
시대를 풍미했다고 평해도 될 만큼 아리따운 외모로 유명했던 배우들은 현재 연예계에서 중견 배우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중에서 과거 한국 최고의 미인으로 유명했던 중견 배우 오현숙에게 대본이 날아들어 왔다.
“선배님, 영화 카메오 출연으로 제안이 왔습니다.”
“카메오?”
“이번에 이견우 씨가 찍는다고 하는 선명주 영화 있잖아요.”
“아, 그거.”
“네. 우주 씨가 선배님께 특별 배역으로 카메오 출연을 부탁드리고 싶다고 해서요.”
오현숙이 흥미를 보였다.
“그래서 무슨 배역이래. 자기야?”
“여기 적혀 있습니다.”
중견 배우의 눈에 배역명이 보였다.
[특별출연 : 김덕순 역]
“호오….”
중견 배우가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턱을 매만졌다.
그러는 한편.
아리따웠던 젊은 시절이 연예인 급으로 미화될 거란 사실을 모르는 당사자는 하늘을 바라보며 어딘가 불길함을 느꼈다.
“덕순 언니. 왜 그러슈?”
“어디서 옘병 같은 것이 다가오는 느낌이 드는디…….”
“큰 옘병이여?”
“아니. 작은 옘병이긴 한디… 거시기한 것이 느낌이 싸하네.”
왠지 모를 불길함을 느끼고 있는 김덕순 여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