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972화
<미션 싱어>의 경연이 끝난 후.
대기실 복도에서는 탈락자들과 잔류자들이 인사를 나누는 중이었다.
“체리 씨도 그동안 고생 많으셨어요.”
“조금 아쉽네요. 막판에 패자 부활전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는데…….”
“재찬 씨! 고생 많았어요.”
가면을 쓴 잔류자들과 맨 얼굴로 아쉬움을 드러내는 탈락자들의 대화.
장기 잔류자 중 하나가 탈락한 만큼 대기실 복도는 평소보다 붐비고 있었다.
그리고 오늘따라 유독 붐비는 이유는 바로 무엇보다 누군가의 존재감 때문이기도 했다.
“리혁 씨.”
“저 진짜 팬이에요. 리혁 씨!”
“안녕하세요! 저 삭스의 체리예요. 샛별이 아시죠? 샛별이랑 제가 절친인데…….”
해바라기 가면 앞으로 우르르 몰려드는 사람들.
직전 가왕이자 이제는 가면을 벗고 맨얼굴을 드러낸 발라드 가수 유재찬이 리혁에게 말했다.
“정말 좋은 승부였습니다, 선배님.”
“아니에요. 저야말로….”
지적인 외모의 발라드 가수가 안경을 고쳐 썼다.
“리혁 선배님이 기억하실지는 모르겠지만, 저 작년 시상식 때 인사드린 적이…….”
“아, 예. 기억해요.”
‘나를 기억하고 있었다!’
그런 선배의 말에 감격하는 유재찬이었다.
나이는 자신보다 어리지만, 왠지 모르게 절대 어리게 보이지 않는 선배 가수였다.
뭔가 엄청 거대한 존재감.
지금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느끼는 감정이었다.
‘뭔가… 뭔가 강하다.’
‘범상치 않아.’
오늘 무대를 보여 주기 전에는 어마어마한 인기 때문에 범접하지 못할 스타와 같았다면….
지금은 천재적인 보컬을 바라보는 기분이었다.
인기가 많으니 조심해야겠다보다는 보컬리스트로서의 존경심에 가까운 감정이었다.
“진짜 장난 아니다.”
멀찍이서 리혁을 구경하던 몇몇 참가자들이 속삭였다.
“나 스물하나 때는 나 뭐 했지? 그냥 술만 퍼마셨던 거 같은데.”
“리혁 님 스물한 살이었어…?”
“저 나이에 저게 가능한 거였나? 난 진짜 뭐였지?”
경외심 가득한 표정들.
무엇보다 성장 속도가 경이로웠다.
-그때는 그런 실력이 아니었는데?
데뷔 초만 해도 ‘와 쟤는 아이돌이 가수처럼 부르네~’ 하며 적당히 칭찬을 들었던 가수가 4년 만에 가왕급으로 진화해 있었다.
그렇다면 여기서 몇 년이 더 지난다면…?
“…….”
“…….”
그런 생각이 모두의 머릿속을 스치면서 몸서리를 쳤다.
상상하기조차 무서웠다.
물론 모든 가수가 성장만을 거듭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사람마다 한계치라는 게 있는 법이니까.
하지만 오늘 리혁의 무대를 본 가수들은 모두 느끼고 있었다.
-저게 끝이 아니다.
리혁의 실력이 아직 한계치에 다다른 것이 아니라는 걸 제대로 느끼고 있는 가수들이었다.
아직 끝이 아니다.
분명 느낌이 그랬다.
‘저래서 차우현 님이…….’
모든 발라드 가수들이 지향점으로 꼽는 차우현이 남긴 ‘내 후계자는 서리혁’이란 코멘트는 가수들 사이에서 꽤 큰 이슈였다.
당시 술자리에서 이런 말들이 공공연히 돌 정도.
-이거 봤어? 차우현 님이 자기 후계자가 서리혁이래요. 20대 중에 걔보다 노래 잘하는 애 없다고.
-에엥?
-립서비스지. 뭘 또 크게 의미를 둬. 둘이 친하지 않나? 뉴니버스에서도 서리혁 절친으로 나왔더만. 그 양반도 이제 슈스랑 친하게 지내려고 기름칠 좀 해 주고 그런 거지.
-아, 진짜 가오 떨어진다. 대한민국 발라드 가수의 자존심이란 사람이… 후우우….
하지만 차우현이 했던 말은 진실이었다.
‘이 정도로 잘할 줄은…….’
리혁이 노래를 잘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는 그들이 생각했던 것 이상이었다.
“이거 말하면 믿을까…?”
“안 믿을 거 같은데. 그리고 말도 못하잖아요. 우리.”
“아, 맞다.”
어차피 비밀 서약을 해서 말도 못하지만, 만약 방송이 된다면 난리가 날 거라고 생각하는 참가자들이었다.
사석에서 그런 말을 했던 다른 가수들이 과연 어떤 반응을 보일까?
‘벌써부터 입이 근질거리네.’
‘아, 진짜 얘기하고 싶다.’
친한 참가자들이 그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다른 가수들에게 팬 서비스를 해 주고 있는 리혁의 곁으로 한 인영이 스슥 다가왔다.
“가왕 선우주님.”
그것은 바로 잔뜩 텐션이 업 되어 있는 ‘명품조연 장조림’이었다.
패자부활전에서 승리한 덕분에 다시 가면을 쓴 참가자.
[후후후, 저 장조림. 이번에도 살아 돌아왔습니다. 지금부터 새로운 가왕님께 충성을 맹세 드리옵니다.]
음성 변조를 켠 가수의 멘트에 리혁도 스위치를 딸깍 눌렀다.
[그렇군요! 잘 부탁드립니다! 꺄르륵!]
[후후후! 저만 믿으십시오! 제가 수문장이 되어서 도전자들을 물리치겠습니다…!]
둘이 손뼉을 마주치며 꺄르륵 웃었다.
장조림 가면의 본체, 뮤지컬 배우 장재림의 기분은 그야말로 최고조였다.
‘살아남았다!’
오늘 경연이 있기 전에만 해도 슬슬 탈락하고 싶었다.
이제 새로운 뮤지컬 준비에 들어가야 하기도 하고, 경연 준비가 점점 힘들어졌기 때문이었다.
가왕은 매주 1곡만 준비하면 된다.
하지만 잔류자는 매번 4라운드까지 갈 것을 가정해서 4개의 곡을 연습해야 한다. 가왕전에 도전하지 않기로 해도 일단 곡 3개는 준비해 둬야 하는 것이다.
2주에 한 번이라고 해도 쉽지 않은 준비 때문에 하차하고 싶었는데….
‘이건 남아야지!’
곧바로 생각을 바꾼 장조림 가면이었다.
-넘사벽 실력을 가진 가왕 선우주의 출연!
이건 된다.
무조건 되는 기획이었다.
육아 예능에만 나와도 시청률 대박과 토끼 삼촌을 만들어 내는 뉴블랙이 무려 경연 프로그램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반드시 터진다.’
그야말로 시청률 대박.
이런 시청률 대박 회차는 대중들에게 그의 존재를 알릴 수 있는 중대한 기회였다.
[가왕 선우주님! 사랑합니다!]
[꺄륵!]
이러한 이유로 잔류자들과 제작진이 리혁을 바라보는 눈빛에는 사랑이 가득했다.
‘시청률 보따리!’
‘역대급 화제성…!’
그런 사람들에게 둘러싸인 리혁이 미소를 지었다.
‘아… 기 빨려…….’
얼른 멤버들에게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리혁이 심호흡을 했다.
‘나는 선우주다. 선우주다….’
사람들에게 둘러싸일수록 더 흥이 오르는 누군가에 이입하며 메소드 연기를 시도하고 있을 때.
리혁이 구석에 숨어 있던 늑대 가면의 조유리와 눈이 마주쳤다.
‘왜 저러지?’
그냥 눈만 마주쳤을 뿐인데 굉장히 움찔하며 어색해한다.
꾸벅.
서리혁이 먼저 고생했다는 의미로 고개를 숙여 보이자, 상대 쪽에서 엉거주춤 꾸벅했다.
그때, 누군가 말했다.
“근데 언제 오지?”
“그러게요.”
“곧 올 때가 된 거 같은데…….”
탈락자들이 손을 흔들며 사라지고 난 후.
지금 자리에 남은 것은 가왕을 포함한 다섯 명의 생존자들과 그 매니저들이었다.
이들이 남은 이유는 바로….
-제비뽑기.
다음 경연의 주제나 미션을 뽑기 위해서였다.
초창기 <미션 싱어>에서 조작이 터지면서 강화된 룰이었다.
당시 다른 피디가 자신이 밀어 주려는 특정 참가자들에게 한 달 전부터 주제를 미리 알려 줬다는 사실이 폭로되면서, 이제는 출연자들과 매니저 입회하에 공평하게 추첨을 진행하는 방식이었다.
참가자들이 복도에서 기다리고 있을 때.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카메라와 함께 박연희 피디가 싱글벙글한 얼굴로 걸어왔다.
‘뭐지?’
‘기분 좋은 일이라도 있나?’
참가자들이 고개를 갸웃했다.
늘 피곤한 얼굴이었던 박 피디가 세상 행복한 얼굴로 있었다.
왜 그러는지 짐작하던 참가자들이 ‘서리혁 때문인가’ 하고 넘겼다.
“자! 그러면 추첨할까요?”
“네!”
박 피디의 뒤에서 추가로 세 명이 또 나왔다.
다음 경연에 참가하게 될 가수들의 매니저들인 듯했다.
“자, 여기 다음 경연의 주제들입니다. 보이시죠?”
[이별], [청춘], [음식] 같은 키워드들이 투명한 제비통에 들어가고, 골고루 섞는다.
“자, 그럼 우리의 가왕!”
“선우주! 선우주!”
가왕 선우주가 눈을 감은 채 나와 손을 스윽 집어넣었다.
희고 고운 손가락이 종이를 집었다.
‘손 이쁘당….’
‘곱다…….’
곧이어 리혁이 종이쪽지를 집어 들었다.
[청춘]
키워드를 보자마자 늑대 가면 너머 조유리가 주먹을 쥐었다.
‘내 키워드다.’
청춘에 관한 락 노래들이 머릿속을 스쳐 갔다.
어쩌면 다음 경연에서 가왕은 아니더라도 가왕전에 도전은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할 때.
다른 출연자들도 눈을 빛냈다.
‘다음에도 꼭 잔류한다. 리혁 씨 있을 동안은 반드시 남는다!’
‘어려운 주제지만 해 봐야지.’
‘청춘… 나쁘지 않아.’
장조림 가면과 럭키걸의 메인보컬 앨리, 그리고 서바이벌 우승자 출신인 독고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촬영을 마친 출연자들이 뿔뿔이 흩어질 때.
“잠깐만….”
장조림 가면이 눈을 깜빡였다.
그러곤 고개를 돌려서 흩어지는 매니저들의 숫자를 체크했다.
2주 뒤에 출연할 4명의 가수들을 포함해 총 9명의 매니저가 있어야 숫자가 맞는다.
그런데 지금은 8명이다.
‘한 명이 비는데?’
설마 매니저 하나가 두 명의 가수를 관리할 리는 없고….
‘아직 섭외가 안 됐나?’
그것도 말이 안 되는 느낌이었다.
대기실에 돌아와 고개를 갸웃했던 그가 가면을 벗고 다시 뮤지컬 배우 장재림으로 돌아왔다.
“왜 그래, 재림아?”
“아니. 뭔가 이상해서… 매니저 숫자가 안 맞는 게…….”
“그래?”
“뭐, 별거 아니겠지.”
그런 말을 하던 그가 머리를 긁적였다.
“근데 왜 자꾸 묘한 느낌이 들지?”
“?”
“아니, 뭔가 또 엄청난 사람이 나올 것 같다는 예감이 들어.”
“기분 탓이겠지. 이번에 리혁 씨 만나서 그래.”
“그렇겠지?”
고민을 하던 뮤지컬 배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기분 탓이겠거니 싶었다.
* * *
달칵.
리혁이가 대기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후우.”
“고생했어요. 형.”
“리혁아, 수고했어~”
격려의 말을 건네는 우리에게 손을 저으며 리혁이가 소파에 털썩 앉았다.
“이제 다 끝났어요. 아우… 힘들어.”
“주제는 뽑았어? 뭐야?”
“주제….”
리혁이가 내게 쪽지를 보여 주었다.
[청춘]
“오호….”
턱을 쓰다듬으며 생각에 잠겼다.
청춘이라는 키워드로 할 수 있는 무대가 벌써부터 머릿속에 떠오른다.
그런 내 표정에 리혁이가 어색하게 말했다.
“그, 이제는 괜찮아요.”
“?”
“도움 안 받아도 괜찮다고요.”
“!!”
그런 리혁이의 말에 동생들이 충격 받은 표정을 지었다.
“와. 리혁이 양심.”
“저 형 양심 봐요. 도움 받아 놓고 나서 이제 가왕 되니까, 쓸모없다고 토삼… 그 토삼이 팽~ 하고 내팽개치는 거 뭐죠, 중현이 형?”
“토사구팽.”
“리혁이 형도 똑같네요. 우주 형이 동요 잘 되고 나서 갑자기 토삼이를 내팽개친 것처럼….”
내가 끼어들었다.
“내가 언제 그랬어?”
“토삼이 동요 잘 되고 나니까 갑자기 질투하더니, 하늘 아래 두 명의 태양은 없다면서…….”
“그랬군…. 그랬지…….”
그만 말하라는 의미로 막내의 입에 과자를 물렸다.
그동안 리혁이가 해명하듯 말했다.
“아니, 이제 가왕 됐으니까 당신 도움이 필요 없다…! 하는 그런 건 절대 아니에요. 내가 왕지호도 아니고 그러겠어요?”
“!!”
과자를 잔뜩 입에 물어서 반박할 수 없었던 지호가 가슴을 팡팡 치며 원통해할 때.
우리 메인보컬이 말했다.
“내 말은 이제 가왕이라서 전략적으로 곡을 준비할 필요성이 없다는 뜻이에요.”
“그건 그렇지.”
<미션 싱어>의 가왕에겐 특별한 전략이 필요 없다.
방어전만 치르는 것이기에 그저 자신의 실력을 최대한 뽐낼 수 있는 곡을 하나 선정하면 끝.
“어차피 1곡만 연습하는 거라서 여유롭기도 하고. 또… 너무 염치가 없는 거 같아서요. 이 정도로 도움 많이 받았으면 됐지.”
“음….”
“그래서 이제부터는 내 힘으로 해 볼게요. 고마웠어요.”
그 말에 중현이가 사극에 나오는 음험한 재상 같은 표정을 지었다.
“해석 : 지금까지 쓸모가 많았지만 여기까지다. 이제 죽거라.”
“내가 언제 그랬어요!?”
동생들이 배은망덕하다며 리혁이를 놀리고 있는 동안, 내가 잠시 고민하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래.”
“음?”
오히려 리혁이가 이상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한 번쯤 설득해야 되지 않아요? ‘정말 괜찮겠어?’ 라면서 물어보는 게 평소 패턴이잖아요.”
‘그야 내가 다다음 주에 나오니까.’
…라는 말을 할 수는 없었기에 미소를 지으며 리혁이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형은 널 믿고 있거든.”
“뭐지? 이 가식적인 미소는…?”
“…우리 리혁이 사랑한다!”
사랑한다는 말로 관심을 돌리니 리혁이의 귀가 벌게졌다.
자세한 사정을 알고 있는 민기 형만 키득대고 있을 때.
퇴근 준비를 마친 다른 출연진들이 부산스럽게 복도를 걷는 소리들이 들려온다.
“그나저나….”
리혁이가 다른 동생들을 바라보며 물었다.
“다들 어떻게 왔어요?”
“?”
“우리야 숨어서 왔지만 셋은 어떻게 왔나 해서.”
방송이 나가기 전까지는 정체를 숨겼으면 좋겠다는 제작진의 요청이 떠오른다.
그런 이유로 동생들도 정체를 숨기고 왔다.
우리가 방송국에서 돌아다니면 ‘뉴블랙이 왜 있지?’ 하면서 <미션 싱어>에 대한 소문이 퍼질 수도 있으니까.
“아, 우리는….”
비주가 자신감 가득한 표정으로 말했다.
“정체를 숨기는 완벽한 방법을 썼어.”
리혁이가 아 하며 물었다.
“역시… 그 방법을 썼군요. 정체를 숨기는 가장 확실한 방법.”
“응.”
“혹시 내 것도 가져왔어요?”
“다섯 명 거 다 가져왔어.”
리혁이와 내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 * *
TBC 지하주차장.
운전석에 앉은 연예인 매니저들과 퇴근하려는 TBC 직원들이 차에 시동을 걸고 있을 때였다.
스스슷-
어두운 주차장에서 어둠의 형체가 일렁였다.
“?”
“??”
여러 명의 발걸음 소리가 동시에 울려 퍼지더니, 어둠 속에서 웬 거대한 형체들이 나타났다.
“!”
“!!”
화들짝 놀란 사람들의 눈앞에서 거대한 인형탈들이 걸어갔다.
다섯 곰돌이들.
눈을 깜빡이던 운전자들이 운전대를 잡은 채 고개를 꺾었다.
마침 뒤돌아보던 곰돌이들과 눈이 딱 마주친다.
ʕ•ᴥ•ʔ
‘…….’
ʅ ʕ•ᴥ•ʔ ʃ
‘뭐야. 왜 춤추는 건데…….’
머쓱한 침묵이 감돌 때.
뉴블랙 멤버들이 인형탈 속에서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성공!’
‘아무도 모른다!’
우다다 달려가는 곰돌이들의 뒷모습에 운전자들이 훈훈하게 웃었다.
‘뭐야. 뉴블랙이었네.’
‘난 또.’
‘정체를 숨겨야 하는 일이 있나…?’
그냥 모르는 척 넘어가 주는 연예계 관계자들이었다.
* * *
다음 날.
“어우…….”
“힘들어여?”
“응.”
내가 기지개를 켜며 말했다.
“경연은 리혁이가 했는데 왜 내가 피곤하지?”
“원래 대기하는 게 더 힘들잖아요. 저도 신이 찍을 때, 촬영장에서 구르는 것보다 대기하는 게 더 힘들었어요.”
“그래서 그런가.”
분명 경연은 리혁이가 뛰었는데 나도 엄청 피곤하다.
어제 ‘리혁이가 가왕 돼야 하는데… 돼야 하는데…’ 하면서 긴장하면서 봐서 그런 걸까.
지호가 말했다.
“리혁이 형은 아예 쓰러졌던데요. 아침에도 방문 열어 보니까 미동도 안 하던데요.”
“자게 둬. 엄청 피곤했을 거야.”
가뜩이나 우리 중에서 체력이 약하기로 유명한 애가 8시간 가까이 녹화를 뛰었으니….
“쉬게 둬야지.”
푹 쉬고 있을 리혁이를 생각하면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멀찍이 보이던 고척돔이 점점 가까워진다.
“거의 다 왔네.”
“와, 벌써 차 막히는 거 봐요. 일찍 오길 잘했다.”
오늘은 우리의 휴무일.
브라질과 아르헨티나로 투어를 떠나기 전에 휴식을 하면서 컨디션을 정비하는 날이었다.
그리고.
나와 지호는 각자의 절친을 만나러 가기 위해 고척돔으로 향하는 중이다.
나는 태현이와 한별이 같은 동생라인, 그리고 지호는 연기를 하면서 친해진 지훈이.
[TNT : We Are Back]
그런 깃발이 펄럭이는 고척돔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오늘은 친구의 콘서트를 보며 잠시 휴식할 예정이었다.
* * *
마침내 완전체로 돌아온 TNT의 콘서트!
지난 평창 올림픽에서 완전체 무대를 보여 준 이후로 TNT가 팬들과 함께하는 첫 콘서트였다.
‘아… 좋다.’
고척돔에 입장한 TNT의 팬덤, 투게더가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모든 게 행복하고 아름다웠다.
개인 팬 비율이 높은 TNT라지만 엄연히 그룹 팬도 있었다.
그리고 개인 팬이라고 하여 무조건 개인 활동만 하기를 원하는 성향만 있는 것도 아니었으니까.
그런 이들에게 이번 콘서트와 컴백 앨범은 선물과도 같았다.
“이거 봤어요? 지금 실시간 1위예요.”
“와아… 화력 대박이다.”
망고 실시간 1위에 떠 있는 컴백 곡을 바라보며 웃었다.
‘영준아…!’
‘영준이 잘한다!’
박태준이 가고 총괄이사였던 한영준이 CEO로 올라온 이후로 뭔가 정상 궤도로 돌아온 TJ 엔터였다.
일단 컴백 곡 퀄리티부터 엄청 좋았으니까.
팬덤의 취향을 저격하는 동시에 대중들에게도 ‘TNT 컴백곡 좋네’ 하는 반응을 이끌어 낸 곡.
‘이제 좀 낫네.’
‘옆집만큼은 아니더라도 이 정도면 훌륭해.’
TJ 엔터 바로 맞은편에 있는 레몬만큼은 아니더라도 요즘 들어 부쩍 일 처리가 만족스러워졌다.
고척돔의 객석에 앉은 팬들이 수다를 떨었다.
“이거 봤어요? 어제 태현이 토끼 삼촌 직캠인데…….”
“귀여워!!”
“와, 진짜 천상 아이돌 아니에요? 율동 하나 추는 건데….”
그런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였다.
어디선가 속삭임이 들렸다.
“…토끼 삼촌은 대체 뭐가 인기 포인트지…?”
그들에게 들으라고 한 말은 아니었지만….
워낙 발성이 좋고, 발음이 좋은 터라 미세한 속삭임인데도 귓가로 쏘옥 하고 들어왔다.
옆에 앉은 이에게 진지하게 의문을 가지는 목소리.
“내가 모르는 포인트가 있나? 아니, 토삼이보다 내가 더 귀여운데….”
‘뭔 소리야.’
‘누구야? 저렇게 뻔뻔한 소리를…?’
토삼이를 질투하는 추한 모습에 투게더가 ‘뭐 하는 인간이야?’ 하면서 유심히 바라볼 때였다.
야구모자에 마스크를 쓰고 있던 누군가와 팬들의 눈이 딱 마주쳤다.
“!”
“!!”
TNT는 아니지만 한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눈매만 봐도 알 수 있는 연예인이었다.
‘미친.’
‘토삼이 본체다…!’
근처 객석에 앉아 있던 우주와 지호의 모습에 투게더가 얼어붙을 때.
우주가 봉투를 뒤적거리더니 뭔가를 꺼냈다.
쏘옥-
“?”
“??”
토끼 솜인형을 꺼낸 국민 아이돌이 그들에게 인사했다.
[반갑구나! 우리 투게더 어린이들! 토끼 삼촌이란다!]
웃다가 기침을 터뜨리는 TNT의 팬들.
그리고….
삽시간에 아이돌 팬들의 SNS가 불타오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