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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04. 딸이 생겼다 (3) >
아빠는 축구인생 2회차
4화 딸이 생겼다 (3)
툭!
마인구는 가져온 짐을 내려놓았다.
“와.”
절로 입이 벌어졌다. 생각보다 가은이와 딸이 사는 집이 컸다.
‘최소 40평은 넘겠는데?’
6평 남짓한 원룸에서 살았던 만큼 중문 후 나타난 널찍한 거실은 운동장 같았다.
가은이는 팔짱을 낀 채 예의 미끈한 미소를 띠었다.
“앞으로 여기서 지내면 돼. 있을 건 다 있으니까. 우리 세나도 낯선 공간보다는 원래 지내던 곳에서 지내는 게 더 좋을 테구.”
“음음. 그렇고말고. 그 도도한 고양이도 원래 살던 집에서 낯선 집으로 가면 이틀, 삼일은 구석에 쪼그려서 안 나오는 법이거든. 아빠로서 이건 당연한 거야.”
“세나랑 고양이랑 같아?”
“아니, 뭐. 똑같지는 않지만..., 일종의 비유인 거지.”
대충 얼버무린 인구는 천천히 나무마루로 된 거실에 발을 디뎠다.
“세나는?”
딱 봐도 비싸 보이고 널찍한 소파에 몸 던져 누워보고 싶은 충동을 느끼며 물었다.
푹신.
대신 조심스레 엉덩이를 붙였다.
‘와. 푹 들어가네, 푹 들어가.’
엉덩이를 확 감싸는 이 감촉. 그리고 맞은편에 50인치는 거뜬히 넘어 보이는 대형 TV.
은근슬쩍 눈동자만 굴려 구석구석을 살펴보는 사이, 가은이는 부엌으로 걸어가며 답했다.
“작은 방 아기 침대에서 자고 있어.”
“유치원은?”
“아직 유치원 갈 나이는 아니야.”
“아하.”
아기를 키워본 적이 없던 데다 관심도 없었기에 아는 게 없었다.
가은이는 말했다.
“지금부터라도 하나씩 알려줄게. 메모도 하고 갈 거야.”
“아, 그래. 그게 좋겠다. 아빠 된 도리는 해야 하니까.”
인구는 차분한 척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은 이 집에 발을 들인 순간부터 설렜다.
‘450만원이라니...!’
일용직이라고 해서 주 5일 이상 매일 나가는 것도 아니었다.
하루 벌이라고 해봤자 뙤약볕 아래서 쎄빠지게 일하며 겨우 12만 원.
비가 오거나 악천후면 그날은 일거리도 없었다.
‘그렇게 해서 대충 300 초중반대였는데.’
아기만 돌보면 450만 원을 준단다.
그것도 매달!
즉, 일을 할 필요가 없어졌다는 소리였다.
“한, 두 달쯤 뒤부터는 어린이집 등원시키면 돼.”
“어린이집?”
인구의 반문에 가은이는 컵에 정수기 물을 따라 한 모금 마신 후 답했다.
“보통 3살 즈음부터 어린이집 등원을 해. 가정도 있긴 하지만..., 우리 집 근처에 좋은 곳이 있어. 거기로 가면 돼.”
아싸.
라고 속으로 쾌재를 불러일으켰다.
아이를 키워본 적이 없어 걱정되던 참에 한결 부담을 덜었다.
‘어린이집을 생각 못 했네.’
이렇게 되면 작게나마 자유 시간도 생기는 거 아닌가.
겉과 달리 인구는 두 눈에 힘주어 우려를 표했다.
“내 새끼 남에 손에 맡겨도 되는 거야? 벌써부터?”
“어머, 언제부터 내 새끼가 된 거래?”
특유의 능글스런 인구의 모습에 가은이는 픽하니 웃음을 터뜨렸다.
나름 취향 저격을 한 것 같아 인구는 보다 편히 소파 등받이에 등을 기댔다.
‘금방 잠들겠네.’
두 눈은 연신 주변을 훑다 말고 가늘어졌다.
소파 밑부터 시작해 가구 사이, 사이에 익숙하고도 질려버린 무언가가 보였다.
“축구공이..., 많네?”
“세나가 좋아해.”
“축구를? 이제 세 살인데?”
“세 살도 축구 좋아할 수 있지.”
“으음. 뭐, 그렇긴 하다만.”
인구는 한쪽 볼을 긁적였다.
그 말처럼 거실 곳곳에 풋살공부터 필드에서나 사용하는 축구 공이 여럿 보였다.
‘사인 공도 있고.’
세 살 여아가 축구를 좋아한다는 건 흔치 않은 일이었다.
그때, 가은이가 벽면에 비스듬히 한쪽 어깨를 기대며 중얼거렸다.
“오빠 닮아서 그런가?”
“난 축구 안 좋아하는데?”
“진짜?”
“그럼.”
당황하지도 않고 아주 차분하게 부정했다. 가은이는 두 눈을 가느스름하게 떠 말을 이었다.
“언제는 세계 최고의 축구 선수가 될 거라며 호언장담을...!”
“에헴!”
인구는 헛기침을 하며 그 말을 잘랐다.
언제 적 이야기던가.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잖아.’
축구 관련해선 더는 말을 섞기가 싫어 화제를 전환했다.
“근데 너 내가 사는 곳은 어찌 알았어?”
처음부터 궁금했던 부분이었다.
자신은 그 흔하디흔한 별그램이나 풰이스북 같은 것을 하지 않았으니까.
그런데 가은이는 4년 만에 연락해놓고서 대뜸 자신이 사는 옆, 단골 맥주집에 오겠다고 약속을 잡았다.
‘설마...’
본인이 잠수 이별해놓고 4년 동안이나 쭉 남몰래 동태를 살피고 있던 것인가?
충분히, 일리가 있었다.
인구가 아는 가은이는 독특한 여자였던 데다 옵저버 같은 존재였다.
‘혼자 있을 때나 친구들이랑 같이 있을 때도 내가 뭐 하는지 다 알고 있었어. 미행이라도 붙이는 줄 알았다고.’
그래서 사귀는 동안엔 거짓말이라는 것을 한 적이 없다.
초반에 몇 번 했다가 부메랑처럼 날아와 뒤통수를 때렸으니까.
진짜로 맞았다.
“너튜브 통해서.”
“너, 튜브?”
예상이 철저히 빗나갔다.
살짝 구겨진 인구의 표정에 가은이는 마저 남은 물을 마시며 덧붙였다.
“‘그때 그 사람들’이라는 너튜브에 오빠 나오던데? 나도 우연히 접한 거야.”
“그때 그 사람들?”
인구는 의아한 얼굴로 휴대폰을 꺼내 너튜브에 접속했다.
그때 그 사람들을 검색하자 한 게시글이 눈에 띄었다.
<제2의 카카라 불리었던 비운의 축구선수. 지금은 뭐하나?>
한국에서 제2의 카카라 불리었던 선수는..., 10년이 지난 지금도 오직 인구, 그 한 명이었다.
‘난 이런 거 찍은 적이 없는데...?’
인구는 불길함을 느끼며 해당 영상을 재생시켰다.
시작은 높낮이 없는 남성의 나래이션부터였다.
[경기도 시흥시 00곳에 위치한 어느 문방구.]
[문방구 앞 게임기 앞에서 아이들과 춸권을 하고 있는 한 어른이 있습니다.]
[일반 성인 남성보다 훨씬 큰 덩치의 그..., 다름 아닌 한때 제2의 카카라 불리던 마인구씨입니다.]
.
.
.
[아이들과의 게임을 통해 승리하곤 이겼다며 즐거워하는 인구씨. 이전의 강직하고 날쌔 보이는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습니다.]
“...”
[인구씨. 일과가 끝난 날이면 하루도 빠짐없이 이 맥주집에서 술로 지친 몸을 달랩니다. 저 튀어나온 배는, 술로 만들어진 거군요.]
[가게 사장님과 잠깐 인터뷰를 해봤습니다.]
[00맥 가게 사장 ‘아쉽죠. 아쉬워요. 어쩌다 저렇게 된 건지..., 허구한 날 취해있어요. 우리집 맥주가 워낙 중독성있고 맛있긴 한 것도 있지만. 크흠!’]
[그 모습에선..., 더는 제2의 카카라 불리던 선수 마인구의 모습은 없습니다.]
.
.
.
[그때 그 사람들 ?제2의 카카편- The End]
영상이 끝났다.
인구의 동공이 아래로 훅 떨어졌다.
댓글들이 눈에 띄었다.
- <진격의제라드> : 와. 졸라 망했네. 머리는 뭐 까치집이야. 외모 관리 안 해?
- <금니빨> : 아저씨 다 됐다, 아저씨 다 됐어.
- <살아있눼> : 쟤가 마인구라고? 내가 아는 인구가 아닌데? 그냥 동네 술주정뱅이 아님?
ㄴ <검은머리전술천재> : ㄴㄴㄴ 바보임. 동네 바보. 어린애들 놀림 대상감인. 왜 너희들 어릴 때도 동네에 한 명씩 바보들 있었잖아?
한 손에 휴대폰을 쥐고 있던 인구의 손이 덜덜 떨렸다. 얼굴은 새삼 흉악하게 일그러졌다.
‘이, 이 쉬발쌔기들이...!’
* * *
일주일 뒤.
가은이는 미국으로 떠났다.
그리고 인구가 제일 먼저 한 일은 어린이집을 찾아가 입소 대기 신청을 하는 거였다.
“뭔, 입소 대기란 게 다 있어? 군대도 아니고.”
집에 돌아온 인구는 소파에 털썩하니 앉았다.
긴 시간을 기다린 끝에 세나의 등원 날짜를 9월로 잡았다.
조금이라도 더 늦었다면 큰일 날 뻔했다.
[어머. 다행이네요. 9월에 딱 한 자리 남아 있었어요.]
생각 없이 두 달이 지난 당일에 갔다면 세나가 4살이 되는 해까지 기다릴 뻔한 것이다.
‘일찍 가서 신청하라는 게 이유가 있었구만.’
그때였다.
[슈우우우웃!]
[고오오오오오올!]
tv 화면 속 유럽 리그 경기가 한창 진행되는 와중에 손흥빈이 왼발 감아차기로 골을 성공시켰다.
그와 동시에 바닥에 앉아있던 양갈 머리 세나가 두 팔 벌려 환호성을 내질렀다.
“와아아~ 코이뜨으으!”
저 코이뜨는 코이스가 분명했다.
Come on you spurs의 줄임말.
‘저런 것도 알아?’
피식하니 웃음이 샜다.
하지만 tv 화면 속 득점에 성공한 손흥빈이 코너플래그로 달려가 무릎 슬라이딩을 선보이자 눈밑이 살짝이지만 떨렸다.
[환상적입니다! 손흥빈 선수우우!]
[미쳤어요, 아주 미쳤어요오오!]
해설진의 외침에 인구는 신경질적으로 한쪽 귀를 후벼팠다.
청대 시절, 손흥빈은 인구의 동료였다.
‘진짜 월드클래스로 성장했네.’
그에게 악감정은 없었다.
오히려 유럽에서 훨훨 날아다니는 흥빈이를 보니 뿌듯했다.
지금 치미는 짜증은 오로지 축구에 한한 것이었다.
왜인지 축구를 관둔 순간부터 인구는 축구가 미웠고 싫어졌다.
그래서 가은이가 가자마자 축구공부터 베란다에다가 몽땅 집어넣었다.
그 즉시 세나가 울어서 결국 공 하나를 꺼내주었지만.
지금도 세나의 옆엔 기상용 사인볼이 놓여 있었다.
“다른 데 볼까, 세나야?”
인구는 곧 소파 팔걸이에 둔 리모컨을 집어 들었다.
그러자 세나는 이쪽은 쳐다도 보지 않은 채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안대!”
“왜?”
“재미쒀!”
“어른들 공놀이가 뭐가 재밌어?”
“재미쒀!”
“저 봐. 야만적이잖아. 어후! 방금 태클 너무 깊었다. 저거 최소 15세 이상 관람가야. 그냥 포로로 보자.”
띡!
인구는 가차 없이 채널을 돌렸다.
세 살쯤이면 축구보단 포로로나 어린이 프로를 좋아하는 게 정상이었다.
한데...,
“으아아아아앙!”
기다렸다는 듯이 세나가 울음 공격을 가했다.
인구는 자세를 고쳐앉으며 그새 이쪽으로 몸을 돌리기까지 한 딸을 향해 차분히 설명을 이었다.
“세나야. 축구는 재미가 없는 거야. 너네 엄마가 있는 미국에서 야만적인 스포츠라고 했을 정도라고.”
“아니얏! 으아앙!”
“어허. 세나! 운다고 다 해결될 줄 알아? 사회는 그렇게 호락호락하지가...!”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울음 데시벨이 더 커졌다.
포로로 따위는 쳐다도 보지 않았다.
결국 인구는 다시 축구 채널로 돌렸다.
뚝!
“코이뚜우우우우!”
언제 울었냐는 듯 홱! 엉덩이를 돌린 세나가 두 팔 벌려 외쳤다.
“....”
인구는 황당한 표정으로 그런 세나의 자그마한 머리를 보다가 물었다.
“우리 딸, 축구가 그렇게 좋아.”
“웅.”
“왜?”
“아빠가 축구선뚜니까!”
인구는 턱을 긁적이며 가벼이 부정했다.
“아빠, 축구선뚜 아닌데?”
“아뉘. 엄마가 아빠 축구선뚜 맞댔어!”
생각해보면 가은이도 축구선수를 그렇게 좋아했었다.
청대 시절에 날아다니는 자신을 보곤 연인 관계도 아니면서 대뜸 결혼하자! 라며 손을 내밀기까지 했었고 말이다.
그땐, 내가 정말 축구선수가 될 거라고도 생각했다.
오히려 지금 이처럼 모든 걸 포기하리란 전개는 아예 머리 밖에 있었다.
“아닌데?”
“마자!”
홱!
움찔!
순간 인구는 몸을 떨었다.
코이뜨 거리던 세나가 새침해진 눈으로 이쪽을 노려봤다.
살짝 눈밑이 붉어진 게 이번에도 아니라고 하면 또 사자후를 날릴 것 같았다.
매끈한 미간에 내 천자까지 그린 세나는 자그마한 엄지 끝으로 마저 일격을 가했다.
“아빠는 축구선뚜야!”
“....”
아니라고, 더는 부정할 수가 없었다.
볼을 부풀린 게 더 큰 울음 공격을 준비 중인 것 같았다.
또 세나가 울면 이상하게 마음 한편이 쓰라렸다.
결국 인구는 두 손을 들어 졌다는 제스처를 취했다.
“그래, 맞아. 아빠 축구선수야.”
“와아! 아빠 축구선뚜야!”
부풀린 볼이 쏙 들어가더니 세나가 세상 해맑게 외쳤다.
세 살 아기의 복명복창에 인구는 자기도 모르게 웃음을 흘렸다.
“허허.”
귀여웠다.
이 인정이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줄은 이때까진 몰랐지만 말이다.
< 004. 딸이 생겼다 (3)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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