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985화 (985/1,031)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985화

"비주 형."

-응?

"나 서운한 게 하나 있어요."

-뭔데…?

영상통화 속에서 고운 얼굴이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내 곁에 있는 두루미가 날개를 파닥거리며 분개했다.

"어째서 이 사람의 도시락만 케첩으로 하트가 그려져 있는 거죠?"

-그야….

비주가 아련한 표정을 지었다.

-우주 형은 오므라이스고 너는 불고기 도시락이니까…….

"……."

잠시 할 말이 궁색해진 리혁이가 흥칫뿡 하고 있는 동안 내가 영상통화 화면에 얼굴을 가져다댔다.

"신경 쓰지 마. 비주야. 그냥 일상적인 리혁이의 심술이야."

-아니에요. 제 실수예요. 리혁이 밥 위에다가 들깨라도 하트 모양으로 올렸어야 했는데…….

"아이고, 우리 착한 비주…. 어쩌다 이런 동생들을 두게 돼서……."

-형은 맛있게 먹었어요?

"응."

싹싹 비운 도시락을 보여 주며 활짝 웃었다.

화면 너머 비주가 행복해하고 있을 때.

중현이와 지호의 얼굴이 화면 속으로 쏘옥 들어왔다.

-어때여? 어때? 우주 형, 가왕전까지 진출했어요?

-진출했어요?

"아니, 아직."

지호가 궁금하다는 얼굴로 물었다.

-3라운드에서 누구 만나요? 막 어려운 상대예요?

"음…."

장조림 가면의 얼굴이 눈앞으로 스쳐 간다.

"최선을 다해야지."

-뭐야. 누군데요? 누구 만나는데?

"그것까진 스포일러라서 얘기 안 해 줄래."

-힝.

막내가 서운한 표정을 연기하며 내 답변을 들으려고 시도했지만 소용없었다.

중현이가 말했다.

-이제 결승전만 이기면 리혁이랑 만나네요. 형.

"그치."

-흐으음… 뉴블랙 대 뉴블랙. 누구를 응원하지.

누구를 응원해야 할지 고민하는 멤버들의 모습에 나와 리혁이가 촉각을 곤두세웠다.

우리 둘이 앞다투어 말했다.

"원래 이런 경연은 약자를 응원해야 하는 거 아니겠니? 언더독 서사라는 게 있잖아."

"솔직히 이건 나를 응원해 줘야죠. 나는 주특기고 이 사람은 심심해서 나온 건데."

판정단이 곧바로 답변했다.

-리혁이를 응원해 줘야겠다.

-저두요.

-나도.

만장일치로 리혁이를 응원해 주겠다는 말에 나는 그저 눈을 깜빡일 뿐이었다.

비주마저 내 눈을 피하고 있었다.

"어째서…?"

지호가 말했다.

-그런 장면을 상상했어요. 가왕 선우주를 꺾고 자신감이 만땅 된 국힙원탑 서리혁이 이제 연기에도 기웃기웃하는 거예요. 아, 노래를 이겼으니 연기도 해 볼 만하지 않을까? 그러면서 이제 칸 영화제도 가고… 오스카상도 타고… 나는 떡볶이 먹으면서 울고…….

"……."

-그런 세계선은 막아야 한다… 하는 그런 마음인 거죠.

리혁이도 그 말이 맞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고, 비주와 중현이도 마찬가지였다.

"야, 아무리 내가 너희를 따라잡아도 한계치라는 게 있는 법인데……."

부릅!

부릅!

"아니야…?"

끄덕.

끄덕끄덕.

"그렇군…."

갑자기 씁쓸했다.

경연 프로그램에 나왔는데 멤버들이 전부 다 나를 응원해 주지 않는 슬픈 상황.

"비주 너까지…."

-저는 원래 형을 응원하려고 했어요. 하지만….

"하지만?"

-형이 지호에게만 일주일 전부터 알려 주고, 저와 김중현에게는 어젯밤에나 이야기해 줬다는 걸 알고 마음이 바뀌었어요.

"……."

아무리 봐도 내가 불리한 상황이라서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그러는 동안 화면 속에 있는 세 멤버들이 주먹을 꼬옥 쥐고 응원하기 시작했다.

-자! 그럼 우리 다 같이 응원해요! 가왕 선우주 화이팅!

-국힙원탑 서리혁을 깔아뭉개 버려요! 가왕 선우주!

-선우주! 선우주!

가왕 선우주를 외치는 노골적인 응원에 내가 분개하고 리혁이가 기뻐했다.

"이런 배은망덕한…!"

"꺄르릇-!"

졸개들이 더욱더 크게 외쳤다.

-가왕 선우주!

-우주 형! 국힙원탑 서리혁을 이겨…….

-가왕 선우주 화이…….

그 말을 하던 졸개들이 멈칫했다.

머릿속에서 뭔가가 헷갈려 왔기 때문이었다.

"잠깐만…."

스탭들이 박수를 치며 웃고 있는 동안 우리가 고개를 갸웃했다.

"어?"

-어??

뭔가 또 이상했다.

* * *

다시 돌아온 녹화 시간.

방청객들이 저녁 식사를 마치고 돌아오는 동안, 뮤지컬 배우 장재림은 대기실에서 독백을 하고 있었다.

"아… 비련한 나 재리미우스의 팔자여…! 어찌하여 하늘은 나를 낳고 국힙원탑을 낳았는가!"

그가 오씨 성을 가진 스타일리스트를 불렀다.

"대답해 보게, 오필리아여. 나는 어찌하여야 하는가…!"

"그냥 최선을 다해서 불러요. 오빠."

"흑흑…."

"오빠는 이미 떨어진 거예요. 너는 이미 죽어 있다 같은 상황인 거죠."

다른 스탭들도 그 말에 반박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명예롭게 죽어라. 장조림."

"뭐, 이 정도면 잘 떨어졌다고 봐야지."

아무도 ‘혹시 몰라, 네가 이길 수 있어’ 같은 말을 해 주지 않았다.

왠지 모르게 슬펐다.

"어째 운수가 좋더라니…!"

김 첨지의 기분을 알 것 같았다.

정말이지 운수가 좋았던 날이었다.

대진표가 운 좋게 잘 걸려서 강력한 우승후보였던 발라드 가수 독고영과 밴드 보컬 조유리를 피했다.

‘기왕 운빨이라면 조금 더 운이 좋았어도 됐을 텐데! 하필이면 우주를 만나서…!’

솔직히 말해서 선우주를 이길 수 있는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기왕 이렇게 된 거 표차를 최대한 줄인다."

"과연 그게 될까?"

주변의 꿋꿋한 방해를 물리치고 장재림이 장조림 가면을 착용했다.

음성변조된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표차를 최대한 줄여서 명예롭게 죽는 거지. 국힙원탑 서리혁은 지금 분명 방심하고 있을 거야.]

이유는 간단하다.

[3라운드에서 약한 상대를 만났다고 방심하고 있겠지. 하지만 나 장조림이 그 허를 찌르는 거다.]

솔직히 누구나 다 비슷할 거다.

3라운드에서 자신과 같은 약체를 만난다면 누구든 어느 정도 긴장을 푸는 게 보통 아니겠는가.

그런 생각을 하면서 덩실덩실 춤을 추고 있을 때였다.

똑똑-

FD가 문을 열고 말했다.

"장조림 님, 3라운드 VCR 찍겠습니다."

"예~ 조림아. 가자."

매니저들의 안내를 받아 장조림 가면이 복도를 향해 걸어갔다.

먼저 기다리고 있던 두루미 가면에게 장조림 가면이 정중하게 인사를 하고, 두루미도 정중히 인사할 때.

"촬영 시작하겠습니다."

장조림 가면이 먼저 다가갔다.

[국힙원탑. 지금까지의 여정은 쉬웠을지 몰라도, 나 장조림을 뚫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국힙원탑 서리혁이 응수했다.

[쉽다고 생각한 적 없습니다.]

[그렇군!]

두루미가 옆구리에서 주섬주섬 책을 꺼냈다.

[장조림. 쇠고기를 간장에 넣고 조려 만든 음식. 기름기가 적은 홍두깨살 등을 크게 덩어리지게 잘라서 물을 붓는 것이 조리법. 그리고 자취생의 친구이자 요리장인 김비주의 특기 음식이죠. 적당히 짭조름하면서도 물 말아서 먹으면 최고인 김비주의 레시피.]

[!]

[혹시 궁금하신가요?]

[예!]

비주 레시피라는 말에 다들 눈을 크게 뜨고 받아 적을 준비를 할 때.

두루미가 얄밉게 말했다.

[안타깝게도 여백이 좁아 적지 못 해 왔습니da.]

‘페르마의 정리냐.’

‘말투 열 받네….’

‘두루미 인성이 저러니까 여우가 이상한 그릇을 접대했지.’

틈새 동생 영업을 한 선우주가 장조림 가면에게 도전장을 내밀었다.

[보통 경연이 길어지면 긴장감이 옅어진다고 하더군yo. 하지만 저는 그런 방심은 절대 하지 않겠습니da.]

두루미가 날개를 활짝 피듯이 팔을 펼쳤다.

[저는 오늘 3라운드에서 제가 가진 모든 것을 보여 드리도록 하겠습니da. 선배님.]

장조림 가면이 눈을 지그시 감았다.

‘망했다.’

방심은커녕 최선을 다해 널 죽이겠다는 각오를 불태우는 두루미의 모습에 그저 눈물을 흘릴 뿐이었다.

[후후후. 기대하지….]

‘흑흑.’

장조림 가면이 구슬프게 울었다.

* * *

나는 약자든 강자든 상관없이 상대에게 최선을 다하는 것이 예의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승부의 세계는 냉정한 법.

상대의 실력이 나보다 조금 떨어진다고 해서 적당히 응하면, 상대 입장에서 얼마나 서운하겠는가?

그래서 이어지는 결승전에서 최선을 다했다.

[네! 대망의 결승전 결과는……!]

전광판에 뜨는 나와 장조림의 스코어.

[명품조연 장조림 4]

[국힙원탑 서리혁 96]

"어엇……!"

나도 당황할 만큼 어마어마한 스코어 차이.

장조림 가면이 울면서 무대를 내려갔다.

[흑흑.]

‘선배님……!’

[흑흑흑….]

잔뜩 마음의 상처를 받은 장조림 가면의 뒷모습에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마치 뒷모습이 ‘우주 씨… 이건 너무 심하잖아요…’ 하며 말을 하는 듯하는 모양이라 너무 미안했다.

중계진이 감탄했다.

[역시 국힙원탑입니다. 그 어떤 상대가 찾아와도 내 무대로 완벽하게 밟아 주겠다.]

[승부의 세계는 이렇듯 참으로 냉정한 법입니다. 하하.]

[무시무시하네요. 국힙원탑 서리혁.]

내 이야기를 하는데 괜히 옥좌 위에 앉아 있는 가왕 선우주가 먼 산을 바라보는 모습에 다들 웃음을 터뜨렸다.

이윽고.

소감을 말하는 시간이 끝나고, 모두가 내게 시선을 집중했다.

[자! 그럼 이제 가장 중요한 질문의 시간입니다! 국힙원탑 서리혁 님!]

중계진이 물었다.

[가왕에 도전하시겠습니까?]

내가 마이크를 천천히 들었다.

사람들이 내 몸짓 하나하나를 보고 내가 할 말을 예측하려는 동안, 극적 긴장감을 위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저는….]

그렇게 다들 입술을 오므리고 나를 올려다보고 있을 때.

[가왕에 도전하겠습니다.]

와아아아- 하는 함성 소리가 공연장에 울려 퍼졌다.

‘국힙! 국힙!’ 하며 함성을 지르는 사람들에게 맞춰 잔망스럽게 날개춤을 추었다.

이윽고 가왕전을 하기 전에 패자부활전을 진행할 준비를 하는 동안.

무대를 내려가면서 무대 아래에서 대기하고 있는 4명의 탈락자들과 눈이 마주쳤다.

"화이팅이에요!"

"국힙원탑 화이팅!"

"할 수 있다!"

다른 사람들에게 고개를 꾸벅하면서 복도를 걸었다.

구석에서 말없이 팔짱만 끼고 있는 늑대가면에게 가볍게 인사하며 지나쳤다.

아주 작게 궁시렁거리는 소리가 들린 듯했지만 지금 나의 관심사는 전혀 다른 곳에 있었다.

"후우……."

대기실로 돌아와 가면을 벗고는 심호흡을 했다.

원석이 형이 물었다.

"떨려?"

"네."

"나 같아도 떨릴 거 같아."

곧 지금까지 만난 상대 중에서 가장 강력한 적수를 만나게 된다.

다른 참가자들과 붙을 때는 ‘음, 방심하지 말고 최선을 다하자’ 정도였다면….

"리혁이랑은 어떻게 비슷하게라도 해야 되는데…."

솔직히 객관적인 내 평가로는 8대2에 가까운 스코어가 나올 수 있는 게 지금 리혁이의 실력이었다.

그 격차를 7대 3에서 6대 4정도까지는 낮추는 게 내 목표.

"진짜 답이 안 나오더라고요. 사실 전략이라는 것도 상대가 나와 실력 차이가 크지 않아야 통하는 거잖아요."

"그 정도까지 차이가 나나?"

"제 생각에는요."

전략이란 것도 내가 압도적이거나 상대와의 체급 차이가 적을 때나 의미가 있는 거다.

지금 내 상상 속에서 웃는 리혁이의 모습은 마치 보컬 대마왕 같았다.

"으음."

잠시 긴장을 했다가 침을 삼키고는 말했다.

"열심히 연습했고, 전략도 짰으니 이제는 최선을 다하는 방법밖에는 없겠네요. 뼈를 깎는 각오로…."

오늘 이 무대가 내 커리어 마지막이라는 마음으로 임할 생각이었다.

그런 내 모습에 원석이 형이 웃으며 말했다.

"근데 지금 너만 긴장하고 있는 게 아닐걸?"

"네?"

"리혁이도 만만치 않게 긴장하고 있을 거야."

"걔가요?"

* * *

3라운드가 끝나고 진행된 패자부활전.

[네! 패자부활전의 최종 승자는……!]

네 명의 가수가 무대 위로 올라와 있는 가운데, 마침내 다음 주까지 생존할 참가자가 발표됐다.

[허스키 보이스 개나리입니다!]

나머지 세 명의 조명이 꺼지고, 개나리 가면을 쓴 참가자가 고개를 꾸벅 숙였다.

방청객들이 좋아했다.

"다행이다."

"허희진이 결국 살았네."

1라운드에서 발라드 가수 독고영과의 접전 끝에 떨어졌던 여성 락 보컬 허희진이었다.

실력이 막상막하여서 취향 차이로 갈렸던 무대였기에 탈락을 아쉬워했던 참가자.

그런 가수가 생존한 소식에 다들 좋아하고 있는 한편.

[네, 안녕하세요. ‘외로운 늑대’로 나왔던 조유리 밴드의 조유리입니다…….]

참가자들이 가면을 벗고 하나둘 탈락 소감을 전했다.

눈시울을 잔뜩 붉히며 ‘즐거웠다’고 말하는 조유리의 모습에 방청객들이 박수를 보냈다.

‘조유리도 아깝긴 하네.’

‘멘탈만 안 터졌으면…….’

1라운드에서 탈락을 했던 것에 멘탈이 터진 모양인지 패자부활전에서 불안불안했던 조유리의 무대였다.

그렇게 탈락자들의 소감이 이어지는 동안.

‘얼른…!’

‘아, 얼른 보고 싶다……!’

방청객들의 심장이 터질 것처럼 두근거렸다.

그야말로 역사적인 무대가 다가오고 있기 때문이었다.

-가왕 선우주 VS 국힙원탑 서리혁

같은 그룹에서 가왕급의 실력을 갖춘 두 멤버가 서로의 이름을 바꿔서 경연에서 맞붙는다.

잠시 쉴 때마다 치열한 토론이 오갈 정도였다.

"리혁이가 이기지 않을까?"

"선우주 같은데."

"가왕 선우주가 이기는 거 아닌가?"

"그치. 리혁이가 이길 확률이……."

"잠깐잠깐. 용어 정리부터 하자. 그니까 가왕 선우주랑 선우주랑……."

물론 용어 정리가 먼저였다.

용어 정리가 끝난 방청객들이 저마다 의견을 공유하고, 연예인 패널들도 수군거렸다.

"이야, 이거 진짜 역사적인 싸움이네. 같은 그룹에서 이렇게 보컬로 붙는 건 처음이지 않나?"

"누가 이길 거 같으세요?"

"이건… 가왕 선우주 아니겠어? 그래도 가왕인데."

"그래도 국힙원탑 서리혁이……."

실력만 보면 서리혁의 승리가 확실하지 않을까 하다는 생각이긴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우주가 쉽게 질 거 같진 않았다.

1라운드부터 3라운드까지 매 라운드에서 창법을 조금씩 바꿔가며 색다른 무대를 보여 준 선우주.

4라운드에서는 또 무언가 튀어나올지 알 수 없었다.

"으음……."

"이건 무대를 봐야 알 거 같은데."

아무래도 서리혁이 이기지 않을까 하는 의견이 대다수지만, 혹시 모른다는 의견이 대세를 차지하는 가운데.

[네! 오랫동안 기다리셨습니다!]

중계진의 멘트에 사람들의 가슴이 쿵쿵 뛰기 시작했다.

‘시발, 내가 이걸 직관을…….’

‘나 수플레, 오늘 여기 묻히다.’

‘미쳤다.’

곧이어 무대 위로 올라오는 참가자.

[제43대 가왕, 가왕 선우주에게 도전할 참가자가 무대 위로 올라옵니다!]

[국힙원탑 서리혁!]

[과연 제44대 가왕은 누가 될까요? 가왕 선우주가 43대에 이어 44대까지 타이틀을 유지할지, 아니면 국힙원탑 서리혁이 새로이 가왕으로 등극할지…!]

[지금부터 시작됩니다!]

와아아아아아아- 하는 함성이 공연장을 뒤흔들었다.

최선을 다하겠다는 각오를 짧게 밝힌 두루미 가면이 몸을 풀면서 자리에 섰다.

수플레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우주 긴장했구나.’

다른 방청객들은 잘 모르겠지만 그들의 눈에는 살짝 긴장해 있는 우주의 모습이 보였다.

오늘 공연 중에서 처음으로 보이는 긴장.

마이크를 쥔 손을 살짝 잡았다 풀었다 하는 선우주의 모습에 수플레들이 괜히 자기가 긴장한 것처럼 손을 꼬옥 쥘 때.

‘시작한다…!’

‘시작!’

조명이 어두워지면서 벌써부터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잔잔한 피아노 소리.

사람들의 환호성이 잦아들 무렵, 어둠 속에서 스포트라이트 조명이 우주에게 내리쬈다.

곧 중저음의 목소리가 독백을 깔았다.

『 가을을 향하여

나의 청춘은 꽃답게 죽는다. 』

유명한 시 <낙화>의 한 구절이 내레이션으로 깔리면서 환호성이 흘러나왔다.

벌써부터 훅 들어오는 분위기에 몇몇 관객들이 눈을 지그시 감고 있을 때.

마이크를 든 우주가 가슴에 손을 올렸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몰랐지

내가 가는 길은

더 이상 나의 길이

아니었음이

가을바람이 쓸쓸히 불어오는 듯한 분위기 속에서 가수의 목소리가 공허하게 울린다.

청춘의 방황과 우울함.

유명 락 가수 최유진이 원곡자인 <위성>이었다.

첫 소절에 방청객들이 ‘와…’ 하면서 빠져들었다.

모든 게 확실하던

순간들이 있었지

<위성>은 원곡자가 청춘 시절 자신의 방황을 그린 노래였다.

방황하던 청춘.

보다 더 어린 시절에는 모든 게 명확했는데, 청춘이 된 지금은 왜 불안하고 두려울까- 하는 내용이 담긴 곡이었다.

곡에서 ‘별’로 상징되는 삶의 목표.

그런데….

-지금까지 내가 밤하늘의 별을 보고 달려왔는데, 알고 보니 그 별은 별이 아니라 인공위성이었더라.

그렇다면 나는 이제 어디를 향해 달려가야 하는가?

학창 시절과 달리 몸은 다 자랐고, 이제 가로막는 제약 따위는 없지만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는 청춘의 방황을 담은 곡이었다.

호소력 짙은 목소리가 부드럽게 끝음을 하나씩 올려 간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

어디로 와야 하는지

나는 그저

덩그러니 남겨져-

바람에 파스스 흩어지는 듯한 보컬이 야성적인 매력을 풍겨 온다.

정석적으로 부르는 서리혁과 달리 선우주는 이번 곡에서 보다 규칙에서 벗어난 자유로운 보컬로 부르고 있었다.

자신이 방황했던 시절을 떠올리며 부르는 걸까.

짙은 목소리가 관객들이 저마다 가지고 있는 청춘의 기억을 떠올리게 만들고 있을 때.

"……."

백스테이지에서 서서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해바라기 가면이 뒷목을 붙잡고 있었다.

‘저 인간 진짜…….’

귓가에 상대가 해 줬던 조언들이 들려온다.

-리혁아. 경연 프로그램에서 내가 이기기 힘든 상대를 만났을 때는 어떻게 해야 될까?

-음…….

-그럴 때는 간단해. 관객들의 판단을 어렵게 만드는 거야.

-어렵게요?

-취향 차이로 가는 거지. 실력 차이보다는 보컬의 음색이라든가, 노래의 장르라든가. 관객들이 쉽게 판단하지 못하도록.

그 말대로였다.

감성적이면서도 살짝 야성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보컬로 관객들을 사로잡는 선우주의 락 발라드.

진심을 다해 무대에 임하는 맏형의 모습에서 그런 메시지가 들려오는 것만 같다.

-최선을 다해 너를 잡아 주겠다.

상대의 각오에 서리혁은 서늘한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그런다고 내가 쉽게 당하지…….’

…라고 생각하는 순간, 폭발적으로 커져 가는 선우주의 보컬.

‘그래도 내가…….’

점점 더 커지는 목소리.

‘아무리 그래도 내…….’

"와아아아아아아-!"

‘…….’

관객들의 환호성.

눈물을 흘리기 시작하는 관객들.

절로 나오는 박수 소리.

‘와, 진짜 이 인간 작정했네!’

서리혁은 다시 한번 극대노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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