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1025화
"세, 세… 세상에……."
"미친… 이거 실화야?"
객석이 술렁였다.
-차우현.
하프 가면을 쓴 채 보라색 망토를 둘러쓰고 있는 남자는 누가 봐도 차우현이었다.
연예계에서도 보기 드문 거구의 체구.
‘저 정도 덩치면 차우현 아니면 구재영인데… 구재영이 이런 데 나올 리가 없지. 음치인데.’
거기에 [노래의 신]이라는 다소 거만하기까지 한 타이틀까지.
하지만 누구도 거기에 태클을 걸 수 없었다.
Q. 연예계 대표 보컬을 뽑아 보세요!
이런 설문을 돌릴 때 항상 1번으로 나오는 가수가 바로 차우현이었으니까.
2000년대부터 지금까지 발라드계의 최고 존엄이자, 대중들도 보컬 끝판왕으로 인정하는 인물.
다들 놀라서 입을 떡하니 벌린 가운데 누군가 말했다.
"아니, 근데 지금 차우현이 중요한 게 아니야. 라인업 봐. 미쳤어."
"진짜…."
"이거 왕중왕전이야?"
차우현 곁에 서 있는 3명의 다른 참가자들.
[안녕하세요. 배반의 흑장미입니다.]
<사랑의 장미>라는 명곡으로 유명한, 여성 락 보컬의 최강자 중 하나로 꼽히는 백시연.
[혹시 연꽃의 꽃말을 아시나요? ‘당신은 아름답습니다~’ 블랙 로터스(lotus)입니다!]
허스키하고 절절한 보컬로 유명한 발라드 가수 연(蓮).
[여러분은 저의 목소리에 빠져드실 겁니다. 레드 선~!]
감미로운 목소리로 유명한 더 문.
이중에 단 한 명만 등장해도 기존 가왕이 ‘오셨습니까~!’ 하면서 가왕 의자를 열심히 닦아 놓고 바쳐야 할 인물들이었다.
그러하기에 연예인 패널들도 식겁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
중년 예능인이 자리에서 일어나서 눈을 비볐다.
"내가 지금 헛것을 보고 있나?"
"저 좀 꼬집어 주세요. 선배님."
"나도 좀 꼬집어 주라."
자기들끼리 꼬집다가 아파서 의자에 주저앉는 예능인들.
얼이 나간 표정으로 손뼉을 치고 있는 아이돌 패널들, 대선배들의 등장에 차렷 자세로 선 기성 가수.
그리고 서로를 껴안고 있는 우비즈까지.
"반응 좋고~"
무대 아래에서 모니터링을 하고 있던 <미션 싱어>의 박연희 피디가 미소를 지었다.
솔직히 아직도 꿈만 같았다.
가왕 선우주와 국힙원탑 서리혁의 배틀로 역대급으로 핫한 인기를 자랑했던 <미션 싱어>.
박연희 피디는 생각했다.
-이제 시청률 최고점도 찍었고, 스무스하게 내려오면…….
…되겠지, 라고 생각하던 때였다.
은둔해 있던 고수들이 연락해 온 것이다.
그때의 기억을 각색하자면 대충 이런 느낌이었다.
-껄껄껄. 여기가 바로 천하제일 가요대회인가?
-예? 대협께서는 누구신지….
-얼마 전에 이곳에서 뉴씨 세가의 아해들이 비무를 했다지? 천하제일인의 자리를 두고 말이야.
-맞습니다만….
-그걸 보고 있자니 내 젊은 날의 혈기가 들끓더군! 하하하!
가왕 선우주와 국힙원탑 서리혁의 배틀이 바로 그 원인이었다.
그에 흥미를 느낀 은거 기인들이 신청서를 접수한 것이다.
조건은 딱 하나.
-서리혁과 같은 회차에 출연하게 해 달라!
다른 가수들이라면 흥행을 위해 ‘조금 기다리시면 저희가 한 분씩 출연시켜 드릴게요’ 라고 했겠지만 이들은 방송에 연연하지 않는 기인이사들이었다.
설령 서리혁이 하차라도 한다면 바로 흥미를 잃고 종적을 감출 수도 있는 상황.
그런 까닭에…….
"세상에."
"진짜 저분들이 한 자리에 모였네요."
"우리 시청률 터지는 게 아니라 폭발하겠는데요."
스탭들도 벙찔 정도로 어마어마한 라인업이 완성됐다.
사실 스탭들뿐만 아니라 무대 위로 올라온 4인방도 당황한 건 마찬가지였다.
‘어?’
‘어어?’
4인방의 시선이 교차했다.
‘우현이가 왜 여기에?’
‘시연 누님이다.’
‘상철이도 왔구나.’
신진 고수에게 가르침을 주기 위해 등장했건만, 전대의 고수들끼리 먼저 맞붙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들이 누구인가.
‘재미있네. 우현이랑 한 판 붙어도 보고.’
‘크큭, 왕위를 계승하겠습니다. 우현 형님.’
‘빠르게 끝내고 가야겠다.’
곧바로 서로에게 살심을 내비치는 고수들!
하지만 즐거워하는 4인방과 달리 오늘 그들을 맞이해야 하는 기존 참가자들은 죽상이었다.
백스테이지에서 장조림 가면이 계속 목을 닦았다.
[꺼흐흐흑…….]
음성변조 된 목소리로 통곡하는 장조림 가면, 뮤지컬 배우 장재림에게 주변 참가자들이 물었다.
[왜 자꾸 목을 닦으세요?]
[눈물이 목까지 흘러내리네요….]
목의 물기를 닦는 장조림 가면의 모습에 다들 허허 웃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오늘은 탈락하는 날이로구나.’
바로 가왕전까지 직행을 해야 할 인물이 넷이나 나왔다.
그나마 좋은 점이라면 명예로운 죽음이 가능하다는 것 정도?
저 사람들에게 진다고 해서 네가 못해서 떨어졌다고 말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터였다.
‘하지만 그래도 슬픈 건 슬프다.’
기존 참가자들이 슬픈 얼굴로 탈락을 받아들이는 한편.
[가왕님은 괜찮으세요?]
[네?]
조용히 서 있는 해바라기 가면에게 시선을 돌렸다.
놀랍게도 서리혁은 동요하고 있는 기색이 아니었다.
[저는 괜찮아요.]
[역시….]
서리혁은 정말로 덤덤했다.
그의 냉철한 이성이 말을 해 주고 있었으니까.
‘누가 올라오든 쉽지 않다.’
특히나 차우현이나 백시연이 올라오면 그냥 졌다고 깃발을 흔들어도 될 정도.
그가 생각하기에 승률은 3% 남짓이었다.
100번 불렀을 때 97번은 진다는 뜻이다.
그는 지금까지 연습생 생활과 가수 활동을 포함해 8년가량을 연습하며 보내왔다.
그리고 눈앞에 있는 인물들은 최소 20년 경력을 가진 선배들.
‘그렇다고 그냥 질 수는 없어.’
악착같이 따라붙어서 패배해도 선배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서리혁이었다.
그런 각오를 다지고 있는 동안 기존 참가자들이 무대 위로 올라갔다.
"가왕 선우주 님도 올라가실게요~!"
마지막으로 가왕이 등장할 시간.
토끼 삼촌 메들리에 힘입어 깡총깡총 뛰어올라간 서리혁이 [가왕 선우주]로서의 자아를 탑재했다.
[안녕하세요! 동쪽에서 봐도, 서쪽에서 봐도, 동서남북 어디에서 봐도 귀엽고 깜찍한 선우주입니다!]
여기저기 손 하트를 날리자 방청객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제가 사랑하는 비주 군에게도 하트 한 방~!]
방청석에 있는 선우주가 서운한 얼굴로 항의했다.
[뭐라구요? 안 들리는데요~?? 우주는 할머니 말밖에 안 들려~]
방청석의 우주가 뒷목을 잡으면서 다들 웃음을 터뜨렸다.
그렇게 프로 예능인답게 방송 분위기를 주도하던 서리혁이 신규 참가자들을 흘깃 바라보았다.
‘무서워하지 말자. 서리혁.’
베일을 드리운 장미 가면을 쓴 채 그를 향해 장갑 낀 손을 흔들어 주는 흑장미.
그를 가만히 응시하는 오르페우스.
팔짱을 낀 연꽃 가면과 최면술에 쓰는 회중시계 가면.
[이야. 오늘 정말 쟁쟁하네요.]
중계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야말로 역대급 가왕전 무대가 탄생할 것으로 예상되는 오늘 <미션 싱어>입니다.]
[가왕가왕가왕 & 국힙원탑 가왕 선우주 님께 한 말씀 여쭤볼까요? 오늘 어떠십니까? 눈여겨보시는 참가자가 있나요?]
인터뷰 타임.
어떻게 하면 예능 구도로 재미있을지 3초간 고민하던 리혁이 답했다.
[노래의 신 오르페우스 님을 주목하고 있어요.]
[오오오!]
환호하는 방청객들에게 서리혁이 가면 속에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제가 저번에 국힙원탑 서리혁 씨를 누르고 국힙원탑 타이틀을 가져왔잖아요? 이번에 ‘노래의 신’ 타이틀도 가져오겠습니다!]
[이야. 어마어마한 포부입니다! 가왕과 국힙원탑에 이어 노래의 신까지……!]
[그야말로 킹왕짱이 되겠다는 거네요! 가왕이 아니라 가황을 향한 출사표입니다!]
과연 가왕 선우주의 코멘트에 뭐라고 답할지, 모두의 시선이 차우현에게 향했다.
그에 대답하듯.
‘응?’
‘저거 하프? 아니, 리라인가?’
주머니에서 주섬주섬 미니 리라를 꺼내는 차우현이었다.
[띠링~ 띠리링~♬]
[도전은 환영이라네~♪]
방청객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곤 서리혁과 차우현을 교차해 가며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노래를 잘하면 어디 한 군데가 안 멀쩡하구나…!’
‘차우현도 정상인은 아니야.’
가면 뒤에서 진지한 얼굴로 개그를 하고 있을 차우현을 상상해 가면서 웃을 때.
중계진이 모두가 궁금해하던 질문을 꺼냈다.
[정말 새로운 참가자들에 대한 관심이 뜨겁네요…!]
[이쯤에서 저희도 궁금한 게 있는데요. 오늘 신규 참가자 분들은 어떻게 참가를 하게 되신 건가요?]
서리혁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 이유가 궁금했다.
[음…….]
드레스를 입고 있는 흑장미가 가면을 만지작거렸다.
[제가 TV는 정말 안 보는 편인데, 뉴블랙 TV는 구독하거든요. 거기서 래퍼 분들이랑 국힙원탑 서리혁 님이 랩을 하는데…….]
그걸 시작으로 이어지는 증언들.
서리혁이 눈을 깜빡였다.
다들 하는 이야기가 비슷했기 때문이었다.
평소 노래에만 관심이 많지, 방송 활동에는 관심이 적은 가수들이 호기심을 보인 이유.
이야기를 하나씩 조합해 보니 그 이유가 소상히 밝혀졌다.
-여러부우우운!!! 동네 사람들!!! 아! 글쎄 우리 리혁이가 가요 대회에서 1등을 했어요오!!
-우리 리혁이 좀 쩌는 듯? 과연 누가 이길 수나 있을까요?
서리혁이 고개를 획 돌렸다.
거북이처럼 목을 움츠리며 비주 뒤에 숨는 누군가.
‘선우주…!’
서리혁의 눈이 이글이글거렸다.
* * *
리혁이는 화가 났을 때 무섭다.
안 그래도 눈매가 매서운데 화가 나면 정말 못된 세모꼴로 바뀐다.
"아니……."
"죄송합니다."
"나한테 그거 가지고 인사를 얼마나 많이 받았어요? ‘야, 리혁아. 너 내가 이번에 엄청 화제 되게 만들어 줬다.’ ‘넌 나한테 감사를 해야 한다.’ ‘형 예쁘지 않냐….’"
"근데 솔직히 예쁜 건 인정하지 않니?"
"캬아아악!"
비주가 내 옆에서 귀를 틀어막는 동안 나는 귀에서 한 줄기 피가 주르륵 흘러내리는 기분이었다.
리혁이가 투덜댔다.
"‘껍데기는 가라’는 구절을 인용하고 싶네요. 알맹이는 가라."
"죄송합니다……."
생색 좀 덜 낼걸.
나와의 배틀로 리혁이의 <미션 싱어> 우승이 역대급 화제가 되었을 때.
여기저기 홍보를 뛰면서 리혁이에게 엄청 생색을 냈던 터였다.
-리혁아! 형이 홍보했당!
-SNS에도 지금 좋아요 숫자 보이니? 내가 홍보 요정이야. 꺄르륵!
비주가 웃으며 말했다.
"그래도 형이 홍보를 엄청 잘했나 봐요. 평소 방송에 관심 없는 선배님들도 대거 나온 거 보면……."
"아니야. 그것도 있긴 하지만…."
내가 리혁이를 바라보며 말했다.
"리혁이 때문인 게 크지."
"?"
"저분들이 나온 이유가 내가 홍보를 해서 그런 게 아니잖아. 결국 리혁이의 실력을 보고 나서 ‘나도 한 번 붙어 보고 싶다’ 라고 생각해서 나온 거니까. 아무리 화제성이 컸어도 리혁이 실력이 좋지 않았으면 힘들었지."
"어? 그러네요!"
비주가 납득하고, 리혁이의 귀가 살짝 달아오르고 있을 때였다.
"그런고로 리혁이 잘못 아닐까?"
"캬아아아악!"
귀마개를 꼈다.
예비군 훈련에서 사격할 때도 쓸 정도로 방음이 잘 되는 물건인데도 생생하게 들리는 소리.
지금은 1차 경연이 끝나고 쉬는 시간이었다.
[2R 대진표]
예상대로 1라운드에서 기존 참가자들을 모조리 박살 내고 올라온 신규 참가자들이었다.
우리 스탭들이 말했다.
"어우, 아까 장조림 님 너무 불쌍하더라."
"그니깐."
특히나 차우현 선배와 1라운드에서 맞붙게 된 장조림 가면은…….
[노래의 신 오르페우스 : 97표]
[명품조연 장조림 : 3표]
딱 3표를 얻고 탈락하셨다.
반장 투표했을 때의 트라우마가 떠오른다는 코멘트를 날린 장조림 님이 꺼이꺼이 울면서 내려가던 모습에 다들 웃었다.
"후우우……."
리혁이가 소파에 앉아서 깊은 한숨을 쉬었다.
나와 비주가 옆에 촙 붙었다.
"떨려?"
"떨리긴 하는데 탈락에 대한 긴장감은 아니에요."
"?"
"가왕전에서 내 최대치를 보여 주고 싶은데, 그게 안 되면 어떡하나 싶어서."
"너무 걱정 마. 잘할 거야."
비주와 내가 양쪽에서 리혁이의 손을 잡아 주었다.
차가운 수족 냉증의 손을 덥혀 주며 ‘힘내라!’ 하고 있는 동안 긴장으로 굳은 리혁이를 바라보았다.
날카로운 코끝에 땀방울이 성글성글하다.
얼마나 긴장될까.
"형."
리혁이가 내게 고민상담을 하듯 물었다.
"어떻게 될 거 같아요? 나 지금 머리가 안 돌아가서 분석 좀 해 봐요."
"글쎄… 아마 높은 확률로 백시연 선배님 아니면 차우현 선배님이 가왕 무대로 올라오겠지."
그중에서 누가 이길지는 모르겠다.
락 보컬 VS 발라드 보컬.
경연 측면에서는 변화무쌍한 락 보컬이 우세하지만, 대중들이 워낙 차우현 선배 보컬을 좋아하기도 해서.
"누가 올라올지는 모르겠지만 차우현 선배님이 올라오는 경우가 좀 더 좋은 상황일 거 같아."
"왜요?"
"음… 그럴 만한 이유가 있어."
백시연 선배님은 사실 지금까지 음원만 듣고 이번에 처음 뵌 분이라 잘 모르지만….
명곡단에서 한 달 넘게 같이 방송하고, 평창 폐회식 무대를 비롯해 다양한 곳에서 접점이 있었던 차우현은 다르다.
그분 성격이라면 아마…….
"더 재미있어질 것 같은데."
"?"
내가 함부로 단언할 수는 없지만 재미있는 구도가 나올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나와 리혁이의 대결만큼이나 시청자들을 열광하게 만들 구도가.
"뭔데요?"
"안 알려 주지롱~"
동생의 머리카락을 흐트러뜨리며 웃었다.
"아."
그러다가 멈칫했다.
"왜 그래요?"
"생각해 보니까 너 머리 건드리면 안 될 거 같아서. 이따가 가왕전 끝나고 가면 벗어야 될 수도 있으니까."
"……!"
네가 형이냐, 동생한테 그런 응원을 하냐는 소리가 들려오는 것을 느끼며 귀를 막았다.
‘형.’
‘난 응원을 해 준 거야.’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웃는 비주에게 어깨를 으쓱여 보였다.
이게 다 리혁이의 긴장을 풀어 주기 위한 나의 큰 뜻이었다.
* * *
결국 리혁이는 풀메이크업을 했다.
최애인 세종대왕님에 이어서 자신의 차애를 언급하면서.
-살고자 하면 죽을 것이고 죽고자 하면 살 것이라고 충무공께서 그랬어요. 저는 죽을 각오를 했어요.
-하지만 넌 이순신 장군님이 아니잖아?
결국 쫓겨났다.
"괘씸한 것……."
흠칫!
내 앞자리에 앉아 있는 아이돌 패널들이 어깨를 움찔하고는 뒤를 힐끔 돌아보았다.
내가 다급하게 덧붙였다.
"괘씸한 서리혁……."
그제야 안심하는 이들.
곧이어 시작된 2라운드 경연을 지켜보면서 나와 비주는 패널로서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오늘의 주제는 ‘편지.’
"정말 한 글자, 한 글자 꾹꾹 눌러서 편지를 쓰는 듯한 느낌을 받은 무대였던 것 같아요. 여름밤에 귀뚜라미 소리를 들으며 편지를 쓰고 있을 화자가 떠오르는 무대였습니다."
"우주 형의 의견이 저의 의견이에요."
예상대로 4강전에서 올라온 사람들은 둘이었다.
[배반의 흑장미 : 73표]
[보여 줄게 레드 선 : 27표]
쉴 새 없이 달리는 락 보컬을 선보이며 더 문을 가볍게 누르고 진출한 백시연.
[블랙 로터스 : 21표]
[노래의 신 오르페우스 : 79표]
8대 2라는 차이로 결승에 진출한 차우현.
더 문과 연도 가왕급 가수들인데도 맥을 못 추고 쓰러질 만큼 어마어마한 강자들이었다.
그렇게 그들이 격돌한 결승전.
"와아아아아아아아!"
"와아아아아!!"
예능인 패널들과 방청객들은 물론이고, 자리에 앉아 있는 모든 가수들이 엉덩이를 들썩일 정도로 어마어마한 무대가 펼쳐졌다.
"와……."
비주와 나도 팔뚝에 돋은 소름을 어루만질 정도였다.
리혁이가 앞으로 10년 정도 더 묵으면 저렇게 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완벽한 보컬을 보여 준 차우현.
여성 락커 3대장에서 수좌를 차지하고 있는, 과거의 전성기보다 더한 무대를 보여 준 백시연.
보컬 교과서에 실려야 할 것 같은 무대가 끝났을 때.
[네, 그럼 결과를 공개해 주시죠!]
흑장미 가면과 하프 가면이 서로 리스펙하는 의미의 악수를 주고받고는 나란히 섰을 때.
결과가 공개됐다.
[노래의 신 오르페우스 : 55표]
[배반의 흑장미 : 45표]
흑장미가 아쉽다는 듯 주먹을 쥐고 드레스 자락을 내려치고.
오르페우스가 무덤덤한 기색으로 고개를 끄덕이고는 흑장미에게 꾸벅 인사했다.
[네! 이로써 오늘의 가왕전 진출자가 결정되었습니다! 노래의 신 오르페우스!]
옥좌에 앉아서 기다리고 있는 리혁이가 왠지 모르게 각오한 듯한 태도로 박수를 치고 있을 때.
나는 우승을 차지한 차우현 선배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확실하게 예측할 수는 없지만….
나는 이 선배의 특징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노래에 광적으로 몰두하는 가수.
정말 지독할 정도로 보컬에 미친 선배님이었다.
그 말인즉….
* * *
천하제일 가요대회.
마침내 두 고수 간의 승패가 가려졌다.
‘아니!’
‘저런 괴이한 창법이…!’
‘참으로 순후한 보컬이로구나.’
방청객들이 역대급 무대를 직관했다며 팔뚝의 소름을 만지고 있을 때.
가왕전 진출자로 차우현이 뽑히면서 다들 눈을 빛냈다.
‘드디어 서리혁 VS 차우현…!’
‘크으!’
서리혁이 이길 것 같다는 생각은 안 들었다.
단지 차우현에 대항해서 얼마나 멋진 무대를 선보일지 기대감을 품고 있을 때였다.
[자! 이제 결정의 시간입니다!]
<미션 싱어>의 가왕전 진출자에게 질문을 하는 시간이 다가왔다.
[노래의 신 오르페우스님. 당신은 가왕전에 도전하시겠습니까?]
모두가 긴장한 얼굴로 하프 가면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당사자의 입에서 흘러나온 답변은 모두의 생각과 달랐다.
[아니요.]
‘어?!’
‘왜?!!! 왜?’
웅성거리는 방청석.
그리고 웃고 있는 박연희 피디와 선우주.
영문을 몰라 하는 서리혁.
[저는 가왕전에 도전하지 않겠습니다.]
그 말에 부연하듯 하프 가면이 말을 이었다.
분명 가면이라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왠지 모르게 광기가 느껴졌다.
[다음 경연에서 가왕님이 만반의 준비가 되셨을 때. 그리고 모든 준비가 끝나고 최고의 무대를 준비하셨을 때.]
하프 가면이 진지하게 말했다.
[저는 그때 다시 도전하겠습니다.]
그런 말을 하면서 보라색 망토를 휙 돌리며 무대를 내려가는 가요계의 마존.
마치 그 뒷모습이 서리혁에게 그런 말을 하는 듯했다.
-지금의 너를 이기는 건 재미없다.
-그러니 최선을 다해 준비해 와라. 그때 너를 쓰러뜨려 줄 테니.
방청객들의 눈동자가 커졌다.
이내 장내의 열기가 뜨겁게 폭발했다.
"우와아아아아아아-!"
"미친!"
"대박이다…! 다음에 그러면 우리 차우현 VS 서리혁 보는 거야?"
그들이 환호하고 있을 때.
가까운 방청석에서 환호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비주가 세상 무해한 얼굴로 질문했다.
"저… 근데 여러분들은 다음 주에 못 보시지 않나요……?"
정말이지 악의 없는 질문에 방청객들이 그 순간 얼어붙었다.
‘어?’
‘어어?’
차우현이 다음에 맞붙겠다는 것은 2주 뒤에 있을 경연에서 서리혁과 맞붙겠다는 뜻이었다.
그 말은….
‘우리는 못 본다?’
‘나 못 봐?’
방청객들이 울부짖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