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908화
“허어어어…….”
“흐어어….”
수플레들의 눈이 별처럼 반짝이고 있다.
마치 황홀한 경험을 한 것처럼 몽롱한 눈동자.
내가 백미러를 보며 물었다.
“맛있었죠?”
“네….”
“진짜 여태까지 먹어 본 닭도리탕 중에 최고였어요.”
비주 팀과 합류해 먹은 점심 식사는 바로 닭도리탕이었다.
가마솥 같은 데서 팔팔 끓여서 나오는 곳인데, 워낙 맛집으로 유명한 곳답게 팬들 반응이 좋았다.
“살도 엄청 보들보들하고… 저 껍질 진짜 안 좋아하는데, 껍질까지 맛있더라고요.”
“국물이 진짜 달착지근하고 매콤한 것이…….”
“인생 닭도리탕이었어요.”
행복해하는 수플레들을 바라보며 웃고 있을 때였다.
또옥-
차량 전면창에 빗방울이 떨어졌다.
“어……?”
처음에는 한 방울이 나님 등장! 하더니 점점 빗방울들이 전면창에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후두두둑-
비가 세차게 내리기 시작했다.
방금 전까지 따스했던 햇빛이 사라지고, 차량에 서늘한 기운이 감돌면서 모두 당황했다.
“아니, 비가…….”
와이퍼를 작동시키면서 팬들에게 물었다.
“혹시 오늘 일기예보 봐 주실 수 있나요?”
“네.”
“분명히 비가 안 온다고 했는데…….”
사이드 미러로 뒤따라오고 있는 비주의 차량과 제작진 차량을 확인하고는 운전에 집중할 때.
옆자리에서 핸드폰을 보던 복수전공 님이 말했다.
“예보에 비가 없는데요?”
“그죠?”
곧이어 제작진으로부터 바로 연락이 들어왔다.
일단 촬영장에서 만나자는 이야기에 곧장 그곳으로 향했다.
아니나 다를까.
“…난리가 났네요.”
캠핑장에 설치된 세트에서 제작진들이 다급히 방수포를 뒤집어씌우고 천막을 세우고 있었다.
내가 팬들에게 우산을 건넸다.
“일단 우산 하나씩 챙기세요.”
“네.”
“우산은 가져가시면 돼요. 리혁이가 준비한 선물이라.”
“와, 이거 완전 희귀한 거…….”
예전에 도깨비 음원을 냈을 때, 국립중앙박물관과 함께 콜라보했던 한국식 문양 우산이었다.
알록달록한 우산을 받아 든 수플레들이 좋아하는 가운데.
일단 차에서 내려 구재영 피디님에게 달려갔다.
“피디님!”
“어, 우주야.”
임시로 설치된 천막 아래 스무 명가량의 팬들이 모여 있었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팬들에게 반갑게 인사를 하고는 피디님과 구석으로 걸어갔다.
다른 동생들도 하나둘 합류했다.
지호가 분위기를 보며 말했다.
“분위기 보니까 뭔가 대책회의할 삘인데, 저는 그런 거 잘 모르니까 팬들 분위기 띄우고 있을게요.”
“응응.”
지호가 중현이에게 손짓했다.
“중현이 형, 형도 같이 가요.”
“기다리고 있었지.”
두 바보가 푸근하게 웃으며 팬들에게 ‘안뇽!’ 하고 뛰어가는 동안.
뉴니버스의 공동연출인 오태준 피디가 스탭들을 진두지휘하며 바쁘게 상황을 수습하고 있었다.
비주가 비가 내리는 하늘을 바라보며 멍한 표정을 지었다.
“엄청 맑았잖아요. 그런데 한 시간도 안 돼서…….”
리혁이도 비슷한 표정이었다.
“나 기상청 미튜브 구독 중이잖아요. 새벽에 일어나서 예보도 보고 왔거든요. 분명히 다 확인을 했는데…….”
갑작스러운 비에 모두 당황스러운 기분이었다.
특히나 당황스러운 건.
“중현이가 어제 기우제까지 지냈는데 이럴 리가…….”
내가 그런 말을 할 때였다.
비주가 한숨을 쉬며 아련한 목소리로 말했다.
“형, 그게요….”
“응?”
“쟤 어제 대형 운전 연습하는 거 집중하다가 기우제 까먹었대요.”
“아.”
멀찍이서 팬들 앞에서 쑥스럽게 뒤통수를 긁적이는 중현이를 바라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수 있지.”
운전 연습해서 팬들 안전하게 데리고 왔으면 됐지. 뭐.
그런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오태준 피디와 다른 작가들도 우리의 모임에 합류했다.
리혁이가 물었다.
“일단 촬영은 가능한가요?”
“가능…은 할 것 같은데…….”
오태준 피디가 야구모자를 벗었다 썼다를 반복하며 말했다.
“애매해. 비가 잠깐 내리고 그치면 모를까, 분위기 봐서는 안 그칠 것 같고.”
야외 촬영을 염두에 두고 준비한 컨텐츠들이 많아 되도록 야외에서 하는 게 맞긴 하다.
하지만….
“실내 촬영할 만한 장소를 물색하는 게 좋을 거 같아요.”
내가 의견을 냈다.
“이대로 비가 오면 기온이 훅 떨어질 텐데, 그러면 저희뿐만 아니라 스탭 분들, 팬분들도 몸살이나 감기에 걸릴 우려도 있어서…….”
“그건 맞지.”
“이 정도 비가 내리는데 숲에서 촬영하는 건 조금 어려울 것 같아요.”
구재영 피디를 비롯해 다른 사람들도 동의했다.
문제 해결 방식에 대해 전반적인 공감대가 생겼으니 이제는 대안을 찾아야 할 시간.
“지도야.”
“여기 지도요.”
리혁이가 주변 지도를 펼쳐 들었다.
우리가 실내 촬영할 만한 장소를 물색하며 고민하고 있을 때, 베테랑 예능 제작진이 말했다.
“주세한 촬영하면서 이런 상황 많이 겪어 봤거든. 기껏 촬영 준비했는데 날씨 때문에 허사가 되는 경우가 많아서. 그래서 이번에도 대비책을 준비해 두긴 했어.”
제작진이 볼펜을 들어 지도에 포인트를 체크했다.
“일단 팬들 인원이 스무 명가량 되고, 스탭들 인원까지 고려해서 그 인원을 수용할 만한 공간들을 체크해 뒀거든.”
“학교 강당 아니면 마을 회관이네요.”
“응.”
“학교보다는 마을 회관이 좀 더 나을 거 같아요.”
중학교나 고등학교들은 지금 수업 중인 시간일 텐데.
미리부터 학교 측과 협의가 됐다면 모를까. 갑자기 방문해서 소란을 일으키는 것도 좀 아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비어 있는 마을 회관들이 있다면…….”
농촌살이를 해 본 적이 없어서 마을 회관이 얼마나 자주 쓰이는지는 모르겠지만 학교 강당보다는 나은 옵션 같다.
공간도 제법 크고.
PBS1에서 했던 <지금 내 고향은>에서 농촌이나 어촌을 방문할 때도 몇몇 마을 회관들이 엄청 크고 현대적이어서 놀란 적이 몇 번 있었다.
“일단 최대한 연락을 돌려보자.”
가장 좋은 후보군들부터 전화를 돌려보기로 했다.
오태준 피디가 야구모자를 푹 눌러쓰며 한숨을 쉬었다.
“지금부터가 제일 어렵지.”
“또 엄청 거절당하겠죠…?”
제작진들이 다리를 달달 떨며 핸드폰을 들고는 구석에서 통화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
“??”
하나같이 오묘한 표정으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오태준 피디와 작가들, 조연출들이 묘한 표정으로 말했다.
“일단 다섯 곳 정도 연락을 드려 봤거든요. 마을 회관이 크고 현대식으로 지어진 곳들이요.”
구재영 피디가 고개를 끄덕였다.
“응. 그런데?”
“그런데 이장님들이 다들 자기 마을 회관으로 오라고 하시던데요.”
“……?”
“처음에는 뭐라고 화내셨거든요. 방송국 양반들이 무슨 벼슬이냐… 갑자기 찾아온다고 하냐 그러시다가 ‘어느 프로냐?’ 하고 물어보셨거든요.”
조연출이 우리를 바라보며 말했다.
“뉴니버스라고 하면 모르니까 뉴블랙이 찍는 프로라고 했거든요. 그러니까 바로 광속으로 승낙을…….”
“…….”
“…….”
제작진이 멍한 표정을 짓는 모습에 우리가 물었다.
“흔한 일이 아닌가 봐요?”
“응…. 흔한 일이 아니지. 주세한 할 때도 보통 10곳 까이고 한 곳에서 오케이 하는 전개인데…….”
국민 예능이었던 주세한 때도 보기 힘든 현상이었다는 모양이다.
다섯 마을에서 서로 자기네 마을로 오라고 하는 상황.
제작진들이 허망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이게… 이렇게 쉬운 거였어?”
“뭐지.”
“우리가 여태까지 한 섭외는 뭐였던 거지…? 그냥 뉴블랙 이름 대면 끝나는 거였는데?”
비주가 웃으며 말했다.
“저희가 내 고향에 나왔던 것 때문에 그런가 봐요.”
“아! 그거네!”
우리도 신기함을 느꼈다.
<지금 내 고향은>에서 출연했던 게 이런 식으로 도움이 될 줄이야.
“자자.”
구재영 피디가 말했다.
“일단 회의부터 마무리 하자고.”
다들 머리를 맞대고 마을까지 가는 길이 어떤지, 어디에서 촬영을 해야 제일 좋을지 등을 살폈다.
그렇게 최적의 후보군을 선정한 후.
내가 제안했다.
“추가로 뭘 더 찍어야 할 거 같아요. 장소 섭외를 도와주신 만큼 저희가 비가 그치고 나서 특별 공연을 한다든가.”
제작진도 동의했다.
“분위기 띄울 만한 트로트 몇 곡을 준비해서 공연을 하고… 비주야. 마을 주민 분들한테 선물로 돌릴 만한 게 뭐가 있을까?”
“한 번 생각해 볼게요.”
“같이 생각해 보자. 그리고… 피디님.”
“음?”
“그 나머지 네 곳 마을 이장님과 이따 저희가 통화할 수 있을까요? 저희가 직접 말씀드리는 게 제일 좋을 것 같아서.”
뉴블랙이란 이름을 듣자마자 흔쾌히 장소를 제공하겠다고 하신 분들.
정말 감사하지만 다른 곳으로 가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우리가 직접 하는 게 제일 좋을 것 같았다.
예상대로 반응들이 몹시 좋았다.
응원한다, 아쉬운데 뭐 어떡하겠냐 하며 좋아하는 반응들을 들으며 깔끔하게 마무리를 지었다.
그러곤 팬들에게 달려갔다.
“여러분! 공지 사항이 하나 있어요!”
팬들에게 촬영 장소 변경에 대해 양해를 구했다.
수플레들도 날씨를 보고는 다들 납득했다.
구재영 피디가 우렁찬 목소리로 스탭들에게 말했다.
“자자, 이동합시다!”
빠르게 철수 준비를 마친 스탭들이 이동할 준비를 할 때.
내가 이마에 난 땀을 닦았다.
“휴우.”
내 곁에 온 구재영 피디가 손수건을 내밀었다.
“정신이 하나도 없지?”
“진짜… 하나도 없네요.”
게스트로 출연하는 예능이었다면 ‘제작진 분들이 회의 중이시구나’ 하며 멀찍이서 바라봤을 일이었다.
게스트가 감 내놔라 배 내놔라 하는 것도 웃기니까.
하지만 우리가 주도적으로 참여하는 예능이다 보니 대책 회의에도 참여하고, 정신이 하나도 없다.
“그래도 나쁘지 않아.”
“네?”
구재영 피디의 말에 내가 물었다.
“뭐가요?”
“예상외의 변수 때문에 상황이 다르게 흘러가는 거 말이야.”
“아.”
“가끔씩 더 상황을 매력적으로 만들어 주거든. 시청자들에게 예상치 못한 재미도 같이 줄 수 있고.”
그런 말을 하며 구재영 피디가 카메라를 챙겼다.
음?
언제부터 저기 카메라가 있었던 거지?
우리가 진지하게 회의하는 장면을 찍었는지, 구재영 피디가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내 예상이지만… 느낌이 좋아.”
뼛속까지 예능 피디인 사람이 반짝이는 미소를 지었다.
* * *
근처에 있는 마을 회관.
“크다.”
“꽤 크네요.”
수플레들이 눈을 깜빡거렸다.
그들이 상상한 마을 회관과는 다른 느낌이었다.
‘마을 회관이 이렇게 큰 거였어?’
태극기가 펄럭이고 있는 건물.
2층만 해도 60평대가 될 법한 사이즈였다.
‘와.’
차량에서 내린 수플레들이 멀찍이 이장님에게 애교를 부리고 있는 우주를 바라보았다.
지호와 중현이 그들과 수다를 떨면서 말한 게 떠올랐다.
-지금 우주 형이 피디님이랑 같이 해결책을 찾고 있을 거예요.
정말로 해결책을 만들어 낸 우주였다.
수플레들이 속삭였다.
“조금 멋있긴 했어요.”
“인정.”
무대에서만 멋있지, 무대 아래에서는 허당으로 유명한 우주 아니던가.
그런 우주가 제작진과 테이블에 모여서 진지하게 회의를 하는 모습이 잠시 멋있었다.
촬영만 허락됐다면 셔츠 팔을 걷어붙이고 테이블 위의 지도를 바라보는 그 장면을 찍고 싶었을 정도.
-저희 형 멋있죠? 본방송으로 캡처하시면 됩니다. 여러분.
중현의 말을 떠올리며 팬들이 웃었다.
아무튼.
‘좋다.’
비가 내리던 숲의 캠핑장.
여기저기 흙탕물 웅덩이가 생기면서 야외 촬영을 하기에는 조금 무리수가 아닌가 싶었는데.
다행히 좋은 장소를 물색할 수 있었다.
“다들 2층에 모여 주세요!”
1층에서 신발을 벗은 수플레들이 계단을 올라갔다.
신발이 어찌나 많은지 뒤에 들어온 사람들은 신발을 벗은 채로, 앞서 놓인 신발들을 밟고 들어가야 할 정도였다.
“오. 넓다.”
촬영 카메라와 조명들, 복잡한 전선들이 설치된 곳에서 수플레들이 제작진들 앞에 자리를 잡았다.
뉴블랙 멤버들이 웃으며 말했다.
“저희 일단 앉을까요?”
“네!”
뜨끈한 온돌 바닥에 앉아서 마을 회관 2층에 앉은 수플레들과 뉴블랙이 서로를 바라보았다.
“…….”
“…….”
잠깐의 침묵.
그리고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냥 바라보고 있는데 웃음이 나오는 그런 상황이었다.
“네….”
우주가 잠긴 목소리를 으흐흠 하고는 말했다.
“네, 정말… 예상치 못한 상황의 연속이었죠?”
“네!”
“정말 여러분이랑 하려고 준비한 것들이 많은데… 지금 꽤 많은 게 변경이 될 거 같아요. 큰 틀은 유지하지만 세부적인 내용들이 좀 많이 달라질 거 같고.”
그때 지호가 물었다.
“저희 현수막은 없나요? 환영하는 현수막?”
“그거 사이즈가 너무 커서…….”
젖은 데다가 사이즈도 너무 커서 반입 못했다는 말에 뉴블랙 멤버들이 제작진에게 A4 용지와 마커를 받았다.
거기에 각자 글자와 이모티콘을 썼다.
“자. 현수막입니다. 여러분.”
각각 ‘수’, ‘플’ 등이 쓰여진 A4 용지 스카치테이프로 벽에 붙였다.
[♥수플레 환영♥]
조잡한 A4 용지 현수막.
붙이고 나서 순간 현타가 온 듯한 뉴블랙 멤버들의 표정에 그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박수를 쳤다.
‘내 가수 기는 내가 살린다!’
스무 명이 내는 괴성과 박수.
“끼야아아-!”
“멋있다!”
“와, A4 용지로 하니까 느낌이 사네-.”
뉴블랙 멤버들이 부끄러운 표정으로 얼굴을 숨겼다.
리혁이 손부채질을 하는 동안 우주가 말했다.
“진짜… 너무 억울한 게 여러분을 위해 준비한 게 정말 많거든요. 정말 호화스러운 대접을 해 드리려고 했는데…….”
“괜찮아요!”
“진짜 괜찮음.”
오히려 지금의 분위기가 더 좋은 것도 있었다.
마을회관 2층 바닥에 쪼그려 앉아서 내 가수들을 코앞에서 보는 것도 흔치 않은 기회였다.
아직도 현실감이 없었다.
콘서트에서 거의 수백 미터 거리에서 보던 사람이 눈앞에 떡하니 앉아 있었으니까.
“그래도 일단 준비한 건 다 해야 직성이 풀리는 게 저희의 성격이기 때문에… 준비한 건 다 하겠습니다.”
“와아아아아!”
“오늘 우리 재미있게 놀아요. 진짜.”
“와아아아아아악!”
프로 호응러인 수플레들의 호응에 뉴블랙 멤버들이 자리에 일어났다.
그러면서 비주가 공간을 둘러보았다.
“어어…….”
머릿속으로 뭔가를 계산하고는 멤버들에게 속닥속닥한다.
중현이 설명했다.
“저희가 지금부터 <백야> 무대를 보여 드리려고 하거든요.”
“허억!”
“근데 다들 아시겠지만 저희 안무 특징이 좀 공간을 넓게 쓰는 거잖아요.”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뉴블랙 안무의 특징 중 하나는 바로 동선이 쉴 새 없이 변한다는 점이었다.
정면 카메라로 볼 때는 체감이 잘 안 되지만, 공연장에서 보면 ‘저 정도 거리였어?’ 하며 놀랄 만큼 큰 대형.
“음….”
뉴블랙 멤버들이 거리 조절을 하면서 시범으로 안무를 추는 모습에 환호가 흘러나왔다.
‘저게 저 자리에서 바로 수정이 되는구나.’
정말 무대 경험이 많다는 게 느껴졌다.
대학 축제, 행사, 콘서트, 음악 방송, 라디오 등등.
그런 무대 경험에서 우러나온 것인지 짧은 시간 만에 빠르게 수정을 마치는 뉴블랙이었다.
다들 자세를 잡은 가운데.
“여러분.”
구재영 피디가 타이밍 좋게 끼어들었다.
“여러분은 지금 세계적인 슈퍼스타 뉴블랙의 공연을 마을 회관 2층에서 보고 계십니다.”
다들 웃음을 터뜨렸다.
곧이어 시작되는 뉴블랙의 무대.
별도 무대 조명도 없고, 그저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뿐이지만 왠지 모르게 신났다.
무엇보다 거리가 진짜 가까웠다.
비주가 나른하고 섹시한 표정을 지으며 마이크를 드는 모습에 팬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와아아아아아-!”
아무 효과 없는 무대.
뒤에 걸려 있는 농촌 사진 액자들.
뭔가 분위기만 보면 이제 갓 데뷔한 신인 팬사인회장에서 볼 법한 느낌의 무대였다.
그런데 이제 그 무대 위의 가수가….
-그래미 그룹상 노미네이트.
-국민 아이돌.
-올해의 가수상을 비롯한 대상 다수 수상.
최근의 초동 200만 장까지 포함해 어마어마한 커리어를 가진 가수라는 점에 모두 웃음을 터뜨리고 있었다.
수플레들을 환영하듯 열정적으로 <백야>의 무대를 선보이는 이들.
팬들의 눈동자가 반짝였다.
뉴블랙의 무대를 이 정도 거리에서 볼 수 있는 건 정말 일생일대의 기회였으니까.
‘미쳤다.’
‘로또 될 운을 여기에 다 썼네…. 조상님 감사합니다.’
‘와.’
그러면서 수플레들도 흥에 겨워 손에 든 달봉이를 흔들기 시작했다.
“와아아아아!”
정말이지 환상적인 오프닝이었다.
* * *
같은 시각.
왈왈왈왈-!
왈왈!
왈왈왈!
동네 개들이 짖는 소리에 마을 주민들이 마루로 나왔다.
“왜? 왜 짖어?”
“뭐가 있길래 또 그래.”
“하여간 비 오는 날에도 지랄이여.”
비가 오면 보통 개집 안에서 시무룩한 얼굴로 뒹굴거리는 것이 강아지들 아니던가.
갑자기 단체로 미쳐서 짖는 모습에 마을 주민들이 ‘뭐길래…’ 할 때였다.
“음?”
그들의 시선에 멀찍이 마을 회관이 보였다.
그런데….
‘옴마. 저게 뭐여……?’
지상에 강림한 어마어마한 빛.
마을 회관의 2층이 등대처럼 화려하게 빛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