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986화 (986/1,031)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986화

관객들의 귓가로 선우주의 목소리가 밀려들어온다.

고음이 쉴 새 없이 이어지는데도 피로감 하나 없이, 오히려 더 듣고 싶어지는 목소리였다.

떠나간 이들이

그리워지는 순간도

구슬프면서도 처연한 목소리.

지나간 사랑을

잊기 힘들 순간도

언젠가 지나가겠지

이 가을처럼

<위성>의 가사에 관객들은 조용히 눈을 감고 몰입했다.

-이렇게 나의 청춘은 갔다.

노래 속에서 방황하던 화자는 결국 방황을 끝내지 못한다.

원곡의 가수 최유진이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서른두 살에 쓴 곡이 바로 <위성>이기 때문이었다.

마음이 아프고 힘들었던 시절.

청춘은 결국 방황을 끝내지 못하고, 정작 방황이 끝났을 때는 더 이상 청춘이 아니었다.

그리하여 마침내 주변을 돌아보고 이제는 겨울이 되었음을 깨닫는다.

꽃은 분분히 지고

고요한 겨울-

잿빛 바다 앞에

나의 걸음은 멈췄지

점점 계절감이 밀려들어온다.

회색빛으로 뿌연 하늘.

쓸쓸한 바람.

저마다 공허한 겨울 바다를 그리고 있는 동안, 가수의 목소리가 그 빈 공간을 채우고 들어왔다.

조금씩 발걸음을 떼어

천천히 걸어올라가-

점차적으로 파워풀하게 변하는 보컬.

힘없이 흩어지던 초반부와 달리 노래 속 화자의 목소리가 힘을 얻어가기 시작한다.

방황하던 시절을 끝마치고 이제 하늘로 날아오르는 화자.

그리고.

마침내 만나

나의 아름다운

나만의 위성을

구름 위에 도달한 화자는 자신이 한때 ‘별’이라고 생각했던 인공위성을 만나게 된다.

곡에서 인생의 목표로 비유됐던 별.

유년기와 청소년기에는 그저 저 별만 따라가면 되는 줄 알고 따라갔지만, 알고 보니 그 별은 진짜 별이 아니라 가짜인 인공위성이었다.

그랬기에 청춘이 된 화자는 거짓된 위성을 원망하며 오직 별을 찾으며 쓸쓸하게 방황을 한다.

하지만 청춘 시기가 끝난 화자는 마침내 알게 된다.

너만은 언제나

하루도 빠짐없이

내 곁에 남아주었지

수천만 광년 너머 조용히 반짝이는 별과 달리 지구 밖에서 자신의 주변을 맴돌며 언제나 지켜봐 주던 위성.

별은 아니었지만 가장 가까이서 반짝여 주던 존재.

그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나오진 않지만, 대부분의 방청객들은 가족이나 소중한 존재로 이해했다.

-언제나 내 곁에 있어 주던 사람들.

밤하늘로 올라온 화자가 위성으로 상징되는 존재를 포근히 껴안으면서 노래의 곡조가 바뀌어 간다.

곡에서 부정적으로 해석됐던 겨울이 점차 다른 의미로 바뀌었다.

방황을 끝내고 곧이어 올 봄을 기다리며 더욱더 성숙한 존재가 되는 시기.

그리고….

외로움의 끝에서

배회하는 너를

빛나는 모습으로

기다릴 테니

청춘을 끝낸 화자가 밤하늘 위의 또 다른 위성이 되어 다른 방황하는 존재를 기다리는 시기.

먼저 지나온 이가 뒤이어 오게 될 사람을 위로하는 가사였다.

그러면서 원곡 가수와는 다른 선우주만의 보컬이 사람들의 마음을 따스하게 적셨다.

우주와 할머니의 스토리 때문일까.

자신이 잠시 방황하던 시절을 견디게 해 준 인물에게 고마움을 표현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와……."

울림 가득한 목소리가 파워풀하게 곡의 절정을 향해 달려가는 동안, 수플레들은 입가에 손을 모았다.

‘우주야.’

곡에서 자신의 성장을 말하는 듯해서 그런 걸까.

무대 위의 가수가 정말 많이 성장했다는 것이 느껴지는 무대였다.

단순히 노래 실력뿐만이 아니라, 내적으로도 더욱더 단단하고 좋은 사람이 되었다는 감상을 받았다.

‘우주도 진짜 많이 성장했구나.’

청춘 감성이 담긴 곡의 멜로디에 점차 변주가 들어가면서 곡이 웅장하게 바뀌었다.

원곡을 완벽하게 자신의 색으로 물들인 우주가 마이크를 높이 들었다.

외로움의 끝에서

배회하는 너를-

혼자 부르는 것인데도 수십 명의 코러스가 함께하는 것처럼 거대한 목소리가 객석을 향해 파도처럼 밀려온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지금까지 빌드업했던 세 차례의 무대가 떠오른다.

아마도 계절감 때문일 터였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이구나…!’

‘사계절이네.’

눈치 빠른 관객들이 감탄했다.

마치 선우주의 ‘사계절’이란 4부작 앨범의 하이라이트를 듣는 기분이었다.

봄에는 포크송을 재해석해 청춘을 회상했고.

여름에는 고백 노래를 불러서 청춘 그 자체가 되었고.

가을에는 무르익은 청춘을 부르고.

이제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위성>에서는 청춘에게 작별 인사를 건네는 내용이었다.

"와……."

대기실에서 TV로 지켜보는 가수들이나 연예인 패널들 중에 끼어 있는 가수들이 혀를 내두르고.

아이돌 패널들이 눈이 튀어나올 것 같은 표정으로 선우주의 무대를 감상하고.

하이라이트 파트에서 관객들이 입가에 손을 모으거나, 조용히 눈물을 닦고.

경연 내내 표정 변화가 적었던 한 중년 남자가 입을 살짝 벌리고 멍한 표정을 짓는 모습이 카메라에 담기는 가운데.

"우주는 진짜……."

서바이벌 우승자였던 발라드 가수 독고영이 대기실 TV를 바라보며 말했다.

"쟤는 진짜 서바이벌 나와도 우승했겠다."

"우승하고 지금쯤 주경기장에서 콘서트 하고 있었겠는데요?"

"그니까."

"아니, 근데 진짜 TJ는 왜 방출한 거래요? 회사를 10년은 먹여 살릴 인재 같은데."

"낸들 알겠니. 큰 회사들도 한 번쯤 삐끗할 때도 있는 거지, 뭐."

오늘도 박태준 회장이 사람들의 대화 속에서 1패를 거두고 있는 한편.

곡 도입부와 비슷하게 아련한 목소리로 수미상관을 거둔 두루미 가면이 마이크를 천천히 내려놓았다.

"와아아아아아아아-!"

쏟아지는 박수.

환호성.

연예인 패널들이 기립박수를 치고 있는 가운데.

곡의 여운에서 서서히 벗어난 관객들이 머리를 긁적이며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진짜 누구 찍지…?’

‘이거 리혁이도 까딱하면 떨어지겠는데?’

‘어… 음…….’

서리혁의 압승으로 판단하고 있던 관객들이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고는 무대 위에서 이런 상황을 만들어 낸 인물을 바라보았다.

왠지 모르게 두루미 가면이 의기양양하게 웃는 것 같았다.

* * *

다른 건 몰라도 이번 무대는 죽기 살기로 임하기로 결정했다.

안 그러면 79대 21 같은 표차로 지게 될 텐데, 다른 건 몰라도 그 정도 격차는 피하고 싶었다.

아름답게 60대 40 정도?

그래서 실력 차이를 뒤집기 위해 전략을 세웠다.

-취향 차이를 공략한다!

장르 차이는 공략하기 힘들다.

리혁이가 무슨 곡을 들고 나올지 알 수 없으니까.

하지만 창법이나 분위기 면에서는 차이점을 둘 수 있다.

정석적으로 부르는 리혁이와 차이를 두기 위해 일부러 마지막 곡인 <위성>은 야성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창법으로 갔다.

경연 프로에서 표차가 적게 날 때는 대체로 이런 경우가 많다.

-와 진짜 선택 어렵다ㅠㅠㅠㅠㅠ

-정파 고수 vs 사파 고수같음

-아 이건 솔직히 누가 떨어지든 취향 차이 아닌가??? 실력 차이라고 보기엔 애매한 듯

-취향 차이ㅇㅇ

과거 유명 경연 프로그램에서 발라드 가수 차우현 선배와 락 보컬 백시연 선배가 맞붙었을 때를 참조했다.

물론 단순한 창법 차이만으로는 표차를 좁히기 어렵다.

그래서 한 가지 수를 더 썼다.

-서사를 쌓는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미국 매체의 몇몇 키스씬을 보면 ‘어… 갑자기…?’ 하다가 한국 로맨틱 코미디 드라마의 키스씬을 보면서 ‘드디어…!’ 하고 풍악을 울리는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그것은 바로 서사의 빌드업 차이다.

만난 지 5분 된 미드와 10화 동안 빌드업을 한 드라마는 같은 장면이어도 폭발력이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런고로 무대 자체에도 연속적인 서사를 쌓았다.

봄, 여름, 가을, 겨울로 이어지는 4부작.

쉽게 말해 리혁이가 무대 1개로 승부할 때, 나는 지난 3개의 무대에서 나온 폭발력을 더해 사실상 4개의 무대로 가는 것이다.

그럼 사람들이 투표할 때 마음이 흔들린다.

-선우주 4부작 무대 vs 서리혁의 무대

시리즈 영화 4편의 평점을 줘야 하는데, 왠지 지난 3편의 영화까지 고려해서 평점을 줘야 할 것 같은 이 느낌.

그렇게 전략을 짜서 노래를 불렀다.

그런데….

"와아아아아아아아-!"

고음을 높일 때마다 끝을 모르고 올라가는 환호성.

"우와아아아아아아!"

간헐적으로 터져 나오는 박수.

함성.

들뜬 얼굴들.

광적인 열기.

무대를 마치고 나서 나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열띤 얼굴을 바라보며 나는 뻣뻣하게 굳었다.

"와아아아아-!"

이게 아닌데?

이… 이게 아닌데?

"와아아아아아아-!"

아니.

여러분. 이게…….

"국힙! 국힙!"

"국힙원탑 서리혁!"

"최고다! 서리혁!"

아니.

그러니까 여러분 이게…….

"와아아아아아아아-!"

아.

이거 어떡하면 좋냐.

* * *

우물쭈물.

[…….]

서리혁은 계단 위에서 내려오고 있는 인물을 조용히 바라보았다.

두루미 가면.

괜스레 죄를 지은 것처럼 두루미가 내려왔다.

[…….]

어지간한 가수가 아니면 이미 졌다고 선언을 해야 될 만큼 화려한 무대를 보여 준 맏형이었다.

서리혁이 해바라기 가면 속에서 눈을 가늘게 떴다.

‘저 머리만 좋은 허당.’

어떻게 된 일인지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었다.

다 저 인간이 머리가 너무 좋아서 생긴 문제였다.

-음. 리혁이랑 스코어 차이가 너무 심하면 안 될 텐데… 근소한 차이로 져야 하니까 여기에 전략 한 스푼, 보컬 한 스푼, 또 전략 한 스푼… 으으음… 어어어어어어! 부풀어 오른다!

구워어어억- 하면서 넘치는 뭔가를 바라보며 전전긍긍할 모습이 상상된다.

판을 깔아주러 나왔다면서 자기가 그 판 위에 앉고는 화들짝 놀라는 맏형을 한심한 눈으로 보았다.

‘진짜 내가 노래를 잘해서 다행이지.’

서리혁이 찌릿 하고 째려보는 동안 그에게 슬쩍 다가온 두루미가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다.

[가왕 선우주님….]

[네?]

[가왕 선우주님만 믿을게요.]

[…….]

두 손을 기도하듯 모은 모습에 서리혁은 ‘캬아아악!’ 하고 외치고 싶은 충동을 꾸욱 눌렀다.

그 대신….

[응원이나 해 줘요.]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형에게 응원이나 받고 퉁 치기로 했다.

서리혁이 이어지는 상대의 말을 기다릴 때.

[……?]

두 발짝 걸어온 맏형이 그를 조용히 포옹해 주었다.

그러고는 등을 툭툭 두드렸다.

[…….]

서리혁은 말없이 상대에게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상대도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주변 스탭들이 ‘가왕 화이팅!’ 하며 응원을 해 주는 가운데, 서리혁은 가면을 고쳐 쓰고 조용히 무대 위로 올라갔다.

"와아아아아아아아-!"

솔직히 앞서 선우주가 보여 준 무대는 어지간한 가왕이라면 이미 패배했다고 봐도 될 무대였다.

하지만….

‘자신 있어.’

서리혁은 서늘한 미소를 지었다.

그에게는 충분히 이길 자신이 있었다.

* * *

선우주의 사계절 4부작에서 하이라이트였던 <위성>이 끝난 후.

[네… 드디어…!]

중계진이 외쳤다.

[제43대 가왕, 가왕 선우주가 무대 위로 올라옵니다!]

[모두 힘찬 박수로 맞아 주시기 바랍니다!]

웅장한 BGM과 함께 해바라기 가면을 쓴 가왕이 무대 위로 걸어올라오기 시작했다.

뚜벅뚜벅.

"와아아아아아아아……."

"와, 망토 진짜 간지다."

"왕관 봐봐."

긴 망토를 늘어뜨리고 작은 티아라 왕관까지 착용한 가왕 선우주가 무대 위로 올라왔다.

저번 경연 때만 해도 가왕 선우주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눈빛은 귀여움에 가까웠지만, 지금은 왠지 모르게 경외스러운 존재를 바라보는 것처럼 지켜보고 있었다.

‘가왕이다.’

‘진짜 우주가 그 정도면 리혁이는…….’

리드보컬의 어마어마한 활약 때문에 더욱더 평가가 올라가 있는 메인보컬이었다.

2등이 금메달이면 1등은 대체 어떤 존재란 말인가?

방청객들이 손을 모으거나 주변 사람에게 소곤소곤했다.

"어떡해, 나 너무 떨려…."

"나도."

"하, 진짜 떨린다."

과연 얼마나 좋은 곡을 듣게 될지 다들 설레하고.

‘오늘 내가 묻힐 곳은 여기인가.’

‘나 수플레, 오늘 잠들다.’

방청에 당첨된 수플레들이 극락을 느끼며 엔돌핀의 끝을 맛보고 있을 때.

마침내 노래가 시작됐다.

잔잔한 피아노 반주에 맑은 목소리가 얽혀들었다.

매일 밤

잠에 들기 전

한 번씩

마음속에 되뇌어

울림 가득했던 선우주의 목소리와 달리 맑고 단단하다는 평을 할 수 있는 목소리였다.

깔끔하고 곧은.

기교 하나 없음에도 쨍- 하고 들려오는 소리에 관객들의 몸에 소름이 오소소 돋았다.

‘오.’

‘이거 그 노래인가?’

2000년대 초반에 방영했던 드라마 <청춘예찬>의 메인 OST였던 <오늘 우리는>이었다.

그 무렵 신인 가수였던 차우현이 부른 OST.

당시 시청률 43.3%를 찍었던 드라마답게 연배가 있는 관객들과 그때 당시 초등학생이나 중학생이었던 젊은 관객들도 눈을 빛냈다.

하루아침에 모든 것을 잃게 된 부잣집 주인공이 주변의 동료들과 함께 힘을 합쳐 사업을 일구어 가는 스토리.

어떠한 위기에도 굴하지 않고 굳세게 버텨 가는 청춘들의 이야기로 인기를 끈 드라마였다.

그런 드라마의 분위기를 반영해서 신나면서도 경쾌한 멜로디가 관객들을 신나게 만들었다.

서리혁이 작게 미소를 지었다.

-가왕으로서 어떤 노래를 선곡해야 하는가?

솔직히 부르고 싶은 노래가 너무 많았다.

‘청춘’이란 키워드에 머릿속으로 떠오르는 노래만 수십 가지는 될 정도.

하지만 서리혁 역시 전략적으로 곡을 선택했다.

-내가 부르고 싶은 분위기의 곡은 이미 다른 사람들이 다 불렀을 가능성이 높다.

저번 주제였던 ‘여름’과 달리 ‘청춘’은 변주할 수 있는 폭이 생각보다 좁기 때문이었다.

그 때문에 다른 가수들이 고를 만한 선곡들이 빤히 예상됐다.

초반 라운드에서는 아마 청춘의 설렘, 첫사랑, 풋풋했던 그 시절에 대한 곡이 다수일 것이고.

후반 라운드에서는 공허한 청춘, 방황하는 청춘이나 그때 그 시절을 위로해 주는 노래들이 많을 터였다.

본래 서리혁이 부르고 싶었던 노래들도 그런 노래들이었다.

하지만….

‘그럼 관객들이 질릴 가능성이 높다.’

관객들이 피곤할 대로 피곤한 후반 라운드.

거기에 이미 다른 가수들이 청춘에 대한 감동적인 노래들을 부르고 난 뒤일 터였다.

그럼 마지막에 등장하는 가왕은 어떤 노래를 불러야 하는가?

그런 이유로 서리혁은 다른 가수들이 골랐던 쓸쓸하고 외롭고, 아픈 청춘이 아니라 밝은 청춘에 대한 곡을 골랐다.

누군가 해 준 조언 덕분이었다.

-어려울 때는 관객들을 생각해. 관객들에게 어떤 노래를 들려줄까, 생각하면 답이 보일 거야.

그는 마지막에 관객들이 즐겁기를 바랐다.

일렉 기타와 드럼 소리가 근사하게 울려 퍼지는 동안.

방청객들은 왠지 모르게 해바라기 가면이 활짝 웃는 듯한 착각을 받았다.

오늘 어떤 일이 있을까

무슨 일이 있을까

어제는 힘들었지만

오늘은 다를지도 몰라

설렘을 부르는 시원시원한 목소리.

따스한 봄철 한강변에서 즐겁게 걷고 있는 한 무리의 친구들이 떠오르는 노래였다.

박수 치기 좋은 박자에 중년 관객들이 손뼉을 치고.

신나고 경쾌한 노래에 관객들의 입가에 미소가 감돌았다.

사랑도 일도

아직은 서툰 나지만

노래가 조금씩 고조된다.

드럼 소리가 점차 경쾌해지는 가운데, 락 발라드에 가까운 OST에서 시원시원한 보컬이 이어진다.

패널석에 앉은 가수들이 감탄했다.

‘진짜 잘 부른다.’

‘저번 주보다 보컬이 더 미쳤네.’

선우주가 가사 하나하나를 세심하게 부르는 시인 같았다면, 여기는 음 하나하나를 세공하는 조각사 같다.

맑고 투명한 유리를 만들어 내는 느낌.

음색 자체도 사기인데, 폭넓은 음역대를 자유로이 오가며 노래를 부르는 모습은 정말… 가수들에게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하지만 감탄하던 가수들은 이내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으음…….’

‘아, 근데 관객들에겐 이걸로 부족할 텐데.’

‘뭔가 더 있어야 하는데….’

가수들에게 지금 투표를 하라고 한다면 아무래도 서리혁에게 투표를 더 하겠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가수들의 시선.

일반 관객들에게 무언가 한 방을 보여 주어야 한다는 생각을 할 때.

가왕 선우주가 서서히 음을 높여갔다.

고민하지도 않을 거야

걱정하지도 않을 거야

그저 어서 내 손을 잡아

그리하여 마침내 음악이 최고조에 이르렀을 때.

방청객들이 왠지 모르게 설렘 가득한 기분을 느끼고, 노래에 젖어들어 미소 짓고 있을 때.

마이크를 쥔 서리혁의 손에 살짝 힘이 들어갔다.

‘이런 분위기의 곡으로는 부족한 걸 알고 있어.’

다른 가수들이라고 관객들이 경연 후반부에 피곤하다는 것을 모르겠는가.

그럼에도 임팩트 있거나 슬프거나 감동적인 노래를 선곡하는 것은 다 이유가 있었다.

노래를 즐겁게 들었어도 막상 투표할 때가 되면 보통 어렵거나 감동적인 노래에 더 표를 주기 마련이니까.

하지만….

서리혁은 자신이 있었다.

‘나의 실력으로.’

어떠한 노래를 부르든 그는 이 자리에서 가왕이 될 자신이 있었다.

그리하여 노래가 최고조를 향해 달려갔을 때.

그동안 잔뜩 웅크렸던 다리를 쭉 펴듯이, 널찍한 하늘을 향해 날개를 활짝 펴고 날아가듯이.

서리혁이 마이크를 높이 들었다.

오늘만큼은

무엇이든 할 수 있어

내 앞에 펼쳐진

푸른 하늘을 봐

그건 마치 푸른 해일을 바라보는 것만 같았다.

방금 전까지 내로라하는 다른 가수들이 무대 위에서 남겼던 알록달록한 색색의 잔향들.

아름다운 청춘을 회상하는 분홍빛 향기, 쓸쓸한 청춘을 떠올리게 하는 회색빛 향기 등등.

푸른 파도가 휘몰아치듯이 무대 전체로 퍼져 나가면서 관객들은 저도 모르게 눈을 크게 떴다.

"어……."

너무 놀라운 것을 보면 압도되어서 입만 벌리는 그런 상황.

뒤늦게 한 템포 뒤에 관객들이 환호성을 터뜨리는 동안, 해바라기 가면이 후렴을 불렀다.

부서지는 햇살 아래

빛나는 사람들이

그게 바로 우리니까

압도된 관객들 앞에서 뉴블랙의 메인보컬이 미소를 지었다.

다른 날은 몰라도 오늘 그는 가왕, 이 자리에 있는 모든 가수들의 왕이었다.

* * *

[꺄르륵!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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